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가 완전히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읽기 편하고 하다. 하지만 단순히 그 뿐이다. 동일 작가의 ‘백야행‘이 더 선호되는 것도 있지만,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가시지 않는다. 1990년 그 쯤에 만들어진 것이고, 후대에 비슷한 줄거리의 작품이 나온 것을 읽었던 것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오래된 작품에서 이와 비슷한 것을 본 느낌도 가시지 않는다.
그것과는 별개로 이야기는 잘 만들었다. 읽다가 다른 책을 본다는 생각은 들지만 이 책의 결말이 궁금해 다시 돌아오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어렸을 때부터 잘알던 친구이자 작가 데뷔 때도 큰 도움을준 히다카 구니히코를 왜 살해하지 않으면 안 되었는지, 그 점에 대해 노노구치는 결코 말하려 하지 않았다. - P125

나는 이번 범행은 계획적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건 수사본부 전체의 의견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날왜 노노구치가 마침 때를 맞춘 것처럼『얼음의 문』의 다음 연재분이 들어 있는 플로피디스크를 가져갔느냐 하는 것이 문제점으로 떠오른다. 아니, 그보다 왜 노노구치는 히다카가 써야 할 『얼음의 문』의 원고를 썼을까. - P126

그래서 우리 수사원들은 노노구치의 집 안을 다시 수색해보았다. 지난번에는 워드프로세서의 내용물과 책상 서랍을 살펴본 것뿐이라서 수색이라고 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 결과, 내 가설을 뒷받침할 만한 중요한 증거 물품 18점을압수했다. 그 내역을 보면, 두툼한 대학노트 8권, 2HD의 플로피디스크 8장, 그리고 원고 묶음 2권이다. - P127

그리고 그 노력의 결과, 놀랄 만한 사실이 밝혀졌다. 노노구치 오사무의 집에서 압수한 8권의 대학노트에 담긴 5편의 장편소설은 히다카 구니히코가 지금까지 발표한 작품과 그 내용이 하나같이 일치했던 것이다. 제목이나 등장인물의 이름, 설정 등이 약간 다른 경우도 있었지만, 이야기의 흐름 자체는 동일하다고 해도 틀림이 없었다. - P128

또한 다른 플로피디스크에는 장편소설 3편, 단편소설 26편이 들어 있었는데 장편은 모두 히다카의 작품과 일치, 단편도 17편이 동일했다. 일치하지 않은 단편소설은 이른바 아동문학의 범주에 속하는 것으로, 노노구치 오사무의 이름으로 발표된 것이었다. - P128

어떻든 이렇게 수많은 원고가 작가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의 집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은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또한 이 원고들이 히다카의 작품과 완전히 똑같은 것이 아니라 군데군데 다르다는 것도 불가해한 일이었다. 대학노트에 써놓은 소설의 경우는 여기저기 행간마다 교정한 흔적이 있어서 퇴고중이라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 P129

나는 상사에게 불려갔다. 그리고 뜻밖의 말을 들었다.
노노구치 오사무가 암에 걸렸다는 것이었다. - P130

재발한 것이냐는 내 질문에 의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그렇게 물어본 데는 이유가 있었다. 조사 결과, 노노구치 오사무가 2년 전에도 같은 병으로 위의 일부를 절제하는수술을 받았다는 게 밝혀졌기 때문이다. - P130

"아니, 특별한 동기 같은 건 없어. 자네도 말했잖아, 이번 범행은 충동적인 것이라고. 그게 맞는 말이야. 불끈 화가 나서 우발적으로 살해했다, 그냥 그것뿐이야. 딱히 얘기할 만한 이유같은 건 없다니까."
"그러니까 왜 불끈 화가 났는지 묻고 있는 겁니다. 이유도없이 화를 내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 P132

"선생님 집에서 발견한 대학노트와 플로피디스크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질문하겠습니다."
화제를 바꾸자 노노구치 오사무는 그 즉시 맥이 빠진다는기색을 보였다.
"글쎄 그건 이 사건과는 아무 관계도 없다니까? 이상한 쪽으로 연결하지 말아줘." - P133

내 말에 그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러니까 내가 그의 고스트라이터였다는 건가? 말도 안 돼.
자네가 지나친 억측을 한 거야."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앞뒤가 맞아떨어지는데요?" - P134

"그 점에 대해서는 모두 논리적으로 대답할 수 있어. 실은처음 시작할 때는 그저 단순히 베껴 쓰기만 했는데, 점점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어. 나라면 이렇게 쓰겠다. 이렇게 표현하겠다. 하는 게 머리에 떠오를 때는 그것을 써보기로 했어.
이해하겠지? 히다카의 문장을 모범으로 삼아 좀 더 나은 글을 써보자는 것이 이 연습의 목표였던 거야. 베껴 쓴 분량이 그렇게 많았던 것은 시간을 두고 착실히 공부하려고 했다는 것밖에는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어. 나는 독신이라서 집에 돌아가봤자 다른 할 일도 없고, 그래서 열심히 작가 수업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냥 그거야. 그리고 히다카의 문장이 그리 대단한 건 아니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저마다 보는 관점이 다르다고 말하고 싶어. 나는 그의 문장을 높이 평가하고 있어, 기교가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간결하고 읽기 쉬운 아주 좋은 문장이지. 그만큼 수많은 독자를 사로잡은 걸 보면 이미 증명된 일 아닌가?" - P135

"어째서 당신이 『얼음의 문』의 다음 이야기를 쓰고 있었을까요? 그 점에 대해 설명해주시죠."
그렇게 물었더니 그가 대답했다.
"그것도 나한테는 일종의 수업이야. 다음 이야기 전개를 내 나름대로 생각해보는 건 독자라면 누구라도 무의식적으로 하는 것이잖아? 나는 그것을 좀 더 적극적인 형태로 해본 것뿐이야 딱히 특별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어." - P136

"자네는 나를 어떻게든 히다카의 고스트라이터로 만들고 싶은 모양이지만, 그게 바로 과대평가라는 거야. 나는 도저히 그런 재능이 없어. 오히려 자네 이야기를 듣고 그게 사실이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만일 자네의 추리대로라면 나는 큰소리로 외치겠지. 그 작품들은 모두 내가 쓴 것이다. 진짜 작가는 노노구치 오사무다. 그렇게 외칠 거라고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내가 쓴 게 아니야. 만일 내가 쓴 것이라면 당연히내 이름으로 발표했지. 히다카의 이름으로 쓸 이유가 전혀 없어. 그렇잖아?" - P137

히다카 구니히코가 이미 베스트셀러 작가로 이름이 났기 때문에 신인인 노노구치의 이름으로 내는 것보다 책이 더 많이 팔릴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하지만 히다카가 처음에 이름을 날리게 된 그 소설도 역시 노노구치 오사무가 쓴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 작품으로 노노구치 오사무 자신이 데뷔했어도 좋았을 게 아닌가. - P138

그렇다면 역시 노노구치 오사무는 고스트라이터가 아닌 걸까. 그의 집에서 발견된 수많은 노트와 플로피디스크 등은 그 자신이 진술하고 있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는 것일까.
아니, 그럴 리가 없다, 라고 나는 단언할 수 있다. - P139

"왜 노노구치는 한사코 동기를 감추려는 거지?"
보고를 다 듣고 난 뒤에 상사는 그렇게 말했다.
"그러게 말이에요. 살인 용의 사실을 인정할 수는 있어도 동기는 말할 수 없다고 하는 걸 보면 역시 거기에 상당한 비밀이있다고 봐야 할 것 같은데요." - P139

경감은 이 사건에 더 이상 시간과 노력을 들이고 싶지 않은눈치였다. 실은 일부 매스컴이 어디서 냄새를 맡았는지 노노구치 오사무가 히다카 구니히코의 고스트라이터였을 가능성에 대해 수사본부에 문의를 해온 것이다. 물론 당국으로서는 분명한 언급은 최대한 피하고 있다. 하지만 이르면 당장 내일이라도 조간신문에 그런 뉴스가 실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렇게 되면 다시 한동안 문의 전화에 시달려야 하는 것이다. - P140

"거기서 두 사람이 어떤 이야기를 했느냐, 문제는 그거로군."
"노노구치 오사무의 수기에는 그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눈것처럼 묘사되어 있지만, 저는 앞으로의 창작활동에 관한 논의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P141

우선 지금까지의 경위를 다시 한번 간단히 설명한 뒤에, 노노구치 오사무의 집에서 찾아낸 원고 이야기를 했다. 히다카리에는 역시 크게 놀라는 기색이었다.
노노구치가 히다카 구니히코의 소설과 내용이 거의 흡사한원고를 갖고 있었던 이유에 대해 뭔가 짚이는 것이 있느냐고나는 물어보았다. - P142

"결혼하고 함께 지낸 기간이 짧았던 게 마음에 걸리신다면그건 잘못이에요. 왜냐면 나는 남편의 작품 담당자로 일했던적도 있으니까요." - P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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