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폴리팩스 부인과 여덟 개의 여권 ㅣ 스토리콜렉터 55
도로시 길먼 지음, 송섬별 옮김 / 북로드 / 2017년 6월
평점 :
품절
아마추어 스파이 폴리팩스 부인에게 새로운 임무가 주어졌다. 불가리아의 지하조직에 여덟 개의 여권을 전달하라! CIA 카스테어스 부장은 여느 때처럼 불안을 느끼지만 그녀 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다. 냉전시기, 불가리아는 매우 업악적이고도 견고한 공산주의 체제 하에 놓여있었고 때문에 많은 스파이들이 변심하거나 체포. 남은 스파이가 이제 딱 한 명 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의심을 사지 않고 접선을 하기에는 폴리팩스 부인만한 인물이 없었던 것. 폴리팩스 부인은 여행용 갈샐 누비 외투에 푸른 새가 아름답게 장식된 특별제작 짚모자를 쓰고 루마니아에 관광객으로 잠임한다. 과연 CIA에서 바라는대로 그녀는 무사히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을까?
"이 나이야말로 인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소비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편안한 삶에 안주하던 시간은 충분히 겪었고, 무사안일한 인생이라는 것은 헛된 꿈에 지나지 않았다. 모든 사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건 아니야, 하지만 최소한 자기 자신은 바꿀 수 있지, 하고 그녀는 생각했다." (p51)
임무는 예상 밖으로 무척 뻔하고 쉽게 풀릴 뻔 했다. 접선지 양복점에 도착해 암호대로 조끼를 주문하고 자신의 도착도 신속하게 알렸다. 이제 카스테어스가 말한 찬코와 접선하여 모자만 넘기면 된다. 그러나 오지라퍼 폴리팩스 부인이 결코 외면할 수 없는 사고를 접하게 되었으니 미국인 청년 필립의 감방행. 죄목은 스파이다. 이 청년으로 말할 것 같으면 루마니아로 들어오는 공항의 길목에서 부인과 정다운 대화를 십분 남짓 나눴다는 게 다인 생판 남남, 실은 아는 게 거의 없다. 반짝반짝 푸른 눈에 예의바르고 이질에 걸려 피골이 상접했으며 루마니아에 올 계획에 전무했다는 것 정도나 알까. 그저 나머지 히피 친구들을 배웅하려 왔을 뿐이라고 했던 청년이 어째서 루마니아에 들어와 있는지가 의문이다. 거기다 아무 이유없이 곧장 비밀경찰에 체포되어 감옥으로 갔다는 것도 수상쩍기 그지없고. 사실확인을 조금 해보려던 부인은 그러나 도움을 구하러 온 필립의 친구 데비와 함께 대사관을 방문한 밤부터 목숨의 위협을 받기 시작한다. 자신의 외투를 훔쳐가려던 풋내기와는 폼새부터 다르게 칼까지 휘두르는 위험천만한 시간. 냄새가 난다. 무지무지 수상한 냄새가. 이런 썩은 내가 나는데 깔끔한 성격의 부인이 그저 지나칠 수야 없지. 진짜 임무는 그리고 진짜 모험은 그렇게 시작이 되어버렸다!
"여행이란 원래 그런 것이다. 우연한 만남들, 잠간의 인연, 결코 설명할 수 없는 동기들, 알 수 없는 결말."
한층 버라이어틱해진 음모, 불가리아의 매력적인 광경(특히 야생당근꽃 만발한 언덕이 궁금해 검색까지 해봄), 기성어른에 대한 반항심으로 똘똘 뭉친 히피 아가씨 데비와의 캐미, 지하조직과 함께 필립을 구조할 때 느낀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 무엇보다 폴리팩스 부인을 스쳐간 잠깐의 사랑에 설렘이 일었던 재미난 책이었다. 악수 한 번, 지긋이 눈 한번 마주한 게 다인데 내 가슴이 왜 그렇게 뛰었을까. 유쾌, 상쾌, 통쾌한 부인의 이런 썸 나쁘지 않은걸?? 폴리팩스 부인의 좌우명 "어떠한 재난이 닥쳐도 선한 사람은 다치지 않는다"(p224) 이 명제가 소설 속에서 깨지지 않는 한 나는 언제까지고 부인의 임무를 즐겁고 행복하게 따라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