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

우윳빛 유리창이 달린 부장의 집무실 문을 여는 순간, 레모 에르도사인은 자기도 모르게 뒷걸음질 쳤다. 이제 모든 게 끝장이구나 하는 생각에 눈앞이 캄캄해졌지만 돌이킬 방법은 없었다. - P7

직원 급여 명세서를 꼼꼼하게 확인하고 있는 사장, 안락의자에 기댄 채 발끝으로 의자를 빙글빙글 돌리는 부장, 그리고 다소곳한 자세로 책상 옆에 서 있는 구알디, 그 누구도 에르도사인의 인사에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이윽고 부장이 고개를 들고는 사무적인 투로 말했다.
"얼마 전에 당신이 회사 공금 600페소를 횡령했다는 고발을접수했습니다."
"정확히 600페소 7센타보입니다." - P8

"행색이 왜 그 모양이오?"
사장이 뜻밖의 질문을 던졌다.
"수금원 노릇을 해 가지고 얼마나 벌겠습니까?"
"그러면 빼돌린 돈으로는 뭘 했소?"
"전 돈을 훔치지 않았습니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습니다."
"좋소. 그러면 그간 작성한 장부를 제출할 수 있겠소"
"원하신다면 오늘 낮까지 제출하겠습니다."
단호한 태도로 대답한 덕분에 에르도사인은 잠시나마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 P8

"그럼, 나가 봐도 되겠습니까?"
"그러세요."
"아니, 그게 아니라, 오늘도 수금 업무를 해도 되는지......."
"그건 안 됩니다. 갖고 있는 영수증은 모두 수아레스 씨에게넘기고, 내일 세 시까지 여기로 나오세요. 아까 말한 것들 잊지말고 말입니다."
"네・・・・・・, 모두 준비해 오겠습니다." - P9

나중에서야 그는 자기를 고발한 자가 누군지에 대해서는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 P10

절망의 그림자

에르도사인이 회사 돈을 횡령한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들이 자신을 어떻게 부르든 그따위 것에는 신경 쓰지 않았다. 뇌 깊숙한 곳에 무쇠처럼 단단한 정적이 동그랗게 똬리를 틀고 있어서 ‘도둑놈‘이란 말도 그에게 별다른 충격을 주지못했던 것이다. 그저 자신의 고통과 불행 외에는 아무것도 느낄 수가 없었다. - P10

 에르도사인은 일말의 죄책감조차 느끼지 않고도 어떤 범죄라도 저지를 수 있는 상황, 다시 말해서 자신의 행동을 전혀 의식하지 못하는 그런 시간에 대해 잘알고 있었다. 자신도 모르는데 판사라고 그러한 상황을 어떻게이해할 수 있겠는가. - P10

물론 에르도사인이 공금을 더 횡령하려고 회사를 떠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그가 박봉에 시달리면서도 회사에 남아 있던 이유는 뭔가 특별한, 극적인 사건이 일어나기만을 기다렸기때문이다. 눈앞으로 서서히 다가오던 파국으로부터 자신을 구해줄 뿐 아니라, 자신의 삶을 획기적으로 변하게 만들어줄 엄청난 사건을 말이다. - P11

이는 에르도사인이 고통의 무게에 짓눌려 처음으로 구역질이 치민 순간 떠올린 생각이었다.
"대체 왜 이렇게 사는 거지?"
에르도사인이 자주 이런 막연한 질문을 던지는 것도 따지고보면 그의 마음을 지배하던 불안감, 다시 말해 내일이 단순히오늘의 반복이 아닌 그런 삶을 왜 그토록 간절히 바랐는지 그 원인을 밝혀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 P11

‘난 기껏해야 남의 집 하인 정도밖에 안 될 인간이야. 있잖아, 싸구려 향수를 뿌리고 돈 많은 창녀 주변이나 얼쩡대는 그런 비굴한 놈 말이야. 그 여자의 애인이 거실 소파에서 담배를피우고 있는 동안, 방 안에서 그녀의 브래지어를 채우면서 비위나 맞추는 그런 작자‘ - P13

‘그래, 정말이지 난 평생 남의 집 하인 노릇밖엔 못 해먹을놈이야. 내 영혼에는 온통 비열한 생각만이 꽉 차 있어‘
이처럼 있는 대로 자신을 능욕하고 짓뭉개자 가슴속으로 밀려드는 짜릿한 쾌감에 에르도사인은 이를 꽉 깨물었다.
또 한번은 이런 상상도 했다. 그는 평생 하느님만 섬기며 독신으로 살아온 어느 할머니의 침실에서 무거운 요강을 들고 살며시 빠져나오고 있다. 그런데 그 순간 그 집에 사는 부지런한사제가 자신을 발견하고는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을 건넨다. - P14

에르도사인은 잘 알고 있었다. 영혼을 더럽히면서까지 스스로를 능욕하고 짓밟고 있다는 것을. 그가 일부러 자신을 더럽고 추잡한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어쩌면 악몽과도 같은 나락으로 떨어져 마음대로 죽지도 못하고 평생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살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 P14

에르도사인은 언젠가 아내가 다른 남자의 품으로 달아나리라는 것을 이미 예감하고 있었다. 이래저래 그의 고뇌는 깊어져만 갔다.
그래서인지 처음으로 공금 20페소를 자기 주머니에 넣었을때, 그는 ‘그 일‘이 너무 쉽고, 싱겁게 끝나서 놀랐다고 했다.
돈을 훔치기 전까지만 해도 수시로 닥쳐올 양심의 가책을 이겨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에르도사인은 속으로 다짐했다. - P15

 워낙 박봉에 시달리던 터라 그 뒤로도 그는 회사 공금에 손을 댈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의 월급은 80~100페소, 많이 받아야 120페소 정도였고, 그나마 수금하는 돈의 액수에 따라 일정하지도않았다. 이는 그가 거래처에서 수금하는 돈 100페소당 일정 비율로 정해진 수수료를 월급으로 받는 식이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그였지만 이따금 수금이 잘 되면 수중에 4000~5000페소나 있을 때도 있었다. - P16

게다가 제당 회사의 엉성한 관리 체계도 그의 공금횡령을 용이하게 해주는 데 일조했다. - P17

운명의 소용돌이

에르도사인의 삶은 분명 별난 데가 있었다. 마음속에 손바닥만한 희망이라도 생기면 그는 아이처럼 서둘러 거리로 뛰어나가곤 했다.
그리고 버스를 잡아타고 가다가 팔레르모나 벨그라노에서내려서는 생각에 잠긴 채 적막에 싸인 거리를 돌아다녔다. - P17

아, 브라질! 브라질이란 이름이 떠오르자 유치하고 단순하기만 하던 그의 꿈이 제법 구체적으로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하얗다 못해 분홍빛으로 빛나는 해변을 쪽빛 바다가 수줍은 듯 떨리는 손길로 애무하고, 하늘에는 눈부시게 타오르는 태양이 걸려 있다. 이제 그녀의 얼굴에 서려 있던 슬픔도 깨끗이 사라졌다. 교복처럼 청순한 흰색 실크 옷을 입은 그녀는 겉으로는 소녀같이 수줍게 웃고 있어도 성숙한 여인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 P18

 이미 고통에 짓눌려 무디어질 대로 무디어진 그의 판단력은 이제 완전히 마비되어 버렸다. 이성을 잃은 그는 포주 자리라도 알아볼 요량으로 미친 듯이 걸어갔다. 남의 돈에 손을 댄 자의 두려움을 그는 뼛속 깊숙이 느끼고 있었다. 한낮의 강렬한 햇빛이 해변의 초석 봉우리에 부딪히며 작렬할 때처럼 눈부신 빛을 내며 번뜩이는 그런 두려움을 말이다. - P19

그래서 그는 후덥지근한 시에스타² 시간의 눈부신 노란 햇살을 받으며 이 세상에서 가장 지저분한 사창가를 찾아 뜨거운 모자이크 보도를 따라 걷고 있었다.
에르도사인이 찾던 곳은 바로 이런 모습이었다. 현관에는 오렌지 껍질이 지저분하게 널려 있고, 복도의 벽에는 군데군데빗물이 샌 자국이 나있으며, 철망으로 덧댄 유리창에는 빨간색이나 초록색 천을 덮어놓은 그런 집 말이다. - P19

에르도사인은 돌연 자괴감에 휩싸였다. 영혼마저 굳어버린듯했다. 너무 가난해서 아픈 몸을 이끌고 남의 집 세탁부 노릇을 해야 했던 가련한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기 자신이 역겨워진 그는 침대에서 뛰어내려 여자에게 돈을 지불하고는 도망치듯 달려 나와 버렸다. - P21

에르게타

오전 열 시경 에르도사인은 페루가와 마요가의 교차로에 이르렀다. 그는 막다른 골목에 몰려 있었다. 바르트는 결코 돈을 빌려주지 않을 것이고, 이젠 감옥에 갈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몸서리가 쳐졌다.
약제사 에르게타가 카페에 앉아 있었다. - P21

천박한 행동과 권태에 찌든 모습, 에르게타의 모습은 영락없는 노예 상인이었다. 그런데 자기 쪽으로 다가오는 에르도사인을 발견하자 그의 얼굴에 아이처럼 환한 미소가 피어올랐다.
천진난만한 미소를 띠며 악수를 청하는 그를 보면서 에르도사인은 잠시 엉뚱한 생각을 했다.
‘이 녀석의 미소에 넋을 잃은 여자들이 얼마나 될까? - P22

마치 다른 세상에서 온 것처럼 황당무계한 말만 내뱉는 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에르도사인의 마음 한구석에서는 갑자기 희망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그는 에르게타에게 불쑥 질문을 던졌다.
"지금도 도박하나?"
"그럼. 나의 지극한 신앙심에 예수님께서도 감동하셨는지내게 룰렛 게임의 비밀을 일러주셨지." - P23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에르도사인을 쳐다보던 에르게타가왼쪽 눈을 찡긋하면서 말을 이었다.
"사실 내가 하느님을 만나고 또 여러 번 신비로운 세계에 빠져든 뒤로 쓸데없는 일을 너무 저지른 것 같아. 예를 들어 그런천한 여자와 결혼한 거라든지 말야…………."
"지금 행복하게 잘 살고 있지?"
"글쎄・・・・・・ 인간이 본디 착하다……………. 틈만 조금 보여도 잡아먹으려 들고 미친놈 취급해 버리는 이런 세상에서 그걸 믿는다는 게......."
에르도사인의 표정이 점점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 P24

"두 번 해서 5000페소나 땄는데 무슨 소리야."
"뭐 그럴 수도 있지만, 타락의 구렁텅이에서 자넬 구해 준건 그따위 룰렛의 비결이 아니라 자네 마음속에 있는 아름다운영혼이라고. 자넨 정말 좋은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야. 예컨대곧 감옥에 갈 수밖에 없는 불쌍한 자에게 자비를 베푼다든지."
"그건 그렇지." - P25

"이해가 가. 그런데 자네의 운명은 어떤 걸까…………. 사람의운명이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거지만 왠지 자네 앞에는멋진 길이 펼쳐져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보통 사람들은 구경조차 할 수 없는 뭔가 다른 길 말이야."
"난 세계를 지배하는 황제가 될 거야, 알겠어? 일단 룰렛 게임으로 돈을 엄청나게 벌 거야, 최대한 많이. 그러고 나서 팔레스타인과 예루살렘에 솔로몬 대사원을 다시 지을 거야......." - P26

"그건 안 되지. 성경의 가르침을 잊거나 게을리 하면 그런마음이 생기기 마련이야.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속에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절대로 사장의 돈을 훔치거나 회사 돈을 횡령하지 않아. 또 하룻밤 사이에 감옥에 가야 할 딱한 처지에 놓일 일도 없을 텐데."
생각에 잠긴 에르도사인은 코를 문지르며 그에게 말했다. - P27

그때 갑자기 에르도사인은 에르게타의 팔을 잡고 울먹이며소리쳤다.
"내가 감옥에 가게 생겼어, 알겠어? 600페소 7센타보를 훔친놈이 바로 나란 말이야." - P27

"너무 슬퍼하지 말라고. 성경의 말씀대로 자네에게 고난의시대가 도래한 거야 보게, 난 절름발이 창녀 이폴리타⁴와 결혼까지 했잖아. 아버지가 아들을 상대로 일어서고, 아들은 아버지를 상대로 일어서지 않았는가 말이야. 혁명은 사람들이 바라는 것보다 훨씬 더 가까이 와 있어. 더군다나 자네는 남의 돈을훔친 도둑놈에다가 사기꾼 아냐? 혁명이 눈앞에 와 있는데 슬퍼할 일이 뭐 있어?"
"아무튼 내 말 좀 들어봐…………. 자네라면 나한테 600페소 정도 빌려줄 수 있지 않을까?" - P28

4) Coja. 원래는 다리를 저는 여성이라는 뜻이지만, 속어로 몸을 파는 여자를 의미한다. 여기서는 에르게타와 결혼한 이폴리타의 별명일 뿐 그녀가 절름발이라는 건 아니다. - P417

증오심

에르도사인의 삶은 끔찍하게 고통스러웠다. 그의 마음을 짓누르던 고통은 도시 상공에 난마처럼 얽혀 있는 전차 케이블을따라 지평선을 향해 끝없이 퍼져갔다. 갑자기 그는 자신의 괴로움을 발로 밟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황소의 뿔에 찔려 내장이 찢어진 말이 고통을 못 이겨 몸부림치듯, 그 역시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폐에서 피가 한 방울씩 빠져나가는 것처럼고통스러웠다. 숨 쉬기조차 힘들었다. - P29

커피를 주문한 에르도사인은 손을 이마에 댄 채 대리석 벽을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많은 돈을 도대체 어디서 구하지"
그 순간 갑자기 아내의 사촌인 그레고리오 바르수트 생각이떠올랐다.
이제 기이한 행동을 일삼는 에르게타 따윈 신경 쓸 필요가없었다. 에르도사인의 눈앞으로 그레고리오 바르트의 근엄한 모습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 P30

바르트가 그런 말을 꺼내면 에르도사인은 서둘러 부인하고는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려고 애를 썼다. 그러면 바르트는 언제나 거실의 남동쪽을 살피며 황당무계한 이야기를 몇 시간이고 계속 지껄여댔다.
‘저기에 대체 뭐가 있기에 저토록 집요하게 쳐다보는 걸까?
그런 모습을 보면 바르트 또한 뭔가 석연치 않은 괴로움과질투심 때문에 고통받으며 살고 있는 게 분명했다. - P31

그러던 어느 날 밤, 웬일인지 엘사가 거실에 나와 있었다. 이때다 싶었던 그레고리오 바르트는 두 부부 앞에서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꺼냈다.
"내가 갑자기 미쳐서 너희 둘을 다 쏴 죽인 다음, 나도 자살해 버린다면...... 와, 생각만 해도 근사한데, 안 그래?"
그 와중에도 그의 시선은 여전히 거실의 남동쪽을 비스듬히향하고 있었다. - P31

하는 수 없이 에르도사인과 바르트는 계속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날따라 바르트의 얼굴은 유난히 창백해 보였고, 좁은 이마에서 경련이 일기도 했다. 그리고 이따금 큰 손으로 구릿빛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곤 했다.
왜 그리도 바르수트를 미워하게 된 건지, 에르도사인 자신도이해할 수가 없었다. 처음 봤을 때는 매우 비열하고 저속한 인간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지만, 그가 꾸었다는 꿈 이야기를 들어보면 꼭 그런 부류의 인간 같지만은 않았다. 뭐라 설명할 수 없는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모호하면서도 이상하고 미묘한 내면세계를 가진 자 같았다. - P32

초조해진 에르도사인의 마음에 인 동요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불안감을 감추기 위해 손마디를 하나하나 꺾어봤지만 되레 피로만 가중될 뿐이었다. 더군다나 무슨 말이라도 하려고해도 마치 입술에 아교라도 바른 것처럼 입이 쉽게 떨어지지가않았다. - P33

"자넨 내가 오는 게 그리도 싫어?"
어느 날인가는 밖에서 무슨 일이라도 있었는지 옆에서 보기불안할 정도로 기분이 들떠 있었다. 마치 술에 취해 유전에 불이라도 지르고 온 사람처럼 보였다. 정신 사납게 식당 안을 이리저리 서성이던 그는 별안간 에르도사인의 등을 툭 치며 이렇게 묻는 게 아닌가.
"이봐, 어때? 어떻게 지냈냐고? 잘 지냈어?"
그 순간 바르트의 눈에서는 묘한 광채가 번득였다. - P34

"그러면 바르트가 뭐라고 생각하겠어? 자기가 오는 게 싫어서 이런다고 여길 거 아냐. 그럴 바에는 앞으로는 오지 말라고 하는 게 더 낫지!"
사실 에르도사인이 이런 말을 내뱉은 건 자신의 비겁함을 아내에게 숨기고 싶어서였다. 바르수트를 향한 까닭 모를 증오심은 암세포처럼 몸 전체로 퍼져나갔다. 바르트의 얼굴만 봐도분노가 치밀었고, 그자가 처참하게 죽길 속으로 간절히 바랐다. 이런 속셈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걸까? - P35

어느 날 해 질 무렵, 두 사람은 한잔하러 집을 나섰다. 주문한 술과 겨자 소스를 뿌린 감자 샐러드가 나왔다. 바르트는어디 한번 먹어볼까 하는 표정을 지으며 이쑤시개로 감자 한조각을 집어 드는가 싶더니, 사람들의 손때와 담뱃재로 새까매진 대리석 테이블 위로 샐러드를 엎어버리는 게 아닌가?  - P35

에르도사인은 바르트가 틀림없이 자신을 증오하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상대에게 속마음을 너무 많이 보여 주고 나면 그사람에 대해 이유 없는 혐오감을 느끼게 되기 마련 아닌가 하지만 그건 에르도사인의 오산이었다. 바르트는 절대 그 정도로 물러설 위인이 아니었다. 도리어 그는 자기 속마음을 있는대로 드러내놓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에르도사인의 집에 들어서기만 하면 안 그래도 잔뜩 주눅이 들어 한구석에 웅크리고있는 에르도사인에게 온갖 악담을 쏟아놓곤 했다. - P36

사실 에르도사인은 바르트에게 모든 걸 솔직하게 털어놓으라고 꼬드겼다. 물론 순간적인 동정심 때문이기는 했지만,
에르도사인의 진지한 태도에 바르트도 경계심을 다소 늦추는 듯했다. 하지만 그 순간 에르도사인의 눈빛에서 새어 나오는 음흉한 미소를 본 바르트는 마음속에서 겨우 사그라져 가던 증오심이 또다시 타오르기 시작했다. - P37

발명가의 꿈

만약 누군가가 에르도사인에게 "몇 시간 후 당신은 바르수트를 죽일 계획을 꾸미게 될 거야. 게다가 부인이 집을 나가 버려도 그냥 보고만 있을걸?" 이라고 예언했다면, 에르도사인은정신 나간 놈이 지껄이는 헛소리 정도로나 여겼을 것이다.
에르도사인은 오후 내내 정처 없이 거리를 쏘다녔다. 그냥혼자 있고 싶었다. 그리고 인간들의 소리를 잊고 싶었다. 낯선도시에 가서 기차를 놓친 이방인처럼 자기를 둘러싼 모든 것으로부터 그저 자유롭고 싶었다. - P38

에르도사인은 걸음을 멈추고 앞에 있는 저택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으리으리한 차고며 사이프러스 나무들이 줄지어 서있는 정원, 그리고 사자라도 막을 수 있을 정도로 견고한 철제담장과 총안이 설치된 벽, 뭐 하나 평범한 게 없었다. 타원형의푸른 화단 사이로는 빨간 벽돌이 깔린 보도가 저택을 향해 구불구불하게 이어져 있는데, 가정교사로 보이는 한 여인이 회색모자를 쓰고 산책로를 따라 걷고 있었다. - P38

하지만 지금 그는 600페소 7센타보를 갚아야 한다. 갑자기에르게타의 목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자네 말이 맞아....... 이 세상엔 그처럼 불행과 가난에 찌든 쓰레기들 투성이지. 하지만 어떻게 하면 그들을 좋은 길로 인도할 수 있을까? 나도 그게 고민이야. 그걸 해결하려면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 다시금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데, 그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인가?"
그러자 마음속 어두운 곳에서 싹튼 고통이 마법에 걸린 나무처럼 순식간에 목구멍으로 치솟아 올랐다. - P39

. 가로등 불빛 아래로 희뿌옇게 일어나는 먼지가 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이젠 ‘리미티드 아수카레르 컴퍼니(Limited AzucarerCompany)‘‘⁶ 따윈 까마득히 잊은 채 그는 쾌락의 땅을 향해 힘없이 걸어가고 있었다. 그때까지 에르도사인은 어떻게 살아왔던가? 그때 그에게 한번 물어봐야 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는70킬로그램의 몸무게를 어떻게 지탱하면서 걸어 다녔던 것일까? 혹시 그는 유령이 아니었을까? - P40

6 에르도사인이 다니던 제당 회사 ‘콤파니아 아수카레라(CompaniaAzucarera)‘를 영어로 잘못 옮긴 표현. 이른바 ‘자유무역의 황금시대‘에 아르헨티나 경제의 대(對)영국 의존도가 심화되어 가던 상황을 비판적으로 드러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 P417

에르도사인이 보기에 저런 커다란 저택에는 분명 ‘우울한표정의 무뚝뚝한‘ (에르도사인의 표현을 ‘내‘⁷가 그대로 옮긴 것이다.) 백만장자가 살고 있을 것 같았다. 에르도사인은 그 백만장자가 쌍안경을 이용해서 창문에 내려진 페르시아나"의 틈으로 자기를 계속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엉뚱한 상상을했다.
우습게도, 그 ‘우울한 표정의 무뚝뚝한 백만장자‘ 가 만의 하나 자기를 쳐다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에르도사인은 지나가는 여자들의 뒷모습도 외면한 채 고뇌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다. - P40

7) 여기서 ‘나‘는 이 소설의 서술자이자 화자이다. 텍스트에서 ‘나‘는 ‘해설자‘
혹은 ‘기록자‘, ‘편집자‘ 등의 다양한 이름으로 등장한다. 에르도사인은 이작품의 속편 『화염방사기』에서 하숙집 주인의 딸인 사팔뜨기 처녀 ‘라비스카‘를 권총으로 살해한 뒤 경찰의 추적을 피해 다니던 중, ‘나‘의 집에서 사흘 동안 은신하게 된다. ‘나‘는 에르도사인이 쫓기는 범죄자임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인 신뢰를 보내면서 그간 에르도사인이 겪었던 모든 사건과 고통,
그리고 불행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주었을 뿐 아니라, 위험을 무릅쓰고 기차역까지 그를 바래다주기도 했다. (결국 에르도사인은 밤 열차 속에서 권총으로 자살하고 만다.) 에르도사인이 마지막 사흘 동안 ‘나‘에게 했던 고백은결국 이 소설의 토대가 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나‘는 ‘해설자 주‘를 통해 에르도사인의 심리 상태나 행동의 동기, 사건의주변 정황 등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 P417

에르도사인은 오랫동안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을 지켜본 ‘우울한 표정의 무뚝뚝한 백만장자‘ 가 언젠가 사람을 시켜 자기를 부를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다.
이 특별한 오후의 망상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 P41

에르도사인과 결혼하기 전에는 엘사도 이처럼 크고 화려한거실이 있는 집에서 살았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지금 그런 게생각나지? 그는 회사 공금을 횡령했다. 아내가 아픈 몸을 이끌고 남의 집 빨래를 해주고 있는 이 시간에도 그는 다 떨어진 구두에 올이 풀어진 넥타이, 군데군데 얼룩이 묻은 남루한 양복차림으로 거리를 헤매고 있다. 이게 바로 그의 모습이다. 바로그 때문에 그 ‘우울한 표정의 무뚝뚝한 백만장자‘가 그를 부른것이다. - P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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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한 번 건들였다는 기억만 있는 책.



법칙 6. 이데올로기를 버려라

(전략).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 걸까? 지각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누구나 주춤할 것이다. 내 책이 많은 사람의 삶에서 사라진 어떤것을 다루고 있는 게 분명하다. 분명 내 책은 위대한 심리학자들과 사상가들의 생각에 빚지고 있다. 하지만 그 밖에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특별한 뭔가가 있는 건 아닐까? 나는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알아내려고두 가지 정보에 주목했다. 첫 번째 정보는 강연장에서 그리고 길거리, 비행기, 카페, 기타 공공장소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이 보인 반응이었다. - P190

이제 내가 이루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는 두 번째 정보를말하고자 한다. 단서는 수많은 공개 강연에 있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내 강연을 계속 찾아준다는 건 특권이자 신의 선물이다. 대규모 강연은 시대정신zeitgeist을 실시간으로 파악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또한내 새로운 생각들이 사람들에게 제대로 전달되는지, 충분한 관심을끄는지 바로 확인할 수 있고, 그 생각들의 품질을 부분적으로나마 판단할 수 있는 시험대가 되어준다. 강연 중에 청중의 반응을 세심하게살필 때 그런 일이 일어난다. - P191

특히 나는 한 주제를 얘기할 때 모든 청중이 (정말로 예외 없이) 쥐죽은듯 조용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주제는 바로 책임이었다(법칙4 참조). 청중의 반응은 황홀했다. 정말 뜻밖의 반응이었는데, 원래 책임은 잘 팔리는 주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 P192

 비극과 실망으로 가득한 인생에서 우리를 지탱해줄 수 있는 의미는 고결한 짐을짊어지는 데서 찾을 수 있다고 우리가 그렇게 말하지 않았기 때문에젊은이들은 잘못된 장소에 눈길을 주며 성장해왔다. 그로 인해 젊은이들은 취약할 대로 취약해져서, 쉬운 길에 잘 넘어가고 걸핏하면 분노의 독에 감염된다. 과연 무엇이 이런 상태를 조장했을까? 이 취약성, 이 감염성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 P193

신은 잠자고 있을 뿐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19세기의 마지막 사반세기에 "신은 죽었다"라고 선언했다. 이 말은 워낙 유명해서 오늘날 공중화장실 벽에 다음과 같은 낙서가 있을 정도다.
"신은 죽었다." - 니체
"니체는 죽었다." - 신
니체가 자아도취나 승리감에 젖어 이렇게 주장한 건 아니다 - P193

『즐거운 지식The Gay Science』에서 니체는 신을 "지금까지 세계에 존재했던 모든 것 중에 가장 정직하고 강력한 존재"로, 인간을 "살인자중의 살인자로 묘사했다. 그가 미신의 소멸을 의기양양하게 찬양하는 합리주의자였다면 이렇게 묘사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니체의 선언은 완전히 절망적인 말이었다. - P194

법칙 6.

1. F. Nietzsche, The Gay Science, trans. W. Kaufmann, section 125 (New York:Vintage Books, 1880/1974), 181. - P446

먼저 니체는 일신교 사상의 목표지향적인 구조와 그것이 제시하는 의미 있는 세계 바깥으로 인생의 목적이 밀려나 불확실해짐에 따라 허무주의가 부상하여 우리의 실존을 황폐하게 만들 것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만물을 창조한 아버지를 대신해 전체주의적 이데올로기가 사람들을 지배할 거라고 주장했다. - P194

독보적인 러시아 소설가 표도르 도스토옙스키Fyodor Dostoyevsky 역시자신의 걸작 『악령 The Possessed』에서 니체와 같은 문제를 거의 동시대에 다루었다.³ - P194

3. F. Dostoevsky, The Devils (The Possessed), trans. D. Magarshack (New York:Penguin Classics, 1872/1954). - P447

니체와 도스토옙스키는 공산주의가 종교나 허무주의를 대신하는합리적이고 일관성 있고 도덕적인 대안으로서 사람들을 매료시킬테지만, 그 결과는 치명적일 거라고 예견했다. - P195

분명 니체는 새로운 물리과학이 보여주는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객관적이어서 가치는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라는 생각에 동의한 듯하다. 그렇다면 허무주의와 전체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응 자신만의 가치를 창조하고, 그에 따라 살 수 있을 만큼 강한 개인이 되는 것이다. - P196

(전략).
하지만 두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와 융은 이 개념을 수포로 만들었다. 우리에게는 의식적인 선택으로 가치를 창조할 만큼의 자아가없다는 점을 입증한 것이다. 경험의 한계, 수많은 인지 편향, 짧은 수명을 고려할 때 그 누구도 ‘무에서ex nihilo‘ 자기 자신을 창조할 천재성은 갖고 있지 않다. 우리의 본성은 너무나 자주 우리를 지배하기에바보가 아닌 이상 가치를 창조할 수 있을 만큼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통제하고 있다고 감히 주장하지 못할 것이다. - P196

또한 과학적 방법론은 분명 유용하지만 가치는 주관적인 것이므로 현실의 구성 요소가 아니라는 과학의 세계관은 결코 타당하지 않다.
계몽주의는 현실이 객관적인 것들의 배타적 영역이라는 중요한 과학적 공리를 남겼다. 그 결과 주관적인 것에 해당하는 종교적 경험은 개인의 마음속에만 머물 뿐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졌다. - P197

우리는 나의 존재와 경험이 실재하며, 마찬가지로 타인의 존재와 경험도 실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존재와 경험의 기초에 생물적·신체적 토대가 있다는 생각 또한 타당하다. 실제로 정신분석학 분야에 있는 사람들이나 동기와 감정에 초점을 두고 생물심리학을 연구하는 많은 사람이 그렇게 가정한다.⁵ 과학자들뿐 아니라 일반 대중도 그렇게 생각한다. - P198

5. 다음을 보라. J. Panksepp, Affective Neuroscience (New York: Oxford UniversityPress, 1998). - P447

 왜 우리는 종교적 경험이 이토록 공통적이고 필수적인데도 사실이 아니라고 쉽사리 가정할까? 가치를 부여하는 능력이 오랜 진화의 결과로서,
우리가 규정하고 이해하고자 하는 바로 그 현실에 의해 선택된 기능임이 거의 확실한데도?
우리는 전체주의의 결과를 목격했다. 그들은 집단이 인생의 짐을나눠 지고, 올바른 길을 제시하고, 끔찍한 세계를 달콤한 유토피아로 바꿀 수 있다고 선전했다. - P198

20세기의 또 다른 악당인 독일의 국가사회주의(나치즘) 역시 강력하고 위험한 이데올로기였다. 히틀러 신봉자들이 니체 철학에서 영향을 받은 건 일부 사실이지만, 그 철학은 나치즘에 상당히 이상하게반영되었다. 니체는 개인의 발전을 장려했지만 나치가 한 일은 집단의 가치관을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었다. - P199

거짓 우상의 치명적인 매력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나치즘을 받아들이는 건 아니지만, 오늘날 세계에는 보수주의·사회주의· 페미니즘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인종 및.
젠더 사상 포스트모더니즘·환경주의 등의 각종 ‘주의‘들을 믿는사람들이 여전히 있다. - P200

이데올로기는 처음에는 단순하다가 진짜 유용한 이론들을 흉내내기 시작하면서 기괴할 정도로 복잡해지고, 결국에는 그 유용한 이론들을 대체한다. 이데올로기 이론가는 처음에 몇몇 추상 개념을 선택하는데, 이 개념들은 해상도가 낮아 세계를 크고 무차별적인 덩어리들로 표현한다. - P200

그처럼 중요한 문제들을 다룰 때는 개별 원인들을 신중하게 분석한 뒤에 잠재적인 해결책을 모색하고 실행하고서, 그 효과를 조심스럽게 평가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설사 그렇게 했더라도 의도했던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 모두가직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일은 그만큼 어렵고 골치 아프기 때문에,
보통의 용기와 의지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 - P201

이데올로기 창시자는 세계를 크고 무차별적인 조각들로 나누고,
각각의 문제점(들)을 밝히고, 그럴듯한 악당을 내세운 뒤, 이를 설명해주는 원리나 작용력 몇 가지를 만들어낸다(그 추상화된 실체들은 세계를 이해하는 데 실제로 얼마간 도움이 되기도 한다). 그런 뒤에는 그 몇가지를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강조하고, 다른 중요한 (어쩌면 더 중요한) 변수들은 무시한다. - P201

(전략). 마지막으로 학파가 출현해 이 알고리듬적 환원을 선전하면 이데올로기는 학계와 일상 모두에서 지배력을 얻게 되며, 이에 따르지 않거나 비판적인 사람들은 암묵적으로나 명시적으로 악마화된다. - P202

그런 활동, 그런 게임에 기대 타락한 지식인과 무능력한 지식인들이 모두 번성한다. 이 게임에 가장 먼저 뛰어든 자들은 참가자 중 가장 영리한 사람들이다. - P202

이런 종류의 이론화 작업은 영리하지만 게으른 사람에게 특히 매력적이다. 냉소와 교만은 유용한 수단으로 쓰인다. 새로운 지지자들은 그런 이데올로기 게임에 능통해지기 위해서 경쟁 이론이나 다른 방법론, 심지어 사실 자체를 비판하는 법을 배운다. 이데올로기를 뒷받침하는 이론에 불가해한 어휘가 딸려 있으면 더욱더 좋다. 비판자들이 그 뜻을 해독하느라 귀중한 시간을 허비할 것이기 때문이다. - P203

마르크스도 그랬다. 그는 기본적으로 계급에 기초한 경제적 관점에서 인간을 설명하고, 역사를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영원한전쟁터로 설명했다. 마르크스주의의 알고리듬에 통과시키면 어떤 것이든 척척 설명이 된다. 부자가 부유한 것은 가난한 자를 착취하기 때문이다. 가난한 자가 가난한 것은 부자에게 착취당하기 때문이다. 모든 경제적 불평등은 바람직하지 않고 비생산적이며, 근본적으로 사회가 불공정하고 부패했기 때문에 발생한다. - P204

하지만 마르크스주의를 실천한 곳들은 모두 파국을 면치 못했다.
그럼에도 현재의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수치를 모르고 마치 중요한 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듯 그 사상에 새로운 옷을 입혀 계속 수명을 연장시키려 한다. - P204

이런 종류의 이데올로기적 환원은 사이비 지식인 중에서도 가장 위험한 자들의 특징이다. 이데올로기 추종자들은 지적 차원의 근본주의자로, 고집이 세고 융통성이 없다. 그들의 독선과 사회공학social engineering에 대한 도덕적 주장은 근본주의 못지않게 뿌리 깊고 위험하다. 아니, 그보다 더할지 모른다.  - P205

(전략). 반면에 이데올로기 추종자들은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거나 정복할 수 없는 건 없다고 믿는다. 이데올로기 이론은 모든 과거, 모든 현재, 모든 미래를 설명한다. 이데올로기 추종자들은 완벽한 진리가 자기 손안에 있다고 생각한다(자기모순이 없는 근본주의자에게는 금지된 생각이다). - P205

이 이야기의 교훈은 무엇일까? 자신의 이론으로 일신교를 만드는 지식인들을 조심하라.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를 하나의 변수로 설명하는 것을 경계하라. -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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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실험자가 다른 이들이 전부 잘못된 답을 내놓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시각을 고수하여 옳은 답을 내놓았을 때조차 두뇌의 활성화 측면에 변화가 생겼다. 이렇게 동조하지 않는 경우에는 지각 영역에서가 아니라 편도체라 불리는 아몬드 크기의 두뇌 영역이 점점 더 크게 활성화되었다. - P158

위대한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민권운동에 있어가장 위대한 상식파괴자라 할 수 있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경험이 지각에 미치는 해로운 영향을 체험을 통해 알았다. 애틀랜타에서 흑인의 권리를 옹호했을 때 그는 당장 주변 남부 백인들의 분노를 샀다.
킹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흑인들에게 공포를 심어주기 위해 고안된 전략들, 즉 위협에 시달렸다. - P159

대규모 평화시위가 사회 변화를 이끌 수 있는 비교적 안전한 수단임을 보여줌으로써 백인들의 앙갚음에 대한 흑인들의 두려움을 떨쳐내고자 한 것이다. 비폭력 전략은 혼자섰을 때보다 여럿이 있을 때 안전함을 느끼는 인간의 감정에 의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가 비폭력이야말로 백인들의대중적인 지지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마음 깊이 믿고 있었다는 점이다. 흑인 지도자들이 모두 이 접근법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는데, 특히 말콤 X는 보다 직접적인 대결 전략을 지지했다. - P160

킹은 자기 자신이 초래한 공포이든 백인들이 초래한 공포이든 공포가 흑인들의 지각에 어떤 해를 미치는지 잘 알았다. 노벨평화상 수상 기념연설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비폭력은 또한 최근 몇 년 동안 고통에 몸부림쳤던 나의 사람들이 타인들에게 고통을 가하는 대신자기 스스로 고통을 떠안았음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더 이상두려워하고 겁내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속한 이 사회나 다른 사람들에게 공포를 심고 싶지 않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¹¹ - P161

11 1964년 12월 11일 마틴 루터 킹의 노벨상 기념연설 중에서 - P353

대수의 법칙

인간의 두뇌가 타인의 의견에 아주 쉽게 영향을 받아 자신의 시각 정보를 쉽게 무시한다는 것은 언뜻 직관에 반하는 주장처럼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통계적 관점에서 보면 이 생물학적 조건부 항복이 온전히 이해가 된다. - P162

우리가 대상을 범주화하는 방식은 분명 지각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는 이 과정을 경험의 산물로 생각했지만, 지각에 영향을 미치는 또다른 심지어 더욱 유력한 범주화의 근원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타인들이다.
애쉬의 실험과 이후 우리가 기능성 MRI를 가지고 실시한 유사 실힘들은 모두 피실험자들이 객관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개개인들이 집단의 의견에 휩쓸렸다면, 주관적인 판단을 할때는 집단의 의견에 더욱 영향을 받을 것이다. - P162

이 문제는 애쉬 효과* 와도 관련이 있고, 병 안에 젤리 과자가 몇 개나 들어 있을까를 추측하는 것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젤리 숫자 맞추기 게임에서 우리는 1달러씩 걸고 저마다 하나의 추측을 내놓는다. 그리고 실제 수량에 가장 가까운 추측을 내놓은 사람에게 걸려 있는 돈과젤리 과자 단지를 모두 내준다. 만일 충분한 수의 사람을 모아 그들의 추측을 기록한다면, 그 추측들은 종 모양의 곡선으로 분포될 것이다.¹³

★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다른 사람들을 따라가는 성향. - P163

13 실제로 종 모양의 곡선은 왼쪽의 0에서부터 상승하고 오른쪽에서 하강한다. - P353

 개인의 의견은 개개인으로 이루어진 집단의 독립적인 의견보다못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군중을 따르는 것은 아주 효과적인 전략일 수 있다.¹⁵ 그러니 단지 안에 젤리 과자가 얼마나 있는지 알고 싶다면, 많은 이들에게 의견을 묻고 그들의 대답을 평균 내라.
대수의 법칙은 수학적으로 아주 믿을 만하다. 그 법칙이 발견되기까지 너무 오랜 기간이 걸렸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이다. - P164

15 제임스 슈로위키는 이 통계 법칙을 크게 중요시했고, 심지어는 적어도 집단 구성원들이서로 독립적으로 행동하는 한 개인의 의사결정은 항상 집단의 의사결정보다 좋지 않다는 주장까지 했다. 제임스 슈로위키의 《군중의 지혜 : 왜 다수가 소수보다 현명하며 어떻게 집단적 지혜는 사업, 경제, 사회, 국가를 형성하는가》(뉴욕, 더블데이. 2004년)를 참조하라. - P353

통계적으로 집단은 개인보다 우월하므로 다른 동물들의 행태를 발견한 동물은자기 자신에만 의지하여 의사결정을 하는 동물보다 항상 더 많은 먹이를 얻을 것이다. 성공 확률이 크게 높아지며 위험은 훨씬 작아지기때문이다. 집단의 힘은 개인의 힘보다 훨씬 크며, 진화는 그 힘을 이용할 줄 아는 동물의 편이다. 그래서 ‘집단사고‘는 서로의 행동을 관찰할 수 있는 모든 동물들에게 지배적인 전략이 된다.
비록 통계적으로는 집단의 사고가 개인의 사고보다 우월하다 해도 대수의 법칙은 상식파괴자에게는 맹독이 되기도 한다. - P165

차이를 인정하라

편도체와 관련해서 앞장에서 설명한 전략들은 모두 여기에서도 적용된다. 가령, 인지 재평가는 두려움을 유발하는 상황을 다른 관점에서 효과적으로 바라보게 해준다. 이에 더하여,
고립에 대한 두려움으로 지각이 바뀌는 상황에만 특정하게 적용되는전략들도 있다. 누구도 어리석어 보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 P166

상식파괴자의 가장 극단적인 형태는 한 명으로 이루어진 소수다. - P166

다행히 극단적인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도, 군중에 휩쓸리는 성향이 있는 사람들에게 맞설 수 있는 차선책이 있다. 애쉬는 실험을 반복하면서, 집단이 만장일치로 뭉쳐야만 피실험자를 효과적으로 동조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반대자가 한 명만 있어도 군중 효과는 충분히 깨질 수 있었다. - P167

제도 차원에서 이 점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하다. 즉 이런 사실에비추어 우리는 의사결정기구에 만장일치로 결정을 내리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 의견 차이는 반드시 고무되어야 한다. 이런 의사결정기구들은 대개 투표를 통해 결정을 내리지만, 개개인이 자신의 판단을얼마만큼 자신하는지는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투표 활동은 애쉬 효과를 불러올 수 있다. - P168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두려움을 완화시킬 만한 몇 가지 효과적인전략들이 있다. 인지 재평가도 그렇지만 소거도 아주 유용한 방법이다. 일반적으로 무엇인가에 대한 두려움은 장기간 지속될 수 없다. 반복적으로 노출이 되면 전두피질의 활동에 의해 두려움이 억제되기 때문이다. 소거는 무엇에 대한 두려움인지가 명확히 정의되고 그 두려움을 반복적으로 경험할 수 있을 때 아주 효과적이다. - P169

두려움은 술과 같다고 생각하라. 그것은 판단을 흐리게 한다. 두려움에 취해 있을 때에는 그 어떤 결정도 내리지 말아야 한다.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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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려움은 지각 시스템과 상호 작용하여 사람이 보고 있는, 혹은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변화시키기도 한다. 이렇게 지각이 바뀌면 그 사람은 잘못된 행동을 택할 수가 있는데, 그 결과는 때로 치명적이다. 이는 두려움에 의해 행동이 억제되는 것보다훨씬 더 위험하다. - P139

1986년 1월 28일,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발사 직후 폭발했을 때전 세계 모든 사람들은 잘못된 결정과 행동에 따른 치명적인 결과를 목격했다. 사후 조사의 선두에 섰던 사고조사위원회는 관리를 철저히 하지 못하고 우주여행과 관련된 위험을 과소평가한 미항공우주국NASA의 문화가 큰 문제였다고 지적했다. - P139

티오콜사와 미항공우주국 내의 그렇게 많은 엔지니어들이 고무링에 대해 걱정했는데 왜 아무 조치도 취해지지 않았을까? 미항공우주국은 안전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었지만, 대통령 조사위원회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그것은 아주 비효율적인 것이었다. 빠듯한 비행 스케줄을 맞춰야 한다는 심한 압박감 때문에 안전 프로그램을 뒷전으로 미루기 일쑤였던 것이다. - P141

물리학계의 상식파괴자, 리처드 파인만

노벨상을 수상한 캘리포니아 공대 교수 출신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 Richard Feynman은 챌린저호 참사가 미항공우주국 경영진의 잘못임을 분명하게 밝혀냈다. 그는 고무 링 조각이 얼어붙을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의회 의원들 앞에서 시연했고, 지극히 솔직한 태도로 대중의 영웅이 되었다. 당시 파인만은 물리학계에서 상식파괴주의로 이미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 P142

 파인만의 정신적 지주였던 로버트윌슨 Robert Wilson 은 곧 시작될 맨해튼 프로젝트*에 파인만을 끼워주었다. 윌슨은 이렇게 회상한다. "파인만의 계속되는 회의론, 그 어떤 권위적 주장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그의 의지가 그 프로젝트에서는 유용하게 쓰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⁵ 실제로 그랬다. 파인만은 수학적 재능을 인정받아 긴 계산식을 척척 풀어내야 하는 연구팀을 책임지게 되었고, 정답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도 오류를 잡아내어 사물을다르게 볼 줄 아는 사람이라는 평판을 얻었다. - P143

5 제임스 글리크의 《천재 : 리처드 파인만의 삶과 과학》 (뉴욕, 판테온북스, 1982년)을 140쪽을 참조하라. - P353

그는 무한대에서부터 무한소수로 접근하거나 색다른 방향에서 수학식에 접근하는 등 독특한 관점에서 계산식을 바라보았다. 로버트 오펜하이머* 마저도 "모든점에서 가장 뛰어난 젊은 물리학자라고 평하며 파인만을 주목했다.⁶ - P144

6 제임스 글리크의 《천재 : 리처드 파인만의 삶과 과학>(뉴욕, 판테온스, 1982년), 184쪽 - P353

다수에 굴복하는 한 사람

파인만은 평생을 상식파괴자로서 당당히 살다 갔지만, 사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만의 의견을 홀로 밀고 나가기가 쉽지 않다. 앞장에서 본 대중 연설에 대한 두려움처럼 사회적 고립에 대한 두려움 역시 인간의 두뇌에 깊숙이 박혀 있다. - P145

물론 집단에 소속되면 좋은 점도 많다. 그중 하나가 다수에 속해있을 때 느껴지는 안도감이다. 왜 두뇌가 그처럼 자신의 의견을 선뜻포기해버리는지는 수학적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통계적인 측면에서보면, 집단의 행동은 개인의 행동보다 더 옳을 가능성이 높다. - P146

사회적 고립에 대한 두려움

애쉬는 사회심리학 영역을 홀로개척해나간 상식파괴자였다. 폴란드계 유대인으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연구활동을 시작한 애쉬는 어떻게 그 많은 독일인들이 사람을몰살시키는 나치의 이데올로기를 흔쾌히 따를 수 있었는지 알아내기로 결심했다.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심리학 실험으로 우뚝 선이후 수없이 비슷한 실험의 토대가 되었던 애쉬의 실험은 전혀 모호하지 않은 것을 본다 해도, 그리고 개인적인 이익이나 보복의 가능성이 없다 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집단에 동조한다는 점을 보여주었다. - P152

지금은 누구든 ‘아무렴, 난 충분히 용감해서 내 관점을 고수할 수있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럴 수도 있다. 애쉬의 실험에 참가했던 사람들이 모두 집단에 동조한 것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리 용감하지 않아도 동조 여부는 자신의 선택 여부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고 우리가 믿는 것과는 달리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면 어떨까? - P153

애쉬 이후의 사회심리학자들은 동조가 대개의 경우 일종의 조건부 항복이라는 의사결정 단계에서 발생한다고 가정했다. 하지만 사회적 동조에 관한 논문 곳곳에서 지각이 변화된 징후가 발견되고 있다. - P153

신경과학자들은 기억, 감정, 주의력, 지각과 같은 신경생물학적인 과정들을 살피기 위해 기능성 MRI를 곧잘 이용했지만, 타인에 의해 우리의 시각이 바뀔 수 있는가라는 심상치 않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능성 MRI를 이용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2005년 내 연구팀은 이 문제에 답하기 위해 애쉬 실험을 현대적으로 변형해서 ‘어떻게두려움이 지각을 바꿀 수 있는가라는 문제에 접근하기 시작했다.¹⁰ - P154

10 <생물정신의학 58>(2005년)에 실린 그레고리 S. 번스와 동료들의 "머릿속으로 도형을 회전하는 동안 나타난 사회적 동조와 독립성의 신경생물학적 관련성" (245~253쪽)을 참조하라. - P353

권리장전*은개개인의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취지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는 모두가 사회에 참여할 것을 요구하는 암묵적인 계약도 존재한다. 대표자 선출하기, 법 규범에 충실하기, 배심원을 통해 재판하기 등이 그런 것이다. 그리고 의견의 차이는 허용하되 투표와 같은제도들을 통해 그 차이를 해결하고자 한다. 이런 모든 제도에는 개개인이 "자신의 의지대로 의사결정을 한다"는 가정이 놓여 있다. - P155

배우들의 얼굴은 그들 각각이 기록한 답과 함께 화면 오른편에 나타났다. 이 사례에서 두 개의 모형은 똑같은 것이다. 머릿속으로 회전해보면 이 둘은 똑같은 모양이 된다. 하지만 남들이 다 그 모양이 다르다고 말하면, 사람들은 자신에게 착시가 생겨 도형의 동일성 여부를 잘못 판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의 눈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애쉬의 실험보다 약간 더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이 시각 실험은 대개의 참여자들이 생각했던 것만큼 그리 어렵지는 않았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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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막 하루 2시간, 기적의 시작

역행자의 첫 번째 단서

이제 스물한 살, 다시 대학에 가고 싶다는 열망은 생겼지만 돈도없고 방법도 몰랐다. 나는 무식하게 독학을 선택했다. 이번엔 수능용 공략집을 발견하기 위해 인터넷을 뒤졌다. 상위권 학생들이 이용하는 커뮤니티를 찾고, 그곳에 올라온 수많은 성공 후기를 읽으면서 ‘이렇게 해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구나‘ 생각했다. - P52

그러다가 재미난 사람 둘을 알게 됐다. A는 30대 중반쯤 되는,
정말 노숙자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사람이었다. 내가 자기계발서, 심리서를 읽는 동안 그는 맞은편에서 경제와 주식을 공부하곤했다. 장발의 그는 거의 씻지 않는 것 같은 행색에 다 해진 옷을 입고 도서관에 왔다.  - P52

이럴 수가! 당시 안산에서는 외제차를 거의 볼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알고 보니 그는 자수성가한 부자였다. - P52

하반기에는 50대 아저씨 B를 만나게 됐다. 어느 날 도서관 옆자리에 뚱뚱한 아저씨가 앉았는데, 갑자기 나에게 시끄럽게 하지 말라며 핀잔을 줬다. 내가 정중하게 사과하자, 커피 한잔하자며 날데리고 나가 믹스커피를 뽑아주었다. 알고 보니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은행장까지 지내다가 은퇴한 분이었다. 부동산 중개사자격증을 따기 위해 도서관에 다닌다고 했다. - P53

왜 다시 실패했을까? 나는 끊임없이 책을 읽으면서 환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책을 읽고 지식이 쌓이면서 ‘나는 대단한 사람이야‘,
‘나는 뭐든 해낼 수 있어‘ 하고 착각했을 뿐, 3개의 벽은 여전히 나를 가로막고 있었다. 현실은 단단했다. 집에서는 "그럼 그렇지" 하며 조롱이 이어졌다. 친형은 "나이 먹고 흥부처럼 돈이나 빌려달라고 할까 진심으로 걱정된다"라고 말했다. - P54

꿈은 컸다. 최상위 대학 사회과학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현실은시궁창보다 못했다. 이미 친구들보다 3년이나 늦어진 시점이었다.
동갑내기 친구들은 1학년 대학 생활을 마치고 군대 2년까지 다녀왔다. 고졸인 친구들은 곧바로 취업해서 사회 생활 4년 차에 들어섰다. - P55

현실에서 도만티고 싶었고, 나를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숨고 싶었다. 논밭이있는 지방대에서 자전거를 타고 철학 책을 읽는 삶이 간절했다. 지방 국립대 철학과 세 곳에 원서를 냈다. 그중에 지리상 ‘대한민국한가운데에 있는 학교‘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전북대를 택했다. - P56

아무리 바빠도, 무슨 일이 있어도 하루 2시간 책 읽기와 글쓰기는 빠뜨리지 않으려 했다. 대신 나머지 시간은 맘대로 놀거나 빈둥거리면서 지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독특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책 읽기와 글쓰기를 꾸준히 해두면 훗날 뭘 하더라도 누구보다 잘할 수 있을 거야. 성공한 수많은 사람들이 증명하잖아.‘ 지금생각하면 참 단순한 믿음이었다. - P56

내 인생을 가로막던 3가지 벽 중 ‘공부의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전북대는 지방 국립대이긴 하지만, 안산이나 전주에선 반에서 3~4등은 해야 갈 수 있는 곳이었다. 앞에서 말한 중학교 시절공부를 못한다며 나를 놀리던 친구도 재수를 하고서야 전북대 공대에 들어와 있었다. 평생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던 친구와의 간격이점차 좁혀지고 있었다. - P57

두 번째로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돈의 벽‘이었다. 대학 1학년 때교내 과외 게시판에 게시글을 올렸는데 대박이 났다. 당시 전북대과외 시장은 의대생과 영어과 혹은 수학과의 사범대 학생들이 독점하고 있었다. - P57

그래서 나도 과외 구하는 글을 올리기로 했다. 특이하게 하위권전문과외‘라고 제목을 달고, 그동안 내가 얼마나 공부를 못했는지,
그러나 어떻게 영어와 수학 등급을 끌어올렸는지 구체적인 스토리와 방법을 적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전화가 빗발쳤다. - P58

예전에 영화관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5000원짜리 김치찌개를 먹지 못했다. 2시간을 일해야 김치찌개를 먹을 수 있었기 때문에 항상 삼각김밥으로 때우곤 했다. 이제 시급이 2만 원이 되고 나니 김치찌개를 매일 사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꿈만 같았다. - P58

마지막 벽이었던 ‘외모‘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당시 나는 중학교 동창 지한이와 함께 살고 있었다. 중학생 때는 별로 친하지 않았지만, 책을 잔뜩 읽던 스물한 살에 만난 지한이는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졌다. 이제까지 몇백억 대 넘게 성공한 사람들을 수도 없이만나봤지만, 아직 지한이만 한 천재는 거의 보지 못했을 정도다. - P59

3막배수의 진

"1만 9000원이 입금되었습니다"


그날 지한이는 쇼핑을 가기 전 이렇게 호언장담했다. "철학과에서 가장 괜찮은 남자가 누구냐는 질문에 명진이 너라는 말이 나올수 있게 해줄게!" 물론 나는 믿지 않았다. 어려서부터 고등학교에다닐 때까지 ‘나는 반에서 가장 못생긴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앞의 사진을 보라). 이성에게도 늘 거절만 당했다. 스무 살 때 두번, 대학에 와서도 두 번 거절을 당한 시점이었다. - P60

지한이는 입는 것, 먹는 것, 말하는 것, 거의 모두를 뜯어고쳤다.
거꾸로 말하면, 나는 정말 여자들이 싫어할 만한 짓은 다 하고 있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지한이의 약속 이후 나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거울을 볼 때마다 "이게 나라고? 믿을 수 없어"를 연발하게 됐다. 그전까지 단 한 번도 사람들이 나를 좋아한다고 느낀 적이 없었지만, 이때부터는 넘치도록 많은 사랑을 받기 시작한다. 이상형을만나는 데 무리가 없어졌고, 인기가 높아졌다. 지한이의 말이 현실로 실현되며 외모라는 마지막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 P61

애초 철학과에 지원할 때, 나는 철학이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대학에 와서 본 철학과 교수님들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대학 내 정치적인 문제로 갈등을 빚거나 시간강사를 대하는 모습을 보면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다. - P62

철학에 실망을 느낀 나는 몇 년 전까지 열심히 공부하던 심리학을 다시 파고들었고 심리학과 전공 수업도 들었다. 그런데 최신이론들이 전혀 반영돼 있지 않고 옛 이론을 답습하는 것 같았다. 강의수준도 실망스러웠다. - P62

그때 지한이가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냈다. "명진아, 네가 그동안 심리학을 많이 공부했으니까 이별 상담 사업을 해보면 어떨까? 사무실 빌리지 말고 온라인으로 말이야. 너는 상담 공부를 해봐. 나는 웹사이트 만드는 방법을 공부해볼게. 같이해보자." - P63

우리는 배수의 진을 쳤다. 나는 모든 과외를 그만두었다. 그리고지한이와 합숙을 시작했다. 앞서 말했듯이 그동안 2년간 2시간씩 책 읽기와 글쓰기를 놓지 않았다. 새로운 걸 받아들이고 본질적인 것들을 찾아 연결하는 데 최적화된 상태였다.  - P64

ㅇ 나는 이별했거나 연애 고민이 있었을 때 어떻게 했지? 그래, ‘헤어진 여자 친구 잊는 법‘을 검색했었어. 그 검색어로네이버 지식인 작업을 하고 블로그를 써두자.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은 이 키워드로 검색할 거야.

ㅇ블로그나 지식인을 타고 온 사람들이 우리를 신뢰하게 하려면 전문성을 보여줘야 해. 특히 ‘칼럼‘이 중요해. 칼럼에서 완벽한 전문성을 보여주면 돼. 2년 넘게 단련해온 글 솜씨를 발휘하자. - P65

4막 행은 뒤에 숨은 것
이보다 최악의 상황이 있을까??

2011년 3월, 스물다섯 살이던 우리의 사업은 나날이 발전했다.
월세 22만 원짜리 방에 살다가 3000만 원을 벌어들이는 건 기적과도 같았다. 매일 ‘이게 꿈인가 현실인가‘ 싶은 나날을 보냈다. - P66

3학년이 되자 모든 게 시시하게 느껴졌다. 차츰 전주에서의 삶이 무료해져갔다. 내가 큰돈을 벌자 주위 사람들은 오히려 나를 멀리했다. 사람들은 성공한 사람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먼저 가진다는 걸 이때 깨달았다. - P67

사업이 커지면서 우리는 각자 역할을 나눴다. 자금 관리와 회계,
경영 등은 지한이가 맡기로 했다. 나는 주로 상담 글을 작성하거나 상담을 진행하고 연구하는 일을 맡았다. CFO(최고재무경영자)와CTO(최고기술경영자)로 갈라진 셈이다. - P68

이때 수많은 사례를 듣고 겪으면서, 나는 어느새 인간 심리 분석과 심리 시뮬레이션 전문가로 거듭났다. 5~10쪽에 이르는 상담사연을 매일 5~6건씩 읽어야 했다. 30분 정도 고민하여 창의적인 해결책을 만들어내야 했다. 끝없이 통찰력을 요하는 작업이었기에,
자려고 누워서도 독창적인 해법을 연구했다.  - P69

겉으로는 사이가 좋아 보였지만, 우리는 서로에게 불만이 쌓여갔다. 나는 사업을 공격적으로 펼치길 바랐지만, 지한이는 보수적으로 하길 원했다. 그리고 나는 창업 초기 외에는 경영에 참여하지않으면서 주도권을 잃은 상태였다. 무엇보다 이때까지 군대에 갔다 오지 않은 상태였다. 불안한 나와 지한이 사이에 제3자가 개입하면서 우리 관계는 틀어지기 시작했다. - P70

•지한이와 나는 여러 오해가 쌓여 갈라섰다. 나에겐 다른동업자가 생긴다.
● 새롭게 사이트를 열어서 ‘마의 3000만원 매출을 바로 뚫어낸다.
● 2015년 2월 1일, 스물아홉에 사업 수익을 거의 챙기지않은 채로 군대를 간다.
첫 휴가를 나와 보니 회사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 동업자와 직원들이 나를 배신한 정황을 포착, 두 번째 휴가를 나와 결국 모든 사업을 정리한다.
• 스트레스 때문에 강직성척추염이라는 난치병을 얻고, 군병원에 입원하여 6개월간 누워 지냈다. - P71

그렇게 괴로운 날들이 이어지던 어느 날 나는 마음을 고쳐 감상다. ‘신이 나를 얼마나 위대하게 쓰리고 이런 고난을 주는 걸까, 종교를 받진 않았지만, 난 이 고난과 고통에 의미를 부여하자고 마음먹었다. 늘 큰 고통 뒤에 큰 성장이 온다는 걸 겪어보지 않았던가. - P72

그동안 내가 끊임없이 화가 난 건 스스로를 대단한 사람이라고착각했기 때문이었다. 지한이와 일을 하면서 3000만 원의 순수익을 냈지만 650만 원밖에 못 가져간 것, 다른 동업자와 일하면서 모든 재산을 잃고 사업체를 빼앗긴 것은 불운 때문이 아니었다. 그들의 문제도 아니었다. 그저 내 그릇이 작았기 때문에 물을 부어도 흘러 넘쳤던 것뿐이었다. - P73

당시 내겐 강직성척추염이 있긴 했으나 의가사 제대를 할 만큼 진행되진 않은 상황이었다. 6개월간 군 병원에 누워 있으면서 이상태로는 군대에도 나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빨리 제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특기를 살려 글을 썼다. 10여쪽에 달하는 보고서를 작성해 군 간부들에게 전했다. 꾀병이 아니라 병세가 심각하다는 걸 알게 된 몇몇 간부들의 도움으로 제대할수 있게 되었다. 2016년 1월, 내 나이 서른이었다. - P74

피날레  거슬러 오르기

돈, 시간, 정신으로부터 완벽한 자유를 얻다
누군가 이때까지의 내 인생을 지켜봤다면 뭐라고 평가했을까?
가난한 집에서 머리 나쁘고 못생기게 태어난 한 소년의 비극적인삶일까?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난 그런 출발점에서도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려 했고, 하나하나 장애물을 넘어서면서 새로운 스킬들을 획득했다. - P75

그 후에 어떻게 되었느냐고? 여기서부턴 많은 이들이 아는 대로다. 서른하나, 아무 일 하지 않아도 매월 5000만 원을 버는 구조를 만들었다. 몸은 완전히 회복되어 스포츠를 즐기기 시작했다. 서른둘, ‘이상한마케팅‘이라는 회사를 만들었다. 서른셋. 한 달 순수익이 8000만 원을 돌파하기 시작했다. ‘자청‘이라는 닉네임으로 유튜브를 시작해 6개월 만에 16만 구독자를 만들고 은퇴했다. 대부분의 시간은 해외에 나가 있었고, 꿈에 그리던 스포츠들을 시작해 트로피를 쌓기 시작했다. - P76

내 인생을 바꿔준 지한이와 동업 분쟁 후 어떻게 됐냐고? 지한이는 내가 책을 집필한다는 소식을 블로그로 접하고, 8년 만에 연락을 했다. 나는 8년간 지한이를 그리워했고, 항상 인생 최고의 은인이라 여기며, 다시 만나길 기다려왔다. 통화 후 우리는 다시 최고의베스트프렌드가 되어 매일 연락하며 지낸다. 지한이는 프로그램 사업으로 대박을 쳤기에, 최근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클라이밍도 같이 즐기며 취미를 공유하는 인생의 동반자가 되었다. - P77

만약 나의 옛 이야기를 공개하지 않았다면 당신은 과거의 나처럼 따른 세상의 이야기‘ 혹은 ‘어차피 금수저이거나 천재의 이야기‘라고 치부하며 책을 덮어버렸을지 모른다. 내 이야기가 당신의 모든것을 바꿀 순 없겠지만, 조금이나마 무의식에 균열을 내는 데 성공하길 바란다. 또한 이 책을 끝까지 읽지 않더라도 꼭 무의식의 균열이라는 개념만큼은 기억했으면 한다. - P78

역행자 1단계_자의식해체

자의식 해체는 역행자 7단계 모델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이기도하다. - P82

하지만 새로운 정보를 듣는 데는 10분만 투자하면 된다. 하지만 성공한 친구가 정보를 줘도 ‘잘난 척하지 마세요‘라고 생각하며 한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 자의식은 본인보다 잘난 사람에 대한 거부감을 느끼고 그의 정보를 밀어낸다. - P83

돈을 버는 실질적인 방법론을 눈앞에서 가르쳐줘도 "저는 돈보다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안 알려주셔도 돼요"라고 우아를 띤다. 누구보다 돈을 원하고, 돈 때문에 인생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때로는 돈 앞에서 치사한 행동을 하는 사람조차도. 하지만 본인이 이런 모순된 사고를 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 P84

 유전자가 정해놓은 본성과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 동시에 위계에 흔들리지 않도록, 스스로 보호하도록자의식도 탑재한다. 이러한 초기 조건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 P85

자의식에 대한 실제 사례를 얘기해보겠다. 내가 진행하는 주요사업은 심리 상담, 전자책 발간, 마케팅 등이다. ‘재회 상담‘이라는아이템으로 처음 창업해 이 분야에서 10년째 국내 1위를 하고 있다. 주로 고객이 여성이었으므로 여성 입장에서 이야기를 하겠다. - P86

사랑받고 싶은 마음도 자의식 때문에 생기는 것인데, 정작 지나친 자의식 때문에 사랑의 기회를 날려버리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원했던 남자보다 훨썬 못난 남자를 만난다. 왜 그럴까? 너무 철벽을 쳐서 그렇다. - P86

이들은 왜 연애에 실패하는가? 이유는 간단하다. 많이 안 해봤기때문이다. 별로 경험도 없으면서 마음속에는 판타지와 자기만의룰이 가득 차 있다. 연애란 상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관심과 자원을 주고받는 일인데, ‘나‘라는 존재가 너무 소중한 이들은 상대의마음을 헤아리거나 받아주는 데 서투르다. - P87

그들은 상담할 때에도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하나같이 쿨한 척,
상대에게 미련이 없는 척 행동한다. 이별을 통보한 상대와 다시 만나고 싶어 재회 상단까지 하은 상황이 이미 자의식을 상하게 했을 것이다. - P87

내가 상담한 실제 사례 중 하나인 이 여성은 자의식 때문에 서른살까지 모든 연애의 기회를 놓쳐왔다. 그나마 자신에게 모든 걸 갖다 바치는 남자와 연애를 시작하더라도 서툴기 때문에 관계를 망쳐버린다. ‘연애 잘하는 법‘이라는 글을 접할 때마다 ‘이런 건 한심한여자들이나 보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지식을 회피한다. 스스로 관계를 망쳤음에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남 탓‘만 시전한다. - P88

대다수의 사람들이 ‘돈‘을 대하는 태도도 마찬가지다. 그토록 원하지만 "꼭 중요한 건 아니야"라고 말한다. 적은 봉급을 보면서 ‘사회가 잘못되었어‘라며 남 탓만 시전한다. - P89

자의식이 인간을 망치는 이유

애초 인간에게 자의식이란 게 왜 있을까? 자의식은 여러 감정과 지식을 엮어서 잘 반응하며 살아남도록 만들어진 진화의 산물이다. 단순한 생물들에겐 자의식이 없다. 에어컨이나 TV 속의 칩이단순한 동작만 반복하는 것처럼 말이다. - P89

우리는 왜 이렇게까지 진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할까? 수많은연구가 수많은 답을 내놓았다. 방향은 비슷하다. 우리의 뇌는 유리의 몸과 마찬가지로 가급적 안정된 상태를 유지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 P90

짝사랑하던 여자를 친구한테 빼앗겨도, 전 재산을 코인 투자로날려도 한 달 후에는 맛있게 밥을 먹을 수 있게 자아를 살뜰히 보살펴주는 게 바로 자의식이다. 상처를 봉합하고 적당한 스토리를 만들어서 스스로가 일관되며 가치 있는 존재처럼 느끼게 해준다. - P91

실제로 재회 상담은 지나친 자의식 아래 숨은 자신의 솔직한 욕망을 들여다보게 하는 과정을 거친다. 자기 객관화를 돕는 것만으로도 복잡한 감정이 많이 정리된다. 무엇보다 자의식 해체가 가져다주는 결과는 ‘자유‘다. - P93

(전략).

누가 쓴 글일까? 네이버 뉴스 기사에 올라온 댓글이다. 돈과 관한된 인터넷 기사에는 반드시 이런 댓글이 베스트에 올라와 있다.
이런 댓글을 타는 사람들은 ‘자의식 좀비‘에 속한다. ‘자외식 방어팬 하면서 아무런 시도와 도전을 하지 않는다. 침대에서 댓글을 달꼬 사냥에 성과를 낸 사람을 깎아내리며 자위한다.  - P97

자의식은 지독하다. 적어도 몇십만 년을 인류와 함께해온 끈질긴 본능이다. 우리 유전자가, 타고난 본성이 자의식을 키운다. 게다가 현대 사회는 더욱 자의식을 부풀린다. 자기 자식을 애지중지키우는 부모들, 남들의 관심을 받기 위한 온갖 SNS가 가뜩이나 비대한 자아에 펌프질을 가한다. - P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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