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호르몬

나도 모르게 내 몸을 조절하는

숨겨진 리모컨

윌리엄 베일리스와 어니스트 스탈링 (1902) - P53

19세기 중반, 독일 생리학자 카를루트비히 (Carl Friedrich Wilhelm Ludwig, 1816-1895)는 키모그래프(kymograph)라는 장치를 발명했다. 키모그래프는 원통에 거무칙칙한 그래프 종이가 길게 감긴 형태의 기록 장치다. 원통이 천천히 돌아가면 심장이나 동맥, 또는 내장과 같은 생체의 주요활동이 종이에 기록된다. - P55

1902년 1월 16일, 런던 대학의 한 작은 실험실에서 두 명의 과학자는 키모그래프에 나타나는 이미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 P55

지금까지 이 두 과학자, 그러니까 윌리엄 베일리스와 어니스트 스탈링이 한 것은 러시아의 위대한 생리학자 이반 페트로비치 파블로프(Ivan Petrovich Pavlov, 1849~1936)가 수년 전에 했던 실험을 반복한 것에 불과했다 - P56

당시 베일리스는 41세였고 스탈링은 35세였다. 생물학을 전공한 베일리스와 의학을 전공한 스탈링이 공동으로 연구를 시작한 건 스탈링이 런던에 있는 의대를 졸업한 1890년이었다. 3년 후 베일리스는 스탈링의 누이와 결혼했다.
두 남자는 서로가 부족한 부분을 완벽하게 보완했다. - P56

베일리스의 스타일이 느린 속도로 정교하게 연구하는 것이라면 스탈링은 도 아니면 모라는 식으로 돌진하는 사람이었다. 베일리스는 스탈링과의 공동 연구를 제외하곤 혼자서 연구하는 것을 좋아했다. 반면 스탈링은 항상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을 좋아했고 세부적인 면은 동료에게 떠넘겼다. 베일리스가 지식적인 측면에서 강했다면 스탈링은 과감했고 직감이 뛰어났다.  - P57

장은 분명히 췌장에 신호를 전달하고 있었다. 사돈지간인 두 과학자는 충격에 빠졌다. 그들은 정신을 차린 후 공장에서 점액을 떼어내 혈관에 직접 삽입했다. 그러자 다시 췌장이 이자액을 분비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소장 벽 점액에서 화학적 메신저를 발견했던 것이다.  - P58

1902년 9월 12일에 발표된 그들의 기념비적인 논문의 서론 부분을 보면 이 두 과학자가 얼마나 흥분하고 있는지가 잘 나타나 있다.  - P58

베일리스와 스탈링은 이렇게 최초의 호르몬을 발견했다. - P58

베일리스와 스탈링은 2000년 전에 이미 발견된 신경을 추적하다가 신체 내에서 의사소통과 조절을 담당하는 두 번째 체계를 발견했다. 이 두 체계는 베일리스와 스탈링처럼 상호 보완적이다. - P59

1900년에 생물학의 미개척지는 물리학에 비해 훨씬 광활했다. 미개척지로는 생명의 기원, 어떤 미생물이 질병을 전달하는지에 관한 질병학과 세균학, 종의 진화, 하나의 세포가 어떻게 분열하여 간세포나 심장세포로 분열하면서 몸을 이루는지에 관한 발생학, 부모의 형질이 자녀에게 이어지는 유전학, 그리고 생체 기관의 구조와 기능이 있었다. - P60

물리학처럼 생물학도 지난 50년 동안 많은 발전이 있었다. 세균과 질병에 대한 연구는 미생물과 유기체가 병을 일으킨다는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 1822-1895)의 ‘세균설(germ theory)‘과 콜레라와 결핵을 일으키는 세균을 발견한 로베르트 코흐(Robert Koch, 1843~1910)의 업적덕분에 상당한 진보를 이루었다. - P60

베일리스와 스탈링이 우연히 호르몬을 발견한 일은 모든 미개척 분야뿐 아니라 생물학이란 학문이 시작된 이래 줄곧 사람들을 괴롭혀온 주요한 주제를 건드렸다. 그건 바로 생물과 무생물이 다른 법칙을 따르냐는 것이다. - P61

우리 인간의 의식보다 더 신비로운 것이 있을까. 물리학과 화학으로 인간 정신의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는지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논란이 되는 문제다. - P62

19세기 말, 대부분의 생물학자들은 이 난해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논쟁에서 막연한 합의를 도출했다. 그러면서 관심사가 점차 바뀌었다. 화학과 물리학이 생물학과 어떻게 융합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신경을 통한 의사소통은 물리학으로 쉽게 정리되었다. 소화와 호흡은 분명화학적이었다. 그러나 조절과 억제는 어떻게 되는 걸까? 또 외부에 대한 반응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걸까? - P63

호르몬의 발견으로 베일리스와 스탈링은 우리 몸의 명령 기관과 통제 센터를 찾아냈다. 그들의 발견은 새로운 의사소통 체계보다 훨씬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 P63

플랑크의 양자 논문을 비롯한 현대 물리학 대부분의 논문이 매우 난해한 것과 달리 1902년에 발표된 베일리스와 스탈링의 논문은 개념적으로 간단하고 읽기도 쉽다. 그들은 이자액 분비에 관한 연구로 글을 시작했다. 여기에서 두 과학자들은 파블로프에 대한 깊은 존경을 표했다. - P64

베일리스와 스탈링은 세크레틴의 화학적 조성을 알아내진 못했지만 보편적인 물질이라는 점을 증명했다. 개, 토끼, 사람, 원숭이에서 같은분비 작용을 가진다는 것도 확인했다.  - P65

세크레틴 연구 후에도 두 과학자의 영광은 계속되었다. 베일리스는 전기가 세포막을 통과하는 물질을 옮길 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연구했다. 이후에는 생화학 반응을 촉진하는 단백질, 효소의 작용을 자세히연구했다. 1차 세계대전 중에는 외상으로 인한 쇼크에 대해서 연구했다. 그는 ‘검생리식염수 주사(gum-saline injection)‘가 체액의 손실을 막는다는 것을 발견해 수많은 인명을 구했다. - P65

스탈링 역시 『인체생리학의 원리(Principles of Human Physiology [1912])』라는 두꺼운 책을 집필했다. 이 책은 여러 차례 개정되었고 국제적인 표준 교재로 쓰인다. 이 위대한 두과학자는 15년 동안 긴밀하게 함께 했지만 각자 따로 책을 집필했다. - P66

췌장 분비의 메커니즘

윌리엄 베일리스, 어니스트 스탈링


1. 역사적 고찰髙徑

오래전부터 췌장의 작용은 소화기관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련되어 있다고 알려져 있었다. 베르나르¹는 위장이나 십이지장에 에테르를 주입할 때에 췌장 분비가 일어나는 것을 발견했으며, 하이데하인²은 췌장분비의 시간적 추이를 위장과 장에서 일어나는 소화작용과 관련하여 연구했다. - P68

파블로프는 산에 의해 자극되는 췌장 분비를 반사적인 것으로 보았는데, 분비액의 조성이 다양한 이유는 음식에 대한 췌장의 놀랄 만한 민감도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 P68

산이 십이지장에 들어갈 때 췌장 분비가 나타나는 메커니즘은 포피엘스키⁴와 베르트하이머, 레파지⁵의 독립적인 연구에서 좀 더 자세히 조사되었다. 이들 연구에 의하면 미주신경 및 내장신경을 절개한 상태나 척수를 파괴했을 때, 심지어는 태양 신경총을 완전히 제거했을 때에도 산이 십이지장에 들어가면 췌장 분비가 일어난다. - P69

 췌장 분비는 신경 채널이 아니라, 소장의 윗부분 점막에서 생성되는 화학물질에 의해 나타나며, 이 물질이 혈류를 타고 췌장의 샘-세포로 운반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⁷ - P70

II. 실험 방법

모든 실험은 모르핀을 주입한 후 A.CE. 혼합물로 마취시킨 개를 대상으로 시행되었다. 개의 상태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하여 인공호흡을했다. 이는 양 미주신경들이 분리되었을 때에 특히 필요하다. - P70

IV. 결정적인 실험

1902년 1월 16일, 실험 전 18시간 동안 음식을 준 체중 6킬로그램의암캐에게 실험 3시간 전에 모르핀을 주사했고, 실험 중에는 추가로A.C.E.를 주입했다. 장간막 대동맥과 복강 제2경추(頸椎)근처의 신경 덩어리를 완전히 제거했으며 양 미주신경을 잘랐다. 고리모양 장의 양 끝을 묶었으며 장간막 신경을 조심스럽게 절개하고 분리해장 조각이 동맥 및 정맥으로만 실험동물에 연결되도록 했다.  - P71

그러나 이것이 본 실험의 중요한 점이며, 전체 연구의 전환점인데ㅡ같은 산용액 10cc를 무력화한 장에 주입했을 때도 비슷한 효과가뚜렷하게 나타났다. - P71

본 실험의 다음 단계는 명백했다. 즉, 장의 한 부분을 원형으로 잘라내고 점막을 뜯어낸 후모래와 0.4퍼센트 염산으로 문지른 다음, 덩어리와 모래를 제거하기위해 면사를 통해 여과한 후 추출물을 정맥에 주입한다. 결과는 그림 2에 나타나 있다. - P72

본 실험에 대한 플뤼거의 반대 의견에 대해 혈관벽이 파괴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신경-채널이 배제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위에 기술된 실험 내용으로 보자면 신경이 제거되었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고 하겠다. - P73

Ⅴ. 세크레틴의 성질과 작용

세크레틴은 비휘발성이어서 용액을 증기에 통과시켰을 때 증류물에나타나지 않았다. 양피지에 투석되기는 하지만 쉽지 않다. 오스본 박사가 만든 재(ash)를 가했을 때 차이가 없으므로, 세크레틴 용액의 작용은 무기물에 의존하지 않는다. - P74

세크레틴의 작용방식.

 이 문제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우선 혈압을 내리는물질(간단히 하기 위해 강하제라고 부름)이 췌장 분비를 자극하는 물질과 같은지를 결정해야 하는데, 이것은 혈압 강하를 일으키는 혈관 확장이 췌장 분비의 원인이 될 것으로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 P75

세크레틴 작용의 일반적인 조건.

 지금까지 논한 바에 의하면 췌장 분비에대한 작용은 실험동물의 상태와 완전히 무관했다. 음식에 대한 개의 소화 단계에도 무관하여, 먹이를 준 시점으로부터 20시간 후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 P75

다른 실험동물들과의 관련.

. 지금까지 기술된 모든 실험들은 개에 대해 시행되었지만 다른 동물에서도 비슷한 메커니즘이 작용하는지를 조사하는 것은 중요하다. 실험 결과 고양이, 토끼, 소, 원숭이, 인간 및 개구리의 십이지장에서 얻은 세크레틴이 개의 췌장 분비에 동일하게 작용했음을 알았다. - P76

VIII. 생체 내 세크레틴의 귀결

세크레틴 주입에 의한 췌장액의 분비는 10분을 넘지 못하며 5분 후에는 신속한 분비가 정지되므로 주입된 세크레틴은 혈류로부터 사라지는 것이 분명하다. 만약 세크레틴을 반복 주입한다면 췌장액을 연속적으로 분비시킬 수 있어 피로 현상 없이 8시간을 유지할 수 있다.¹¹ - P76

XIII. 결론의 요약

1. 췌장액의 분비는 작용은 산성 유미액이 십이지장에 주입될 때에 일어나고 그 양은 주입된 산의 양에 비례한다(파블로프). - P78

3. 세크레틴은 세포에서 생성되는 전구체로부터 만들어지는 듯하며, 물과 염기에는 녹지 않고 끓는 알코올 중에서 파괴되지 않는다. - P78

5. 세크레틴 주입에 의해 분비되는 췌장액은 ‘엔테로키나아제(장내 효소의 일종)‘가 첨가되기 전에는 단백질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 녹말 및 지방에 작용하고 지방에 대한 작용은 내장액의 첨가에 의하여촉진된다. 이것은 정상적인 췌장액의 성질이다. - P78

9. 점막의 산 추출물은 혈압을 떨어뜨리는 물질을 가지는데 이 물질은 세크레틴이 아니다. 박리된 상피세포를 산으로 처리함에 의하여 혈압강하제가 없는 세크레틴을 만들 수 있다.

(중략).


Journal of Physiology (1902) - P79

■ 참고문헌

1. Physiologie expérimentale, II. p.226. Paris, 1856.
2. Hermann‘s Handbuch d. Physiologie, V. p. 183. 1883.


4. Gazette clinique de Botkin (Russ.), 1900.
5. Journal de Physiologie, III. p. 335.1901.


7. 이 연구의 주요 결과에 대한 예비 초록은 (Proc. Roy. Soc. LXIX, p. 352. 1902)에 발표되었다. 이 논문에 보고된 실험은 1902년 3월에 완료되었으나, 외부 사정에 의해 발표가 미루어졌다.


11. 세포에는 조직학적인 변화가 있었고, 현재 이 주제를 연구하고 있는 데일 박사는 고갈의징후를 볼 수 있었다. - P79

6

우주의 크기

2차원의 하늘을 3차원으로 보여준
세페이드 변광성

헨리에타 리비트 (1912) - P215

청명한 밤하늘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우주에 대해 이런저런 궁금증이생겨난다. 암흑의 우주 공간에서 반짝거리는 저 작은 점들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들은 대체 얼마나 크고 얼마나 멀리 있는 것일까?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하얗고 엷은 띠의 정체가 뭘까? - P217

인간의 문명은 이런 의문들을 풀어 보려고 애써 왔다. 기록상으로 가장 오래된 우주론은 바빌론의 창조신화 에누마 엘리쉬(Enuma Elish)다. - P217

우주에 대한 생각에 논리와 추론을 더한 사람은 기원전 6세기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 BC 610~545)*였다. 

*아낙시만드로스는 천문학의 창시자, 우주론 또는 체계적인 철학적 세계관을 전개한 최초의 사상가로 불린다. - P217

우주에 대한 이런 생각들을 검증하려고 할 때 가장 큰 문제는 거리를측정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사실 천문학의 역사에서 거리를 결정하는 일은 언제나 큰 골칫거리였다. - P218

망원경으로 본다고 해도 그렇다. 만약 우리가 별의 본래 밝기(intrinsicluminosity)*를 알고 있다면 우리 입장에서 보이는 그 별의 밝기로 별까지의 거리를 알아낼 수 있다. (중략). (어떤 물체의 본래 밝기와 그 물체까지의 거리, 그리고 그 물체의 겉보기 밝기 간의 관계는 수식으로 표현된다. 따라서 이 세 가지 중 두 가지의 값을 알고 있다면 다른 하나의 값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별은 저마다 다른 밝기를 띠고 있다. 

*이 장에서 이해를 쉽게 하기 위해, 천문학 용어인 광도 대신에 밝기로 표현했다. - P218

1912년, 한 여성 천문학자가 우주의 거리를 재는 잣대를 발견했다. 하버드 천문대에서 일하는 헨리에타 리비트였다. 청각장애를 가지고있으며 신앙심이 깊은 그는 세페이드(Cepheid)라고 부르는, 특정한 별의 본래 밝기를 잴 수 있는 법칙을 찾아냈다. - P219

고대 그리스인들은 우주의 거리를 측정해 보려고 여러 가지로 노력했다. 그리스인들은 행성들이 각각의 이동 궤도에서 다른 위치에 있을 때행성들의 위치를 측정하고 여기에 기하학을 적용하여 태양과 행성들간의 거리 비율을 상당히 정밀하게 유추할 수 있었다. - P219

최초로 태양까지의 거리를 정밀하게 측정한 사람은 프랑스의 천문학자장 리세(Jean Richer, 1630~1696)였다. 1672년, 리셰는 조수들과 함께두 곳의 천문대에서 화성의 방향을 측정했다. 관측 지점 중 한 곳은 파리였고 다른 한 곳은 프랑스령인 남미의 가이아나 해변에서 가까운 카옌 섬이었다. (여기에서 화성의 방향은 멀리 떨어져 있는 별을 배경으로 했을 때 화성의 위치에 따라 결정된다. 태양의 경우 일식일 때를 제외하고선 이 방법을 활용할 수없다. 태양이 너무 밝아서 배경이 되는 별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 P220

몇 년 후 위대한 과학자 아이작 뉴턴(Isaac Newton, 1643-1727)은 지구와 가장 가까운 별들의 거리를 계산해 냈다. 여기에서 뉴턴은 별의 밝기를 태양의 밝기와 같다고 가정했다. - P220

1838년 경, 독일의 천문학자 프리드리히 베셀(Friedrich Bessel, 1784-1846)을 비롯한 여러 천문학자들이 가까운 별들에 대한 시차를 측정했다.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시차 역시 매우 작기 때문에 이를 관측하기 위해서 천문학자들은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진 관측 지점을 선택했다. 바로 태양 주변을 도는 지구의 공전궤도를 이용하는 것이었다.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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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스타니슬랍스키가 제안한 측면과 층으로 희곡을 나누는 것은 작업 메소드 자체라기보다는 그의 무대적 창조 이론의 발전에서 특정 단계를 특징짓고 있다. 연구자-탐구자로서 스타니슬랍스키는 공연을 만드는창조 과정에서 때로는 하나의 유기적인 전체를 구성하고 있는 것을 묘사하고, 분석하고, 인위적으로 분리한다. - P25

앞에서 언급한 객관적인 작품 분석 방법 외에도 스타니슬랍스키는 배우의 개인적인 느낌에 대한 측면이 있음을 지적하고 있는데, 이는 그에 따르면 무대 창조에서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 P26

창조적 상상의 작업은 배우의 영혼에 뜨거운 반향을 불러일으키며 점차 외부 관찰자에서 희곡에서 벌어지는 사건의 능동적인 참여자 입장으로 옮겨간다. - P27

무대적 행동의 범위를 확장하고 희곡에 없는 새로운 에피소드를 도입하며 스타니슬랍스키는 배우가 자신의 역할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다양한삶의 상황에서 만들어내는 형상을 느끼며, 역할에 대한 창조적인 느낌을단단하게 하도록 격려한다. - P27

스타니슬랍스키는 체험의 과정을 배우의 작업에서 가장 중요하고 책임있는 것으로 간주한다. - P28

역할의 내적 삶을 체득하는 수단으로서 신체적 행동 논리로 바꾸는 방법은 <지혜로부터 슬픔>을 재료로 한 "역할에 대한 작업" 원고를 작성하면서 이미 등장했다. 하지만 여기서도 이 방법은 초기 단계였다. - P29

스타니슬랍스키는 무대적 자감을 만들어내는 수단 중 하나로서 가장 단순한 신체적 과제와 관련해 배우의 창조에서 신체적 행동의 역할에 대해 뒤늦게 이해한 편이다. 그러나 말년에 그는 이러한 사례에서 나타나는 신체적 과제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로 ‘신체적 행동‘이라는 개념을 강조하게된다. - P30

스타니슬랍스키의 연출가로서, 교육자로서의 실제 작업은 추후 역할의총보를 심리적으로 심화하는 방법을 재고하게 만들었다. 스타니슬랍스키의 견해에 따르면, 정서에 대한 직접적인 호소는 배우의 창조적 본성에 대한 강요로 이어지고 재현과 기교의 길로 배우를 밀어 넣기 때문에, ‘정신적인 톤‘이라는 측면에서 역할에 대한 접근, 즉 특정 상태인 기분이나 감정은큰 위험을 스스로 품고 있다는 것이다. - P31

역할에서 배우의 다양한 열망도 유사한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 P31

스타니슬랍스키는 역할의 체험에서 구현으로의 이동이 힘들고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즉 배우가 획득해서 자신의 상상을 통해 만들어낸 모든 것은 종종 상대 배우와의 상호 행동에서 발생하는무대적 행동의 실제 조건과 충돌한다.  - P32

배우가 무대적 존재라는 새로운 조건하에 올바른 창조적 자감 속에서 견고해지면 즉시는 아니지만 자신의 말로 작가의 생각을 표현하는 중간단계를 거쳐 역할의 텍스트로 이동할 수 있게 된다.  - P32

<지혜로부터 슬픔> 재료를 바탕으로 한 원고 "역할에 대한 작업은 미완성 상태로 남아 있다. 이 원고의 마지막 부분의 내용이 충분하지 않을뿐 아니라 다양한 사례가 부족하고, 원고 일부가 요약되고 누락된 부분도있으며, 추후 완성하고자 했던 스타니슬랍스키의 의도를 보여주는 표시도있다. 하지만 그의 이러한 바람은 실현되지 않았다. - P34

하지만 오직 심리를 바탕으로 무대 메소드 문제를 해결하려는 스타니슬랍스키의 시도는 원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이러한 메소드의 경험을 통해 창조적 실제 작업 과정에서 극복해야 했던 단점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 P35

스타니슬랍스키는 무대적 형상이 배우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직관적으로, 때로는 역할에 대한 첫 만남에서 형성되는 경우가 이상적이라고 여겼다. 이 경우 배우의 영감 영역에 전적으로 자신을 바치고, 모든 메소드와시스템을 잊고서 본성 자체의 창조를 방해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 P35

배우 창조의 문제를 연구하면서 스타니슬랍스키는 현대 과학적 사고의성과에 의존하며, 탐구에 있어 시스템에 대한 견고한 이론적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당시 널리 퍼져 있던 심리학 문제에 관한 문헌을 찾아 예술 창조 문제에 관심이 많은 학자들과 소통했다. 스타니슬랍스키는 학자들과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고 시스템 초안을 소개하며 견해와 조언을 경청했다. - P37

현대 부르주아 전통의 심리학은 특히 <지혜로부터 슬픔> 재료를 기반으로 한 스타니슬랍스키의 "역할에 대한 작업"에 확실한 영향을 끼쳤다. 희곡의 내적 라인으로 심도 있게 파헤치며 발견하고, 역할의 심리적 발전에 올바른 주의를 기울이면서 그는 열정적으로 신체적 느낌과 정신적 체혐의 불가분의 관계에 대해 파헤치며 이전에 선언했던 원칙에서 벗어났다. - P39

이 책은 스타니슬랍스키의 후기 저서와 비교했을 때 창조적 구상의 진화를 명확히 드러내고, 일시적이고 우연적이며 사라지는 것이 무엇인지를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 P40

이 책은 연극적인 기교주의, 데카당스적이고 형식주의적인 경향에 반대하는 심오하고 내용이 있는 사실주의 예술을 위한 투쟁의 생생한 문서이다. - P41

또한 이 책은 위대한 고전 코미디 연구와 무대적 해석에 값진 기여를 하고 있다. - P41

창조적 방법 문제에 대한 스타니슬랍스키 관점의 발전에 있어 다음으로 중요한 단계는 그의 주요 저서인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에서 <오셀로> 재료를 바탕으로 한 부분이다.  - P48

스타니슬랍스키가 생을 마감할 때까지 개발한 희곡과 역할에 대한 이 새로운 작업 메소드를 그는 자신의 가장 중요한 발견이라고 했으며 매우중요하게 여겼다. 연극 작업에 대한 그의 모든 경험이 그를 이러한 발견으로 이끌었다. - P48

1920년대 스타니슬랍스키는 역할을 통해 배우의 유기적 삶을 창조하기위한 보조적인 방법으로 단순한 신체적 행동에 주의를 돌렸다. - P49

이러한 방법의 추가 개발로 스타니슬랍스키는 무대적 메소드 영역에서새로운 중요한 발견을 하게 되었다. 그는 신체적인 행동이 역할의 내적 삶의 표현이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어서 이러한 삶에 영향을 주어 무대에서 배우의 창조적 자감을 형성하는 데 신뢰할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 P49

(전략).
이제 스타니슬랍스키는 ‘신체적 행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데, 이는 기계적인 행동, 즉 단순한 근육의 움직임이 아닌 이성, 의지, 감정 그리고배우의 창조적 자감의 모든 요소들의 수행 없이는 불가능한, 유기적이고 합리적이며 내적인 정당성이 있고 목표가 있는 행동을 의미한다. - P50

체험의 문제에서 창조 작업의 출발점인 신체적 행동으로 강조점을 바꾼것은 스타니슬랍스키가 형상의 심리적 특성을 과소평가하거나 체험 예술의 원칙을 거부한다는 뜻이 아니다. - P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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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서문

K. S. 스타니슬랍스키의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에 대해


이 책에는 실현되지 못한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의 준비 자료를 수록했다. 스타니슬랍스키는 이 책을 무대적 형상을 창조하는 과정인 ‘시스템‘의 두 번째 부분으로 할애하려고 했다. - P5

배우가 무대에서 살아 있는 전형적인 형상을 창조하기위해서는 배우 자신의 예술 법칙을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지속적인 주의와 상상력, 진실의 감정, 정서적 기억, 표현력 있는 목소리, 조형성, 리듬감 및 내적 외적인 배우의 기술 등 기타 모든 요소들이 동반되어야 한다. - P6

스타니슬랍스키는 극장의 창조적 안일함과 관습에 맞서는 화해할 수 없는 적이었으며, 그는 평생 행동을 통해 발전하는 인물이었다. - P7

이 책에 실린 자료들은 스타니슬랍스키의 창조적 삶의 여러 시기를 언급하고, 공연과 역할의 창조 방법과 길에 대해 그의 관점이 발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자료들은 최종 결과물이라기보다는 창조적 메소드영역에 있어서 스타니슬랍스키의 끊임없는 탐구 과정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 P7

스타니슬랍스키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진보의 가장 무서운 적은 편견이다. 편견은 속도를 늦추게 하고, 발전의 길을 막는다"(전집 중 1권, 617쪽). - P8

스타니슬랍스키는 자신의 배우로서의 성숙기에 무대 창조에 대한 과학적 방법과 방법론을 만드는 데 착수했다. 이것은 ‘예술 문학 협회‘와 므하트에서 20년 동안 연기와 연출 작업을 경험한 덕택이었다.  - P9

므하트 설립자들은 사고(思考)가 없고, 오락에 치우친 레퍼토리,
배우 연기에 있어 관습적이고 나쁜 연극성, 거짓 파토스, 배우의 보여주기식 연기 앙상블을 망치는 스타 시스템에 맞서 싸웠다. - P9

19세기 러시아 극장에는 희곡에 대한 작업에서도 그러한 방식이 존재했다. "극단에서 희곡을 낭독한 후 배우들에게 역할을 배분하고서 텍스트 대본을 낭독하게 했다. 낭독 중 공연 참여자들은 이따금 ‘작가의 의도‘를 보여주는 몇 가지 질문을 주고받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충분한 시간이 없어배우에게 작가의 작품을 스스로 이해할 수 있게 남겨두었다"라고 스타니슬랍스키는 당시 무대 작업 메소드의 특징을 써놓고 있다.
그는 연출가와 배우들의 만남을 연습의 시작이라고 여긴다. - P10

공연 준비에 대한 스타니슬랍스키가 써놓은 이러한 장면들은 당시 많은 극장에서 볼 수 있었던 연습 작업 과정을 충실히 전달하고 있다. 당연히 그러한 메소드로는 희곡 및 역할의 내적인 내용의 발견과 배우의 앙상블 형성, 무대 작품의 예술적 가치와 완성도를 획득하지 못했다.  - P11

창조 작업 활동의 초기에 스타니슬랍스키와 네미로비치단첸코는 희곡의 내적·사상적 본질을 드러내며 연출가가 배우들과 작업에 착수하기 훨씬 이전부터 외적인 무대적 구현 형식의 일반적인 특징을 미리 결정짓고서, 공연의 총보를 면밀하게 설계하는 방식을 폭넓게 사용했다. - P12

스타니슬랍스키의 연출가로서의 상상력은 정말 의외의 대담한 미장센을 만들어내는 데 뛰어났는데, 이는 극한의 삶의 진정성으로 관객을 감동시켜 배우가 무대에서 묘사된 삶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 P12

예술가를 꿈꾸는 사람으로서 스타니슬랍스키는 자신의 혁신적인 프로그램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종종 과장되거나 극단적인 측면에 빠졌는데, 이는 오래된 극장의 관습적이고 루틴적인 방법에 대한 날카롭고 열정적인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 P13

ㅇㄴ내안 요구가 매우 높아졌다.
스타니슬랍스키는 1902년에 이렇게 기록했다. "대중은 효과적으로 전달되는 일부 독백과 멋진 장면이나 멋진 작품에서 어떤 역할이 잘 연기하는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대중은 감정적으로 감각과 섬세한 이해를 통해 지적인 사람들이 전달하는 문학 작품 전체를 보고 싶어 한다..." (1902년 수첩에서, 므하트 박물관, K. S., No. 757, p. 25). - P13

무대적 방법을 개선하려는 스타니슬랍스키의 끊임없는 열망은 그에게 개인적인 창조 경험과 동시대 및 이전 시대 연극인의 모든 경험을 깊이 이해하고 일반화하려는 자연스러운 욕구를 불러일으켰다. - P14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첫 10년의 시기가 끝날 무렵 배우 예술에 대한스타니슬랍스키의 견해에 따르면 활동이 다소 조화로운 구조를 형성했다고 한다. 1908년 10월 14일 극장 기념일 보고서에서 그는 예술의 새로운원칙을 발견했는데, "이는 아마도 조화로운 체계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며 므하트의 지난 10년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으로 기념해야 한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 P15

‘모스크바 예술극장‘의 첫 10년의 시기가 끝날 무렵 배우 예술에 대한 스타니슬랍스키의 견해에 따르면 활동이 다소 조화로운 구조를 형성했다고 한다. - P15

새로운 탐구의 시각을 통해 스타니슬랍스키는 사전에 연출가의 총보를구성했던 이전 방법을 비난했는데, 이는 작업의 첫 단계에서부터 창조 작업의 결과를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외적 형식과 역할의 내적이고 심리적 그림을 배우들로 하여금 준비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 P16

하지만 므하트의 창조적 삶의 첫 단계에서 스타니슬랍스키의 연출적 전제주의는 어느 정도 정당하고 합리적이라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당시젊은 극단원들은 엄청난 창조적 과제를 독립적으로 해결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 P16

새로운 창조적 원칙을 가장 심도 있게 실행한 ‘모스크바 예술 극장의첫 공연은 <시골에서 한 달> (1909)이었다. 이때부터 ‘스타니슬랍스키 시스템‘은 극단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았고, 점차 실제로 연극 작업에 도입되기 시작했다. - P18

그러나 ‘시스템‘을 실제로 적용하는 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이러한 어려움은 배우 창조 작업에 있어 스타니슬랍스키의 새로운 견해에 대한극단원들의 인식 부족과 창조적 메소드인 ‘시스템‘의 가장 중요한 부분에대한 연구 부족에 있었다. - P18

명확히 확립되고 검증된 무대 작업의 실제적인 메소드의 부재는 삶으로서의 ‘시스템‘의 도입을 방해했고, 스타니슬랍스키가 이끈 혁신에 대한 ‘모스크바 예술극장‘ 극단원의 냉담함을 불러일으켰다. - P19

스타니슬랍스키는 이 원고에서 무대적 형상을 만드는 창조 과정의 몇 가지 순간을 강조하고 있다.  - P20

자료의 축적과 자료의 이론적 이해 및 일반화의 먼 길을 거친 스타니슬랍스키는 사전 초안과 대략적인 스케치로부터 <지혜로부터 슬픔> 재료를바탕으로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에 대한 대대적인 서술로 전환했다. - P22

스타니슬랍스키는 지혜로부터 슬픔> 재료를 바탕으로 한 "역할에 대한작업" 원고를 1916년부터 1920년까지 몇 년간에 걸쳐 준비했다. 초안 성격을 띠는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원고는 큰 관심을 받았다. 이것은 혁명 이전 시대에 확립된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 과정으로 스타니슬랍스키의 관점을 가장 완벽히 설명하고 있다. - P23

메소드를 제시한 최초 버전과는 달리 여기서는 역할에 대한 배우의 작업 과정을 인식, 체험, 구현, 영향이라는 네 개의 시기로 명확히 구분했다. 각 시기에서 스타니슬랍스키는 역할의 배우의 접근에 대한 일련의 일관된 단계를 설명하려고 했다. - P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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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가져오는
생산성 혁명

또 하나의 큰 변화는, 생성형 AI를통해 경제학자들이 말하는 생산성 역설Productivity Paradox을 풀수있을 거라고 기대된다는 것입니다. - P83

경제학에서는 이렇게 질문합니다. "왜 공장자동화는 되는데 데스크워크 자동화는 안 될까?" 이유가 있습니다.  - P84

스탠퍼드대학교에서 흥미로운 연구가 있었습니다. 직장에서 업무를 보는 사람들의 하루를 분 단위로 분석했습니다. 아침9시부터 저녁 5시까지 8시간동안 뭘 하는지 살펴봤는데, 놀랍게도 실제로 사람들이 일을 하는 시간은 얼마 안 됐습니다. 대부분 시간을 일을 위한 일 Work for work (WAW), 그러니까 ‘잡일을 하는데 낭비한다는 것이었습니다.  - P84

문제는 대부분의 인간은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걸 싫어한다는 것입니다. - P86

인간과 컴퓨터를 매개하는 인터페이스의 가장 큰 문제가바로 여기에서 발생합니다. 뭐냐하면, 인간이 하고 싶은게 있는데 그 명령어를 기억할 필요는 없더라도, 그 명령어가 있는 메뉴까지 가는 길을 찾기는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 P87

덕분에 GUI의 시대가 끝나고CUI Conversational User Interface, 즉 대화형 인터페이스 시대가 시작됐다고들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 P88

지브리 열풍,
어떤 점에서 새로웠을까?

최근에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회자된 큰 발전은 2025년 3월 26일 오픈 AI가 공개한 이미지 제너레이터입니다. 전 세계 인터넷이 난리가 났습니다. - P88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림 그리는 AI는 이미 2023년즈음에도 있었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이미지 제네레이터가 달리DALLE나 미드저니 Midjourney와 뭐가 다를까요?  - P88

(전략). 그래서 오픈 AI는 완전히 다른 방법, 오토리그레시브Autoregressive 방법을 썼습니다. - P90

딥마인드가 2024년 12월 16일에 공개한 비오2 veO2는 프롬프트로 영상을 만들어 줍니다. "고글 낀 강아지가 수영하는 장면" 하면 그대로 잘 만들어 줍니다. 그리고2025년 5월 21일 공개된 비오는 이제 영상만을 넘어 영상에 등장하는 사람과 사물, 그리고 배경 소리까지 만들어줄수있습니다. - P92

현재 유튜브가 가장 두려워하는 건 틱톡입니다. 소비자들이무료로 콘텐츠를 올리고, AI가 콘텐츠를 관리하니까 훨씬 효율적입니다. 대놓고 말해서 유튜브는 경쟁 자체가 안 됩니다.  - P93

5년, 10년 후, 길게 봐도 20년 후에 AGI가 등장하면 사람들이 여유 시간이 늘어날 것으로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미래사회에서 엔터테인먼트와 콘텐츠가 반도체보다 더 큰 비즈니스가 될 겁니다. 도서를 포함한 콘텐츠 비즈니스이지요. - P94

AI의 미래와
제반 기술

앞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트랜스포머 모델은 비효율적이어서 GPU 없이는 계산이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GPU 시장은 엔비디아가 독점하다 보니 생산 능력과 수요가 맞물리지 않습니다.  - P95

이게 엔비디아의 두 번째 리스크입니다. 생산능력이 받쳐주지 못하니 기다리다 지친 기업들이 차라리 우리가 만들자‘라고 나설 수 있다는 겁니다. 대표적인 기업이 바로 구글입니다. - P96

에릭 슈미트 전구글 CEO는 2024년 10월에 한 인터뷰에서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솔직해지자. 기후변화는 어차피 막을수 없다." - P96

슈미트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럼 AGI 개발을 안하면 될까?" 그러곤 답했습니다. "구글이 안 하면 오픈 AI가 하고, 미국이 안하면 중국이 할 거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상황에서는 모두가뛰고, 뛸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슈미트의 제안은 "AGI를 더 빨리 만들어서 기후 문제를 인공지능에게 맡기자"라는 것입니다. - P97

오픈 AI CEO 샘 올트먼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10년 안에전 세계 소비자들이 인터넷처럼 생성형 AI를 매일 쓸 것이다." - P97

. 2024년에는 샘 올트먼이 한국에 와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와 협상하기도 했지만, 기술력 부족으로 탈락했습니다. 대신 대만의 TSMC가 선택됐지요 - P98

(전략).
하지만 이제 세계화는 끝났습니다. 그 대신 시작되는 것은각자도생의 시대입니다. 냉철하게 보면 세상이 다시 정상화‘되고 있는 거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절대로 이게 좋은 변화라는 의미에서 ‘정상‘이라고 일컫는 것은 아닙니다. - P99

세계화 시대에는 CPU, GPU, 메모리를 여러 곳에서 나눠 만드는게 효율적이었지만, 이제는 한 나라, 한 회사가 전부 만드는게 합리적입니다. 이를 2.5D, 3D 로드맵이라고 합니다. - P100

2025년 1월 백악관에서 오픈 AI, 소프트뱅크, 오라클, 트럼프 대통령이 AGI를 위한 스타게이트 프로젝트를 논의했습니다. 최대 700조원을 투자해 오클라호마를 시작으로 미국 전역에 데이터 센터를 짓는 계획입니다. - P100

AI 시대의 도래는 단순한 기술 혁신을 넘어 기존의 지정학적 질서를 재편하는 인류의 새로운 전환점이 되고 있습니다. - P101

멀티모달 AI와
형태 전쟁

(전략).
AI가 문장만 처리할 때는 이런 걱정이 없었습니다. 하지만GPU 수십만 개가 확보되고, 멀티모달 학습이 가능해지면서 기계가 세상을 알아볼 수 있게 됐습니다. 기술적 문제는 이미 대부 - P103

하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습니다. 5~6년 후 AI가 세상을 알아보며 소비자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려면 소비자가 세상을보여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뭘 통해서 보여줄까요? 지금은 휴대폰밖에 없습니다. - P104

인간은 팔이 두 개뿐인 영장류입니다. 팔자원의 50%가 계속 휴대폰에 묶여 있는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일입니다. 게다가 휴대폰은 주머니나 가방에 있어서 세상을 볼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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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푸스 데이의 새로운 미국 본사이자 회담 센터인 머리 힐은 뉴욕의렉싱턴 가 243번지에 자리잡고 있다. 1만 2천 평방미터짜리 빌딩은 4천7백만 달러 이상이라는 가격이 매겨져 있고, 붉은 벽돌과 인디애나석회암으로 치장되어 있다. - P48

이른 저녁, 마누엘 아링가로사 주교는 자신의 아파트 펜트하우스에서 전통적인 검정 사제복을 입고 작은 여행가방을 꾸리고 있었다. 보통 때 같으면 허리에 자줏빛 띠를 둘렀을 테지만, 오늘 밤은 일반인들과 섞여서 여행할 참이었다. - P48

로마로 향하는 비행기에 앉은 아링가로사는 창문을 통해 어두운 대서양을 내려다보았다. 해는 이미 졌지만, 주교는 자기만의 별이 떠오르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오늘 밤 전투는 승리할 것이다.‘ - P49

현재 42개 언어로 번역되어 4백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으므로 오푸스 데이의 힘은 세계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거의 모든 주요 도시에서 오푸스 데이의 건물과 교육센터심지어 대학교까지 찾아볼 수 있다. 오푸스 데이는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재정도 가장 안정된 가톨릭 교파였다. - P49

"많은 사람들이 오푸스 데이를 뇌를 세척하는 종교의식이라고 부릅니다. 또 어떤 이들은 초보수적인 기독교의 비밀 분파라고도 합니다. 어느 쪽입니까?"
기자들이 가끔 묻는 말이었다.
그때마다 주교는 끈기 있게 대답했다.
"그 어느 쪽도 아닙니다. 우리는 가톨릭 교회입니다. 일상생활에서 실천할 수 있는 한 가톨릭 교리를 열심히 따르는 일을 우선시 하는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 P50

(전략).
슬프게도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이 오푸스 데이의 감시 네트워크(ODAN)라고 알려진 새로운 감시단체를 탄생시키는 데 일조했다고 볼수 있었다. 이 단체의 인기 웹사이트인 www.odan.org는 오푸스 데이구회원들의 증언을 빌려, 오푸스 데이 가입을 경고하는 놀라운 이야기들을 늘어놓고 있다. 이제 미디어는 오푸스 데이를 ‘신의 마피아혹은 ‘그리스도의 제사‘로 치부하고 있다. - P51

비행기가 포르투갈의 해안을 통과할 때, 아링가로사의 사제복 주머니 안에 있던 휴대 전화기가 진동했다. (중략). 오직 한 사람만이 이 번호를 알고 있고, 그 사람이 이 휴대 전화기를 우편으로 보내준 것이다.
흥분된 감정으로 주교는 조용히 대답했다.
"네?"
"사일래스가 쐐기돌의 행방을 알아냈소. 돌은 파리에 있소. 생 쉴피스 교회 안이오." - P52

8백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사일래스라는 이름을 가진 알비노는 물이 담긴 작은 대야 앞에 서 있었다. 등에서 흐르는 피를 손으로 문질러, 붉은 피가 물에 퍼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 P52

‘예수님의 메시지는 평화… 비폭력...... 사랑.
이것은 사일래스가 처음으로 받은 가르침이다. 그는 이 가르침을 항상 가슴에 담아 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리스도의 적들이 이 말을파괴하려 하고 있다.
‘힘으로 신을 위협하는 자들은 힘과 부딪히게 될 것이다. 확고부동한 힘과 말이다.‘ - P53

6

보안 철문을 기어 나온 로버트 랭던은 대화랑의 입구 바로 앞에 서있었다. 랭던은 길고 깊은 협곡 같은 화랑 입구를 응시했다.  - P54

"바닥에 있는 저것・・・・・・ 카라바조의 작품입니까?"
쳐다보지도 않고 파슈는 고개를 끄덕였다.
(중략).
"도대체 저 그림이 왜 바닥에 누워 있는 겁니까?"
파슈는 움직이지 않고 얼굴을 찡그렸다.
"이곳은 범죄 현장입니다. 랭던 씨. 우리는 아무것도 손대지 않았습니다. 저 캔버스는 관장이 벽에서 잡아 뜯어낸 것입니다. 관장은 그렇게 해서 보안 시스템이 움직이게 한 거죠." - P55

파는 그들이 막 기어서 통과한 철문의 쇠창살 하나를 가리켰다.
거기에는 오렌지색 딱지가 매달려 있었다.
"PTS 팀이 철문에서 탄흔 잔재를 찾아냈습니다. 범인은 쇠창살 사이로 총을 쐈고, 소니에르 씨는 여기서 홀로 죽어갔습니다."
랭던은 소니에르의 시신이 담긴 사진을 떠올렸다.
‘경찰은 소니에르 스스로 했다고 하는데………….‘ - P55

랭던과 파슈는 씩씩하게 걸어갔다. 하지만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자크 소니에르 씨가 이렇게 멀리까지 갔습니까?"
"소니에르 씨는 위에 총상을 입었습니다. 서서히 죽어갔을 겁니다.
십오 분에서 이십 분 정도 걸렸겠지요. 분명히 소니에르 씨는 강한 정신력의 소유자였던 것 같습니다."
랭던은 섬뜩해서 돌아보았다.
"보안요원이 도착하는 데 십오 분이나 걸렸습니까?" - P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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