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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주말
시바사키 토모카 지음, 김미형 옮김 / 엘리 / 2018년 5월
평점 :
끝과 시작이 포개지는 곧.
즐거운 기분과 쓸쓸한 기분과 새로운 기분의 경계선.
무슨 일인가 일어날 것만 같고,
특별한 일 없이 지나가더라도
자, 그럼 내일부터는, 하고 생각하게 되는,
역시 주말은 그런 것.
ㅡ 작가의 말
곧, 주말. 처음엔 제목이 맘에 들었고 책을 받고선 꼭 금요일 퇴근 직전의 나를 보는 것만 같은 분위기의 표지가 맘에 들었고 여덟 편의 단편을 만나고 나서는 그냥 책의 모든 것이 맘에 들어버렸다. 충격적인 비극도 스릴 넘치는 사건도 흥미진진한 욕망도 없이 잔잔히 흘러가는 누군가들의 일상. 보통의 평범한 주말들. 담백하다 못해 심심하고 마음과 생각에는 공백이 넘치고 왁자지껄한 소란 따윈 하나도 없이 책 속엔 고요와 정적만이 흐른다. 모르고 봤다면 소설이 아니라 일상 에세이 아냐 하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평소의 내 취향이라곤 할 수 없는 책이지만 어쩐 일인지 힘이 쪼옥 빠진 토요일 오후의 늘어지는 낮잠 같은 이 책이 참 좋다. 별 일이다 정말.
여기서 먼 곳
아웃도어 브랜드점에서 근무 중인 마스미. 산은 좋은 곳이라며 추천하는 가게 손님의 권유를 받고 어쩌다 산과 관련한 방송까지 보게 된다. "하지만 역시, 저렇게 높은 산에 목숨을 걸고 올라가는 사람들의 심정은 전혀 이해가 안가요. 지금 월급으로 요세미티는 턱도 없고" 라고 생각하는 그녀. 동시에 "작은 언덕쯤이면 걸어봐도 좋겠다" 고 약간 긍정적인 검토도 해보는데. 고민하는 사이 둥둥 잠에 빠지고 리모콘을 톡 떨어뜨리며 끝나는 결말. 결국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여전한 주말이 되고 말았지만 뭐 어떠냐 싶은 마음으로 공감 중.
하르툼에 나는 없다
친구의 친구 결혼식에 다녀온 주말의 밤 이사할 집을 알아보러 다니는 주말의 낮. 아주 평범하고도 의미없는 대화만이 가득한 심심하고 평화로운 일상. 가고 싶은 도시 하르툼의 날씨를 확인하는 것이 히카의 최고 기쁨인 것 같다. 그랬던 그녀가 맘에 꼭 드는 집 앞에 서는 순간 어떤 일이 벌어지지는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으로 두근두근 해버렸다. 고작 이 정도에 가슴이 뛰다니! 독자로서 약간 자존심 상하는 걸 ㅋㅋ
해피하고 뉴, 하지만은 않지만
감기에 걸려 새해에 나홀로 맨션에를 찍고 있는 마리사. 모두가 고향 또는 여행을 갔는지 비어버린 건물에서 홀로 약을 먹고 잠을 자고 우동을 끓여 먹고 비디오를 빌려온다. 대략 이틀 만에 세수만 하고서 말이지. 영화 속 한물 간 아이돌 스타를 바라보며 가능성이 사라져버린 일상을 생각하는 밤. 간다가와씨랑 귤이라도 까먹으면서 마리사가 기운을 차렸으면 좋겠다.
개구리 왕자와 할리우드
나도 남자친구가 있고 너도 여자친구가 있고 살짝 호감이 가긴 하지만 그 뿐 너와 나 사이엔 아무 일도 없겠지 하는 내용. 그러나 폐업 직전의 서점에서 별 말 없이 보낸 하루의 시간, 그 녀석에게서 받은 할리우드의 얼굴들 잡지와 달라고 하지 못한 개구리 왕자 인형은 잊을 수 없겠지? 아닌가? 그냥 별 것 없었던 주말로 곧 잊게 되려나??
제비의 날
주말 여행, 고장나 버린 차량, 꼬여버린 계획에 짜증이 나기 보다는 그저 다 재밌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살짝 일탈을 준 것만으로도 즐거워지는 하루. 고장난 차량이 내 차가 아니라 부담이 없어 더욱 그런 거겠지?
나뮤기마의 날
수능시험을 보고 돌아와 푹 자고 일어난 아침, 토요일입니다!! 다시 이불 속으로 기어들어가 자고 일어난 아침, 일요일입니다!!! 토요일도 그립고 일요일도 그립지만 가장 그리운 건 여.름.방.학. 실은 쉬는 날이 무슨 요일인지는 중요하지도 않다. 그저 길기만 했으면 좋겠다.
해안도로
과외를 훌륭하게 끝마친 하루, 부풀어오르듯 가벼워졌던 밤의 마음.
지상의 파티
"나는 이런 세상에 살고 있구나.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가지각색의 행동을 하고, 지구는 자기 맘대로 회전하고, 밤이 오고, 오늘이 끝나가려고 한다. 나는 이 세상에서, 그 제각각인 것들과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구름 위에서 보면 지상 전체가 파티장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한 장소에 모여 있지만, 모두들 멋대로, 제각기 다른 생각을 한다. 나 역시 그 속의 한 점이다. 그냥 재미있었다."
여자친구와 싸우고 직장동료의 강제 약속에 끌려나간 주말. 누군가와 함께 해야 할 이유를 도통 모르겠는 불툭성질이 돋았던 하루. 주말을 이대로 끝낼 수 없어! 라고 억울해하는 중에 눈에 들어온 라면집. '그래, 라면이다, 라면으로 이 주말의 끝을 장식하면 되겠구나' 하다 행복하하는 노노미야의 저녁을 보는데 왠지 부끄럽다. 실은 똑같은 생각으로 치킨을 시켜먹었는지라 ㅎㅎ
오늘이 주말은 아니지만 공휴일 하루가 다 끝났구나 싶어 쬐끔 아쉽다.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책 읽고 리뷰 쓰고 바삐 움직이며 투표도 했고 박빙이라곤 하지만 1위에서 2위로 다시 1위로 올라온 지지후보의 선전도 지켜보는 중이고. 쓰고 보니 오늘 좀 보람찬 하루였는데?? 그런데도 내일이 출근이라고 생각하면 그냥 너무너무 아쉽다. 시간을 정지시키고 싶어!! 그치만 또 곧 주말이 올테니까. 다시 주말이 오고 있으니까. 남은 이틀 열심히 견뎌보는 거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