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최초의 세시풍속지 <경도잡지>를 뼈대로 18-19세기 서울 양반의 의식주 및 놀이와 유흥 등 기타 여러 생활의 취향을 알려주는 책이다. 사실 잡지라는 제목에 깜빡 속아 현대의 잡지처럼 감각적이고 간략한 내용과 편집으로 중무장해 있을 줄로만 알았는데 생각보다 전문적(?)인 느낌이라 시작할 때는 조금 놀랐다. 특히 경도잡지가 매 글의 시작에 번역되어 있다는데서 정신이 혼미. 처음엔 외계어인 줄. 1장인 의복 그중에서도 1차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초반부가 특히 재미가 없음을 다음 독자를 위해 미리 밝힌다. 사극을 보면서 의복만으로도 시대구분을 할 수 있는 정도의 시청자이자 독자라면 관심도 가고 흥미로울 수 있겠지만 내 경우 의복의 외양도 낯선데 의복 각각의 단어도 너무 많고 한자어고 그래서 서른 페이지 정도는 읽느라 고생을 했다. 그러나 의복 부분은 짧고! 2차 "견마 잡혀 말을 타고" 부터 점점 재미있어지다가 제2장으로 넘어가 먹고 노는 이야기로 흘러가면 완전 흥미진진 해지니까 초반 의복에 지지 마시라 당부드린다. 의복을 건너뛴 채 읽다가 다시 앞장으로 돌아와도 좋을 것 같고. 나는 워낙 순서대로 읽는 걸 좋아해서 다 읽고 넘어가리라 고집을 피웠는데 덕분에 초반 흥미를 많이 깎아먹었다. 전공자도 아니고 이 책은 소설이 아니니까 요령껏 읽도록 하자.
각 장마다 재미있던 이야기만 추려서!
제1장. 의관 갖추어 행차할 제
장옷 : 부녀자들이 외출할 때 얼굴을 가리기 위해 사용한 쓰개 등을 이르는 말. 유교에 대한 편견으로 이 옷이 조선 여성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피부를 가리기 위해 강제로 착용되어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실은 그 시대 여성들의 유행이었다고 한다. 양성지 같은 관료가 장옷 금지 상소도 올리고 그랬는데 가체와 함께 장옷 유행은 막을 수가 없었다니 매우 놀람. 하물며 가체는 매우 여러번 금지됨;;
견마잡이 거덜났네 : 사람을 태운 말 앞이나 옆에서 말을 잡아끄는 사람, 조선후기에는 지위가 낮은 이들도 견마잡이를 둘쯤은 달고 다녔다고 한다. 박제가의 글을 보니 하도 견마잡이를 붙여다니니 전쟁터에서도 견마잡이가 말을 안끌면 위급한 상황에서도 말이 뛰질 않았다고 한다. 과장이 아닐까 의심이 들긴 하지만 어찌됐든 황당.
혼인과 결혼 : 혼인에는 신랑이 장가 들고 신부는 시집간다는 뜻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데 결혼에는 신랑이 장가간다는 뜻만 포함되어 있단다. 혼인은 좀체 쓰지 않는 단어인데 뜻이 의외다.
신고식 : 왕따는 없었는지 모르지만 신고식은 장난이 아니었다. 사헌부 신고식 기록에 두들겨 패는 건 기본이고 손으로 부엌 벽을 문지르게 한 후 그 손을 씻은 물을 마시게 했는데 토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율곡 이이가 제발 좀 없애자고 역시나 상소를 올렸으나 후에 정약용의 말에 따르자면 "당하는 자는 영광으로 여기고, 보는 자는 부러워해서" 없어지지가 않았단다. 대단해;;;

제2장. 폼에 살고 폼에 죽고
왕의 의장대를 설명하는 사진인데 의장대는 별무관심 기록화에 왕이 없는 것에 더 깜놀해버렸다. 저 빈말 위에 정조가 앉아계신다고 상상하면 되는건가? 이정명 작가 <바람의 화원>에서 어진 얘기 하며 관련한 얘기나 있었나 없었나 기억이 가물가물. 대충 읽진 않았는데 왜 이렇게 기억을 못할까.

종이값이 비싸지면 장수가 줄고 종이값이 안정되면 장수가 늘었던 조선소설들. 홍길동전과 춘향전이 완판본과 경판본이 따로 돌았다는게 재미나다. 현대의 독자들처럼 그 시절의 독자들도 완판본 보고 싶어 애가 탔겠지? '잡채판서' 라고 손가락질 당한 이충은 다양하게 심은 채소로 광해군에게 맛있는 반찬을 바쳐서 품계를 올렸다는데 궁금해 찾아보니 그 시절 더덕정승(실록에는 김치정승)도 있었다고 한다. 더덕 넣은 떡이 맛나서 정승자리까지 올랐다는데 기가 막히다. 정조시대에는 목만중이라는 시인이 "온 나라가 꽃에 미쳐 날뛴다"고 지적질을 했다는데 꽃가게는 없는데 꽃에 종사하는 사람은 많았다니 이거 뭐지?? 지금은 닭둘기로 공포의 대상이 되는 비둘기를 키우는 것도 잠깐 유행했단다. 상상이 안가지만;; 너무 싫지만;; 토종 비둘기는 좀 예쁜가?? 음란한 새라는 이유로 유행에서 밀린 모양인데 음란의 이유가 비둘기 부부가 혀를 빨아서라고(책 표현 그대로). 이거 뭐야 넘 웃겨 ㅋㅋㅋ 황당하지만 비둘기의 음란성을 고발한 글도 많았다. 제2장 폼에 살고 폼에 죽고는 깨알웃음을 주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술술 읽힌다.
제3장. 먹는 낙이 으뜸일세
먹는 낙 중엔 담배얘기가 제일 재미나다. 1610년을 전후하여 들어온 담배가 거의 20년 상간으로 해서 남녀노소 지위에 관계없이 전국민적으로 퍼져나갔다. 이수광의 글에 따르면 입있는 사람이라면 즐기지 않는 자가 없았다 하고 너댓살 먹은 아이들까지도 우유같이 달다며 여러 대를 연달아 피웠다는 기록이 있다. 너무 대단한 인기라 무서울 정도. 소설 바람의 화원에도 나왔던 쌍검대무가 이 책에도 등장하는데 담뱃대의 사회적 의미를 설명하는 자료로 쓰인다. 오른편에 서있는 아이와 기생, 대돗자리 위에 앉아있는 양반에게 담뱃대가 보이는데 신분에 따라 담뱃대의 길이가 달랐다고 한다.

그리고 담배의 인기에 힘입어 담뱃가게가 많이 생겨났는데 사장님들이 홍보와 호객의 일환으로 이야기꾼을 들였다고 한다. 담배 피고 몽롱한 중에 이야기를 듣다가 영웅이 뜻을 이루지 못하는 대목에서 상심한 손님이 담배써는 칼로 이야기꾼을 찔러 죽인 사건까지 있었다고 하니 이거야말로 호러라 여름밤이 오싹해졌다. 뒤로 넘어가면 놋그릇 살인사건도 등장하고 (놋그릇 훔쳤다고 쳐죽이는 사건이 비일비재) 조선 후기 무서운 일이 많았더라.
제4장. 멋들어지게 한판 놀아야지
도박과 멋이 무슨 상관인가 싶지만 타자까지 등장했던 18세기 도박판. 노름꾼들이 나름 순진하여 노름수를 받으려고 신령님께 백일기도도 드리고 까치집의 굵은 나뭇가지가 운을 준다고 해서 까치집도 많이 해체하고 다녔단다. 까치집이 아예 없는 마을은 도박촌으로 의심받기도 했다는데 암행어사가 출두해서 까치집이 있나 없나 둘러보고 다녔을까 책 읽으며 별 상상을 다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