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경제학자들의 입장


경제 성장과 인구 조절 문제나는 외면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흘러나왔다.
나약함과 실망의 눈물이었다. 여자는 왜 첫아이로 딸을 원할까?
그들은 내게서 아이를 데려갔다. 칼리가 말했다.
"신경 쓰지 마. 나중에 많이 낳을 수 있어. 네겐 시간이 많아"
-카밀라 마르간다야. 『체 안의 꿀 Nectar in a Sieve』에서


요즈음 서점은 아시아의 부상에 관해 상세하게 다룬 책들로 가득하다.  - P60

아시아의 경제호황이 과대 선전되는 것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기본적인 경제적 성과라는 수준에서 볼 때 이는 전적으로 사실이다. 한 세대 만에가난한 농민에서 도시인에 가까운 소비자로 변모한 쑤이닝 주민들도 예외가 아니다. 대륙 전체에서 빈곤율이 낮아졌다.¹ - P60

경제성장뿐 아니라 많은 아시아인이 대부분의 미국인들이 평생 인식하는 것보다 더 많은 사회적·정치적 변화를 지난 30년 동안 목격했다. 베트남,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그루지야, 네팔은 모두 지난 수십 년간 정치적 격변을 겪었다.  - P61

 한국인들은 ‘빨리빨리‘ 문화며 갈피를 잡지 못할 정도로 극심하고 갑작스러운 생존 경쟁에 대해 불평하지만 한편으로 서울의 쇼핑몰은 일중독자들의 편의를위해 새벽 4시에 문을 연다. 중국은 산업혁명 때의 서구를 능가하지는 못하더라도 비견될 정도의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 P61

개발은 어느 정도까지는 여성의 지위를 사회학 이론이 예상하는것만큼 올려놓았다. - P61

하지만 여성의 경제적·정치적 권리가 향상된 시기에 전체 인구에서 여성과 여아가 차지하는 비율은 감소했다. 인도의 페미니스트들이 의회에서 여성의 정당한 몫 이상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여성은 더는 인도 인구의 50퍼센트를 구성하지 않기 때문이다. - P62

고등교육을 받은 부부가 교육 수준이 낮은 부부보다 여아낙태를더 많이 한다는 사실에 놀란 것은 크리스토프 길모토 같은 외국인만이 아니었다. 인도의 학자들에게도 이런 모순은 충격을 주었다. - P63

1970년대 말까지 인구학을 이끈 맬서스 학파의 예측은 전 세계적으로 인구 조절과 가족계획 프로그램을 낳았고 그중 많은 프로그램에 서구의 자금이 지원되었다. (중략). 과잉 인구예방은 지구 환경뿐 아니라 성장에도 바람직하다. - P63

규제가 없는 인구 증가가 개발도상국의 자원에 무리를 주고 빈곤을 심화시킨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서구의 원조국들은 내심 가난보다는 세계의 힘의 균형과 특히 빈곤의 결과 중 하나라고 믿었던 공산주의의 확장을 더 많이 걱정했다. - P64

1952년 록펠러가 콜로니얼 윌리엄스버그에서 열린 인구문제 관련 회의에 일단의 미국 유력 인사들을 모으면서 인구 조절 운동의힘이 합쳐졌다.⁹ 가난한 개발도상국에 인구 조절책을 전달할 가능성을 논의하기 위해 윌리엄스버그인Williamsburg Inn에 모든 사람이 모이자 경제학자 이저도어 루빈이 자신들의 공통된 두려움을 표현했다. - P65

때때로 서구의 원조국들은 인구 조절 목표를 채택했는지 여부에따라 다른 형태의 원조를 함으로써 부와 소가족 간의 관계를 명명백백하게 만들기도 했다.  - P66

를 위한 식량지원법 Food for Peace Act‘에 서명했다.13) 1969년에 세계은행 총재이자 전 미국 국방장관을 지낸 로버트 맥나마라는 자문위원회에 "(전략). 의료 시설은 일반적으로 출생률 감소와 그로 말미암은 인구 폭발 방지에 기여하기 때문입니다"라고 설명했다.¹⁴ - P66

관심은 곧 광적인 상태로 고조되었다. - P66

하지만 이들이 생각해낸 일부 전략은 모욕에 가까웠다. 1967년에 디즈니는 인구협회를 위해 <가족계획 Family Planning〉이라는 단편애니메이션을 만들었는데, (후략).¹⁸ 영화에서 현대식 기기들로 둘러싸인 부유한 소가족의 가장으로 묘사되는 도널드 덕은 "가족계획을 하지 않았다면 아이들은 미래에 대한 희망이라곤 없이 병약하고 불행했을 것"이라고 말한다.¹⁹ - P67

한국전쟁 이후 미국의 영향 아래 놓인 한국에서는 군사정권이 가족계획을 경제개발 전략의 필수적인 부분으로 받아들여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출생률 목표를 명시했다.²⁰ - P67

싱가포르는 영국의 식민지일 때 처음 가족계획을 추진했다. 나중에 독재자 리콴유는 세 명 이상의 자녀를 낳은 부부에게 세금을 원천징수하고 주택수당을 지급하지 않게 했으며 넷째와 다섯째 자녀 출산을 "반사회적 행위"로 여겼다.²¹ - P67

서구의 기관들은 중국에도 영향을 미쳤다. 중국의 인구 조절책은한 자녀 정책으로 절정에 달했다. 1966년 시작된 중국의 문화혁명은 세계와 고립된 채 10년 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나 1960년대와 1970년대에 고립된 국가였음에도 중국은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나라였고 인구 조절 지지자들은 중국을 잊어버리지 않았다. - P68

사실 중국공산당에게 엄격한 인구 정책은 갑작스러운 이념 전환을 뜻했다. 맬서스는 한때 반공산주의자로 악마 취급을 받았고 1974년만 해도 중국은 인구 위기가 개발도상국에 대한 원조를 거부하기 위해 지어낸 ‘허위 경보‘라고 항의했다.²² - P68

 한 자녀 정책의 검토에 참여했던 상하이 사회과학원의 경제학자랑중탕은 "선진국들은 로마클럽의 견해를 개발도상국에 확산시켰"다고 말했다.²⁴ - P69

중국 관료들은 출생률을 낮추는 것이 1인당 국내총생산을 늘리는 투박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생산성을 높이는 일은복잡하지만 그 성과를 나누는 사람의 수를 줄이는 것은 달성 가능하다고 믿었던 것이다.³³ - P72

1980년 9월 25일에 발표될 때부터 한 자녀 정책은 중국이 선진국대열에 합류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게 설계되었다. 어떤 면에서 그 의도는 성공을 거두었다. - P72

1950년대 일부 분석가들의 가정과 달리 총출생률은 무한정 계속상승하지 않았다. 한 국가의 사망률은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국가가 개발을 향해 나아간다면 어느 지점에서 출생률이 사망률과 같은 수준으로 떨어진다 - P73

이런 현상이 어느 정도 변형된 형태가 구소련 공화국들과 동유럽일부에서 나타났다. 철의 장막이 내려지고 동유럽권 국가들이 힘들게 경제 개편을 추진하면서 사람들은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아이를덜 낳거나 결혼을 미루었다. - P74

경제개발은 그 결과로 탄생한 도시화, 교육, 새로운 직업 기회와더불어 부모들의 성차별을 약화시켰을 수도 있다. 하지만 개발에 출생물 급락이 동반되었기 때문에 각각의 출생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부모들이 여아 태아를 낙태할 가능성은 증가했다. - P74

3장  경제학자들의 입장

1. India: Achieving Rapid and Inclusive Growth, Sustainable Development, http://tinyurl.com/2g2fjgp.

9. Matthew Connelly, "Population Control in India: Prologue to the Emergency Period", Population and Development Review, December 2006, 633

14. Connelly, Fatal Misconception, 263.

18. Connelly, Fatal Misconception, 264.

19. Goldberg, Means of Reproduction, 71,

20. Seungsook Moon, Militarized Modernity and Gendered Citizenship in South Korea (Durham, NC: Duke University Press, 2005), 81.

21. Connelly, Fatal Misconception, 181, 265.

22. John Shields Aird, Slaughter of the Innocents: Coercive Birth Control in China (Washington,
D.C. AEI Press, 1990), 6.


24. Hvistendahl, "Has China Outgrown", 1458.


33. Hvistendahl, "Of Population Projections". - P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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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눈을 뜨니 콘크리트 바닥 위에 비스듬히 누워 있었다. 벌거숭이였다. 양팔이 욱신거렸지만, 움직이려고 하자 차가운 금속이 팔목을 압박한다. 주위를 둘러보니, 내가 있는 곳은 작고 좁다란 창고였다. - P121

P5는 나의 현 위치를 모르고 있었다. (중략). 그러나 시간은 정확히 알고 있다고 P5는 주장했다. 1월 5일, 15시 21분이다. - P121

뒤늦게 머릿속에 들어 있는 <BDI> 본사 건물의 내부 배치도에서 이 방과 치수가 일치하는 방을 찾아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 결과, 각 층마다 이런 방이 하나씩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 P122

좋다. 난 여기서 도망칠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어떤 자들을 상대하고 있는 것일까?
<BDI>가 광고 문구 그대로 생물의학 분야의 위탁 연구기관일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 있었다. 단지 유괴 행위에 가담하는 일에도 주저하지 않는 종류의 연구기관이다.  - P122

이런 가설이 점점 더 그럴듯하게 느껴지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의 목록이 점점 길어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케이시의 증언. 이 건물 지하실의 구조. 특별히 고안된 감옥을 에워싼벽들 사이로 로라가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다는 사실. 이런 일들은 단 하나의 새로운 가설로서 모두 설명될 수 있다. - P123

로라는 힐게만 병원에서 정말로 탈출했던 것이다. 자력으로 두번씩이나. 바로 그 탓에 유괴당했던 것이다. - P123

만약 로라가 통상적인경비 대상이 아니라 어떤 실험의 피험자 취급을 받고 있었다면, 그녀가 전혀 다른 시스템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 P123

모두 완벽하게 아귀가 들어맞는다.
유일한 문제는, 나 자신이 그런 가설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로라는 도대체 어떤 종류의 능력을 가지고 있길래, 잠긴 방에서 아무런 도구도 없이 탈출할 수 있었단 말인가? - P124

사내는 문간에 서서 총으로 나를 겨냥하고 있었다.
"옷을 입어."
어젯밤 들었던 목소리다. 얼굴에는 아무런 표정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잘난 척하지도 않고, 호전적이지도 않다. - P125

느닷없이 여자 목소리가 말한다.
"누가 당신을 고용했지?"
몇 미터 떨어진 곳에서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고 있다.
"몰라." - P126

"사실대로 얘기하고 있어. 난 의뢰인의 이름을 몰라. 익명의 인물에게 고용됐으니까"
"그리고 그 익명 뒤의 인물이 누구인지를 알아내지 못했다?"
"그건 내가 의뢰받은 일이 아냐" - P127

동료가 있다고 거짓말을 해보았자 금세 들통이 날 것이 뻔하다. 위장되고 완벽하게 방호가 된 소프트웨어를 공공 네트워크상에서 돌리고 있으며, 내가 실종될 경우 모든 정보를 뉴홍콩 경찰에게 전달하도록 지시해 놓았다고 할 수도 있었다. - P128

"우리가 여기서 하고 있는 일에 관해서는 뭘 알고 있지?"
"광고에 나와 있는 것들밖에는 생물학 분야의 위탁 연구"
"그럼 우리가 왜 로라 앤드루스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지?"
"아직 해답을 얻지 못했어."
"하지만 가설은 세웠을 거 아냐." - P128

내가 진실에 관해 얼마나 무지한지를 증명해 줄 터무니없는 가설은 얼마든지 있었다. 나는 지난 여드레에 걸쳐 내 머리를 스쳐 지나갔던 모든 가설들을, 아무리 불완전한 것이라도 빠뜨리지 않고 되풀이해 말했다. <X>사와 선천성 장애 소송과 탈출의 명인 로라에 관한 가설은 제외하고 말이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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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수건으로 손을 닦으면서 가즈마는 카운터 너머로 시선을 내달렸다. 요코와 똑같은 소매 달린 앞치마 차림의 여자가 서 있었다. (중략).
아버지는 저 두 사람을 보려고 찾아왔었다. 33년 전에 자신이 범한 살인 사건으로 누명을 쓰고 남편과 부친을 잃은 두 사람을. - P204

생맥주를 내왔을 때 아메미야가 요리를 주문했다. 닭 날개, 된장어묵 등의 아이치현 향토 요리를 선택해주었다.
(중략). 잔을 맞부딪치고 하이볼을 입에머금었다.
무심코 카운터 쪽을 보다가 가즈마는 가슴이 철렁했다.
아사바 오리에와 눈이 마주쳤기 때문이다. - P205

우연히 시선이 마주친 건가. 아니면 그 전부터 그녀가 가즈마를 보고 있었던 건가. - P205

23

(전략).
"어제 검찰청에 가서 담당 검사를 만나고 왔어요." 사쿠마가 말했다. "공판 전 정리 수속은 별문제 없이 잘 진행되는 모양이에요. 그리고 피해자 참여에 관련해 변호인 측에서 피고인이 크게 반성한다는 것을 유족분들께 확인드릴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요청이 들어왔어요." - P206

3일 전에 사쿠마에게서 받은 자료였다. 검사가 갖고 있던 증거 등의 기록을 등사한 것이다. 범행에 이른 동기, 범행의 구체적 내용 등이 기록되어 있었다. (중략).
그 기록을 통해 미레이와 아야코는 마침내 이번 사건의 전모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 내용은 천만뜻밖의 것이었다. 무엇보다 까마득한 옛날의 살인사건에서부터 일이 시작된 것이다. (중략). 구라키다쓰로는 자신이 그 사건의 진범이었다고 자백했다고 한다.  - P207

실은 서류를 읽어본 뒤에 두 사람이 똑같은 느낌을 가졌던 것이다.
(중략).
"이건 남편 얘기가 아닌 것 같아요." 아야코가 말했다.
(중략).
"그러니까 그게……." 아야코는 파일을 펼쳐 해당 페이지를 가리켰다. "속죄하는 방식에 찬성할 수 없다. 진실을 밝혀야 한다, 라고말했다는 부분이에요. 아무래도 이건 남편답지 않은 얘기예요." - P207

옆에서 미레이가 말을 끼웠다. "아버지에게 이런 사고방식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그런 식으로 무턱대고 정의를 내세우는 사고방식, 이건 전혀 우리 아버지답지 않아요. 물론 사망한 뒤에야 유산을 증여한다는 속죄 방법은 제 생각에도 만만한 짓이에요. 진심으로 사죄할 마음이 있다면 모든 것을 고백해야 한다, 라는 게 정론이겠죠. 하지만 그걸 못하는 게 인간이라는 거, 아버지는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었어요. 이런 식으로 구라키라는 사람을 몰아붙였다는 건 도저히 이해를 못하겠어요." - P208

"검사에 의하면, 변호인은 사실관계를 놓고 다툴 생각은 없는 모양이에요. 쟁점은 아마 계획성이 될 거예요. (후략)."
하지만, 이라고 사쿠마는 미레이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을이어갔다.
"방금 그 말씀을 들어보니, 당일의 시라이시 씨의 태도 이전에 구라키 피고인의 상담에 대한 반응 자체가 시라이시 씨답지 않다, 라는 얘기인 것 같네요." - P209

"하지만 편지 얘기도 이상해요." 미레이는 말했다. "편지로도 몇 번이나 아버지가 추궁을 했다고 나와 있던데요." - P209

"검사도 그게 미심쩍다는 얘기는 했었어요. 심리적으로 코너에 몰린 것을 강조하려고 자의적으로 지어낸 얘기인지도 모른다고. 다만 그 편지가 증거로 제출될 리는 없기 때문에 따로 문제 삼을 생각은없다고 했습니다." - P210

"누명을 쓰고 자살한 사람의 유족에게 사죄하려는 건 나름대로올바른 감정이겠죠. 게다가 고생스럽게 찾아내 일부러 아이치현에서 정기적으로 상경했었다니, 웬만한 마음가짐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에요. 근데 그만큼 남을 배려해줄 줄 아는 사람이 어째서 이런 살인을 저질렀는지…………. 충동적인 것이라면 그렇다 쳐도 이번 일은 계획적이었잖아요. 정말 어떤 사람인지 종잡을 수가 없어요." - P211

 사쿠마는 말했다. "유족인 아사바 씨 모녀 말인데, 딸 오리에 씨가 마흔 살 전후의 나이에 독신이에요. 구라키 피고인이 연애 감정을 품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겠죠." - P211

미레이의 물음에 사쿠마는 고개를 천천히 좌우로 흔들었다.
"갑작스럽게 그런 말을 들어봤자 실감이 안 난다. 구라키 씨는 우리에게는 항상 좋은 손님이었고 정말 잘해주셨다는 마음밖에 없다, 라고 아사바 요코 씨가 대답했다는 거예요. 그 말을 듣고 검사는 아사바 씨 모녀를 법정에 불러낼 마음이 싹 사라졌대요. 검찰 측에 도움이 안 되는 증인은 부를 필요가 없으니까요." - P212

23

(전략).
즉각 근처 서점에서 《주간세보》를 사 들고 카페에 들어가 읽기시작했다.
꽤 큰 기사였다. 제목은 ‘공소시효 만료, 처벌할 수 없는 살인자들의 그 후‘라는 것이었다. 작성자는 난바라라는 프리랜서 기자였다. - P214

그 다음 기사는 문단을 바꾸어 이어진다.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2010년 4월 27일에 폐지되었다. 하지만 이 개정법률은 그 시점에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된 사건까지는 대상에 포함하지 않는다. 즉 1995년 이전에 살인을 저질러 공소시효가 만료된 범인들은 일반인과 똑같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극단적인 사례로는, 범행일이 1995년 4월 28일이라면 앞으로 범인을 체포해 처벌할 수 있지만 그 전날인 27일의 살인자라면 영구히 처벌할 수 없다. 이런 부조리한 일을 과연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거기까지 읽고, 이걸 들고 나섰구나, 라고 고다이는 당황스러웠다. - P215

그다음에는 공소시효가 만료된 과거의 살인 사건에 대해 취재한 내용이 등장했다. (중략). 취재에 응한 유족이 있었는지 그들의 목소리를 담아낸 뒤에 ‘공소시효 만료로 범인을 처벌할 수 없는 다른 한편에는 여전히 고통 속에 살아가는 유족이 존재한다. 그들의 깊은 상처에 공소시효따위는 없는 것이다‘라고 역설하고 있었다. - P216

‘(전략).
이번에 그 유족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했지만 "조용히 지내게해달라"는 답변만 돌아왔다. 그러나 진범 대신 억울한 누명을 쓰고오랜 세월 동안 범죄자 가족이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며 온갖 고통을겪어왔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후략).‘ - P217

"예전 직장 동료에게서 얘기를 들었다던데요."
"그런 모양이지. 구라키의 과거 사건이 살인 범죄라고 추측했다면 기사에도 나온 것처럼 1995년 이전이라는 얘기잖아. 그렇게 시기를 잡고 당시에 구라키와 교류했던 사람을 훑어봤겠지. 그것도 까다로운 작업이었을 텐데 이 프리랜서 기자, 대단한 행동파인 것 같아." - P218

흥, 하고 고다이는 코웃음을 쳤다. 사마리
"상식적으로 피의자 가족이 이런 취재를 받겠냐고, 대부분 노코멘트지."
"조금이라도 아버지의 재판에 유리해진다면, 이라고 생각한 거 아닐까요?" - P219

"범인이 잡혔는데도 이래저래 꼬리를 길게 끄는 사건이군요." 나카마치가 우울한 어조로 말했다.
"살인 사건은 항상 그래. 그렇다고 우리까지 질질 끌려다니다가는형사 노릇은 못 해. 이제는 입 다물고 재판의 향방을 지켜보는 것밖에 없어."고다이는 비어버린 나카마치의 유리잔에 맥주를 따라주면서 말했다. - P220

(전랴기.
가자, 라면서 고다이가 발길을 돌리려고 했을 때, 빌딩에서 한 남자가 나왔다. 나이는 50세 이전인 것 같았다. 약간 퉁퉁하고 키는 그리 크지 않다. 각진 얼굴에 금테 안경을 쓰고 있었다.
나카마치가 고다이의 귓가에 입을 바짝 댔다. "저 사람, 구라키의 변호인이에요."
(중략)
"그래? 근데 무슨 볼일이 있어서 여기에……………."
우연일 리는 없다. - P221

소매 달린 앞치마 차림의 아사바 요코가 달려와 "아이구, 미안한데 마지막 주문이 ・・・・・・"라고 얘기한 참에 말과 발을 동시에 멈췄다.
고다이의 얼굴을 알아봤기 때문이다.
"마지막 주문이 11시였지요? 그거면 됩니다." 고다이는 식당 안을 둘러보았다. 테이블석 쪽에 두 팀의 손님이 남아 있었다. "가능하면 카운터석으로 부탁합니다." - P222

고다이는 테이블석 쪽을 살펴보았다. 손님 두 팀이 각자 얘기로 흥이 올라서, 당연한 일이지만 카운터 쪽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조금 전에 이 건물에서 호리베 변호인이 나오는 걸 봤는데요." 고다이는 오리에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 P223

"우리 가게를 감시했어요?" 오리에가 물었다. 이고다이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왜 감시를 하겠습니까, 이제 그럴 이유도 없는데 그냥 지나가다 우연히 봤어요. 그래서 잠깐 들러보기로 한 거고."
오리에는 요코를 돌아보았다. 형사의 말을 믿어도 될지, 눈으로 상의하는 것이리라. - P224

"편지를 들고 오셨어요." 도마에 몸을 숙인 채 오리에가 작은 소리로 말했다.
"편지?"
"구라키 씨한테서 받은 편지를 전해주러."
"아, 그런 거였군요."
구치소에서 외부에 편지 우송도 가능하지만, 변호사가 대신 전해주는 경우도 많다. - P224

• "고다이 형사님은 다 알고 있었지? 구라키 씨가 히가시오카자키사건의 진범이라는 거. 그걸 다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우리 얘기를 들으러 왔었던 거야. 어때, 그렇지?"
"위에서 그렇게 지시가 내려왔거든요." 변명 같은 말투가 되는 것을 고다이는 자각했다. - P225

"그렇다고 구라키 씨가 미웠느냐 하면 그건 솔직히 잘 모르겠어. 우리한테는 정말로 잘해줬고, 참 좋은 사람이었어. 아니, 지금도 난 그렇게 생각해. 모두 다 뭔가 말 못 할 부득이한 사정이 있었겠지. 본바탕이 악한 인간이었으면 누명 쓰고 자살한 사람과 그 가족을 그렇게까지 걱정했겠어? 우리 찾아내는 것도 엄청 힘들었을 텐데? 검사님은 내가 구라키 씨 욕이라도 해줬으면 하는 눈치입니다만." - P225

기사에는 ‘조용히 지내게 해달라‘라고 적혀 있었는데, 실제와는뉘앙스가 크게 다르다.
"구라키 씨가 이 식당 단골이었던 것을 그 기자도 아는 눈치였습
"니까?"
"글쎄, 그건 물어보질 않아서 모르겠네. 근데 알았다면 훨씬 더 철썩 들러붙었을걸."
그건 그렇다고 고다이도 동의했다.  - P226

"충격받고 식당 문 닫은 건 아닌지, 이상한 소문에 손님이 끊긴 건아닌지, 구라키 씨가 이래저래 걱정을 했던 모양이야."
(중략).
"그래서 내가 그 변호인한테 말했어, 구라키 씨에게 이렇게 전해달라고, 우리는 괜찮으니까 부디 건강 조심하고 제대로 죄 갚음을 하시라고."
그렇게 말하는 요코의 얼굴을 보면서 고다이는 흠칫했다. - P227

남자는 고다이 쪽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조용히 옆의 테이블석에앉았다. 신경 쓰지 말라는 듯이 곧장 스마트폰을 꺼내 들여다보고있었다.
고다이 씨, 라고 요코가 말했다. "오늘 고마웠어. 다음에 또 오셔잘 살펴 가."
아무것도 묻지 말고 얼른 돌아가라, 라는 뜻이라고 눈치를 챘다. - P228

28

(전략).
거실 테이블을 끼고 마주 앉자 "우선 문의하셨던 것부터 얘기하지요"라면서 호리베는 가방에서 《주간세보》를 꺼냈다. "아까 오후에 편집부 쪽에 전화를 했습니다."
"어떻게 됐습니까?"
흠, 하고 호리베는 마뜩잖은 표정으로 턱을 끄덕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항의는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정정 기사는 낼 수 없다는군요." - P229

"난바라라는 기자의 휴대용 녹음기. 거기에 가즈마 씨와의 대화를녹음했다는군요. 편집부로서도 대충 지어낸 기사라면 실을 수 없고, 가해자 가족의 발언에 틀린 부분이 있으면 큰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녹음 내용으로 팩트 체크를 했다는 모양이에요."
"거기에 내 목소리가 남아 있었다고요? 이런 식으로 얘기했다는?" - P230

"......짐작되는 게 있는 모양이군요." 호리베가 딱하다는 듯한 눈빛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건 유도질문에 걸려들어 튀어나온 말이지 제 진의는아니었어요." - P230

"그게 인터넷일 경우에는 어떻게 하지요? SNS로 해명하면 될까요?"
가즈마의 질문에 호리베는 눈이 둥그레져 아니, 아니, 라고 손을내저었다.
"그건 안 됩니다. 불에 기름을 붓는 꼴이 될 뿐이에요. 지금은 아무것도 안 하는 게 최상의 방책입니다. 재판에도 도움이 될 게 하나도 없으니까." - P231

그렇다면 법적 조치를 취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야마가미는 말했다.
"변호인과 상의해서 출판사에 항의하도록 하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뒤 곧바로 호리베에게 연락했다.
"알겠습니다. 기사를 확인해보고 출판사에 항의하도록 하지요." - P232

호리베는 고개를 크게 좌우로 흔들었다.
"영업시간 중이라서 여유 있게 대화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두 분 다 구라키 씨의 건강을 몹시 걱정하고 있고,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우리 편이 되어줄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우리 편?" - P233

호리베는 슬쩍 몸을 내밀며 말했다.
"아니, 누명을 쓴 것 자체는 구라키 씨와는 관계가 없어요. 어디까지나 경찰의 실수였습니다. 구라키 씨가 자수할 기회를 놓친 것도 그 탓이라고 할 수 있죠. 혹시 <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를 봤나요?" - P234

"지난번 그거, 아버지에게 물어보셨는지……………."
"그거, 라면?"
"히가시오카자키 사건에 대한 거요. 가족에게 평생 숨길 생각이었는지 아니면 언젠가는 털어놓을 생각이었는지, 아버지에게 물어봐주십사고 부탁드렸었는데요."
"아, 그거?" 호리베는 금테 안경을 손끝으로 쓰윽 올렸다. "구라키씨 본인에게 확인했어요. 대답은 이렇습니다. 밝힐 수 있을 리가 없다. 그 비밀은 무덤까지 갖고 갈 생각이었다……………." - P235

"아버지는 아직도 나를 만날 마음은 없는 거네요"
"계속 설득하고 있는데, 마주할 면목이 없다. 인연을 끊어도 좋다. 오히려 끊어주기를 바란다, 라는 말만 되풀이하시는군요."
가즈마는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피잉 현기증이 나는 것 같았다. - P236

그러면 나는 이만, 이라면서 호리베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변호인님,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요?"
호리베는 입을 딱 다물고 생각에 잠긴 얼굴을 하더니, 팔을 내밀어 가즈마의 어깨를 두드렸다.
"지금은 그저 오로지 견디는 것뿐입니다." - P237

25

약속 장소는 아카사카 호텔의 라운지였다. 약속 시간보다 10분쯤 일찍 도착했다. 상대의 모습은 아직 보이지 않았다.
점원이 인원수를 물어서 두 명입니다, 라고 미레이는 대답했다. "되도록 구석 자리가 좋은데요."
(중략).
스마트폰에서 마음에 걸리는 뉴스를 발견한 것은 오늘 아침 이른시간이었다. 《주간세보》의 기사에 대한 논평으로 인터넷에 비난 댓글 쇄도, 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방송에서 논객으로 활약하는한 시사평론가가 이번에 발매된 《주간세보》의 ‘공소시효 만료, 처벌할 수 없는 살인자들의 그 후‘라는 기사에 대한 논평을 SNS에 올리자 그 내용을 비난하는 의견이 쇄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 P239

《주간세보》의 기사는 미레이도 봤었다. 난바라라는 기자 이름도기억났다. (중략).
하지만 기사를 읽고 석연치 않은 느낌이었다.  - P239

유일하게 시선을 끈 것은 구라키 아들의 발언이었다. 아버지의 과거 사건에 대한 처벌은 끝났다고 생각하고 싶다. 라고 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가족으로서 당연한, 그야말로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 P240

시사평론가의 그 글을 읽고 비난이 쇄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웃기는 법 제도 덕분에 처벌을 면한 살인범을 옹호하는 것이냐, 유족의 입장에서 생각해봐라, 라는 비판이 속속 올라오는 모양이었다. - P240

"하지만 그 기사를 본 사람들은 아버지의 행동이 이러니저러니, 자기들 마음대로 상상하고 판단하겠죠. 시사평론가가 SNS에 올린 글에 비난이 쇄도한다고 해도 저는 그리 기분이 좋지는 않았어요."
사쿠마는 잠시 생각에 잠긴 얼굴을 한 뒤에 고개를 끄덕였다. - P242

담당 검사는 넓은 이마와 높은 코가 특징적인 인물이었다. (중략).
직접 느낀 대로 얘기하는 게 좋다, 라고 사전에 사쿠마가 알려주었기 때문에 미레이는 수사 기록의 등사본을 살펴보고 가졌던 의문, 즉 시라이시 겐스케의 언동으로 알려진 부분이 전혀 아버지답지 않다고 느낀 것 등을 이마하시에게 솔직히 말해보았다. - P242

"아뇨, 말투 같은 게 아니라 애초에 아버지가 그런 식으로 대응할리 없다는 거예요. 공소시효가 만료된 사람의 과거를 추궁했다느니 폭로하려고 했다느니, 저는 그게 무슨 얘긴지 전혀 납득이 안 돼요"
흐음, 하고 이마하시는 신음 소리를 냈다. - P243

"그게 거짓말일 수도 있다고요."
"그건 그렇죠. 하지만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에요." - P244

"아니, 달라지지 않아요. 과정이 어찌 됐든 공소시효가 만료된 과거의 살인을 깜빡 털어놓은 것을 후회하고 입막음을 하기 위해 살해했다, 라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습니다. (후략)."
이해하셨습니까, 라고 이마하시가 물었다. - P245

"아사바 씨 모녀에 관한 건 어때요? 피고인을 그리 미워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요."
"그 모녀를 증인으로 부를 예정은 없습니다. 어쩌면 변호인 측에서 희망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모녀가 법정에서 어떤 증언을 하건 구라키 피고인이 과거 사건을 반성한다는 증거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해요. (후략)." - 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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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를 끝내고 스마트폰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려는 순간, 메일 도착 표시가 눈에 들어왔다. 이번에도 아메미야가 보내준 것이었다.
‘아픈 건 아닌지 걱정이다.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라.
그리고 SNS는 중단하는 게 좋을 거 같다. 단 한 줄도 읽지 마. 인터넷 세상에 내 편은 없어. 단 한 명도계정 삭제를 추천한다.‘
스마트폰을 손에 든 채 가즈마는 한숨을 내쉬었다. 친구의 고마운 - P180

19



오전 10시에서 2분이 지났을 때, 자동문이 열리고 백발의 마른 남자가 로비로 들어섰다. 고가의 블루종을 입고 있었다.
시라이시 미레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웃는 얼굴을 지으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 P180

<메디닉스 재팬〉은 회원제 종합의료기관이다. - P181

곁에 둔 가방에서 작은 진동음이 울렸다. 미레이는 스마트폰을 꺼내 고객들에게 보이지 않게 데스크 밑에서 화면을 확인했다. SNS메시지를 보내온 것은 어머니 아야코였다.
‘오늘 저녁에 사쿠마 선생님이 집에 오시기로 했어. 19시쯤.‘
알았어요. 라고 즉시 답장을 보냈다. 스마트폰을 가방에 챙겨 넣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등을 꼿꼿이 폈다. - P182

(전략).
아무나 들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라는 것은 개인정보를 다루는 업무이기 때문이다. 인선에 무엇보다 중요한 점이 ‘신용할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물론 이 경우, 신용할 수 있는 사람은 미레이 자신이 아니라 시라이시 겐스케 변호사였다. 그럴 만큼 믿음을 쌓아온 아버지를 미레이도 존경하고 있었다. - P183

아버지가 스키를 취미로 하고 있어서 미레이도 어린 시절에는 거의 해마다 데려가곤 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스키를 타지 않았고 가족이 함께 간 적도 없었다. 그래서 눈이 얼마나 내리든 거의 아무 관심도 없었다.
"별로 안 내리지 않을까. 온난화 영향도 있고." 그렇게 무심히 대답했던 게 기억난다. 게다가 아버지 얼굴은 쳐다보지도 않고. - P184

그날 저녁 때 미레이가 집에 돌아가자 어머니 아야코가 이상하다.
이상하다. 라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었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는데 호출음만 울릴 뿐 연결이 안 된다고 했다.
"스마트폰을 어딘가에 놔두고 잊어버린 거 아냐? 휴대전화 쪽으로 걸어보는 게 어때?" - P184

뭔가 착오이기를 빌었지만 그 바람은 경찰서 안치실에서  무너져내렸다. 평안, 이라고 할 만한 표정으로 눈을 감고 있는 사람은 그 전날 아침에 스키장의 눈을 걱정하던 내 아버지가 틀림없었다. - P185

어떻게 된 거예요, 무슨 일입니까, 라고 안치실까지 안내해준 경관에게 연달아 물었지만 난처한 듯한 얼굴로, 현재 수사 중입니다, 라는 대답만 되풀이할 뿐이었다. - P186

고다이는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접했을 때의 일을 확인한 뒤, 최근에 평소와 다른 점은 없었는지 등을 물었다. 하지만 미레이에게는 짐작되는 게 아무것도 없었다. - P186

다만 피고인을 변호하는 입장이라서 피해자 측 사람에게서 원한을 사는 일도 있었던 게 아니냐, 라는 말을 들었을 때는 미레이가 반론에 나섰다. - P187

미레이와 아야코는 서로 마주 보았다. 이 집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장소고 아버지의 입을 통해 들은 적도 없었기 때문에 그렇게 대답했다.
형사들은 돌아갔다. 그 등짝에 ‘수확 없음‘이라고 쓰여 있는 것 같았다. - P187

고다이의 목적은 구라키의 진술 일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중략).
그런 얘기를 시라이시 겐스케에게서 들은 적이 있느냐고 고다이는 물었다.
여기에서도 미레이는 아야코와 얼굴을 마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둘 다 처음 듣는 얘기였다. 그뿐만 아니라 시라이시가 혼자 야구장까지 경기를 보러 갔다는 것 자체가 뜻밖이었다. - P188

(전략).
기사를 읽고 아연했다. 이런 어이없는 이유가 범행 동기란 말인가. 아버지가 누군가에게 원한을 살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런 이유를 댈 줄은 생각도 못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동기가 어이없었기 때문이 아니다.
마음에 걸린 것은 ‘직접 모든 것을 밝히는 것이 진정성 있는 태도라는 말을 듣고‘라는 부분이었다. - P189

"네 아버지 이미지와는 전혀 다르지? 네 아버지는 상대가 절박해질 만큼 궁지에 몰아넣을 분이 아니잖니." 그렇게 말하고 아야코는 이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이 기사만으로는 모르겠다. 실제로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얘기를 들어보지 않고서는 섣불리 판단할수 없어." - P190

아야코에 의하면, 만일 그 제도를 이용한다면 모치즈키가 지원 담당자를 소개해주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유족이 재판에 참여한다고해도 법률에 무지한 일반인이 복잡한 절차 등을 직접 처리한다는건 무리한 얘기다. - P191

살해 동기가 공식적으로 발표된 뒤로 취재 요청이 거의 매일같이 들어왔다. 며칠 전에도 난바라라고 이름을 밝힌 프리랜서 기자가 집까지 찾아와 잠깐이라도 좋으니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끈덕지게 졸랐다고 한다.
"시라이시 겐스케 씨는 공소시효 만료로 면죄부가 주어지는 건아니라고 생각하셨던 것 같은데요, 그런 견해를 뒷받침할 만한 일은없었습니까?" 현관 앞에서 그런 식으로 물었다는 것이다. - P191

20


오후 7시 정각에 인터폰 차임벨이 울렸다. 아야코가 수화기를 들고 "네, 들어오세요"라고 답했다. (중랴).
잠시 뒤 문이 열리고 아야코의 뒤를 따라 자그마한 몸집의 여자가 나타났다. 짧은 머리에 큼직한 검은 테 안경을 썼다. 30대 중반으로 보이지만 조금 더 많은지도 모른다. - P192

"의사 가족이라고 모두 의학을 잘 아는 것은 아니죠. 게다가 비교적 새로운 제도라서 변호사 중에도 아직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아요." 명쾌한 어조로 사쿠마는 말했다. "한마디로 말씀드리면, 피해자나 유족이 내부로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라는 것이겠지요." - P193

"이를테면 어떤 것을 정하면 될까요?" 미레이가 물었다.
"우선 양형이에요. 검찰 측도 나름대로 구형을 하지만, 그와는 별도로 피해자 참여인도 구형을 할 수 있으니까요."
"그 구형이 검찰 측과 달라도 되나요?"
"네, 가능합니다. 살인 사건의 경우……." 사쿠마는 잠시 머뭇거리는 표정을 보이다가 말을 이어갔다. "검찰의 구형과는 상관없이 유족이 극형을 원하는 일도 드물지 않습니다." - P194

"신청서를 제출하면 재판소에서 회답이 올 거예요. 이번 사건의경우에는 허가가 나지 않는 일은 없을 겁니다. 거기서부터 모든 게시작됩니다. 아, 공판 전 정리 수속은 알고 계세요?"
"그것도 조금 공부했어요." 아야코가 말했다. "재판 전의 준비 말이지요?" - P195

"네. 피해자 참여제도라는 게 생겼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아마 아버지도 그런 일은 하신 적이 없는 것 같아서…………."
"그러실 거예요. 변호사 중에서도 특이한 케이스니까요. 무엇보다재판 때 검찰 측 자리에 앉게 됩니다. 근데 저는 사실 그쪽이 더 익숙해요." - P196

21

벽쪽 자리에 나란히 앉은 두 여고생의 움직임이 가즈마는 아까부터 자꾸 마음에 걸렸다. 스마트폰을 보면서 둘이 뭔가 속닥거리고 있다. 그녀들의 시선이 이따금 자신에게로 향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 P197

하지만 누군가 실제로 말을 걸어온 것도 아니다. "당신, 구라키 용의자의 아들이지?"라고 느닷없이 캐묻는 사람 따위, 없었다.
그런데도 내내 마음이 불안했다. - P198

친구의 말에 가즈마는 쓴웃음을 지었다.
"말만으로도 고맙다만, 항상 바빠서 쩔쩔매는 너한테 그런 부탁은못 하겠다. 오늘은 아주 특별한 경우야." 그런데, 라고 가즈마는 말을 이었다. "회사 쪽은 어때, 요즘 시끌시끌하지 않아?"
아메미야는 종이컵을 손에 들고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도 않아. 회사 안에서 사건 얘기는 금지사항이야. 한동안 언론 쪽 인간들이 회사 현관 앞에서 어슬렁거렸는데 요새는 그것도안 보이더라고. 포기한 모양이야."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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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현재 인공지능, 특히 AGI에 대해서는 두 가지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특히 실리콘밸리 빅테크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는 시나리오입니다. 바로 인공지능이 AGI에 도달하는 순간 우리 인간이 멍청해서 풀지못했던 문제를 다 해결해 줄 거라고 믿는 것입니다. - P10

그래서 AGI를 최대한 빨리 만들어야 하고, AGI를 향하는길에 걸림돌, 특히 국가 규제 같은 것들을 다 없애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요지입니다. - P10

AGI가 인간에게 가져다줄 장기적 혜택이 너무나 크기 때문에 단기적 사회, 경제, 정치적 문제에 너무 집중해서는 안 된다는 이런 주장을 보통 효과적 가속주의 EffectiAccelerationism (e/acc)라고도 부릅니다. - P11

(전략). 대부분 계속 인공지능한테 쫓겨 다니고, 또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막 기도를 하기 시작하더라는 겁니다. 이게 바로 두 번째 시나리오입니다. - P11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이 시점은, AGI가 아직 완전히 모습을드러내기 전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극히 짧은 ‘골든아워‘ 일지도 모릅니다.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고, 논의는이미 실존적 위기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 P12

AGI를 향해 전 세계가 서로 앞다투어 달려가는 이 시점에우리에게는 마지막 선택권이 주어져 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조건적인 낙관도 무조건적인 비관도 아닌 바로 현실적인 준비입니다. - P13

2장

생성형 AI의 출현

(전략).
그런데 지난 5년 동안 언어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생성형AI‘ 라는 두 번째 혁신이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언어 문제가 해결되니까 나머지 문제들도 덩달아 해결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 P58

 바로 엔비디아NVIDIA 입니다. 엔비디아는 병렬 처리를 아주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 새로운 반도체구조, GPU를 제안했습니다.  - P58

덕분에 이런 기술을 가속기 accelerator라고 부르게 됐습니다. 말하자면 이게 신의 한 수였습니다. - P59

언어는 어떻게
풀 수 있을까?

연구자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별별 방법을 다 생각했습니다. 개중에는 RNN, LSTM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가 풀고 싶었던 건 이것입니다.  - P60

기존에 시간축 데이터를 분석할 때는 러시아 수학자 마르코프 Andrey Markov가 제안한 마르코프 가설을 많이 썼습니다. 어떤 가설이냐면 지금 이 순간, 어느 특정 시점의 데이터를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건 바로 직전의 데이터라는 가설입니다. - P62

그런데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언어를 예로 들어볼까요? 단어 30개로 구성된 긴 문장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30번째 단어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게 정말 29번째 단어일까요? 대부분 그렇지 않습니다. - P62

이 말은 뭐냐하면, 언어는 시간축 데이터인데, 인과관계가선형이 아니라 뒤죽박죽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보니 마르코프 가설로는 도저히 분석이 안 됐던 것이지요. - P63

결국 문제는 이것입니다. 긴 문장의 맨 마지막 단어가 무엇으로부터 얼마나 영향을 받는지, 그게 뒤죽박죽이라는 것이지요. - P64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했지요. 그래서 인공지능으로 인간의 언어 문제를 풀고자 했던 과학자들이 오래된 언어학논문들을 찾아봤습니다. 1957년에 퍼스John Rupert Firth라는 영국 언어학자가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도대체 의미라는게뭘까?" 그가 제안한 아이디어는, 단어의 의미가 근처에 있는 단어에 의해서 정해진다는 것입니다. - P65

예를 들어 귀여운 고양이‘ 같은 조합은 자주 발견할 수 있지만, ‘공부 잘하는 고양이‘는 거의 없습니다. 반대로 ‘교수‘라는 단어를 보면 어떨까요? 저는 평생 ‘귀여운 교수‘라는표현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확률이 거의 0에 수렴할 겁니다. - P66

그럼 우리가 하는 건 뭘까요? 단어의 문맥을 보자는 겁니다. 이게 새로운 접근 방법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단어라고 했지만, 사실 인간 언어의 단위는 단어가 아니라 더 잘게 쪼갤 수 있습니다. 토큰token이라는 단위로 쪼갤 수 있지요. - P66

이런식으로 모든 단어를 임베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다음에는 뭘 했을까요?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언어에서 문장은 여러 단어로 이루어져 길게 이어집니다. 그리고 문장 내에서는 단어들이 서로 뒤죽박죽으로 영향을 줍니다. - P68

 이제 단어의 순서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단어가 등장하는 주변 단어들, 그러니까 ‘문맥‘이라는 걸 깨달은 것입니다. - P69

이 방법을 집중 스코어 attention score라고 부릅니다. 문장이 있으면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그걸 계산하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가지 계산 방법이 있고, 이를 제대로 표현하기 시작한 게 트랜스포머 알고리즘Transformer Algorithm 입니다. - P69

문제는 데이터가 많으면
해결된다


하지만 중요한 건 이렇게 언어를학습하기 위해서는 정말 많은 예제, 데이터를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한 작가의 문장만 학습시키면 그 작가의 스타일만 배우게 되니까 보편적인 언어 사용 패턴을 학습하지 못하겠지요. - P70

(전략). 이걸 컨텍스트길이 context length라고 하는데, 이게 가장 중요한 파라미터 중 하나입니다. 컨텍스트 길이가 길수록 더 많은 걸 이해할 수 있습니다. 초기 챗GPT는 앞뒤 100~200개 단어를 봤지만, 최신 모델들은 앞뒤 1,000만개 단어를 보고 이해합니다. - P71

이런 집중 스코어 관계를 학습한 걸 우리는 거대 언어 모델 Large Language Model(LIM)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 P71

참고로 말하자면 지금 AI 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된 엔비디아에는 큰 리스크가 하나 있습니다. 지금 AI 연구에서엄청난 양의 고성능 GPU가 필요한 이유는 트랜스포머 알고리즘이 너무 비효율적이라 계산량이 천문학적이기 때문입니다. - P72

하지만 일단 지금은 엔비디아가 거의 독점하고 있습니다. 2등은 AMD, 3등은 인텔인데, 인텔은 기술력이 없고 AMD는 하드웨어 기술력이 꽤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엔비디아가 GPU를 만들면서 CUDA라는 소프트웨어 환경을 같이 만들어 놨다는 사실입니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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