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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엌 boouk Vol.4 오리지널 - 2018
로우 프레스 편집부 지음 / 로우프레스(부엌매거진) / 2018년 4월
평점 :
품절
시간에 쫓겨 대충대충 때우는 한끼인 경우가 많았다. 바쁠 수록 장을 봐오고 씻고 조리하고 음미하고 대화를 하고 정을 나누며 한 입씩 꼭꼭 씹어 삼키는 일이 낭비처럼 느껴진 이유가 컸다. 시켜먹는 게 편하고 시키는 행위마저 귀찮을 때에는 퇴근길 집 근처 식당에서 그날의 취향껏 배를 채우고서 두어 시간을 번 것만 같은 기분으로 만족스러웠다. 그런 생활이 이어지던 몇 년 아뿔싸 위도 장도 더욱 나빠져 한동안 꽤 고생을 했지만 탈이 나면 잘 챙겨먹다가 좀 나으면 대충 떼우는 식의 생활은 여전하다. 그렇게 어제의 밥도 오늘의 밥도 귀찮기만 한 매일에 훅을 날리는 책을 만났다. 부엌, 그냥 먹고 사는 일이 아니라 건강하고 즐겁고 행복하게 먹고 사는 것에 온갖 관심을 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잡지. 그 중에서도 vol.4는 향토적인 옛 부엌과 가전과 그릇들로 그리움을 자극하는 오리지날을 지향한다. 최신의 것이 아니라 나만의 사연이 담긴, 밥솥 하나 그릇 한 가지로도 이야기거리가 무궁무진한 추억으로 채운 부엌을 보고 부엌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어린 시절 외할머니 댁에서 받은 풋풋한 채식상을 떠올렸다. 옛날 부엌하면 제일 먼저 떠올린 말한 아궁이가 있고 가마솥이 있고 마루로 통하는 쪽창이 있고 군불에 필요한 땔감과 잔가지, 주먹만한 성냥갑이 있던 그곳에서 할머니는 할아버지 밥상 손주들 밥상을 따로 챙기셨다. 지금은 환장하고 먹는 호박잎이나 아마도 고추나 상추였을 푸릇푸릇한 채소로 가득한 풀밭 앞에서 입을 삐죽내밀고 있으면 할머니가 구워주시던 스팸의 기름지고 짭짤한 맛. 갈비나 삼겹살보다 더욱 맛나던 그 맛. 캬, 내 입은 아직 어린가봐!! 실은 지금은 잘 먹지도 않는 스팸이지만 옛날 부엌 사진을 코 앞에 두고서는 어쩐 일인지 할머니표 된장찌개나 단술이나 잡채보다도 이 스팸의 맛이 더욱 맴돈다. 아차, 맛소금을 뿌린 (성인이 되고도 한참을 할머니표 계란 후라이의 비밀을 몰랐더랬지 ㅋㅋㅋ) 계란 후라이까지 있으면 금상첨화일텐데. 엄마표 맛이 아니라 할머니표 맛을 먼저 떠올리는 건 모녀 지간임에도 엄마가 할머니의 손맛을 닮지 않은 탓이겠고. 나는 틀림없이 엄마 손맛을 닮았는데 말이지. 슬프닷!
아날로그 부엌에 대한 여러 많은 사람들의 추억과 그리움을 들여다보는 재미에 중간중간 들어가있는 벚꽃 사진도 너무너무 예쁘고 옛날 가전들이 이렇게 고왔나 싶게 눈 돌아가는 아이템이 많아 즐겁다. 어느 분이 무쇠주전자에 끓여먹는 물맛에 대해서도 얘기하셨는데 머그컵에 티백으로 슬쩍 우려내는 그 가벼운 맛 말고 보리차, 둥글레차, 메밀차를 바글바글 끓여서 냉장고에서 꺼내 먹던 그 맛도 그리워지네. (가만 생각하니 물도 엄마표 물보다 외할머니 물이 맛있었어. 무슨 차이일까??) 물론 엉덩이가 무거워 도무지 물 끓여마실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 함정이지만. 누가 물 끓여서 냉장고에 넣어주면 정말 잘 마실 자신이 있는데. 엄마는 그 옛날 이 귀찮음을 어떻게 다 무릅쓰며 우리를 키우셨는지 새삼 감사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