나는 매일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다 - 런치의 앗코짱 앗코짱 시리즈 1
유즈키 아사코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8년 10월
평점 :
절판


제목만 보고는 화가 났다. 땅콩회항, 재롱잔치, 애비 찾고, 물 뿌리기에 이어 이제는 도시락 갑질이냐?! 라는 기분으로 어떤 정신나간 녀석이 부하직원에게 이 따위 심부름을 시키는 거야!! 제대로 욕해 줄 생각이었다. 그런데 어라? 작가가 유즈키 아사코다. 세상의 모든 소녀를 응원한다는 <서점의 다이아나>의 그 작가다. 여성의 사랑과 우정, 무엇보다 성장을 기가 막히게 그려내는 작가랑 갑질? 이건 어울리지 않는다. 전혀 매치가 안돼. 호기심이 동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다 읽은 지금은? 그러면 그렇지!! 생각대로의 유즈키 아사코라며 흐뭇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내가 있다.  

'나 같은 인간은 왜 사는걸까?'(p12) 고심하는 미치코. 으악, 초반부터 뭐야? 이 친구 넘 우울하잖아 라고 생각했는데 그럴 만 했다. 19살 때부터 4년을 사귄 남자친구에게 차였다. 회사에서는 존재감 없는 계약직. 결혼자금을 모으려고 아끼고 아끼다 보니 친구 하나 남지 않은 생활. 계단 꼭대기에서 난간 밖으로 한발짝만 떼면 인생이 편해지지 않을까 유혹에 빠지는 것도 이해가 간다. 사랑이 전부이고 내 모든 것이 실패인 것만 같은 그런 때가 있질 않나. 그 순간 정신없이 울적한 미치코의 등짝을 떼리는 여성이 있다. 일명 앗코짱. 구름과 나무 영업부의 베테랑 부장님 되시겠다. 173센티의 커다란 키(동경한다), 윤기나는 검은 단발머리(부러워), 똑 떨어지는 업무능력(모자란 게 뭐냐), 알고 보니 연하의 이성에게 인기까지 많은(젠장, 이 정도면 재수없는데?) 그녀가 외근으로 갈고 닦은 자신의 점심 루틴과 미치코의 도시락을 바꿔 먹자고 말한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일주일. 예스걸이라고 해야할지 도무지 NO를 외치지 못하는 미치코는 그렇게 강제 도시락 셔틀이 된다. 흰 토끼가 그려진 빨간 봉투 속 지도와 1000엔. 탐 크루즈처럼 매일 아침 미션을 부여받아 회사 밖으로 달려나가는 점심시간. 카레와 샌드위치와 가슴 확 트이는 옥상에서 배달 받은 스시 도시락을 앞에 두고 홀쭉했던 미치코의 마음이 토실 토실 알밤처럼 차오른다. 어느 새 괴로웠던 점심시간과 부장님의 도시락 싸는 시간까지 즐거워진다. 오늘은 무슨 반찬을 준비할까? 점심엔 또 어떤 메뉴가 기다리고 있을까? 그리고 내일은 뭐 먹지? 

직장상사의 도시락을 싼 월화수목금요일. 지난 금요일 이후 고작 일주일이 지났을 뿐인데 더는 어제의 미치코가 아니다. 성장하고 꿈꾸고 행복해하고. 남자친구와 만들었던 우물 안 세계를 벗어나 세상 밖으로 전진하는 스무세살의 아가씨. 뭐 이런 동화 같은 소설이 다 있담. 속의 말을 숨기지 못하고 책을 덮으며 입을 삐죽 '유치해'. 그런데 왜 자꾸만 웃음이 날까? 왜 자꾸만 입꼬리가 씰룩씰룩 한거지?실은 유치한 게 아니라 부러운 거 아니야?그렇다. 실은 비밀의 앗코짱과 친구가 된 미치코가 너무너무 부럽다. 앗코짱 옆에서 행운의 실마리를 다 배운 것만 같은 그녀가 너무너무 샘난다. 너무너무 완벽한 앗코짱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 이런 츤츤한 데레 언니 어디 없냐규~ 창문을 활짝 열고 외치고도 싶다. 여전히 성숙하지 못한 나를 반성할 때 꼭 나와 같이 서른을 넘겨 미팅으로 폭주하다 자괴감에 빠지는 그녀 노유리씨가 나오고 아내와 별거하며 매일 같이 야근에 시달리는 마사유키 사장님이 등장한다. 그들의 일상 어느 한 켠을 훅 지나가는 미치코와 앗코짱의 새로운 업무 뒤로 달려오는 드라마틱한 해피엔딩들. 무슨 책이 이렇게 출근해서 마시는 믹스커피 같냐. 쨍하게 달고 찐하게 사랑스럽고 비타민 보다 더 에너지가 샘솟는 내 맘 같이 흘러가는 이야기들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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