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아줌마 약한 대한민국 - 대한민국 아줌마 리얼 생존 분투기
김현미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1년 9월
평점 :
품절


몇 달 전, <나, 여성노동자>라는 꽤 두꺼운 책을 읽은 적이 있다. 피복업체, 공장, 마트 등에서 일하는 중년의 여성 노동자들의 '자기 이야기'를 실은 책인데 그것을 보고 '아줌마'라는 단어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그 동안 '아줌마' 하면 촌스러운 뽀글뽀글 파마에, 우악스럽고 거칠고 부끄러움도 모르고 공공장소에서 질서도 안 지키는 등, 주로 부정적인 이미지로 보여지곤 했다. 그래서 나는 나이를 먹더라도 저렇게 추한 꼴 따위는 절대 안 보일 거라고 몇 번이고 다짐하며, 다분히 경멸적인 생각을 갖곤 했다. 하지만 누군가의 소중한 아내이고 어머니임이 분명한 주부 노동자들의 삶의 실상을 접하면서, 항상 가장 작은 자의 입장에서 연대하는 삶을 살겠다고 생각한 나로서는 점점 갈수록 그녀들을 바라보는 눈길이 부드러워지게 되었다. 전직 국회의원이었던 김현미의 <강한 아줌마, 약한 대한민국>은, 그러한 '아줌마'들의 고단한 삶을 리얼하게 보여주고 있다.  

저자는 지역구에서 시민들과 여러 가지 경로로 만나는 중, 주부 노동자들과 만나게 되었고 얘기를 하다 보니 또래 여성으로서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고 한다. 마트 캐셔, 식당 종업원, 요양보호사, 보육교사, 방문판매 사원, 택시기사 등 여러 직종의 아줌마들을 만나며, 같이 등산도 하고 매운탕도 먹고, 그러면서 그녀들의 신산(辛酸)하고 팍팍한 노동과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하루 12시간 혹은 그 이상의 힘겨운 노동을 해도 한 달 수입 100만원을 넘기기가 힘든 혹독한 현실을 토로하는 이야기들은 읽으면서도 참 마음이 아파진다.  

그녀들이 생활전선에 뛰어든 계기는 각양각색이다. 사기를 당하고 가세가 완전히 기울어서 시름시름 앓는 남편을 대신하여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요양보호사와 마트 일을 병행하다가 끝내 뇌경색으로 쓰러진 영숙씨,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억척같이 돈을 벌기 위해서 새벽에는 농사를 짓고, 낮에는 가사도우미 일을 하다가 지금은 트럭을 가지고 다니며 고물 수거 일을 하는 찬숙씨, 집세를 충당하기 위해 마트 캐셔가 되어 하루 종일 꼬박 서서 바코드를 찍는 미화씨, 남자 기사들도 체력적으로 힘들어하는 장시간의 택시 운전을 거뜬히 해내는 국희씨, 남편은 도박에 빠져 가산을 탕진하고 자신은 암에 걸리고 재발하기를 반복하면서도 대형마트에서 죽어라 일하며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송반장, 정수기가 고장났는데 못 고쳤으니 엔지니어 올 때까지 무릎꿇고 벌을 서라는 고객까지 만나야 했던 정수기 판매사원 수미씨, 자녀들의 등록금 때문에 급식 조리원으로 일하면서 찜통이며 솥단지를 번쩍번쩍 들어 나르던 종숙언니 등, 읽는 것만으로도 이미 가혹하기 짝이 없는 현실에 분노하게 된다.  

그렇게 골병들게 일해도, 주부 노동자들이 벌 수 있는 돈은 한 달에 100만원도 채 되지 않는다. 간신히 최저임금 수준으로 받고 있는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생활은 항상 빠듯하고, 아끼고 또 아껴도 살기가 어렵다. 그나마 그곳에서 계속 일할 수 있다면 다행이겠지만, 정규직 전환을 막기 위하여 1년 혹은 2년 단위로 재계약을 해주는 곳이 대부분이라 만년 비정규직으로 있을 수밖에 없고, 계약 만료가 다가오면 여기서 앞으로도 계속 일할 수 있을지 불안한 마음이 된다. 정규직 사원들에게 주어지는 복지 혜택 같은 것은 꿈도 꿀 수 없다. 또한 대부분이 12시간 혹은 그 이상의 장시간 노동이기 때문에, 가사나 육아까지 병행해야 하는 주부 노동자들로써는 항상 피로에 절어 있고, 대부분 만성적인 질환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일하다 다치거나 병이 들어도 병원 다녀오기도 쉽지 않다. 내가 그녀들이 하는 일을 단 하루라도 해본다면, 아마 지쳐 나가떨어질지도 모른다. 젊은 사람에게조차 체력적으로 힘든 그러한 일들을, 주부 노동자들은 매일매일 하며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그녀들이 배우지 못해서, 혹은 능력이 없어서 그런 장시간 저임금의 비정규직 노동을 하게 된 것은 아니다. 개중에는 대학을 나와 결혼 전에는 제법 괜찮은 직업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출산과 육아로 인해 생긴 사회적 경력의 공백 때문에 전에 얼마나 공부를 많이 했건, 어떤 일을 했건, 그녀들이 선택할 수 있는 일의 종류는 그다지 다양하지 못하다. 장관 부인이라도 계급장 떼고 돈 벌러 나가면 한 달에 100만원 벌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또한 남편이 버는 돈만 갖고도 먹고 살만 한데 용돈 벌러 나오는 것이라는, 세간의 오해 역시 주부 노동자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이 책에 등장한 그녀들은 사업 실패, 사고 배상금, 가족의 병원비, 나날이 늘어가는 자녀들의 교육비, 감당하기 힘든 집세나 대출 이자, 배우자의 사망 등으로 인해 자신이 가족 전체의 생계를 책임지지 않으면 안 되는 절박한 입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래서 몸이 아파도, 힘들어도, 심지어는 성희롱과 갖은 인격적 모욕을 당해도 그만둘 수 없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비정규직 아줌마들의 저임금으로 한국 경제가 굴러가고 있다고 말한다. 경제가 굴러가게 하는 힘은 아줌마와 알바생, 비정규직이 제공하고 있는데, 그 과실은 소수의 자산가와 대기업들이 다 차지하는 현실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저렇게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할 때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부 노동자들이 큰 것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얼마를 받으면 행복할 것 같은지 물어보면, 한 달에 이것저것 세금 같은 것 떼고 통장에 들어오는 돈이 딱 100만원만 되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누군가에게는 하룻밤 술값으로도 부족할 돈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끝내 넘기 힘든 벽인 것이다. 그 돈을 가지고 주부 노동자들은 몸져누운 남편의 병원비를, 아이의 참고서 값을, 한 가족의 식비를 충당할 것이다. 한때는 꿈 많은 소녀였을, 예쁜 처녀였을 '아줌마'들은, 이 혹독한 삶에 짓눌려 점점 억척스럽고 강해진 것이다. 또한 이들은 멀리 있지 않은, 우리가 아침저녁 식당에서, 거리에서, 일터에서 만나는 우리의 이웃이고 또한 우리의 어머니, 언니, 누나인 것이다. 그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 책을 읽으며 노동자의 삶, 그 중에서도 중년 여성 노동자의 삶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내 마음 속에 가장 크게 자리잡은 화두는 그들의 삶의 고단함이었다. 그녀들이 딱히 내일의 희망이 보이지도 않는, 매일매일의 고단한 삶을 버텨내고 있는 힘은 아마 가족일 것이다. 가족과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그녀들은 내일도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새벽같이 일터에 나갈 것이다. 다시 국회에 들어가면 말로만 민생과 서민을 챙기는 게 아니라 몸과 의지로 챙기는 국회의원이 되고 싶다는 저자의 말처럼, 가장 작은 자들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들의 삶을 나아지게 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정치인들이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가난한 자들을 짓밟으며 대기업과 부자들에게만 유리한 정책만 밀어붙이는 정치인들은 분노와 환멸만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가장 작은 자들을 우선적으로 배려하게 되기를, 나는 간절히 바라 마지 않는다. 한겨레에서 특집으로 연재했고 책으로도 나온 <4천원 인생>에서, 이러한 가혹하기 짝이 없는 노동 현실에 대한 대안은 '식당 아줌마를 함부로 대하지 않는 것'이라고, 공장의 불안정 노동자가 식당의 불안정 노동자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그 시선이 곧 연대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참여했던 기자는 말한다. 그렇다. 우리의 연대로 인해 세상은 느리게라도 조금씩 좋은 쪽으로 변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