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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돼가? 무엇이든 - <미쓰 홍당무> <비밀은 없다> 이경미 첫 번째 에세이
이경미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힘들지? 우리 좀 웃고 가요'
에세이가 웃겨 봤자 라고 생각했다. 에세이라는 장르 안에서 즐거움을 느껴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라.
한 사람의 인생을 들여다보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르이지만 각색, 미화에 대한 의심과 남다른 힘듦 내지는 너무 잘난 인생의 너무 잘난 고민으로 인한 무공감으로 지루했던 적이 많아서. 그런데 이 책 <잘돼가? 무엇이든>은 좀 다르다. 그야 작가인 이경미 감독은 충분히 잘나고 대단한 사람이지만 그가 고민하는 사랑이나 (노처녀였던 그녀가 13세 연하남과 결혼한 판타지는 별개로 하고) 그가 고민하는 나이듦, 일, 인생, 그밖의 사소한 분노와 발견이 대단히 특별한 무엇들과는 거리가 멀었던 거다. 칼퇴라곤 없는 빡빡한 직장생활을 하다가 상사에게 성희롱을 당하고 어쩌구 저쩌구 여기까지는 역시나라고 생각했다. 성공신화의 시작은 대체로 이런 부당한 고난에서 시작하지 않던가. 그러나 부단한 노력(물론 있었을테고), 인내(말해 입만 아프지), 고난(을 거쳤으니 성공했겠지)에 대한 상투적 나열없이 일하기 싫을 때 어쩌다 주위에 관련 업계 종사자 친구들이 있었고 일 안하는 변명으로 영화학교에 입학. 그렇게 시작한 일이 어쩌다 성공도 하고 실패도 했을 뿐 "애써 긍정적인 해석은 하지 말자. 아무리 봐도 인생 그냥 복불복이다." 라고 말하는 작가는 밉지가 않은 것이다. 프롤로그에서부터 무한 너그러움이 생겨 그런가 책의 끝까지 나는 깔깔깔 웃고 또 웃다 쓰러질 뻔! 하지는 않았지만:) 여태 읽었던 에세이 중에서는 탑으로 재미났다.
쓰레기를 쓰겠어 라고 결심하니 진짜 쓰레기가 써지더라는 일화에선 풋 하는 깨알웃음이. "아저씨!! 땅에 떨어진 빵을 그냥 거기 두시면 다른 사람이 그 빵을 먹을 수도 있잖아요! 아저씨이이!" 소리 지르며 분노한 일화에서는 깔깔깔. 작가는 반성을 하는데 나는 속이 시원해졌다. "엄마 늙으면 좋은 점이 뭐가 있어?" 하고 여쭈니 엄마가 "없어" 했다는 일화에서는 어쩐지 서글퍼서 속이 상했고 끝이 안보이는 시라니오 작업과 막막한 인생에 "나는 무조건 건강해야만 한다"는 결심 속에 요가를 하고 각종 영양제를 과다섭취했다는 일화에서 아.. 그래서 내가 요즘ㅜㅜ 이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언젠가부터 영양제를 한주먹씩 먹고 있었는데 누구 아픈 소식을 들은 이후로 먹는 양이 늘고 있었던 거다. 건강해야지 안아파야지 아프면 민폐다 싶어서. 책 읽고 정량으로 돌아가 다 한알씩으로 줄였다. 양만 줄이고 종류는 못줄였지만ㅠㅠㅠㅠ 아랫층 담배피는 남자에게 부탁부탁을 드렸더니 그 후엔 금연일지를 문자로 보내고 밥 먹자고 연락이 와 두려웠다는 일화에서는 내가 다 끔찍하기도 했다. 쓰고 보니 정말 별 거 없는 신변잡기의 나열 같지만 책으로 보면 정말 다르다. 정말 재미있다. 계획되로 풀리지 않는 인생, 농담으로 넘기고팠던 숨 막히고 짜증나고 우울하고 슬펐던 15년 간의 메모 속에서 고르고 골라 나온 이야기들이니 오죽하겠는가 하고 에세이를 안좋아하는 독자가 이 에세이는 꼭 읽어보시라고 강력 추천드린다. 대단한 교훈을 얻으려는 독자라면 노노, 이선희씨의 노랫말처럼 한바탕 웃음으로 세상 시름 잠깐 잊고픈 분들에게만 추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