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가 화제로 삼는 모든 책과 개념, 정치적 의견과 아이디어에는 저마다 배경 이야기가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반드시 지난 아이디어들의 맥락 속에서 존재하기에, 배경과 맥락을 조금 알면 그 개념을 더 쉽고자세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 P21
인지심리학의 역사는 뜻밖에도 흥미진진하다. 시기적으로도 계몽시대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이 학문 분야에는 혁명을 비롯해 치열한 의견불일치가 이어져왔으며, 학계의 거물 또한 여럿 등장했다. - P21
즉, 중요한 주제들이 무엇인지, 아는 내용과 모르는 내용이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을 연구할 수 있는지에 관해 어느 정도의 합의가 이루어져 있다는 뜻이다. - P22
대다수의 대학 웹사이트에 가보면, 심리학과에 ‘인지심리학‘에 관한 교과목이 있거나 그 주제에 관한 전반적인 연구 분야가 있을 것이다. 이런 질서정연한 결과를 대하면, 인지심리학 분야에는 어느 정도 통일성과 내적인 일관성이 있으리라는 인상을 받는다. - P22
사실 이 연구 분야들을 구분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이유를 하나 들자면, 많은 인지심리학자가 다른 분야 및 학문과 영향을 주고받는다. 어떤 심리학자들은 인지와 행동의 생물학적 측면을 연구한다. 어떤 심리학자들은 심리학 연구가 학습 향상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을지 연구한다. - P22
가령, 지각 연구가 전문분야인 심리학자와 시과학자Vision Scientist 중에는 자신들의 연구가 인지심리학 자체라고 여기지 않는 이들이 있다. 사고, 추론 및 의사결정을 연구하는 심리학자 중에는 행동경제학자라고 해야 더 알맞은 이들이 있다. 동기가 인지 과정에 미치는 효과를 연구하는 심리학자 중에는 자신을 사회심리학자라고 여기는 이들도 많다. - P23
그러나 책의 목적상 경계선을 그을 수밖에 없기에, 나는 폭넓게 정의된 다음 3분야에 집중하고자 한다. 바로 인지과학, 인지심리학, 인지신경과학이다. 이 3 분야의 관심사는 뇌와 마음이 무엇을 하는지, 뇌가 사고와 인지를 어떻게 뒷받침하는지, 아울러 그것이 어떻게 행동에 영향을 주고 특정한 행동을 유발하는지 이해하는 일이다. - P23
당연히 이 3분야는 겹치기도 하며, 이런 구분만 존재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분명 우리의 논의상 최상의 구분이며, 여러 면에서 심리학의과학적 연구에 앞섰던 예전 분야들의 후예다. - P23
즉, 내 연구 주제는 이렇다. 기억이 어떻게 일어나는가? 의사결정을 위해 마음이 어떻게 작동하는가? 어떻게 우리는 무언가를 구분하고 범주화하는가? 어떻게 우리는 어떤 일에는 주목하고 다른 일은 무시하는가? - P24
하지만 내 연구를 ‘신경과학‘이라고 칭하지는 않는다. 신경과학은 독자적인 전통과 체계를 갖춘 매우 폭넓은 학문인데, 나와는 거리가 멀다. 또한 ‘신경심리학rupsychology‘이나 ‘인지신경심리학cognitive neuropsychology‘ 이라는 용어도 사용하지 않을 작정이다. 이분야들은 인지심리학과 비슷한 면이 있지만, 뇌 연구를 임상에 적용하는방법을 다루는 편이기 때문이다. - P24
우리는 전부똑같은 것을 연구하면서 용어만 다르게 쓰고 있지는 않을까?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자신들의 연구를 설명하려고 2가지 이상의 용어를 사용하지만, 이 용어들은 결코 똑같지 않다. - P24
사고와 행동을 측정하기 위한 다른 기법이 없다면, 자기성찰은 시작하기에 나쁘지 않은 방법이다. 이 초기의 내성 전통은 흥미로운 통찰과 개념을 내놓았지만, 사실 과학적 엄밀성이 부족했다. 그래도 여전히 이 초기 연구 중 일부는 자세히 살펴볼 가치가 있다. 이후에 나온 연구에 영향을 미친 방식이 좋은 참고가 되기 때문이다. - P25
현대 심리학의 전신은 무엇일까? 뒤로 너무 멀리 가고 싶진 않으니, 유럽 계몽시대 철학자 몇부터 간략히 살펴보겠다. 예를 들어, 17세기 후반에 영국 철학자 존 로크는 중요한 업적을 남겼다. 많은 업적을 통해 당대에 영향을 끼쳤고 정치학과 경제학, 철학에 공헌했다. - P25
로크의 주장에 따르면, 마음은 태어날 때 ‘빈서판‘이다. 라틴어 표현으로는 ‘타불라라사tabula rasa‘라고 한다. - P26
우리가 어떻게 지식을 얻고 새로운 상황에 적용하기 위해 확장시키는지에 관한 로크의 사상은 데이비드 흄의 연상과 귀납에 관한 연구로 더욱발전했다. 흄과 귀납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할 말이 많지만, 우선적으로소개하자면 그의 업적은 빈 서판 개념에 관한 제약 사항을 설명했다는 것이다. 로크가 인간은 선천적으로 사고할 능력이 있다고 주장한 반면에, 흄은 그렇지 않다고 보았다. - P26
흄과 로크 이전 사람들은 생각과 사고, 관념이 선천식·천부적이라고 가정했다. 사고가 선천적이라는 이런 생각은 우리가 타고난 능력을 부모한테서 물려받는다는 가정을 훌쩍 뛰어넘는다. 생득설nativism의 신봉자가 보기에, 사고와 개념은 표현되기 이전에 이미 내면에 존재한다. - P27
데카르트가 가톨릭교도였다는 점을 떠올리니, 그가 이원론을붙들고 고심하는 모습이 쉽게 상상이 갔다. 마음을 근대적으로 이해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신이 만사에 관여하는 중세식 사고의 틀에도 들어맞는 이론을 내놓아야 했으리라. 데카르트는 경계에 걸터앉은 셈이다. - P27
사고가 내부에서 온다는 생각에 직관적으로 끌리긴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경험주의의 기본 개념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그래서 선천적 개념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 P28
그렇기에 생물학 관점에서 보더라도, 인간의 사고가 데카르트적 의미에서 선천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인식과 사고의 일부 측면을 선천적인 과정으로서 연구하는 것은 여전히 타당하다. 그렇기는 해도 우리의 사고와 관념 및 지식이 외부에서 온다는 발상에끌리는 점은 있다. 어쨌거나 우리는 생겼던 일들에 관한 기억에 기대서 행동을 계획하고 의사결정을 내린다. 우리가 어떤 언어를 쓰는 까닭은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과 상황 때문이다. - P28
이처럼 우리의 사고가 타고난 선천적 능력의 결과라고 보는 관점과 후천적 습득의 결과라고 보는 관점 사이의 긴장을 가리켜 종종 ‘본성 대양육 nature y‘s nurture‘의 구분이라고 한다. - P28
마음은 일종의 신경생물학적인 빈 서판인데, 이는 생물학에서 나온 원리들에 지배를 받으면서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규칙과 제약, 편향, 원리를 지닌 빈서판인 셈이다. 인지심리학자들은 이 서판의 작동을 관장하는 이러한 규칙과제약, 편향, 원리를 이해하려고 애쓴다. - P29
처음으로 이를 진지하게 시도한 사람은 1800년대 후반의 빌헬름 분트Wilhelm Wundt다. (중략) 물론 문제는 혈액 흐름과 내장, 뼈와 체액 등은 관찰할 수있고 관찰 내용을 기록할 수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이론을 개발할 수 있지만 생각은 그럴 수가 없다는 점이다. - P29
좋은 측정과 기록은 과학에 필수적이다. 측정과 기록이 없는 과학은 단지 짐작과 허구일 뿐이다. 산업혁명이 현대적인 20세기를 낳았듯이, 과학자들은 마음을 정량화하고 측정할 방법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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