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우, 재미없어, 충동적으로 산 감이 없지는 않은 책이지만.
문장은 길다. 읽다보면 ADHD가 다시 재발하는 것도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는 이유는 이 책에서 뭔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산 것을 아직은 후회하지 않는다. 아직 다 읽지 않았다.


아버지는 창녀와 동성애자, 부자와 유명인사 등등, 비난받을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 곳이라며 틈만 나면 대도시에 대한 자신의 혐오감을 토로하셨지. 거긴 경제가 호황을 누리고 강자(强者)의 논리가 횡행하는 곳, 거의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 닥치는 재앙, 뒤죽박죽 거슬리기만 하는 말투와 건물들, 봄날의 진창과 현대식 건출들의 훙측한 몰골이 파다해 (중략) - 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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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가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읽기 편하고 하다. 하지만 단순히 그 뿐이다. 동일 작가의 ‘백야행‘이 더 선호되는 것도 있지만,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가시지 않는다. 1990년 그 쯤에 만들어진 것이고, 후대에 비슷한 줄거리의 작품이 나온 것을 읽었던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오래된 작품에서 이와 비슷한 것을 본 느낌도 가시지 않는다.
그것과는 별개로 이야기는 잘 만들었다. 읽다가 다른 책을 본다는 생각은 들지만 이 책의 결말이 궁금해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어렸을 때부터 잘알던 친구이자 작가 데뷔 때도 큰 도움을준 히다카 구니히코를 왜 살해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지, 그 점에 대해 노노구치는 결코 말하려 하지 않았다. - P125

나는 이번 범행은 계획적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건 수사본부 전체의 의견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날왜 노노구치가 마침 때를 맞춘 것처럼『얼음의 문』의 다음 연재분이 들어 있는 플로피디스크를 가져갔느냐 하는 것이 문제점으로 떠오른다. 아니, 그보다 왜 노노구치는 히다카가 써야 할 『얼음의 문』의 원고를 썼을까. - P126

그래서 우리 수사원들은 노노구치의 집 안을 다시 수색해보았다. 지난번에는 워드프로세서의 내용물과 책상 서랍을 살펴본 것뿐이라서 수색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 결과, 내 가설을 뒷받침할 만한 중요한 증거 물품 18점을압수했다. 그 내역을 보면, 두툼한 대학노트 8권, 2HD의 플로피디스크 8장, 그리고 원고 묶음 2권이다. - P127

그리고 그 노력의 결과, 놀랄 만한 사실이 밝혀졌다. 노노구치 오사무의 집에서 압수한 8권의 대학노트에 담긴 5편의 장편소설은 히다카 구니히코가 지금까지 발표한 작품과 그 내용이 하나같이 일치했던 것이다. 제목이나 등장인물의 이름, 설정 등이 약간 다른 경우도 있었지만, 이야기의 흐름 자체는 동일하다고 해도 틀림이 없었다. - P128

또한 다른 플로피디스크에는 장편소설 3편, 단편소설 26편이 들어 있었는데 장편은 모두 히다카의 작품과 일치, 단편도 17편이 동일했다. 일치하지 않은 단편소설은 이른바 아동문학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노노구치 오사무의 이름으로 발표된 것이었다. - P128

어떻든 이렇게 수많은 원고가 작가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의 집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또한 이 원고들이 히다카의 작품과 완전히 똑같은 것이 아니라 군데군데 다르다는 것도 불가해한 일이었다. 대학노트에 써놓은 소설의 경우는 여기저기 행간마다 교정한 흔적이 있어서 퇴고중이라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 P129

나는 상사에게 불려갔다. 그리고 뜻밖의 말을 들었다.
노노구치 오사무가 암에 걸렸다는 것이었다. - P130

재발한 것이냐는 내 질문에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그렇게 물어본 데는 이유가 있었다. 조사 결과, 노노구치 오사무가 2년 전에도 같은 병으로 위의 일부를 절제하는수술을 받았다는 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 P130

"아니, 특별한 동기 같은 건 없어. 자네도 말했잖아, 이번 범행은 충동적인 것이라고. 그게 맞는 말이야. 불끈 화가 나서 우발적으로 살해했다, 그냥 그것뿐이야. 딱히 얘기할 만한 이유같은 건 없다니까."
"그러니까 왜 불끈 화가 났는지 묻고 있는 겁니다. 이유도없이 화를 내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 P132

"선생님 집에서 발견한 대학노트와 플로피디스크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질문하겠습니다."
화제를 바꾸자 노노구치 오사무는 그 즉시 맥이 빠진다는기색을 보였다.
"글쎄 그건 이 사건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니까? 이상한 쪽으로 연결하지 말아줘." - P133

내 말에 그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러니까 내가 그의 고스트라이터였다는 건가? 말도 안 돼.
자네가 지나친 억측을 한 거야."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앞뒤가 맞아떨어지는데요?" - P134

"그 점에 대해서는 모두 논리적으로 대답할 수 있어. 실은처음 시작할 때는 그저 단순히 베껴 쓰기만 했는데, 점점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어. 나라면 이렇게 쓰겠다. 이렇게 표현하겠다. 하는 게 머리에 떠오를 때는 그것을 써보기로 했어.
이해하겠지? 히다카의 문장을 모범으로 삼아 좀 더 나은 글을 써보자는 것이 이 연습의 목표였던 거야. 베껴 쓴 분량이 그렇게 많았던 것은 시간을 두고 착실히 공부하려고 했다는 것밖에는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어. 나는 독신이라서 집에 돌아가봤자 다른 할 일도 없고, 그래서 열심히 작가 수업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냥 그거야. 그리고 히다카의 문장이 그리 대단한 건 아니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저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다고 말하고 싶어. 나는 그의 문장을 높이 평가하고 있어, 기교가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간결하고 읽기 쉬운 아주 좋은 문장이지. 그만큼 수많은 독자를 사로잡은 걸 보면 이미 증명된 일 아닌가?" - P135

"어째서 당신이 『얼음의 문』의 다음 이야기를 쓰고 있었을까요? 그 점에 대해 설명해주시죠."
그렇게 물었더니 그가 대답했다.
"그것도 나한테는 일종의 수업이야. 다음 이야기 전개를 내 나름대로 생각해보는 건 독자라면 누구라도 무의식적으로 하는 것이잖아? 나는 그것을 좀 더 적극적인 형태로 해본 것뿐이야 딱히 특별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 - P136

"자네는 나를 어떻게든 히다카의 고스트라이터로 만들고 싶은 모양이지만, 그게 바로 과대평가라는 거야. 나는 도저히 그런 재능이 없어. 오히려 자네 이야기를 듣고 그게 사실이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만일 자네의 추리대로라면 나는 큰소리로 외치겠지. 그 작품들은 모두 내가 쓴 것이다. 진짜 작가는 노노구치 오사무다. 그렇게 외칠 거라고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내가 쓴 게 아니야. 만일 내가 쓴 것이라면 당연히내 이름으로 발표했지. 히다카의 이름으로 쓸 이유가 전혀 없어. 그렇잖아?" - P137

히다카 구니히코가 이미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름이 났기 때문에 신인인 노노구치의 이름으로 내는 것보다 책이 더 많이 팔릴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하지만 히다카가 처음에 이름을 날리게 된 그 소설도 역시 노노구치 오사무가 쓴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작품으로 노노구치 오사무 자신이 데뷔했어도 좋았을 게 아닌가. - P138

그렇다면 역시 노노구치 오사무는 고스트라이터가 아닌 걸까. 그의 집에서 발견된 수많은 노트와 플로피디스크 등은 그 자신이 진술하고 있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는 것일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라고 나는 단언할 수 있다. - P139

"왜 노노구치는 한사코 동기를 감추려는 거지?"
보고를 다 듣고 난 뒤에 상사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게 말이에요. 살인 용의 사실을 인정할 수는 있어도 동기는 말할 수 없다고 하는 걸 보면 역시 거기에 상당한 비밀이있다고 봐야 할 것 같은데요." - P139

경감은 이 사건에 더 이상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싶지 않은눈치였다. 실은 일부 매스컴이 어디서 냄새를 맡았는지 노노구치 오사무가 히다카 구니히코의 고스트라이터였을 가능성에 대해 수사본부에 문의를 해온 것이다. 물론 당국으로서는 분명한 언급은 최대한 피하고 있다. 하지만 이르면 당장 내일이라도 조간신문에 그런 뉴스가 실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렇게 되면 다시 한동안 문의 전화에 시달려야 하는 것이다. - P140

"거기서 두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했느냐, 문제는 그거로군."
"노노구치 오사무의 수기에는 그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눈것처럼 묘사되어 있지만, 저는 앞으로의 창작활동에 관한 논의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P141

우선 지금까지의 경위를 다시 한번 간단히 설명한 뒤에, 노노구치 오사무의 집에서 찾아낸 원고 이야기를 했다. 히다카리에는 역시 크게 놀라는 기색이었다.
노노구치가 히다카 구니히코의 소설과 내용이 거의 흡사한원고를 갖고 있었던 이유에 대해 뭔가 짚이는 것이 있느냐고나는 물어보았다. - P142

"결혼하고 함께 지낸 기간이 짧았던 게 마음에 걸리신다면그건 잘못이에요. 왜냐면 나는 남편의 작품 담당자로 일했던적도 있으니까요."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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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코드가 너무 잘 찍힌다.

DVD도 있고, 다시 보니 재미있다. 모든 부분을 알고 있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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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다 읽어간다.

책이 너무 오래되다보니 중요 트릭을, 지금와선 각주로 설명을 해 줘야될 필요성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사건에서 내가 특히 주목한 것 중의 하나는 범인이 흉기로 문진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 문진은 히다카 구니히코의 작업실에 원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범인은 히다카의 집을 방문한 당시에는 히다카 구니히코를 살해할 의사가 없었다는 이야기가 된다. - P87

하지만 여기서 히다카의 문단속에 관한 것이 문제로 떠오른다. 제1발견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집 현관 및 히다카 구니히코의 작업실 문은 잠겨 있었다. - P88

감식과에서 지문을 조사한 결과로는 현관문 손잡이에서는히다카 부부의 지문밖에 검출되지 않았다. 장갑을 낀 흔적도 천 따위로 닦아낸 흔적도 없다는 모양이다. 그렇다면 현관문이 잠겨 있었던 것은 히다카 리에가 집을 나설 때 잠가둔 그대로였다고 생각해도 좋지 않을까. - P88

이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추리가 실은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범인이 그날 히다카가에 두 번 왔었다는 것이다. 첫 번째는 본래의 목적을 위해 현관문으로 찾아왔다. 그리고 범인은 일단 히다카가를 떠난 뒤에 (정확하게는 떠난 척한 뒤에 다시 두 번째로 찾아왔다. 그때 그 인물은 모종의 결의를 가슴에 품고 이번에는 창문을 통해 침입한 것이다. 모종의 결의란 말할것도 없이 살의를 의미한다. 그 살의가 싹튼 원인은 그 전의 첫 번째 방문 때에 생겼다고 하는 게 옳을 것이다. - P89

다음으로 노노구치 오사무
이 인물에 대해 생각할 때, 다소 사적인 감정이 개입되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그는 예전 직장의 선배이며 나의 씁쓸한과거를 알고 있는 이들 중의 한 사람이다. - P90

노노구치 오사무는 오시마와 함께 근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저녁 식사를 한 뒤에 히다카가로 향했다. 도착한 것은 정각 8시경 집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아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히다카 리에에게 연락. 그녀가 올 때까지 가까운 찻집 ‘램프‘에서 커피를 마시며 기다렸다. 8시 40분경, 히다카가로 돌아가자히다카 리에가 막 도착하는 참이었다. 둘이서 집 안으로 들어갔고 사체를 발견했다. - P91

당일 점심에 히다카 구니히코는 아내와 쇼핑하던 중에 햄버거를 먹었고, 소화 상태를 통해 추정한 사망시각은 오후 5시부터 6시, 아무리 늦더라도 7시 이후일 수는 없다는 결과가 나왔다.
역시 노노구치 오사무의 알리바이는 완벽하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는 건가. - P92

노노구치 오사무가 이번 사건에 대해 수기를 쓰고 있다는것은 정말 뜻밖의 일이었다. 만일 그가 범인이라면 사건의 세세한 부분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그런 글쓰기는 결코 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수기를 읽는 사이에 그런 생각이 완전히 반대라는 것을 깨달았다. - P92

하지만 이윽고 나는 그의 수기에 감춰진 몇 가지 함정을 발견하는 데 성공하였다. 게다가 재미있는 일은 그 이외에는 범인이 없다는 것을 나타내는 중요한 상황 증거까지도 그의 손으로 직접 쓴 기록에서 찾아냈던 것이다. - P93

현재 장벽이 되고 있는 것은 그의 알리바이다. 하지만 그것도 따져보면 그 혼자서 주장하는 것뿐인 알리바이라고 할 수있다. 6시쯤에 걸려온 전화가 정말로 히다카 구니히코에게서 걸려온 것인지 어떤지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이다. - P93

"문제는 증거로군."
상사는 그렇게 말했다. - P94

나아가 또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것은 동기였다. 히다카 구니히코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노노구치 오사무에 대해서도 상당한 정보를 수집해 살펴봤지만, 노노구치 오사무가 히다카를 살해할 이유는 눈에 띄지 않았다. - P94

"노노구치 선생님은 사실은 교사라는 직업을 좋아하지 않는거야. 학생 일로 골머리를 썩이거나 책임져야 하는 상황을 피하려고 저런 식으로 매사를 쿨하게 처리해버리는 거라고."
그녀에 의하면 노노구치 선생은 한시바삐 교사직을 그만두고 작가가 되기를 원한다는 것이었다. 교사들끼리의 술자리에 한 번도 나오지 않는 것은 집에서 원고를 쓰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 P95

"교사와 학생의 관계라는 건 착각 위에 성립되는 거야. 교사는 무언가를 가르치고 있다고 착각하고 학생은 뭔가를 배우고있다고 착각하지. 그리고 중요한 건 그렇게 착각하는 것이 서로를 위해 행복하다는 거야. 진실을 알아봤자 좋을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거든. 우리가 하는 일은 말하자면 교육 놀이에 지나지 않아."
어떤 체험을 바탕으로 그가 그런 말을 했는지, 거기에 대해서는 나는 알지 못한다. - P96

"그래서, 할 말이라는 게 뭘까." 찻잔을 그 앞에 내려놓으며물어보았다. 그때 내 손이 떨린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개를 들자 가가 형사도 내 손 쪽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찻잔에는 손을 대지 않고 똑바로 내얼굴을 보았다.
"실은 말씀드리기 힘든 얘기를 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 P100

"선생님 댁을…... 이 집을 수색하게 해주셨으면 합니다."
가가 형사는 괴로운 듯 그렇게 말했다. - P100

"그게 무슨 말이야? 내 방을 뒤져봤자 아무것도 안 나와."
"그러면 좋겠지만・・・・・ 분명 뭔가 나올 거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잠깐, 그건 혹시 이런 얘기인가? 자네는 히다카를 살해한 범인이 나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증거가 이 집 안에 있다...."
가가 형사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 P101

"영장은 가져왔습니다."
"수색 영장이라는 건가? 물론 그렇겠지. 하지만 그것을 보여주기 전에 이유를 말해줄 수 있을까? 그러니까 그………"
"왜 선생님을 의심했느냐, 라는 건가요?" - P102

"물론 그렇습니다만, 우리로서는 선생님의 그 증언의 근거가 전화라는 점이 마음에 걸리는 거예요. 전화라면 정말로 그 사람이 걸어왔는지 어떤지 알 수 없으니까요."
"아니, 그 목소리는 히다카였어. 틀림없어."
"하지만 그걸 증명할 수가 없어요. 선생님 이외의 어느 누구도 그 전화를 받은 게 아니니까요."
"전화라는 건 원래 그런 거잖아? 허 참, 이건 뭐, 믿어달라는말밖에는 더 할 말이 없군." - P103

"그렇지. 하지만 그걸로는 증명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로군.
전혀 다른 사람에게서 걸려온 전화를 마치 히다카에게서 걸려온 전화인 것처럼 내가 연극을 했다. 자네는 그런 말을 하고싶은 거지?"
그러자 가가 형사는 미간을 찌푸리며 입술을 깨물고 나서말했다.
"그럴 가능성을 부정할 만한 이유가 없었어요." - P104

가가 형사는 말했다. "그런데 재떨이에는 꽁초가 한 개뿐이었어요."
"응?"
"단 한 개뿐이었습니다. 히다카 씨의 작업실 재떨이에는 꾹꾹 눌러 끈 담배꽁초 하나가 있었을 뿐이에요. 후지오 미야코씨가 돌아간 게 5시 넘어서였고, 그 뒤에 집필 작업에 들어갔다면 당연히 담배꽁초가 더 많았어야겠지요. 게다가 그 단 한 개의 담배꽁초는 집필을 하면서가 아니라 노노구치 선생님과 이야기하는 동안에 피웠던 것이죠. 그걸 선생님의 수기에서 알아냈어요." - P105

"그러니까." 그가 말을 이어갔다. 히다카 씨는 혼자 남은 뒤부터 살해될 때까지 단 한 개비의 담배도 피우지 않았다는 얘기가 되겠지요. 이점에 대해 리에 부인에게 물어봤더니, 예를들어 30분이라도 집필 작업을 했다면 최소한 두세 대는 피웠을 거라는 대답이었어요. 게다가 일을 시작할 때는 특히 담배를 많이 피우는 편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한 개비도 피우지 않았어요. 자,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까요?" - P106

"히다카 씨는 낮에 쇼핑을 갔던 길에 네 갑을 사왔어요. 책상 위에는 열네 개비가 남은 담뱃갑 하나, 그리고 서랍에는 새 담배 세 갑이 있었습니다." - P106

"다시 담배 얘기로 돌아가면, 히다카 씨는 후지오 미야코와얘기할 때는 한 개비도 피우지 않았어요. 그 이유는 이미 알고있습니다. 리에 부인에 의하면, 이전에 후지오 미야코가 담배연기에 불쾌한 얼굴을 보인 적이 있어서 되도록 이야기를 좋게 풀어나가기 위해서도 앞으로 후지오 미야코 앞에서는 담배를 삼가는 게 좋겠다고 히다카 씨 본인이 말했다더군요." - P107

"선생님이 히다카 씨 집에서 나오던 때의 일을 선생님 스스로는 지난번 수기에 다음과 같이 쓰셨어요. ‘안녕히, 라는 인사와 함께 그녀는 내가 다음 모퉁이를 돌아갈 때까지 배웅해주었다. 여기서 ‘그녀‘라는 건 리에 부인입니다." - P109

"그럴까요?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부러 선생님이 사실과는 다른 이야기를 쓴 것으로 보이거든요. 즉 그런 식으로 수기를 써서 사실은 히다카 씨 집의 대문을 나서지 않고 정원 쪽으로 돌아 들어갔다는 것을 대충 얼버무리려고 했던 게 아닌가, 하고요." - P109

"좋아, 알겠어. 뭐, 그것도 괜찮겠지. 어떤식으로 추리하든그건 자네 마음이야. 근데 어차피 얘기를 듣는 김에 그 뒤의 시나리오도 좀 듣고 싶군. 정원 창문 밑으로 숨어든 나는 그 뒤에 어떻게 한 거야? 창문으로 넘어가서 느닷없이 히다카를 내리쳤나?"
"그랬습니까?" 가가 형사는 내 눈 속을 들여다보았다.
"질문한 건 나야." - P110

"그건 그렇지만 누군가 전화를 해주지 않으면 이 전화기는 울릴 수가 없잖아?" 그렇게 말하고 나는 손뼉을 따악 쳤다. "아하, 알겠어, 자네는 이렇게 말하려는 거군. 그때 나는 휴대전화를 몰래 갖고 있었다. 그리고 오시마 군의 눈을 피해 이 집에전화를 걸었다. 그렇지?"
"그런 방법으로도 이 전화기를 울리는 건 가능하겠군요." 그가 말했다.
"근데 그건 안 돼. 나는 휴대전화도 없고, 어디서 빌릴 데도 없어. 게다가………… 만일 그런 트럭을 썼다면 간단히 조사해볼수 있잖아? 전화국에 기록이 남아 있을 테니까." - P111

"네, 조사했습니다." 가가 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흠, 그래서, 결과는?"
"6시 13분에 여기선생님 댁으로 발신한 기록이 남아 있었습니다." - P112

그리고 가가 형사는 다시 덧붙였다. "이런 일은 선생님의 수기에는 없었어요. 마치 오시마 씨가 집에 오기로 오래전부터 약속한 것처럼 적혀 있었죠." - P115

가가 형사는 어느새 나를 ‘선생님‘이 아니라 ‘당신‘이라고했지만, 그런 것이 마음에 걸리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게 이 자리에 더 어울리는 호칭이었다. - P116

그는 말했다. "그건 히다카가에 있던 본래의 전화 쪽이에요.
만일 히다카 씨가 정말 이 집으로 전화를 했다면 재발신 버튼을 눌렀을 때 당연히 이곳으로 연결이 됐겠지요." - P117

"반론은 안 하십니까?" 의외라는 듯이 그가 물었다. - P117

"원고에 대한 이야기가 없군." 나는 말했다. "히다카의 컴퓨터에 들어 있던 『얼음의 문 연재물 말이야. 지금 자네의 추리가 맞는다면, 그는 언제 그 원고를 썼지?" - P118

"또 하나는…………." 그렇게 말하고 그는 내 얼굴로 시선을 돌렸다. "그 원고는 당신이 썼다는 것이죠. 그날 당신은 원고가들어 있는 플로피디스크를 히다카 씨의 집에 가져갔고, 알리바이 조작을 위해 급하게 히다카 씨의 컴퓨터에 입력했던 거예요." - P118

"그 원고를 소메이 출판사의 야마베 씨라는 분에게 보여줬어요. 야마베 씨의 의견은 이건 명백히 다른 사람이 쓴 것이다.
라는 것이었습니다. 히다카씨의 글과는 문체가 미묘하게 다르고 행을 바꾸는 방식 같은 형식적인 면에서도 다른 점이 눈에 띈다고 했어요." - P119

"자네가 찾는 것이 발견된다면 나를 체포하겠군."
"그렇습니다. 유감스럽지만."
"그 전에 ・・・・・…." 나는 물었다. "자수하는 것도 가능할까?"
가가 형사의 눈이 둥그레졌다. 그 뒤에 그는 딱 한 번 고개를 저었다. - P120

 "언제부터 나를 의심했지?" 나는 가가 형사에게 물었다.
첫날 밤부터, 라는 게 그의 대답이었다.
"첫날 밤부터? 내가 뭔가 또 다른 실수를 했나?"
"예."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 P121

"게다가 선생님은 다음 날 다시 한번 똑같은 질문을 했어요.
이 근처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할 때였죠. 그때 확신했어요. 선생님은 사건이 일어난 시각을 알고 싶은 게 아니라 경찰이 사망 추정 시각을 몇 시쯤으로 생각하는지, 그것을 알고싶은 것이라고." - P121

"아니, 나는 자살 같은 건 안 해."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이상하게도 극히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었다.
"예, 잘 부탁드립니다." 가가형사 역시 자연스러운 웃음을보여주었다.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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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하게 비범한 철학 에세이
김필영 지음 / 스마트북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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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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