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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에게 바치는 청소지침서 ㅣ 쿤룬 삼부곡 1
쿤룬 지음, 진실희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1년 1월
평점 :
타인의 개를 함부로 대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영화가 있다. 늙지 않는 배우로 유명한 키아누 리브스가 주연인 ‘존 윅’이다. 벌써 4편까지 나왔으니 흥행을 한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영화에는 독특한 인물이 나온다. 바로 황금코인을 받고 난장판이 된 현장을 청소해주는 청소부이다. 혈흔이 낭자한 현장에서 사체수거부터 바닥청소까지 깔끔하게 하고는 아무 일 없다는 듯이 퇴장을 한다. 다시 찾아줘서 영광이라는 의미심장한 인사를 하고서...
타이완의 작가 쿤룬의 『살인마에게 바치는 청소지침서』를 읽으면서 든 생각이 바로 영화 ‘존 윅’이었다. 타이완의 떠오르는 작가라고 소개되는 쿤룬은 공개석상에서 얼굴을 공개하지 않으며 인터뷰도 가면을 쓰고 할 만큼 내성적인 성격으로 소개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표지에도 마스크를 쓴 인물이 등장한다.
먼저 밝혀두자면 이 소설을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릴 것 같다. 일단 엄청 잔인하다. 추리소설과 무협지를 좋아해서 어린이 시절부터 읽어 와서 나름 살인사건이나 그것을 묘사한 것에 무던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는 나지만 이 소설은 그 정도가 심했다.
이야기의 줄기가 다크웹에 스너프(살인이나 잔인한 장면을 연출과 여과 없이 찍은 것) 영상을 올리는 ‘JACk’이라는 일당 찾아 살해하는 미소년 킬러의 이야기이다. 영국의 살인마 잭 더 리퍼를 따라하는 집단인 ‘JACK’은 피해자를 잔인하게 살해하고 자신의 가슴에 알파벳 J를 새겨 넣고 평범하게 살아간다. 그리고 과거 소중한 사람이 Jack의 일당에게 살해당하는 것을 눈앞에서 본 스넨은 그들의 정보를 정보상 ‘다비도프’에게 얻어 그들을 찾아 한 명씩 처리한다.
잔인한 설정과 묘사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읽은 이유는 등장인물이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먼저 주인공 ‘스녠’은 어릴적 트라우마로 인해 결벽증을 가지고 있으며 jack의 일당을 살해할 때에도 현장을 청소한다. 그는 청소에 대한 팁, 예를 들면 “냉장고는 신경 써서 관리해야 합니다. 특히 악취를 주의해야죠. 레몬과 물을 1:1 비율로 섞어 내부를 닦으면 악취제거 효과적입니다.”, “혈흔은 찬물로 미리 닦아 두면 뒤처리가 쉽습니다.”과 같은 말을 하면서 “그런데 당신이 그 문제를 고민할 필요는 없겠군요.”라며 청소를 마무리한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납치사건에 연루되어 스녠에게 도움을 받는 ‘사축’ 샤오쥔이 있다. 야근과 박봉에 시달리며 세상의 온갖 불운을 온몸으로 맞는 인물로 야근을 하고 다음날부터 있을 휴가의 시작으로 심야영화를 보고 나오던 중에 납치를 당한다. 또한, 이 모든 판을 그린 듯 한 닥터 야오와 정보상 다비도프도 흥미로운 인물이었다.
그리고 중간중간 의미심장한 문장이 소설을 끝까지 읽게 해주었다.
“아이들이 천진난만함을 유지하는 시간은 실온에 보관한 우유만큼 짧다.”(130쪽)
초등학교 교사로 살아가고 있는 Jack의 일당이 하교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하는 말인데 이야기의 흐름과 관계없이 공감이 되는 말이다^^
“떠도는 유언비어는 사람을 죽이는 무기가 될 수 있다” (319쪽)
사건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다시 죽을 뻔 한 샤오쥔이 회사를 그만두는 장면에서 나오는 말이다. 역시 소설의 흐름과 관계없이 인상적이었다.
마지막으로 잔인한 묘사에 가려지긴 했지만 서사의 앞뒤가 잘 짜여져 있었다. 스녠의 과거와 그를 도와주는 닥터 야오, 닥터 야오의 심복인 이하오, 정보상 다비도프 등 등장인물의 이해가 쉽지 않았던 소설 초반의 말과 행동이 소설 후반부로 갈수록 퍼즐이 맞춰지는 느낌을 받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이 소설을 잔인한 장면의 묘사가 자주 나온다. 자극적이고 잔인한 표현을 싫어하는 독자들에게는 환영받지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잘 짜여진 범죄스릴러를 원한다면 선택해도 좋을 듯 한 『살인마에게 바치는 청소지침서』이다. 다음은 이 소설과 가장 잘 어울리는 문장이다.
정상인과 미치광이는 한 끗 차이에 불과하지만, 그 한 끗이 완전히 다른 두 세계를 가른다. (4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