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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학의 자리
정해연 지음 / 엘릭시르 / 2021년 7월
평점 :
사람에게 첫인상이 중요한 만큼 소설에서도 첫 문장은 중요하다. 많은 작가들이 첫 문장에 공을 들이고 어려움을 토로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모든 소설이 그러하겠지만 특히 미스터리 소설이라면 첫 문장에서 읽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다음 장으로 수월하게 넘어갈 수 있다. 그런 의민에서 정해연 작가의 『홍학의 자리』는 첫 문장부터 시선을 끈다. 다음은 소설의 프로로그의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다.
호수가 다현의 몸을 삼켰다. (7쪽)
그런데 다현은, 누가 죽였을까? (9쪽)
프롤로그만 읽어도 누군가 한 명이 사망했고, 그 뒤처리를 하는 이는 그 사건에 의문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건의 주인공은 45살의 고등학교 선생인 김준후와 18세의 고등학교 2학년 채다현이다. 준후는 결혼생활에 염증을 느끼고 홀로 진평군 은파면에 위치한 은파고등학교로 전근을 와 생활 중으로 사립고교인 은파고의 선생님들은 전체적으로 나이가 많아 상대적으로 젊은 준후는 다양한 잡무를 떠맡아 야근 생활이 잦은 편이다. 거기에는 가족들과 떨어져 혼자 살고 있으니 다른 선생들이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것을 조금 도와주면 좋겠다는 동료 선생들의 이기심도 깔려있다.
사기죄로 복역을 하다 자살로 생을 마감한 미혼모 엄마를 둔 다현은 함께 살던 할머니가 일년 전 돌아가셔서 혼자 살고있는 학생이다. 네덜란드의 아루바라는 섬에서 홍학을 보고 싶다는 꿈을 가진 다현은 자신을 이해해주는 건 선생님뿐이라며 준후에게 많은 의지를 하고 있다.
여느 날처럼 혼자 야근을 하고 있는 날, 학교에는 준후와 당직전담원이 70대 황권중만이 남아있다. 그리고 준후를 찾는 다현의 문자가 온다. 준후와 다현은 선생과 학생의 사이보다 더 가까운 사이다. 최근 크게 싸웠지만 다현이 학교로 준후를 찾아 온 것이다. 준후는 다현과 교실에서 만나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는다. 작가는 이런 상황이 다음으로 설명한다.
수업을 하는 교실, 담당하는 학생과 선생, 미성년자, 금단의 단어들이 준후를 오히려 미치게 만들었다. (16쪽)
순찰을 도는 권중이 교무실에 없는 준후를 찾자 그 소리에 놀란 그는 자신이 경비를 따돌릴 테니 다현에게 그 사이에 학교를 나가라고 일러둔 다음 권중의 당직실에서 라면을 얻어먹는다. 어느 정도 시간을 벌고 다시 돌아온 준후의 눈에 들어 온 것은 옷을 입지 않고 교실 천장에 PVC노끈에 목을 맨 다현의 모습이다. 의식이 없는 다현의 모습을 본 준후는 근처의 칼로 끈을 잘라내고 응급처치를 하지만 다현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는다. 신고를 하려해도 다현에게는 준후의 흔적이 남아 있기에 설령 자신이 다현을 살해했다는 의혹을 벗더라도 미성년자인 제자와의 관계로 인하여 파멸할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에 다현을 처리하려고 마음을 먹는다. 프롤로그에서 호수에 다현을 빠뜨리고 다현을 누가 죽였을까 생각을 하는 이는 바로 준후이다.
며칠 뒤 다현의 실종사건이 강치수 경위에게 배당된다. 그는 CCTV등을 참고로 하여 다현이 실종되는 날 학교근처에 까지 온 것을 파악하고 당시 당직이었던 황권중과 야근을 했던 준후를 찾아온다. 강치수 형사는 그들의 진술에 의야함을 느낀다. 며칠 뒤 호수에서 다현의 사체가 떠오르자 치수는 준후를 의심하지만 그에게는 확실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반면 다현의 핸드폰 사용이력에서 같은 학년의 정은성에게 지속적이 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나오자 다현의 사건은 점점 미궁속으로 빠지는 것처럼 보인다. 학교에서는 전형적인 모범생인 정은성은 조미란 교무부장의 아들이다. 사건이 꼬여감을 느낀 준후는 은성과 다현의 관계를 알아보려고 하고 준후의 자리에 의문의 쪽지가 발견되면서 상황이 급박해진다. 쪽지의 내용은 이렇다.
당신이 채다현을 죽였다는 증거를 갖고 있다.
궁금하다면 삼은호수 밤 11시 (171쪽)
당시 마음이 떠나 이혼을 결심하고 살건 준후는 아내가 진평으로 내려와 있어 집에서의 생활도 불편하기 그지없지만 쪽지를 받고 호수로 나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하지만 호수에는 약속시간이 지나도 아무도 오지를 않고 근처 주차된 차에서 죽어가는 황권중을 보고는 그 자리에서 도망을 친다. 준후는 내심 그 쪽지를 보낸 이는 당시 자신 말고는 학교에 남아있던 유일한 사람인 황권중을 의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음날 환권중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며 다현의 사건은 점차 커져만 간다. 여기까지가 결말을 해치지 않고 쓸 수 있는 내용인 것 같다.
선생인 준후와 학생인 다현의 관계, 동급생인 다현과 은성의 관계, 그리고 은성과 그의 엄마 조미란 선생, 사건 당시 남아 있던 당직전담원 황권중까지 얽히고 섥킨 실타래는 하나 둘씩 풀어져가는 과정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중요한 내용을 언급할 수 없어 간단히 쓰자면 『혹학의 자리』를 읽으며 생각지 못한 반전은 4가지가 있다.
먼저 다현의 사인이다. 다현은 교실에서 목을 매단 채 발견이 된다. 하지만 부검결과로 치수가 준후에게 알려준 사인은 달랐다.
다음으로 당직전담원 황권중을 살해한 범인과 범행동기이다. 생각지 못한 인물이 툭 튀어 나왔다.
세 번째로 2시간 남짓이면 읽을 수 있는 『혹학의 자리』를 처음으로 되돌아가 4~5시간을 읽게 만든 최고의 반전이다. 바로 323쪽에서 발견할 수 있다. 물론 모든 것이 작가의 의도이지만 사건 당사자인 준후, 수사하는 치수나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모두 독자를 속인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사건이 종결되고 변호사와 접견을 마치고 돌아가는 복도에서 웃는 준후이다. 그가 웃는 이유는 바로 나오지만 그의 인물됨을 잘 알 수 있어 책을 읽는 동안 준후에게 대해 잘 못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에 반전이 빠질 수는 없지만 생각보다 강도가 센 반정이어서 뒷통수가 얼얼한 『홍학의 자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