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류 오늘의 젊은 작가 40
정대건 지음 / 민음사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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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저마다 깊은 우물을 가지고 살아가는구나. (196쪽)

 

정대건 작가의 급류를 가장 잘 표현한 한 문장인 것 같다급류는 어린 나이에 큰 상처를 입은 주인공들이 그 상처를 보듬으며 치유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래서인지 지나친 비약일지도 모르겠지만 읽는 내내 황순원 작가의 소나기가 생각이 났다. 소나기와는 달리 급류에서는 주인공 도담이 E 성향을 가지고 해솔은 I 성향을 가진 캐릭터였지만 말이다.


물이 맑고 폭이 넓은 유명한 진평강이 흐르는 산과 계곡으로 둘러싸인 진평은 여름 피서철이 되면 관광객들이 넘치고 또 그 만큼 죽음도 흔한 곳이다. 이런 곳으로 2006년 엄마를 따라 서울에서 해솔이 전학을 온다. 어느 날 물에 빠진 해솔을 우연히 아빠와 함께 구해줌으로써 가까워진 도담은 UDT 출신의 소방구조대인 아빠와는 달리 소년미가 넘치는 해솔을 마음에 두게 된다. 여름철의 잔병치레로 병원에 입원을 하는 엄마를 제외하고 종종 해솔이네와 강가에서 더위를 피한 도담은 가족 같다는 관광객의 말에 화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서로를 의지하며 마음을 키우던 도담과 해솔은 1년 뒤 해솔의 엄마와 도담의 아빠가 같이 강에서 익사를 한 채 발견되면서 관계가 깨진다. 그 사고에 직접적으로 관여를 한 도담과 해솔이지만 그 사실은 그 둘 밖에 모르고 사고가 일어난 상황을 간단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확실하지 않은 말들이 돌았다. 마을의 모두가 수사관이 됐고 모두가 작가가 됐다. 오락거리가 없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흥미진진한 안줏거리였다. 죽은 자는 말이 없었다. (10쪽)


졸지에 고아가 된 해솔을 서울로 떠나 할머니와 함께 살게 되고 진평의 좁은 동네에 남게 된 도담은 그런 동네 사람들의 눈초리를 홀로 감내하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진편을 떠난다. 그로부터 몇 년뒤 대학생이 된 도담과 해솔을 어느 술집에서 만난다. 사고 이후 이성이 아닌 감정을 따르는 것을 스스로 엄격히 금한 해솔은 아르바이트를 하는 술집에서 도담을 만난 것이다. 진평과의 모든 관계를 끊고 새출발을 한 도담은 대학에서 술에 취한 날이 많았다. 아빠에게 그리고 엄마에게 복수를 하려 자신의 몸을 망가뜨리려는 선택을 한 것이다. 그런 도담의 모습을 작가는 이렇게 그린다.


상처 입은 사람의 냄새는 애써 덮고 감추어도 눈빛에서, 걸음걸이에서, 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100쪽)


다시 만나 같이 지내게 된 도담과 해솔은 서로의 상처를 유일하게 공유할 수 있는 관계이기에 서로 의지를 하며 지내지만 자신이 아무리 모질게 대해도 사과를 하는 해솔에게 점차 지쳐간다. 해솔이 엄마의 기일에 수목장을 한 나무를 혼자 다녀온 날 아직도 아빠를 용서하지 못한 도담은 그와 다시 다툰다. 때마침 도담을 찾아온 도담의 엄마는 해솔을 보고 다시 화를 낸다. 사고로 남편을 잃은 그녀는 진평에 있을 때에도 도담을 찾아온 해솔에게 모진 말을 해 내 쫓은 바가 있었다. 그녀는 아무도 과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도담과의 헤어짐을 종용한다. 그렇게 도담은 해솔에게 시간을 갖자며 두 번째 이별을 하게 된다.


8년 뒤 전공을 살려 물리치료사가 된 도담은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에 해솔이 입원을 하게 되며 그들은 다시 만난다. 약사를 꿈꾸며 약대로 진학을 했던 그동안 해솔은 소방관이 되어 있었다. 몸을 사리지 않는 구조로 주위에서는 수퍼맨으로 불리고 있는 해솔은 또 다시 구조활동을 하다 큰 상처를 입은 것이다. 자신을 벌하려고 자해를 하며 술에 의존하며 지냈던 도담은 그러한 해솔의 행동이 자신을 벌하는 것임을 유일하게 알아챈다. 해솔은 사명감이라고 말하지만...


누구보다 서로의 상처를 잘 아는 그들은 다시 만나 그동안 해솔이 도담에게 숨겨왔던 이야기를 하며 아픈 상처를 씻어 낸다. 오랜 시간 도담의 가장 큰 상처가 되어 용서를 하지 못했던 아빠를 드디어 용서하게 된 도담은 해솔과 함께 해양장을 한 아빠를 만나러 오른 추모선에서 물에 빠진 한 소녀를 구하며 급류는 마무리 된다.

 

소설의 초반 더위를 피해 해솔과 도담, 도담의 친구 희진은 계곡으로 간다. 그곳에서 도담은 해솔에게 이렇게 묻는다.


너 소용돌이에 빠지면 어떻게 해야 하는 줄 알아?”

도담이 해솔을 보며 물었다.

어떻게 해야 되는데?”

수면에서 나오려 하지 말고 숨 참고 밑바닥까지 잠수해서 빠져나와야 돼.” (32쪽)

 

그리고는 도담과 해솔에게 큰 소용돌이가 닥친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빠져나오기 위해 오랜 시간 밑바닥까지 잠수를 한다. 숨을 참고 밑바닥까지 내려가는 동안 할퀴고 찔린 상처들을 애써 참아가면서... 그리고 급류는 이렇게 끝난다.


두 사람 앞에 파도가 일고 있었지만 그들은 수영하는 법을 알았다. (296쪽)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오려 밑바닥까지 잠수를 하는 동안 도담과 해솔은 수영을 배운 것 같다. 이렇게 크던 작던 닥쳐오는 소용돌이와 파도가 각자에게 깊은 우물을 만들곤 하지만 그럼에도 헤쳐 나가는 것이 삶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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