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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호에서는 303호 여자가 보인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8년 8월
평점 :
눈을 떴는데 헤어진 남자친구가 내 침대 옆에 서 있다면 기분이 어떨까? 함께 데이트를 하던 집도 아니고 개인 계정에 언뜻 올린 휴가지의 정보만으로 자신을 쫓아온 거라면? 그 놈의 손에 라이플 총이 들려있고 곧 총구가 내 이를 부수며 목구멍까지 틀어박힌다면? 나를 죽이려던 놈이 나를 벽장에 가두고 그 앞에서 자살 한다면?? 나는 제정신으로 인생의 다음 페이지를 넘길 수 있었을까? 죽지 않고 살았지만 케이트는 한동안 집 밖으로 나가지도 못할만큼 심각한 공황장애를 앓았다. 심리상담과 부모님의 애정이 아니었다면 다음 페이지는 커녕 아랫줄로도 내려가지 못했을 인생이라는 책에 그녀는 미국행을 써넣는다. 육촌인 코빈과 집을 바꿔 살게 된 것이다. 공항, 택시, 터널, 베리 가 101번지로 향하는 여정에서부터 후회를 시작한 그녀의 앞에 오드리 마셜이라는 여자의 이름이 떨어지며 케이트는 오히려 미국생활에 활력을 찾는다. 조지라는 사이코패스를 불러들였던 그녀의 피가 또다른 불행을 끌어들인 것 같다는 확신과 함께.
“난 지금, 혹시 살인자의 집에 살고 있는 게 아닐까?"
303호의 문을 두드리는 여자. 친구가 실종되었다는 비명. 304호의 문을 열고 들어가며 케이트는 오드리의 살해를 점치고 이 기막힌 예감은 고스란히 현실로 돌아온다. 303호 여자 오드리 마셜이 변차세로 발견된 것이다. 불안장애의 정당한 원인이 된 사건을 앞에 두고 케이트는 304호인 코빈의 집을 뒤진다. OM이라 적힌 키를 찾는다. 폴리스라인이 쳐진 303호의 열쇠가 찰칵 맞물린다. 코빈은 오드리와 어떤 사이였을까? 문을 열고 들어가 확인하라는 신호와 위험하니 돌아가라는 신호가 머릿속에서 충돌한다,고 생각한 순간 몸은 이미 오드리의 집 안으로 들어가 주변을 훑고 있다. 그러다 보게 된다. 303호의 창을 넘어다보는 312호의 남자 앨런의 집요한 눈을. 우연일까? 우연이 아니라면 앨런은 오드리와 또 무슨 사이인걸까? 시차와 굶주림에 쫓겨 집을 나온 케이트를 누군가가 쫓아온다. 잭, 오드리의 전애인이라는 남자다. 전애인치고는 오드리의 현재를 너무 잘 알며 증거도 없이 코빈을 의심한다. 그를 만나면 죽여버리겠다는 섬뜩한 경고도 날린다. 오드리를 둘러싼 너무 많은 남자들. 데이트 폭력과 관음과 살인과 여성혐오와 복수의 사연을 몇 겹으로 걸치고 있는 주인공들의 시간이 한꺼풀씩 벗겨지며 해체된 오드리의 진실에 가까워진다. 케이트는 모두를 의심하고 동시에 모두에 안심한다. 때를 맞춘 듯 자신과 집교환을 한 코빈에 의혹을 느끼면서도 친구가 코빈에게 접근하는 일에 경고하지 않는다. 불안장애에 시달리면서도 생전 처음 본 잭과 차를 마신다. 관음증의 남자 앨런과는 (그 사실을 알면서도!) 잠자리까지 갖는다. 행위하고 후회하고 숨는다. 달아난다. 마치 이성이 없는 사람만 같다.
독자는 이 여자 어쩌려는 건가라는 불안으로, 마치 내가 신경성 환자가 된 기분으로 계속해 책장을 넘긴다. 살인자 이상으로 욕 나오게 하는 피해자라는 점에서는 정말 전작 <아낌없이 뺏는 사랑>과 아주 똑같다. 그럼에도 재미있다. 아닌가? 그래서 재미있는 건가? 이 위태위태하고 아슬아슬하고 조마조마한 주인공을 따라 사건을 쫓다보면 긴장감으로 심장이 쫄깃쫄깃한 정도가 아니라 위가 콕콕 쑤시는 스트레스와 두려움이 함께 커지므로 욕이라도 안하면 소심한 독자는 버텨낼 수가 없다. 짜증나는 여주는 작가의 안배일지도 모른다. 깨지고 깨지다 오히려 정상을 회복하는 여주에게 약간의 카타르시스를 느끼기까지 하니까. 어쩌면 내가 너무 변태같은 독자인 건지도;; 피터 스완슨의 가장 호평받는 작품 <죽여 마땅한 사람들>도 꼭 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든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