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왜 음모론은사라지지 않는가

(전략). 시대나 지역을 막론하고 왜 음모론은 사라지지 않고 계속해서 우리를 미혹하는 것일까? 혼탁한 시대 속 음모론에 휘둘리지 않고 세상을 올바르게 보려면 어떤자세가 필요할까?
먼저 사회학자 전상진은 구조적 관점에서 왜 음모론이 사라지 않는지 분석한다. 그는 음모론의 폐해가 심각하지만 근본적인 접근을 위해서는 음모론이 주범이 아니라 종범 또는 증상임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다. - P44

코로나 위기, 고구마와 사이다

우리는 대체 어떤 세상에 살지? (중략). 글을 쓰는 5월 중순 현재도 코로나19로 인해 피해가 엄청나다. 더 암담한 것은 감염병이 언제 끝날지 끝나기나 할지 그 이후 도래할 세상의 거친 윤곽마저 아무도 모른다는 거다.
위기 상황에 닥치면 말과 생각이 많아진다. 그것의 전제이자결과인 정보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정보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어떻게 해야 내가 안전할지‘ ‘대체 언제 예전 삶으로 돌아갈수 있을지‘를 절박하게 알고 싶지만 의사도 방역 담당자도 대통령도 WHO 사무총장도 명확한 답을 주지 못한다. 마스크만 하더라도 의료 전문가들의 주장이 일관되지 않았다. - P47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과학적이고 공식적인 정보가 ‘고구마‘라면 루머.가짜뉴스·음모론과 같은 자유로운 정보는 ‘사이다‘다. - P47

 자유로운 정보가 시원스런 까닭은 이중적으로 자유롭기 때문이다.
첫째, 골치 아프고 지루한 검증에서 자유롭다. (중략). 그러나 자유로운 정보의 생산자나 유포자는 책임에서 자유롭다.
둘째, 소비자의 관점에서 선택이 자유롭다. 자유로운 정보는수요자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보장한다. 그와 달리 과학적이고 공식적인 정보는 선택권을 주지 않는다.  - P48

 크레도 콘솔란스CredoConsolans, 즉 믿을 만해서 믿는 게 아니라 믿으면 마음이 편안해지니까 믿는다.¹ - P48

References

1 Shermer, M. 2002. Why people believe weird things: Pseudoscience, superstition, andother confusions of our time. New York: A W. H. Freeman & Owl Book. p.294. - P56

자유로운 정보의 역설


현재가 코로나 시대임을 생각하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코로나에관한 자유로운 정보가 많아지겠지. (전략), 곧 자유로운정보의 주된 온라인 확성기랄 수 있는 정보 채널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생물 무기"라거나 "SG 송신탑이 바이러스를 전파한다"라거나 ‘시스템‘이 "펜데믹 위기의 심각성을 방조 및 조장하여 시민들을 순응적으로 만든다"라는 등의 음모론을 확산시켰다.² - P49

2 Boberg, S., Quandt, T., Schatto-Eckrodt, T., & Frischlich, L. 2020. "PandemicPopulism: Facebook Pages of Alternative News Media and the Corona Crisis--AComputational Content Analysis. arXiv preprint arXiv:2004.02566. - P56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현재 한국에서 각광받는 자유로운 정보는 선거와 관련한 음모론이다 - P49

음모론, 가짜뉴스, 루머


자유로운 정보의 속내를 살필 때다. 루머와 가짜뉴스와 음모론은 어떤 공통점과 차이를 지닐까. 먼저 차이점에 주목하자. 일단 시간순으로 보면 루머가 왕선배, 음모론이 둘째, 그리고 막내는 가짜뉴스라 할 수 있다. - P50

영국의 소설가 태리 프랫쳇Terry Pratchett이 1995년 빌 게이츠Bill Gates와의 인터뷰에서 "인터넷이 가짜뉴스를 발흥시킬 것이라 예언했다"라는 보도⁹를 보더라도 가짜뉴스의 전성기는 21세기에 시작한 것이 맞다. - P51

9 Flood, Alison. "Terry Pratchett predicted rise of fake news in 1995, says biographer" (2019-05-30) The Guardian. https://www.theguardian.com/books/2019/may/30/terry-pratchett-predicted-rise-of-fake-news-in-1995-says-biographer. - P56

형식의 측면에서도 세 가지 정보는 나름의 독특성을 보인다. 먼저 루머는 휘발성이 강한 구전mouth-to-mouth 커뮤니케이션이 중심이고, 가짜뉴스는 뉴스의 외관을 갖춘 루머나 음모론이랄 수 있고, 음모론은 나름의 완결된 스토리 라인을 갖춘 이야기 성격이 강하다. 우리의 관심이 음모론이므로 조금 더 부연하자.  - P51

 음모론은 다음의 세 가지 요소와 세 가지 배역으로 구성된 이야기다. (1) 세상에 우연은 없다. (2) 모든 건 서로 연결되어 있다. (3)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¹² - P51

12 Butter, M. 2018. Nichts ist, wie es scheint. Über Verschwörungstheorien. Berlin:Suhrkamp Verlag. - P56

음모론이 루머보다 더 체계적이고 가짜뉴스보다 더 긴 까닭은 결국 이런 스토리 요소와 라인을 갖췄기 때문이다.¹⁴ - P51

14 Butter, 2018. - P56

고통을 설명하는 음모론


내가 음모론에 관한 책을 쓸 때 담당 편집자에게 그리고 책이 출판된 후에 관심을 가져준 고마운 소수의 독자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이다. "음모론이 도대체 무엇인가요?" 짧게 답할 수 없는, 아니 그렇게 답해서는 안 되는 질문이라는 생각은 변함없다. - P52

고통의 설명은 문화의 핵심 쓸모다. - P52

20세기 초 독일에서 수행된 설문 조사 결과를 분석하면서 막스 베버 Max Weber는 많은 노동자가 교회를 떠난 이유를 다음과 같이 해설했다. "단지 소수만이 근대의 자연 과학적 이론들을 그 근거로 제시했고 다수는 현세적 세계 질서의 ‘불공정성‘을 기독교 불신의 근거로 제시했다."¹⁶ - P52

16 베버, 막스, 2008. 《종교사회학 선집》, 전성우 옮김, 나남 - P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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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이 책은 400년 가까이 수학자들을 괴롭혀 왔던 한 난제를 다루고있다. 1611년 독일 천문학자 요하네스 케플러Johannes Kepler(1571~1630)는 공을 가장 조밀하게 쌓는 방식은 청과물 상인이 오렌지나 토마토를 쌓을 때 쓰는 방식과 동일하다는 추측을 내놓았다. - P9

내가 케플러의 추측을 처음 알게 된 때는 1968년이었다. 당시 나는 스위스 국립공과대학 수학과 1학년이었다. 그 당시 한 기하학교수가 여담 중에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공을 가장 밀도 높게 쌓으려면 각각의 공이 12개의 공에 의해 둘러싸이도록 하는 배열이라고 사람들은 믿고 있다." 그 교수는 케플러가 최초로 이런 추측을 내놓았다고 말했으며, 이것은 그 유명한 페르마의 정리와 더불어 가장 오랫동안 풀리지 않고 있는 수학의 난제라고도 했다 - P10

이 책은 과학 및 과학사에 관심을 갖고 있는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씌어졌다. 따라서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수학 외에 별도의 수학 지식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 P11

대강의 줄거리만을 원하는 독자라면 난해한 수학이 나오는 부분은 건너뛰어도 무방하다. 그런 독자들의 편의를 위해 읽지 않아도 큰 무리가 없는 부분은 별도의 활자체를 사용했다.  - P12

나는 예루살렘에 있는 히브리 대학의 수학도서관, 하만 과학도서관, 과학사 및 과학철학 도서관에서 상당량의 귀중한 자료를 얻을수 있었다. 취리히 국립공과대학 도서관에서는 좀처럼 찾기 어려운 논문들도 구할 수 있었다. 또 이스라엘 원자력 에너지 연구소에서도 입수하기 어려운 논문을 한 편 보내주었다. 이들 기관에 감사를 드린다. - P12

1장

포탄과 멜론


영국 귀족이자 항해 전문가인 월터 랠리 Sir Walter Raleigh(1552~1618)은 새로운 지적 영역을 개척한 사람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의 학문적 업적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 P17

선구적 사상가로서의 면모가 제대로 평가되고 있지는 못하지만해리엇의 과학적 업적은 매우 다양하다. (중략). 그의 과학적 발견 대부분은 사망 후 10년이 지난 시점인 1631년 출간된 그의 주저(해석학적 방법론의 적용을 통한 대수방정식의 해Artis analyticae precisad Aequationes Algebraicas Resolvender)에 담겨 있다. - P18

월터 경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해리엇은 특정한 모양의 수레에 몇 개의 포탄이 쌓여 있는지를 계산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표를 하나 만들었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해리엇은 거기에 머물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갔다. 특정 형태로 쌓여 있는 포탄의 개수를 계산하는 공식을 고안해 냈을 뿐만 아니라, 배에 포탄을 최대한실을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 했던 것이다. - P19

포탄은 비록 3차원 물체이지만 그보다 낮은 차원에서도 동일한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먼저 1차원과 2차원에서 이 문제를 살펴보도록 하자. (중략). 1차원에서 공간은 단순히 직선이 된다. 2차원에서는 공간은 평면이 된다. - P19

그런데 특별히 3차원에서 멈출 이유가 있을까? 사실 수학자들-이들은 확실한 증명을 내놓기 전까지는 어떤 것도 믿지 않으려 하는 족속이다-은 눈으로 볼 수 없는 대상이라고 해도 그것을 정의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 수학자들은 선분이나 원, 그리고 공을 정의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고차원 구를 정의한다. - P20

다시 본래의 문제로 돌아가서 쌓아놓은 물체의 밀도란 무엇을 뜻하는지부터 살펴보도록 하자. 무한한 공간에 무수히 많은 구를 쌓아놓을 수 있는데 어떻게 밀도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 P20

비교를 위해 동전을 정사각형 형태로 배열했을 때의 밀도를 알아보도록 하자. 이 경우에는 동전이 평면을 채우는 비율이 79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한다. (정확한 계산은 부록 참조) 따라서 2차원에서는 정사각형 배열이 정육각형 배열에 비해 매우 비효율적이다.
그러나 평면이 무한 평면이 아닐 때에는 정육각형 배열이 반드시 정사각형 배열보다 효율적인 배열이라는 보장은 없다.  - P22

 하지만 이 책의 주제인 케플러의 추측은 경계가 없는 공간, 즉 무한 공간일 때를 가정하고 있다.
어쨌든 무한 평면일 때 정육각형 배열이 정사각형 배열에 비해 밀도가 높다는 사실은 알게 되었다. - P22

정육각형 배열이 최적의 배열이라고 주장하기 위해서는 증명이 요구된다. 하지만 그것을 증명하는과정은 그리 간단치 않았다. 겨우 만족할 만한 증명이 나온 것은1940년이 되어서였다.  - P23

무게는 같지만 하나는 정육면체 모양을 하고 있고 다른 하나는둥근 모양을 하고 있는 2개의 멜론을 비교했을 때, 둥근 모양의 멜론 표면적이 20퍼센트 가까이 적다. 결국 멜론은 수분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둥근 모양으로 진화했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최소 표면적 문제 역시 그 해결에 천 년이나 소요된 난제였다. 아르키메데스는 이미 그 답이 둥근 모양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것은1894년이 되어서야 헤르만 아만두스 슈바르츠Hermann AmandusSchwarz(1843~1921)에 의해 엄밀하게 증명되었다. - P24

과일 쌓기 문제로 다시 돌아가 보자. 상품 진열 방식 가운데 하나는 상자 안에 되는 대로 쌓아 올리는 것이다. (중략). 아무렇게나 쌓으면 평균적으로 상자의 공간을 55~60퍼센트만 활용하게 된다. (중략). 짓이겨지는 경우가 없다고 가정했을 때 이렇게 하면 대략 64퍼센트의 공간을 사용하게 된다. - P25

좀더 깔끔한 방법은 정육면체를 쌓듯이 열과 행을 맞추어 가지런히 배열해 놓은 다음 그 위에 조심스럽게 다음 번 켜를 올리는 것이다. (중략). 안정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손님이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무너져 내릴 위험이 있다. (후략).⁴

4) 반면에 물리학자들은 안정성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퍼 백Per Bak의 책 <자연의이치 How Nature Works》 (코페르니쿠스 출판사, 뉴욕, 1996년)에서 모래 더미의 안정성에 대해 다루고 있는 부분을 참조하기 바란다. - P25

현명한 상인은 그보다 더 나은 방식을 택한다. 사실 전 세계 거의 모든 상점에서 이와 같은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먼저 테이블 한쪽에 과일을 가지런히 늘어놓는다. 앞에서 보았지만 이 방법은 1차원에서 밀도를 가장 높게 하는 배열 방식이다. 그 다음 줄에서는 첫번째 줄 멜론 바로 옆에 놓지 않고 대신 두 멜론 사이에 난 공간에 위치하도록 놓는다. 이를 수학적 용어를 빌려 표현하면, "멜론 반개만큼 전치되어 있다"라고 말한다. - P26

2장에서 보겠지만 ‘육방 밀집 쌓기 Hexagonal ClosePacking (HCP)‘란 이름으로 불리는 이 방식의 밀도는 놀랍게도 74.05퍼센트에 달한다. 그러나 이 방식도 단지 좀더 나은 것에 그치지 않는다. 실은 멜론을 쌓는 방법 가운데 최적의 것이 바로 이 육방 밀집 쌓기이다. 다시 말해서 밀도가 가장 높은 쌓기 방식인 것이다. - P27

이 점은 상인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는 상식이었지만 유독 수학자들은 이 사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수학자들이 이를 참으로 받아들이기까지는 387년이라는 세월이 필요했다. - P27

이 시점에서 구 쌓기와 관련된 흥미롭고도 중요한 두 가지 사실을 밝히고자 한다. (중략). 1883년 결정학 Crystallography을 연구하던 윌리엄 발로 William Barlow(1845~1934)는 멜론을 쌓는 최적의 방법이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 P27

(전략).
차이는 멜론 4개마다 오목한 곳 하나가 생긴다는 점이다.(HCP 쌓기에서는 멜론 3개마다 오목한 곳 하나씩이 만들어진다.) 이제 오목한 곳마다 멜론을 올려놓아 두 번째 켜를 만든다. 이런 식으로 계속해 얻는 배열을 ‘면심 입방 쌓기 Face-Centered Cubic Packing(FCC)‘라 부른다. - P28

20년이 지난 후 아마추어 과학자 발로는 또다시 획기적인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1907년 그의 동료 윌리엄 잭슨 포프WilliamJackson Pope (이 사람은 훗날 맨체스터 대학 화학과 교수가 된다)와 공동으로 《화학학회 저널Journal of the Chemical Society)에 논문을 실었다. 이 논문에서 두 사람은 멜론을 쌓는 최적의 방법이 두 가지만이 아니라 실은 무수히 많다는 점을 보여주었다.(그들은 멜론보다는 원자에 더 관심이 많았다.) - P29

 그런데 이들 배열 모두 74.05 퍼센트의 밀도를 지니게 된다! 해리엇과 케플러가 이 사실을 알면 분명 놀라지 않았을까? - P29

무수히 많은 이들 배열 방식은 밀도 이외에도 다른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중략). 즉, 각각의 구가 12개의 다른 구와 맞닿도록 배열한다고 해서 반드시 최적의밀도를 갖는 배열이 되지는 않는다. 실제로 구 하나하나가 다른 12개의 구와 맞닿아 있지만 최적의 밀도를 갖지 않는 배열들이 존재한다. 이런 배열 가운데 소위 ‘더티 더즌Dirty Dozen‘이란 것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더 자세히 다룰 것이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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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유한으로 옮겨가기



무한은 곧바로 처리한다. 유한은 그보다 조금 더 오래 걸릴지 모른다.
- 스타니슬라프 울램


5장과 6장에서 살펴본 리의 변환군은 대다수 유한 원자 대칭군의 원형을 형성한다. (중략). 왜냐하면 리 군은 연속성을 지니기 때문에 그 크기가 무한이다. (중략). 하지만 유한한 경우의 리 이론이 레너드 딕슨(Leonard EDickson, 1874~1954)이라는 젊은 미국 수학자에 의해 탄생했다. - P109

딕슨은 보통 쓰는 수 체계 대신에 유한 체계를 사용했다. - P110

소수란 1과 자기 자신을 제외하고 다른 약수를 갖지 않는수이다. 소수를 택하면 곱셈을 할 때 큰 차이가 생긴다. 예를 들어 보통 사용하는 시계에서 12는 0과 같기 때문에 3X4는 0 이다. 0이 아닌 두 수를 곱해서 0을 얻는다. 이런 경우에는 문제가 생긴다. - P112

이제 7순환 산술에서 나눗셈을 해보자. 6÷3은 얼마인가? 물론 2이다. 이제 5÷3을 해보자. 5를 3으로 나누는 것이 가능할까? (중략). 이는 불가능해보인다. 하지만 답은 4이다. - P112

유한 산술 덕분에 수학자들은 실수에 의존하는 연속적 대상물에서유한한 대상물로 옮겨갈 수 있다. - P113

딕슨의 연구 가운데 일부는 새로운 성과가 아니었다. 예컨대 조르당은 1870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A집합족에 순환 산술을 이미 사용했고 갈루아도 Al에 순환 산술을 적용했다. 순환 산술의 창시자인 그를기리기 위해 갈루아 산술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한다. - P113

(전략). 단순한 실수나 오독을 교정할 수 있도록 선택해서 숫자를 사용한다. 오류 보정의 방법으로 기하학이 사용된다. 만일 사용하는 숫자 열(sequence) 하나하나가 3차원 공간의 평면 위에 있는 점을지정해 준다고 가정해보자. 평면에서 조금 벗어나는 점을 읽어낸다면 오류가 있다는 뜻이다. - P114

고차원 공간은 수학의 실용적 응용에도 매우 유용하다. 고차원 공간은 몬스터를 다룰 때 다시 살펴보기로 한다. (중략). 군론에 크게 기여한 사람으로 윌리엄 번사이드(William Burnside)라는 영국 수학자가 있었다. - P115

번사이드는 계속해서 뛰어난 연구 결과를 내놓았으며 1904년에 단순군(원자 대칭군)에 관한 중요한 정리를 발표했다. 만일 단순군으로서 소수 순환군이 아니면 그 크기는 최소한 세 개의 서로 다른 소수로 나누어진다.  - P117

번사이드의 정리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명한 정리로 남아 있다. 이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수학이라는 분야에서 불멸의 명성을 얻을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 P117

우아함과 명료함은 뛰어난 수학 연구의 표식이다. 번사이드는 ‘지표 이론(character theory)‘ 이라는 정교한 새 기법을 사용했다. 다른 증명은 ‘지표 이론‘의 사용을 피하고자 했기 때문에 번사이드의 증명보다 덜 우아했다. - P118

수학은 정리를 증명함으로써 발전한다. 하지만 새로운 증명법을 만들어냄으로써 발전하기도 한다. - P118

8

세계대전 이후



구조야말로 수학자들의 무기이다.
-N. 부르바키


(전략). 딕슨의 첫 번째 책인 ‘선형 군과 갈루아 체 이론(Linear Groups, with an Exposition of the Galais Field Theory)』에 등장하는 표였다. (중략) 딕슨은 전통적인 A, B, C, D 집합에서 연속적인 대상물을 유한한 대상물로 전환했다. 하지만 A, B, C, D 이외에도 예외적인 집합족들이 있었다. - P120

필요한 것은 모든 경우를 망라하여 리 군을 유한군으로 바꾸는 일이었지만 문제는 곡률이었다. 리 군의 기하학적 구조를 보면 대개 공간이 휘어져 있다. 휘어진 공간을 다루는 방법은 평평한 공간으로 근사시키는 것, 즉 선형 근사를 이용하는 것이다. - P121

새로운 접근법을 얻으려면 먼저 기존 방식을 면밀하게 재검토해야한다. 특정한 문제 해결에 주력하는 지엽적 방식을 택해야 할까, 아니면 공리체계를 구성해 그로부터 새로운 수학 분야를 통째로 만들어내는 방식을 따라야 할까? - P122

이러한 방식이 바로 현대 수학의 전개 방식인가? 일정 부분, 그 답은 "그렇다." 이다. - P122

(전략). 독자 여러분도눈치를 챘을지 모르지만 부르바키라는 이름은 몇몇 프랑스 수학자들로 이루어진 동아리가 사용한 필명이다. 그들은 수학의 주요 분야에서 새로운 공리적 접근법을 마련하고자 했다. - P123

부르바키 동인은 두 사람의 젊은 수학자에 의해 시작되었다. 한 사람은 앙리 카르탕이었고 다른 사람은 앙드레 베유(André Weil, 1906~1998)였다. 특히 앙드레 베유는 20세기 최고의 수학자가 되었다. - P125

부르바키 회합은 무질서하게 진행되었지만 성과는 좋았다. 차례로 책이 씌어져 나왔다. - P126

부르바키가 거액의 연구비를 신청해 큰 실험실을 꾸려나가는 실용과학자였다면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하는 일을 그대로 했을 것이다. 보조 연구원과 함께 논문을 쓰면서 자신의 이름을 제1저자로 올려놓는다. 하지만 수학에서는 이야기가 다르다. 대부분의 수학 논문은 저자가 한 사람이다. 두 사람이 공동연구를 할 때에는 논문을 함께 쓰기는 하지만 항상 알파벳순으로 이름을 기재한다. - P127

부르바키 공동연구자 가운데 가장 젊은 사람이 클로드 슈발리에(Claude Chevalley, 1909~1984)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름으로 수많은 논문을 출간했다. 1955년에 출간한 논문에서 그는 리 군 모두를 유한군으로 전환하는 문제를 해결했다. - P127

한편, 일리노이 대학교 어바나 캠퍼스에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던 미치오 스즈키[鈴木 通夫(Michio Suzuki), 1926~1998]라는 일본 수학자가 획기적인 것을 발견했다. (중략). 스즈키의 연구는 슈발리에의 연구와는 별개로 진행되었다. 스즈키 집합족은, 슈발리에가 리 집합족에서 도출해낸 집합족들과는 전혀 달라 보였다. 하지만 그들 집합은 서로 연관되어 있었으며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에 있던 한국 수학자 이임학(李林學), 1922~2005)이 둘 사이의 관련성을 찾아냈다.  - P129

(전략). 이렇게 새로운 집합족을 발견하고 나자 전문가들은 유한 원자 대칭군집합족이 더 이상 없거나 아니면 찾아내야 할 집합족이 최소한 무한개가 아니라는 추측을 했다. 하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았다. 다른 집합족들이 있다면 그 집합족들을 찾아내야 한다. 만일 더이상 없다면 그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 P130

슈발리에, 스타인버그, 스즈키, 이임학 등이 사용한 방법은 대수적방법이었다. 하지만 자크 티츠는 기하학을 사용했고 다른 수학 분야의 일부 전문가들은 모든 리 유형 집합에 적용되는 기하학적 방법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 P130

9

우클레에서 온 사람


좁은 의미로 사용하든 혹은 넓은 의미로 사용하든 대칭이라는개념을 통해 인류는 장구한 세월 동안 질서와 아름다움과 완벽함을 이해하고 또 그것을 창조해내고자 했다.
-헤르만 바일

전문 분야마다 전문 용어가 있다. (중략).
어떤 용어는 특별한 지위를 획득해 표준 용어로 자리를 잡지만 비전문가들은 알아듣지 못한다. 예를 들면 빌딩(building)‘이라는 말을 수학자들은 일상적 의미와는 전혀 다르게 사용한다. 수학에서 빌딩은 결정체 같은 구조를 이용해 만들어진 수학적 대상물을 가리킨다. - P133

티츠는 기하학이 적성에 맞았다. 1950년대 초에 그는 리 변환군을기하학적으로 다루는 연구 방법을 만들어내는 데 진력하고 있었다. 앞에서 보았듯이 리 군에는 A에서 G까지 일곱 종류의 집합족이 있다. 딕슨은 A, B, C, D, 그리고 E6와 G2에 내재되어 있는 기하학적 구조를 이용하여 리 군의 유한 버전을 얻었다. 티츠는 모든 집합족에 대해서도 유한 버전을 만들어내고자 했다. - P134

빌딩은 다중 결정체이다. 다중 결정체의 정확한 의미가 무엇인지 설명하기로 하자. - P135

너무 복잡하다고 해도 무리는 아니다. 수학자들도 다중 결정체를 마음속에서도 그려내지 못해 일부분만을 떠올릴 뿐이다. 예컨대 단일결정체를 머릿속에 그려내고 나서 상상력을 이용하고 또 대수학을 활용하여 나머지를 그려낸다. - P139

3차원에는 세 가지 타입의 결정체가 있다. 정사면체는 A3타입이고 정육면체와 정팔면체는 B3타입이며 정십이면체와 정이십면체는 H3타입이다.  - P141

(전략).
표에서 보듯이 3, 4, 6, 7, 8차원에는 다른 타입의 결정체가 존재한다. 6, 7, 8차원에서 그런 예외적 결정체를 처음으로 발견한 사람은 수학자가 아닌 법률가였다. 19세기 후반 런던에서 소롤드 고셋(ThoroldGosset, 1869~1962)이라는 젊은 법률가가 여가를 활용해 고차원 기하학을연구하고 있었다. 1900년에 그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고셋이 발견한 예외적 결정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루기로 한다. - P143

앞서 언급했듯이 다중 결정체는 자크 티츠의 작품이다. - P144

수학에서는 다소 상이한 문제를 먼저 공략함으로써 해결책을 발견하는 경우가 많다. - P144

수학 연구는 이런 식으로 진행된다. 사람들이 같이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데 보통 분필을 쥐고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명한다. 델리니는 함께 수학 이야기를 나누기에 좋은 상대였다. 왜냐하면 그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수학자로 성장하고 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 P146

다른 주제로 넘어가기 전에 다중 결정체에서 온갖 종류의 멋진 패턴이 나온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설명을 위해 137쪽에 나온 다중 결정체를 살펴보자. - P147

(전략). 각 무리에는 다음과 같이 세 개의 기호가 들어있다.
abf
beg
acd
bde
cef
dfg
age - P147

이는 주목할 만한 패턴이다. 이제 무리마다 네 개의 기호가 있는 경우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는가를 질문해볼 만하다. 기호 한 쌍을 택하면 그때마다 정확하게 한 무리 안에 들어있어야 하고 두 개의 무리를 택하면 그 안에 한 기호가 공통으로 있어야 한다.³⁸ - P148

38) 이런 무리들의 집합은 육각형을 이용해 만든 다중 결정체와 동일하다. 이때 무리의 크기는 각 꼭짓점에서 뻗어나가는 변의 개수가 된다. - P148

무리의 크기에 따라 어떤 경우에는 가능하고 어떤 경우에는 불가능하다. 무리의 크기를 q+1로 놓자(왜 그렇게 놓는지는 곧 알게 될 것이다).  - P148

q가 소수이거나 혹은 한 소수의 거듭제곱이면 그런 무리들의 집합을 택하는 것이 가능하다. 다시 말해서 q가 2, 3, 5, 11 등이거나(즉, 소수인 경우) 혹은 4=2², 9=3² 등일 때(즉, 소수의 거듭제곱인 경우) 가능하다. 한편 q가 6일 때, 즉 무리의 크기가 7일 때에는 불가능하다. 6 다음으로 문제가 되는 수는 10이다. 9가 10일 때 무리의 크기는 11이 되고 기호는 111개가 된다. - P149

그런 무리들의 집합이 존재할까? 1950년대 후반에 이미 이 문제는꽤 오랜 세월 동안 풀리지 않는 문제였다. (중략). 하지만 컴퓨터 증명은 만족스럽지 못하다. 왜냐하면 직접 손으로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 P149

 수학이라는 학문이 어려운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아무리 증거가 많아도 수학에서는 소용이 없다. 어떻게든 증명을 해야만 한다. - P150

이장을 시작하면서 나는 다중 결정체에 빌딩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런데 빌딩이라는 말은 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 P150

티츠의 다중 결정체는 결정체들을 결합해놓은 것이었다. 이러한 결정체들은 리 이론에서 자연스럽게 등장했는데 그 결정체들의 면을 ‘방(chamber)‘이라고 부른다. - P150

방이라는 말을 염두에 두고서 부르바키는 결정체 대신에 ‘아파트먼트‘ 라는 새로운 이름을 사용했고 전체를 빌딩이라고 불렀다. - P151

10

파이트-톰슨 정리 The Big Theorem


유클리드가 애용한 귀류법은 수학자가 사용하는 최고의 무기 가운데 하나이다. 귀류법은 장기의 어떤 묘수보다도 훨씬 더 우수하다. 장기에서 졸이나 마, 혹은 차까지 기꺼이 희생시키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수학자는 게임 자체를 희생시킨다.
-G. H. 하디, 『어느 수학자의 변명』

골드바흐의 추측이라는 소설에서 저자 아포스톨로스 독시아디스는 오래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평생을 바치는 가공의 수학자를 그리고있다. - P52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처럼 순수 수학자 대다수는 매우 어려운 정리를 증명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어떨 때 정리를 증명하는 일이 몹시어려워지는 것일까?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방도를 알지 못해서 어려운 것인가? 아니면 증명이 몹시 복잡해서 (비유를 하자면 꽤 높은 곳에 베이스캠프를 꾸리지 않는 이상, 또 적합한 장비와 방한복이 없이는 절대 오를 수 없는 에베레스트 산처럼) 어려운 것인가? - P153

두 번째 부류의 또 다른 명제로 군론 분야의 정리가 있다. 그 정리의 내용은 매우 간단하다. 소수 순환군을 제외하면 원자 대칭군의 크기는 모두 짝수라는 것이다. (중략). 이 정리를 다시 표현하면 다음과 같다. "홀수 크기의 대칭군이 있으면 그 대칭군은 더 간단한 대칭군들로 분해된다(최종적으로 분해하면 소수 순환군들이 나온다)." 이 정리를 때로 ‘홀수 위수 정리‘라고 부르기도 한다. - P153

하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몇몇 학술지는 지나치게 길다는 이유로 게재를 거절했다. 255쪽에 달하는 분량에 세밀한 논증이 빼곡하게 들어찬 논문을 게재하기에는 지나치게 길다고 여겼다. 10쪽, 20쪽, 길어야 40~50쪽이 보통인데 225쪽이면 너무나 과하다고 여겼다.  - P154

(전략). 1948년에 미시간 대학교로 옮겨갔고 다시 1952년에 하버드로 갔다. 리하르트 브라우어는 젊은 사람만이 수학을 할 수 있다는 통념을 여지없이 깨트렸다. (중략).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모든 유한 원자 대칭군을 찾아내는 방법이 기술되어 있는 논문으로 이 논문의 영향을받아 파이트-톰슨 정리가 나왔다.
브라우어 논문의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짝수 위수를 갖는 원자대칭이 있으면 코시 정리에 따라 그 대칭군은 위수가 2인 대칭을 포함한다. 즉, 두 번을 연거푸 시행하면 모든 것이 본래 그 자리에 머무는 대칭이 존재한다. - P158

원자 대칭군에 절단면이 하나만 존재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원자대칭군은 대칭들의 모임으로써 자기 자신에 작용하며 이때 절단면을 여러 위치로 옮기기 때문이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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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딴 곳에 살 집을 찾아보라고 말하지 그러세요"
"내가 말하자 어머니는 큰 소리로 웃으셨다.
"절대 안 나갈걸. 되레 우리를 강제로 쫓아내려고 할 거다. 잠자는 개는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걸 배운지 오래다."
‘크리스토핀도 가라고 하면 갈까? 나는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말을 하기가 무서웠다. - P34

나는 낯선 흑인들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들은 우리를 미워했고 흰 바퀴벌레라고 불렀다. - P35

크리스토핀이 내게 반짝이는 새 동전을 몇 개 준 적이 있었다. 그것을 나는 호주머니에 간직했다. 어느 날 아침 동전이 주머니에서 떨어져 나오자 나는 그것들을 돌 위에다 올려놓았다. - P36

나는 찢어진 타월로 몸을 감싸고 티아에게 등을 돌린 채 바위 위에 앉아 있었다. 몸이 벌벌 떨릴 정도로 추웠다. 햇볕도 나를 녹여주지는 못했다. 나는 집에 가고 싶었다. - P37

손님들은 아주 세련돼 보였고 좋은 옷을 입고 있었다. - P37

"그런데 네가 왜 티아의 옷을 입고 있니? 티아가 누구지?"
부엌에서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크리스토핀이 냉큼 나오자 어머니는 깨끗한 옷을 찾아다 입히라고 말씀하셨다.
(중략).
"애가 제멋대로 야생마처럼 돌아다니고 쓸모없는 애로 자라고 있으니 정말 부끄러운 일이야. 원, 애한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있어야지." - P38

"저희들 말로는 러트렐 가의 사람들이라고 하지만, 영국 사람이건 아니건 우리가 알던 러트렐 씨 같지는 않더구먼. 그 사람들이네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던 모습을 러트렐 씨가 보았더라면 그것들 얼굴에 침을 뱉었을 거다. 문젯거리가 오늘 그 집으로 걸어들어온 게야. 골칫거리가 걸어 들어왔어."
크리스토핀이 내가 전에 입던 모슬린 옷을 드디어 찾아내 내게 입히려 하자 옷은 그만 찢어졌다. - P39

"노예제도가 사라졌다고? 웃기지 말라고 그래! 새로 온 사람들이 가져온 법조문을 보라지. 아주 똑같아. 집정관이 생겼고, 벌금제도라는 걸 만들었다구. 이젠 유치장도 세우고, 쇠사슬에 묶인죄수도 생겼지. 발로 밟아 돌리는 죄수용 바퀴도 가져왔다니까. 새로 온 백인들은 전에 있던 백인들보다 더 나쁘고 더 간교해."
크리스토핀이 말했다. - P39

어머니가 스패니시타운에서 메이슨 씨와 결혼식을 올릴 때 내가 들러리를 섰다. 크리스토핀은 내 머리를 곱슬거리게 해주었다. 나는 손에 부케를 들었고, 몸에 걸친 모든 것은 빠짐없이 새것이었다. - P41

"정말 환상적인 결혼식이지요? 그러나 메이슨 씨는 후회하게 될 거예요. 왜 저렇게 돈 많은 남자가, 아마도 그 정도 재력이면 영국 여자나 서인도제도의 어떤 여자도 자기 맘대로 골라잡을 수 있었을 텐데."
"‘아마도‘ 라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당연히‘ 어느 여자건 골라잡을 수 있지요." - P42

그랬다. 어머니는 정말 기가 막히게 춤을 잘 추셨다. 트리니다드로 신혼여행을 갔다 돌아온 날 어머니와 메이슨 씨는 테라스에서 음악도 없이 춤을 추었다. 어머니가 춤을 출 때는 음악도 필요없었다. - P43

‘영국 사람들 중 어느 누가 우리 문제를 이해하겠어.‘ 나는 생각했다. - P44

내가 돌아왔을 때 쿨리브리는 옛 모습 그대로였다. 단지, 아주 깨끗해지고 정돈되었으며 길에 깐 판석 사이로 비집고 나왔던 풀들도 다 정리되어 있었다. - P44

어느 날 어머니는 단도직입적으로 털어놓았다. 그때 메이슨 씨는 못 참겠다는 듯이 껄껄대며 웃었다.
"아네트, 좀 이치에 맞는 말을 해요. 당신은 노예주의 딸이요, 노예주의 아내인데 나를 만날 때까지 혼자서 애들을 데리고 오 년 간이나 무사히 살았지 않소. 그때가 최악의 시기였을 텐데. 그때 이곳 사람들이 당신과 애들에게 해꼬지를 하고 괴롭힙니까?" - P46

"당신은 이 사람들에게 좋은 점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알려고도 하지 않고, 게다가 그와 정반대의 기질 또한 있다는 것도 믿지 않는군요."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하도 게을러서 위험한 인간이 되기는 틀렸다는 건 내가 알지."
메이슨 씨가 받았다.
"게으르건 아니건, 당신보다 훨씬 원기왕성한 사람들이에요. 그리고 당신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들 때문에 위험하고 잔인할수 있는 인간들이고요." - P47

시간이 꽤 늦었기 때문에 나는 늘 혼자서 저녁을 먹던 버릇 대신 어른들과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다. 새로 들어온 하인 중 하나인 마이라가 식탁 옆에 서서 접시들을 새로 바꾸어주었다. 우리는 이제 영국 음식을 먹었다. - P50

우리 집은 여러 층으로 되어 있었다. - P53

내가 응접실로 들어가자 "놀라지 마라." 하고 메이슨 씨가 말씀하셨다. "한 떼의 술 취한 검둥이들이야." 메이슨 씨는 문을 열고 테라스로 나가서는 "왜들 그러는 거야?" 하고 소리치셨다. "너희들이 원하는 게 뭐야?" 무시무시한 아우성이 들렸다. - P54

고개를 든 매니가 소리쳤다.
"하느님 맙소사, 저놈들이 집 뒤편을 공격하네요. 뒤쪽에다 불을 질렀어요."
매니가 내 방을 가리켰다. 내가 나오면서 문을 닫았는데도, 연기가 문 아래 틈새로 뭉게뭉게 새어 나오고 있었다. - P55

"피에르의 침대가 불타고 있었어요."
어머니가 이모에게 말했다.
"그 방에 불이 났다니까요. 그리고 마이라는 없었어요. 가버린거예요."
"그랬을 거다. 놀랄 일도 아니구나."
이모가 말했다.  - P55

목소리가 끊어지고 갈라졌지만 어머니는 쉬지 않고 소리쳤다.
"내 말은 전혀 듣지 않으려고 했지. 당신은 나를 비웃었어, 이 위선자야. 만일 피에르가 죽는다면 당신도 살아 있어서는 안 돼. 이곳 사람들에 대해 그리도 잘 아는 체하더니, 왜, 밖에 나가서 당신은 아무 죄도 없으니 당신 하나만은 좀 보내달라고 그러지 그래. 당신은 항상 저놈들을 믿어왔다고 말해 보시지." - P56

우리 집 초록 앵무새의 이름은 코코였다. 코코는 말을 잘 못했다. 앵무새는 "거기 누구예요? 거기 누구 있어요?"라고 말하고는 제가 제 물음에 대답했다. "사랑하는 코코예요. 사랑하는 코코." - P58

누군가가 소리쳤다.
"영국인들에게 빌붙어 아부하는 영국 검둥이 놈들아!"
"저 백인 검둥이들을 봐라!"
그러자 폭도들이 함께 소리쳤다. - P58

"전지전능하신 하느님, 저희들을 보호하여 주옵소서."
기도가 끝났다. 하느님께서는 정말 신비로운 분이시다. 자고 있는 피에르를 저들이 불태우려고 할 때는 전혀 아는 체도, 작은 천둥 소리 한마디도, 희미한 번갯불 한 번도 번쩍 하지 않으신 분께서 메이슨 씨의 기도는 즉각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다니. 폭도들의 아우성이 갑자기 조용해진 것이다. - P59

"어린애가 많이 다쳤어요. 의사의 도움을 못 받으면 이 애는 죽을 겁니다."
"검둥이나 흰둥이나 결국은 지옥 불에서 타게 되는군."
사나이가 말했다.
"그리 되겠지. 여기서 불타건 죽어서 지옥에서 불에 타건, 금방 알게 될 걸세."
이모가 말했다. - P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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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장


나는 스파이, 고정간첩, CIA 비밀 요원, 두 얼굴의 남자입니다. 아마 그리 놀랄 일도 아니겠지만, 두 마음의 남자이기도 합니다. - P7

문제의 그달은 4월, 가장 잔인한 달*이었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쉼없이 줄달음치던 전쟁이 팔다리를 모두 잃을 지경이 된 시기이기도했습니다.

* 영국 시인 T. S.엘리엇의 시 「황무지 (The Waste Land)」의 한 구절인 4월은 가장 잔인한 달(April is the cruelest month.)"에서 따온 표현이다. - P8

장군의 빌라에선 밤에는 충분히 사생활을 누렸지만 낮에는 좀처럼 그럴 수 없었습니다. 나는 휘하 장교들 가운데 장군의 사저에 거주하는 단 한 사람, 참모진 중 유일한 총각, 신뢰 받는 부관이었습니다. - P8

여느 4월보다도 더 잔인한 이번 4월에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맞닥뜨리자, 늘 뭔가 할 일을 찾아내던 장군도 더 이상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문명화 사명***과 미국의 방식을 신봉하던 사람이 마침내 불신이라는 벌레에 물리고 만 것입니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 프랑스가 효과적인 식민 지배를 도모하며, 열대 토착민을 타자화하는 과정에서 성립된 개념으로, 간단히 말해 서구가 비서구 문명화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 P10

논의와 식사를 마치고 내가 장군의 담배에 불을 붙이면, 그는 손가락 사이에서 서서히 타들어가는 러키 스트라이크의 연기를 빨아들이는 것도 잊어버린 채 허공을 빤히 바라보았습니다. - P12

클로드는 가장 믿을 만한 미국인 친구로, 우리는 정말 허물없는 사이였고, 그래서 한번은 클로드 자신이 16분의 1만큼 흑인이라는 비밀을 내게 털어놓은 적도 있었습니다. - P13

 사실 클로드는 거슬러 올라가자면 프랑스가 여전히 제국을 다스리던 시절부터 현재까지 계속 이 나라에서 암약하던 CIA 요원이었습니다. 당시에, 그러니까 CIA가 OSS*이던 시절, 호찌민**은 프랑스인들과 벌이는 싸움에서 그들이 우리를 도와주리라 기대했습니다.


* 전략 사무국(Office of Strategic Services). 1941년 창설된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의 정보기관 CIA의 전신
**본명 응우옌 텃 타잉. 베트남의 혁명가이자 정치가, 인도차이나 공산당을 창설하여 베트남의 독립운동을 이끌었다. 베트남 민주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 - P14

주며, 크고 단단한 알통을 불끈거리는 근육질 유형이었습니다. 학구파들이 창백하고 근시인 데다 왜소한 경향이 있는 데 반해, 클로드는6피트 2인치의 키에 시력이 완벽한 데다, 매일 아침 눙족** 하인을 등위에 앉혀 놓은 채 팔굽혀펴기 200개를 하며 몸매를 유지했습니다. 시간이 나면 책을 읽었고, 빌라를 방문할 때면 늘 한 권을 겨드랑이에 끼고 있었습니다. 며칠 후 찾아왔을 때 그는 리처드 헤드의 문고판 서적 『아시아의 공산주의와 동양적인 파괴 방식』***이라는 책을가지고 있었습니다.


** 베트남 소수 민족 중 하나.
*** 이 소설에 등장하는 가상의 작가와 그가 집필한 책이다. - P16

(전략). 그럼에도 나는 헤드의 책 표지를 주의 깊게 읽어 보았는데, 흥분한 키득거림 같은 추천 문구들을 쓴 당사자가 국방부 장관 두 사람과, 실상을 알아내기 위해 두 주 동안 우리 나라를 방문했던 어느 상원의원과 찰턴 헤스턴이 연기한 모세를 본떠서 발음을 가다듬은 어느 유명 텔레비전 앵커라는 사실만 빼면, (중략). 그들이 흥분한 이유는 ‘아시아를 위협하는 마르크스주의자를 이해하고 물리치는 것에 관하여‘라는 의미심장한 부제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클로드가 모두 이 입문서를 읽고 있다고 하기에 나도 읽겠다고 했습니다. - P17

 실제로 전화 통화에서 상대는 쉽사리 나를 미국인으로 여겼습니다. 직접 만나면 예외 없이 내 외모에 놀라면서 어쩌면 그렇게 영어를잘하는지 묻곤 했습니다. 미합중국의 체인점 역할을 하는 이 잭푸르트 공화국*에서, 미국인들은 내가 영어를 아예 못하거나 아니면 피진**영어나 억양이 강한 영어를 구사하는 저 수백만 명의 사람들과 비슷할 거라고 짐작했습니다. 나는 그들의 짐작에 분개했습니다.

*잭푸르트는 바라밀이라고도 불리는 과일로, 이 표현은 ‘바나나 공화국‘처럼 단일 농업에 의존하는 가난한 국가를 가리킨다.

**두 개의 언어가 섞여서 형성된 보조적 언어를 일컬어 ‘피진‘이라 하며, 영어에 토착어가 섞여 주로 상거래에서 사용되는 혼합 언어를 피진 영어라고 한다. - P18

 나는 평균 수준의 교육을 받은 미국인보다 더 폭넓은 어휘와 더 정확한 어법을 구사했습니다. 저음뿐 아니라 고음도 제대로 낼 수 있어서, (후략). - P18

(전략), 대다수 시민들은 아무도 간통의 진상을 밝히지 않는 한 서로끈덕지게 매달린 채로 물에 빠져 죽기조차 마다하지 않으면서 실패한 결혼 생활을 이어가는 사람들처럼 행동했습니다. 적어도 백만 명의 사람들이 이런저런 역할을 수행하며 미국인들을 위해 일하는 중이거나 일한 적이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습니다. - P19

(전략).

그날 늦게, 대통령이 사임했습니다. 나는 전부터 대통령이 독재자에게 어울리는 방식으로 이미 몇 주 전에 나라를 버리고 떠날 거라고 보았기에, 철수자 명단을 작성하는 동안 대통령 생각은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 P21

최하위급 장교에서 장군에 이르기까지우리 모두의 이름이, 3년 전 우리가 어떤 여자의 방문을 때려 부쉈을때 그녀가 가지고 있다가 억지로 입안에 쑤셔 넣었던 명단에서 발견된 적이 있었습니다. (중략) 설령 잠시나마 단둘이 있었다 해도, 그녀에게 나는 당신과 한편이라고 말해서 내 정체가 탄로 날 위험을 무릅쓸 수는 없었을 겁니다. 나는 어떤 운명이 그녀를 기다리는지 잘 알았습니다. - P22

3년 후에도 이 공산당 첩자는 여전히 감방에 있었습니다. 나는 그녀를 구하지 못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내 책상 위에 관련 서류철을 계속 놔뒀습니다. 만은 말했습니다. 그건 내 잘못이기도 했어. - P23

만약에 …………. 하지만 만약은 없었습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면, 내가 창가에 서서 위스키를 홀짝거리는 동안 장군이 내 의자 끄트머리에 걸터앉아 있다는 것뿐이었습니다. 마당에서는 장군의 당번병이 55 갤런짜리 드럼통 안에서 활활 타오르는 불꽃 속으로 수많은기밀서류를 한 움큼씩 집어넣으며 무더운 밤을 더욱 무덥게 만들고있었습니다. - P25

 이제 미국 말고는 갈 데가 없군. 내가 말했습니다. 더 형편 없는 곳들도 있습니다. 그가 말했습니다. 아마도. 적어도 우리는 살아서 다시 싸우게 될 거야.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망했어. 이럴 땐 어떤 축배사가 어울릴까?
잠시 후 내게 적당한 말이 생각났습니다.
피를 보게 되기를.*
젠장, 맞는 말이군.


* 흔히 ‘건배‘라는 의미로 해석되는 문장이지만, 본문에서는 복수를 다짐하는 의미가 가미된 축배사로 사용되었다. - P26

마지막 날 아침에, 나는 차를 몰아 장군을 경찰청 내에 있는 그의 사무실로 데려다주었습니다. 장군의 사무실보다 더 복도 안쪽에 있던 내 사무실에서 나는 선택된 장교 다섯 명을 비공개로 하나씩 호출했습니다. - P28

나는 애도와 동시에 축하를 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면서, 서랍 쪽으로 돌아섰습니다. 거기에 몇 온스 정도남은 1피프스*들이 짐빔을 한 병 넣어 두었거든요. 가엾은 어머니가 살아계셨다면 이렇게 말씀하셨을 겁니다. 너무 많이 마시지 마라, 얘야. 그게 너한테 좋을 리가 없잖니. 그런데 정말 그럴 리가 없을까요


* 1갤런의 5분의 1. - P29

배낭은 클로드가 대학 졸업을 축하하며 준 선물이었습니다. 내가소유한 가장 멋진 물건으로, 등에 매기도 하고 여기저기 끈이 달려있어서 손에 드는 여행용 손가방으로 바꿀 수도 있었습니다. 뉴잉글랜드의 평판 높은 제조사가 부드러운 갈색 가죽을 가공하여 만들었는데 불가사의하게도 가을 단풍잎과 바닷가재 구이와 남학생 기숙학교의 땀과 정액 냄새가 진하게 풍겼습니다 - P30

클로드가 말했습니다. 모름지기 남자라면 누구나 여행 가방에 가짜 바닥 하나쯤은 있어야지. 그게 언제 필요하게 될지 절대 알 수 없는 법이거든. 나는 클로드 모르게 그걸 내 미녹스 미니 카메라를 숨기는 데 사용했습니다.  - P30

나는 짐을 다 꾸리고 나서 시트로앵 승용차를 빌려 본을 구하러갔습니다. 매번 검문소에서 헌병들이 자동차에 달린 별판을 보고 통과하라는 신호로 손을 흔들었습니다. - P31

만과 나와는 달리, 본은 순수한 애국자, 그러니까 자진해서 싸우는 공화주의자로, 지역 세포 조직의 간부가 촌장인 자기 아버지를 마을 광장에 꿇어 앉히고 자백하라고 윽박지른 다음 귀 뒤에 힘껏 총알을 박아 넣은 이래로 줄곧 공산주의자들을 증오했습니다. - P32

 제멋대로 굳게 내버려 뒀다면 본은 틀림없이 일본인들에게로 가서 끝까지 싸우거나* 자기 머리에 직접 권총을 들이댔을 겁니다.

* 베트남 전쟁 당시 일본 오키나와가 미국의 출격 기지로 사용된 바 있다. - P32

(전략). 그녀는 심지어 낙하산병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포크송 가수 찐꽁선의 노래를 부르고있었습니다. 내일이면 나는 가요, 그대여…………… 그녀의 노랫소리가 수다와 빗소리를 뚫고 크게 들려왔습니다. 잊지 말고 내 고향 집으로 전화해줘요………. 내 가슴이 떨렸습니다. 우리는 나팔이나 트럼펫 소리에 달려가 전쟁터로 돌격하는 민족이 아니었습니다. 


* 베트남의 유명 작곡가, 음악가, 화가, 1960년대에서 1970년대에 걸친 반전가요 활동으로 베트남의 밥 딜런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반전 가사 때문에 남베트남 정부가 그의 노래들을 금지곡으로 지정한 경우도 있었고, 1975년 통일 이후에 공산주의 정부도 통일 이전의 곡들은 다시 금지한 바 있었다. - P33

내일이면 나는 가요, 그대여. 이 도시의 밤은 더 이상 아름답지가 않네요……. 이후 수년 동안 만을 볼 마지막 순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면, 본은 절대로 비행기에 타려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 P34

나는 피우던 담배를 내던지듯 버렸습니다. 자네들은 아직 죽지 않았어. 부대로 복귀해야 해.
첫째 해병대원이 다시 한번 내 얼굴에 시선을 집중하면서, 제 코가 거의 내 코에 닿을락 말락 할 정도로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섰습니다. 당신이 뭔데?
본이 고함을 쳤습니다. 도가 지나치군, 중위!
당신이 뭔지 내가 말해 주지. 그 해병대원이 손가락으로 내 가슴을 쿡쿡 찔렀습니다.
내가 말했습니다. 말하지 마 - P37

정말 다행스럽게도, 그때 우리는 첫 폭탄이 터지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모든 사람의 머리가 폭발이 일어난 방향으로 홱 돌아갔고, 북서쪽에서 잇달아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본이 말했습니다. 공항이야. 500파운드짜리 폭탄이군. - P38

 나에 대한 호칭에 관해 말하자면, 호칭 자체는 아까 내가 보인 반응보다 더 속상한 건 아니었습니다. (중략) 내 어머니는 베트남인이고 아버지는 외국인이었는데, 어린 시절부터 줄곧 낯선 사람들과 지인들은 내게 이 점을 즐겨 상기시켰고 침을 뱉은 다음 나를 잡종 새끼라고 불렀습니다. 가끔은 변화를 주려고 잡종 새끼라고 부른 다음에 침을 뱉기도 했지만 말입니다. - P39

2장


심지어 지금도, 날마다 나를 살펴보러 오는 앳된 얼굴의 보초는 기분 내킬 때면 나를 잡종 새끼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정도는 놀라울 것도 없습니다. - P40

하지만 그들이 유라시아 혼혈아라는 말을 만들어 내진 않았습니다. 그런 주장을 할 자격은 인도의 영국인들에게 있었습니다. - P41

열대지방 태생인 미군 병사(GI)의 자식으로 작은 나라 하나를 세울 수도있을 정도이기 때문입니다. GI는 관급품을 의미했지만, 동시에 오늘날의 아메라시안 자체이기도 합니다. - P42

따라서 내가 장군에게 마음이 끌린 것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었습니다. 장군은 내 친구들인 만과 본처럼, 뒤죽박죽인 나의 내력을 비웃은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요. - P42

사람들을 고르고 버스를 마련했으며, 가장 중요하게는, 안전 통행을 위해 뇌물을 바쳤습니다. 장군에게서 징발한 1만 달러가 든 손가방에서 돈을 꺼내 지불하기는 했지만, 사실 그는 이 일을 부인의 손에 맡겼습니다. 부인은 응접실에서우롱차를 마시며 내게 말했습니다. 엄청난 돈이에요.  - P43

모든 준비가 끝나고 나와 본이 그의 아내와 아이를 찾아서 데려온 후 7시에 출발하기 위해 모두 모였습니다. 푸른색 버스 두 대가 빌라정문 밖에 대기했고, 창문은 이론적으로는 테러범들의 수류탄이 기도라는 갑옷 말고는 의지할 데가 없는 로켓추진식만 아니라면) 도로 튕겨나가도록 모두 안전 철망에 싸여 있었습니다. - P44

장군의 마지막 임무는 집사, 요리사, 가정부, 그리고 3인조 사춘기 유모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데려가 달라고 애원했었지만, 부인은 단호히 거절했습니다. 장군의 장교들을 위해 비용을 지불했을 때 이미 자신은 지나치게 관대한 조치를 취했노라고 확신하고 있었으니까요. 물론, 그녀가 옳았습니다. - P45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집사가 말했습니다. 청이 하나 있습니다. 장군님. 이 친구야, 그게 뭔가? 장군님의 권총이요. 그걸로 자살할 수 있게요! - P46

빌라에서 공항까지 가는 길은 사이공에서 무엇이든 그럴 수 있을만큼만 복잡하지는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엄청나게 복잡했다는 말입니다. - P47

내가 탄 버스에는 민간인으로 위장한 군인들이 최소한 두엇은 타고 있었습니다. 나머지 장군의 인척과 친척들은 대부분 여자와 아이들이었지만요. 이 승객들은 자기들끼리 소곤거리며 이러쿵저러쿵 불평을 했지만, 나는 못들은 척해 버렸습니다. - P48

우리 공군은 대통령궁을 폭격했고, 우리육군은 초대 대통령과 그의 남동생을 총으로 쏘고 칼로 찔러 죽였으며, 사소한 일로도 말다툼을 하는 우리 장군들은 내가 셀 수도 없이많은 쿠데타를 선동했습니다. 열 번째 정부 전복 기도 후에 절망과 분노로 범벅이 된 나는 우리 나라의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받아들였고, 약간 유머러스한 기분으로 칵테일을 한 잔 들이켜고 술기운에 다시 한번 혁명의 맹세를 했습니다.


* 1955년부터 1963년까지 남베트남의 초대 대통령을 지낸 응오딘지엠과 비밀경찰을 이끌던 그의 친동생 응오딘누는 1963년 11월 1일 응오딘지엠을 축출하기 위한 쿠테타 발생 후 비밀 통로를 이용해 중국인 거주지역으로 피신했으나 후에 압송 도중 사살되었다. - P50

. 우리가 일주일에 미사한 번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신앙심 깊은 장교들인 척하는 동안, 나는 정치적, 개인적 실수들에 대해 그에게 고해를 하곤 했습니다. 그러면 만은 내 고해신부 역할을 하면서 기도문 대신에 지렁이라는 형태의 사죄문을 내게 속삭이곤 했습니다.
미국이라고? 내가 말했습니다.
미국 말이야. 그가 확인해 주었습니다.
나는 장군의 철수 계획을 알게 되자마자 바로 만에게 알렸고, 그 수요일에 바실리카에서 새로운 임무를 통보 받게 되었던 겁니다.  - P53

 연구회는 만의 생각이었고, 만과나. 그리고 반 친구 하나로 구성된 3인조 세포 조직이었습니다. 만은 지도자로서, 혁명 고전들을 읽으면서 우리를 이끌고 우리에게 당이념의 원리들을 가르쳤습니다.  - P54

나는 종이쪽지를 만지작거리며, 내가 준비했던 영화 시나리오를 떠올렸습니다. 장군이 함께 떠나자며 간절히 애원하는데도 내가 클로드의 비행기에 탑승하기를 거절하는 시나리오였지요. 내가 말했습니다. 난 남고 싶어. 거의 다 끝났잖아. 꼭 모아 쥔 두 손 뒤에서 만이 탄식하듯 말했습니다. 거의 다 끝났다고? - P56

 비록 모든 나라가 나름대로 자국이 우월하다고 생각했다고는 해도, 나르시시즘이라는 연방준비은행에서 ‘슈퍼‘가 붙은 용어를 그렇게 많이 새로 만들어 낸 나라가 있었을까요? 엄청나게 자신만만할 뿐 아니라 정말로 엄청나게 강력한 그런 나라가요? 그래서 세상 모든 나라를 풀넬슨 자세로 꽉 조이고 상대가 엉엉울며 큰 소리로 ‘엉클 샘‘을 부르고 나서야 비로소 만족하는 그런나라가요?

* 레슬링에서 두 팔을 등 뒤에서 상대방의 겨드랑이 밑으로 넣은 다음 두손으로 상대의 뒤통수를 내리 눌러 공격하는 방법.

** 미국 정부를 지칭하는 말. - P57

바실리카 밖에서, 우리는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나중에 본을 위해 연출해 보인 것 말고 우리의 진정한 작별 인사를 말입니다.  - P58

(전략), 지난주 오후에 나는 이 가련한 육체에서 어떤 종류의 인간이 형성되었는지를 알아내려고 찾아갔습니다. 아내와 아이들과 나눠 쓰는 나무 침대 가장자리에 속옷 바람으로 앉아 있기는 했지만, 반쯤 벌거벗은 중위는 갓 호랑이 우리에 떨어져서 경계심이 강하고 약간겁은 먹었지만 아직도 육체적으로 망가지지는 않은 정치범같이 궁지에 몰린 표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내가 조국을 배신하기를 바라는군요. - P60

 나는 당신을 존경합니다. 중위. 나는 그렇게 말했고, 실제로도 그랬습니다. 당신은 정직한 남자인데, 남자들에게 먹여 살릴 가족들이 있을 때는 정직한 남자들을 찾아보기가 힘들지요. 나는 우리의 요청에 대한 최소한의 보답으로 3000달러를 제안하는 겁니다. - P61

나는 1973년 이래로 그렇게 많은 해병대원들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당시 그들은 이 이착륙장에서 떠나가는 몹시 지치고 패배한 무리였지요.* 하지만 이 젊은 해병대원들은 전투를 목격한 적도 없고 이 나라에 고작 몇 주만 있었을 뿐이었습니다.


* 1973년 1월 27일 파리에서 평화협정이 체결되었고, 그 안에는 남과 북의 휴전, 선거를 통한 통일 정부 구성, 미군의 60일 이내 철수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에 따라서 평화협정 체결 뒤 미국은 남베트남에서 철수하면서 원조 규모를 크게 줄였는데, 본문에 언급된 장면은 바로 이 철수 장면을 가리킨다. - P63

 내 총은 총신이 짧은 38구경 회전식 연발 권총으로 은밀한 활동이나 러시안 룰렛이나 자살을 하기에 알맞은 것이었습니다. 반면, 본은 남성적인 45구경 콜트식 반자동 권총을 사용했습니다. 내가 덕에게 말해 주었습니다. 저 총은 필리핀에서 단 한 방으로 모로족* 전사들을 때려잡기 위해 제작된 거야.

* 필리핀의 만다나오 섬, 슬루 군도, 팔라완 섬 등에 살고 있는 민족으로 독자적인 이슬람 신앙과 자체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1960년 이후 분리 독립 운동을 벌이고 있다. - P65

우리는 담배에 불을 붙이고 캄캄한 하늘로 관심을 돌렸습니다. (중략) 고해성사를 들을 준비가 됐나? 그는자신이 실탄을 쏟아내는 방식으로, 요컨대 세심하게 통제된 집중사격을 하듯 단어들을 사용했습니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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