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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 ㅣ 킬러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해용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6월
평점 :
킬러지만 공처가 그리고 순정한 아버지. 어울리지도 실은 잘 상상이 가지도 않는 조합. 이사카 코타로의 신간 <악스>에는 그런 조합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이름은 "풍뎅이", 이사카 코타로의 소설 <목 부러뜨리는 남자를 위한 협주곡>에 묘사되는 풍뎅이는 '에너지가 넘쳐 일단 교미하느라 바쁘고, 매일 엄청나게 먹어 치운다'(p190)고 되어있는데 악스의 풍뎅이는 영 힘을 못쓴다. 집 밖에서는 동종업계 군단들도 무서워하며 꺼리는 완벽한 킬러지만 집안에서는 바퀴벌레도 못때려잡을 것 같은 허약한 아내에게 옴싹달싹 못하는 못난 위인이다. 원체 예민하신 탓에 늦은 밤 퇴근하고 온 남편의 발소리마저 거슬려하는 아내의 시끄럽다는 타박 앞에 꺼내놓은 계책이란 것이 어육 소시지일 정도니 말 다했지. 나 같으면 화가 나서 냉장고를 뿌셔놓을텐데. 문도 쾅쾅 닫고. 그러나 풍뎅이는 한술 더 떠 아무 생각없이 아내의 푸딩을 먹고는 혼이 날까봐 아내가 깨기 전에 새푸딩 사놓을 걱정만 한다. 아차 완벽 범죄를 위해 아들 방에 쓰레기를 버리는 수고도 함께. 이 정도면 진정 남편이 아니고 노예다 노예;;
어쨌든 풍뎅이의 이런 희생 앞에 족히 이십년은 탈 없이 굴러온 가족들에게 뜻하지 않은 위기가 찾아올 예정이 되어 바짝 긴장을 한다. 누가?? 풍뎅이가!! 가족들은 위기가 위기인 줄도 모르고 학교를 다니고 컵라면을 먹고 캠핑을 가고 말벌을 걱정하고 잔소리를 쏟아내고 바람을 의심한다. 위험 앞에 오롯이 서서 대항하는 것이 오로지 풍뎅이 뿐인 탓에 소설 속의 흐름은 내내 유하고 어딘지 코믹하기까지 하다. 총, 칼, 자동차, 급기야 석궁까지 등장해도 피식피식 웃게 되는 것은 독자인 내게도 위기감이 없었기 때문. 그러다 맞은 뒤통수는 어마어마하게 아파서 눈물이 쏘옥 빠지고 말았지만 말이다.
가족을 위해 살인 청부업자라는 직업에서 손을 씻으려는 풍뎅이, 그를 회유하고 설득하고 유혹하고 급기야는 죽이려드는 킬러들의 중개업자인 의사, 위아 더 킬러도 아니건만 사방팔방에서 등장하여 풍뎅이를 위협하는 또다른 킬러들. 아내와 아들을 지키려는 풍뎅이의 대활극 속 눈물나는 궁상과 각오와 사랑과 낭만을 꼭 한번 만나보시길. 일본 아마존 기노쿠니야 오리콘 랭킹 1위, 제6회 시즈오카서점대상 1위, 2018년 일본 서점대상 노미네이트, 미스터리가 읽고 싶다 2018 노미네이트 의 이유를 틀림없이 알 게 될 거라고 내 장담한다.
**그러고 보니 악스의 배경이 되는 지역이 어디지? 또 센다이였나? 아차, 이걸 놓쳐버렸네. 다 읽고나니 왜 이렇게 놓친 게 많을까ㅠㅠ 이거 또 재독 각이다ㅠㅠㅠㅠ
"하느님은 이따금 보고 계시다는 건가."
"하늘의 그물은 크고 성겨서 은근히 놓친다고나 할까요."
"은근히라." 구로사와는 쓴웃음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엇다.
"다음에 그걸 소재로 소설을 써 보면 어때? 아이디어 때문에 고민하고 있지?
사슴벌레를 사람처럼 묘사해 봐. 뭐라더라, 의인화라고 하나? 빗대서 쓰면 돼."
"하느님의 존재 방식에 대해서?" (목 부러뜨리는 남자를 위한 협주곡 中 사람답게, p217)
또 목부러뜨리는 남자를 위한 협주곡이냐 하시겠지만 실은 악스를 읽는 내내 단편 사랍답게가 생각나서 한번 더 읽었다. 하늘의 그물은 크고 성겨서 은근히 놓치기는 하지만 빠뜨리지는 않는다는 동일한 주제 의식 때문인 것도 있겠지만 구로사와와 작가 구보타의 위와 같은 대화 때문에 사슴벌레가 풍뎅이가 된 것은 아닐까 하고 자꾸만 의심하느라. 물론 구보타가 이미 측근 이야기라는 소설을 쓰긴 했지만 그것과 별개로 사람답게 더더욱 사람답게 살아가려 노력하는 사람 여기서는 킬러인 남자의 이야기를 작가님은 쓰고 싶으셨던 게 아니실런지. 살인과 풍뎅이를 떼어놓고 생각할 수는 없지만 후회하고 책임지고 사랑하며 계획하는 그의 노력들이 참 애틋하고 감동적인 책이었다. (현실에서는 물론 절대 용서 못한다.) 킬러 시리즈도 처음이고 이런 생각 자체가 헛집은 걸수도 있지만 한 작가님의 책을 꾸준히 읽는 것에는 뜻밖의 재미가 있구나를 새삼 느끼게 해준 책, 고마워요 풍뎅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