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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잉 아이 - Dying Eye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0년 7월
평점 :
소설의 도입부인 프롤로그에는 본격적으로 일어날 사건과는 연관이 있지만 그럼에도 독자들이 알아채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특히 미스터리 소설에서는 사건의 중반이나 종반가까이 가서야 프롤로그에 언급된 것들이 이해가 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데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잉 아이(Dying Eye)』는 프롤로그에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 다 있어 보였다. 그 프롤로그의 마지막 대목은 이렇다.
미나에의 눈은 똑바로 앞을 향했다. 거기에는 그녀의 몸을 깔아뭉갠 차를 운전하는 사람의 얼굴이 있었다.
용서 못해. 내 육체는 없어져도, 이 원한을 끝까지.
증오의 마지막 불길을 태우며 미나에는 상대를 노려보았다.
아, 죽고 싶지 않아. 레이지 살려 줘.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 (14쪽)
자신의 가게를 갖는 것이 꿈이며 그 꿈이 손만 뻗으면 잡힐만한 곳까지 온 아메무라 신스케는 술집 ‘양화(생강과 풀의 일종)’에서 바텐더로 일을 한다. 어느 날 홀로 영업 마무리를 하는 도중 한 남자 손님을 맞는다. 빨리 마감을 하고 싶은 마음이지만 손님을 맞이하고 그와 몇 마디를 나눈다. 신스케는 그 남자에게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그 남자는 잊고 싶은 것이 있는데 잊는다는 건 절대 불가능해서 조금이라도 마음이 편해지고 싶다는 이상한 말을 한다. 그리고는 퇴근을 하는 신스케는 돌연 머리에 충격을 느끼며 의식을 잃는다. 며칠 뒤 신스케는 병원에서 깨어나 동거녀 나루미에게 그간의 일에 대해 듣고는 찾아온 형사에게 상황 설명과 함께 이상한 이야기를 듣는다. 자신이 1년 반 전 교통사고 가해자라는 이야기였는데 그는 그에 대한 기억이 싹뚝 사라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을 공격한 것으로 확신하던 그날 밤의 마지막 남자 손님인 기시나카 레이지가 음독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형사에게 듣는다. 그리고 그는 신이키가 일으킨 교통사고 피해자의 남편이라는 것이다.
사라진 기억이 찾기 위해 사고가 난 곳을 찾아가기도 하고 사고가 나기 전에 일을 하던 술집의 사장 에지마에게도 물어 보지만 그의 물음에 명확한 답을 해주는 이는 없다. 그리고 기억도 드문드문 돌아올 뿐이어서 신스케의 답답함이 더 해갈 때 즘 가게에 이상한 묘령의 여인이 찾아온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신스케는 그녀에게 빠져든다.
나중 루미코라는 이름을 밝히는 그녀와는 별개로 신스케는 자신의 일으킨 교통사고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들고 그 사고에 자신이 타고 있던 차 뿐 아니라 다른 차도 관련이 있음을 기억해 낸다. 그리고 다른 차에 타고 있던 또 다른 교통사고 가해자를 만나 그 사고에 대해 돌이켜 보느냐에 대한 질문에 기우치 하루이코는 이렇게 답한다.
“그야 있죠. 죄의식은 별로 없지만, 그쪽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239쪽)”
프롤로그의 상황과 사고에 관련 된 두 대의 차, 그리고 기우치의 말을 종합해 보면 『다잉 아이』가 그리고 있는 사건의 전말을 얼추 그려볼 수 있다. 무릎을 칠 만한 반전이 뒤에 기다리고 있지는 않은 것도 아쉬운 점이다. 사건은 마지막 남은 범인이 자신의 눈을 짓이겨 버리면서 끝이 난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모조리 다 읽은 것은 아니지만, 『다잉 아이』는 그동안 읽었던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중에서 가장 그 답지 않은 소설인 것 같다. 일단 미스터리의 트릭보다 호러와 공포 쪽으로 증점을 두고 있고 선정적인 묘사도 많이 있었다. 『녹나무의 파수꾼』이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으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을 시작한 독자라면 그가 쓴 소설이라 믿지 못할 정도로 다른 소설과 달라 보였다. 다양한 소설을 시도하는 것은 작가로서 필요한 일이긴 하지만 『다잉 아이』의 히가시노 게이고는 나에게는 좀 낯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