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 - 이곳이 싫어 떠난 여행에서 어디든 괜찮다고 깨달은 순간의 기록
봉현 지음 / 김영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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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서적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서평입니다.


꼬마 니콜라라는 어릴 적 보던 동화책이 있다. 간단히 말하면 프랑스판 짱구는 못말려와 같은 책이다. 거기서 보던 그림과 비슷한 그림이 그려진 책을 만났다. 바로 봉현 작가의 그럼에도 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이다. 그림체가 비슷하다고 해서 내용까지 비슷한 것을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아주 예쁘게 웃었다는 여행지에서 나 자신을 찾기위해 고군분투하는 여행기이며 자아 성찰기이며 그림일기이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나고 자라 서울 소재의 대학에 입학을 한 저자는 학생이면서 학생이 아닌 20대 초반을 보낸다. 그러다 서울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괜찮지만, 행복하지 않아서...


서울을 떠나 베를린으로 간 저자는 낯선 사람, 낯선 거리를 만나고 그림을 그리며 지내다 다시 농장, 유렵, 파리 거쳐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른다. 그리고는 중동으로 건너갔다 다시 순례길에 오르고 인도를 거쳐 서울로 돌아오는 여정을 그곳에서의 그림과 함께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오랜 여행경험으로 여행가방 속 챙겨야 할 물건에 대해 말하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내 여행 가방 속에서 제일 소중한 것은 스케치북과 10년 넘게 써온 낡은 필통, 그리고 책 한 권이다. 여행가이드에는 여권, 비상약, 장비 같은 필수품들을 챙기라고 이야기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책을 한 권 가지고 떠나시오라는 조언은 없다. 위급 용품이나 안내서도 물론 필요하지만, 몸을 챙기는 것 이상으로 마음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다. 여행 가방에 무엇을 넣을지 고민한다면, 몇 번을 읽어도 좋은 자신만의 책을 꼭 한 권 챙길 것. (71쪽)


여행에 필요한 것들만 챙겨도 가방이 꽉 찰 텐데 책까지 챙겨야 하나라는 생각이 드나 4,285킬로미터에 달하는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을 걸으며 엄마의 죽음이라는 상실을 회복 와일드의 저자 셰릴 스트레이드도 6개월 동안 걸으며 배낭 속에 책을 챙겼다는 이야기도 있으니 여행을 하면서 책 한권으로 마음을 챙기는 것은 중요해 보인다.


지금 생각을 해보면 갓 성인이 된 20대 초는 성인이라는 이름하에 많은 책임이 부과되는 시기이긴 하나 몸만 커진 청소년기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기에 불안한 미래와 불안전한 자아 등으로 인해 많이 방황도 하는 시기이다. 그런 방황이 여행기 곳곳에 드러난다. 그렇다고 해서 방황만이 그려진 것은 아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저자는 자신이 건강하고 밝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하는데 이 글과 그림이 좋다.




하지만 두 번째로 간 순례길에는 처음만큼 설레거나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윽고 저자는 길이 아니라 같이 걷던 사람들과의 웃음, 눈물, 감동, 추억들이 그리웠던 것이라고 깨닫고 마차가지로 서울이 그리운 것이아니라 그곳에서 같이 살았던 그때 그 시절 그 사람들이 그리운 것이라고 깨닫는다.


그리고 괜찮았지만 행복하지 않아서 떠난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다. 충분하지 않지만 행복하다고 생각하면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여행에 관하여 이렇게 말했다.

"세상은 책과 같다. 여행하지 않는 자는 단 한 페이지만 읽은 것과 같다."

답을 찾아 헤매며 방황을 한 수많은 여행지에서 저자는 세상이라는 책의 수많은 페이지를 읽으며 답을 구한 셈이다. 흔히 사람이 살아가는 것은 어디든 다 똑같다고들 하지만 여행지에서 만난 행복과 불행, 기쁨과 슬픔을 겪었기에 아주 예쁘게 웃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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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학의 자리
정해연 지음 / 엘릭시르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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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첫인상이 중요한 만큼 소설에서도 첫 문장은 중요하다. 많은 작가들이 첫 문장에 공을 들이고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모든 소설이 그러하겠지만 특히 미스터리 소설이라면 첫 문장에서 읽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다음 장으로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다. 그런 의민에서 정해연 작가의 홍학의 자리는 첫 문장부터 시선을 끈다. 다음은 소설의 프로로그의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다.


호수가 다현의 몸을 삼켰다. (7쪽)

그런데 다현은, 누가 죽였을까? (9쪽)


프롤로그만 읽어도 누군가 한 명이 사망했고, 그 뒤처리를 하는 이는 그 사건에 의문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건의 주인공은 45살의 고등학교 선생인 김준후와 18세의 고등학교 2학년 채다현이다. 준후는 결혼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홀로 진평군 은파면에 위치한 은파고등학교로 전근을 와 생활 중으로 사립고교인 은파고의 선생님들은 전체적으로 나이가 많아 상대적으로 젊은 준후는 다양한 잡무를 떠맡아 야근 생활이 잦은 편이다. 거기에는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살고 있으니 다른 선생들이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것을 조금 도와주면 좋겠다는 동료 선생들의 이기심도 깔려있다.


사기죄로 복역을 하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미혼모 엄마를 둔 다현은 함께 살던 할머니가 일년 전 돌아가셔서 혼자 살고있는 학생이다. 네덜란드의 아루바라는 섬에서 홍학을 보고 싶다는 꿈을 가진 다현은 자신을 이해해주는 건 선생님뿐이라며 준후에게 많은 의지를 하고 있다.


여느 날처럼 혼자 야근을 하고 있는 날, 학교에는 준후와 당직전담원이 70대 황권중만이 남아있다. 그리고 준후를 찾는 다현의 문자가 온다. 준후와 다현은 선생과 학생의 사이보다 더 가까운 사이다. 최근 크게 싸웠지만 다현이 학교로 준후를 찾아 온 것이다. 준후는 다현과 교실에서 만나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다. 작가는 이런 상황이 다음으로 설명한다.


수업을 하는 교실, 담당하는 학생과 선생, 미성년자, 금단의 단어들이 준후를 오히려 미치게 만들었다. (16쪽)


순찰을 도는 권중이 교무실에 없는 준후를 찾자 그 소리에 놀란 그는 자신이 경비를 따돌릴 테니 다현에게 그 사이에 학교를 나가라고 일러둔 다음 권중의 당직실에서 라면을 얻어먹는다. 어느 정도 시간을 벌고 다시 돌아온 준후의 눈에 들어 온 것은 옷을 입지 않고 교실 천장에 PVC노끈에 목을 맨 다현의 모습이다. 의식이 없는 다현의 모습을 본 준후는 근처의 칼로 끈을 잘라내고 응급처치를 하지만 다현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는다. 신고를 하려해도 다현에게는 준후의 흔적이 남아 있기에 설령 자신이 다현을 살해했다는 의혹을 벗더라도 미성년자인 제자와의 관계로 인하여 파멸할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에 다현을 처리하려고 마음을 먹는다. 프롤로그에서 호수에 다현을 빠뜨리고 다현을 누가 죽였을까 생각을 하는 이는 바로 준후이다.


며칠 뒤 다현의 실종사건이 강치수 경위에게 배당된다. 그는 CCTV등을 참고로 하여 다현이 실종되는 날 학교근처에 까지 온 것을 파악하고 당시 당직이었던 황권중과 야근을 했던 준후를 찾아온다. 강치수 형사는 그들의 진술에 의야함을 느낀다. 며칠 뒤 호수에서 다현의 사체가 떠오르자 치수는 준후를 의심하지만 그에게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반면 다현의 핸드폰 사용이력에서 같은 학년의 정은성에게 지속적이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나오자 다현의 사건은 점점 미궁속으로 빠지는 것처럼 보인다. 학교에서는 전형적인 모범생인 정은성은 조미란 교무부장의 아들이다. 사건이 꼬여감을 느낀 준후는 은성과 다현의 관계를 알아보려고 하고 준후의 자리에 의문의 쪽지가 발견되면서 상황이 급박해진다. 쪽지의 내용은 이렇다.


당신이 채다현을 죽였다는 증거를 갖고 있다.

궁금하다면 삼은호수 밤 11(171쪽)


당시 마음이 떠나 이혼을 결심하고 살건 준후는 아내가 진평으로 내려와 있어 집에서의 생활도 불편하기 그지없지만 쪽지를 받고 호수로 나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호수에는 약속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오지를 않고 근처 주차된 차에서 죽어가는 황권중을 보고는 그 자리에서 도망을 친다. 준후는 내심 그 쪽지를 보낸 이는 당시 자신 말고는 학교에 남아있던 유일한 사람인 황권중을 의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환권중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며 다현의 사건은 점차 커져만 간다. 여기까지가 결말을 해치지 않고 쓸 수 있는 내용인 것 같다.


선생인 준후와 학생인 다현의 관계, 동급생인 다현과 은성의 관계, 그리고 은성과 그의 엄마 조미란 선생, 사건 당시 남아 있던 당직전담원 황권중까지 얽히고 섥킨 실타래는 하나 둘씩 풀어져가는 과정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중요한 내용을 언급할 수 없어 간단히 쓰자면 혹학의 자리를 읽으며 생각지 못한 반전은 4가지가 있다.


먼저 다현의 사인이다. 다현은 교실에서 목을 매단 채 발견이 된다. 하지만 부검결과로 치수가 준후에게 알려준 사인은 달랐다.


다음으로 당직전담원 황권중을 살해한 범인과 범행동기이다. 생각지 못한 인물이 툭 튀어 나왔다.


세 번째로 2시간 남짓이면 읽을 수 있는 혹학의 자리를 처음으로 되돌아가 4~5시간을 읽게 만든 최고의 반전이다. 바로 323쪽에서 발견할 수 있다. 물론 모든 것이 작가의 의도이지만 사건 당사자인 준후, 수사하는 치수나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모두 독자를 속인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사건이 종결되고 변호사와 접견을 마치고 돌아가는 복도에서 웃는 준후이다. 그가 웃는 이유는 바로 나오지만 그의 인물됨을 잘 알 수 있어 책을 읽는 동안 준후에게 대해 잘 못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에 반전이 빠질 수는 없지만 생각보다 강도가 센 반정이어서 뒷통수가 얼얼한 홍학의 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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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퍼레이드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9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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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정보 속에서 진실을 찾는 것이 저희의 일입니다. (68쪽)


침묵의 퍼레이드에서 형사 우쓰미 가오루가 수사를 하면서 하는 말이다. 온갖 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현실의 사건과는 달리 미스터리 소설은 거짓조차도 작가가 소설의 흐름을 생각해서 만든 것이기에 거짓의 모습이 좀 더 실감이 나게 그려지곤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만든 매력적인 인물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탐정 갈릴레오, 유가와 마나부가 오랜만에 등장하는 침묵의 퍼레이드55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그만큼 사건이 얽혀 있다.


주요 사건은 이렇다.


도쿄도 기쿠노 시에서 나미키야라는 음식점을 운영하는 나미키 유타로, 미치코 부부에게는 32개월 전 실종된 큰 딸 사오리가 있다. 사오리는 어려서부터 음악에 출중한 능력을 보여 그녀를 가수로 만들려는 니쿠라 나오키, 루미 부부에게서 레슨 등을 받으며 데뷔를 앞둔 시점에 실종된 것이다. 그런 그녀가 시즈오카의 빈집에서 일어난 화재사건에서 발견된다. 사오리는 시즈오카에는 가본 적이 없기에 시작부터 수사는 의문점이 많아 보인다. 이 사건이 구사나기와 가오루에게 할당된다. 불이 난 시즈오카의 집이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하스누마 간이치의 노모가 살던 집이기 때문이다. 하스누마는 23년전 일어난 당시 열 두 살이었던 모토하시 유나 납치, 살해범으로 구사나기가 속한 팀에게 검거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종된 당시 유나양은 하스누마와 비슷한 인상착의를 가진 인물을 따라간 것이 확인되었으나 결정적으로 유나를 찾지 못하던 중 4년이 지나 인근 야산에서 어린 아이로 보이는 유골이 발견되어 체포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심문이나 재판에서 묵비권을 행사하고 경찰과 검찰은 살인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무죄로 석방이 된다. 하스누마의 아버지는 경찰로 당시에는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해 체포한 용의자에게 자백을 강요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집에서 그것을 자랑하는 아버지를 보고 자랐기에 자백을 하지 않는다며 수사가 진행되지 않음을 이용한 것이다. 하스누마는 이번에도 묵비권을 행사하고 자신과 사오리와는 관게를 증명하지 못한 경찰은 그를 기소하지 못한다. 일본 형법상 사체유기죄의 공소 시효는 3년이기에 유나의 사건과 시오리의 사건은 살인죄로 기소를 해야만 하는 입장이기도 하다.


한편 미국에도 돌아온 유가와는 연구차 기쿠노 시에 자주 오가던 중 구사나기에게 사오리의 사건에 대하여 듣는다. 구사나기는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번 피의자는 침묵하는 사내야 (100쪽)


묵비권을 행사하는 하스누마를 지칭하는 말이다. 사건에 흥미를 보이는 유가와는 나미키야의 단골이 되고 그곳에서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며 식사도 한다. 때마침 지역 축제인 기쿠노 스트리트 퍼레이드를 앞두고 있어 상인들은 분주한 상태이다. 기쿠노 스트리트 퍼레이드는 할로윈 축제처럼 특정 주제로 각자 분장을 하고 거리를 행진하는 축제로 다양한 지역에서 참가를 하는 큰 행사이다.


평소 영업과 함께 축체 준비가 한창인 나미키야에 하스누마가 찾아와 나미키 부부에게 죄 없는 사람을 모함했다며 배상금 운운을 하며 행패를 부린다. 기쿠노 시로 다시 돌아왔다던 하스누마는 과거 같은 일을 하던 마스무라 에이지의 집에 함께 잠시 기거를 하게 되는데 전과가 있던 마스무라에게 하스누마가 접근을 해 알고 지냈던 것이다. 게다가 하스누마는 과거 가게 일을 돕던 사오리에게 추파를 던지다 나미키야에 출입금지를 당한 적이 있는 질이 나쁜 손님으로 그의 재등장으로 나미키야의 분위기는 가라앉는다.


퍼레이드 당일 단골이 된 나미키야의 둘째 딸인 나쓰미의 안내로 축제를 구경하게 된 유가와는 유명 장편을 패러디한 다양한 모습의 퍼레이드를 사진도 찍으며 구경한다. 기쿠노시가 준비한 퍼레이드는 보물섬의 해적선의 패러디로 기쿠노 시의 상징인 커다란 개구리 벌룬도 함께였다. 한편 나쓰미는 가게에서 음식을 먹던 손님이 배탈이 나서 그 손님과 병원에 가야한다는 부모님의 연락을 받고 가게로 잠시 돌아간다. 병원에 도착한 손님은 곧 괜찮아져 가게는 정상적으로 영업을 하지만 사건은 그 다음에 일어난다. 마스무라의 집의 한 칸에서 기거를 하던 집에서 하스누마가 사망한 것이다. 사오리의 실종 살인 사건에서 하스누마의 살인 사건으로 사건의 방향이 틀어진 것이다. 하긴 처음부터 하스누마가 내가 범인이니까 잡을 수 있으면 잡아봐라는 식으로 등장하긴 했다. 사오리의 아버지 유타로의 절친인 도지마가 사오리의 연인이었던 도모야에게 법이 심판을 할 수 없으면 우리라도 해야 한다며 손을 빌려 달라는 장면이 있긴 하지만 유일하게 사건의 범인으로 보이는 그가 이야기가 절반이 지나기 전에 사망하리라곤 생각을 못했다.


검시 결과 하스누마는 수면제 성분이 약간 검출되긴 했으나 목이 졸린 흔적이나 목뼈, 관절에도 이상이 없는 질식사로 판명이 되었다. 현장을 살펴본 유가와는 방 전체를 이용해서 질식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냈고 실제로 관련 증거가 근처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수사에 난항을 겪는 구사나기에게 유가와는 이렇게 말한다.


과거 사건과 현재 사건은 반드시 어딘가에 연결 고리가 있어. 어떤 인물과 관련해서 말이야. (323쪽)


앞서 수사는 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정보에서 진실을 찾는 것이라는 가오루의 말이 있었다. 과거 사건과 현재 사건의 연결고리를 찾으라는 유가와의 말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는 진실과 거짓이 뒤섞은 조그만 정보라도 허투루 쓰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사건의 진상을 눈치 챈 유가와는 나미키야에 손님이 아닌 유타로를 만나러 가지만 유타로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제가 입을 열면, 어렵게 침묵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면목이 서지 않아요. (435쪽)


침묵하는 피의자에서 어렵게 침묵을 지키는 사람들을 위해 침묵을 지키는 사건의 당사자까지 퍼레이드는 시끌벅적 했지만 사건의 중심에는 침묵이 있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이 있듯이 법이 심판하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사적 제재를 계획하는 면에서 넬레 노이하우스의 몬스터가 유력한 용의자인 하스누마가 사망하면 가장 의심이 가게 될 나미키 부부에게 알리바이가 생기는 모습은 용의자 X의 헌신이 생각나기도 했지만 탐정 갈릴레오에게 어울리는 범행 도구와 히가시노 게이고의 진행은 이 모든 것을 잘 어울리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미스터리 소설이 그렇지만 밝혀진 진상은 씁쓸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다시 책 표지를 보니 사건의 전말을 모조리 담은 것 같이 보이는 그림으로 보인다. 한 장면을 그린 그림이지만 거대한 분량의 소설을 표현하는 것 같은 침묵의 퍼레이드의 표지와 같은 서평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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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류 오늘의 젊은 작가 40
정대건 지음 / 민음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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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저마다 깊은 우물을 가지고 살아가는구나. (196쪽)

 

정대건 작가의 급류를 가장 잘 표현한 한 문장인 것 같다급류는 어린 나이에 큰 상처를 입은 주인공들이 그 상처를 보듬으며 치유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인지 지나친 비약일지도 모르겠지만 읽는 내내 황순원 작가의 소나기가 생각이 났다. 소나기와는 달리 급류에서는 주인공 도담이 E 성향을 가지고 해솔은 I 성향을 가진 캐릭터였지만 말이다.


물이 맑고 폭이 넓은 유명한 진평강이 흐르는 산과 계곡으로 둘러싸인 진평은 여름 피서철이 되면 관광객들이 넘치고 또 그 만큼 죽음도 흔한 곳이다. 이런 곳으로 2006년 엄마를 따라 서울에서 해솔이 전학을 온다. 어느 날 물에 빠진 해솔을 우연히 아빠와 함께 구해줌으로써 가까워진 도담은 UDT 출신의 소방구조대인 아빠와는 달리 소년미가 넘치는 해솔을 마음에 두게 된다. 여름철의 잔병치레로 병원에 입원을 하는 엄마를 제외하고 종종 해솔이네와 강가에서 더위를 피한 도담은 가족 같다는 관광객의 말에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서로를 의지하며 마음을 키우던 도담과 해솔은 1년 뒤 해솔의 엄마와 도담의 아빠가 같이 강에서 익사를 한 채 발견되면서 관계가 깨진다. 그 사고에 직접적으로 관여를 한 도담과 해솔이지만 그 사실은 그 둘 밖에 모르고 사고가 일어난 상황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확실하지 않은 말들이 돌았다. 마을의 모두가 수사관이 됐고 모두가 작가가 됐다. 오락거리가 없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흥미진진한 안줏거리였다. 죽은 자는 말이 없었다. (10쪽)


졸지에 고아가 된 해솔을 서울로 떠나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고 진평의 좁은 동네에 남게 된 도담은 그런 동네 사람들의 눈초리를 홀로 감내하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진편을 떠난다. 그로부터 몇 년뒤 대학생이 된 도담과 해솔을 어느 술집에서 만난다. 사고 이후 이성이 아닌 감정을 따르는 것을 스스로 엄격히 금한 해솔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술집에서 도담을 만난 것이다. 진평과의 모든 관계를 끊고 새출발을 한 도담은 대학에서 술에 취한 날이 많았다. 아빠에게 그리고 엄마에게 복수를 하려 자신의 몸을 망가뜨리려는 선택을 한 것이다. 그런 도담의 모습을 작가는 이렇게 그린다.


상처 입은 사람의 냄새는 애써 덮고 감추어도 눈빛에서, 걸음걸이에서,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100쪽)


다시 만나 같이 지내게 된 도담과 해솔은 서로의 상처를 유일하게 공유할 수 있는 관계이기에 서로 의지를 하며 지내지만 자신이 아무리 모질게 대해도 사과를 하는 해솔에게 점차 지쳐간다. 해솔이 엄마의 기일에 수목장을 한 나무를 혼자 다녀온 날 아직도 아빠를 용서하지 못한 도담은 그와 다시 다툰다. 때마침 도담을 찾아온 도담의 엄마는 해솔을 보고 다시 화를 낸다. 사고로 남편을 잃은 그녀는 진평에 있을 때에도 도담을 찾아온 해솔에게 모진 말을 해 내 쫓은 바가 있었다. 그녀는 아무도 과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도담과의 헤어짐을 종용한다. 그렇게 도담은 해솔에게 시간을 갖자며 두 번째 이별을 하게 된다.


8년 뒤 전공을 살려 물리치료사가 된 도담은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에 해솔이 입원을 하게 되며 그들은 다시 만난다. 약사를 꿈꾸며 약대로 진학을 했던 그동안 해솔은 소방관이 되어 있었다. 몸을 사리지 않는 구조로 주위에서는 수퍼맨으로 불리고 있는 해솔은 또 다시 구조활동을 하다 큰 상처를 입은 것이다. 자신을 벌하려고 자해를 하며 술에 의존하며 지냈던 도담은 그러한 해솔의 행동이 자신을 벌하는 것임을 유일하게 알아챈다. 해솔은 사명감이라고 말하지만...


누구보다 서로의 상처를 잘 아는 그들은 다시 만나 그동안 해솔이 도담에게 숨겨왔던 이야기를 하며 아픈 상처를 씻어 낸다. 오랜 시간 도담의 가장 큰 상처가 되어 용서를 하지 못했던 아빠를 드디어 용서하게 된 도담은 해솔과 함께 해양장을 한 아빠를 만나러 오른 추모선에서 물에 빠진 한 소녀를 구하며 급류는 마무리 된다.

 

소설의 초반 더위를 피해 해솔과 도담, 도담의 친구 희진은 계곡으로 간다. 그곳에서 도담은 해솔에게 이렇게 묻는다.


너 소용돌이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 줄 알아?”

도담이 해솔을 보며 물었다.

어떻게 해야 되는데?”

수면에서 나오려 하지 말고 숨 참고 밑바닥까지 잠수해서 빠져나와야 돼.” (32쪽)

 

그리고는 도담과 해솔에게 큰 소용돌이가 닥친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빠져나오기 위해 오랜 시간 밑바닥까지 잠수를 한다. 숨을 참고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동안 할퀴고 찔린 상처들을 애써 참아가면서... 그리고 급류는 이렇게 끝난다.


두 사람 앞에 파도가 일고 있었지만 그들은 수영하는 법을 알았다. (296쪽)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려 밑바닥까지 잠수를 하는 동안 도담과 해솔은 수영을 배운 것 같다. 이렇게 크던 작던 닥쳐오는 소용돌이와 파도가 각자에게 깊은 우물을 만들곤 하지만 그럼에도 헤쳐 나가는 것이 삶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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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잉 아이 - Dying Eye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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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도입부인 프롤로그에는 본격적으로 일어날 사건과는 연관이 있지만 그럼에도 독자들이 알아채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특히 미스터리 소설에서는 사건의 중반이나 종반가까이 가서야 프롤로그에 언급된 것들이 이해가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잉 아이(Dying Eye)는 프롤로그에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다 있어 보였다. 그 프롤로그의 마지막 대목은 이렇다.


미나에의 눈은 똑바로 앞을 향했다. 거기에는 그녀의 몸을 깔아뭉갠 차를 운전하는 사람의 얼굴이 있었다.

용서 못해. 내 육체는 없어져도, 이 원한을 끝까지.

증오의 마지막 불길을 태우며 미나에는 상대를 노려보았다.

, 죽고 싶지 않아. 레이지 살려 줘.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 (14)


자신의 가게를 갖는 것이 꿈이며 그 꿈이 손만 뻗으면 잡힐만한 곳까지 온 아메무라 신스케는 술집 양화(생강과 풀의 일종)’에서 바텐더로 일을 한다. 어느 날 홀로 영업 마무리를 하는 도중 한 남자 손님을 맞는다. 빨리 마감을 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손님을 맞이하고 그와 몇 마디를 나눈다. 신스케는 그 남자에게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그 남자는 잊고 싶은 것이 있는데 잊는다는 건 절대 불가능해서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지고 싶다는 이상한 말을 한다. 그리고는 퇴근을 하는 신스케는 돌연 머리에 충격을 느끼며 의식을 잃는다. 며칠 뒤 신스케는 병원에서 깨어나 동거녀 나루미에게 그간의 일에 대해 듣고는 찾아온 형사에게 상황 설명과 함께 이상한 이야기를 듣는다. 자신이 1년 반 전 교통사고 가해자라는 이야기였는데 그는 그에 대한 기억이 싹뚝 사라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공격한 것으로 확신하던 그날 밤의 마지막 남자 손님인 기시나카 레이지가 음독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형사에게 듣는다. 그리고 그는 신이키가 일으킨 교통사고 피해자의 남편이라는 것이다.


사라진 기억이 찾기 위해 사고가 난 곳을 찾아가기도 하고 사고가 나기 전에 일을 하던 술집의 사장 에지마에게도 물어 보지만 그의 물음에 명확한 답을 해주는 이는 없다. 그리고 기억도 드문드문 돌아올 뿐이어서 신스케의 답답함이 더 해갈 때 즘 가게에 이상한 묘령의 여인이 찾아온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신스케는 그녀에게 빠져든다.


나중 루미코라는 이름을 밝히는 그녀와는 별개로 신스케는 자신의 일으킨 교통사고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들고 그 사고에 자신이 타고 있던 차 뿐 아니라 다른 차도 관련이 있음을 기억해 낸다. 그리고 다른 차에 타고 있던 또 다른 교통사고 가해자를 만나 그 사고에 대해 돌이켜 보느냐에 대한 질문에 기우치 하루이코는 이렇게 답한다.


그야 있죠. 죄의식은 별로 없지만, 그쪽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239쪽)”


프롤로그의 상황과 사고에 관련 된 두 대의 차, 그리고 기우치의 말을 종합해 보면 다잉 아이가 그리고 있는 사건의 전말을 얼추 그려볼 수 있다. 무릎을 칠 만한 반전이 뒤에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 것도 아쉬운 점이다. 사건은 마지막 남은 범인이 자신의 눈을 짓이겨 버리면서 끝이 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모조리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다잉 아이는 그동안 읽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중에서 가장 그 답지 않은 소설인 것 같다. 일단 미스터리의 트릭보다 호러와 공포 쪽으로 증점을 두고 있고 선정적인 묘사도 많이 있었다. 녹나무의 파수꾼이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시작한 독자라면 그가 쓴 소설이라 믿지 못할 정도로 다른 소설과 달라 보였다. 다양한 소설을 시도하는 것은 작가로서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다잉 아이의 히가시노 게이고는 나에게는 좀 낯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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