즉, 데리다의 주장처럼 경험이 해체되어야 하고, 미첼의 주장처럼 그것이 담론의 산물이라 할지라도 플럭서스 작품의 경험적인 차원은 그럼에도불구하고 사람들을 현실 세계와 서로 연결하고, 장소와 집단에 대한 개인의 소속감을 확장하는 존재론적 지식을 제공할 수 있는 (실제적이거나 경험에 근거한 담론을 통해) 능력을 가지고 있다. - P87

이벤트와 플럭스키트는 부수적인 경험에 대한 주요한 경험, 즉 해석이나 연상의 가치를 존재론적으로 주장한다. 비록 존재하더라도 부수적인경험은 작품의 요점이 아니다. 즉 플럭서스는 포스트모던적 의미에서 보자면 메타 담론이 아니다.  - P88

이번 장의 나머지 부분은 교착상태를 협상하고, 진짜 경험 세계에 플럭서스를 위치시키지만, 그와 동시에 플럭서스 사물들을 이해하기 위한 담론적 맥락을 만들어내기 위한 시도를 제시한다. - P88

그러나 거의 모든 플럭서스 예술가들은 예술적인 습관의 세계로 물러나 미니멀한 플럭스키트와 이벤트를 결코 영원히 만들어내지 않을뿐더러,
<블링크> 그래픽이 나타내고 있는 것처럼 전통적인 예술적 미디어로 작업한다. 플럭서스는 "세계에 진실한 접근을 보장하는" 척하면서 독점적으로 경험주의적인 제작은 분명히 아니다. - P90

다윈파 예술사가인 디사나야케(Ellen Dissanayake)는 예술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What Is Art for?)」에서 예술의 생산은 그것이 형식과 기능에서언어와는 다르다고 할지라도 언어처럼 하나의 보편적인 생물학적 명령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녀는 모든 사람이 순수미술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처럼) 고급 예술에 대해 개념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할지라도 그들에 의해 생산된 미술은 "특별하다"라고 주장한다. - P90

디사나야케의 인문학적인 틀은 비록 그것이 예술을 평가하는 프로그램이 없다고 할지라도 미학을 허용한다. 즉 "자기를 자위하거나 조각하는 행위는 본질적으로 예술적인 행동이 아니다. 그 맥락을 벗어나서 미학적인이유가 있기에, 퍼포먼스를 정교하게 행하는 것이 어떤 경우에는 ‘특별하게 되며, 특별하고 예외적인 경우를 리얼리티로 전환한다."⁷⁴ - P91

74) 엘런 디사나야, 『예술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101쪽. - P297

플럭서스 예술가들은 그들 자신의 정서적인 세계를 추상적으로 전달하기보다는 오히려 가장 넓은 의미에서 미학적인 메타 리얼리티를 표방하면서 구체적인 일상 재료에 관객이 주의력을 가지도록 했다. 마틴이 언급하고 있듯이 "우리는 온전함과 충만함에 기여할 수 있는 이벤트, 경험, 정서, 감수성을 위한 여지를 우리의 삶에서 만드는 법을 배운다. 그렇지 않으면 실수로 우리는 불필요한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⁷⁵ - P92

75) 헨리 마틴, 『플럭서스와 인본주의적 전통』, 4쪽. - P297

덴마크의 플럭서스 예술가인 안데르센의 설치미술은 관객의 환경과 일상적인 삶 속으로 확장되는데, 재료들과의 연속적인 상호작용을 요구한다. 특히 성공한 그의 작품인 <트래블링 월(Travelling Wall)>(1985)은 통행인들에게 쌓아놓은 벽돌을 앞으로 나르도록 지시한다. - P92

플럭서스는 종종 예술로부터 삶 속으로 스며들어 간다. - P94

 디사나야케의 용어로 말하자면, 그녀는효과적으로 예술을 긍정적이고 인류학적인 의미로 만들면서 일상적인 것을 메타 리얼리티로 전용했다. 마틴의 관용법으로 말하자면, 그녀는 그렇지 않다면 의미가 없는 것으로 무시되었을 그녀 주위의 이벤트, 경험, 감성과 감수성을 위한 공간을 만든 것이다. - P94

나에게는 평범한 재료와 경험에 가치를 매기는 것이 주체에 개방되는동안에 주체에 대한 비판적인 관계성을 유지하는 감상적(냉소적인 것에 반대된 것으로), 공감적(소외된 것에 반대된 것으로), 인식적인 모델로 향해 나아가는 것으로 보인다. - P94

 문화 속의 예술에 대한 대부분의 심리학적 설명에서 급진적으로 벗어난 이 이론에 따르면 비록 예술이 개인이나 심지어는 문화를 위한 것일지라도 그 예술이 반드시 심리적 트라우마의 부산물일 필요는 없다. 그 대신에 예술은 개인을 문화와 연결한다. - P96

심리치료사인 힐먼(James Hillman)은 특별한 것에 대한 디사나야케의 개념, 플럭서스 이벤트와 평범한 플럭스키트의 일상성을 공명하는 것과 관련지어 발견된 사물(뒤샹의 레디메이드에서처럼)을 예술로 묘사했다. 의미심장하게 발견된 사물은 예술의 종말(맨 처음 뒤샹의 경우가 해당하는 것처럼)을나타내지 않으며, 오히려 힐먼의 경우에는 살아 있는 초월적인 메타 리얼리티의 시작을 나타내는 것이다. - P96

"살아 있게 되는 사물들"의 경우에 살아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그것들의 지위에 대해 어떤 예측 불가능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이 예측 불가능성은 우리가 사물들을 이해하고 탐구하며 깊이 있게 생각하려고 노력해야한다는 점을 의미하지 않는다. - P97

 오히려 플럭서스는 그 물질주의에서 인간의 생존, 즉 그 경험으로 생겨나는 폭에 관한 모든 종류의 증거라는 도식을 합리화하는 것에 대한 인간의 저항에 근본적으로 개입한다.
맨더(Jerry Mander)는 지구촌 경제에 반하는 사례(The Case against theGlobal Economy)에서 모든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요소인 경험의 모든 목소리에 대한 심오한 민주주의, 관용과 주의력을 주장한다.⁷⁹ - P97

79) 제리 맨더 · 에드워드 골드스미스(Edward Goldsmith) 편, 『지구촌 경제에 반하는 사례: 그리고 지역으로 향하는 전환(The Case against the Global Economy:And for a Turn toward the Local)』(San Francisco: Sierra Books, 1996). - P297

플럭스키트와 이벤트에서 평범한 사물들과 행동들을 탐구하는 것은 주요한 지식과 다감각적인 경험을 낳는다. 이러한 경험을 논의하는 것이 필연적으로 그것을 부분적으로는 부수적으로나 담론적으로 표현하는 것일지라도 그것은 플럭서스의 요점이다. - P98

탐구를 위해 택한 자료인 플럭스키트나 이벤트의 내용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술가에 의해서뿐만 아니라 플럭스키트의 사용자나 이벤트의 퍼포머에 의해서도 "특별함"의 속성을 부여받기 때문이다. 그러므로플럭서스의 재료들이 부분적으로는 미술로서 의미를 얻을 뿐만 아니라,
(좀 더 중요하게는) 그렇지 않다면 일상생활에서 그것들의 특별하지 않은 지위에도 불구하고 초월적인 미학적 경험을 가능하게 만들기 때문에, 그것들은 개인적으로, 사회적으로 심대하기 중요하다. - P99

제5장
예술 형식으로 가르치고 배우기
플럭서스에서 영감을 받은 교육학

플럭서스 경험이 예술계에 존재한다는 사실은 경험이 거기에 어느 정도 상관성이 있음을 나타낸다. 즉 주요한 정보가 서구 문화에서 정보와 분석의 부수적인 형식에 부여하는 압도적인 우선권에 대한 긍정적인 균형임을보여준다. 플럭서스 경험은 논의의 틀 내에서 무엇인가를 의미하는 담론적기능을 갖는다. - P257

 그러기 위해 나는 몇몇(그리고 연관된) 플럭서스 예술가들의 실험교육학에 기반을 둔 광범위한 기반을 가진 교육학적 모델을 전개할 것이다.¹ - P257

제5장 예술 형식으로 가르치고 배우기: 플럭서스에서 영감을 받은 교육학

1) 특히 미국에서 내가 플럭서스의 역사, 즉 보이스, 브레히트, 케이지, 패터슨은모두 미국과 유럽에서 플럭서스와 유대관계를 가져왔다고 이미 개략적으로 기술했을 때 이것에 대한 역사적인 근거가 있다. - P325

대락적인 설명

(전략)
필리우는 자신의 저서 퍼포먼스 예술로 가르치고 배우기 (Teaching andLearning as Performing Arts)」의 서문에서 실험교육학에 대한 플럭서스와 관련된 예술 형식들의 적용 가는성을 묘사하고 있다. - P258

필리우는 이러한 이념들에 이어서 (독서도 결국 퍼포먼스의 한 형식임) 창조적인 독자를 말 그대로 초대하기 위해 자신의 저서를 3분의 1 정도 비워둔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그 공간은 독자와의 상호작용을 의도한다. "물론 독자는 기술하는 공간으로 활용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그가 단순한 이방인으로서보다는 오히려 퍼포머로서 게임을 기술하게 되기를 바란다.
이것은 편안하게 계속 기술하게 만드는 길고도 짧은 책이다."⁸ - P259

8)로베르 필리우, 가르치고 배우기』, 1쪽. - P326

이 프로젝트에서도 공동체적 접근이 중요하다. 필리우의 저서에 소개된 인터뷰에서 케이지는 "더 많은 양의 정보 교환이나 경험 교환은 거기에있는 더 많은 사람과 즉각적으로 관여하지만, 그것은 정확히 우리가 지금사는 상황, 즉 넘쳐 나는 이념과 경험 중 하나"라고 주장한다.⁹ - P260

9) 같은 책, 114쪽. - P327

그가 교환되는 것을 특징짓기 위해 "풍부한 아이디어와 경험"이라는 문구를 사용한 것은 크고 접근이 가능한 교환 물질의 세계를 전달한다. 이 물질은 몇 가지 예를 들면 책이나 전문화된 정보 같은 전통적인 것뿐만 아니라, 개념적이거나 시적인 모델, 음악, 음식, 춤, 심지어는 지역적인 환경과의 직접적인 상호작용 등 모든 형태의 인간 발명품들이다.¹⁰ - P260

10) 이 점은 95개 언어와 7개 지능 형태(Ninety-five Languages and Seven Formsof Intelligence)」(New York: Peter Lang, 1999)에서 다양성이 문화적인 자부심과 공유로 표현될 때 그 다양성으로부터 얻게 되는 복합 문화적인, 더 나아가복합 언어적인 교실의 이점을 주장하는 힉스에 의해서도 행해졌다. - P327

그러한 학습은 (동의와는 구별되는 것으로) 상호 이해라는 목표를 갖는데, 그것은 전문가들이 세계가 어떻게 경험되어야 하는지를 구술하는 곳에서 전통적인 교육 모델에 역행하는 지점이다. 교육 비평가인 힉스(D. EmilyHicks)가 언급하고 있듯이 정치적이고 탈영토화된 주체라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개념에서 빌려온 것이다. - P260

하버드 대학교의 교육 및 신경학 교수인 가드너는 인지적 차원에서 개인 차이의 문제를 언급하면서 인간은 적어도 7개의 근본적으로 다른 지능형태를 이용하여 세상과 상호작용한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제1세계 교육체계의 모든 등급에서 표준화된 시험에서 우위를 점하게 된 언어, 논리-수학 형태 외에도 인간은 음악, 신체운동, 공간, 대인관계, 자기이해에 관한 지능을 다양한 수준에서 보유하고 있다.¹⁴ - P261

14) 하워드 가드너, 『다중 지능: 실제론(Multiple Intelligences: The Theory inPractice)』(New York: Basic Books, 1993), 8~9쪽. 또한 그의 마음의 틀 다중지능 이론 참고. - P327

이 성향은 매우 광범위하게 변하기 때문에, 교육은 많은 다양한 의사소통 방식들을 포함해야만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즉 "왜냐하면 교육과정 자체가 지시되는것이라고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같은 방식으로 그것을 배워야 할 이유는없다. 기하학 수업이 공간적, 논리적, 언어적 혹은 수리적 능숙도에 의지할수 있다고 할지라도, 역사 수업도 언어적, 논리적, 공간적 앎, 그리고/아니면 개인적 방식의 앎을 통해 제시될 수 있다."¹⁵ - P262

16) 데이비드 겔런터, 『기계 속의 뮤즈: 인간 사상의 시 컴퓨터화(The Muse in theMachine: Computerizing the Poetry of Human Thought)』 (New York, FreePress, 1994), 46~47쪽. - P327

빌데메이르스는 현재의 고등교육 모델에서 지지하는 객관성에 대한 가식과는 거리가 먼, 주관적 리얼리티와 객관적 리얼리티를 연결하는 해석적기능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는 "우리는 성인 교육을 참여자들 간의 거래적 대화로 생각할 수 있다. 이 대화에서 참여자들은 자신의 개인적, 전문적, 정치적 및 여가 생활 세계를 바라보는 태도와 시각, 그리고 다양한 목적, 동기와 기대를 가져온다"라고 말한다.¹⁸ - P263

18) 빌데메이르스(같은 책, 65쪽)는 브룩필드(S. Brookfield)의 「성인 교육의 비판적정의(A Critical Definition of Adult Education)」(Adult Education Quarterly 1,
1985) 41쪽을 인용하고 있다. - P327

우리의 (정상적으로 구분된 객관적 자아와 주관적 자아를 과정으로 한데 모으는 방식으로서의 이러한 교육 모델은 소위 표준 운동(StandardsMovement), 특히 그것이 고등교육과 과정에 적용됨으로써 미래 성공이 표준화된 시험들(예를 들면 SAT와 GRE)에 의해 "계량화"되었을 때 그 운동에 대한 문제들을 제기한다.  - P264

인지 심리학자들은 재빠른 회상과 반복만을 요구하는 "표면" 사고, 그리고 "정보를 해석하고 얽힌 문제를 해결하며, 가능하다면 흥미롭고도 새로운 것도 만들어내기 위해 그 정보의 다양한 원천을 종합, 분석하는"²² 심층 사고를 구분한다. 경험적으로 가공 처리된 정보와 복합적인 지능의 골치 아픈 영역을 피하는 시험 문화는 인식적인 피상성을 조장한다. - P264

22) 피터 색스, 『표준화된 마음들: 미국의 시험 문화의 고 비용과 그것을 변화하기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209쪽. - P328

그러나 결국 경험적인 학습에 좀 더 중요한 평가를 할 때 어떤 위협에 직면하게 되는 전문 지식의 문제는 무엇인가? 아마도 한쪽에는 우리 직업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전문 지식의 기준이 실제로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물어야 하지 않을까? - P265

탐구적인 창조성을 통해 일종의 인식적인 교차 훈련을 허용하는 ‘인터미디어 도해‘(<그림 33> 참고)상의 선들을 따라 교육학적 접근에 대해 조정이 가능한 도해식 메커니즘을 상상해 보라. 나는 이 이념에 가까워지기 시작하는 초등학교 교실에서 다중지능 이론을 적용할 활동 매뉴얼을 보았다. 예를 들어 플럭스키트와 이벤트, 그리고 향기 나는 상자를 만들거나(예를 들어 많은 종이 클립 길이로서 장갑의 크기를 표현하는 논리적으로 무관한 사물들과 관련시킴으로써 일상적인 사물들을 측정하는 설명서와 유사한 것들이 아주 많다.²⁵ - P266

25) 『다중지능 활동 중 최상의 것(The Best of Multiple Intelligence Activities)』(Westminster, Calif.: Teacher Created Materials, Inc.), 각각 43쪽, 95쪽,
181쪽, 331쪽. - P328

교육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즉 서로 다른 유형의 지능은 적절한 자극과 상호작용이 주어지면 서로 충돌하고 서로를 활성화한다. 일례로 한나 퍼드는 촉감이 어떻게 두뇌의 다른 부분에 있는 잠재 학습을 실제로 증가시키는지를 설명한다.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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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이벤트에서 히긴스, 머추너스, 놀즈, 윌리엄스는 예술협회의 오래된 작동하지 않는 피아노를 확실하게 파괴하는 데 가담했다. 그들은 악기를 파괴했지만, 무계획적이지 않았다. <그림 22>는 멋진 동작을 보여준다. 즉 현들을 벽돌로 신중하게 문지르며, 망치를 사용할 바로 그 순간을 기다리는 인내를 보여주었다. - P79

레빈에 의하면, "우리가 다루는 사물들은 항상 우리 손에서 받는 처우에 화답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동작이 매우 배려하는 모습일 때, 그 동작은 그 사물들의 존재론적 진리의 훨씬 심오한 노출을 주의 깊게 다루었던 사물들로부터 되돌려 받는다."⁶² - P79

62) 데이비드 레빈, 『존재에 대한 신체의 회상』 153쪽. - P296

그러나 의미의 본능적인 기반은 이벤트의 내부적인 논리를 일부 설명할뿐이다. 여태까지 논의한 악보가 의미하는 것처럼, 이벤트는 실제로 그리고 개념적으로 뉴스쿨에서 열렸던 케이지의 1958~1959년 음악 작곡 수업에서 유래했다. - P79

음악을 근본적으로 본능적이라 했던 하이데거의 묘사는 이벤트에서 음악적인 생각의 긍정적인 영향을 확신시킨다. 그는 음악이 "모든 형식의 구체화, 전체화, 환원주의를 대변하고 격려한다. 그리고 항상 일시적이고,
항상 의문을 제기하며, 존재들의 있음이란 그러한 것이어서 그 존재들은스스로를 다양한 해석에 맡긴다는 사시 항상 경계하는 인식론적인 겸손, 즉 엄격한 실험적인 태도를 격려한다"라고 말한다 - P82

바이올린을 광택 내거나 파괴할 수 있으며, 피아노를 꽃병으로 장식하거나 내부를들어낼 수 있고, 패터슨의 고전 이벤트인 <페이퍼 뮤직(Paper Music)>(<그림 24>)의 경우에서처럼 종잇장을 신중하게 기록하거나 둘둘 말 수 있으며,
조각으로 찢을 수 있고, 관객에게 던질 수도 있다.
그래서 이벤트에 내재하는 음악성은 서구의 주류 인식론을 비판하는 반면에 구조화된 부수적인 지식 대형(예를 들어 미술사, 음악학, 철학, 문학)의
"구체화, 전체화, 환원주의"도 해체한다. - P85

하이데거에 대해 언급하는 레빈은 경험뿐만 아니라 계몽주의에서 유래하는 비전에 관한 철학적 태도와 관련지어서도 시각적으로 습득한 지식과 청각적으로 습득한 지식을 구별한다. 비전에 뿌리를 둔 "현존의 형이상학은 비전이 "시각적인 형태를 보는 바에 의해 움직이지 않고, 무표정하며,
감동되지 않는 관찰이나 명상으로 귀결되며, 권력에의 의지에 따라 내몰리는 경향이 있고 종종 그러하다."⁶⁵ - P85

65) 데이비드 레빈, 「쇠퇴와 몰락: 하이데거의 형이상학사 독해에 나타난 시각중심주의(Decline and Fall: Ocularcentrism in Heidegger‘s Reading of theHistory of Metaphysics)」, 데이비드 레빈 편, ‘근대성과 비전의 헤게모니(Modernity and the Hegemony of Vision) (Berkeley: University of CaliforniaPress, 1993), 203쪽. 나의 견해 강조. 나는 하이데거에 대한 그의 분석에 빚을많이 지고 있다. - P296

진짜라는 문제

직접적인 지각, 주요한 정보, 구체적인 지식과 경험 자체는 현재의 예술 철학적 풍토에서, 특히 플럭서스와 같이 일반적으로 정치적 동기가있고 광범위하게 해체적인 것으로 묘사되는 운동에서는 유지하기 어려운 가치이다. - P86

 즉 "경험주의를 미학적인 경험으로 다시 기술하는 것은 형이상학에서 새로운 학문으로 해방하는 것으로 광고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경험주의적인 전통의 소위 직접적인 지각 메커니즘은간접적이고 상징적인 매개라는 개념으로 가득 차 있다."⁶⁹ - P86

69) W. J. T. 미첼 (W. J. T. Mitchell), 『이코놀로지(Iconology)』 (Chicago: Universityof Chicago Press, 1986), 59. - P297

즉, 데리다의 주장처럼 경험이 해체되어야 하고, 미첼의 주장처럼 그것이 담론의 산물이라 할지라도 플럭서스 작품의 경험적인 차원은 그럼에도불구하고 사람들을 현실 세계와 서로 연결하고, 장소와 집단에 대한 개인의 소속감을 확장하는 존재론적 지식을 제공할 수 있는 (실제적이거나 경험에 근거한 담론을 통해) 능력을 가지고 있다. - P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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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평등

들어가며

한 집단이 스스로 통치한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집단 구성원들이 모두 동등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어떤 개인이나 집단도 몇몇 특성traits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더 선호되어서는 안 된다. - P137

그럼에도 평등에 대한 정의는 ① 모든 구성원이 실질적으로 평등한 참여의 기회를 가져야 하며, ② 그들이 [의사 결정과정에] 참여할 경우, 그들의 선호가 동등한 비중을 차지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실질적으로 평등한 기회‘라는 말과 ‘~할 권리‘ the right to라는 말은 다르다. 나는 권리라는 단어가 다소 공허하다고 생각한다. - P137

이렇게 정의할 경우, 평등과 익명성은 같지 않다.* 익명성은, 민주주의에서 시민들이 그 어떤 특성(그들이 불평등하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특성을포함해)에 의해서도 시민이라는 지위 면에서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부유한 사람‘ 또는 ‘잘생긴 사람‘이라고 표현할 수는 있지만, 부유한 시민 또는 잘생긴 시민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다. 

*우리가 지금까지 본 것처럼, 사회적 선택이론은 평등과 익명성을, 때로는 이른바 대칭성 symmetry까지도 같은 것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이 조건을 세 가지 다른 말로표현한다는 점은 이 조건이 얼마나 모호한지를 보여 준다. 메이는 이 조건을 "대칭성"이라 부르고 이렇게 말한다. "이 두 번째 조건 [대칭성]은 [집단적 의사 결정의]결과와 관련해 모든 개인의 영향력이 동등하게 취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이조건을 익명성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 좀 더 흔한 명칭은 평등이다" (May 1952,
681, 강조는 메이). 레이는 익명성과 평등이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라고 했다(Rae 1969, 42, 각주 8). 그는 다른 논문에서 이 조건을 "대칭성"이라 불렀다(Rae1975, 1271). 달은 익명성과 평등을 같은 것으로 취급한다(Dahl 1989,139). - P138

민주주의에서 시민은 평등하지 않다. 다만 익명일 뿐이다. 민주주의의 계보에는 평등이 아로새겨져 있지만 평등은 민주주의의 특징일 수 없고 그렇지도 않다. - P138

이런 특성은 부, 나이, 성별과같은 몇 가지 지표를 통해 판단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지표들을 기준으로선거권을 제한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규범을 위반하지 않는다는 식이다.
이 주장의 논리를 반박하긴 어렵지만, [여기에서 전제하는] 가정들은 의문스러우며 실제로도 의문이 제기되어 왔다. - P139

민주주의는 정치혁명이지 사회혁명은 아니었다. 게다가 거의 보편적으로 공유되었던 기대- 이 같은 기대는 누군가에게는 공포였고, 누군가에게는 희망이었다-와 달리, 민주주의는 다양한, 때로는 상당히 거대한 경제적 불평등과양립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민주주의는 대부분의 자원이 시장에서분배되는 경제 체계 안에서 작동하며, 시장은 끊임없이 불평등을 (재)생산한다. - P139

계보: 귀족 지배와 민주주의

‘민주주의‘는 어떻게 역사적 지평에 재등장했을까? 민주주의는 그 지지자와 적대자에게 어떤 의미였을까? - P140

팔머는 기념비적인 연구서에서 근대 시기에 출현한 민주주의를 다뤘다.* 그래서 이 현상에 대해서는 팔머의 연구를 간략히 요약하는 것 으로 충분하다.

+[옮긴이] 팔머는 [법적으로] 구성된 기구constituted bodies라는 개념으로 1760년대유럽과 아메리카에 있던 다양한 유형의 의회, 평의회, 행정협의회를 포괄해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대부분 중세에 기원을 두는 이 기구들은 추상적인 ‘시민‘이 아닌 집단 구성원으로서의 권리와 자유를 가졌고, 상위의 권력은 물론 하위의 대중적 압력으로부터 이를 지키고자 했다. 이 기구들은 한편으로 여타 사회 구성원들을체계적으로 배제함으로써, 다른 한편으로 구성원 자격을 개방하고, 권한과 대표의기초를 변화시켜 스스로를 재구성함으로써 민주주의 운동에 영향을 끼쳤다(Palmer1959, 2장 참고). - P140

(전략)
군주정에 대항하는 운동으로민주주의가 등장한 것이 아니다.
따라서 18세기 말 ‘민주주의‘는 출생 신분을 기준으로 정치적 지위를구별하는 법적 방식에 대항하는 구호였다. 민주주의자는 귀족 또는 귀족 지배에 저항하는 자였다. - P141

(전략). 그러므로 1794년 한젊은 영국인은 자신을 이렇게 표현했다. "나는 민주주의자라고 불리는이상한 계급의 일원이다. 내가 스스로 민주주의자라고 표현한 까닭은, 세습에 따른 구별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특권 질서를 거부했기 때문이다."⁴
매디슨은 「페더럴리스트」 39번 논설[국역본, 297쪽]에서 이렇게 썼다. "이체제의 공화제적 성격을 보여 주는 추가적 증거가 요구된다면, ・・・ [신분으로서의] 귀족이라는 칭호를 완전히 금지한 데서 가장 결정적인 증거를찾을 수 있을 것이다. - P142

4 Palmer (1964, 10). - P343

그러나 여기에는 어떤 수수께끼가 있다. 비록 민주주의자들이 귀족지배(그것이 원래 의미대로 정부 체계 [귀족정]를 가리키는 것이든, 법적 신분 지위를가리키는 것이든간에)에 맞서 싸웠지만, 이 투쟁이 그 외의 다양한 사회적구별의 철폐로 귀결될 필요는 없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하나의 구별이 다른 구별로 바뀔 수도 있었다 - P142

피에르 로장발롱은 이렇게 주장한다. "모든 사람이 법에 종속되며,
완전한 시민임을 요구하는, 평등의 명령은 모든 사람을 저마다의 독특한 결정 요소들을 배제한 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을 함의한다. 그들 사이의 모든 차이와 구별은 저 멀리에 치워 둬야 한다."⁹ 그렇다면 평등의 명령은 어디서 기원했을까? - P144

9 Rosanvallon (2004, 121). - P343

모든 이의 지지를 얻는 데 이보다 더 잘 계산된 수법은 없었다.¹⁰ "몇몇 사실이 이 가설을 지지한다. 폴란드의 타데우시 코시치우슈코는1794년 러시아에서 반란을 일으키며, 농민을 끌어들이기 위해 애매모호한 약속을 했다. 프랑스 제헌의회 의원들은 파리에 사는 보통 사람들의인기를 얻기 위해 그들에게 영합했던 것으로 악명 높았다. - P144

10 Finer (1934, 85). - P343

이미 로크의 『통치에 관한 두 번째 논고』에서 "모든 인간이 어떤 다른 인간의 의지나 권위에 종속되지 않은 채 자신의 자연적 자유에 대해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¹¹라는 원리가 등장한다. 사람들이 논리에 따라 행동한다거나 논리적 모순을 참을 수 없어 행동한다는 이론을 우리가 전제하는 것은 아니다. - P145

11 Locke (1988[1689-90] 국역본, [73쪽]). - P343

민주주의자들이 모든 구별에 맞서 대항했다는 것은 사실이다. 민주주의적 주체의 유일한 속성은, 그들이 아무런 속성도 보유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에서 시민은 단순히 특성 없는 존재without qualities 다.*

+파스퀴노는 홉스가 종교적 차별을 다루면서 이런 개념을 도입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종류의 [종교] 갈등에 직면했을 때, 홉스는 정치적 질서가 중첩적 합의over-lapping consensus와 특성 없는 사회라는 도시의 구조에 기초한다고 생각했다" (Pas-quino 1996, 31). - P145

민주주의와 평등

민주주의의 계보에 평등주의가 아로새겨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의미에서도 민주주의의 특징은 평등이 아니며, 그럴 수도 없다. 파스퀴노는 이렇게 경고한다. "말의 함정에 빠지면 안 된다. ‘특성 없는 사회‘societywithout qualities는 구성원이 평등한 사회가 아니다. 단지 특권층이 법적·제도적 지위를 갖지 않고, [공식적으로] 승인되지도 않는 사회일 뿐이다."¹³ - P146

13 Pasquino (1998, 149, 150).

[프랑스] 인권선언으로 되돌아가 보자. 인권선언의 출발점은 인류의선천적인 평등이다. 민주주의의 평등은 자연적 평등을 반영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선재하는 평등이라는 개념의 함의는 불확실하다. 카를 슈미트가 지적하듯이, "모든 인간이 인간이라는 사실로부터 윤리, 종교, 정치, 경제에 관한 어떤 구체적인 사항도 연역해 낼 수 없다."¹⁴ - P146

 그러므로 몽테스키외는 이렇게 주장했다. "자연 상태에서 인간은 평등하게 태어난다. 그러나 그들은 어떻게 평등한 상태를 유지할지 모른다. 사회는 그들을 불평등하게 만든다. 법이 아닌 다른 수단으로는 평등한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¹⁶ - P147

16 Montesquieu (1995 [1748], 261 [국역본, 137쪽]). - P343

그러나 사회가 반드시 인간을 불평등하게 만드는가? 로장발롱에 따르면 1814년 이후 프랑스에서 ‘민주주의‘라는 말은 현대적인 평등 사회라는 의미로 널리 쓰였다.¹⁷ 고대 그리스나 로마공화정과 관련된 정치체제라는 의미가 아니었다. - P147

17 Rosanvallon (1995, 149). - P343

현대사회가 반드시 더 평등해질 것인지는 복잡한 문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회가 자생적으로 진화해 정치적 평등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모든 이가 기대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 P147

민주주의자들은 베이츠²¹가 정치적 평등에 대한 소박한 개념화라고부른 것을 신봉했다. 정치적 평등에 대한 소박한 개념화는, 민주주의 제도가 시민들에게 정치적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동등한 절차적 기회(혹은 결과에 대한 평등한 권력)를 제공해야 한다는 요구다. - P148

21 Beitz (1989, 4). - P343

카를 슈미트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지배층과 피지배층, 통치자와 피통치자, 명령하는 사람과 복종하는 사람의 동일성"을 의미한다.²² 문제는 통치 능력 자체가 정치적 구별을 만들어 내지 않느냐는 것이다. 즉, 정치 계급 말이다. - P149

22 Schmitt (1993, 372). - P343

(전략). 그래서 민주주의자들은 대표의 임기를 짧게 하고 (뉴저지주의 6개월처럼) 재임횟수를 제한하며, 대표자가 자신의 봉급을 결정하는 권한을 제한하고,
이들을 불신임할 수 있는 절차 등에 집착했다.
그러나 이런 조치들은 일시적인 처방에 불과했다. 대표자와 피대표자 사이의 구별은 대의제에 내재할 수밖에 없다. 즉, 의회에 앉아 있는사람은 대표자이지 인민이 아니다. - P149

물론 통치할 능력이 출생 신분의 차이와 연결된 것은 아니며, 이 점에서선거는 (18세기적인 의미에서 ‘귀족적이지는 않다. 그러나 선거는 더 나은사람을 선택하는 방법이다. 마냉이 여러 자료를 통해 보여 주듯, 선거는능력에 따른 자연 귀족natural aristocracy*의 지배를 인정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여겨졌다. 실제로도 그랬다.

* [옮긴이] 여기서 ‘자연적‘ natural이라는 의미는, 법적으로나 제도적으로 부여된 특권에 따른 것, 또는 세습에 따른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즉, 법적으로 정의된 특권이 아니라, 부, 지위 또는 재능에 의해 사회적 우월성을 향유하는 사람들이 자연귀족을 형성한다. - P150

게다가 대표되기 위해 인민은 반드시 조직되어야만 한다. 조직화에는 지속적인 기구, 봉급을 받는 관료, 프로파간다 장치가 필요하다. 따라서 로베르트 미헬스²⁵가 한탄했듯이 소수의 활동가들만이 의원, 당관료, 기관지 편집자가 된다. - P150

25 Michles (1962, 270 [국악본,383, 384쪽]). - P343

 대의제의 창설자들이 평등이라는 용어를썼다면, 이는 다른 무언가를 정당화하기 위해서였다. 더욱 정확하게 표현하면, 사회적인 차이를 잊어버리겠다는 것, 즉 익명성이라 불러야 할것을 정당화하기 위해서였다. - P151

선거권 제한은 민주주의 이데올로기를 위배하는가?

익명성을 약하게 만드는 것처럼 보이는 한 가지 사실이 있다. 선거권 제한이다. - P152

몽테스키외가 선거권 제한을 어떻게 정당화했는지 살펴보자.²⁷ - P151

일반적인 주장은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① 대표자는 모든사람의 최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 ② 모든 사람의 최선의 이익이 무엇인지 판단하려면 이성이 필요하다. ③ 이성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결정 요인이 있다. 그것은 생계를 위해 노동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는 것([이로부터 나오는] ‘사심 없음‘disinterest), 또는 누군가에게 고용되지 않거나다른 이에게 의존하면 안 된다는 것(‘경제적 자립‘independence)이다. - P152

또한 단지 외양상의 평등만 위배한다는 주장은 다음의 세단계로 펼쳐진다. ① 최선의 공동 이익을 위해 행동한다는 것은 모든 사람을 동등하게 고려한다는 뜻이며, 따라서 모든 사람은 동등하게 대표된다. 

+콩도르세는 이렇게까지 주장한다. "입법의 모든 측면에서 유산층과 무산층의 이해관계는 같다. 단지 유산층이 민법과 세법에서 더 큰 이해관계가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유산층이 전체 사회 이익의 수탁자이자 수호자가 되는 것은 전혀 위험하지 않다." (Condorcet 1986[1788], 212). - P152

② 구분되어야 할 유일한 특성은 공동선을 인식하고 추구하는 능력이다. ③ 이와 같은 능력의 획득이 금지되는 사람은 없으며, 따라서 선거권은 잠재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 - P153

마지막 두 가지가 핵심이다. 사회적 지위의 법적 구별은 오직 통치능력의 지표로서만 유효하며, 인민이 통치에 참여할 수 있는 능력을 획득하고 그것이 적절하게 표시되는 것을 막는 그 어떤 장벽도 없다는 것이다. - P153

납세자에게만 투표권을 주는 방식을 옹호하는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정치적 불평등은 사회적조건의 불평등에 의해 정당화되지만, 이때 그 어떤 법도 사회적 지위가올라가는 것을 막지 않는다. 그러므로 정치적 불평등은 보편주의라는 규범을 위배하지 않는다. - P154

종교에 따른 정치적 권리의 제한 역시 때로는 보편주의적인 언어로 표현되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대체로 이성이 아니라 공통 가치에 호소했다. 루소와 칸트부터 존 스튜어트 밀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는 공통적인 이해관계, 규범, 가치에 근거할 때에만 정치체가 제대로 작동한다고 믿었다. - P155

여성에 대한 선거권 제한은 가장 어려운 이슈였다. 비록 초기에 여성선거권을 지지한 사람들은 이성이 성별에 따라 다르게 배분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는 했지만, 주류의 입장은 여성에게 선거권을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다. 여성은 아동과 마찬가지로 자립적이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만의 고유한 의지가 없다는 것이다. - P155

하지만 왜 여성은 일부 남성과 같은 방식으로 자립적이지 못했는가?
여성이 재산을 가질 수 없는 곳에서 여성은 법적으로 선거권 자격을 얻을 수 없었다. 이는 민주주의 이데올로기에 위배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여성이 자신의 이름으로 재산을 소유할 수 있고 실제로 소유한 곳에서,
재산 소유가 [여성이 정치적 권리를 가질 자격의] 충분한 지표가 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 P156

슘페터는 어떤 [선거권의] 구분이든 그것이 받아들여진다면, 그런 구분의 근거가 되는 원칙 또한 인정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정말로 중요한것은 이것이다. 이와 같은 주제들에 대한 해당 사회의 적절한 견해들을감안한다면 경제적 지위, 종교, 성별을 이유로 한 [선거권] 자격 박탈은우리 모두가 민주주의와 양립한다고 여기는 자격 박탈과 같은 부류에 포함된다는 것이다."³⁸ - P157

38 Schumpeter (1942, 244[347쪽]). - P343

분석적으로 말하자면, 다음 조건이 충족될 때 불평등은 자치에 위배되지 않는다. ① [집단적 의사 결정에서 배제된 이들의 선호가 집단적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권리가 있는 이의 선호와 같을 때, ② 결정을 내리도록 선택된 사람들이 결정할 분명한 자격을 가질 때. - P157

베이츠가 지적했듯이,³⁹ 이상적인 선호가 없거나 그런 선호를 발전시킬 조건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기꺼이 동의한다면, 선거권 제한이나 가중 투표제가 공정하지 않다고 말하기 어렵다. 이 방법은 1857년에 이미 존 스튜어트 밀이 옹호했던 것이기도 하다. 또한 모든 사람이 그런선호를 획득할 수 있거나, 그런 선호를 획득할 조건을 얻을 수 있다면,
선거권을 제한하거나 표에 가중치를 부여하는 것이 불평등하기는 해도 보편주의적인 용어로 정당화할 수 있다. - P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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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유동물에게는 복리(welfare)가 있다.¹ 그들은 삶을 편히 살거나 어렵게 살아가는데, 모든 것을 종합해보았을 때, 일부 동물들의 삶은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다른 동물들의 삶보다 낫다. 

1) (옮긴이) welfare는 복리 또는 복지로 번역되는데, 전자의 사전적 의미는 행복과 이익이고,
후자는 행복한 삶이다. 이 문장은 영어로 "Mammalian animals have a welfare"인데, 여기서 레건이 포유동물들이 충족해야 할 일정한 조건이 있음을 이야기하고자 한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복리로 번역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 P231

설령 이러한 이야기에서 특별히 눈에 띄는 점이 없어도, 그렇다고 주목할 만한 철학적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무엇인가가 변하지만 그럼에도 계속 동일하게 남아 있는가?"를 설명하는 해묵은 문제이다. - P232

이와 같은 성가신 질문은 다른 것들의 동일성에 관한 질문들과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다시 말해 이러한 질문이 가령 의자, 나무의 동일성에 관한 것이든 인간의 동일성에 관한 것이든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 P232

 모든 도덕 이론은 한결같이 이것이 인간의 경우에 참이라고 가정하고 있으며, 이때 아무런 도덕적 선결문제를 요구하지 않는다(다시 말해, 무엇이 도덕적으로 옳거나 그르며, 좋거나 나쁜지에 관한 선결문제를 요구하지 않는다). 이와 유사하게, 피도와 같은 동물이 인간과 다를 바없다고 가정할 때에도 도덕적 선결문제를 요구하지 않는다. - P232

 동물들의 동일성에 대한 설명은 그러한 설명이 밝히고자 하듯이, 그들의 육체적인 동일성뿐만 아니라 심리적인 동일성까지도 집중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육체적인 동일성만을 다루는 설명은 기껏해야 이러한 동물들의 동일성에관한 절반의 이야기만을 할 수 있을 따름이다. - P233

두 번째 문제는 동물 복리의 본질에 관한 것인데, 이에 대해서는 비교적 상세히 검토해볼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이익(interests), 이득(benefits) 그리고 해악(harms)이라는 개념에 천착해볼 것이며 (3.2~3.4), 이에 앞서 (3.1)동물에게 자율성을 귀속하는 근거를 밝혀볼 것이다. - P233

(전략), 나머지 하나는 안락사 개념을 동물들에게 적용할 경우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지 (3.7)에 대한 문제이다. - P233

3.1 동물의 자율성

우리는 자율성을 여러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칸트의 저술에서 고전적인 진술들을 찾아볼 수 있는 한 가지 해석에 따르면, 개체들은 ‘오직 유사한 상황에 처한 다른 개체들이 따를 것을 의욕할 수 있는 이유들에 따라행동할 수 있을 경우‘에만 자율적이다. - P234

달리 말해 내가 무엇을 행해야 할지를 물으면서 나는 다른 사람들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 P231

어떤 동물이 칸트적 의미에서 자율적일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그런존재가 되려면 동물들이 다른 동물들(아마도 자신이 속한 종에 속하는)이 유사한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거나 혹은 해야 하는지에 대해 심사숙고해볼 수 있는 실로 상당히 복잡한 수준의 사유 능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 P235

하지만 칸트적 의미의 자율성만이 유일한 의미의 자율성은 아니다. 또다른 견해로는 ‘개체들이 선호를 갖고, 이를 충족할 목적으로 행동할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경우 자율적‘이라는 입장이 있을 수 있다 - P235

다음에서 살펴볼 두 유형의 사례는 이러한 동물들이 선호적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존재로 보는 것이 타당함을예시해준다. 첫 번째 사례는 이것 또는 저것을 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동물들이 주어진 방식으로 일정하게 행동하는 경우이다.  - P236

두 번째 사례는 주어진 경우가 최초의 상황이라 일정한 행위 패턴이 만들어지지 않은 상황이다.  - P237

자율성을 선호의 의미로 파악할 경우, 우리는 많은 동물들이 자율성을 갖추었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동물을 합당하게 자율적으로 파악할 것인지는 첫째, 그들을 바람 혹은 목표, 다시 말해 선호를 갖는 존재로 파악하기 위한 합당한 근거가 있는지에 좌우될 것이다. 둘째, 이는 그들의 선호를 말함으로써, 그리고 그들이 갖는 선호로 어떤 선택을 한다고 말함으로써 그들이 다양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명료하게 서술할 수 있는지에, 또한 절약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지에 좌우될 것이다. - P237

이제 우리는 두 가지 의미 - 칸트적 의미와 선호적 의미- 의 자율성이있음을 알게 되었다.  - P237

그 해석은 어떤 개체가 자율적인도덕 행위자이기 위해 충족해야 할 조건을 제시하고 있을 따름이다. 다시말해 이는 자신이 수행하거나 수행하지 못한 행위에 대해 도덕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개체이기 위해 충족해야 할 조건을 제공하고 있을 뿐이며, 또한 적절하게 비난받거나 칭찬받을 수 있는, 혹은 비판받거나 욕을 먹을 수있는 개체이기 위해 충족해야 할 조건을 제공하고 있을 따름이다. 칸트적의미의 자율성은 "자율적 개체들이 스스로의 개인적인 선호에 관한 생각을 넘어설 수 있으며, 자신들의 고찰에 대한 공평무사한 이유를 마련하여 스스로의 도덕적 의무가 무엇인지를 생각해볼 수 있다"라는 것을 그 핵심으로 하고 있다. - P238

3.2 이익

동물이 자율적 존재라는 입장의 적절함을 지적으로 파악하는 것은 동물의 복리를 제대로 이해하고자 할 때 매우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이러한 함의는 인간과 동물 모두에게 적용되는 복리라는 일반적인 개념을 검토함으로써 가장 뚜렷하게 확인된다. - P239

 예를 들어 그는 자신에게 이득이 돌아감에도 운동을 하는 데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있다. 이 두 가지를 선호-이익(preference-interests)과 복리-이익(welfare-interests)으로 구분해보자. - P239

 미국의 철학자 랠프 바턴 페리(Ralph Barton Perry)는 이익의 특징을 좋아하거나 싫어한다는 공통의 특징을 갖는 특정 부류의 행동이나 상태로 규정했는데, 이때그는 바로 이와 같은 의미의 - 이익 -선호 -이익을 염두에 두고 있다.² 하지만 페리가 규정한 이익의 특징은 전적으로 만족할 만한 것은 아니다.

2) R. B. Perry, Realms of Value(Cambridge: Harvard University Press, 1954), p. 7. - P240

선호-이익은 누군가의 정신적 삶에서의삽화적인 사건일 수도 있고, 원하고 좋아하는 등의 성향(dispositions)일수도 있다. - P240

복리-이익은 선호-이익과는 다르다. 복리-이익의 경우, "A가 X와 관련된 이익을 갖는다"라고 말하는 것은 "일시적 혹은 성향적 의미에서 X에대한 선호 이익을 갖는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며 반드시 함의하는 것도아니다. - P241

 어떤 것들은 그들에게 이익이 되며, 어떤 것들은 그들의 관심의 대상이다. 어떤 것이 한 개체(A)에게 이익인 경우, 이는 A에게 이득이 된다. 반면 A에게 이익이 되지 않는것은 A에게 해악이 되는데, 바로 이와 같은 이유로 우리가 개체의 일반적인 복리 개념을 이해하려면 이득과 해악 개념을 검토해보아야 한다. - P241

3.3 이득

개체는 이득으로 인해 스스로의 능력 범위 내에서 좋은 삶을 영위할 수있게 되고, 그런 삶을 영위할 기회가 증진되기도 한다. - P241

하지만 동물이 바람을 갖는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프레이의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우리가 동물들이 기본적인 필요에 관한 일시적인 그리고 성향적인 이익을 갖는다는 점에서 우리와 다를 바 없음을 부정할 이유가 없다 - P243

음식과 물이 동물에게 이익이 되듯이, 그들은 음식과 물에관심을 가지기도 한다.
일부 ‘하‘ 동물의 경우는 기본적인 생물학적 필요를 충족하는 것만이유일한 바람 혹은 선호일 수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러한 개체의 복리는 이러한 바람들을 얼마만큼 조화롭게 충족하는가와 밀접하게 관련이 있을 것이다. 조화로운 충족이라는 개념은 중요하다. - P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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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허가 된 건물 위를 뒤덮고 있는 얼음층은 여러 가지 지질학적 요인을 떠올리게 했다. 일부 지역의 석조물은 빙하 표면까지 주저앉아 있었다. 고원의 안쪽에서 우리가 넘어온 고개 왼쪽의 1.5킬로미터 지점까지 넓은 길이 나 있는데, 그 자리에는 건물이 하나도 없었다. - P278

 물론 우리는 지구의 연대기, 과학 이론, 인식같은 것들이 어긋나 있다는 서글픈 비애를 느꼈다. 그러나 우리는 침착하게 비행을 계속하고 세밀하게 관찰한 끝에 이제 세상 사람들에게 내보일 만한 일련의 사진을 신중하게 촬영할 수 있었다. 나의 경우에는 타고난 과학적 사고방식이 도움이 된 것 같다. - P278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제3기의 거대 도시와 비교할 때, 전설의아틀란티스와 레무리아¹⁰⁸, 코모리엄, 우줄더럼¹⁰⁹, 로마르의 올라소¹¹⁰등은 어제오늘 벌어진 일이나 다름없었다. 그 거석의 도시는 인류 이전의 불경한 속삭임으로 전해지는 벨루시아¹¹¹, 리예, 나르의 아이브¹¹²,
아라비아 사막의 ‘이름 없는 도시‘ 등과 비견될 만 했다. - P279

108) 레무리아(lemuria): 인도양에 가라앉았다는 전설적인 선사 시대의 대륙.
109) 우줄더럼(Uzuldaroum); 역시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가 북방정토를 배경으로 지어낸 또 다른 가상의 도시.
110) 올라소(Olathoe): 로마르(Lomar)는 드림랜드에 등장하는 가상의 공간으로 미지의 카다스를 향한 몽환의 추적에 나온다. 올라소(Olathoe)는 「북극성」에서 로마르의 사르킨 고원에 있는 도시로 묘사됐으며, 이곳에서 차토구아를 숭배한다.
111) 벨루시아(Valusia) : 로버트 E. 하워드(Robert E. Howard)가 지어낸 가상의 대륙이자왕국.
112) 나르(Mnar): 나르는 「사나스에 찾아온 운명 The Doom That Came to Sarmath」(1919)에서 언급됐다. 현실 세계와 꿈의 세계에서 멀리 떨어진 공간으로 흑인 유목민이 정착하고 있다. - P352

산맥은 끝이 없었고, 구릉지역 안쪽을에워싼 거석 도시도 마찬가지였다. 사방으로 80킬로미터를 비행했지만 영겁의 빙하를 뚫고 시체처럼 일어선 암석과 석조물의 미로에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 P279

산맥에서 고원 안쪽으로 비행하는 동안, 도시가 무한한 것 같다는 처음 생각이 잘못임을 깨달았다. 50킬로미터쯤 비행하고 나니 기괴한 석조 건물이 뜸해졌고, 16킬로미터를 더 가자 인공물이 전혀 없는 천연의 황무지가 나타났다. 도시 너머의 강줄기는 움푹 들어간 선으로 변했다.
한편 거칠어진 지표면은 안개에 휩싸인 서쪽으로 멀어질수록 점점 더 경사가 급해졌다. - P280

 완만한 비탈에도 폐허의 잔재가 뒹굴었지만, 고도를 낮추자 착륙할 만한 지역이 꽤 많이 나타났다. 캠프로 돌아갈 때를 대비해 고개에서 가장 가까운 지점을 선택한 후, 우리는 오후 12시 30분경 평지에 무사히 착륙했다. - P280

장비들은 착륙이 가능할 경우를 대비해 지층 조사용, 혹은 동굴에서의 암석 채취용으로 준비한 것이었다. 다행히 찢어 쓸 만한 종이가 충분해서 여분의 표본 가방에 넣었는데, 복잡한 내부로 들어갈 경우 전통적인 방법대로길을 표시하는데 사용할 생각이었다. - P281

사실 그때 우리는 봉우리에 가려져 있던 어마어마한 비밀에 어느 정도 시각적으로 익숙해진 상태였다. 그러나 인류가 출현하기 전인 수백만 년전 어느 존재가 건설한 원시의 성벽 안에 실제로 발을 들여놓는다는 생각은 두려움뿐 아니라 우주적인 비정상성이라는 오싹함마저 던져 주었다. - P281

구멍을 통해 안을 들여다보니 성벽의 두께는 1.5미터에 달하고, 내부에는 따로 구획을 한 흔적이 없는 반면 안쪽 벽면에 줄무늬 조각이나 얕은 돋을새김이 보였다. 성벽 위를 저공으로 비행할 때 예상한부분이 맞아떨어졌다. 성벽의 아래 부분이 더 있는 것 같지만, 그 위치에서는 두꺼운 얼음층과 눈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 P282

정찰 비행에서 얼음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은 건물들이 많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므로, 지붕이 남아 있고 내부가 깨끗한 건물로 들어간다면 원래의 지표면으로 향하는 통로를 찾아낼 수 있을 것이었다. - P282

피버디 교수가 그곳에 함께 있지 않아서 아쉬움이 들었는데, 그의 공학 지식이라면 까마득한 옛날 그처럼 거대한 석조 블록을 어떻게 다루었을지 추측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 P282

서쪽 하늘에서 소용돌이치는 수증기와 우리들 사이에 검은색 석조물이 괴기스럽게 엉켜 있었다. 그 불가해한 윤곽은 우리의 위치가 변할 때마다 새로운 모습을 띠었다. - P282

우리가 촬영한 사진들마저 그 도시의 기괴함과 끝없는 다양성, 초자연적인 거대함과 완벽한 이국의 정취를 일부만 보여줄 뿐이다. 변칙적으로 절단된 원추형 건물을 본다면 유클리드도 할 말을 잃었으리라. 도발적으로 균형을 파괴한 계단식 단, 구근 형태로 기이하게 확대된 축대, 기묘하게 배치된 기둥, 광적인 기괴함을 드러내는 별 모양의 5각형 혹은 5개의 홈이 파인 구조물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 P283

이른 오후의 낮게 걸린 붉은빛 태양이 빛을 발산하려고 애쓰는 가운데 발밑에 펼쳐진 광경은 서쪽 안개에 묻혀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햇빛이 한순간 짙은 안개에 가려지자, 돌연한 어둠에빠져든 발밑의 세계에서 나는 차마 입으로 표현하고 싶지 않은 미묘한 위협을 느꼈다. - P283

붕괴된 석조물을 기어올라 위압감에 움츠러들고 거대한 폐허에 왜소해지는 느낌으로 마침내 미로처럼 얽혀있는 도심에 들어섰을 때, 우리는 다시 한 번 스스로 놀랄 만큼의 자제력을 발휘했다. 솔직히 댄포스는 과민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는데, 캠프에서 벌어진 사건에 대해 기분 나쁜 억측을 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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