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

도덕적 감정은 우리의 도덕적 행동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¹⁶⁷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타인의 고통에 대한 공감이나 죄책감 같은 도덕적 감정은 자유롭게 선택할 때보다 명령에 복종할 때 약화된다. - P234

167 J.P. Tangney, J. Stuewig, & D. J. Mashek. Moral emotions and moral behavior.
Annual Review of Psychology 58 (2007), 345-372. - P363

5
명령을 내릴 때
명령자의
뇌 속에서는


대부분의 인간 사회는 효과적으로기능하기 위해 정치, 종교, 전문 분야 등 다양한 분야의 지도자를 필요로 한다.¹⁶⁹ - P238

169 A.J. King, D. D. P. Johnson, & M. Van Vugt. The origins and evolution ofleadership. Current Biology 19 (2009), R911-R916. - P363

하지만 인간만이 유일하게 복잡한 계층 구조와 지도자를 가진 것은 아니다. 비인간 동물 연구에서 동일한 사실이 많은 종에서도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 P239

실제로 권력을 얻는 길은 다양하다. 흥미로운 점은 비인간 종이 권력을 얻는 경로가 인간 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다양하다는 것이다. - P239

다른 집단은 좀 더 지배력에 따라 결정한다. 침팬지는 명확한 계층 구조를 갖춘 복잡한 사회 집단에 산다. 집단 내에서 가장 높은 알파 수컷이라는 지위는 출생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  - P241

지도자에게 권한을 부여한다는 것은 지도자가 사회의 이익을 위해 행동할 것이라고 가정한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지도자가 자신이 내린 지시에 책임을 질 것으로 기대하는데, 특히 그 결정이 다른 사람들에게 심각한결과를 초래할 경우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지도자들은 때로 집단의 이익에 어긋나는 방식으로 행동한다.  - P241

이런 경우 지도자는 도덕적 이탈moral disengagement이라는 자기 조절 메커니즘을 이용해 양심에 거리낌 없이 위법 행위를 저지를 수 있다.¹⁷⁹ ¹⁸⁰ - P242

179R. Wood & A. Bandura, Social cognitive theory of organizational management. TheAcademy of Management Review 14 (1989), 361-384.

180 C. Moore, D. M. Mayer, F. F. T. Chiang, C. Crossley, M. J. Karlesky, & T. A. Birtch. Leaders matter morally: The role of ethical leadership in shaping employee moralcognition and misconduct. Journal of Applied Psychology 104 (2019), 123-145. - P364

계층적 사슬의 복잡성에 관하여

(전략).
이 다큐멘터리를 본 후 궁금증이 일었다. 명령을 실행하는 사람이 행동한 사람이므로 자기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이 더 쉬울까? 아니면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 애초에 행동을 명령했으므로 책임을 지는 것이 더 쉬울까? - P244

그러나 많은 조직에서 명령은 훨씬 더 긴 지휘 계통에 파묻혀 상관으로부터 받은 명령이 한 명 이상의 명령자를 통해 다양한 행위자에게 전달된다. - P245

지도자들이 자신의 명령 아래 행해진 잔혹행위를
책임지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전략).
캄보디아는 크메르루주 정권 아래에서 저지른 모든 잔혹행위를 두고 공식적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의 수가 매우 적기 때문에 책임 귀속과 관련해 매우 독특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중략). 모든 책임이 그들의 어깨에 놓여졌다.
그러면 이 지도자들은 저질러진 잔혹행위에 그 정도의 책임을 인정했을까? - P247

한 인간이 죄책감을 표현하고 용서를 구하는 동시에, 법 앞에서는 유죄 판결을 받지 않도록 요청할 수 있을까? - P250

이 섹션에서 보았듯이 명령을 내리는 사람이 자신의 지도력 아래 저질러진 행동에 항상 책임을 지는 것은 아니다(사실상 드물다). - P250

지도자의 도덕적 의사 결정


과학 연구에서는 이전의 실험실 연구를 통해 명령을 내리거나 전달하는 역할이 행동을 직접 수행하는 경우와 비교하여 피해자에 대한 도덕적행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해 왔다. - P251

밀그램의 실험 설정을 재현한 연구도 있다. 웨슬리 킬럼Wesley Kilham과 레온 맨Leon Mann은 중간자와 명령을 실행하는 요원의 위치를 직접 비교하여 밀그램과 유사한 실험 설계에서 두 역할의 복종 정도를 분석했다.¹⁹⁰ - P252

190 W. Kilham & L. Mann, Level of destructive obedience as a function of transmitterand executant roles in the Milgram obedience paradigm. Journal of Personalityand Social Psychology 29 (1974), 696-702. - P364

다시 말해 사람들이 중간자 위치에 있을 때는 복종도가 더 높아서 행위주체일 때보다 해를 끼칠 가능성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심리적인 측면에서 보면 중간자 위치에 있는 것은 매우 편안하다. 즉 최초의 명령에 책임을 지지 않으면서 행동을 수행할 책임도 지지 않기 때문이다. - P252

명령자와 중간자의 뇌

신경과학자 입장에서, 2018년에 실시한 실험은 참가자의 주관적인 경험이 그들의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을 그대로 반영한 것인지 내 궁금증을 유발했다. - P256

(전략).¹⁹² 이 실험에서연구자들은 참가자들이 강력한 권력 상황을 회상하는 것은 중립적인 상황의 회상과 비교했을 때, 주체의식에 영향을 미치지 않음을 관찰했다. 따라서 높은 권력 위치에 있는 것은 주체의식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 P257

192 S.S. Obhi, K. M. Swiderski, & S. P. Brubacher, Induced power changes the sense ofagency. Consciousness and Cognition 21 (2012), 1547-1550. - P364

하지만 이러한 연구는 커다란 한계가 있다. 즉 비록 참가자들에게 실제 사건을 기억하도록 요구했지만 실험 중에 그들이 그 자체로 높거나 낮은 사회적 권력 상황에 있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 P258

2018년에 우리는 명령을 내리는 사람들의 주체의식을 먼저 연구하기로했다. 명령자와 명령 실행 요원의 행위나 명령이 제삼자에게 실제적인 결과를 초래할 때, 그 둘 사이의 주체의식에 차이가 있는지 알고 싶었다.¹⁰⁸ - P258

108 E. A. Caspar, A. Cleeremans, & P. Haggard. Only giving orders? An experimentalstudy of the sense of agency when giving or receiving commands. PLoS One 13(2018), e0204027. - P358

우리 참가자들은 명령을 실행하는 요원의 역할에 비해 명령자의 역할에 있을 때 더 큰 책임감을 느낀다고 분명히 밝혔기 때문에 우리는 명령자 역할에서 더 높은 주체의식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암묵적 측정에서는 그런 결과가 관찰되지 않았다.  - P259

주목할 점은 명령을 내릴 때 주체의식이 가장 낮은 명령자가 정신병적 특성을 측정하는 척도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것이다. 즉 정신병적 특성은 사람들이 명령을 내릴 때 주체성을 (그러므로 책임감까지) 느끼지못할 위험을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 P259

기계에 명령하기: 계층적 사슬의 새로운 과제?


우리는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중략). 그리고 이러한 기술들이 계속 발전해 민간이나 군사 분야는 물론이고 사회에 더 깊이 통합됨에 따라, 앞으로는 책임을 이해하고 부여하기 위한 새로운 틀을 개발하는 것이 중요해질 것이다. - P262

우리는 응답자 200명이 참여한 소규모 조사에서 다섯 가지 잠재적 행위자(남성 한 명, 여성 한 명, 인간형 로봇 하나, 로봇 팔 하나, 기본적인 모터 하나)의 영상을 보도록 요청했다. (중략).
이러한 결과는 로봇의 인간적 특징 때문에 그 존재에 대한 책임감을 묻는 인식이 높아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는 인간형 로봇이든 아니든, 로봇에게 명령을 내릴 때 인간에게 명령을 내릴 때보다 더큰 책임감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 P263

인간은 기계에 책임을 전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평소라면 내리지 않았을 위험이나 결정을 감수하려는 의지가 강해질 수 있다. - P265

6

황폐함은 어디에나
있다


대량학살이나 전쟁 또는 극적인 갈등이 끝나고 나면 남는 것은 황폐함뿐이다. - P268

물론 숫자로 셀 수 있는 결과도 있다. (중략). 하지만 전쟁과 대량학살로 생기는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 결과에 대해서는 거의 언급이 없다. 바로 사람들의 마음에 깊이 영향을 미치는 심리적, 감정적 결과다.  - P268

트라우마의 심리적 결과를 더 잘 인식하고 이해하려는 커다란 발전이 이루어졌으며, 이제 전쟁에서는 모든 사람이 위험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살아남은 피해자들은 영구적인 신체장애에 더해 심리적 트라우마까지 겪는다. - P269

폭력의 행사가 심리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면 이러한 사람들을 위한 적절한 재활 및 재통합 프로그램을 계획하는 데 도움을 얻을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이 사회에 성공적으로 재통합될 가능성을 키우고 폭력적인 행동에 다시 빠질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 - P271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의 이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즉 PTSD는 사람들이 트라우마 경험을 한 후 겪을 수 있는 일련의 반응을 말한다. 그렇다고 꼭 트라우마 경험 후에 바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 P271

성인의 PTSD 진단은 다양한 증상을 기준으로 하며, 이러한 증상은 일반적으로 장애의 다양한 측면을 포괄하는 네 가지 주요 범주로 묶을 수있다. (중략). 따라서 그들은 회피적이고 감정적으로 무감각해진다. - P272

그동안 심리학은 PTSD를 광범위하게 연구하고 조사했다. 의학과 신경과학 역시 그 증상과 근본적인 메커니즘에 관한 지식을 늘리는 데 큰 기여를 했으며, 덕분에 오늘날 더욱 효율적인 치료법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PTSD가 정신 건강에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는 점도 중요하다. - P273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것은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큰 타격을 준다.  - P274

스트레스가 많은 사건은 뇌를 변화시킨다

트라우마 사건을 경험하면 결정을 내리는 방식, 다른 사람의 감정을 처리하는 방식, 심지어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에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는방식 등 여러 수준에서 뇌가 변화한다. - P275

PTSD 발병에 중요한 뇌 영역은 편도체, 측좌핵, 해마, 내측전 전두엽 피질의 네 개다(그림 5).²⁰⁷ 스트레스 상황을 겪으면 우리 몸(주로 눈과 귀)은 정보를 수집하여 뇌의 감정 처리 영역인 편도체로 보낸다.²⁰⁸ - P275

207 L.M. Shin, S. L. Rauch, & R. K. Pitman, Amygdala, medial prefrontal cortex, andhippocampal function in PTSD. Annals of the New York Academy of Sciences1071 (2006), 67-79.

208 E.A. Phelps & J. E. LeDoux. Contributions of the amygdala to emotion processing:From animal models to human behavior, Neuron 48 (2005), 175-187. - P366

스트레스 상황에 대한 몸의 반응은 매우 빠르고 효율적이어서 의식적으로 정보를 처리할 필요조차 없이 우리 몸은 ‘투쟁도피반응fight or flightresponse‘을 보인다. 이것은 우리 종의 생존을 책임지는 중요한 메커니즘이다. - P276

뇌가 계속해서 상황이 위험하거나 위협적이라고 인식하면 피질자극분비호르몬corticotropin release hormone, CRH을 분비하는데, 이 호르몬은 뇌에 있는 뇌하수체로 이동해 부신피질자극호르몬adrenocorticotropic hormone, ACTH의 분비를 촉진한다. 그다음 ACTH가부신으로 전달돼 코르티솔을 방출한다.²¹¹ - P277

211 S.A. Lowrance, A. Ionadi, E. McKay, X. Douglas, & J. D. Johnson. Sympatheticnervous system contributes to enhanced corticosterone levels following chronicstress, Psychoneuroendocrinology 68 (2016). 163-170. - P366

그러나 스트레스, 코르티솔, 해마의 크기 사이의 메커니즘이 아주 간단하지는 않다. - P278

전투원들의 말하지 않은 고통

실제로 전쟁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포함한 모든 관련자에게 깊은 심리적 영향을 미친다. 폭력 행위를 저지른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이 미치는 심리적 영향에 어느 정도 면역이 되어 있다고 흔히 생각하지만, 연구에 따르면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 P280

최근 통계에 따르면 군 참전용사들은 광범위한 심리적 피해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략). 또한 군 참전용사의 자살률은 매우 높아 미군의 주요 사망 원인으로여겨지고 있는데, 특히 가장 젊은 연령대인 29세 이하에서 높다. - P280

최근의 한 정교한 연구에서,²³⁴ 연구자들은 다른 혼란변수를 최대한 통제해 전투 노출의 스트레스가 해마 부피의 감소와 관련이 있는지 이해하고자 했다.  (중략). 이러한 결과는 줄어든 해마의 부피가 유전적 요인과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며, 해마의 부피가 줄어들어 PTSD가 발병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뒷받침한다. - P281

234 J.D. Bremner, M. Hoffman, N. Afzal, et al. The environment contributes more thangenetics to smaller hippocampal volume in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 Journal of Psychiatric Research 137 (2021), 579-588. - P368

PTSD 증상 외에도 군 참전 용사들은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느낌, 즉 자신의 도덕적 가치에 반하는 행동을 했다는 느낌을 가질위험이 있는데 이것을 ‘도덕적 상처 moral injuries‘라고 부른다. - P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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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P 같은 괴담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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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 경기는 지금까지 본 적 없다.
앞으로도 안 볼 것 같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구미에 당겼고, 재미있었다.




7장

미국 예외주의


인디애나폴리스에서 겪은 참사는 결정타가 되었다.
이듬해인 2006년에도 인디애나폴리스에서 다시 US 그랑프리가 개최되기는 했으나 버니 에클스턴의 결심은 이미 되돌릴 수 없었다. - P174

엔초 페라리였다면 미국인은 그저 촌뜨기 취급하면 된다고 조언했을지 모르지만, 버니는 다른 길이 있다고 생각했다.  - P174

에클스턴은 인디애나에서의 여정이 꼬이기 시작한 순간부터 내내 그렇게 느꼈다. "F1과 미쉐린의 미국 내 전망은 밝지 않습니다." - P175

그러니 1980년, 낡은 서킷을 운영하던 회사의 돈이 바닥났을 때도 누구 하나 놀라지 않았다. 돈이 안 된다는 것을 안 에클스턴은 대회 장소를 뉴욕주 북부보다 좀 더 화려한 곳으로 주저 없이 옮겼다. - P176

. 1981년 10월의 어느 주말, 에클스턴은 그곳이 포뮬러 1 서킷이라면 어떨지 상상했고 이를 구현했다. 주차장을 구불구불 지나 사막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형태였다.  - P177

(전략).
대신 시저스 팰리스의 도박장으로 간 버니는 중국 할머니들이 벌이고 있던 거액의 카드 게임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10만 달러를 잃었다. 미국은 아무래도 에클스턴과 맞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미국인들은 무엇이든 미국식으로 하길원했어요." - P177

그럼에도 포뮬러 1은 꾸준히 미국을 찾아왔다. - P177

1989년부터 1991년까지는 애리조나주 피닉스 차례였다. 미국에서 여덟 번째로 대회 유치에 나선 도시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역사상 가장 기억에 남지 않는 개최지가 되고 말았다. (중략).
에클스턴은 피닉스와의 5년 계약을 파기할 기회가 오자마자 곧바로 행동에 옮겼다.  - P178

특히 그는 미국인들이 F1 대회를 지상파 TV로 중계하지 않는데 크게 실망했다. 1980년대 유럽방송연합 협약 때부터 그는 F1이 무료 시청이 가능한 채널에서 중계되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어 왔다. - P179

프로모터들 역시 불만이 컸다. - P179

에클스턴은 2005년이 상황을 얼마나 더 악화시킬지 미처 알지 못했다. 이 스포츠는 미국을 감동시킬 마지막 기회를 날려버렸다. 그리고 미국은 그 작별에도 전혀 슬퍼하지 않았다. - P180

2005년 어느 월요일 아침 「인디애나폴리스 스타Indianapolis Star」에는 이런 기사가 올라왔다. (중략).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났다. "안녕, F1. 꺼져줘서 고마워요. 버니 에클스턴" - P180

에클스턴식 F1 캘린더의 비결은 그 누구에게도 정확한 일정을 알려주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계약과 이론적인 날짜는 있었다.
(중략).
형식적으로는 규칙과 F1의 무결성을 책임지는 최종 결정권자인 FIA가 늘 일정을 발표했다. 그러나 실제로 어디서 대회가 열릴지는 버니에게 달려 있었다.  - P181

2010년대와 2020년대에 전 세계의 축구나 올림픽 종목의 리더들이 최고가 입찰자에게 영혼을 파는 일이 일상이 되기 훨씬 전부터 포뮬러 1은 충분한 돈과 공간만 있으면 누구에게든 그랑프리 권리를 팔았다. - P181

(전략).
에클스턴은 크렘린과 연관된 상대들을 이렇게 말한다. "내가아는 유일한 사실은 그들이 더 정직하고 거래하기 쉬운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내가 ‘악수 한 번으로 계약을 끝내는 사람‘
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걸 압니다. 계약에 지나치게 신경 쓰지않습니다. 어차피 읽지도 않고 서명하니까요." - P182

그러나 F1이 찾아간 독재정권이나 인권 유린 정부보다도 이스포츠에 치명적인 결과를 미친 개최지들이 있었다. 바로 ‘충분한 돈을 내지 않으려는 곳‘들이었다. - P183

이것은 F1이 서킷을 선정할 때 늘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다. 전통이 있는 서킷과 돈 되는 서킷 사이의 균형 말이다. 버니 시대에 F1은 40곳이 넘는 다른 장소를 찾아갔다. 그조차 실제로 추진된 계획의 일부에 불과했다 - P183

2012년에 그는 F1의 수많은 모순 중 하나를 이렇게 지적했다.
"우리는 그토록 오랫동안 트랙 안전성을 홍보해 왔는데 이제 와서 모나코에서 대회를 치른다는 게 아이러니죠. 하지만 제 생각엔1년에 한 번 정도라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운전하는재미가 대단하니까요." - P185

평균 속도가 가장 낮은데도 불구하고, 매년 모나코 대회에서 결승선을 통과하는 차의 수가 가장 적은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 P185

대회 장소로서의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모나코 그랑프리는 일찍부터 포뮬러 1 전체를 대표하는 강력한 셀링 포인트로 자리잡았다. 그 배경에는 1950년대의 신혼부부 한 쌍이 있었다. - P186

머지않아 그녀의 주소록은 곧 그랑프리의 공식 초청 명단이 되었다. 그랑프리 일정이 인근 해안에서 열리는 칸 영화제와 대략 겹친다는 사실도 도움이 됐다. - P186

역대 월드 챔피언들이 깨끗한 거리와 소득세 면제를 누리고자 모나코로 이주한 사실만으로도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모나코는 거의 모든 드라이버에게 홈 레이스나 마찬가지였다.  - P188

포뮬러 1 드라이버가 아니면서 요트에서 술이나 마시며 대회를 관람하려는 사람은 막대한 지출을 각오해야 한다. (중략). 말보로는 1980년대부터 한 주말 동안 접대비로 수백만 달러를 쏟아부었다.  - P188

호텔과 카지노, 각종 부동산을 소유한 상장 국영기업인 소시에테 데 방드 메르Societe des Bains de Mer는 그랑프리 주말 단 한 번으로 연간 이익의 5퍼센트를 벌어들인다고 한다. F1을 국가의 상징으로 삼는 평판 가치는, 말 그대로 값을 매길 수가 없다. - P188

그렇다고 공개 석상에서의 허세를 멈추지는 않았다. 이는 다른 서킷에 청구하는 가격을 지키기 위한 것이기도 했고, 강경 협상가라는 자신의 명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 P190

포뮬러 1이 처음으로 아랍 세계에 진출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선택이 얼마나 중대한 의미를 지녔는지 알려면 한 가지를 기억할필요가 있다. 오늘날 스포츠계에 ‘오일 머니‘가 몰아치기 전, 당시는 동트기 전 새벽과 같았다는 점이다.  - P191

돌이켜봤을 때 놀라운 점은, 석유와 가스 중심 경제를 갖고 있었음에도 바레인이 아직 중동 초부유층의 전초기지는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 P191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바레인이 걸프 지역의 다른 국가에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사실이었다. - P194

아부다비는 분명 포뮬러 1이 열리는 주말을 국가 이미지를 재고하기 위한 글로벌 브랜딩 전략의 핵심으로 보았다. 더 이상 이곳은 오일 머니와 의심스러운 인권 기록을 가진 사막의 고립된 독재국가가 아니었다. - P195

9장

스파이게이트


2007년 6월 초 어느 아침, 트루디 코글런Trudy Coughlan은 서리주에 위치한 평범한 복사 가게에 들어섰다. 그녀의 손에는 CD-ROM에 옮기기 위한 780페이지 분량의 두툼한 서류 뭉치가 들려있었다. - P220

이 모든 사실은 트루디 코글런이 가게를 나선 직후, 몬테이스가 인터넷으로 알아낸 사실이다. (중략). 그녀의 남편이 맥라렌에서 일한다는 사실은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 P221

몬테이스가 추리하기에는 지금 눈에 보이는 780페이지짜리 서류는 어떻게든 적의 손에 들어간 스쿠데리아의 사유 재산이었다. - P222

훗날 ‘스파이게이트Spygate‘로 불리게 된 이 엄청난 사건에서 가장 뜻밖이었던 점은 스테파노 도메니칼리가 몬테이스의 이메일을 받았을 뿐 아니라 실제로 열어보았다는 것이다.  - P222

몬테제몰로는 이렇게 말했다. "화가 났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전 세계에 페라리 팬이 있었죠. 영국에도 말입니다." - P223

알드레드는 몬테이스를 자기 사무실로 초대했다. 만나보니 이남자는 페라리를 상대로 정교한 사기극을 벌일 위인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 P223

그는 페라리에 두 가지 선택지를 알려주었다. 이 건을 형사 소송으로 진행하면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므로 일이 길어질 위험이있다. 그동안 맥라렌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운영을 계속할 수도 있다. 단 - P224

코글런은 자신이 780페이지 자료를 가지고 있었음을 인정했다. 트루디를 보내 디지털화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료를 불법이나 속임수로 입수한 것은 아니라고 거듭 설명했다.  - P225

그러나 곧 문제가 시끄럽게 터지고 말았다. 바로 그 주, FIA가 조사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 P226

데니스는 주말 내내 질문을 최대한 피해 다녔다. 맥라렌의 공식 입장은 어디까지나 한 직원이 혼자 저지른 일탈이라는 것이었다. - P227

데니스가 변호팀을 꾸릴 시간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나 그는 사안의 중대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 P227

(전략).
모슬리가 물었다. "그가 팀에서 한 일은 뭔가요?"
데니스는 말을 더듬었다. "그가 한 일, 그가 한 일은 최종 승인입니다. 업무가 가장 몰리는 기간은 11월부터 1월까지인데, 그때1만장에서 1만 5,000장의 도면이 들어옵니다. 누군가는 그 도면들을 ‘생산 적합‘이나 ‘검토 중‘, 또는 ‘구조 특성 검토 중‘ 등으로판단해야 합니다. 그건 설계 과정이 아닙니다." - P229

데니스가 멈칫하더니 이렇게 반박했다. "맥라렌에는 대회 우승에 공헌하지 않는 직원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 P229

"나는 그저 방어적으로 말하는 것뿐입니다." 데니스가 정확한 단어도 고르지 못한 채 끼어들었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협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위협을 느낍니다!" - P230

한편 데니스는 충분히 기뻐할 만했다. 포뮬러 1 퇴출이라는, 맥라렌 제국에 엄청난 파급이 미칠 수 있는 처벌 직전까지 갔다가 사실상 아무런 중징계도 받지 않고 벗어난 것이다. - P231

맥라렌 측은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모슬리는 하릴없는 소리를 할 사람이 아니었다 - P232

페라리와 맥라렌의 대결은 FIA 본부 안에서만 벌어진 것이 아니었다. 트랙 위에서는 말 그대로 칼부림에 가까운 승부가 이어지고 있었다. - P232

가장 추악한 사건은 헝가리에서 벌어졌다. 알론소는 예선을 치르던 도중 피트 레인에 차를 세워 고의로 해밀턴의 진로를 막았고, 그 결과 해밀턴은 마지막 바퀴를 완주하지 못했다. - P233

다음 날 아침, 알론소의 화를 더욱 돋우는 일이 일어났다. 그가 피트 레인 사건에 대한 징계로 그리드에서 다섯 칸 밀려나는 페널티를 받아 폴 포지션에서 6번 그리드로 밀려났던 것이다. - P234

론 데니스는 두 달 만에 콩코드 광장에 돌아와 사진기자 무리를 뚫고 FIA 본부로 들어갔다. - P235

두 번째 청문회에서 모슬리의 태도는 훨씬 덜 공격적이었다. 이미 맥라렌의 덜미를 완벽하게 잡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떤 처벌을 내릴 것인가였다.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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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장

슈마허

(전략).
엔초가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지났을 무렵, 루카 디 몬테제몰로는 페라리로 돌아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 P142

페라리는 화려한 액세서리에 불과했다. - P143

엔초의 시대에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환영받는 일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몬테제몰로는 마라넬로를 떠나 있는 동안 이탈리아의 다른 스포츠 현장을 두루 경험했다. - P143

그는 독일이 1대 0으로 우승컵을 차지한 것보다 더 따분한 일이 페라리 공장에서 벌어지고 있음을 곧 알게 되었다. - P143

몬테제몰로는 ‘엔진, 출력, 기어박스‘야말로 엔초가 믿는 삼위일체라고 말했다. 페라리를 위기에서 구하려면 약간의 신성 모독과 함께, 2억 달러 정도가 필요했다. - P144

복귀 초기, 몬테제몰로는 이탈리아 건축가 렌초 피아노 Renzo Piano에게 설계를 맡겨 거대한 풍동 건설을 지시했다. 이 시설은 F1 카의 50퍼센트 축소 모형은 물론 실제 자동차까지 수용할 수 있는 크기였다. - P144

몬테제몰로는 그 건물 안에서 모든 관리 프로세스를 간소화하고 페라리의 F1 협력사들을 재검토했다. 그는 그들 모두에게 더 많은 것을 요구했다. - P145

몬테제몰로는 로드카 사업에도 똑같은 성실함과 신화의 정신을 불어넣었다. 페라리에서 레이싱과 로드카는 다른 어느 곳보다 서로 밀접하게 연결된 것이었다. - P145

몬테제몰로의 첫 조치는 생산량을 즉각 줄이는 것이었다.
(중략).
그는 럭셔리 산업의 핵심 원칙을 이렇게 설명했다. "브랜드의 독점성을 지키려면 수요보다 한 대 적게 파는 게 좋다. 페라리는 갈망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 P146

하지만 페라리에서 일하기를 갈망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중략).
물론 바너드는 일부 혁신적인 결과물을 내놓기는 했다. - P146

장 토트Jean Todt는 1993년에 몬테제몰로의 제안으로 스쿠데리아의 팀 대표가 될 때까지만 해도 F1 경력이 전무했다. (중략).
토트는 커리어 대부분을 푸조에서 보냈다.  - P147

토트는 페라리가 재건의 초기 단계에 합류했다. 1993년에도스쿠데리아는 우승이 없었고, 오히려 4위로 밀려났다. - P148

시즌 초 어느 날, 토트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적어두는 노트를 꺼내 할 일 목록에 항목 하나를 추가했다.
‘1996년을 위한 드라이버 문제‘ - P148

1996년 드라이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너무나 분명했다. 페라리가 월드 챔피언 컨스트럭터가 되려면 월드 챔피언 드라이버가 있어야만 했다. - P149

미하엘 슈마허 Michael Schumacher는 아직 역대 최고는 아니었지만, 그 길에 들어선 인물이었다. - P149

그 점은 슈마허의 F1에 입성한 첫 주간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었다.  - P149

슈마허는 팀에 합류하자마자 토요일 예선에서 7위를 차지하며, 그 판단이 옳았음을 분명히 보여줬다. - P149

베네통은 1985년에야 등장한 비교적 신생 팀이었다. 패션 기업가 루치아노 베네통 Luciano Benetton은 자신의 화려한 스웨트셔츠를 더 파는 데는 F1에 진출하는 것보다 나은 방법이 없다고 판단했다. - P150

유일하게 이례적인 인사 결정은 바로 최고 책임자였다. - P150

의도치 않게 타이밍도 완벽했다. 1994년 시즌은 F1의 규정이 혼란해진 보기 드문 시기였다. FIA는 윌리엄스의 컴퓨터 보조장치를 금지하는 한편, 엔진 규정은 놀랄 만큼 완화하여 페라리의 마력 욕심을 달래려고 했다. - P151

로스 브런은 레이스카가 유일하게 멈추는 순간, 피트스톱pitstop에서 속도 우위를 차지할 참이었다. - P151

슈마허는 운전대를 잡았을 때 철학적인 질문을 별로 하지 않았다. 알랭 프로스트처럼 엔지니어 기질의 드라이버도 아니었고, 아일톤 세나처럼 콕핏을 신성한 영역으로 여기는 타입도 아니었다. - P152

그 사건은 1994년 시즌 마지막에 일어났다. - P152

 슈마허가 1위였고 바로 뒤에 힐이 따라붙었다. 그때 슈마허가 이례적인 실수를 범했다. 좌회전 코너에서 코스를 넓게 벗어나며 타이어가 벽에 닿았다. 힐은 틈을 봤고, 바로 다음 우측 코너에서 인코스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슈마허도 똑같이 했다. 보는 시각에 따라 이것은 정당한 레이싱 동작일 수도, 라이벌을 제거하기 위한 비열한 선택일 수도 있었다. - P153

힐은 슈마허가 속임수를 썼다고 공개 비난한 적이 없다. 그럴 필요도 없었다. 모든 영국 언론이 대신해 주었기 때문이다. - P153

슈마허는 이번에도 마지막 경기에서 단 1점을 앞서며 우승했다. 또다시 슈마허가 1위였고 윌리엄스가 바로 뒤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금발로 염색한 프랑스계 캐나다인 자크 빌뇌브 Jacques Ville-neuve가 드라이버였다. - P154

. 몇 주 후 FIA는 슈마허의 행동을 재조사했고, 그것이 고의적이라고 판정했다. - P154

슈마허의 도덕성은 확실히 의심스러웠지만, 그의 헌신만큼은 누구도 토를 달지 않았다.  - P155

 메카닉들은 평소처럼 오전 8시 15분에 서킷에 도착했다. 그런데 도착해 보니 슈미는 이미 레이싱 슈트를 입은 채 모터홈 계단에 앉아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말했다. "이기고 싶으면 아침 일찍 일어나야지." - P155

F1 역사에서 슈마허만큼 체력 관리에 진지하게 임한 사람은없었다. 슈마허는 F1 드라이버가 된다는 것이 곧 프로 운동선수로 살아가는 일이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온전히 이해한 사람이었다. 그는 매일 두세 시간씩 하루도 거르지 않고 운동했다.  - P155

슈마허가 스쿠데리아로 옮긴 직후 테크노짐Technogym이라는 이탈리아 회사는 그에게 50만 달러짜리 이동식 운동시설을 만들어주었다. 이 ‘바퀴 달린 고문실‘은 그랑프리든 시험 주행이든 그를 따라다녔다. 페라리는 그를 맞아들일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 - P156

로스 브런이 F1 피트 레인에서 귀한 존재였던 이유는, 그만큼보기 드문 자질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 P157

브런은 1978년에 윌리엄스의 패트릭 헤드 밑에서 기계공으로 F1 경력을 시작했다. 낡은 카펫 공장에 차려진 그 팀의 직원은 그를 포함해 겨우 11명뿐이었다. 그는 이후 20년 동안 승진을 거듭하며 메카닉, R&D 기술자, 공기역학자, 수석 디자이너, 레이싱 전략가, 기술 감독까지 F1의 거의 모든 직책을 거쳤다. 브런은 우편실에서 시작해 이사직까지 오른 인물의 F1 버전이었다. - P158

F1에서의 35년간 브런이 결코 듣지 않았을 비판이 있다면, 규정을 너무 보수적으로 해석한다는 말일 것이다.  - P158

 슈퍼 닌텐도를 켜고 ‘위, 아래, 좌, 우, B, A, 그리고 스타트‘를 입력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이었다. 베네통의 차에는 말 그대로 ‘치트키‘가 감춰져 있었다.
브런은 당연히 결백을 주장했다. 차에 비밀 런치 컨트롤 기능이 있는 것은 맞다. 그래서 뭐가 문제냐는 식이었다. - P159

이 사건에서 브런이 얻은 교훈은 ‘다시는 이런 짓을 하지 말자‘가 아니었다. 오히려 정반대였다. 그는 F1 규정집에 수천 가지의 정밀한 사양과 측정치가 있지만, 그중 어디에도 ‘한계를 어디까지 밀어붙일 수 있는가‘에 대한 규정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 P160

마라넬로로 옮긴 지 3년 만에, 브런과 그의 팀은 마침내 우승을 노릴 수 있는 레이스카를 개발했다. 유일한 걸림돌은 드라이버를 잃었다는 것이었다. - P160

그러나 페라리의 도전까지 끝난 것은 아니었다. - P161

두 드라이버가 각자의 목표를 위해 경쟁하는 것보다, 하나의 팀 목표를 위해 협력하는 편이 더 효율적이라는 판단이었다. 페라리의 목표는 분명했다. 미하엘 슈마허를 월드 챔피언으로 만드는것이었다. - P161

슈마허가 시즌을 거의 통째로 결장하면서, 페라리의 작전은 어바인이 이어받았다.  - P162

브런은 나중에 쓴 책에서 이렇게 말했다. "분명한 것은, 타이어가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 P162

그러나 1998년에 포뮬러 1은 사상 최초로 타이어에 관한 규정을 신설했다. 세나의 사망 사고 이후 시작된 안전 강화 조치에 따라, 자동차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 의무적으로 앞뒤 타이어에 홈groove이 들어가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 P163

그래서 1999년 말 프랑스 대기업 미쉐린Michelin이 브리지스톤의 라이벌로 포뮬러 1에 복귀를 선언했을 때, 대부분의 팀은 곧바로 일본 제조사를 버리고 더 가까운 곳의 제품으로 갈아 끼웠다. - P163

브런의 지시로 브리지스톤은 타이어 공급업체라기보다 페라리의 새로운 부서처럼 움직였다. - P164

F1 역사상 그 어떤 팀도 타이어 생산에 이렇게 깊이 관여한 적은 없었다. - P164

다행히 페라리에는 그 일에 딱 맞는 사람이 있었다. 슈마허는 브리지스톤 타이어를 끈질기게 테스트했다. - P165

브런은 이렇게 말한다. "동에서 몇 주 몇 달을 보낸 뒤에 얻는 결과는 고작 한 바퀴당 0.5초 정도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새 타이어를 끼우기만 하면 바로 0.5초의 이득을 얻었습니다." - P165

아무도 그들을 따라잡지 못했다. 2000년에 슈마허는 맥라렌의미카 해키넨Mika Häkkinen과의 최종전 승부 끝에 페라리의 오랜 드라이버 챔피언 가뭄을 간신히 끝냈다.  - P166

그 시즌 슈마허는 5연속 타이틀과 통산 일곱 번째 챔피언을 여유롭게 따냈다. (중략). 운 나쁘게도 슈마허만 졸졸따라다니던 한 사진작가가 그 전 과정을 필름에 담았고 사건을 담은 사진은 영국의 타블로이드지 「더 선The Sun」에 ‘사고뭉치 슈마허‘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하지만 이마저도 슈마허의 승리로 돌아갔다. 이미지가 훼손되기는커녕 독자들은 오히려 그가 더 친근하고 더 인간적으로 느껴진다고 말했다. - P167

그 이상한 규정은 성공했다. 페라리는 망했다.
2005년 시즌 개막전부터 스쿠데리아의 시대가 끝났음을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중략).
하지만 그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타이어 규정을 건드리는 일이 F1의 본질에 큰 파장을 낳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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