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1 경기는 지금까지 본 적 없다.
앞으로도 안 볼 것 같지만, 그럼에도 이 책은 구미에 당겼고, 재미있었다.




7장

미국 예외주의


인디애나폴리스에서 겪은 참사는 결정타가 되었다.
이듬해인 2006년에도 인디애나폴리스에서 다시 US 그랑프리가 개최되기는 했으나 버니 에클스턴의 결심은 이미 되돌릴 수 없었다. - P174

엔초 페라리였다면 미국인은 그저 촌뜨기 취급하면 된다고 조언했을지 모르지만, 버니는 다른 길이 있다고 생각했다.  - P174

에클스턴은 인디애나에서의 여정이 꼬이기 시작한 순간부터 내내 그렇게 느꼈다. "F1과 미쉐린의 미국 내 전망은 밝지 않습니다." - P175

그러니 1980년, 낡은 서킷을 운영하던 회사의 돈이 바닥났을 때도 누구 하나 놀라지 않았다. 돈이 안 된다는 것을 안 에클스턴은 대회 장소를 뉴욕주 북부보다 좀 더 화려한 곳으로 주저 없이 옮겼다. - P176

. 1981년 10월의 어느 주말, 에클스턴은 그곳이 포뮬러 1 서킷이라면 어떨지 상상했고 이를 구현했다. 주차장을 구불구불 지나 사막으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형태였다.  - P177

(전략).
대신 시저스 팰리스의 도박장으로 간 버니는 중국 할머니들이 벌이고 있던 거액의 카드 게임에 끼어들었다. 그리고 곧바로 10만 달러를 잃었다. 미국은 아무래도 에클스턴과 맞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미국인들은 무엇이든 미국식으로 하길원했어요." - P177

그럼에도 포뮬러 1은 꾸준히 미국을 찾아왔다. - P177

1989년부터 1991년까지는 애리조나주 피닉스 차례였다. 미국에서 여덟 번째로 대회 유치에 나선 도시였지만, 결과적으로는 역사상 가장 기억에 남지 않는 개최지가 되고 말았다. (중략).
에클스턴은 피닉스와의 5년 계약을 파기할 기회가 오자마자 곧바로 행동에 옮겼다.  - P178

특히 그는 미국인들이 F1 대회를 지상파 TV로 중계하지 않는데 크게 실망했다. 1980년대 유럽방송연합 협약 때부터 그는 F1이 무료 시청이 가능한 채널에서 중계되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어 왔다. - P179

프로모터들 역시 불만이 컸다. - P179

에클스턴은 2005년이 상황을 얼마나 더 악화시킬지 미처 알지 못했다. 이 스포츠는 미국을 감동시킬 마지막 기회를 날려버렸다. 그리고 미국은 그 작별에도 전혀 슬퍼하지 않았다. - P180

2005년 어느 월요일 아침 「인디애나폴리스 스타Indianapolis Star」에는 이런 기사가 올라왔다. (중략).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났다. "안녕, F1. 꺼져줘서 고마워요. 버니 에클스턴" - P180

에클스턴식 F1 캘린더의 비결은 그 누구에게도 정확한 일정을 알려주지 않는 것이었다. 물론 계약과 이론적인 날짜는 있었다.
(중략).
형식적으로는 규칙과 F1의 무결성을 책임지는 최종 결정권자인 FIA가 늘 일정을 발표했다. 그러나 실제로 어디서 대회가 열릴지는 버니에게 달려 있었다.  - P181

2010년대와 2020년대에 전 세계의 축구나 올림픽 종목의 리더들이 최고가 입찰자에게 영혼을 파는 일이 일상이 되기 훨씬 전부터 포뮬러 1은 충분한 돈과 공간만 있으면 누구에게든 그랑프리 권리를 팔았다. - P181

(전략).
에클스턴은 크렘린과 연관된 상대들을 이렇게 말한다. "내가아는 유일한 사실은 그들이 더 정직하고 거래하기 쉬운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내가 ‘악수 한 번으로 계약을 끝내는 사람‘
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걸 압니다. 계약에 지나치게 신경 쓰지않습니다. 어차피 읽지도 않고 서명하니까요." - P182

그러나 F1이 찾아간 독재정권이나 인권 유린 정부보다도 이스포츠에 치명적인 결과를 미친 개최지들이 있었다. 바로 ‘충분한 돈을 내지 않으려는 곳‘들이었다. - P183

이것은 F1이 서킷을 선정할 때 늘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다. 전통이 있는 서킷과 돈 되는 서킷 사이의 균형 말이다. 버니 시대에 F1은 40곳이 넘는 다른 장소를 찾아갔다. 그조차 실제로 추진된 계획의 일부에 불과했다 - P183

2012년에 그는 F1의 수많은 모순 중 하나를 이렇게 지적했다.
"우리는 그토록 오랫동안 트랙 안전성을 홍보해 왔는데 이제 와서 모나코에서 대회를 치른다는 게 아이러니죠. 하지만 제 생각엔1년에 한 번 정도라면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운전하는재미가 대단하니까요." - P185

평균 속도가 가장 낮은데도 불구하고, 매년 모나코 대회에서 결승선을 통과하는 차의 수가 가장 적은 이유도 바로 거기에 있었다. - P185

대회 장소로서의 모든 단점에도 불구하고 모나코 그랑프리는 일찍부터 포뮬러 1 전체를 대표하는 강력한 셀링 포인트로 자리잡았다. 그 배경에는 1950년대의 신혼부부 한 쌍이 있었다. - P186

머지않아 그녀의 주소록은 곧 그랑프리의 공식 초청 명단이 되었다. 그랑프리 일정이 인근 해안에서 열리는 칸 영화제와 대략 겹친다는 사실도 도움이 됐다. - P186

역대 월드 챔피언들이 깨끗한 거리와 소득세 면제를 누리고자 모나코로 이주한 사실만으로도 모든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모나코는 거의 모든 드라이버에게 홈 레이스나 마찬가지였다.  - P188

포뮬러 1 드라이버가 아니면서 요트에서 술이나 마시며 대회를 관람하려는 사람은 막대한 지출을 각오해야 한다. (중략). 말보로는 1980년대부터 한 주말 동안 접대비로 수백만 달러를 쏟아부었다.  - P188

호텔과 카지노, 각종 부동산을 소유한 상장 국영기업인 소시에테 데 방드 메르Societe des Bains de Mer는 그랑프리 주말 단 한 번으로 연간 이익의 5퍼센트를 벌어들인다고 한다. F1을 국가의 상징으로 삼는 평판 가치는, 말 그대로 값을 매길 수가 없다. - P188

그렇다고 공개 석상에서의 허세를 멈추지는 않았다. 이는 다른 서킷에 청구하는 가격을 지키기 위한 것이기도 했고, 강경 협상가라는 자신의 명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 - P190

포뮬러 1이 처음으로 아랍 세계에 진출하기로 결정했을 때, 그선택이 얼마나 중대한 의미를 지녔는지 알려면 한 가지를 기억할필요가 있다. 오늘날 스포츠계에 ‘오일 머니‘가 몰아치기 전, 당시는 동트기 전 새벽과 같았다는 점이다.  - P191

돌이켜봤을 때 놀라운 점은, 석유와 가스 중심 경제를 갖고 있었음에도 바레인이 아직 중동 초부유층의 전초기지는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 P191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바레인이 걸프 지역의 다른 국가에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사실이었다. - P194

아부다비는 분명 포뮬러 1이 열리는 주말을 국가 이미지를 재고하기 위한 글로벌 브랜딩 전략의 핵심으로 보았다. 더 이상 이곳은 오일 머니와 의심스러운 인권 기록을 가진 사막의 고립된 독재국가가 아니었다. - P195

9장

스파이게이트


2007년 6월 초 어느 아침, 트루디 코글런Trudy Coughlan은 서리주에 위치한 평범한 복사 가게에 들어섰다. 그녀의 손에는 CD-ROM에 옮기기 위한 780페이지 분량의 두툼한 서류 뭉치가 들려있었다. - P220

이 모든 사실은 트루디 코글런이 가게를 나선 직후, 몬테이스가 인터넷으로 알아낸 사실이다. (중략). 그녀의 남편이 맥라렌에서 일한다는 사실은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 - P221

몬테이스가 추리하기에는 지금 눈에 보이는 780페이지짜리 서류는 어떻게든 적의 손에 들어간 스쿠데리아의 사유 재산이었다. - P222

훗날 ‘스파이게이트Spygate‘로 불리게 된 이 엄청난 사건에서 가장 뜻밖이었던 점은 스테파노 도메니칼리가 몬테이스의 이메일을 받았을 뿐 아니라 실제로 열어보았다는 것이다.  - P222

몬테제몰로는 이렇게 말했다. "화가 났습니다. 천만다행으로 전 세계에 페라리 팬이 있었죠. 영국에도 말입니다." - P223

알드레드는 몬테이스를 자기 사무실로 초대했다. 만나보니 이남자는 페라리를 상대로 정교한 사기극을 벌일 위인이 아니라는 판단을 내렸다. - P223

그는 페라리에 두 가지 선택지를 알려주었다. 이 건을 형사 소송으로 진행하면 경찰이 수사에 착수하므로 일이 길어질 위험이있다. 그동안 맥라렌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운영을 계속할 수도 있다. 단 - P224

코글런은 자신이 780페이지 자료를 가지고 있었음을 인정했다. 트루디를 보내 디지털화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료를 불법이나 속임수로 입수한 것은 아니라고 거듭 설명했다.  - P225

그러나 곧 문제가 시끄럽게 터지고 말았다. 바로 그 주, FIA가 조사에 착수한다고 발표했다.  - P226

데니스는 주말 내내 질문을 최대한 피해 다녔다. 맥라렌의 공식 입장은 어디까지나 한 직원이 혼자 저지른 일탈이라는 것이었다. - P227

데니스가 변호팀을 꾸릴 시간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그러나 그는 사안의 중대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 P227

(전략).
모슬리가 물었다. "그가 팀에서 한 일은 뭔가요?"
데니스는 말을 더듬었다. "그가 한 일, 그가 한 일은 최종 승인입니다. 업무가 가장 몰리는 기간은 11월부터 1월까지인데, 그때1만장에서 1만 5,000장의 도면이 들어옵니다. 누군가는 그 도면들을 ‘생산 적합‘이나 ‘검토 중‘, 또는 ‘구조 특성 검토 중‘ 등으로판단해야 합니다. 그건 설계 과정이 아닙니다." - P229

데니스가 멈칫하더니 이렇게 반박했다. "맥라렌에는 대회 우승에 공헌하지 않는 직원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 P229

"나는 그저 방어적으로 말하는 것뿐입니다." 데니스가 정확한 단어도 고르지 못한 채 끼어들었다.
"우리가 누군가를 위협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저는 위협을 느낍니다!" - P230

한편 데니스는 충분히 기뻐할 만했다. 포뮬러 1 퇴출이라는, 맥라렌 제국에 엄청난 파급이 미칠 수 있는 처벌 직전까지 갔다가 사실상 아무런 중징계도 받지 않고 벗어난 것이다. - P231

맥라렌 측은 침묵을 지켰다. 그러나 모슬리는 하릴없는 소리를 할 사람이 아니었다 - P232

페라리와 맥라렌의 대결은 FIA 본부 안에서만 벌어진 것이 아니었다. 트랙 위에서는 말 그대로 칼부림에 가까운 승부가 이어지고 있었다. - P232

가장 추악한 사건은 헝가리에서 벌어졌다. 알론소는 예선을 치르던 도중 피트 레인에 차를 세워 고의로 해밀턴의 진로를 막았고, 그 결과 해밀턴은 마지막 바퀴를 완주하지 못했다. - P233

다음 날 아침, 알론소의 화를 더욱 돋우는 일이 일어났다. 그가 피트 레인 사건에 대한 징계로 그리드에서 다섯 칸 밀려나는 페널티를 받아 폴 포지션에서 6번 그리드로 밀려났던 것이다. - P234

론 데니스는 두 달 만에 콩코드 광장에 돌아와 사진기자 무리를 뚫고 FIA 본부로 들어갔다. - P235

두 번째 청문회에서 모슬리의 태도는 훨씬 덜 공격적이었다. 이미 맥라렌의 덜미를 완벽하게 잡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어떤 처벌을 내릴 것인가였다.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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