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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더 포스 1~2 세트 - 전2권
돈 윈슬로 지음, 박산호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9월
평점 :
절판
뉴욕 경찰의 초상화 같은 책을 만났다. 모든 경찰의 초상화는 아니겠지만 몇 몇 경찰들의 초상화는 될 수 있을 것 같은 조직 "다 포스". 그들은 맨해튼 북부 특별 수사대로 뉴욕 하렘의 제왕 데니 멀론의 지휘를 받는다. 헌데 소설의 시작이 좀 특별하다. 제왕이 갇혀있다. 3만 8천 경찰들 중 1퍼센트의 1퍼센트의 1퍼센트 두뇌에 머리와 용맹성을 지닌 다 포스의 왕이자 50킬로그램의 헤로인을 몰수하고 마약범을 처벌한 경찰들의 영웅이 연방요원들의 손에 붙들려 감옥에 간다. 그는 생각한다. 나는 왜 여기에 범죄자들과 같은 모양으로 잡혀있는가?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는 부패한 경찰이다." (p15)
이 책에 대한 모든 추천사 중에서 <잭 리처 시리즈>의 작가 리 차일드의 말에 가장 동의한다. 마치 셰익스피어의 비극을 보는 것만 같은 서사라는 말. 끊임없이 이어지는 선택과 더욱 확장되는 비극의 연결고리. 이제야말로 끝이구나 클라이막스구나 싶을 때에 데니 멀론은 오로지 살아남겠다는 저열하지만 가장 인간적이고 솔직한 열망에 휘둘려 계속해서 어리석은 답을 선택한다. 그가 저주한 동료 토레스는 소시오패스였을지는 몰라도 그 자신의 부패가 연방요원들에게 노출되었을 때 밀고자가 되지 않고 자살을 선택한다. 어찌보면 깔끔하고 어찌보면 지루한 선택이었다. 연방요원들은 더 어떻게 그를 엮지 못했고 그는 연금과 가족의 안전을 보장받은 채 수치없이 경찰묘지에 묻힐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데니 멀론은 달랐다. 그는 본격적으로 부패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만반의 준비를 해두었다. 이를테면 공짜 샌드위치에 공짜 커피를 얻어먹는 것 이상의 비리들 말이다. 범죄자가 흘리고 간 돈을 줍고 범죄현장에서 돈이 될만한 물건들을 슬쩍하고 마약거래를 눈감아 주는 대가로 오천만 달러와 향응을 제공받고 더하여 헤로인을 강탈하고 무장하지 않은 두목을 살해하며 부패의 마지막 선을 넘어서는 그런 때에 이미 이 순간을 준비했다. 대비가 탄탄하니 모험을 해볼 법도 하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18년간이나 뉴욕 하렘의 뒷골목에서 제왕처럼 군림해온 그가 왕의 자리에서 내려가는 것은 치욕이었기에. 경찰 아닌 삶은 상상할 수 조차 없는 그는 밀고자가 된다. 처음은 변호사, 다음엔 시의원, 다시 다음엔 경찰, 마지막은 누가 될까? 그들만큼은 절대 건드리지 않겠다는 데니 멀론의 결심은 제 명줄 앞에 얼마나 허무한 것이었나.
그의 거듭된 나쁜 선택에 기대어 소설은 800 페이지 가깝게 단 한 순간도 지루하지 않았고 거듭 흥미로웠으며 거듭 서글프다. 통쾌하거나 시원하거나 묵은 체증이 한방에 내려가는 것만 같은 쾌감을 주는 소설은 아니다. 외려 통렬하고 두렵고 가슴 아픈 비극이다. 그 비극에 독자의 아드레날린이 솟구쳤음은 말할 것도 없고. 데니 멀론의 모든 부패와 뉴욕이 마주하고 있는 인종, 계급, 총기, 마약의 문제들이 글발이라는 작가의 거대한 재능과 씨줄날줄처럼 얽혀 독자를 압도한다. 데니 멀론의 비극에 꽁꽁 묶인 독자는 잠자는 것도 밥 먹는 것도 잊은 채 책을 읽을 것이다. 내가 그랬듯이.
멋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