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일과 삶을 위한 매일의 마법


가장 최근에 떠난 여행을 떠올려 보자. 그 여행에서 진짜 ‘탐험‘이 차지했던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 - P16

그러나 때로는 무심코 길을 지나는 대신 소소한 탐험에 나서기도 한다. 나는 아침에 조깅을 하면서 새로운 길을 찾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 P16

굳이 그래야 할까 고개를 갸우뚱하는 독자를 위해 탐험가가되어야 하는 이유 세 가지를 소개한다.

1. 무엇보다 삶이 재미있어진다. 이것만큼 좋은 이유가 있을까?
2. 세상이 너무나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기에 기존 사고방식의 유효기간이 짧아졌다.
3. 사람은 본능적으로 눈앞의 사실이 아니라 보고 싶은 것을 보려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때로는 나 자신과 주변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선택을 하기도 하고, 최악의 경우에는 피해를 입히는 선택을 한다. 이는 곧 우리가 매일, 어쩌면 매시간, 눈앞에 있는 좋은 기회와 인사이트를 놓치고 있다는 뜻이다. - P17

탐험쓰기와의 첫 만남

탐험쓰기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기전에 내가 어쩌다 우연히 탐험쓰기의 힘을 발견하게 되었는지 설명해야겠다.¹ 당시 나는 창업을 준비하기 위해 회사를 그만둔 상태여서 돈에 쪼들리고 있었다.
(중략).
소리만 지르지 않았을 뿐이지 공황상태에 빠진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일단 머리에 떠오르는 행동을 했다. A4용지 크기의 공책을 펴고 글을 써내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 P19

들어가며

1. 자세한 이야기는 필자의 TED 강연 <글쓰기의 재상상>을 참조하기 바란다. 영상은 다음 링크를 참고할 것. ‘Let‘s Rethink Writing‘ (https://youtu.be/59sjUm0EAcM). - P222

단 5분 동안 엉망진창이고 날것 그대로인 글을 썼을 뿐인데 넘쳐흐르는 불안감의 방향을 돌려 내 안에 숨겨져 있던 아이디어와 지혜에 다다를 수 있었다. 그러자 질문 하나가 고개를 들었다.
‘아니,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그 순간 나는 ‘탐험쓰기‘, 그러니까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한 글쓰기의 힘을 발견했다.  - P20

나는 의도적으로 매일의 생활과 일에 이 책의 초점을 맞추었다(혹시 트라우마나 정신질환에 대처할 방법을 찾는 독자가 있다면, 책말미에 실은 ‘참고도서‘에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쓴 책들을 소개해 두었으니참고하길 바란다). 일상의 좌절과 씨름하고 있는 독자에게 이 책은최고의 동반자가 되어줄 것이다. 하얀 종이 위에 펼쳐지는 무한한 자유와 가능성, 결말을 모르는 문장을 쓰기 시작할 때의 들뜬기분, 아무도 보고 있지 않기에 뭐든 마음대로 쓸 때 찾아오는 약간은 반항적이고 창의적인 쾌감을 이 책과 함께 맘껏 누리길 바란다. - P21

이제 탐험쓰기가 불러올 일상의 마법을 좀 더 가까이에서들여다볼 시간이다. - P22

2부

종이 위에 펼쳐지는 탐험


여러분도 지금쯤은 탐험에 동참했길 바란다. 탐험쓰기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탐험가의 마음가짐을 갖추고, 기본적인 도구도 마련했으리라 믿는다. 이제 첫발을 내디딜 차례다. 2부에서는 여러분이 나아갈 여러 방향과종이위에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탐험을 소개할 예정이다. 다를내용은 다음과 같다.

5장: 의미 있는 일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하고 서로 연결된 세가지 요소(역량, 의사결정, 주의집중)에 관해 알아본다.
6장: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항상 일어나고 있는 서사 형성의 과정(센스메이킹)에 관해 다룬다.
7장: 질문을 의도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8장: 창의력의 바탕인 즐거움에 관해 알아본다.
9장: 비유가 지닌 비범한 힘을 활용해서 세상을 다르게 바라본다.
10강: 평소 애써 무시하는 나의 면면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자기이해의 과정을 살펴본다.
11장: 매일 마주하는 문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웰빙을 일구는 법을 알아본다.
각자의 속도에 맞춰 원하는 곳에서부터 탐험을 시작하면 된다.

2부에는 탐험쓰기를 도울 ‘일단 첫 마디‘를 실어두었다(어디까지나 글쓰기를 돕기 위한 장치이므로 다른 머리말을 활용해도 좋고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도 된다). - P68

5장

목표 달성에 필요한
근본 요소

(전략), 즉 심리학과 철학으로 초점을 옮겨보려 한다.
우선 나는 탐험쓰기의 마법을 뒷받침하는 상호 연결된 세가지 근본 요소가 있다고 생각한다. - P69

자신의 역량을 믿지 않는다면 의미 있는 일을 달성하려고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의사결정을 하지 않으면 표류하는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택한 과제에 주의를 집중하지 않으면 결실을 맺을 수 없다. - P70

역량과 탐험쓰기

(전략). 내가 스스로에게 어떤이야기를 들려주는지 인지하고, 분석하고, 새로운 이야기를 상상할 수 있게 되며, 어떤 이야기를 받아들이고 또 거부할지 결정할수도 있다. 사고실험 (생각을 통해 가상으로 진행하는 실험-옮긴이)을 해볼 수도 있다. - P7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러나 세상에는 논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예컨대 낙하라는 현상을 자세히 관찰해 보면 반드시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계산한 대로만 되지는 않는다. 깃털처럼 가벼운 물체가 낙하할 때를 상상해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P122

그러나 논리에 확률을 추가하더라도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있다. 논리처럼 확실하게 일어나지도, 주사위처럼 완전히 무작위로 일어나지도 않는 일들이다. (중략).
논리와 확률로 다루기가 특히 어려운 것이 인간의 의지다.  - P123

확률과 통계는 언뜻 비슷해 보이지만 접근 방법이 정반대이다. 확률은 이론에 바탕해 결과를 예측하지만, 통계는 이미 존재하는 데이터를 분석해서 가설을 찾아낸다.
수학은 4,000년이라는 시간을 들여서 논리, 확률, 통계라는 표현 수단을 획득했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하면 이는 수학이 설명할 수 있는대상은 논리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과 확률 및 통계로 표현할 수 있는것뿐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 P124

수학이 발견한 논리, 확률, 통계라는 세 가지 언어에 결정적으로 부족한 점이 또 하나 있다. 그것은 ‘의미‘를 기술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 P125

인간이라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나는 당신을 좋아해"와 "나는 카레를 좋아해"의 본질적인 의미 차이도 수학으로 표현하기에는 매우 까다로운 문제다. - P125

시리(Siri)는
현자인가?

"근처에 있는 맛없는 이탈리아 음식점을 찾아줘"

컴퓨터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것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AI가실현되는 것을 가로막는 거대한 벽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략).
물론 AI 연구자들도 팔짱 끼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연구자들은 AI가 의미를 모르는 것은 이쩔 수 없지만 적어도 의미를 이해하는 것처럼 행동하도록 만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거듭해 왔다. - P126

이번에는 "이 근처에 있는 맛없는 이탈리아 음식점은?"이라고 시리에게 물어보자. (중략). 시리는 ‘맛없다‘와 ‘맛있다‘의 차이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이 근처에 있는 이탈리아 음식점 이외의 음식점은?"이라고 질문해 보자. (중략). 요컨대 시리는 ‘이외의‘라는 말의 의미 또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 P127

뒤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정보 검색이나 자연언어 처리 분야에서는 현재 통계와 확률 수법으로 AI가 언어를 학습하도록 하고 있다(논리적 수법은 일단 포기한 상태다). 즉, 문장의 의미는 몰라도 해당 문장에 나오는 (이미 아는) 단어와 그 조합에 입각해서 통계적으로 추측해 옳을 것 같은 답변을 이끌어내는 방식이다.
여기서 통계의 근간이 되는 데이터는 많은 사람이 시리를 사용할수록 점점 더 쌓이게 된다. 그러면 이를 이용해 시리가 자율적으로 기계학습을 거듭함으로써 정확도를 높이는 구조를 취하고 있다. - P128

시리한테 "나와 결혼해 줘!"라고 말하면
"저는 결혼이 체질적으로 안 맞는 것 같아요"라든가 "저랑 결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같은 절묘한 대답을 하는 것은 기계 학습에 따른 결과물이 아니다. 관계자가 수작업으로 입력해 넣은 것이다. - P129

2017년 4월 TED에 초빙되어 강연을 했을 때, 같은 세션 강연자 가운데 시리의 메인 엔지니어인 톰 그루버(Tom Gruber)가 있었다. 당연히시리가 어떻게 사람의 말을 이해하게 되었느냐는 내용의 강연을 할 예정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앞선 강연에서 내가 먼저AI가 어떤 식으로 세계사 문제를 푸는지 비밀을 밝혀버리는 바람에 원래 하려던 이야기를 하기가 곤란한 처지에 놓였다. - P129

논리로는 공략할 수 없는 자연언어 처리


통계적 수법이 등장하기 이전, 자연언어 처리 기술을 이용한 자동 번역이나 질의응답 분야의 연구자들은 AI에 문법 등의 언어 규칙을 기억시키고 논리적·연역적 방법으로 정확도를 높이려 했다. 그러나 아무리 시도해도 실패만 거듭할 뿐이었다. - P130

 다음 두 문장에 대해 생각해 보자.

경보기는 분해나 개조를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미성년자는 음주나 흡연을 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이 두 문장은 언뜻 보았을 때 구조적으로 비슷해 보인다. 그러나 일본어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있는 사람이라면 두 문장의 구조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후자의 주어는 ‘미성년자‘이지만, 전자의 주어가 ‘경보기‘일 리는 없다. - P130

현재의 AI는 논리적으로 문장을 읽거나 생각하지 못한다. - P131

통계와 확률을 사용하면 의외로 적중률이 높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오늘날 자연언어처리 분야에서 성공을 거둔 기업은 모두 그동안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었다. (중략).
다만 통계로는 논리와 같은 확실한 추론을 하기가 어렵다. 또한 경험한 적이 없는 사례에 대해 어떻게 판단할지도 예상할 수 없다 - P132

도쿄 대학 의과학 연구소에 도입된 왓슨은 "의료 논문은 사람에게 새로운 의학적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쓰인 것이다. 그럴 때 사람은 어떤 식으로 쓰는 경향이 있는가?", "전자 카르테는 의사가 환자의 진료 경과등을 기록한 것이다. 그럴 때 사람은 어떤 식으로 쓰는 경향이 있는가?"
를 통계적으로 산출함으로써 병명을 찾아내는 작업을 지원한다.
그러므로 왓슨이 도쿄 대학의 의사가 반년 동안 찾아내지 못했던 희귀병을 진단해 냈다는 뉴스를 보고 "왓슨의 진단 능력이 인간을 넘어셨다"라고 이해하는 것은 잘못이다. 왓슨은 진단을 하지 못한다. - P133

"결과적으로 AI의 진단 정확도가 인간을 능가한다면 기계에게 진단을 맡기는 편이 더 마음 놓이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는 크나큰 오해다. 시리를 떠올려보라. 근처에있는 이탈리아 음식점은 순식간에 찾아주지만 ‘맛있다‘와 ‘맛없다‘ ‘이탈리아 음식점‘과 ‘이탈리아 음식점 이외의 음식점‘을 구별하지 못하는것이 AI다. - P134

3장

전국 독해력 조사를
통해 드러난
충격적인 현실


민간은 AI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을까?

결국 커뮤니케이션 능력과 이해력이다

(전략). 요컨대 지금 다가오고있는 것은 노동자의 절반을 실업의 위기에 빠뜨릴지도 모를 정도의 실력을 갖춘 AI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미래다. - P171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면 AI의 약점은 1만 개를 가르쳐야 간신히 하나를 아는 것, 응용력이 없는 것, 유연성이 없는 것, 정해진(한정된) 프레임(틀) 속에서만 계산 처리를 할 수 있는 것 등이다. 거듭 이야기했듯이AI는 ‘의미를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와는 반대로 하나를 들으면열을 아는 능력이나 응용력, 유연성, 프레임에 얽매이지 않는 발상력 등을 갖추고 있다면 AI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셈이다. - P174

일본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 책의 머리말에서도 언급했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현재 일본의중·고등학생의 독해력은 심각한 상황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중학교 교과서의 문장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뭐야, 중·고등학생이면 아직 어리잖아? 앞으로 나아지겠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독해력이라는 교양은 대개의 경우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확립된다. 특별한 훈련을 받는다면 성인이 된 뒤에도 독해력이 비약적으로 향상될 수 있지만 그런 사례는 매우 드물다. - P175

수학을 못하는 것인가,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가?

대학생 수학 기본 조사

대화가 성립하지 않는다

(전략). 국공립·사립을 막론한 전국의 대학에 협조를 요청해 대학생 6,000명의 수학 실력을 조사한 것이다. 48개 대학의 90개 학과가 이 조사에 협력했다.
조사 대상의 대부분은 대학 입시를 갓 마친 1학년 신입생들로, 입시를 위해서 공부했던 수학은 이미 전부 잊어버렸어"라고는 말할 수 없는 처지였다. - P177

이를테면 우리는 학생들에게 다음과 같은 문제를 풀게 했다.

문제 홀수와 짝수를 더하면 어떻게 될까? 다음의 선택지 중 옳은 것에 ○를 기입하고 왜 그런지 이유를 설명하시오.

ⓐ 언제나 반드시 짝수가 된다.
ⓑ 언제나 반드시 홀수가 된다.
ⓒ 홀수가 될 때도 있고 짝수가 될 때도 있다. - P178

상당히 관대하게 채점했음에도 이 문제의 정답률은 34퍼센트에 불과했다. - P178

가장 전형적이고 흔한 오답은 짝수를 2n으로, 홀수를 2n+1로 놓고2n+ (2n+1) = 4n+1이므로 답은 홀수라고 적은 경우였다. 이것은 2+3이라든가 10+11처럼 연속된 짝수와 홀수의 합이 홀수라는 것밖에 설명하지 못하므로 정답이 될 수 없다. - P179

여름방학에 수학자 열두 명이 모여서 사흘 동안 좁은 방에 틀어박혀 6,000장이나 되는 답안지를 전부 손수 채점했다. (중략). 우리 수학자들은 수학의 답안은 수학자가 아니면 채점할 수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P179

예 3: (가) 짝수를 홀수로 만들려면 짝수를 더해서는 안 되고 홀수를 더해야 한다.
(나) 짝수를 더하는 것은 합의 홀짝에 영향을 끼치지 않기 때문에 홀수에 짝수를 더하면 언제나 반드시 홀수가 된다.
이와 같이 질문한 내용을 그대로 되풀이해 쓰는 ‘동어반복형‘도 상당 수 있었다. - P180

사립대학을 편차치에 따라 S, A, B, C급으로 구분하면 B와 C에서는 문과와 이과를 불문하고 전체 학과의 3분의 1 이상에 위와 같은 심각한 유형의 오답을 적은 학생이 있었다. 반면 국립 S에서는 문과와 이과를 통틀어 그런 답안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 P181

이러한 실태를 보고서로 작성하자 인터넷상에서는 "수학자의 유토리세대¹⁶ 두들기기"라는 비판이 일었다.


16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사고력을 키우는 데 중점을 둔 소위 유토리 (1) 여유) 교육을 받은 세대. 일반적으로는 1987년부터 2004년 사이에 태어나고 자란 젊은이들을 가리킨다. - P181

또한 독자 여러분 중에는 성적과 무관한 조사이므로 진지하게 답안을 적지 않은 학생이 많은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지당한 추측이라고는 생각하지만 우리는 대부분의 학생이 진지하게 조사에 응답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 P182

학생이 논리적인 대화의 캐치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채대학에 들어오면 대학에서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제한된다. 그런 상황에서는 학생들이 얻을 수 있는 것도 적다. - P183

이번에는 선택식 문제를 소개하겠다.

문제  다음 제시문을 읽고 이어지는 서술 가운데 확실히 옳다고 할 수 있는것에는 ㅇ를, 그렇지 않은 것에는 X를 기입하시오.


공원에 아이들이 모여 있습니다. 남자아이도 여자아이도 있습니다. 유심히 관찰하니, 모자를 쓰지 않은 아이는 모두 여자아이입니다. 그리고 운동화를 신은 남자아이는 한 명도 없습니다.

① 남자아이는 모두 모자를 썼다.
② 모자를 쓴 여자아이는 없다.
③ 모자를 쓰고 운동화를 신은 아이는 한 명도 없다. - P184

이 문제의 정답률은 64.5퍼센트였다. 입시에 필요한 기술을 무엇 하나 요구하지 않는 문제임에도 국립 S에서는 85퍼센트가 정답을 맞힌반면에 사립 B, C에서는 정답률이 50퍼센트를 밑돌았다. 그렇다면 많은 고등학생이 동경하는 사립 S의 정답률은 어땠을까? 국립 S에 비해20퍼센트포인트나 낮은 66.8퍼센트에 머물렀다. - P184

전국 2만 5,000명의
기초 독해력을 조사하다


문장을 읽고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가?

‘대학생 수학 기본 조사‘를 실시한 후 나는 일본 학생들의 기본적인 독해력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 P185

 사전에 실린 ‘독해력‘이라는 말의 뜻 그대로, 문장을 읽고 그 내용을이해하는 능력에 대한 것이다. 요컨대 많은 대학생들이 수학 기본 조사의 문제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었다. - P185

도로보군의 공부를 바탕으로 리딩 스킬 테스트를 개발하다


기초 독해력을 조사하기로 결정은 했지만, 그런 조사는 지금까지 세계에서 누구도 실시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이렇다 할 조사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기초 독해력을 조사하기 위한 리딩 스킬 테스트(ReadingSkill Test, RST)를 자력으로 개발했다. - P186

AI가 어절과 의존 구조, 조응을 이해하면 단순한 문장은 읽을 수 있다. 조응이나 의존 구조라는 말이 귀에 익숙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앞으로 자주 나올 테니 기억해 주기 바란다. - P187

의존 구조나 조응은 자연언어 처리 분야에서 이미 활발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한편 오랫동안 연구되어 왔음에도 좀처럼 정확도가 오르지 않는 것도 있다. 바로 ‘동의문 판정이다.
‘동의문 판정‘은 서로 다른 두 문장을 읽고 비교해서 의미가 같은지 여부를 판정하는 것이다.  - P187

그 밖에 우리는 의미를 이해하지 않는, 프레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상식이 결여된 AI로서는 하지 못하는 것, 즉 인간이 AI에 맞서 이길 가능성이 있는 중요 분야로 ‘추론‘, ‘이미지 동정(同)‘, ‘구체예(具體例)동정‘이라는 과제를 새로 설정했다. - P188

RST는 AI의 정답률이 80퍼센트가 넘는 ‘의존 구조‘나 급속히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조웅‘, AI한테는 아직 어려운 듯한 ‘동의문 판정 AI가 넘을 수 없는 벽인 ‘추론‘ ‘이미지 동정, ‘구체에 동정(사전적 정의·수학적 정의)‘의 6개 분야로 구성되어 있다. - P188

(전략). 교과서는 그 대표적인 예로, 교과서를 읽고 이해하지 못하면 고등학교 입시나 대학 입시에서 명백히 불리한 입장에 놓인다. 신문도 마찬가지다. 신문에 적힌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 없다. - P189

RST에는 다른 테스트와 다른 또 한 가지 특징이 있다. 수험자 전원이 같은 문제를 푸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예제를 다 풀었으면 컴퓨터가 수백 문제 가운데 무작위로 문제를 선정해서 제시한다. 한 문제의 답을 적으면 다시 무작위로 다음 문제가 출제된다. 각 분야별로 설정된 제한 시간이 끝날 때까지 계속해서 이런 방식으로 테스트가 진행된다. 어떤 수험자는 20문제를 풀고, 다른 수험자는 5문제밖에 풀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것까지도 포함해서 수험자의 기초 독해력을 진단한다. - P189

RST 예제 소개

RST가 구체적으로 어떤 테스트인지 이해할 수 있도록 예제를 몇 가지 소개하겠다.

(중략).

예제 2 조응 다음 문장을 읽으시오.

화성에는 생명이 존재할 가능성이 있다. 과거에 대량의 물이 있었던 증거가 발견되었으며, 현재도 화성 지하에는 물이 있을 가능성이 있다.

문맥을 고려했을 때 다음 문장의 빈칸에 들어가기에 가장 적당한 말을 선택지에서 하나만 고르시오.

과거에 대량의 물이 있었던 증거가 발견된 것은 ( )이다.

① 화성 ② 가능성 ③ 지하 ④ 생명


(정답: ① 화성) - P191

예제 4  추론 다음 문장을 읽으시오.

에베레스트산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위의 문장에 적힌 내용이 옳다고 할 때, 아래의 문장에 적힌 내용이 옳은지 여부를 ‘옳다‘, ‘틀렸다‘, 이것만으로는 ‘판단할 수 없다‘ 중에서 대답하시오.

엘브루스산은 에베레스트산보다 낮다.

① 옳다 ② 틀렸다 ③ 판단할 수 없다

(정답: ① 옳다) - P192

중학생 세 명 중 한 명이
간단한 문장을 읽지 못한다


알렉산드라의 애칭은?

그러면 이제 조사 결과와 분석으로 넘어가자. 놀라지 말기 바란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심각한 상황‘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P194

[표3-2]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겠는가? "중학생의 62퍼센트, 고등학생의 72퍼센트가 정답을 맞혔다"가 아니다. "중학생 세 명 중 한명이상이, 고등학생 열명 중 세 명 가까이가 정답을 맞히지 못했다"라고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 P195

"고등학생 중에는 반항기에 접어든 학생도 있을 테고, 성적과 무관한 테스트라서 진지하게 응답하지 않은 것이 아닐까요?"라는 질문을 종종받는다. ‘대학생 수학 기본 조사 때도 같은 질문에 시달렸다. 그러나 여기에 대한 나의 답변은 "그렇지 않다"이다. 첫 번째 선택지인 ‘힌두교‘를고른 학생이 매우 적다는 데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 P196

한편, 출제된 문제가 수험자의 독해력을 측정하기에 부적절할 가능성에 관해서는 항목 특성을 조사함으로써 검증하고자 했다. RST에 수록된문제의 난이도는 사전에 미리 평가할 수 없다. 수만 명 규모로 조사를 실시해 문항별 정답률을 비교했을 때 비로소 각 문제의 난이도를 추계할수 있는 것이다. - P197

(전략), 이전부터 교과서를 잘 읽지 못하는 학생이 늘어나고 있음을 깨닫고 수업 시간에 사회 교과서를 소리 내어 읽힌다고했다. 그 선생님이 가르쳐준 오독의 예를 몇 가지 소개하겠다.


수상(相)→슈소
동서(東西)→도세이
설립(立)→세이리
쓰대기업(大)→ 다이데
잔업)→노코리교
물리(理)→모리
문부(部)→분부
사용하다(用)→요이루
거주지→ 이주치
현역(現役)→겐야쿠¹⁷


17 올바른 일본어 발음은 앞에서부터 각각 ‘슈쇼, 도자이, 세쓰리쓰, 오테, 잔교, 부쓰리, 몬부, 모치이루, 교주치, 겐에키‘이다. - P201

다음은 지금까지 만든 문제 가운데 난도가 특히 높았던 의존 구조 문제다.


다음의 문장을 읽으시오

아밀라아제라는 효소는 글루코오스가 이어져서 생긴 전분을 분해하는데, 같은 글루코오스로 만들어졌지만 모양이 다른 셀룰로오스는 분해하지 못한다.

문맥을 고려했을 때 다음 문장의 빈칸에 들어가기에 가장 적당한 말을 선택지에서 하나만 고르시오.

셀룰로오스는 ()과(와) 형태가 다르다.

① 전분 ② 아밀라아제 ③ 글루코오스 ④ 효소

모 신문사의 논설위원부터 산업성의 관료에 이르기까지 어째서인가 글루코오스를 선택하는 바람에 충격을 받았는데, 정답은 ① 전분이다. - P202

동의문 판정을 하지 못하는 학생들


AI가 풀이에 유독 어려움을 겪는 문제 유형이 있다. 두 문장을 읽고비교해서 의미가 같은지 다른지를 판정하는 ‘동의문 판정‘ 문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문제 3  다음 문장을 읽으시오.

1639년 막부는 포르투갈인을 추방하고 다이묘에게 연안의 경비를 명령했다.


위의 문장이 나타내는 내용과 아래의 문장이 나타내는 내용은 같은가?
‘같다‘, ‘다르다‘ 중에서 대답하시오.

1639년 포르투갈인은 추방되었고 막부는 다이묘에게서 연안의 경비를 명령받았다.



연안 경비를 명령받은 쪽은 다이묘이므로 답은 당연히 ‘다르다‘이다.

이것은 AI에게 상당히 어려운 문제다. 두 문장에 등장하는 단어가 거의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역시 인간이 더 우수하지"라며 기뻐할 수 없다. - P203

동의문 판정 문제는 ‘같다‘와 ‘다르다‘의 양자택일이므로 동전을 던져서찍어도 50퍼센트는 맞힐 수 있다. 다시 말해, 이 문제에 대한 중학생의 정답률이 동전 던지기 수준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심각한 일인지 아닌지를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는 기자가 신문 기사를 쓰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정신이 아득해질 수밖에 없었다. - P20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

신화를 해석하는 정신분석의 관점들


정신분석 역사상 중요한 최초의 신화 연구 업적은 주로 1906-1920년에 이루어졌다. (중략).
이 시기 프로이트의 제자들은 프로이트의 지형학적 정신구조 모델‘의식, 전의식, 무의식)에 근거한 무의식론과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리비도 발달론을 신화의 심층 의미를 드러내는 데 적용했다. 이에 비해 융은 리비도를 성욕동보다 광대한 인류의 보편적 생명 에너지로 해석했다. - P28

프로이트


프로이트는 신화가 꿈, 예술작품, 신경증 증상들과 더불어 무의식을 탐색하는 데 유용한 핵심 통로이자 열쇠임을 발견했다.⁴ - P29

1 신화 해석을 위한 정신분석의 기초


4 신화와 꿈, 중상 예술작품 사이의 밀접한 연관성에 관한 프로이트의 관점과 분석은 여러 글에 분산되어 있다. 《꿈의 해석》, 《창조적인 작가와 몽상》, 《토템과 터부》, <인간 모세와 유일신교, 세상사의 모티프>, <불의 소유와 그 통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유년기 기억>등을 참조할 것. - P602

첫째, 신화는 고대 인류의 무의식적 소망과 콤플렉스가 외부로 투사(외재화)된 결과물이다. (중략).
둘째, 신화는 억압된 무의식이 전의식의 검열을 통과해 의식으로 진입하기 위해 변장(압축, 전치, 상징화)되어 표현된 결과물이다. (중략).
셋째, 개체 발생이 계통 발생을 반복하듯이 영유아와 아동의 사고는 원시 인류의 상태를 반복 재현한다. (중략).⁶
넷째, 신화·꿈·증상 및 예술작품의 심리적 발생 과정과 발생 구조는 동일하다. (중략).
다섯째, 신화는 억압된 무의식의 소망을 의식에 상징으로 재현함으로써 현실에서 충족하지 못한 소망을 간접적으로 이루려는 목적을 지닌다. - P29

6 지그문트 프로이트, <편집증 환자 슈레버>, <늑대인간>, 열린책들, 1996, 369쪽. "꿈과 신경중에서 우리는 아이를 다시 만나게 된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아이가 생각하는 방법과 정서생활의 독특함을 만나게 된다. 이제 이 명제에 다음을 덧붙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야만인즉 원시인도 만나게 된다. 원시인은 고고학과 민속학 연구를 통해 우리에게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 P603




융은 신화가 인류의 심층무의식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가장 중요한 자료임을 선구적으로 밝혔고, 신화 분석의 중요성을 평생 동안 주장했다. (중략).⁷
융의 관점에서 보면 신화 속 등장인물들의 특성과 행동은 단지 억압된소망이 변장된 개인무의식의 상징이 아니다. 그것은 그 민족이 정신의 균형과 발달을 위해 용기 있게 대면하거나 보충해야 할 정신 요소들이 무엇인지를 전달하는 초개인적 인류무의식의 상징이다.
(중략).
이런 상징은 인간 내부의 대극적 요소들(자아상/그림자, 남성성/여성성)의분열 상태가 계속되면 정신의 불균형이 심해져서 민족이 위기에 봉착할수 있다는 인류무의식(‘자기)의 메시지일 수도 있다. - P30

7 카를 구스타프 융, <무의식에의 접근>, 《인간과 상징》, 열린책들, 1996, 95, 102쪽. 음을 계승한신화 분석가로는 마리-루이제 폰 프란츠, 에리히 노이만 등이 유명하다. - P603

자아심리학

프로이트의 후기 정신구조론(이드·자아·초자아)을 계승한 자아심리학자 제이콥 아를로우Jacob Arlow는 신화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신화는 집단 구성원들의 본능이드) 충족 욕구, 초자아의 도덕규범 요구, 사회적 관계에기여하라는 현실의 요구, 그리고 이 요구들에 대한 자아의 방어와 적응등의 다중 목적을 지닌 ‘공유된 환상‘•이다."⁹


• 사회가 학교와 매스컴을 통해 구성원들에게 교육하는 이념들(자유, 평등, 헌신, 종교 이데올로기)과 그것을 구현하는 신화들에는 구성원 간의 대립 충돌을 최소화하며 개개인이 지닌 ‘이드·초자아자아의 욕구와 기능을 적절히 만족시키는 ‘공유된 환상‘이 담겨 있다. - P31

9 미국정신분석학회, 《정신분석 용어사전》, 한국심리치료연구소, 2002,252쪽. - P603

클라인


여성 정신분석가 클라인은 고대 신화에 자주 등장하는 괴기스러운 대상,
섬뜩한 사건, 패륜적 행동들의 심리적 의미를 구강기 유아의 원시적 심리특성과 연관해 해석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한다. 그에게 고대 신화는 인류의 태초 시기이자 개인의 영유아기 정신 상태인 ‘편집·분열 자리‘와 ‘우울 자리‘의 독특한 경험 구조와 내용을 반영하는 상징물이다 - P31

(전략). 고대인의 작품에 선/악 양극으로 분열된 정신성을반영하는 복수의 여신(원시 초자아)과 정의의 신(문명적 초자아)이 신화적작품에 함께 등장하는 것은 원시적 정신성과 문명적 정신성이 공존하는 고대 그리스인의 상태를 반영한다.¹⁰ 클라인의 관점과 개념은 프로이트가 정밀히 탐구하지 못했던 구강기 유아의 심리와 편집증 환자의 심리를 신화 해석에 반영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 P32

10 M. Klein. "Some Reflections on The Oresteia", Envy and Gratitude and Other Works, 1946-1963, Free Press, 1984, pp.275-299. 이 논문에서 클라인은 ‘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하게 된 현상의 원인‘을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촉발 원인은 자신이 동일시해온 아버지(아가멤논)가 어머니에게 살해당하자 이들의 자아가 손상된 것이며, 근본 원인은 그동안 묻혀 있던 편집·분열 자리에 의한 가학적 초자아의 박해환상과 박해불안이 아들(오레스테스)에게 엄습한 것이다. - P603

대상관계론과 페미니즘

엄마 품에서 분리되어 아버지 세계로 나아가는 오이디푸스 시기(아동기)의 체험이 인간의 정신발달에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강조한 프로이트학파의 견해는 19세기 말~20세기 전반기 유럽의 가부장적 사회 구조와 남성 중심적 세계관을 반영한 것이었다. - P33

타인(아기)의 정서에 섬세히 공감하는 모성적 대상관계와 모성성은 개인과 민족적 정신(‘자기self‘와 ‘자아ego‘ 구조)의 최초 형성과 성장에 필수적이고 근원적인 힘으로 작용하며 평생 동안 영향을 미친다.¹¹ 가령 유아기에 불안과 본능욕구가 엄마의 정신에 담겨지는 긍정적 관계 경험이 과잉좌절된 개인은 좋은 엄마의 모성 에너지가 결핍되어 대상과의 편안한 관계능력이 결여된다.  - P33

11 줄리아 크리스테바, 《사랑의 정신분석》, 민음사, 1999, 30, 58, 70, 84쪽 참조. - P603

반면 유아기에 엄마와의 관계에서 좋은 성적 경험을 내면화한 개인은 자기가 견실히 구조화되어 외부의 낯선 자극이나 불안을 견뎌내면서전인적으로 관계할 수 있는 정서적 힘을 지니게 된다. 유아기전 오이디푸스기)에 ‘최초 대상인 어머니와의 관계를 통해 내면화한 모성성과 좋은엄마상은 아동기(오이디푸스기)에 아버지 관계를 통해 내면화되는 언어적분별 활동과 결합하여 정신을 발달시키는 토대가 된다. - P34

인류가 탄생해 ‘최초의 나‘가 형성되는 유년기(태) 삶의 과정을 반영하는 창세신화로부터 사회 속에서 자아 정체성 확립을 위해 방황하는 격동기(사춘기)를 반영하는 영웅신화를 거쳐 성숙한 주체인 성인으로 고양되는 ‘변환신화‘에 이르는 일련의 정신발달 과정에서 모성 에너지는 부성에너지와 대등한 정신발달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 P34

자기심리학

‘자존감‘의 정신적 가치를 강조하는 하인츠 코헛 Heinz Kohut의 자기심리학관점에서 보면 신화 속에 화려하게 등장하는 신과 영웅들은 각 민족이 지닌 ‘자기‘의 안정과 활력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기애 self-love 와 자존감self-esteem을 보충해준다. - P34

우리나라의 신화 연구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의 정신분석적 신화 연구 역사는 상대적으로 짧고 단순하다. (전략). 그리고 1960년대 후반부터 프로이트의 이론을 적용한 신화해석 담론이 정신과 의사 김광일에 의해 생성되었다.¹³ 김광일은 한국의신화가 질서 있게 보이는 이유는 유교를 숭상하는 선비 계층에 의해 구전신화가 문자로 최초 기록되는 과정에서 과도한 검열과 변형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 P35

13 김광일, <한국 신화의 정신분석학적 연구: 오이디푸스 복합>, 《한국전통문화의 정신분석》, 교문사, 1991. - P603

어떤 정신분석 관점과 개념이 한국, 중국, 일본 신화의 무의식적 의미를 발굴하여 드러내는 데 가장 적합한가에 대한 논의는 아직 국내 신화학자나 정신분석학자들에 의해 논의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 P36

국내의 상황과 달리 오늘날 미국과 유럽의 정신분석연구소에서는 프로이트, 융, 그리고 현대정신분석(자아심리학, 클라인, 대상관계론, 자기심리학, 라캉) 등을 함께 교육하고 있다 - P37

3

신화를 창조한 무의식의 유형들


신화를 창조한 근원적 추동력은 어떤 유형의 힘들에서 기인한 것인가?
인간의 정신은 각기 다른 에너지, 특성, 작동 원리, 내용을 지닌 의식과 무의식으로 구성된다. (중략). 이에 비해 무의식은 외부 환경이나 시간의 변화와 무관하게 어떤 표상과 감정을 원상태 그대로 보존한다.¹⁸ - P38

18 지그문트 프로이트, <정신적 기능의 두 가지 원칙>, <억압에 관하여>, <무의식에 관하여>,
《무의식에 관하여》, 열린책들, 1997, 18, 140, 192쪽, 자기보존 본능에 의해 후천적으로 계발된 2차 정신 과정인 의식은 늘 외부 현실 상황을 고려하여 내적 욕구를 조절하는 ‘현실원칙‘에 의거해 작동된다. 이에 비해 무의식의 내용들은 ‘쾌락원칙‘을 따르는 본능적 1차 정신 과정에 의해 작동된다. 무의식은 외부 세계의 눈치를 보지 않으며, 자체의 법칙에 의해 작동되고 유지된다. 그로 인해 어떤 경험 흔적이든 무의식에 들어오는 순간, 원상태 그대로 평생 보존되는 것이다. - P604

억압된 무의식


프로이트는 자신이 주창한 지형학적 정신구조론에서 무의식을 크게 두유형으로 구분한다. 첫째는 개인이 출생한 순간부터 외부 환경과 내부 욕동으로부터 받은 수많은 자극 가운데 당시의 자아가 감당하기 힘들어 억압한 무의식이다. 이 무의식은 주로 충격적 과잉 자극으로 구성된다. - P39

21둘째는 ‘자연적 본능instinct‘과 ‘인간적 본능인 욕동 drive‘이다.²¹ 편의상 이두 가지를 혼합해 ‘본능‘ 내지 ‘요동‘으로 표현하겠다. 욕동은 오랜 진화 과정을 거쳐 형성된 인류의 보편 요소다. - P39

21 본능은 고정된 대상에게 고정된 행동을 유발하는 생물학적 특성을 지칭하며, 욕동은 문화적 전환성을 지닌 유동적 본능을 지칭한다. 인간은 본능과 욕동을 함께 지니는 유일한 ‘생리적·심리적 존재‘다. - P604

원시시대에서 현대에 이르는 동안 인류가 반복해서 겪은 강력한 체험들은 자아에 의해 억압되어 무의식에 저장되었다가 그중 일부는 욕동에흡수되어 유전된다.²³ - P40

23 지그문트 프로이트, <자아와이드>, <쾌락원칙을 넘어서>, 열린책들, 1999, 110쪽. "자아는이드에서 칼로 자르듯 분리되어 있진 않다. 자아의 하부 일부는 이드와 합병된다. 억압된것 역시 이드와 합병되어 이드의 일부를 구성한다. (...) 억압된 것은 억압으로 인해 자아와단절되어 있지만, ‘이드를 통해‘ 자아와 의사소통할 수 있다." - P604

본능욕동은 또한 파생물(표상과 감정)을 통해 외부로 분출하여 쾌락을 획득하려는 성향을 지닌다. 그런데 현실의 냉혹한 압력에 의해 본능표상과 감정이 오랜 기간 과도하게 억압될 경우 내부에 축적된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 모종의 대리 분출 활동이 일어난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원초적 환상‘이다. - P41

무의식은 이처럼 선천적인 본능욕동과 원초환상들, 그리고 후천적으로 경험되었다가 자아가 감당하기 힘들어 억압한 과잉 자극과 공격환상•성환상 등으로 구성된다. 이 선천적 무의식(본능욕동)과 후천적 무의식(상처, 성환상)은 자아가 약해지거나 현재의 어떤 자극이 무의식의 특정 내용과 우연히 결합되어 갑자기 의식으로 치솟을 때 어렴풋이 지각된다. - P42

프로이트가 말년에 제시한 ‘역동적 정신구조론‘에 의거하면 신화의 생성 원인과 의미를 새롭게 조명할 수 있다.²⁷ 3원적 정신구조론에 의하면 인간의 정신은 각각 고유한 특성을 지닌 ‘이드·자아·초자아‘로 구성된다. - P42

27 지그문트 프로이트, <쾌락원칙을 넘어서>, 열린책들, 1999의 ‘죽음본능론‘, <자아와 이드>에 나오는 ‘3원적 정신구조론‘ 참조. - P605

정신구조론은 여러 유형의 대상들이 이드·자아·초자아 각각에 미치는 영향과 이것들이 정신 내부에서 상호 대립하면서 관계 맺는 역동적 구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 P43

집단무의식

프로이트는 유전된 본능욕동과 환상, 상처, 억압된 유년기 쾌락욕망과 경험 등을 무의식의 주요 내용으로 주목했다. (중략). 융은 프로이트가 개인 삶에 미치는 집단무의식의 거대한 작용을 성찰하지 못한 채 개인무의식의 힘에만 주목했다고 비판한다.²⁹ - P43

29 카를 구스타프 융, 《원형과 무의식》, 솔, 2003, 156-159쪽. - P605

융의 비판에 자극받아 민족의 집단정신성에 관심을 갖게 된 프로이트는 "개체발생은 계통발생을 반복한다."라는 당대 생물학 이론을 참고한다.
그리고 이 이론을 응용하여 선조들이 반복해서 겪었던 중요한 경험의 흔적은 본능에 흡수되어 후손에게 유전되고 문화를 통해 전승된다고 생각했다.³⁰
융은 인간의 본능욕동이 개인사적 경험에 의해 변화되고 문화로 전승된다는 프로이트의 관점에 반대한다. - P44

30 지그문트 프로이트, <토테미즘의 유아적 재현>, <토템과 터부》, 경진사, 1993,195,209 (주178), 224-225, 229쪽. 이 책에서 프로이트는 다윈의 진화론을 정신분석학과 접맥하려 한다. <편집증 환자 슈레버>(<늑대인간>, 열린책들, 1996, 369쪽) 맨 끝에 덧붙인 글에서는 자신의견해가 융과 유사함을 언급한다. "편집증 환자 분석을 통해 나는 융의 주장이 타당함을 발견했다. 융은 인류가 신화를 만들어내는 힘이 사라지지 않았고, 신경증에선 지금도 먼 과거와 동일한 정신적 산물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 나는 개체의 문제에 적용했던정신분석 명제들을 인류의 문제로 넓힐 때가 곧 오리라 생각한다." 한편 융은 말년 작품인《인간과 상징》에서 "태아의 형성 과정이 역사 이전의 진화 과정을 반복하듯이 마음도 역사이전의 단계를 밟으면서 발달한다. 꿈은 ・・・ 유아기와 함께 선사시대의 ‘회상‘을 불러일으킨다는 내용을 프로이트도 이미 파악했다."라고 언급한다. 카를 구스타프 융, 《인간과 상》, 열린책들, 1996, 99쪽. - P605

인간다움mumanity의 본질인 이 원형에는 인간이 마땅히 실현해야 할 보편적이고 궁극적인 인생 목적과 정신의 전형적인 발달 과정이 내재해 있다.³¹ (중략). 인간의 근원적 욕구는 성욕을 만족시키는 것이 아니라 개성화(자기실현)를 이루려는 욕구인 것이다.³² - P44

31 원형들은 자체로는 인식될 수 없지만, 출생·결혼·모성애·죽음. 이별 같은 인생사의 보편경험을 둘러싼 행위들에서 인식될 수 있다."(앤드루 새뮤얼 외, 《읍 분석비평사전》, 동문선, 2000,
45쪽) 음의 원형론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체 관념을 연상케 한다. 실체란 내재된 본질 목적을 지닌 독립적 존재이며, 잠재된 본질인 ‘가능‘에서 본질이 현실에서 실현되는 ‘현실태‘로 움직여가는 목적론적 존재다. 이때 외부 세계의 환경은 개별적 실체의 본질이 실현되는것을 촉진하거나 방해할 수는 있어도 본질 자체에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 마찬가지로 비록 의식과 무의식으로 분열된 인간 정신이 (재)통합 상태를 향해 수만 년 동안 진화해왔을지라도 통합해야 할 핵심 대상인 집단무의식의 원형들 자체가 변한 것은 아니다.
32 개성화는 진정한 자신이 되는 것이며, 집단적 관계를 전제한 인격 발달을 목표로 한다. 또한 집단적 특질을 더 완전하게 성취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아가 약한 사람이 개성화를 시도하면 자아 팽창과 무의식에 압도되어 위험해질 수 있다. 카를 구스타프 융, 위의 책, 261쪽;앤드루 새뮤얼 외, 위의 책, 122쪽. - P606

민족의 무의식에는 태초부터 전승되어온 고유의 ‘원형 이미지‘(영웅상)가 담겨 있다. 길가메시, 주몽, 바리데기, 예, 순, 스사노오, 오오쿠니누시오시리스, 페르세우스, 헤라클레스, 발드르, 부처, 예수 등은 무의식에 담긴 원형 에너지를 자아에 통합하여 자기실현에 성공적으로 활용한 영웅표상들이다.  - P45

이들 영웅이 수행하는 개성화는 다음과 같은 단계를 밟는다. 첫 번째는그동안 망각하고 외면해온 민족정신의 부정적 결함 요소인 그림자를 자아의식이 용기 있게 대면하고 변화시켜, 자아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로 통합하는 단계이다. (중략).
두 번째는 사회적 얼굴이자 역할인 페르소나를 개개인이 형성하고 발달시키는 과정에서 경직된 사회적 성역할로 인해 소외되어온 본연의 성에너지(남성 속의 여성적 요소인 아니마anima, 여성 속의 남성적 요소인 아니무스animus)를 대면하고 자아에 통합하는 단계이다.³³ - P45

33 음에게 영웅의 원형은 그림자, 아니아니무스, ‘자기‘를 정신의 발달 과정에 맞게 차례로 대면하여 통합하는 이미지로 나타난다. 이 원형은 각 민족의 신화나 역사 속에서 예수부처, 단군 등으로 형상화된다. 그런데 이런 영웅 이미지들은 이미 존재하던 영웅의 원형이 역사 속 인물을 통해 구현된 ‘의식적 표상‘일 뿐이다. 의식적 표상과 원형은 다르다. 원형은 태초부터 선천적으로 존재해오는 것이며, 결코 의식적 경험에 의해 그 본질이 변화되지않는다. 단지 그것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정신의 역사적 진화 과정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웅이 말하는 집단무의식에 유전되는 역사란 의식의 역사가 아니라 동물적 교감을 하던 태곳적 선사시대의 흔적‘들을 지칭한다. 즉 의식의 경험들은 결코 원형에 흡수되거나 유전될수 없다. 카를 구스타프 융, 위의 책, 67쪽. - P606

세 번째는 자아가 인류의 원형 에너지를 담고 있는 ‘자기‘에 접속하여 자기의 힘을 내면으로 흡수하는 단계이다. 영웅신화에서 이 단계는 주인공이 비범한 조력자를 만나서 그로부터 그동안 인식하지 못했던 인류의 심오하고광대한 지혜를 전해 듣고 자기 것으로 소화해내는 과정에 해당한다. - P46

마지막은 개인의 자아가 그렇게 얻어진 인류의 거대한 원형 에너지를 당대 집단이 풀지 못했던 현실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사용하는 과업 실현‘ 단계이다.  - P46

모권적 무의식과 모성적 무의식³⁶


프로이트 이후 현대정신분석학계는 엄마가 유아의 정신발달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세밀히 탐구해왔다. - P46

36 클라인과 위니콧이 이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이 용어는 클라인의 ‘박해하는 모성적초자아‘, 위니의 아기의 불안을 품어주고 헌신적으로 돌봐주는 ‘보통의 좋은 엄마‘ 개념을 반영하면서 프로이트-융 비교를 명료화하기 위해 필자가 고안한 것이다. 클라인의 ‘좋은 젖가슴‘과 ‘나쁜 젖가슴‘ 환상은 신화 속의 자애로운 모신과 공포감을 주는 모신으로 연결된다. 대립되는 두 모신은 ‘모성적 무의식‘과 ‘모권적 무의식‘을 반영한다. 이경재, 《신화해석학》, 다산글방, 2002, 258-260쪽 참조. - P606

모권적 무의식: 파괴하고 집어삼키는 괴물

영아와 유아의 내면 심리에 주목하고 어머니와의 관계 경험이 아이의 정신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탐구한 최초의 정신분석학자는 클라인이다. 그는 출생 후 5개월 사이 유아의 내면세계에 주목했다. - P47

갓 태어난 영아의 일차 과제는 정신 내부에서 역동하는 죽음욕동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다. 자아가 미성숙한 영아는 이 파괴욕동과 그로 인한 멸절불안을 스스로 처리할 수 없다. 영아에게는 이것을 대신 처리해줄 양육자의 도움(대리 자아 역할)이 절실하다. - P47

파괴욕동의 극단 양태인 시기심은 정신 내부의 좋은 대상들과 정신활동조차 파괴하므로 내면을 황폐하게 만들고 자아 기능을 마비시킨다. 이상태를 감당하기 힘든 유아는 파괴욕동과 불안을 외부의 젖가슴이나 엄마 몸에 투사하거나, 파괴욕동을 담은 정신의 일부분을 엄마 몸에 투사동일시로 집어넣는다. - P4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The Heat


5장


Will Kill

범죄 현장
폭주하는 더위, 인류 모두가 공범이다

You First



극단적 폭염


당시 영국 역사상 가장 더운 날로 기록된 2022년 7월 19일의 이른 오후 39세의 기후과학자 프리테리케 오토 Friederike Orto는 자전거를 타고 런던 브리지를 건넜다. 서더크구의 아파트를 나와 시내에서 열릴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중략). 당시 열두 살이었던 오토의 아들은 그날 학교를 빠졌다. 학교에서는 전부터 학생들에게 더운 날에는 되도록 집에 머물면서 물을 많이 마시라고당부해왔다. - P163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극단적 폭염은 대개 대자연의 표준적 영향, 다시 말해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의 말마따나 "단순히 날씨 때문은 아니라는 것을 오토와 그녀의 동료들은 증명해온 참이었다. 극단적 폭염의 원인은 인간의 행동과 결정에 있었다. - P164

오토가 나중에 내게 말했다. "불씨 하나만 있으면 런던은 언제라도 다시 화염에 휩싸일 거예요."*
오토는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시내를 가로지르다가 화들짝 놀랐다. 창문을 활짝 열어젖힌 집들이 정말 많았기 때문이다. (중략). 그녀는 지금 한 명의 과학자로서 자전거를 타고 런던 시내를 질주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지금 한 명의 탐정으로서 자전거를 타고 범죄 현장을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실제로 런던의 일부 지역들어 화제가 밭의 분이 여러 채의 건물과 차량들에 옮겨 붙어 발생한 일이 있었다. 런던시에 따르면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방대가 가장 바탔던 날이었다고 한다. - P165

열의 이해

폭염이 왜 그렇게나 위험한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열의 속성에대해 조금은 알아야 한다. 어쨌거나 열은 온도와 똑같지는 않다. 기온은 열을 측정한 값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열은 과연 뭘까? 일종의 화학 반응일까? 중력처럼 어떤 근원적인 힘일까? - P16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