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퍼레이드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9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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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정보 속에서 진실을 찾는 것이 저희의 일입니다. (68쪽)


침묵의 퍼레이드에서 형사 우쓰미 가오루가 수사를 하면서 하는 말이다. 온갖 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현실의 사건과는 달리 미스터리 소설은 거짓조차도 작가가 소설의 흐름을 생각해서 만든 것이기에 거짓의 모습이 좀 더 실감이 나게 그려지곤 한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만든 매력적인 인물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탐정 갈릴레오, 유가와 마나부가 오랜만에 등장하는 침묵의 퍼레이드550쪽이 넘는 방대한 분량이지만 그만큼 사건이 얽혀 있다.


주요 사건은 이렇다.


도쿄도 기쿠노 시에서 나미키야라는 음식점을 운영하는 나미키 유타로, 미치코 부부에게는 32개월 전 실종된 큰 딸 사오리가 있다. 사오리는 어려서부터 음악에 출중한 능력을 보여 그녀를 가수로 만들려는 니쿠라 나오키, 루미 부부에게서 레슨 등을 받으며 데뷔를 앞둔 시점에 실종된 것이다. 그런 그녀가 시즈오카의 빈집에서 일어난 화재사건에서 발견된다. 사오리는 시즈오카에는 가본 적이 없기에 시작부터 수사는 의문점이 많아 보인다. 이 사건이 구사나기와 가오루에게 할당된다. 불이 난 시즈오카의 집이 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하스누마 간이치의 노모가 살던 집이기 때문이다. 하스누마는 23년전 일어난 당시 열 두 살이었던 모토하시 유나 납치, 살해범으로 구사나기가 속한 팀에게 검거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종된 당시 유나양은 하스누마와 비슷한 인상착의를 가진 인물을 따라간 것이 확인되었으나 결정적으로 유나를 찾지 못하던 중 4년이 지나 인근 야산에서 어린 아이로 보이는 유골이 발견되어 체포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심문이나 재판에서 묵비권을 행사하고 경찰과 검찰은 살인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무죄로 석방이 된다. 하스누마의 아버지는 경찰로 당시에는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해 체포한 용의자에게 자백을 강요하는 경우가 대부분으로 집에서 그것을 자랑하는 아버지를 보고 자랐기에 자백을 하지 않는다며 수사가 진행되지 않음을 이용한 것이다. 하스누마는 이번에도 묵비권을 행사하고 자신과 사오리와는 관게를 증명하지 못한 경찰은 그를 기소하지 못한다. 일본 형법상 사체유기죄의 공소 시효는 3년이기에 유나의 사건과 시오리의 사건은 살인죄로 기소를 해야만 하는 입장이기도 하다.


한편 미국에도 돌아온 유가와는 연구차 기쿠노 시에 자주 오가던 중 구사나기에게 사오리의 사건에 대하여 듣는다. 구사나기는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번 피의자는 침묵하는 사내야 (100쪽)


묵비권을 행사하는 하스누마를 지칭하는 말이다. 사건에 흥미를 보이는 유가와는 나미키야의 단골이 되고 그곳에서 다양한 인물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며 식사도 한다. 때마침 지역 축제인 기쿠노 스트리트 퍼레이드를 앞두고 있어 상인들은 분주한 상태이다. 기쿠노 스트리트 퍼레이드는 할로윈 축제처럼 특정 주제로 각자 분장을 하고 거리를 행진하는 축제로 다양한 지역에서 참가를 하는 큰 행사이다.


평소 영업과 함께 축체 준비가 한창인 나미키야에 하스누마가 찾아와 나미키 부부에게 죄 없는 사람을 모함했다며 배상금 운운을 하며 행패를 부린다. 기쿠노 시로 다시 돌아왔다던 하스누마는 과거 같은 일을 하던 마스무라 에이지의 집에 함께 잠시 기거를 하게 되는데 전과가 있던 마스무라에게 하스누마가 접근을 해 알고 지냈던 것이다. 게다가 하스누마는 과거 가게 일을 돕던 사오리에게 추파를 던지다 나미키야에 출입금지를 당한 적이 있는 질이 나쁜 손님으로 그의 재등장으로 나미키야의 분위기는 가라앉는다.


퍼레이드 당일 단골이 된 나미키야의 둘째 딸인 나쓰미의 안내로 축제를 구경하게 된 유가와는 유명 장편을 패러디한 다양한 모습의 퍼레이드를 사진도 찍으며 구경한다. 기쿠노시가 준비한 퍼레이드는 보물섬의 해적선의 패러디로 기쿠노 시의 상징인 커다란 개구리 벌룬도 함께였다. 한편 나쓰미는 가게에서 음식을 먹던 손님이 배탈이 나서 그 손님과 병원에 가야한다는 부모님의 연락을 받고 가게로 잠시 돌아간다. 병원에 도착한 손님은 곧 괜찮아져 가게는 정상적으로 영업을 하지만 사건은 그 다음에 일어난다. 마스무라의 집의 한 칸에서 기거를 하던 집에서 하스누마가 사망한 것이다. 사오리의 실종 살인 사건에서 하스누마의 살인 사건으로 사건의 방향이 틀어진 것이다. 하긴 처음부터 하스누마가 내가 범인이니까 잡을 수 있으면 잡아봐라는 식으로 등장하긴 했다. 사오리의 아버지 유타로의 절친인 도지마가 사오리의 연인이었던 도모야에게 법이 심판을 할 수 없으면 우리라도 해야 한다며 손을 빌려 달라는 장면이 있긴 하지만 유일하게 사건의 범인으로 보이는 그가 이야기가 절반이 지나기 전에 사망하리라곤 생각을 못했다.


검시 결과 하스누마는 수면제 성분이 약간 검출되긴 했으나 목이 졸린 흔적이나 목뼈, 관절에도 이상이 없는 질식사로 판명이 되었다. 현장을 살펴본 유가와는 방 전체를 이용해서 질식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냈고 실제로 관련 증거가 근처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수사에 난항을 겪는 구사나기에게 유가와는 이렇게 말한다.


과거 사건과 현재 사건은 반드시 어딘가에 연결 고리가 있어. 어떤 인물과 관련해서 말이야. (323쪽)


앞서 수사는 진실과 거짓이 뒤섞인 정보에서 진실을 찾는 것이라는 가오루의 말이 있었다. 과거 사건과 현재 사건의 연결고리를 찾으라는 유가와의 말에서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는 진실과 거짓이 뒤섞은 조그만 정보라도 허투루 쓰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윽고 사건의 진상을 눈치 챈 유가와는 나미키야에 손님이 아닌 유타로를 만나러 가지만 유타로는 이렇게 말한다.


지금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제가 입을 열면, 어렵게 침묵을 지키고 있는 사람들에게 면목이 서지 않아요. (435쪽)


침묵하는 피의자에서 어렵게 침묵을 지키는 사람들을 위해 침묵을 지키는 사건의 당사자까지 퍼레이드는 시끌벅적 했지만 사건의 중심에는 침묵이 있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이 있듯이 법이 심판하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사적 제재를 계획하는 면에서 넬레 노이하우스의 몬스터가 유력한 용의자인 하스누마가 사망하면 가장 의심이 가게 될 나미키 부부에게 알리바이가 생기는 모습은 용의자 X의 헌신이 생각나기도 했지만 탐정 갈릴레오에게 어울리는 범행 도구와 히가시노 게이고의 진행은 이 모든 것을 잘 어울리게 만들었다.


대부분의 미스터리 소설이 그렇지만 밝혀진 진상은 씁쓸하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했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다시 책 표지를 보니 사건의 전말을 모조리 담은 것 같이 보이는 그림으로 보인다. 한 장면을 그린 그림이지만 거대한 분량의 소설을 표현하는 것 같은 침묵의 퍼레이드의 표지와 같은 서평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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