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사랑일까. 표지를 장식한 물음을 처음엔 아무렇게나 흘려 읽었다. 2권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퍼뜩 표지의 질문이 떠올랐고 곰곰 생각해 보게 된다. 이게 사랑일까. 자기 파괴적이고 우정 파괴적이고 가족 파괴적이다 종내엔 모든 관계를 종말시키는 이런 핵폭탄급 감정이 정말 사랑일까.
테사와 하딘은 상대방을 사랑한다고 믿고 서로가 자신을 덜 사랑한다고 의심하는 와중 끝없는 갈등과 분노와 다툼과 배척과 회피에 괴로워한다. 지긋지긋하게 싸우고 지긋지긋하게 키스하는 얼음과 불의 시간들에 테사의 마음과 육체는 얼었다 타오르기를 반복하며 무던히 소모된다. 오늘로 영영 그를 잊겠다거나 내일로 영영 그를 떠나겠다는 결심은 그러나 하딘의 손길 한번에 주춤, 육체의 뜨거운 갈망 앞에서 한줌 잿더미가 되어버린다. 그러는 사이 테사는 어린 시절 모든 두려움에서 자신을 건져준 친구를 잃었고 아버지 없이 홀로 자신을 성장시킨 엄마를 상처입힌 채 떠나게 한다. 신입생으로 처음 둥지를 튼 기숙사를 나와 제 깜냥으로는 구할 수 없는 하딘의 집에서 동거까지 시작한다. 함께 산다는 것을 사랑의 완성으로 착각한 테사. 그러나 그 착각을 길게 가질 여유도 없이 하딘은 자신과의 관계를 친구들에게 숨기는 것으로 테사의 의심을 부추긴다. 테사가 싫어하는, 그리고 하딘과 열렬한 육체관계를 맺기도 한 여자친구 몰리와의 관계도 변함없이 유지한다. 방탕한 생활을 테사에게 숨기려는 최소한의 노력조차 없이 테사를 만나기 전과 하나 다를 바 없는 생활을 유지하는 하딘. 이 불공평한 관계에 매번 고민하지만 그때마다 하딘은 테사에게 사랑을 속삭이고 쾌락을 알게 하고 긴긴 밤 악몽 속에서 테사를 찾으며 그녀를 설레게, 긴장하게, 애절하게 만든다.
그는 어째서 친구들에게 동거 사실을 숨기는가. 어째서 테사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는가. 썩다 썩다 고름처럼 찢어발겨진 그의 비밀 앞에서 테사만큼은 아니었겠지만 독자인 나도 충격을 받았다. 그야 학창시절 읽은 할리퀸 로맨스에 이 비슷한 소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그 어떤 책도 비밀을 이렇게나 천박한 소재로 돌출시킨 적은 없다. 독자의 충격을 예상한 듯이 책은 끝이 났고 나도 미련없이 2권을 덮었다. 2권이 완결인 줄 알았는데 완결이 아니라는데서 1차 충격, 하딘의 그리고 그 친구들의 태도와 가치관에서 2차 충격을 받아 좀 얼떨떨한 상태기도 해서 곧장 리뷰 쓰기도 힘들더라. 하딘이 벌인 행동의 이면에 다른 어떤 이유가 있었다 할지라도 로설의 남주가 보일 수 있는 류 중 최악의 선택이 아니었나 싶다. 하딘의 이런 선택을 용서한다면 여자 주인공 테사를 더는 응원할 수 있을 것 같지도 않다. 이게 사랑일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남주가 바뀌는 로맨스 소설 따위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지만 2권 끝까지 읽은 지금에서는 테사와 하딘의 분명한 이별을 바라는 독자도 한명쯤은 있다는 걸 작가님께 알려드리고 싶다. 똥물에서 그만 구르고 제발 이성을 찾기를. 테사도 맘에 드는 여주는 아니지만 부디 3권에서는 조금은 성장한 그녀가 되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