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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보이 - 2018년 제14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
박형근 지음 / 나무옆의자 / 2018년 4월
평점 :
"확실히 이곳은 내가 생각했던 우주는 아닌 듯해.
전부 지구 그 자체라고.
대체 난 어디로 떨어진 걸까?" (p14-15)
확실히 내가 생각했던 우주하고도 거리는 멀었지. 김신 너도 당황했겠지만 못지 않게 너의 일기를 읽는 나도 많이 당황했었다. 대기를 솟구쳐오르는 우주선에 몸을 실었던 네가 설마하니 양호실의 침상에서 눈을 뜰 줄이야. 거기다 양호실 안에는 난데없이 등장한 사첼벡이 네 눈길을 끌었고 양호실 밖에선 은발에 포니테일, 커다란 선글라스를 쓴 칼 라거펠트가 너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나는 잠깐 네가 꿈을 꾸나 했어. 아니면 우주에서 정신줄을 놓은 너의 실없는 농담일지도 모른다고 네가 자라메 설탕이 깔린 아메리카노를 빨대로 쪽쪽 빨아먹는 대략 50 페이지까지를 못믿겠다 못믿겠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읽었단 말이다. 제목이 스페이스 보인데 우주가 안나와. 항성도 행성도 없어. 우주선은 타고 갈 때 올 때로 끝. 표지에 콕콕 박힌 사탕같이 예쁜 별은 개뿔 그런 게 어딨냐. 좋게 말해 농담 정확히는 작가의 농간 더 정확히는 세계문학상의 농락 같다 잠깐 화를 내기도 했지. 우주감성(?)은 티스푼만큼도 안느껴지는데 이 제목에 이 표지는 솔직히 사기 아니냐?
나는 너의 기막힌 우주 모험을 원했단 말이야. 앤디 위어의 아르테미스 같은 활기찬 어드벤처물도 좋고 역시나 같은 작가의 마션, 신동욱 작가의 씁니다 우주일기 같은 조난물은 완전 취향저격. 레이 브래드버리의 환상동화집 같은 이야기도 귀엽고 좋아. 예쁘잖아. 하지만 칼 라거펠트의 탈을 쓴 외계인과의 만담이라니. 이런 유형의 이야기는 정말 원하지 않았단 말이야. 그야 나무옆의자에서 김신 너 이전에 너랑 비슷한 애 하나가 나오긴 했었지. 작가가 직업인 한국인 애가 어니스트 섀클턴 박사라는 모험가랑 남극 탐험을 가는 그런 이야기 말야. 거기엔 말하는 펭귄이랑 북극곰도 나왔으니 외계인 칼 라거펠트를 두고 기가 막히다고 할 정도는 아냐. 그치만 걔들은 남극에 간단 말이야. 가서 굶어 죽을 뻔 얼어죽을 뻔 하는 모험을 대충 하고 온다고. 이야기는 황당하지만 공감도 가고 재미도 있고 눈물도 났거든. 엉터리지만 그게 매력이었지. 근데 김신 넌 뭐냐!!! 스페이스 보이라는 애가 우주에서 카페 갔다 맥도날드 갔다 벚꽃길 산책에 전자기타나 치고 향수 이름이나 들먹이고. 지극히 세속적이었던 지구에서의 네 일상을 아주 고스란히! 그래 거기까지도 좋다 이거야. 네 권유에 따라 데이비드 보위의 스페이스 오디티를 틀어놓고 그냥 너 따라 휴가왔거니 너의 사랑 얘기에 취해 좀 낭만적인 기분이 되기도 했어. 근데 지구 귀환 후에 네가 스타가 되서 리얼리티 방송하던 때 말이야. 그때 네 일기는 연예가쉽 뉴스 댓글창 보는 기분이었던 거 혹시 아니? 난 진짜 누구네 방송 리뷰 보는 줄 알았어. 정말 그런 느낌이었다고.
물론 김신 네 일기가 못읽을만큼 재미가 없었다는 건 아냐. 훌떡훌떡 금방 읽긴 했어. 위로 하려고 거짓말 하는 건 아니니까 괜한 상처받지 않길 바래. 그치만 우리 다음엔 좀 다른 이야기로 만나자. 구시렁구시렁 너네끼리 떠드는 그런 거 말고. 그건 굳이 책이 아니어도 인터넷 창 여기저기 아무데나 열어도 다 읽을 수 있으니까. 안할 말로 내 리뷰부터가 그런 거 아니니. 구시렁구시렁구시렁;;; 사건이 있고 그 사건의 전개가 있는 그런 이야기로 만났으면 좋겠어. 난 지금까지 세계문학상이 그런 애들한테만 상 주는 줄 알았거든. 몇 권 안읽어서 착각한 거라면 할 말은 없지만 어쨌든 김신 너와의 만남으로 세계문학상에 실망하진 않을거야. 물론 지금 리뷰만 봐서는 내 말이 믿기지가 않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