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 ㅣ 슬로북 Slow Book 3
함정임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7월
평점 :
괜찮다는 말은 차마 못했어도
혀끝에 맴도는 말을
품고 살았다
누군가 나에게
괜찮냐고 물어올 때가
있었고, 내가 누군가에게
괜찮냐고 물어보고 싶을
때가 많았다.
뜨거운 것이 목울대까지 맺혀
올라와 혀끝에
매달릴 때마다
썼다, 쓰는 수밖에
없었다. 내 눈에 비친
'세상 풍경'을 짧게도 썼고,
조금 길게도 썼다.
길게는 매주 썼고,
조금 숨 돌려 격주로
썼다.
ㅡ 작가의 말
그렇게 쓴 작가의 이야기들이 자그마한 흑백 사진과 어우러진 산문집이다.
이야기들은 별다른 두서가 없다.
보들레르의 바다, 프루스트와 로맹 가리의 고향, 롤랑 바르트를 찾아 떠난 셰르부르,
해운대 바닷가에서 흥얼거리는 심수봉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의 노래,
아름다운 무덤 속 톨스토이,
향수 냄새를 맞고 뒷걸음질 쳤다는 개에 관한 이야기,
세계 여러 나라에서 찾은 박물관과 미술관,
토지의 작가 박경리, 스물한살의 피아니스트 조성진, 버지니아 울프의 델러웨이 부인도 등장하고
여러 많은 반가운 만남과 이별, 못다한 인사들이 심금을 울리기도 한다.
어머니 다시 또 어머니, 스승들, 언니, 사별과 친구, 아이,
작가가 작가일 수 밖에 없는 이유, 독자가 책으로 만나는 구원, 읽고 쓰는 여러가지의 것들
그리고 책의 시작과 끝으로 이어지는 폭력에 대한 단상과 깊은 애도.
세상 풍경을 썼다는 작가의 말 곧이곧대로 보고 듣고 느끼며 쓴 가지가지 이야기의 총합이다.
여행기 같기도 하고 독서 감상문 내지는 영화 감상문 같기도 하고 강의록 같기도 하고
일기 같기고 하고 편지 같기도 한 작가의 글에 대해 어떤 감상을 남기는 것이 쉽지 않다.
지나치게 사적이어서 평을 다는 것이 실례인 것만 같은 기분도 들고.
읽는 내도록 깊거나 얕은 미지근한 물 속에 잠기는 기분이었고
시리즈 '슬로북'의 모토에 발걸음이 맞춰지듯 아주 천천히 읽힌 책이기도 하다... 정도는 괜찮겠지?
'모두에게 별일없기를', 책을 덮으며 작가의 소망에 내 바람도 얹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