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이 징크스

호수는 어제와 다르게 더 차게 느껴지는 아침 공기를 맡으며 부암동 길을 올랐다. - P110

 떨어져 지내던 부녀가 미술관 전시를 계기로 다시 마주하고, 아경 씨와 해주 씨가 우정을 돈독히 다질 수 있게 된것에 호수는 작은 보람과 기쁨을 느끼고 있었다. 퇴근 무렵내내 기분이 좋아 보이던 오 실장이 다미와 호수에게 저녁을 같이할 것을 제안했는데, 문제는 따라나선 그 저녁 자리에서 호수가 지나치게 술을 많이 마셔버렸다는 점이었다. - P111

저녁을 먹으러 간 해물찜 식당에서 오 실장은 미술에 관심이 조금씩 생긴다면 입문서로 읽어봐도 좋다며 책 한 권을 추천했는데, 그때 이미 호수는 빈속에 소주를 여러 잔 마시고 조금은 취해 있던 데다가 주위가 시끄러워 그의 말을 잘알아듣지 못했다. - P111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호수 씨. 곰브리치의 『서양 미술사』"
(중략).
"아아, 미술관 공구리 친다고요?" - P112

그러고 오 실장은 시들한 표정이 되어 "이제 그만 정리하지"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마 호수의 주사가 거기서 그쳤다고 해도 괜찮았을 것이었다.  - P113

아무도 미처 우산을 가져온 이가 없었기에, 오 실장이 "갑자기 웬 비야. 이거 낭패네. 그냥 각자 알아서가고 내일 봅시다" 하며 손짓한 후 서둘러 빗속으로 먼저 뛰쳐나갔다. 오 실장의 뒷모습을 가만 바라보다 뭔가 짠한 마음이 된 호수가 뒤이어 뛰쳐나간 게 잘못이었다. - P113

호수는 맹렬하게 오 실장을 향해 달려 나갔다.
"우산 쓰고 가셔야죠!"
한참 앞에서 가방으로 머리를 가린 채 종종걸음으로 걷던오 실장이 호수의 목소리에 뒤를 돌아보았다. - P113

빗물이 알알이 가득 들어차 보이지 않는 안경 너머 오 실장의 눈빛을 보았어도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걸 어쩌면 호수도 더 빨리 눈치챘을 수도 있을 것이었다. (중략), 뒤를 쫓아왔는지 다미가 그 앞에 숨을 헉헉거리며서 있었다.
"그거 우산 아니에요, 호수 씨." - P114

"손 연구원, 이분 아무래도 제정신이 아닌 거 같은데 잘 좀택시 태워 보내요" 하고 혀를 차며 뒤돌아선 오 실장이 어차피 젖은 머리며 몸을 가방으로 더 가릴 태세도 없이 걸어 나갔다. - P114

"나는 곰브리치를 생선이라고 아는 자네가 어째서 이 미술관에 와 있는지 도통 모르겠는데 말이야."
오 실장이 뒤끝이 없다는 다미의 말이야말로 근거 없는 얘기였다고 생각하며 호수는 완전히 기운을 잃은 모습으로 책상 한편에 상체를 기댔다. - P116

"뭐라도 먹어야 속이 풀리죠. 해장엔 감도 좋대요."
"아, 이런 감사합니다. 근데, 그거 아세요? 감이 잠들면 감자 되는 거요."
"술덜깨셨구나. 가요."
표정 변화 없이 다미가 말하며 걸어 나갔고, 무색한 표정으로 호수가 그 뒤를 따랐다. - P117

"뭔가를 먼저 긍정해버리면 꼭 잘 안 되는 징크스가 있으시대요. 긍정이 징크스라나. 아마 그것 때문에 아니지, 아니지, 그런 말투를 습관처럼 쓰고 있는 건 아닐까요?"
(중량). 오 실장은 매사 신중하고 확실해질 때까지는 그 어떤 일에도 의심하고 회의하는 사람이었다. - P118

"가끔 견딜 수 없는 마음이 치고 나올 때가 있어요. 그런데이렇게 버리고 나면 괜찮아요."
"기운내세요."
웃는 낯으로 건네는 말이었지만 호수의 가슴은 왠지 모를공허함이 가득했다. 누군가를 좋아하고 있다는 다미의 말에 전염된 것처럼 곧바로 자기도 누군가를 좋아하게 돼버린 것 같았다. - P120

걸어 도착한 미술관 앞에는 제법 덩치가 큰 세 명의 남자들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중 담배를 피우던 한 남자가 호수와 다미를 알아보고는 대뜸 외쳤다.
"저기, 이봐." - P121

"네, 저희 미술관 작품은 현재 누구에게도 판매하지 않고있습니다."
"허, 씨, 얘들아, 그림 판매를 안, 하, 신, 단, 다."
남자 뒤쪽에 있던 남자들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니, 누구마음대로 판매를 안 하는데?"
"누구 마음대로라뇨." - P122

"선생님, 그게 아니라, 전시된 작품 작가님이 그림을 팔기를 원치 않아 하셔서요. 공익적 목적으로 누구에게도 소유되지 않고 자유롭게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게 하기를 바라시거든요." - P122

남자가 막무가내로 성질을 내던 그때 미술관 출입문 안쪽에서 굵고 엄숙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야, 득열이. 너 지금 뭐 하냐."
(중략).
"그러든 말든 그게 너랑 뭔 상관인데? 야 쪽팔리게 하지말고 어서 가가." - P123

"야, 니들은 뭘 알고 미술관에 데려와야 할 거 아냐. 여기미술 작품 한 작품만 전시하는 거 알았어, 몰랐어?"
금니 남자가 종전의 남자 어깨를 밀쳐내며 돌아서게 했다.
"한 작품만요? 그건 몰랐는데요." - P124

티격태격하며 걸어 나가던 큰 덩치의 남자들이 웬만큼 멀어지자 호수가 한숨을 몰아 내쉬며 말했다.
"휴, 깜짝 놀랐네요. 근데 좀 조폭들 같아 보이지 않아요?
여긴 어쩐 일일까요?"
"그러게요. 낯선 분들이네요." - P124

 새삼 다미가 자신보다 당차고 겁도 없다는사실을 되새김하며 그 자리에서 남자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호수는, 그중 한 명이 살짝 고개를 틀어 뒤를 돌아보자 출입구 너머로 얼른 몸을 감추고는 본관을 향해 내달렸다. - P125

흔적을 지워주세요

요즘 대오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은 건달도 이젠 주먹이 아니라 머리를 써야 한다는 말이었다. 주먹을 쓰면 언제든 수사기관에 쫓길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만, 머리를 잘 쓰면 주먹을 사용하지 않고도 용이하게 큰돈을 벌 수 있다고 했다. - P126

이전처럼 유흥업소를 보호해준다는 명목으로 보호비를 받거나 각종 재개발과 철거 혹은 이권 개입 같은 것으로 돈을 버는 것도 쉽지 않았다. 오히려 피해자 측의 증거수집이나 신고로 처벌받는 일이 더 많아진 탓이었다. - P127

처음 조직을 꾸렸던 큰형님이 부암동 주택으로 집을 옮겼다는 소식을 들은 대오는 마침 찾아뵙고 결심을 밝힐 생각이었다. 걸리는게 있다면 오래 조직 생활을 함께해온 이들이었다. - P127

"나도 내 눈에는 쓰레기만 보여서 쓰레기 좀 치워야겠네."
난데없이 할머니가 빗자루를 들더니 대오를 향해 휘적휘적 휘둘렀다. - P129

"어서 전시관에 들어가봐요. 미술관에 왔으면 그림을 봐야지 덩치에 맞지 않게 기껏 비닐봉지한테 놀란 걸로 화풀이야."
"아니 근데, 이 할머니가..…………."
"아 장난이라니까. 농담도 못 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버럭 하는 할머니의 기백에 움찔한건 대오였다. 요즘 따라 사람 환장하게 만드는 일이 늘어간다고 생각하며 대오는 차오르는 분노를 가까스로 참았다. - P130

전시실 안으로 들어가고 나서야 대오는 이 미술관에 전시되는 작품이 한 점뿐이라는 걸 알았다. - P130

뭔가에 멱살을 잡혀 끌려가듯 대오가 사연의 방으로 들어간 건 그때였다. 뭐라도 고백하고 싶은 심정으로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 있던 대오는 이내 결심한 듯 펜을 들어 뭔가를 써가기 시작했다. - P131

미술관에서 작품을 구매할 수 없다는 말에 대오와 일행은 하는 수 없이 큰형님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 P133

"전, 반댑니다. 큰형님." 가만있던 득열이 몸을 앞으로 기울여 큰형님을 보며 말했다. "갑자기 이렇게 조직을 해산하게 되면 생계도 생계지만, 조직 생활을 계속 원하는 애들까지내팽개치라는 얘기지 않습니까?"
"득열아, 그 얘기는..."
"말이 나와서 얘긴데, 형님한테도 많이 서운합니다. 이런식으로 조직을 내치려고 하시는 게요." - P134

그쯤 되자 큰형님이 나서 둘 사이를 중재하며 말을 돌렸다.
"많이 줄어서 열댓 명 정도 되죠. 새로 조직원을 뽑으려고해도 들어오고 싶다는 사람이 있어야죠. (중략). 이래저래시대도 좀 많이 변하는 추세고...... 야, 득열아 우리 막내가 몇 살이지?"
"여기 영택이가 우리 막내잖습니까?" - P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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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Not Bombs-inspired projects


Food Not Bombs has inspired a number of otherdo-it-yourself projects. These projects share manyprinciples with Food Not Bombs including a critiqueof the economic system, dedication to collective decision making, and a desire to provide a direct service or perform a task that introduces the public toour philosophies of nonhierarchical, decentralizedsocial organization that encourage self-reliance andindependence from corporations and government. The most widespread projects are Food Not Lawns, Homes Not Jails, Indymedia, Really Really FreeMarkets, and Bikes Not Bombs. - P75

Food Not Lawns


(전략). It starts with volunteer scalling for a work day and party-through word of mouth and flyers-at an abandoned lot, bringing rakes, shovels and other tools and free meals for gardeners and interested neighbors. - P75

Soon Food Not Bombs groups were starting Food Not Lawns gardens, and there are now Food Not Lawns gardens in over 200 cities. Peterborough,
Canada Food Not Bombs started a garden that in-spired a weekly column in the local paper. - P76

Occupy the Farm in Albany, California is agreat example of anarchists uniting with the community to reclaim land that was slated to becomea shopping mall. Thousands of local people occupied property that had been part of the Universityof California‘s agriculture program. - P76

The Really Really Free Market

The first Really Really Free Market was organizedaround 2001 by Food Not Bombs volunteers in NewZealand taking the 1960s Haight Ashbury Free Storeconcept to their local park. - P79

"I shall continue to be an impossible person while those who are now possible remain possible."

-Mikhail Bakunin, Letter to Ogarov, June 14, 1868 - P79

The first Really Really Free Market in the UnitedStates was held during the protests against the FreeTrade of the Americas Agreement summit in Miamiin 2003, providing a unique contrast to the exploit-ative trade policies advanced at the summit. - P79

Really Really Free Markets are great outreachevents, and you and your friends can hold one. Tomake the day even more interesting, ask local bandsto play music and encourage other entertainers to participate. - P79

THE FOOD CRISIS


Food policies may be the most important questionof our time. Food policies impact the climate crisis, civil liberties, trade, poverty, species extinction, public health, civil unrest, migration, hunger, andwar. - P96

The Food and Agriculture Organization of the UN 2006 report, "Livestock‘s Long Shadow," says
"livestock production is one of the major causes of the world‘s most pressing environmental problems, including global warming, land degradation, airand water pollution, and loss of biodiversity. - P93

The climate crisis, due in part to animal agri-culture, is the principle cause of unprecedenteddroughts (notably in the Plains States and Califor-nia, America‘s breadbaskets). In addition, animalagriculture uses a disproportionate amount of freshwater. - P93

Consider this: Before food reaches your table, it ishandled by farmers, distributors, wholesalers, and retailers. - P94

Over $100 billion worth of edible food per year is discarded in the United States. The situation is similar in many countries in Europe as well as in Australia, New Zealand, Japan, and Canada. With theexception of Africa and parts of Asia, where povertyis so great that little edible food is discarded, it ispossible to recover large amounts of wasted food in every community. - P94

It‘s no accident that this is not already happening. We do not have a democratic say in how foodis produced or distributed.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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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recipes for small groups are for five or sixpeople unless otherwise noted.  - P105

If you‘re grilling, we recommend using a char-coal chimney (cost $10-$15) instead of petrochemi-cal "lighter" fluid. Charcoal chimneys pay for them-selves quickly, are environmentally friendly, anddon‘t give your grilled food a nasty chemical taste. - P105

Home Fries

6 to 8 potatoes, in strips or cubes
1 tablespoon sea salt

In a large pot, bring water to a boil. Carefully addpotatoes so there is no splashing and bring to a second boil. - P105

Granola

Makes about 3 pound of granola

Preheat oven to 300 degrees


1 pound rolled oats
1 pound barley flakes
1/4 cup almonds
1/4 cup shredded coconut
1/4 cup sunflower seeds
1/8 cup sesame seeds
1/4 cup cooking oil (optional)
1/4 cup maple syrup, molasses or dark agavenectar, bananas, raisins or apple cider
1 tablespoon vanilla
1 cup raisins or apple pieces
3/4 teaspoon salt (optional)
Alternatives-wheat flakes or rye flakes


Mix dry ingredients together in a large bowl. Ina saucepan, heat oil, if using it, maple syrup andvanilla only until warm enough to soak into the dryingredients. Pour this mixture over the dry ingredients and mix thoroughly, then spread into severalflat baking trays. The layer of granola should be nomore than one-inch thick. Toast in oven for 15 to 20 minutes, stirring every few minutes. Granola isdone when golden brown. Mix in raisins at this point.
When cool, serve granola with soy milk or fruit juiceand sliced fresh fruit. - P106

Scrambled Tof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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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와중에 우에마쓰 가즈미와 만났다. 그리고 엄청난 계획, 어쩌면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도박을 제안받은 것이다.
나나에의 이야기를 들은 우에마쓰 가즈미는 말했다.
"그 심정을 알 것도 같아요. 부모에게 버림받는 것도힘들지만, 속박당하는 것도 힘들군요." - P115

우에마쓰 가즈미가 택한 건 음독자살이었다. 나나에의 집에서 그녀의 옷을 입고 지문을 실컷 남긴 뒤 음독했다. 시신 옆에는 ‘사는 데 지쳤어요. 죄송합니다. 스에나가나나에‘라고 적은 유서를 남겼다. 나나에가 직접 쓴유서니 필적감정을 해도 의심을 사지는 않을 것이다. - P118

8

(전략).
"다케우치가 찾아올 거란 건 예상하고 계셨습니까?"
다케시가 물었다.
"가즈미 씨는 언젠가 그가 찾아올지도 모른다고 했어요. 하지만 몇십 년 동안 안 보고 살았으니 가짜인 줄은 절대 모를 거라고도 했죠. (후략)." - P119

"아까 본인에게도 말했지만 반년 전의 빈집털이는그 남자 짓이었을 겁니다. 그때 진단서를 봤겠죠. 그걸로 중병에 걸린 걸 알고 계획을 변경한 게 아닐까요." - P120

"맞아. 하지만 가즈미 씨는 죽지 않았지. 죽기는커녕쌩쌩하게 부활했어. 그래서 가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나타나 협박한 거죠."
"이제 안 오겠지?"
"그건 모르지만 손쓸 방도가 없겠지. 스에나가 씨가사실을 고백하지 않는 한은." - P121

"어머님 일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스에나가 씨의 어머님이잖아요. 딸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계실 텐데. 그건 어머님에게 너무 잔인하지 않나요. 그래도 팬찮으세요?"
스에나가 나나에는 불편한 표정으로 눈을 내리깔았다. 역시 피하고 싶은 부분이었나.
"어리석은 질문이군." - P122

"물론 어머니 생각을 안 한 건 아니에요." 온화한 목소리였다. "말씀대로 잔인한 짓이죠. 하지만 어떠한 형태로든 전 어머니에게서 멀어져야 했어요. 저를 위해서도, 어머니를 위해서도요. 앞으로 어머니는 고생이많겠죠. 하지만 도움을 드릴 수는 있을 거예요. 딸로서는 아닐지라도." - P123

위기의 여자

하와이의 별장을 어떻게 할지 고민 중이라고 기요카와가 말을 꺼낸 건, 택시를 타고 2차 자리로 향하던 길이었다. - P127

"마음은 그러고 싶죠. 하지만 별장이란 가만히 둬도이게 들거든요." 기요카와는 오른손 엄지와 검지로 원을 만들었다. "고민이 되죠." - P128

"술을 정하기 위해 아까 하던 얘기를 마저 해도 되겠습니까?" 기요카와가 나미를 보며 물었다. "별장 말입니다."
"네, 듣고 싶어요. 하지만 그 얘기랑 술이 무슨 상관이있다는 거죠?" - P130

"별장에는 두 종류가 있다고 들었어요. 콘도미니엄과 단독주택요. 기요카와씨 별장은 어느 쪽인가요?"
"단독주택입니다. (후략)." - P130

"대충 찍은 거라 별로 잘 나온 사진은 아니지만 이런느낌입니다."
도로에 인접한 건물을 대각선 방향에서 찍은 사진이화면에 떴다. 직사각형의 하얀 이층집이었는데 길에서현관까지 계단으로 이어져 있었다. 건물을 둘러싼 화단이 푸르렀다. - P131

"이런 질문, 실례일지도 모르지만 이런 별장은 얼마쯤 하나요?"
나미의 물음에 기요카와는 겸연쩍게 웃었다.
"하하, 직설적인 질문이네요." - P132

200만엔일 리는 없었다. 그러면 200만 달러인가. 일본 엔으로 얼마인지 계산하자 심장이 뛰었다. 2억 엔 이상이다.
달칵. 작은 소리가 났다. 앞을 보니 카운터에 칵테일잔 두 개가 놓여 있었다. 잘게 부순 얼음에 투명한 파란액체가 담겨 있다. 거기에 파인애플을 올리고 얇은 빨대두 개를 꽂았다. - P133

"몰라요 술에 빨대라니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혹시 커플이 동시에 마시라고 꽂아놓은 건가요?"
기요카와는 웃음을 터뜨렸다.
"가끔 그런 사람도 있죠. 아쉽게도 아닙니다. 이건 스터링(Stirring) 스트로라고 크러시드 아이스를 섞는 데 씁니다. 그러면 얼음이 녹아도 맛이 항상 균등해지죠." - P134

"말씀 나누시는 중에 죄송합니다. 안주가 필요하실것 같아서."
마스터는 메뉴를 들고 물었다.
(중략).
 마스터는 메뉴를 기요카와 앞으로 옮겼다. "희귀한 견과류나 치즈도 준비돼 있습니다만." - P135

"히로오(広尾)에 사신다고 하셨죠? 맨션인가요?"
"네."
"자가인가요?"
기요카와는 고개를 저었다.
"월세입니다. 같은 곳에 오래 사는게 성미에 안 맞아서 몇 년 살다 집을 옮기거든요. 그러니 월세가 더 편하죠 매매하면 팔리지 않을 경우에 귀찮아지잖아요. 그렇다고 가격을 내려서 내놓기도 싫고." - P136

"괜찮으시다면 오늘 밤 권해드리고 싶은 칵테일이 있는데요."
마스터의 말에 기요카와가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렇게 하죠. 추천 메뉴가 있으면 그걸 마시는 게 제일좋죠."
"알겠습니다." - P137

갈색 빛깔의 액체를 바라본 뒤 나미는 한 모금 마셨다. 산뜻한 오렌지 향이 코를 간질였다.
"맛있다."
나미의 감상에 기요카와도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우아한 맛이네요." - P138

"이것저것 다 합니다. 그중 하나는 유행을 예측하는일이죠. 빅데이터와 인공지능을 조합해 다음에 어떤붐이 어떤 타이밍에 일어날지 찾는 거죠. 패션업계만이 아니라 생활용품 회사도 저희 고객입니다...." - P139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 어디까지 얘기했죠?"
"유행을 예측하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계신다고. 그밖에는 어떤 사업을 하십니까?" - P139

기요카와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문지르며 심호흡을 반복했다. "이상하네. 마스터・・・・・・ 화장실이 어디죠?"
"안내해드리죠."
마스터가 카운터에서 나와 기요카와를 화장실로 안내했다. 화장실은 출입문 바로 옆에 있었지만 문이 잘보이지 않았다. - P140

"결혼 앱입니까? 아니면 결혼 사이트?"
(중략).
"손님은 꽤 현실적인 사고방식을 가지신 여성분인것 같군요. 상대의 재산 상태를 세세하게 파악하고 계셨죠. 그것도 에둘러 물어보는 게 아니라 대담하게요.
비난하는 건 아닙니다. 좋은 자세라 칭찬하는 겁니다.
평생이 달린 문제니 점잔 뺄 필요는 없죠." - P141

그러자 마스터는 어느샌가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조작했다. 그리고 나미에게 화면을 내밀었다. 화면 속사진을 보고 헉 숨을 삼켰다. 아까 기요카와가 보여준 하와이 별장이었다.
"어떻게 그 사진을 갖고 있죠...?"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알아챘다. "그 스마트폰, 마스터 게 아니죠? 그 사람 스마트폰이죠? 화장실에 안내해주는 척하면서 슬쩍한 거예요?" - P142

"자세히 보십시오. 광각렌즈로 찍은 사진입니다. 그런데 이 스마트폰 카메라에는 광각으로 찍는 기능이 없어요. (중략). 제 추리는 이렇습니다. 이 사진은 그분이 찍은게 아니라 어느 부동산 회사가 올린 매물 정보를 따로저장한 거겠죠. 부동산업자들은 보통 매물을 광각렌즈 카메라로 촬영하니까." - P143

"그렇다고 봐야겠죠. 하지만 다른 곳이 아니라 하와이에 별장이 있다고 한 데는 다른 이유가 있어서일 겁니다." - P143

"저 남성분은 지난주에 처음 저희 가게를 찾으셨습니다. 주문은 블루하와이 한 잔만 하셨고요. 다 마신 뒤 바로 일어나셨죠. 그로부터 일주일이 지난 오늘, 여성과 함께 찾아와 블루 하와이를 주문했습니다. 그러니뭔가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그분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더니 역시 예상대로더군요." - P144

"그분이 스터링 스트로 얘기를 했죠. 목적은 잡다한지식을 자랑하려는 게 아니라 빨대를 건드리며 손님칵테일에 뭔가를 넣는 것이었습니다. 손가락 사이로 하얀가루를 넣는게 보이더군요." - P144

"비열한 남자들이 성범죄에 악용하는 걸 방지하기위해 요즘 수면 유도제는 물에 녹으면 파랗게 변색되도록 개량됐습니다. 하지만 원래 파란 빛깔을 띤 음료라면 섞어도 알아채기 어렵죠. (후략)." - P145

나라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곯아떨어진 기요카와를 노려왔다. 수면제를 먹여 쓰러뜨린 뒤에는 어떡할작정이었을까. 근처 호텔 같은데 데려가 옷을 벗기고,
그다음은? 당연히 나체 사진만 찍고 끝내지는 않았을것이다. - P146

나미는 마스터의 얼굴을 바라봤다. 이 사람은 대체정체가뭐지?
"손님도 다 드시면 그만 가보십시오. 도쿄도에서 영업시간 단축 요청이 내려왔습니다. 오늘 밤은 여기서마감해야겠군요 계산은 신경 쓰지 마십시오 일행분께받을 테니까요. 그럼 편안한 밤을. 다음에는 멋진 남성과 함께 찾아주시기를 빌겠습니다." - P148

환상의 여자


1

(전략).
도모야는 지금 색소폰 주자의 뒤에서 우드 베이스를연주하고 있었다. 곡에 취한 듯 몸을 흔들며, 이따금 유즈키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 P151

택시가 목적지에 도착했다. 유즈키는 택시에서 내려바로 옆 골목으로 들어갔다. 발밑에 ‘TRAPHAND‘라고새겨진 블록이 놓여 있었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검은 문이 보였다. 아무런 표시도 없는 문이었다. - P152

"주문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다카토 씨가 오실 때까지 기다리시겠습니까?"
가미오가 물었다.
"뭐 하나 마실게요. 뒷정리하는 데도 시간이 걸릴 테고,
일단 집에 갔다가 다시 나온다고 했으니까." - P154

둥근 안경의 남자는 미안하다는 듯 말없이 유즈키에게 고개를 숙였다.
카드 결제를 마친 가미오가 영수증을 남자에게 건넸다. 영수증을 받으며 남자가 말했다.
"아까 그 얘기 말인데, 역시 기일에는 안 올거냐?" - P155

가미오가 부른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유즈키는 두 손을 꼭 모으고 도모야가 많이 다치지 않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침대에서 눈을 뜨고 있기를 신에게 빌었다. - P160

"악기를 차로 운반하다 오토바이에 치였다고 합니다. 머리를 다쳐서 의식이 없는 상태로 병원으로 이송됐다는군요. 데이토 대학 병원입니다."
가미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제대로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다.

"형님입니다. 서로 생활에 간섭하지 않기로 했는데,
이따금 시골에서 올라오죠. 동생이 고독사라도 하면 귀찮아진다 생각하는 건지 드시죠."
가미오는 그렇게 말하며 잔을 내려놓았다. 옅은 붉은빛 액체에 체리와 레몬이 올라가 있었다. 한 모금 마시자새콤달콤한 맛과 적절한 쓴맛이 혀 위로 번졌다.

"재즈클럽 연락처는 아십니까?"
가미오가 물었다.
"오늘 티켓에 적혀 있을 것 같아요."
유즈키는 가방에서 티켓을 꺼냈다.
"잠깐 보겠습니다."

유즈키는 가방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좀 늦는 것 같은데 무슨 일 있어?‘하고 메시지를 보냈다.
여느 때 같았으면 도모야는 금방 답장을 줄 터였다.
하지만 몇 분이 지나도 메시지는 ‘읽음‘으로 바뀌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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