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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기가 들려주는 이야기
톰 행크스 지음, 부희령 옮김 / 책세상 / 2018년 8월
평점 :
절판
어? 톰 행크스? 하고 한번 더 쳐다봤다. 그리고 그가 맞았다. 터미널과 포레스트 검프와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따뜻하고 감동적이고 마법 같은 사랑으로 우리를 울리고 웃겼던, 잘 생기진 않았지만 사랑스럽던 그 남자가 소설을 썼다. 17개의 단편 묶음집이고 단편 속에는 아주 짧게 또는 아주아주 짧게 타자기가 등장한다. 100여 대의 타자기를 소유한 타자기 애호가이며 타자기 어플까지 출시한 그의 뇌 회로에서 타자기가 없는 누군가의 삶은 상상하기 힘들다는 듯이. 타자기가 인생의 중심은 아닐지라도 모든 주인공들의 안과 밖에서 타자기가 웃는다. 또닥또닥 삶을 노래한다.
1. 처음과 중간과 끝
단편집의 시작은 <석 주 만에 나가떨어지다>로 시작한다. 어머니의 유산을 빽으로 놀고 먹는 반 백수 닉네임 문워커는 친구 애나와 연애를 시작한다. 애나의 남자친구로 사는 일은, 그의 말을 따르자면, "토네이도가 부는 계절에 아마존 고객주문 처리 센터에서 풀타임으로 일하면서 해군 특전사 훈련을 받는 것과 같다(p28)". 더럽게 피곤하다는 거다. 게으른 남자와 새벽 다섯시부터 자정을 넘어서까지 일하는 열정이 넘치는 여자가 만났으니 이 연애 볼장 다본 듯. 애나의 육체적 매력에 굴복하여 조깅도 하고 스쿠버도 배우고 사무실 출근도 하고 집기 조립에 청소까지 시작한 문워커의 뒷걸음질 및 애나의 실망을 기대하며 읽게 되는 단편이다. 커플은 깨지는 맛이지! 예상된 이별 뜻밖의 만남이 첫 단편으로 끝나지 않고 중간 <앨린 빈 외 네 사람>으로 연장돼 막판 <스티브 웡의 퍼펙트게임>까지 이어진다. 내 친구의 친구까지 등장하는 연작 단편 속 유머와 즐거움을 맛보시기를.
2. 사랑과 용기, 희망의 이름으로
톰 행크스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그대로의 작품들이 다수였다. 포근하고 낡고 친근한 담요 같은 매력의 단편들. 남자들은 우직하고 여자들은 사랑스럽고 아이들은 그냥 딱 애들스럽다. 2차 세계대전으로 왼쪽 다리와 손가락을 잃은 가장의 이야기 <1953년, 크리스마스이브>, 미래를 보는 여자와 우주를 보는 옆집 남자의 밀당 <그린스트리트에서 보낸 한 달>, 배우를 꿈꾸며 뉴욕으로 상경한 시골 아가씨의 성장기 <뉴욕에서 빈둥거리기>, 이혼한 엄마 남자친구와의 비행 <특별한 주말>, 언젠가 태어날 아이들과 조금은 서먹한 엄마를 위해 타자기로 쓰는 <내 마음의 명상록>, 극본으로 쓰인 어느 재벌의 행복한 돈잔치 <어서 오세요>, 공산주의자들을 피해 미국으로 밀항한 불가리아 이민자의 이야기 <코스타스를 찾아서>. 그린스트리트와 코스타스가 게중 특히 좋았다. 앞편은 처음부터 뒷편은 막판에 실실 웃지 않을 수 없는 포인트가 콕콕!
3. SF도?
딱히 과학적 지식이 동원된 것은 아니지만 우주여행과 시간여행이라는 소재를 담은 SF 작품까지 두 편 실려있다. 위에 처음과 중간과 끝에서 소개한 그 남자와 그 여자 그 친구들 문워커와 애나와 스티브 웡과 스티브, 엠데시의 달나라 여행! 뭐가 이렇게 엉터리야 하면서도 키득키득 웃게되는 유쾌함으로 가득한 우주일지다. <앨린 빈 외 네 사람>과 <스티브 웡의 퍼펙트게임> 중 어느 작품이 SF인지 알아맞춰 보시길. <과거는 중요하다>의 주인공 버트는 자신이 사랑에 빠졌음을 깨닫는다. 초록색 드레스를 입고 단발머리를 찰랑거리는 웃음이 예쁜 그녀가 너무나 아름다웠으니까. 그러나 그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버트는 2019년을 살고 그녀는 1939년을 산다. 회당 600만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인 22시간의 시간 여행에서 만난 그녀를 찾아 1939년 세계박람회로 세 번이나 시간여행을 떠나는 남자 버트. 그러나 더이상의 시간여행을 육체가 허용하지 않는다. 마지막 시간여행이라는 선고를 끌어안고 돌아간 39년의 미국에서 버트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4. 막장도 빠질 수 없지
드물게 존재한 두 편의 막장 스토리. <파라에서의 마지막 홍보 여행> 그리고 <마르스 해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세계적 인기를 구가하는 남부러울 것 없는 배우의 남편은 누구와 바람이 날까. 그리고 아들의 생일 아침 아들과 함께 한 해변 한켠에 숨어 아내가 아닌 여자와 키스하는 아버지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살고 있는 것일까. 아버지는 몰랐겠지만 그날 아침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했던 마르스 해변을 영원히 떠났고 그의 순수했던 소년기에도 작별을 고한다.
책상 하나를 꽉 채우게 육중하고 '클럭 클럭 클럭 클럭 클럭' 딱따구리 나무 쪼는 울음을 우는 타자기가 책을 덮은 지금까지도 눈 앞에 아른아른 한다. 타자기를 직접 본 적도 종이를 넣고 타자를 누르고 글자를 찍어본 적도 없지만 한껏 느리게 읽혔던 책 탓일까. 마치 그의 소설을 내 눈이라는 타자기로 깜빡깜빡 찍어 읽은 느낌으로 '클럭 클럭 클럭 클럭 클럭', 완독의 축하 종도 "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