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 살인의 문 - 전2권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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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5학년, "다지마 가즈유키"는 처음으로 살인에 관심을 갖게 된다. 오랜시간 병환을 앓았던 할머니가 죽고 그 소문이 시작되면서부터였다. 다지마의 어머니가 할머니의 밥에 독약을 타 먹였다는. 어디서부터 시작한지도 모를 뜬구름 잡는 말에 다지마의 부모는 경찰 조사까지 받는다. 증거 따위 없었지만 소문이 동네를 잠식한다. 치과에 손님이 뜸해지고 부모는 이혼하고 자신은 왕따를 당하는. 이십년 가까이 이어지는 불행의 전초전이었다. 살던 집을 팔아 이사를 하고 전학간 학교에서 더욱 지독한 폭력과 괴롭힘을 당하고 꽤나 부유했던 아버지가 술집여자에 빠져 사치를 일삼는 사이 다지마는 계속해 커지는 살인의 욕구에 만족한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 죽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죽일 방법까지도 다양하게 고심한다. 그러나 죽일 수 없다. 어떻게 해도 한순간 눈이 돌아 사람을 살해하는 악의까진 생기지가 않는다. 그래서 아버지가 칼을 갈아 제게 사기친 술집여자를 쫓아갈 땐 희열을 느꼈다. 자신은 살인범이 될 수 없었지만 대신으로 살인범의 자식은 될 수 있다는 기대감. 살인범의 자식이 된 그를 보면 누구나 겁을 먹을테지. 그러한 상상만으로도 몸 깊은 곳에서 활력이 뿜어져 나오는 것만 같다. 그러나 아버지는 살인을 저지르지 못한다. 여자의 깜찍한 유혹에 넘어가 전재산을 탕진한 후 다지마를 버린 채 사라져 버린다. 죽이고 싶은 마음으로 온통 잠식 당한 그 시절 다지마의 앞에 "구라모치 오사무"가 나타난 건 과연 우연이었을까?

"구라모치 오사무", 다지마와 한동네 친구이다. 의사집 아들 다지마, 두부가게집 아들 구라모치. 사는 형편이 다른데도 구라모치가 보여주는 어른스럽고 위험한 세상에 다지마가 매혹 당해 그는 금방 구라모치의 지갑으로 함께 한다. 전학이 이유가 되어 질이 좋지 못한 그와 자연스럽게 헤어졌는데 어째서인지 구라모치는 계속해 다지마를 찾는다. 다지마가 소극적이나마 불행을 극복한 순간들 속으로, 아주 거침없이, 풍랑을 몰고 온다. 다지마의 첫사랑은 구라모치의 아이를 임신한 채 자살했고 첫직장에선 구라모치의 다단계에 낚여 동료의 칼부림을 맞았다. 그 이후로도 쭉 다지마의 인생은 구라모치로 인해 망가졌다. 구라모치가 그의 멱살을 잡고 범죄에 끌고 간 건 아니다. 다지마의 의지로 그의 위법한 유혹을 거절하지 못한 건 분명 잘못이다. 그러나 구라모치가 없었다면 얼마든지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었다. 융통성이 없어서 샛길을 찾을 능력조차 안되니까. 그런 생각으로 살의를 갖는다. 이번에야말로 구라모치를 죽이겠다고. 그러나 이십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에도 다지마는 구라모치를 죽이지 못했고 구라모치에 대한 살의의 그릇은 한계선에서 찰랑댈지언정 밖으로 넘쳐난 적이 없다. 완벽히 고구마 같은 작품인데 읽다 보면 다지마가 언제까지 어디까지 당할지가 궁금해지는 건 그 때문이다. 한계를 보고 싶다는. 그가 살인의 문을 넘어서는 그런 날이 과연 오기는 할까.    

다지마는 구라모치가 악당이며 배신자이고 그의 삶에 이롭지 못하다는 걸 알면서도 그와의 연을 끊지 못한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만 봐도 질겁하는 것이 이치인데 구라모치라는 솥뚜껑에 매번 데이는걸로 그치지 않고 솥뚜껑을 열고 끓고 있는 밥에 손을 밀어 넣는다. 손이 익고 살점이 떨어져 뼈가 드러날 때까지 이 짓을 반복할 생각인 것만 같이. 외롭기 때문일까. 나쁜 놈인 줄을 알아도 지금 이 순간 속을 터놓을 수 있는 상대는 구라모치 뿐이라서? 그놈이 붙여준 여자 때문에 파산 했는데 돈을 빌려주는 것도 오직 구라모치 뿐인 인간관계. 그 놈 때문에 잘 곳이 없어졌는데  정작 구라모치 이외엔 오라는 사람 하나 없는 세상. 죽이고 싶은 인간 하나 밖에 남지 않은 세계라니. 끔찍해. 다지마는 열두살 때의 저주로 이미 날갯죽지가 부러져버린 걸지도 모른다. 그래서 구라모치의 발치에 주저앉아버린 것일지도. 살인의 문을 열고 다른 세상으로 훨훨 날아가버리지 못할 거라면 차라리 다지마가 죽어버렸으면 싶었던 결말. 마음 한 켠이 욱신거려 책을 덮기가 힘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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