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2차 페인트를 진행한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오랜만에 2차 페인트를 하려니 마치 어릴 적 장난감을 꺼내 보는기분이었다. 뭐, 그만큼 포근한 상황은 아니지만 말이다. - P100

오래전이었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사십 대 부부가 센터를 찾아왔다. 재산과 직업, 자라온 환경 모두 빠질 게 없는 사람들이었다. - P100

두 사람이 돌아간 뒤, 박은 다른 가디들에게 남자에 대한 보충 조사를 요청했다. 남자는 주위 평판이 좋은 사람이었다. 성실하고 깔끔하며 자기 관리에 철저한 사람이었다. 그게 전부일까?  - P101

남자는 정리 정돈에 집착했다. 특히 물건을 정리하는 데 강박이있었다. 집과 자동차, 하물며 아내까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놓여 있어야만 안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 P101

면접 순서는 처음과 같았다. 음료를 주문하자 곧 헬퍼가 들어와 주스와 탄산음료 등 마실 것을 놓고 갔다. 남자가 히죽 웃으며 말했다.
"하나는 절대 연락이 안 올 거라고 했어. 너 같으면 우리 같은 부모를 만나고 싶겠니라는 말까지 했다니까."
남자가 혼자서 키득거리는 동안, 여자가 주스를 쭉 들이켰다.
"사실이잖아. 심리 검사도 간신히 통과.." - P102

"제가 부담스럽지 않으세요? 벌써 열일곱인데."
왜 나에게 관심을 보이느냐는 질문이었다.  - P104

NC 출신들을 잠재적인 범죄자 취급하는 시선은 나도 알고 있다. 그런 낙인 때문에 NC의 아이들이 그토록 열심히 부모를 만들려 하는 것이다. - P104

"나는 두 가지를 알고 싶어. 정말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NC출신들이 문제가 많은지. 그리고 인격이 형성된 후에 부모를 만나면, 그러니까 전혀 다른 환경에서 자란 아이가 어느 날 가족이 되면 과연 어떤 생활을 하게 될지. 그 이야기를 써 보고 싶어."
(중략). 최였다. 놀란 세 사람의 시선이 최의 얼굴에 가닿았다.
"그만 돌아가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 P106

"아이는 실험 대상도, 연구 대상도 아닙니다. 글의 소재는 더더욱......." - P107

. 최가 나를 바라보았다.
"제누, 잊은 모양인데 우리는 너를 보호할 의무가 있어."
"저는 지금 아무런 신변의 위협도 느끼지 않았어요. 불쾌감도 모욕도 느끼지 않았고요." - P107

최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가 원하니 할 수 없군요. 죄송합니다. 앉으시죠."
최의 사과에 남자가 엉거주춤 자리에 앉았다. 여자도 흥분을 가라앉히려고 숨을 깊이 내쉬었다. - P108

"우리는 사실 예행연습도 없이 나왔어. 많이 두서없었지?"
남자가 사과했다.
•대부분 예행연습 없이 부모가 되잖아요."
나의 말에 남자가 놀란 눈으로 최를 곁눈질했다. - P109

"센터장님은 어디 계세요?"
센터장이라는 말에 최는 두통이 이는 듯 머리를 쓸어 넘겼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하루 휴가를 냈어."
박이 휴가를? 주말에도 센터에 남아 있곤 하던 그가 도대체 무슨 일로? 더욱이 나의 2차 페인트가 있는 날에. - P110

내 말이 끝나자마자 최가 인상을 찌푸렸다.
"직접 보고도 몰라? 너를 단순히 글쓰기 소재로 생각하는 사람들이야. 더군다나 감정 기복이 심하고, 불안정해 보이고."
"그래서 좋은 거예요." - P111

문득 최의 눈동자가 불빛 아래에서 반짝거렸다.
"센터장의 말을 믿지 않았어." - P112

너는 네가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것 같지?


(중략). 이곳의 아이들에게는 좋은 인성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있었으니, 바로 건강한 몸이었다. 우리는 하루에 삼십 분씩 의무적으로 운동을 했다. - P114

"아, 정말 매일 운동하는 거 싫다! 부모를 만나서 새 집에 가면운동 안 해도 되겠지?" - P115

얼굴을 확 찡그리는 아키를 보고 나는 장난을 멈췄다.
"형은 부모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만 가득해."
"부정적인 시선이 아니라 명확한 시선이라고 해야지." - P116

"너는 네가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것 같지?"
"그럼 내가 생각하는 대로 살지, 남이 생각하는 대로 사냐?"
그래,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며 행동하는 인간이다. 그러나 인간이라고 꼭 타의나 강요가 아닌 자신의 의지대로만 행동할까? - P116

"아키, 어쩌면 생각이 너를 조종하는 걸 수도 있어." - P116

"나 체육관에서 가디를 봤어. 땀을 뚝뚝 흘리면서 운동하던데."
"가디라면, 박? 체육관에는 웬일이지?" - P117

"형이 몸이 떨린다. 아무래도 단것 좀 먹어야 할 것 같아."
따라오라는 내 손짓에 노아가 발을 놀렸다.
센터의 학비를 포함한 모든 운영 자금과 생활 비용은 정부에서 지급되었다. - P119

"벌써 몇 번째야? 자꾸 문제 일으키면 면접권 박탈당해."
문제를 일으키면 일으키는 족족 벌점으로 기록되었다. 벌점이 어느 수위를 넘으면 부모 면접권 자체를 박탈당했다. 부모를 만나지 못한 아이들은 결국에 홀로 센터를 떠나야 했다. - P121

여전히 스낵을 우물거리며 노아가 물었다.
"너 혹시 어제도 박의 집무실을....."
당연하지, 싶은 얼굴을 보니 또 박의 집무실을 엿본 모양이었다. 노아 같은 아이를 제외하고 리모스룸을 찾는 아이들은 흔치 않았다. - P123

"센터 일에 집중해 달래, 너무 많은 생각은 오히려 일에 방해가된다나? 누가 최 아니랄까 봐. 대단해."
박의 갑작스러운 휴가를 나무라는 뜻이었을까? 내 2차 페인트가 있던 날이었으니까. 하지만 비록 그렇다 해도, 박도 사람이다. - P124

나를 위해서야,
나를 위해서

(전략).
"참, 형도 3차 페인트를 앞두고 있잖아. 형이 2차까지 간 것도 오랜만인 것 같은데."
글쎄, 그들이 좋은 사람인지는 아직 확신하기 어렵다. - P127

그 순간, 방과 복도 가득 황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지금 즉시 모든 사람들은 강당으로 모이도록, 강당으로 모이도......"
호출이었다.  - P128

박은 긴장한 아이들을 안심시키려는 듯 한차례 온화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제가 당분간 센터를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리 길지는 않을 겁니다." - P129

"어디 멀리 여행을 가나? 해외에 나가는 거 아니야? 와, 가디는 좋겠다. 여태까지 휴가를 한 번도 안 갔으니까 길게 떠날 수 있겠지? 휴가 포인트를 꼬박꼬박 모아놨나 보다."
"포인트?" - P131

"가만히 있는 노아를 왜 때린 거냐?"
"리모스룸이 센터 건물로 이전됐다고 해서 견학차 왔습니다."
"지금 나랑 장난하는 거냐?"
황이 팔짱을 낀 채 나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 P133

보안 버튼을 눌렀다. 특수 합금으로 된 문의 한가운데가 스르르 투명하게 변했고 집무실에 앉아 있는 박의 모습이 나타났다.  - P133

그때 낮은 멜로디가 울렸고 박의 멀티워치에 불이 들어왔다. 허공에 불쑥 최의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오늘은 보고를 받지 않겠습니다."
최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박이 말하고는 순식간에 홀로그램을껐다. 박이 꿀꺽 침을 삼켰다. 이렇게 되면 일이 틀어지는데! - P134

그때, 지잉 소리와 함께 집무실 문이 열렸다. 아니나 다를까, 허락 없이 안으로 들어온 사람은 최였다. - P134

"이 중요한 시기에 센터장이 자리를 비우신다는데, 따로 할 말이 없다고요?"
"황에게 위임했습니다. 물론 다른 가디도 계시고...?
"선배."
선배? 선배라니, NC에서 그런 호칭은 통용되지 않았다.  - P135

"퇴근 삼십 분 남았네. 내일 삼십 분 먼저 출근할 테니, 오늘은조기 퇴근 하지 뭐. 자, 이제 나 부하 직원 아니지?" - P135

"부하 직원 아닙니다. 정 듣기 싫으면 선배도 반말하든가."
빙긋 웃는 최를 향해 박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평소에도 곧잘 센터장인 박을 놀리곤 하던 최였다.
"그래, 무슨 말이 하고 싶은데?" - P136

"어디에 다녀오려는 거야?"
최의 말에 박이 잠시 말을 멈췄다.
"해외에 다녀올까 해. NC 센터와 같은 기능을 하는 곳들을 찾아보려고, 세부 일정은 짜지 못했지만 지금부터 준비를……………."
"선배." - P137

"정말 가고 싶은 곳은 거기가 아니잖아."
"....."
"마지막으로 만나 뵙고 싶은 거 아니야?" - P138

박은 그 늙고 병든, 빈껍데기만 남은 아버지를 만나고 온 것이었다. 나의 2차 페인트 날에.
"의사가 그랬어, 한 달을 넘기기 어렵다고. - P140

"나를 위해서야, 나를 위해서...!
두 사람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P142

그 소문 들었어?

박이 떠난 뒤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다. 센터는 전과 다름없이 바쁘게 흘러갔다. - P144

"어떤 센터에서 한 아이에게 페인트를 준비시켰다. 그런데 프리포스터들의 홀로그램을 보여 주지 않더래. 사전 정보도 가르쳐 주지 않고, 무조건 만나라고 했다. 좀 이상했지만 가디가 꼭 만나 봐야 한다고 강조하니까 일단 면접을 보러 갔는데, 그 애가 인터뷰룸에 들어서자마자 프리 포스터들이 소리 내서 우는 거야." - P147

"생부 생모를 따라간 거야?"
"형은 똑똑한 것 같다가도 가끔 바보 같아. 그럼, 당연하지. 생부생모가 있는데 NC에 있겠어? 곧바로 퇴소했대." - P148

부모는 낳아 주었다는 이유로 모든 선택권을 갖는다. 아이를 직접 키울지, 아니면 NC에 맡길지. 반대로 우리는 아니다. - P149

인터뷰룸에는 네 명 이상이 들어갈 수 없다. 페인트를 시작하는아이와 프리 포스터들, 그리고 가디 한 명이 다였다. 물론 나는 두명의 가디와 면접을 본 적이 있지만 그날은 특별한 경우였다. - P149

박이었다면 아키가 부탁했대도 오늘 같은 일은 허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중략). 박의 휴가는 언제쯤 끝나려나.  - P152

기다릴게, 친구

(전략).
"정말 미안해, 중요한 면접인데 혼자 와서."
하나가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거렸다.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홀로그램 영상을 주고받던 우리는 조금 더 가까워졌고, 나는 어느새 이 프리 포스터들을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다. - P153

오늘은 가디 없이 프리 포스터하고만 대화하는 날이었다. 그 - P154

하나가 저 멀리 홀로그램 숲을 바라보았다.
"자기 이름을 직접 지을 수 있다는 거 말이야. 개명 같은 거랑은다른 느낌이야." - P155

나는 ‘본질‘이라는 말이 낯설게 느껴졌다. 사랑 자체가 바로 핵심이자 본질이 아닌가. 딸을 위하는 엄마의 사랑 속에 다른 이유나 원인이 있다는 게 이해하기 어려웠다.
"본질요?" - P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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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한다

좋은 것을 하려면, 먼저 망하지 않아야 했다.  - P26

절박함은 행동으로도 드러났다. 한국벤처캐피탈협회에 등록된 투자사 리스트를 엑셀로 뽑아 한 곳씩 연락했고, 절반 이상이 만나주지 않아도 컨택을 멈추지않았다. - P26

"결혼은 했습니까?", "출산 계획은 없습니까?" 같은 질문을 처음 만난 자리에서 받는 일도 잦았다.  - P27

김슬아는 자신에게 당시 한국 사회에서 성공하는데 중요하게 여겨지던 몇 가지 조건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출신지역, 학력, 회사로 이어지는 인맥처럼 쉽게 바꿀 수 없는 것들이었다. - P27

‘예쁘게‘가 아니라 ‘오해 없게‘ 보여주기

현금 유동성이 빠듯하던 시기에도 컬리는 행보를 달리했다. 기존 유통업과 달리 김슬아는 ‘상품만 좋으면 끝‘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고객에게는 단순히 상품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우리가 고른 것이 왜 좋은지‘를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 P29

박은새의 합류는 상품을 고객에게 ‘예쁘게 보이기‘가 아니라, ‘어떻게 이해시키고 설득할 것인가‘에 대한 실험의 시작이었다. - P30

다만 이를 구현할 기준과 시스템이 없었다. 촬영은감에 의존했고, 결과물은 완성도를 차치하고서라도 본질조차 흐리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 P30

박은새는 상품 촬영을 ‘감‘이 아니라 ‘고객 인지‘의 문제로 다시 정의했다.  - P31

가이드는 단순히 예쁜 톤을 맞추는 문서가 아니었다. 무엇은 새로 촬영하고, 무엇은 기존 소스를 재사용할지 기준을 세우고, 촬영 리소스를 확보하는 프로세스를 만들었다. - P31

그는 그렇게 안 된다고 여겨지던 것들을 하나씩 가능하게 만들었다. 그 집요함과 철저함 때문에 당시 그를
‘폭군‘이라 부르는 사람도 있었다. - P32

취향이 아닌 시스템으로 제안하는 ‘좋은 것‘


계속 변하는 ‘좋은 것‘을 어떻게 알아보고 선택할 수 있을까? 그 답은 개인의 취향이 아닌 집단의 태도와 시스템에 있다. - P33

다고 생각했다. 상품에는 ‘어디까지 준비하면 100점이다‘라는 기준이 없다. 따라서 컬리에는 ‘좋은 것‘의 기준을 계속 높여가면서 오너십을 가지고 일할 사람이 필요했다. - P34

 이제는 시스템이 자리 잡아 상품 조직에서 화요일에 사전 상품위원회를 열고 목요일본 상품위원회는 서너 시간 정도만 진행하지만, 사업 초반에는 오전 9시부터 새벽 2시까지 상품을 보고 토론하기를 반복했다. - P35

김슬아도 회사가 커지면서 상품위원회를 간소화할지 고민한 적이 있다.  - P37

(전략).

일례로 김슬아는 과장을 조금 보태 평양냉면을 수천 그릇 정도 먹은 사람이다.  - P36

컬리는 기본적으로 위생이나 원재료의 품질 등을 엄격하게 검토하고,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아무리 잘팔릴 것이 분명한 상품이라 해도 팔지 않기로 했다. - P38

결승선이 없는 길을 달린다는 것


CJ제일제당과 컬리가 공동 기획한 브랜드 ‘제일맞게컬리‘의 ‘육즙+왕교자‘ 상품 개발 과정은 컬리가 좋은 것을 찾아가는 집념을 잘 보여준다.  - P38

컬리 사람들은 상품을 두고 자연스럽게 잔탄검*을빼달라든지, 중국산 고춧가루를 국산으로 바꾸자든지하는 이야기를 나눈다.


*소스를 걸쭉하게 하거나 빵을 쫄깃하게 할 때 쓰는 당화물질, 소화불량이나 알레르기 등의 이유로 잔탄검 무첨가 식품을 찾는 소비자가 있다. - P40

언제나 조금 더 좋은 것을 찾으려는 사람, 분명 더좋은 게 있을 거라 믿는 사람, 그래서 결국 더 좋은 것을찾아내고야 마는 사람.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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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성장하는 공간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섬세한 묘사로 그려낸 일상

『서양미술사』를 저술한 곰브리치Ernst Gombrich는 페르메이르의 섬세한 묘사를 두고 "사람이 들어 있는 정물화"라며 극찬했다. - P83

대항해 시대 네덜란드의 경제 성장은 중산층과 시민 계급의 성장을가져왔다. 물질적 풍요를 만끽하던 그들은 종교적 이상이나 신화의 세계가 아닌 일상의 실재성과 물질성 그리고 시간의 현재성에 눈을 돌렸다.  - P84

프랑스에서 재발견된 북해의 빛


작은 크기의 인물화를 주로 그렸던 페르메이르는 단 두 점의 풍경화를남겼다.  - P84

페르메이르가 그려낸 개인의 공간은 심리학과 관련한 두 가지 주제를 제시한다. 화가가 포착한 공간은 개인적 취향의 공간인 동시에 취미와 여가가 함께하는 근대적 공간, 즉 슈필라움spielraum*의 탄생이다


*슈필라움은 독일어의 놀이, 게임 등을 뜻하는 spiel과 공간을 뜻하는 raum이 결합된 단어로 놀이 공간혹은 자유롭게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여유 공간이라는 뜻이다. 심리적 휴식과 유회가 가능한 물리적 공간이라고 보면 된다. - P85

페르메이르와 함께 활동했던 피터르 더 호흐 Pieter de Hooch 같은 화가 역시 북해의 빛이 비친 가정의 차분한 실내를 즐겨 그렸다 - P86

델프트 화파의 주제는 두 세기 후 19세기 덴마크 화가들에게 계승되었다. 덴마크 화가들은 시간이 정지된 듯한 가정의 실내 공간을 섬세하게 표현해 삶의 내면이라는 주제를 발전시켰다.  - P86

페르메이르의 작품이 가진 일상성과 현재성이 재조명받기 시작한 것은 1848년 프랑스의 미술평론가 토레 Théophile Thoré-Bürger가 <델프트 풍경>과 관련된 글을 발표하면서부터였다. - P88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가 이 그림에 대해 가진 애정은 특별했다. 그가 죽기 전해인 1921년, 네덜란드화가들의 특별전이 파리에서 열렸다. 극도로 쇠약해진 몸에도 불구하고그는 사랑하는 <델프트 풍경>을 보러 가기 위해 친구의 도움을 빌었다. - P89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푸른색 터번을 쓰고 이국적 옷차림을 한 소녀의 커다란 진주 귀걸이가 인상적이다. 진주귀걸이를 하고 뒤를 돌아보는 소녀의 표정은 알듯 모를 듯하다. 배우들이 포토라인에서 즐겨 취하는 포즈를 연상케 하는 이 자세는 17세기 인물화에서는 보기 드물게 역동적이다. - P90

‘푸른 터번의 소녀‘가 ‘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로 이름이 바뀌게 된 것은 소설과 영화의 소재로 사용되면서부터다. - P90

 사물과 소품의 사실감을 묘사하는 데 힘을 기울였던 그는다작을 하기가 어려웠고, 1년에 한두 점의 그림을 제작할 뿐이었다. - P92

혼자만의 시간, 자기만의 방

페르메이르의 그림에는 여인들이 유독 자주 등장한다. 미술사가들은 그림에 숨어 있는 당시의 사회적 상징과 알레고리에 주목한다. - P92

페르메이르의 시간은 조선에 억류되었던 선원 하멜의 시간과 겹친다. - P95

이런 여인들의 공간은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가 언급한 ‘자기만의 방‘을 떠올리게 한다.  - P96

남성의 공간에는 천문학자와 지리학자가 등장한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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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아성장하는 공간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섬세한 묘사로 그려낸 일상

『서양미술사』를 저술한 곰브리치Ernst Gombrich는 페르메이르의 섬세한 묘사를 두고 "사람이 들어 있는 정물화"라며 극찬했다. - P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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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쾌락은 데이터로 축소되어 프로이트가 간절히 이해하고싶어 했던 인간의 욕망에 대한 디지털 초상화가 되었다.  - P225

그러나 쾌락은 고립된 것이 아니다. - P225

짧은 시간 동안우리는 수백만 명의 낯선 사람이 식당에 대해 평가한 총체적인 ‘지혜‘를 신뢰하게 되었다. 많은 리뷰가 돈을 받고 작성되거나 봇에 의해 생성되거나 그 식당을 한 번도 방문한 적이 없는 사람들이 올린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말이다. - P226

점점 더 많은 쾌락이 간접적인 쾌락이 되어가고 있다. - P226

즉 시인과 소설가가 몇 세기 동안 이야기해온 "순식간에 지나가는쾌락의 속삭임"을 알아차리는 능력이 약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 P227

기록되기 위한 여행과 픽셀화된 예술

새로운 장소를 이해하려면 그곳의 냄새를 맡아야 한다. 여행의 큰 즐거움 중 하나는 낯선 땅의 기묘한 냄새와 새로운 소리를 경험하는 것이다. - P227

물론 멀리 있는 곳이 항상 친근한 것은 아니다. 그래서 여행에는특별한 설렘이 있다. 적어도 예전에는 그랬다. - P228

관광객은 예측 가능성과 편리함을 원한다. 여행자는 불안이 음악의 꾸밈음처럼 여행의 작지만 중요한 부분이라는 것을 이해하고,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여행의 핵심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 P229

"사이버 공간에서의 상호작용은 일상에서 도망치고 싶은 마음을 약화시킨다."⁹ 영국 모험 여행가 데블라 머피가 <가디언>의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 P230

9 Dervla Murphy, "First, Buy Your Pack Animal," Guardian, January 2, 2009. - P354

편안하고 안전하게 야생의 야외를 탐험하려는 이런 역설적인 충동은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공간의 예측 불가능성을 제거하려는 기술 회사의 욕망과 잘 맞아떨어진다. - P231

편안하고 안전하게 야생의 야외를 탐험하려는 이런 역설적인 충동은 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공간의 예측 불가능성을 제거하려는 기술 회사의 욕망과 잘 맞아떨어진다. - P231

새로운 곳에서 경이를 경험하라고 사람들을 격려하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 P232

여행을 이렇게 엄격히 기록해야 하기 때문에 현재는 모험의 기준이 상당히 높아졌다. (중략). 진짜 모험가가 되려면, 아마존에서 카약을 탄 최초의 미국 10대가 되거나 K2 정상에 오른 최초의 80대 사서가 되어야 한다. - P233

 그리고 그 경험을 소셜 미디어에 실시간으로 기록해야 한다. - P233

대부분의 사람은 ‘영웅‘이 아니고 영웅이 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그 때문에 우리는 탐험을 하지 않는다. 포즈를 취한다.  - P234

웬들 베리가 시 <휴가 The Vacation>에서 말하듯이 경험을 하는 동안 경험을 포착하는 것은 경험의 방식을 바꾼다. - P235

새로운 장소들을 우리 눈이 아니라 화면 속의 축소된 이미지로 보는 데 익숙해지면 우리는 우리 앞의 새로운 경험 대신 일상적인 세계와 그 기기에 매어 있게 된다.  - P236

거실에서 하는 여행을 통해 우리는 여행을 일상생활과 비슷하게 만든다. 여행을 스크린으로 하는 것이다.  - P238

우리가 매개하기로 선택한 모든 쾌락이 그렇듯이 사진은 실제의 예측 불가능성과 번거로움보다 더 만족스러워 보인다.  - P238

화가 파울 클레는 1920년의 에세이에서 이렇게 한탄했다. "관람객은 스치듯 본것(안타깝게도 그들은 종종 그렇게 한다)으로 작품을 다 이해할 수 있을까?"²⁶ 한 연구에 따르면 오늘날 미술관을 방문하는 사람이 작품 하나에 소요하는 시간은 평균 15~30초다.²⁷ - P239

26 Paul Klee, Creative Confession and Other Writings (London: Tate Gallery Act Editions,
2014), 10.
27 Stephanie Rosenbloom, "A Museum of Your Own," New York Times, October 12, 2014,
TR1. - P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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