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럴 암스트롱이 주장하듯, 《무제》에는 가면을 쓴 얼굴들과 가면인 얼굴들로 가득하다. 그중 많은 사진이 핼러윈축제 중에 찍혔는데, 어른의 커다란 육체와 어린아이 같은 의상 사이의 대조가 그 자체로 사진의 기괴함의 일부를 이룬다. - P332

마지막 작업에서 모델에 대한 의식이 사라지는 것은관객에 대한 작인이 없어지는 것과 서로 상관된다. 형식상으로 볼 때, 이 사진들의 대상들은 좀처럼 중앙에 자리하지 않는다. 그들은 프레임 밖에서 들어오고, 카메라와 비스듬하게서고, 거꾸로 앉고, 텅 빈 시선으로 바라본다. 카메라를 바라보는 일은 훨씬 더 드물고, 설령 그럴 때조차 그 시선의 의미는 알 수가 없다. - P332

《사진에 관하여》 끝부분에 실린 잡다한 인용문 중 손택이 아버스에게서 가져온 인용은 다음과 같다. "그저 궁금해서라면, 다른 사람에게 이런 말은 정말 하기 힘들다. ‘당신집에 가서 당신한테 당신 인생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사람들이 ‘당신 미쳤군‘이라고 할 테니까. 게다가 경계심도 한껏 곤두세울 것이다. 하지만 카메라는 일종의 허가증이다. - P333

아버스가 이 사진들을 찍은 시기는 정신장애자와 신체장애자들을 위한 운동으로 새로운 이미지들이 쏟아져 나오기 전인 1970년대 초반이었다.²¹ 나는 아버스가 찍은 사진의 대상들이 고통스러워했다거나 그들에게 자의식이 결여되었다고 믿지 않으며 아버스가 그렇게 믿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21 페이 긴즈버그는 정신장애자들이 공공장소에 모습을 보이는 것이 지난30년 동안 어떻게 변화했는지 설명했다. Faye Ginsburg, "Enabling Dis-ability: Renarrating Kinship, Reimaging Citizenshipm", Public Culture 13,
no3 (Fall 2001), 533-556쪽. - P334

아버스는 "관심을 주는" 문제를 놓고 우리를 흥미로운 입장에 밀어넣는데, 이 문제는 정신지체아,
아니 사실 명백한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빤히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금기 때문에 더 복잡해진다. 예의("반히 보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라는 말로 늘 표현되고 있지만,
빤히 보는 것을 금기시하는 것은 동시에 관심을 거둬들이는일이기도 하다.²²


22힐튼 알스는 1995년 11월 27일자 <뉴요커 New Yorker>지에 쓴 리뷰 <가면 벗기 Unmasked>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이 사진들 몇몇에는 또한사진가에 대한 크나큰 사랑과 신뢰가 담겨 있다. 악명 높은 다이앤 아버스가 자신들을 기념해주고 있다는 것에 특별히 흥미가 있어서가 아니라-그 순간만큼은- 아버스가 관심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 P334

그렇다면 이 사진들은 관객들에게 봐달라는 것 외에는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것 같다. 제어되지 않는 얼굴과 볼품없고 어색한 몸, 어울리지 않는 자기표현, 고삐 풀린 감정,
텅 빈 시선들과 마주한 관객은 바라볼 수는 있지만 개입하거나 정상화할 수 없다. - P335

 작인의 부재와 실패에 주목할 때 이 한계의 경험은 평범한 사건으로 개조된다. 끊임없이 완전성을 장려하고 이상화하는 문화 속에서 결함 있는 작인은 견딜 수 없는 일, 더 나아가 개인적인 일이될 수도 있다. 마치 각 개인이 작인의 실패를 몰래 감춘 채 홀로 숙명의 희생자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 P336

작인이라는 장엄한 관념은 자아와세계를 만들어나가는 작지만 의미 있는 행위를 향한 충동을심지어 짓눌러 없애버릴 수도 있다. 자연은 장난이 아니라는것을 아버스에게 가르쳐준 스토메 데라르베리는 1969년 스톤월 인²³에서 가장 먼저 주먹을 날렸다고 한다.


23 1969년 뉴욕에서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벌어졌던 스톤월 항쟁 Stonewall Uprising의 도화선이 된 사건이 경찰들이 동성애자들이 주로모이던 그리니치 빌리지의 술집 스톤월 인Stonewall Inn 을 급습하면서 벌어진 갈등이었다. (옮긴이) - P336

역자 해설

‘터프한‘ 여자들의 차가운 지성과 뜨거운 휴머니즘

우리가 무심코쓰는 상용구들에 언어가 추상적인 감정을 체감하기 쉬운 온도로 바꾸어 재현하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한자로도 냉정靜, 열정, 온화라고 쓰고 영어로도 "icy cold"라는 말은 냉정하다 못해 비정하다는 뜻이며 "warm-hearted" 라는말은 친절하고 다정하다는 의미로 통용되니 감정의 온도라는 유비는 상당히 보편적인 관습으로 보인다. - P413

(전략). 그리고 이 책에서 다루는 현대의 선도적인 여성 지식인, 철학자, 예술가들이 모두 "무자비하고 "얼음처럼 차고" "임상적"이며 "싸늘하고" "몰개성적"이라는 극렬한 비난에 시달렸다는 데 주목한다. 비난의 이면에서는 물론 여성에게 기대하는 감정의 온도를 위반한 일탈자들에 대한 남성 중심적 사회의 규제가 작동하고 있었다.  - P414

하지만 이들의 혹독하리만치 냉철한 현실 인식은 수난자에대한 비정한 무관심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수난이나 천형을 당연시하고 받아들이는 둔감한 체념과도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 책에서 다루는 터프한 지성인들의 공통점은, 누구보다 ‘차가운‘ 현실 인식을 견지하되 사회적 불의나 정치의 실패로 부당하게 수난받는 약자들을 구제하고 개혁을 선도하려는 의지만큼은 ‘뜨겁다‘는 데 있다. - P415

.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고 인간성을 회의하게 만든 규모의 세계적 위기에 대처하려면, 감정에 휘둘려 판단력을 잃지 않고 가혹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금욕적인 지성주의에서 출발해야만 한다. 정치적 당파성에서 감상적 도덕주의까지 비판적 판단력을 흐리는 모든 감정적 압력에 저항해 인식의 정확성을 지켜야만 한다. - P416

마지막으로, 윤리적·예술적·정치적 전략으로서의 "비정"은 불패 불변의 절대적 가치가 아니고, 아니어야만 한다. 책의 결론을 장식하는 조앤 디디온의 변화는 그런 점에서 의미 있다. 수난의 트라우마에 감정적으로 얽혀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을 비판하며 "도덕적 터프함"을 주장했던 디디온은 나이가 들며 자기가 견지해온 입장이 가혹하고 비현실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 P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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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tonblüten am Vorarlberg Museum -Die Umsetzung einer künstlerischen Idee

포어아를베르크(Vorarlberg) 박물관을 따라 핀콘크리트 꽃들 - 미학적 아이디어의 실현

서술: Julia Liesse, DETAIL誌편집자(p.36 참조)

Architekten/건축 설계:Cukrowicz Nachbaur Architekten, 브레겐츠(Bregenz)

Tragwerksplaner/ 구조 설계:Mader Flatz ZT, 브레겐츠(Bregenz) - P34

불규칙적으로 배열되어, 입체적으로 느껴지는수많은 돌출부들이 노출 콘크리트 표면을 장식한다.
여기서 빛과 그림자의 생생한 연출은 삼차원적인상을 제공하며, 엄청난 촉감을 불러일으킨다.
동시에, 건물의 외관은 신비롭다. 돋을새김 면(面)을 멀리서 보면, 점들을 규칙적으로 배열시킨 것처럼보인다. 가까이에서 보면, 여러 종류의 페트(PET)병 바닥을 형틀 삼아 주조해 낸, 동그란 꽃 모양의 원형 주형 돌출(凸)부들을 관찰할 수 있다. - P34

 중축을 통해 기존건물에 추가된 새로운 공간 구조에 의해, 새것과오래된 것 사이의 소통을 훌륭하게 이루어냈다.
이와는 별도로, 노출 콘크리트 입면의 균등한 표면은양각된 꽃무늬가 없는 편평한 구조로 계속 이어진다.
따라서 돌출(凸) 부위와 패인(凹) 부위들이 창문을통해 시야에 들어오는 옛 건물의 전면 외관 요소와 어우러지게 된다. - P34

새 증축 건물의 3개의 입면을 따라, 13가지의 각기 다른 페트병 밑바닥 조형 무늬가 임의적인 배열을갖도록 만들어졌다. 스위스(Swiss)에서 활동하는기하학 구조 전문 설계가인 Urs Beat Roth가이 작품의 배치를 위해 참여하게 되었다. 세 개의 입면에 어떠한 분포와 순서로 이러한 수천 개의 점들을 배치해야 하는지가 중요한 질문이었다.
임의적인 순서 및 배치를 적용하는 것이 최적의선택이라는 의견이 수렴되었다. - P34

이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건축가는 그의 설계 디자인을 통해 제안된 다섯 가지의 안(案)들 중 하나인, 순서 체계 "Domino13" 를 선택하였다. 이것은 두 개의 점이 있는 하나의작은 직사각형, 3개의 점이 있는 하나의 직사각형,
그리고 5개의 점이 있는 하나의 정사각형을 포함한3가지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렇게 해서, 하나의1x1평방미터(m2)의 면적에 13개의 점을 넣을 수있게 되었다. 이러한 꽃무늬 요소들이 불규칙한 구조바탕에서 임의의 조합을 실현할 수 있도록 했다. - P34

하지만, 양각(돋을새김)의 크기 때문에 이러한과정이 적용될 수 없었다. 대신, 페트병을폴리우레탄으로 채우고 양각 주조용 바탕 프레임을제작한 후, 목재 장부촉 이음 방식으로 이를 MDF 보드에 이어 붙였다. 초기 단계에서부터,
건축가는 콘크리트를 단 한 번에 타설 작업하여제작한 듯한 일체감을 끌어냄으로써, 옛 건물과새 건물을 통일시키는 전면 외관을 건축하겠다는 단호한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 P34

G 입면의 기하학적 모양은하나로 합쳐졌을 때,
사각 구조를 만드는 세 가지기본 도형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H 중첩을 통해 한 개의 대형 압입 형틀로부터,
필요한 모든 요소들을 주조하는 것이 가능하다. - P37

O 거푸집 공사(하중 내력벽과 단열재 층의 외측에 시공)P 부분 별로 분리시킨 방식으로 주조된 노출 콘크리트 전면 외관(매트릭스가 깔려있는 거푸집에 사전 제작됨) - P38

Betonrecycling - Recyclingbeton

콘크리트 재활용 재활용 콘크리트

서술: Aldo Rota, 건축 재료 공학자(p.48 참조) - P46

현재 재활용 콘크리트(RC)로 알려진 이 새로운 건축 재료는이미 확고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는 재료이다.
물론, 재활용 시설까지의 운반 거리가 멀지 않아야하는 제약 조건은 감안되어야 한다. 결국, 재활용 콘크리트는 앞으로 수십 년간 대규모 수급이 가능한 가장 중요한 건축 재료가 될 것이다. - P46

골재 조각들은 둥근 골재만큼 유동적이지 않기때문에, 추가로 높은 비율의 유동성 개선용 화학제가요구된다. 오늘날 콘크리트 기술에는 화학 첨가물이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가장 중요한 첨가제 그룹은 가소제(신선한 콘크리트의 제조를 돕기 위해, 특히 자기충전 콘크리트의 경우에), 촉진제, 억제제(경화 속도에 영향을 주기 위해), 공기 다공성제(경화된 콘크리트의 내한성을 늘리기 위해)이다. - P46

콘크리트는 일반적으로, 재생 불가능하며, 그것들의양이 한정되어 있는 자연 골재들 (자갈, 모래, 돌,
암석, 석회석 등)을 포함한다. 전문 집단들은 자연모래와 자갈 침전물들이 몇 년 사이에 고갈될것이라고 반복적으로 주장해 왔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이에 대한 타당한 접근 수단의 대안이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 이미 서유럽의 일부지역에서는, 이러한 자연 재료들의 공급 상황이 화석연료의 경우보다 더 심각하다. - P46

콘크리트는 일반적으로, 재생 불가능하며, 그것들의양이 한정되어 있는 자연 골재들 (자갈, 모래, 돌,
암석, 석회석 등)을 포함한다. 전문 집단들은 자연모래와 자갈 침전물들이 몇 년 사이에 고갈될것이라고 반복적으로 주장해 왔다. 정치적으로나경제적으로 이에 대한 타당한 접근 수단의 대안이 눈앞에 보이지 않는다. - P46

 앞으로 다가올 수십년 동안, 기존의 콘크리트 건물의 보수와 신축콘크리트 건물을 건축하며, 이 같은 건축 프로젝트를조심스럽게 확장하기 위해서는, 콘크리트 폐기물의재활용만이, 현재로서는, 유일하게 실행할 수 있는방안이다.
독일과 비교하여, 스위스의 자갈 공급은 치명적이다.
왜냐하면, 자연적 침전물이 더 적고, 더 많이이용되었다. 따라서 콘크리트 파쇄물과 혼합된 건설폐기물의 적정한 재고 수준을 확보함으로써 자연침전물 골재 용량의 부족분이 대신 채워지게 될것이다. - P46

 철근 콘크리트의 경우에, 이 과정은 철근은 그대로 남기고 콘크리트만을 제거하는 장점을 가져왔다. 이는 공사 현장에서 그것들을분리하고 별도로 회수하는 여건을 가능하게 했다.
추가적인 절차 없이, 여기서 발생되는 조각들은공사 현장에서 재활용 공정 시설로 바로 운반될 수있다. 그리고 이 시설에서 다른 콘크리트 폐기물과섞인 다음 골재로 변하게 된다. - P46

초기의 RC 실험들은 1960년대에 시도되었으나,
소외되었다. 관심을 많이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략 1990년대에, 취리히(Zurich)의 스위스연방 재료 기술연구소(EMPA)는, 실험실과 현장실험에서 RC의 가능성과 한계를 체계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했다. - P46

2002년부터 취리히의 모든 프로젝트의 신축 건물은일반적으로 RC(처음에는 RCB로 불림)로 지어져왔다. 지금도, 취리히 시(市)의 건설 관련 부서는RC와 특히 RCM의 실행에 중요한 역할을 계속하고있다. 재활용 콘크리트의 활발한 개발은 현재 진행중이다. 지방자치제들이 이를 따라오는 것은 단지시간문제일 뿐이다. - P47

1 재활용 콘크리트(RC)의 구성

5 훈련 센터 Rohwiesen,
취리히(Zurich)의 Brandhaus , 2011건축설계: Staufer Hasler Architekten - P47

Kirche in Kanagawa

카나가와(Kanagawa)의 교회

Architekt/건축 설계:Takeshi Hosaka, 요코하마(Yokohama)

Tragwerksplaner/구조 설계:Ove Arup & Partners Japan, 도쿄(Tokyo)Hitoshi Yonamine, 요코하마(Yokohama) - P66

일본 각 지역의 기독교 신도 숫자는 그리 많지 않다.
그렇지만, 50년이나 된 예전 교회 건물은 더 이상 전체 신도들을 다 수용할 수 없게 되었다. 신축교회 건물은 1층 구조 그리고 알맞은 공간 비율을갖고 있다. 때문에, 주택 건물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주변의 환경에 조화롭게 통합된다. - P66

디자인적 요소를 제외하고라도, 곡면은 지붕의구조 공학 콘셉트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부분적 반원통형 둥근 천장 형태의 공간 배치 덕분에, 아치지붕들은 7.60m의 폭과 25cm의 두께를 갖게된다. 둥근 천장의 무게를 줄이기 위해, 구조 디자인콘셉트에서는 각각의 콘크리트 유닛들의 중심에 강관을 삽입하여 시공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 P66

지붕들 사이의 갈라진 틈 부분들을 통해서 교회의내부까지 빛이 깊게 유입된다. 이 천창들은 낮동안 교회 내부로 들어오는 빛이 극적인 연출을 할수 있도록 배치되었다. 아침에는 간접광에 의한 환하지 않은 빛이 모이고, 오후 시간이 가까워지면,
콘크리트 벽의 질감을 강조하게 되는 직사광이 모인다. - P66

Serviceanlage der SBB in Zürich

취리히(Zurich)에 위치한 SBB의 서비스 시설

Architekten/건축 설계:EM2N,
취히리 (Zurich)
Ernst Basler + Partner, 취히리 (Zurich)

Stahlbau und Fassade /구조적 강철 시공 작업, 파사드:H. Wetter, AEE (Stetten) - P137

승객수가 증가함에 따라 기차의 길이도 계속늘어나게 되었다. 이는 스위스 철도공사가 400미터길이에 달하는 객차 서비스 시설을 짓는 계기가되었다. 대지는 기존 시설을 바탕으로 정해졌고,
홀(hall)의 하중지지 구조는 오로지 공학의결과물이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를 맡은 건축가는 남측 입면을 덮는 커튼월 파사드 디자인에 설계의 초점을 맞췄다. - P137

Stadtaufzug am Hauptbahnh of Rorschach


로르샤흐(Rorschach) 중앙역의 공공 엘리베이터


Architekten/건축 설계:Alex Buob, 로흐샤흐베르크(Rorschacherberg)

Tragwerksplaner/구조 설계:Wälli AG Ingenieure, 로흐샤흐 (Rorschach) - P191

. 단순한 구조의 철재 계단은 높이 차를 극복할 또 다른 방법이다.
지나가는 열차의 풍하중을 구조 계산에 고려해야했으며, 타워의 기초는 암반에 굳게 고정되어 있다.
다리는 경사 끝에서 미끄럼 베어링으로 고정되어있다. 하루 동안의 엘리베이터 사용 횟수가 1,000번에달한다는 사실을 통해, 이 새로운 연결 구조가 얼마나 쓸모가 있는지를 알 수 있다.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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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 윤리의 패러다임

(전략). 즉 컴퓨터게임의 윤리는 게임의 윤리와 동일한가라는 문제를 불러올 수도 있는 것이다. 아니면 다른 말로,
내가 여기서 제안하고 있는 프레임을 사용해서 프로 스포츠와 어린이의게임, 혹은 카드 게임의 윤리를 이해하는 것이 가능한가? - P22

(전략). 이는 컴퓨터게임 윤리의 연구에서도 중요하다. 이러한 차이는 한 가지 사실로 요약될 수 있다. 즉 컴퓨터게임은 ‘비디오 디스플레이를 포함하여 컴퓨터 능력을 이용하여‘²⁴ 플레이되는 게임이라는 사실 말이다. 컴퓨터 능력은 게임 경험의 윤리적 구성에 중요한 새로운 가능성들과 요구들을 산출한다. - P22

22 Dodig-Crnkovic and Larsson 2005, p. 20. - P338

내가 친구들과 내 콘솔로 캐주얼 농구 게임을 플레이할 때에는 그런 식으로 규칙을 변경할 수 없다. 컴퓨터 시스템이 득점 규칙과 턴어라운드 규칙을 관장한다. 그러니 우리에게 그것들을 변경하는 것과 그 게임을 더욱 즐거운 캐주얼 게임으로 만드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분명 우리는 플레이 스타일을 바꿀 수는 있다. - P23

컴퓨터게임을 비디지털게임과 구별해 주는 또 다른 요소는 컴퓨터게임의 시뮬레이션 능력이다. 비디오게임의 게임 세계는 대개 다른 시스템의 시뮬레이션에 의존하고 있다. <프로 에볼루션 사커 4(Pro EvolutionSocer 4)>²⁶의 공의 움직임(dynamics), <완다와 거상(Shadow of theColossus)>²⁷의 거상(巨像들, 혹은 〈대합주! 밴드 브러더스(Daigassou! Band Brothers)> ²⁸의 악기처럼 이 시스템은 물리 법칙이다. 컴퓨터게임의 게임 세계는 몇몇 픽션적 요소(fictional elements)²⁹들을 갖춘 시뮬레이트된 환경이다. - P23

26 Konami 2004a.
27 Sony 2006b.
28 Nintendo 2004.
29 Aarseth 2005 - P339

 시뮬레이션과 규칙 둘 다 컴퓨터에 의해 관리되고 플레이어의 상호작용과 행동 및 주체성(subjectivity)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컴퓨터 힘과 시뮬레이션 능력의 존재는 디지털게임의 윤리를이해함에 있어 중요하다. 그러므로 이 연구를 컴퓨터 윤리 분야와 연결시키는 것이 분명해 보인다.
컴퓨터 윤리는 인터넷 커뮤니케이션 테크놀로지와 컴퓨터 테크놀로지가 창조한 윤리적 함의(含意)를 연구하는 분야다.  - P24

즉 우리는 그러한 이슈를 새로운 윤리적딜레마로 생각할 것인가 아니면 오래된 딜레마로 간주할 것인가? 컴퓨터게임에 의해 제기된 윤리적 문제에 근본적으로 새로운 것이 있는가?
컴퓨터게임이 야기하는 윤리적 문제가 어떤 종류의 문제인지를 명확히 하기 위해 나는 존슨(Deborah Johnson)의 3중 구별법을 사용할 것이다. "윤리적 이슈는 적어도 세 개의 상이한 방식으로 분류될 수 있다. 즉테크놀로지의 유형과 테크놀로지가 이용되는 분야, 주제(themes)의 윤리적 콘셉트에 따라서 체계화될 수 있는 것이다."³⁰ - P25

30 Johnson 2004, p. 65. - P339

 또한 이를테면 덕 윤리의 관점에서 컴퓨터게임이 제기하는 이슈와도 연관이 있음을 뜻하기도 한다. 가령 ‘게임을 플레이하는 행위가 도덕적 둔감화를 부추기는가?"와 같은 이슈 말이다. - P25

컴퓨터 윤리의 일반적 인식론적 분야와 관련하여, 나의 이론적 프레임은 브레이(Philip Brey)³¹의 해석적 컴퓨터 윤리(disclosive computerethics)가 제안하는 패러다임에 매우 가깝다.  - P25

31 Brey 2000a2000b. - P339

하지만 이 책의 주요 논점은 플레이어를 중심에 두는 일에 내가 힘을 쏟고 있다는 것이다. 내 생각에 이것은 컴퓨터게임 및 컴퓨터 윤리와 관련하여 관습적 담론으로부터 방향을 전환하는 점이기도 하다. 디자인된 대상으로서 컴퓨터게임은 비윤리적이라고 생각될 수 있는 실천을 일으키기도 한다. 하지만 이러한 실천은 도덕적 행위자에 의해 자발적으로 수행된다. - P26

이 책은 컴퓨터 윤리에 관한 책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컴퓨터 윤리분야의 가장 의미 있는 몇몇 발견을 이용하고 그것들을 디지털게임에 적용하기 때문이다. - P26

이 책의 구성

나는 이 책을 여덟 개의 장으로 나누었다. 하지만 주목할 필요가 있는 개념적 부분이 존재한다. 2장에서 4장까지는 핵심 이론을 다루는 부분들이다. 사례들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예들은 대체로 개념적 문제와그 해결책에 대한 짧은 해설로 제공된다. - P27

5장에서 7장까지는 이론을 상이한 이슈에 적용할 것이다. 나는 세 개의 사례 연구를 소개할 것인데, 이들은 이론을 적용하는 방법만이 아니라 싱글 플레이어 게임과 멀티 플레이어 게임 및 다중접속온라인게임의 분석에 그 이론이 갖는 영향력을 설명할 것이다. - P28

이 책의 목적은 컴퓨터게임의 윤리에 대한 포괄적 개관을 제공하는것이다. 이 분야는 거의 연구되지 않았지만 표현과 오락을 위한 신생生) 문화 형식인 컴퓨터게임이 선진 사회에 던지는 증가하고 있는 윤리적 질문들 때문에 더욱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는 분야다. 이 책은 결코완전한 작업이 아니다. 더욱 많은 토론을 요구하는 영역들이 있다. 멈출수 없는 진화과정 속에 있기에 게임은 이 텍스트의 부분을 낡은 것으로 만들 것 같다. - P29

04
컴퓨터게임의 윤리학

<메탈 기어 솔리드 스네이크이터(Metal Gear Solid: Snake Eater))‘는 잠행 게임(stealth game)이다. (중략), 이 게임은 폭력적인 해결책을 권장하지는 않는다. 비군사적인 항복 기술들을 사용함으로써 플레이어들은 게임 내러티브가 요구하는 그런 적들만을 죽이는 미션을 수행할 수 있다. <메탈 기어 솔리드 3>은 환경들과 자원들의 지적 이용을 독려한다. 여기서 폭력은 최적의 전략치고는 가장하수다 - P157

이 게임 플레이 시퀀스는 게임의 윤리적 가능성들을 실제 게임 디자인으로 옮겨 놓은 가장 노련한 예들 중 하나다. (중략). 소로는 디자인내에서 분명한 윤리적 행위유도성(affordance)이다. 플레이어는 전투이상으로 잠행에 참여해야 한다. 그들이 더 많은 군인들을 죽이면 죽일수록 그들은 덜 숙련된 플레이어들이다. 그 결과 그들은 더 느린 게임 진행으로 벌칙을 받을 것이다. 이러한 게임 행위유도성은 군인을 죽이는것이 불필요한 일임을 말해 준다. 따라서 게임 경험이 변경될 것이다. - P158

이 장에서 나는 이러한 교훈들을 마음에 새기면서 포괄적인 윤리적 프레임을 고안하고자 한다. 이러한 틀은 컴퓨터게임이 제기하는 윤리적 이슈들뿐만 아니라 개발자들과 플레이어들 및 이론가들이 응용할수있는 가능한 해결책을 이해하고 분석하며, 심지어 예견하는 데 사용될수 있을 것이다.
컴퓨터게임의 윤리를 분석하기 위한 일반적 방법으로서 나는 우선 게임을 경험으로 정의할 것을 제안한다. 그다음으로 그러한 게임 경험 안에서 생겨나는 관련 윤리적 이슈들을 밝히는 데 사용될 수 있을, 그리고 게임 현상학을 구성하는 상이한 요소들(플레이어, 대상, 커뮤니티)과 그러한 이슈들이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데 이용될 수 있는윤리 이론의 적용을 제안한다.² - P159

04 컴퓨터 게임의 윤리

1 Konami 2004b.
2 이러한 접근법은 Philip Brey의 명시적인 컴퓨터 윤리에 깊은 영감을 받고 있다. Brey 2006b를 보라. - P350

덕 윤리와 컴퓨터게임

이제 나는 컴퓨터게임 연구에 덕 윤리(학)가 제공하는 분석 개념들을 소개할 것이다. 물론 전적으로 덕 윤리적인 접근법이 갖는 결함들도 알리면서 말이다. 나는 게임 대상과 플레이어주체의 관계에 적용될 때 이이론이 가장 큰 유용성을 갖는다고 주장할 것이다. 덕 윤리의 관점에서게임 윤리를 분석하는 이 작업은 컴퓨터게임의 윤리를 설명해 줄 가다머의 해석학적 순환(hermeneutical circle)으로 마무리될 것이다. - P161

컴퓨터게임을 위해 덕 윤리학 정의하기

덕 윤리학은 도덕 철학 분야에서 가장 오래된 학파(學派)들 중 하나다.
(중략).
거칠게 말해서, 덕 윤리학은 인간과 인간 공동체가 윤리적으로 비치기위해 익히기를 갈망해야 할 윤리적 덕들을 명시하려고 시도한다. 덕 윤리학은 인간을 선(善)을 열망하는 도덕적 동물로 만들어 주는 도덕적 특성과 실천의 단련과 계발에 대한 이론이다.³ - P161

3 덕 윤리학에 대한 더욱 섬세하고 완전한 역사는 Honderich 1995, pp. 900-901과 며야 1999, pp. 960-961에서 찾아볼 수 있다. - P350

덕 윤리학은 동양 세계와의 횡 문화적 접속(cross-cultural connec-tion)의 기회를 제공한다. 왜냐하면 유학(Confucianism)과 같은 동양고대 윤리 사상의 상당 부분은 덕 윤리학과 원칙들이나 수사학을 공유하고있기 때문이다.  - P162

(전략). 대상으로서의 게임, 즉 게임 시스템은 내포적 가치(embeded values)를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덕 윤리적 접근법은 단지 게임 안에서 실제로 경험하는 그런 가치에만 관심을 둔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접근법과가다머의 해석학적 현상학 간의 접속이 중요하다. - P162

(전략). 대개 제국 경계들의 안보를 지키는 데에만 사용되는 자원들을 말이다. 비폭력이 플레이어를 위한 선택 사항이라는 사실은 흥미롭기는 하다. 비폭력적 문제 해결이라는 그것의 내포 가치는 실제적인비실용성(impracticality) 때문에 게임 전략으로서는 거부된다. 플레이어들은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를 비폭력적 전략을 이용하여 승리할수 있는 게임으로 경험하지 않는다. 그런데 그러한 경험 속에서 덕 윤리학은 그 연구 공간을 발견한다. - P163

이러한 덕 윤리학적 접근법은 근본적으로 플레이어 중심적이다.
개인적 관점에서는 물론 플레이어 커뮤니티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그렇다. 그러한 접근법은 플레이어를 덕이 있는 존재들(virtuous beings)로정의한다.  - P163

자신들이 그렇게도 신중하게 디자인해 놓은 미리 정해진 행위를 작동시킬 숙련된 사용자들로 여기는 것이다. 반면 많은 게임 디자이너들이 플레이어들을 존중하고 그들에게 많은 중요성을 부여한다.
하지만 플레이어를 다소 수동적인 형상으로 보는 이런 식의 담화 시스템과 벌이는 그들의 상호작용은 이미 계산된 것이었고 다소 제한적이다-⁷는 지배적인 견해로 남아 있다. - P163

6 "우리는 지루해지는 것으로부터 어떻게 플레이어를 보호할 것인가? 우리는 그를 전진하도록 몰아붙인다. 양치기 개가 양들을 몰듯이 말이다. [...] 여러 번 레벨 디자이너는 그 환경을 통과하도록 플레이어들을 이끌거나 그들을 하나의 방향으로 밀어 붙인다. 하지만 늘 플레이어들은 추동 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그 게임은 침체될 수 있다" Byrne 2005, page 65. 또한 Rouse 2000, 1장, 7장 그리고 23장을 보라.
7 Rouse 2000, p. 127을 보라. - P350

이는 역설적이다. 왜냐하면 존재하기 위해 게임은 플레이어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적극적으로 시스템과 관계 맺는 플레이어/유저의 존재는 게임 경험의 윤리적 좌표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이다. 플레이어는 수동적인 수신자가 아니다. - P164

이를테면 <그랜드 세프트 오토: 샌 안드레아스>와 같은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몇몇 차원들을 갖는 윤리적 행위다. 이 게임의 규모 자체만 감안한다면, 플레이어는 탈 것들과 지역들(locations)과 같은 이 세계의 흥미로운 아이템들 몇몇을 열기 위해 편법을 사용(cheat)하지 않을수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랜드 세프트 오토: 샌 안드레아스>는 또한 폭력으로 유명한 게임이다. - P164

 같은 게임 경험 안에서 혹은 그 게임을 둘러싼 사회적 심급들 내에서 다른 플레이어들과 우리가 맺는관계는 게임 플레이의 실천이다. 내가 주장한 것처럼 도덕적인 실천인것이다. 그것은 도덕적이다. 왜냐하면 게임 커뮤니티의 한 부분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혼자서든 다른 플레이어들의 집단을 통해서든 이 게임을통해 경험할 공유된 가치를 창조하는 것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 P165

플레이어를 덕이 있는 존재로 규정할 때, 나는 실천적 지혜 혹은 프로네시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을 사용한다. 이는 어떤 선택들이플레이어로서 자신의 덕을 더욱 더 발전시킬 수 있는지를 플레이어가 어떻게 결정하는가를 언급하기 위해서다. 나는 놀이적 프로네시스(ludicphronesis)를 도덕적 지혜로 정의한다. - P165

이러한 지혜는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직면하게 되는 그러한 딜레마들을 해결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러한 덕 윤리학의 맥락에서 놀이적 프로네시스는 게임 플레이 행위에 존재하는 유효한 윤리적 지식이다. 이는 플레이어 행위의 도덕성을 평가한다. 이러한 게임 관련 실천적 지혜는 게임 플레이 경험 동안 하게 되는 판단 과정을 알려줄수 있는 윤리적성숙도를 키워 줄 뿐만 아니라 몸주체(body-subject)로서 플레이어 주체를 보여 주는 유효한 지표로도 작용할 것이다. - P166

놀이적 프로네시스의 올바른 발전과 적용을 의미하는 컴퓨터게임내에서의 좋은 판단은 디자인된 환경의 유저로서 플레이어-주체가 가져야 할 덕들을 강화한다. 프로네시스의 올바른 사용은 플레이어 주체의 윤리적 타당성을 강화하며 게임의 윤리적 경험에 있어 플레이어에게 가장 중요하다. - P166

좋은 게임의 심장: 놀이의 해석학적 순환

덕 윤리학의 관점에서, 플레이어는 덕이 있는 존재로 이해되어야 한다.
게임 상황에 몰입할 때, 플레이어는 게임이 부과한 도전을 해결하기 위해 그들의 운동 기능, 추론 능력과 논리력, 지능을 사용한다. 그들은 또한 윤리적 추론 능력(reasoning)을 적용한다. - P171

덕이 있는 플레이어는 우리가 전통적으로 게임과 관련하여 떠올리곤 하는 전략적이고 목표 지향적인 의미에서뿐만 아니라 도덕적 의미에서도 자기 행동을 반성한다. 덕을 갖춘 컴퓨터게임 플레이어는 자신의행위뿐만 아니라 참여하는 시스템의 디자인에 관해서도 비판적이고 윤리적으로 반성을 해야 한다. - P171

덕 윤리학이 지지하는 관점 내에서, 컴퓨터게임의 윤리는 자발적으로그 게임에 참여하는 행위자의 윤리다. 그렇다면 다음 두 가지 이슈가 고려되어야 한다. 하나는 행위자로서 게임의 윤리와 플레이어가 아닐때 그 행위자의 윤리 사이의 관계와 관련된 것이다. 다른 이슈는 도덕적 행위자로서의 플레이어와 도덕적 대상으로서의 게임 간 관계와 관련이있다. 컴퓨터게임의 윤리학이 발견될 수 있는곳은 이러한 관계들 속에서다. - P172

놀이적 프로네시스는 게임 경험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윤리적 자원이다. 놀이적 프로네시스는 플레이어-주체와 게임 경험 외부의 문화적 존재에 비추어 게임 경험을 윤리적으로 해석하는 것으로 정의될수 있다. 그것은 놀이적인 해석학적 순환의 적용가능성을 이해하기 위한 결정적 요소다. - P173

몸을 지니며 육체화(embodiment)와 젠더라는 이슈들을 산출하는 어떤 사람이다. 그는 하나 혹은 그 이상의 문화 속에서 살아간다. 플레이어는 게임 속에 있는 주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는 또한 게임 시스템과 게임 상황을 해석함으로써 게임을 실제적인 경험으로 탄생시키는 몸주체이기도 하다. - P173

어떤 게임을 플레이한다는 것은 게임 시스템을 해석하고 적합한 전략을 선택하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이 최적의 선택일 필요는 없다. - P173

덕 윤리학의 관점에서 선한 플레이어는 자신의 윤리적온전성(integrity)을 지키기 위해 놀이적 프로네시스를 사용한다. 이는 게임 안과 밖 모두에서 이루어진다.

- P167

덕 윤리학과 도덕적 대상으로서의 컴퓨터게임

여기에서 선택한 덕 윤리학적 접근법은 플레이어를 컴퓨터게임 윤리학에 관한 반성의 초점으로 삼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하나의 대상으로 게임이 갖는 도덕적 본성을 숙고하고 그것이 보다 플레이어 중심적인 덕 윤리학적 관점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살피는 일은 유용하다. - P167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에서 게임의 중심 주제를 이루는 끝없는전쟁을 공급하겠다는 개발자의 의도와 허구적 세계는 이러한 커뮤니케이션 행위유도성에 대한 어떤 설명을 제공한다. 그러한 제한을 부과함으로써, 개발자들은 반대 진영들의 플레이어들이 자신들의 차이들을 해소하려 노력하거나 극도의 힘을 지닌 컴퓨터 통제 캐릭터들에 대항하여 동맹을 맺는 어려운 시간을 가질 것임을 말한 셈이다.
- P1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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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큐레이터 샌드라 필립스 SandraPhillips는 《폭로》의 카탈로그 에세이에서 아버스의 작업을
"공감과 비평적 거리 사이의 생산적 긴장 속에 위치시키는데, 이는 그 차이를 쪼개고 있다. 결국 이러한 논쟁들은 아버스 작품의 본질보다는 20세기 후반 미국에서 공감의 공적 일대기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보여주며, 이 논쟁 속에서 아버스는 승자가 되었다가 패자가 되었다가 패자가 되었다가 승자가 되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공감에 대한 이러한 강조는 카메라 작업에 대한 아버스 본인의 철학과는 배치된다. 아버스가 그 기형들을
"찬미했다"거나 많은 대상에게 깊은 애정을 가졌다거나, 그들과 관계를 발전시켜나갔다는 것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 P307

다시 장난감 수류탄을 든 아이 사진으로 돌아가보자. 이 사진이 처음 전시되었을 때, 많은 사람은 여기에 베트남전쟁에 대한 아버스의 비판적 논평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⁶

6 Colin Westerbeck and Joel Meyerowitz, Bystander: A History of StreetPhotography (New York: Little, Brown, 1994) 17 Joel Meyerowitzo이 주제에 관해 쓴 글 참조. - P308

아버스 또한 사진 이론가로 볼 수 있다는 입장은 그보다 더 분명하지 않았는데, 그 이유의 부분적으로는 아버스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진술한 제한된 기록에 의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버스의 딸 둔 Doon Arbus과 친구이자 스승, 연인인 마빈 이스라엘이 정리한 첫 번째 모노그래프,
《다이앤 아버스: 구경 모노그래프 Diane Arbus: An ApertureMonograph》 [이하 《구경 모노그래프》]의 서문에 실린 15쪽짜리글이 그것이다.  - P309

 이 책에서 다룬 모든 여성처럼, 아버스는 공감을 거부하는 것이 관심과 리얼리티를 위한 공간을 열어준다고 이해했다. - P309

나이스하지 않음에 관하여

(전략).
《폭로》라는 제목은 전시된 작품을 묘사하여 아버스를알고 감상할 수 있도록 할 뿐만 아니라 그녀 작품의 특성 역시 잘 담아내고 있다. 아버스의 사진 중 가장 유명한 작품들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 즉 나체주의자, 타임스스퀘어 휴버트 박물관에 사는 사람들 같은 기형들이나 (엉클 샘Uncle Sam이나 비잔틴 동로마 제국의 적법한 후계자라고 주장하는로버트 드로한 코르터네이 왕자 Prince Robert de Rohan Courtenay 같은) 기인들, 또한 난쟁이, 거인, 일란성 세 쌍둥이, 남녀추니같은 유전적 이형들, 드래그 퀸이나 매춘부, 동성애자 등의성적 추방자들, 공공시설에 수용된 정신병자들과의 만남에서 나왔다. 아버스는 평범한 사람들 젊은 커플, 사회주의자, 교외의 가족, 아기들뿐만 아니라 이런 대상들의 "틈gap", 즉 사람들이 의도한 바와 실제의 자기표현 사이의 거리를 포착하기를 좋아했다. - P312

<구경 모노그래프>에서 그녀는 ("흠Haw" 이라고도 불린) 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모든 사람에게는 이런 식으로 봐야 하는데 결국 다른 식으로 보게 되는 그런 게 있는데, 그게 바로 사람들이 관찰하는 바다. 거리에 있는 어떤 사람을 볼 때 사람들이 본질적으로 그 사람에게서 주목하게 되는 것은 흠이다. 이런 특징들이 우리에게 주어져야 했다는 게 그저 놀라울 뿐이다. 게다가우리는 주어진 것에 만족하지 않고 완전히 다른 것들을만들어낸다. 우리의 겉모습은 우리를 특정 방식으로 생각해달라고 세상에 보내는 신호와 같지만,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알아줬으면 하는 것과 어찌할 도리 없이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알게 되는 것 사이에 핵심이 있다. 그것은 내가 늘 의도와 결과사이의 틈이라고 불러온 것과 연관된다."¹¹ (강조는 필자)

11 Diane Arbus: An Aperture Monograph, ed. Doon Arbus and MarvinIsrael (New York: Aperture, 1972), 1-2쪽: 앞으로는 DAA로 쓰고 쪽수를 병기함. - P313

카메라에는 "일종의 엄정함" 과 "우리가 평소 겪지 않는 면밀한 응시가 있다. 이는 우리가 서로에게는 쓰지 않는 방식이다. 우리는 카메라가 개입할 때보다는 서로에게 더 나이스하다. 카메라가 개입하면약간 차갑고, 약간 가혹하다." (DAA, 2) 그녀는 마빈 이스라엘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인정했다. "내 생각에 사진 찍힌다는 것은, 조금, 상처가 되는 것 같아." (R, 146). - P315

궁극적으로 아버스는 사회성 sociability 이라는 부드러운포커스에 맞서 리얼리티를 향한 자신의 열망을 내걸었다. 아버스 식으로 보자면 ‘틈‘은 숨겨진 것을 공개하거나 폭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위반은 "관음증"과는 다르다. - P315

 "나는 좀 두 얼굴의 인간 같다. ㆍ 그건 정말로 뭐랄까 괴로운 일이다. 나는 그냥 너무 나이스하다. 모든 게 우와아아이다. 내 입으로 ‘멋져요‘라는 말을 하면 그건 정말 진심으로 멋지다고 말한 거다. 그건 내가 그런 모습이면 좋겠다는 뜻이 아니다. 내 아이들이 그런모습이면 좋겠다는 뜻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키스하고 싶다는 뜻이 아니다. 하지만 진심으로 그게 놀랍도록, 부정할 수없도록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한다."(DAA, 1) "대단한 것"을위해 기꺼이 비위를 맞추려는 이러한 태도는 특정한 방식의자기표현을 원하는 대상의 욕망에 맞서 대상의 리얼리티를이끌어내려는 아버스의 자발적 의지다. - P316

인간의 눈은 흠을 보지 않는 법을 배우지만, 카메라는그렇지 않다. 적어도 우리 생각은 그렇다. 왜냐하면 사진가가 카메라를 들이대거나 사진을 잘라내며 만들어내는 시각에 대해 우리가 아무리 논쟁을 벌인다 해도 카메라가 카메라 앞의 리얼리티를 포착한다는 것은 당연시하기 때문이다.  - P317

《폭로》는 아버스가 거의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리얼리티를 추구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아버스의 비평가들과 숭배자들은 모두 리얼리티를 포착하려는 그녀의 의욕을 치료의 형태로 이해하고 있었는데, 이는 《구경 모노그래프》에실린 그녀의 말, 즉 어린 시절 자신은 현실reality을 박탈당한기분이었고 그 비현실unreality의 느낌을 사진 작업으로 보상받으려고 했다는 진술에서 나온 해석이다.¹³

13 예를 들어, Anne Tucker, The Woman‘s Eye(New York: Alfred A. Knopf, 1973)참조. 이 이야기와 이에 대한 추론은 인용구만큼이나 리뷰에서 종종 되풀이된다. 이는 어머니가 사망한 후 둔이 1972년 10월 《미즈 매거진Ms.
Magazine》에 쓴 글에서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 - P319

불행에서 면제받아 괴로워하느니 세상의 역경을 만나겠다는 아버스의 결심이 손택이 주장했듯이 나이브하건 아니건, 아버스는
"트라우마를 가지고 태어난 자신의 기형들을 늘 "왕국"과
"귀족"과 결부시켰다. 아버스는 백화점의 공주였을지는 모르지만, 자신의 왕국은 없었다. 다시 말해서, 단지 트라우마를 가짐으로써가 아니라 트라우마를 견디고 극복함으로써 획득하는 통치권을 이해하지 못했다. - P320

 샌드라 필립스가 《폭로》에 실린 에세이에서 주장하고 있듯이, 내용에 대한 이러한 애착으로 아버스는 당시 유행하던 예술사 경향의 대척점에 자리한다. 하지만 리얼리티를 포착하는 것은 매우 다루기 어려운 형식적 문제였다. 사진이 늘 리얼리티를 복제하는 것으로 정의되는 매체로 지명되어 왔다는 것을 생각하면 놀랄 정도로 말이다. - P321

하지만 이와 동시에 그녀는 플래시를 사용해 차이를과장하고 배경의 깊이를 없애 사진 대상을 전면에 드러내기시작했다. 그녀는 커리어 아주 초반부터 필름 자르기를 하지않았는데, 이는 아버스가 작업을 시작한 시기(1950년대 중반에서 후반)에 흔하던 방식으로, 자연발생적으로 찍은 사진이나 거리 사진들에 주로 나타났다. - P322

사진은 개인의 자기표현 self-fashioning과 마찬가지로 작인의 실패, 즉 의도한 바와 성취한 바 사이의 틈에서 나왔다.
그녀의 기술적 실험은 기술을 완성하기 위한 시도라기보다는 카메라의 "저항" (DAA, 5)을 조절할 다양한 양식을 시험하며 놀아보는 것으로 여겨야 할 것이다. - P323

 다시 말해 아버스는 사진의 결과를 통제하지 못했고 노력의 결과로 나타난 것들을 종종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의도와 결과 사이의 틈을 견디느라, 심지어 그 속에 머물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그녀는 섬광등strobe을 좋아했는데, 왜냐하면 "사진을 찍는 그 순간은 본질적으로 눈이 멀기" 때문이다.(DAA, 9) 그녀는 "창작invention"의 "심사숙고한 선택들",
심지어 "수백만 개의 선택들"에서부터 나오는 "기술의 신비"를 사랑했다(그 선택 중 정말로 계획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고 그녀는 주장했다.). - P323

《구경 모노그래프》에 실린 단편적 생각들이 아버스를나이브하거나 그저 직관적인 사람으로 보이게 했다면, <폭로>의 <연보>는 아버스가 의도를 회피하기 위해 들인 엄청난 노력과 숙고를 보여준다. ‘폭로‘ 전시회는 아버스가 자신의 사진들, 잡지와 신문, 책에서 찢은 사진들, 자신의 작품과 무의식적 관계를 만들어나가기 위한 인용구들을 붙여둔 콜라주 벽을 재현해놓았다. - P324

다양한 문맥들 속에서 아버스가 진실, 또는 사실, 또는 리얼리티라고 칭한 이것은 사진 속에서 표현하기가 놀라울 정도로 어려웠다. 그것은 일부는 운, 즉 사진가에게 무엇인가를 드러내는 수백만 개의 보이지 않거나 무의식적인 선택들의 산물이었고, 일부는 정말로 거기 있는 것에 대한 이해를 무디게 하는 사회적 섬세함nicetics에 대한 거부였다. 그녀는 "정확히 있는 그대로"는 할 수 없었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더 가깝게 할 뿐이었다. - P325

 아버스가 자신에관해 언급했던, 잘 알려진 마지막 진술로 끝을 맺겠다. "내가 찍지 않았다면 아무도 보지 않았을 것들이 있다고 나는 정말로 믿는다." (DAA, 15) 여기서 아버스가 의미하려 한 바는 자신이 찍은 숨겨지고 사회적으로 배재된 사람들이라기보다나이스하려고 노력하다가 보통 간과하게 되는 리얼리티였을 것이다. - P326

작인의 한계

《폭로》의 《연보》에는 아버스의 초기 글 중, 고등학교 1학년 작문수업에서 초서 Chaucer와 세르반테스Cervantes 에 관해 쓴날카로운 글이 실려 있다. 이는 그녀의 "성숙한 감수성"이 일찍이, 아마도 심지어 완전히 형성된 상태로 나타났다는 증거로 소개되었다. - P326

초서는 "세상은 유일무이하고 여기 있기 때문에 물리적 세상을 사랑했다.(R, 128) 또한 돈키호테의 ‘광기‘는 극한까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방법이다". 이런 식의 짝짓기는 아버스가 관심을 표명하는 형식과
"극한까지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R, 128) 그녀 사진의 대상들, 특히 초기 사진의 대상들을 설명해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는 그걸로 충분히 좋다고 느꼈다"라는 문구에 잠시 멈춰서 자신으로 존재하는 이 장엄한, 어쩌면 미친 프로젝트들과 극한이라고도 칭할 수 있을 ‘틈‘의 문제가교차하는 지점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고 싶다. - P327

아버스가 초기에 쓴 한 에세이는 한계선의실재와 그 한계선을 가지고 작업하는 "섬세한 기술"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¹⁸ 1961년 11월호 《하퍼스 바자》에 실린 에세이 <완전한 원>에는 원래는 "신사처럼 보이는 숙녀"스토메 데라르베리 Stormé DeLarverie를 포함해 다섯 명의 "이상한" 사람들의 사진이 들어가 있다(이 인물은 <하퍼스>에서는 삭제되었지만, 다음 해 《무한대 Infinity》에 재수록된 에세이에 다시 들어갔다). 데라르베리는 아버스에게 뭔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당신한테 자신과 인류에 대한 존중이 있다면, 자연이 장난이 아니라는 걸 알겠죠." (R, 55)

18 Diane Arbus, "The Full Circle", Infinity, February 1962, 4-13%, 19-21,
reprinted from Harper‘s Bazaar, November 1961. - P328

<무제>의 연작 사진들은 아버스의 마지막 프로젝트의결과물들로, 당시 정신지체아라고 불렸던 사람들을 위한 시설에서 찍은 사진들이었다. 여기서 아버스는 핼러윈 축제 사진을 아주 많이 찍었는데, 의상을 차려입은 사람들은 거기에 자기표현의 판타지를 투사하는 게 아니라 자기가 입고 있는 옷에 종종 어리둥절해하는 것처럼 보인다[다이앤 아버스의 사진 <무제> 연작(1969-1971) 참조]. - P329

이 모든 사진 속 자기표현은 늘 작인의 부족, 자신을 창조하려는 노력과 그 노력의 실패 사이의 간극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결함이 있다. 이것이 《구경 모노그래프》에 실린 사진들이 폭로하는 바이며, 그 때문에 많은 비평가가 그 사진들을 사적 영역에 위치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 P330

20세기 미국문학에 매카시가 남긴 큰 족적을들자면, 아마 가장 유명한 단편인 <브룩스 브러더스 정장을 입은 남자>에 나오듯 낭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유혹 장면에서 걸출하게 드러나는 소극의 재능이다. 《그룹》과 자서전에서도, 매카시의 사실성은 지면에서 "폭발" 해 여성들이품고 있던 성적 로맨스와 에로티시즘의 환상을 한 방에 날려버린다. 오히려 당대의 남성 작가들은 외설에 눈을 돌려 현대문학의 감상적 요소를 탈피하거나 현대문학을 다시 에로틱하게 만들려 하던 시점이었는데 말이다. - P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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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올해 4월 헌법재판소는 의미심장한(?) 결정을 내렸다. ‘강제적 게임셧다운제가 합헌이라는 판결이었다. 일명 ‘신데렐라법‘이라 불리기도 하는이 법은 "인터넷게임의 제공자는 16세 미만의 청소년에게 오전 0시부터오전 6시까지 인터넷게임을 제공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 P5

우리의 국가 기구는 대중의 게임포비아(game-phobia)에 기대어자신들의 정치 생명을 늘리려고 하는지도 모른다. 사실 그들도 안다. 생각보다 게임이라는 것이 유해하지 않다는 것을. 이는 각 부처마다 내놓는 정책을 봐도 알 수 있다.  - P5

 이는 이번 헌재의 판결에서도 엿볼 수 있다. "인터넷게임 자체는 유해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높은 인터넷게임 이용률 및 중독성 강한 인터넷게임의 특징 때문에게임은 죄인이라는 입장을 내놓았다. 물론 게임이 왜, 그리고 어떤 점에서 중독적인지 그 어떤 기관도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입장을 내놓은 바는 없다. - P6

물론 게임에 중독적 요소가 있고 거기에 중독되는 사람도 있음을 우리는 안다. 일찍이 영화와 TV, 만화 등도 중독의 대상으로 비판을 받은바 있다. 하지만 문화에서 ‘중독‘은 ‘몰입‘의 다른 이름이고, 둘의 차이와 경계는 미미한 것일 수 있다. 소설에 중독된 경험이 없었다면 위대한작가는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 P6

책의 번역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이른바 ‘게임악법‘을 장황하게 펼쳐놓는 것을 독자들이 양해해 주길 바랄 뿐이다. 그만큼 이러한 법안들이 국내의 게임 생태계에 몰고 올 파장이 심각하기 때문이다. 아니 이미 위기는 시작되었다. 이는 국내 게임 산업의 위축과 중국 창조산업의급부상에서도 확인된다. - P7

사실 국내의 일천한 게임 인식과 담론의 확장과 재생산에는 게임생태계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있는 사람들의 책임 역시 크다. 정치인과 관료, 법조인이나 언론인에게 게임공포증의 담론을 사회적으로 유통하게 방조하거나 관망한 것 역시 이른바 ‘우리‘이기 때문이다. - P8

온갖 게임 법안들이 가져놀 파장에 전전긍긍하면서도 그들은 게임 연구자들이나 이용자들보다 더 자세를 낮춘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과거 영화나 텔레비전에 대한 규제의 움직임에 가장 적극적으로 대처했던 것이 관련 업계였음을 감안하면 놀라운 측면이 있다. - P9

하지만 게임에 대한 전방위적 공세는 ‘문화연대‘라는 한 조직의 백병전으로는 버텨낼 수 없다. 땀으로 쓰인 그들의 성명서나 보고서는 값진 내용을 담고 있다(문화연대의 홈페이지에서 다운받을 수 있다). - P9

윤리적 게임 경험의 조건, 즉 윤리적 게임 플레이와 디자인의 잠재성 연구에 복잡한 철학 이론이 사용되고 있지만, 시카트의 주장은 간단하다.
예술 형식이자 오락 형식인 게임이야말로 윤리적 경험을 위한 유익한대화의 촉매가 될 수 있고, 그래야 한다는 것이다.
시카트의 말처럼 이 책은 다소 난해하다. - P10

사건과 진리, 충실성과 윤리 같은 바디우의 개념들은 ‘정치적인것(the political)‘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지만 시카트는 애써 그것을감추려고 하는 것 같아 조금은 아쉬웠다. 행위의 이론가(the theorist ofthe Act) 바디우에게 사건은 지금의 현실을 중단시키고 새로운 정치적좌표를 마련하려는 실천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나 (미디어) 현상학, 정보윤리학의 전공자들이 보기에 이러한 불만과 아쉬움이 끝이 없을 것이다.  - P10

 게임 연구와 인문학적 사유를 접속하려는 시도가 그만큼 소중한 시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시카트의 방점은 인문학과 윤리학의 성과를 경유하여 컴퓨터게임의 윤리를 재구성하는 것에 찍힌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이후의 작업들을 위한 단초로서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중략)

2014년 9월 20일 진주에서
김겸섭
- P11

01 서론

<데이어스 엑스(Deus Ex)>¹는 호평을 받은 1인칭 슈터 · 롤플레잉 컴퓨터게임이다. 이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사이버네틱 슈퍼솔저(supersoldier)로서 어떤 디스토피아 세계를 탐색한다. 플레이어 캐릭터(JC Denton)는 국제연합 반테러동맹군 최고의 전투 도구로서 역할을 수행한다. - P1

처음 <데이어스 엑스>를 플레이했을 때 나는 무자비한 폭력을 사용하여 모든 타깃을 제거하는 무모한 암살자로 행동했다. 내가 맞서 싸우는 테러리스트들은 결점이 많고 무장도 제대로 안 되어 있으며, (중략). 테러리스트들이 이야기한 내용은 나의 상급자들에게서 얻은 정보를 반박하고 있었다. 누가 옳았는가? 국제연합 반테러동맹군은 어떤 유형의 무장 세력인가? 테러리스트로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테러리스트로 ‘불리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 P2

<데이어스 엑스>는 매력적이면서 디스토피아적인 윤리 게임이다.
왜냐하면 처음부터 플레이어는 자기에게 맡겨진 임무들의 목표와 목적을 의심하기 때문이다. NSF 멤버들의 대화 엿듣기는 이 게임에서 모든것이 선 대 악으로 이해돼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해 준다. - P2

이 책에 담긴 생각들은 내가 <데이어스 엑스>를 플레이하는 동안 생겨난 것들이다. 나는 이 주제에 대한 사유에서 시작했다. 왜냐하면 처음으로 어떤 게임이 나에게 게임 메커니즘과 게임 세계 디자인을 통해내 행위의 의미를 숙고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 P3

그 이후 나는 컴퓨터게임의 윤리가 무엇인지, 그리고 <데이어스 엑스>에 대한 나의 경험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를 이해하려고 애써왔다. 나의 의도는 그러한 윤리적 게임 경험이 일어나는 조건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러한 조건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를 밝히는 것이었다. - P3

도덕성의 급소

컴퓨터게임은 지난 20년의 상당 부분 동안 매스미디어의 표적이 되어왔다. 게임이 심각한 사회 문제와 결부된 10대 연쇄살인범의 훈련 장치라는 고발은 게임을 도덕적 패닉 상태를 초래하는 일반적 용의자로 만들었다. 미디어의 흔한 주장 중 하나는 게임이 폭력적 행동과 폭력에 대한 둔감화를 초래한다는 주장이다. - P4

이러한 도덕적 패닉은 보다 광범위한 문화적 이슈의 어떤 징후다.
탈산업사회에서 우리는 컴퓨터게임을 오락과 창조 및 사회화를 위한 가치 있는 미디어로 이해하고 장려한다. - P4

이 책은 컴퓨터게임 윤리에 대한 탐색이다. 윤리는 도덕적 가치의 체계 혹은 집합, 그리고 이러한 가치의 분석 도구로 정의된다. 도덕은 행위나 대상들의 옳음 혹은 그름으로 정의될 수 있을 것이다. 윤리의 적용은 선, 악, 해로움, 의무, 가치 같은 문제들에 관한 이성적이고 철학적인 접근법이다. 그렇다면 이 책은 컴퓨터게임과 컴퓨터게임 플레이어들의 도덕적 본성에 대한 탐색이다.
이 책에서 나는 컴퓨터게임이 윤리적 대상이라는 것, 컴퓨터게임 플레이어들이 윤리적 행위자(agents)라는 것, 컴퓨터게임의 윤리가 책임과 도덕적 의무의 복잡계 네트워크(complex network)라는 것을 주장한다. - P5

나는 몇몇 나라들에서추방되기도 한 <맨헌트(Manhunt)>²가 성숙한 플레이어들에 의해 플레이된다면 풍요로운 윤리적 경험일 수 있음을 주장할 것이다. 반면 자칭플레이어들에게 도덕적 선택을 취하도록 허용한다고 하기도 하고 그렇게 플레이되기도 하는 <구 공화국의 기사단(Knights of the OldRepublic)>³과 같은 게임도 비윤리적인 게임 디자인의 사례일 수 있다. - P6

이 책에서 나는 컴퓨터게임의 윤리를 이해하기 위한 프레임(framework), 즉 게임을 디자인된 대상이자 플레이어 경험 둘 다로 정의하려는 프레임을 제안한다. 나는 철학과 게임 연구에서 빌려온 접근법을 제공할 것이다. 그리고 도덕적 대상으로서의 컴퓨터게임과 윤리적 주체로서의 플레이어에 대한 형식적 이해에 기초한 프레임을 제시할것이다. 컴퓨터게임은 윤리적 주체에 의한 도덕적 대상의 경험이다. - P6

 컴퓨터게임의 비윤리적 콘텐츠로부터 게임이 유발한 윤리적 이슈들에 대한 게임 디자이너의 책임까지 여러 이슈를 논의할 수 있는 도구 말이다.
학문적 관점에서 나의 연구는 컴퓨터게임 연구(Computer gamestudies)라 불릴 수 있는 신생 분과에 속한다.⁴ 그것은 또한 컴퓨터게임 플레이의 도덕적 본성에 대한 철학적 탐색이기도 하다. - P7

있을수 있는 이 모든 비판들에 대해 나는 그저 그들이 옳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책은 철학책이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컴퓨터게임이 제기하는 몇몇 흥미로운 이슈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언어와 윤리 철학의 관점 속에 끼워 놓은 이슈들 말이다. - P8

이 책은 도덕적 책임성을 갖는다. 이 책은 컴퓨터게임의 윤리를 이해하기 위한 기초를 소개한다. 첫 세장들을 구성하는 이론의 대부분은그러한 도덕적 의무에 대응한다. 논거들은 견실해야 하고, 토론이 이루어질 수 있을 만큼 설명이 튼실한 이론에 기반을 두어야하는 것이다. - P9

이 책의 마지막즈음에 가면 독자는 왜 우리가 윤리적 플레이어인지,
또한 컴퓨터게임의 가상 세계에서 우리가 행동할 때 우리는 어떤 태도를 보이는지를 이해했을 것이다. 이 책은 규칙들과 전략 및 게임 디자인의 윤리를 찾아가는 여행기다. 그리고 이 책은 게임을 플레이할 때 우리가 누구인지에 대한 반성이기도 하다. - P9

목적과 목표

이 책은 하나의 목적이 있다. 컴퓨터게임의 윤리를 이해하는 것 말이다.
나는 이러한 이슈에 어울리는 대답을 제공하는 것, 컴퓨터게임에서의 윤리 탐구와 분석 및 적용을 위한 프레임을 제공하는 것에 집중할 것이다. - P10

나의 주된 목적이 컴퓨터게임의 윤리를 이해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이들 게임에서 발견하는 윤리적 담화가 어떤 종류의 것인지, 어떤 방식들로 혹은 어디에서 그러한 담화들을 찾을지, 어떤 이론들이 적용될 수 있는지를 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P10

선례들

어떤 연구도 전적으로 독창적이지 않다. 학자로서 우리는 전통의 일부다. 그러니 그러한 전통을 인정하고 그것에 기여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철학적 관점에서 쓰인 컴퓨터게임의 윤리 연구가 많은 선례들을 갖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기에서 내 작업이 속해 있는 전통의 일부라고 생각하는 것에다가 또 내 자신의 접근법과 친화성을 갖는 몇몇다른 텍스트들을 소개하고 싶다.
이 책은 학제간 접근법을 취한다. - P11

이 책의 주요 주장들에 의미가 있는 첫 번째 선례는 프로벤조(Eugene F. Provenzo)의 『비디오 키즈: 닌텐도 이해하기(Video Kids:Making Sense of Nintendo)』⁵다. 이 작업에서 프로벤조는 닌텐도 문화안에 시뮬레이트된 폭력과 젠더 묘사 관련 이슈들에 집중하면서 닌텐도제작 컴퓨터게임과 문화적 장치로서 그 게임이 갖는 효과를 기술한다. - P12

 문화적 대상들로서 컴퓨터게임은 무엇인가? 우리가 컴퓨터게임을 플레이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비디오게임은 우리의 도덕적 영역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답을 내놓기 위한 프로벤조의 프레임은 꽤 다양해서 심리학부터 문화연구(culturalstudies)와 이데(Don Ihde)의 후기현상학(postphenomenology)에 이른다.⁶ 이는 그의 결론들에 튼튼한 토대를 제공한다. - P12

프로벤조는 어린이 플레이어들을 창조적 능력들을 갖춘 존재로 보는 암묵적인 담론을 개진한다. 이러한 능력들은 어린이 플레이어들의 도덕적 영역도 포함한다고 한다. (중략). 게임 경험에서도 플레이어들 고유의 가치가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⁷ - P13

 게임이 플레이어에게 통제와 변형의 가능성을 제공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면서, 따라서 플레이어가 아무 생각 없이 게임의 명령을 따르고 복종한다고 보는 점에서 그는 기술결정론자인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것은 도덕적 능력을 박탈당한 플레이어에 대한-바로 어린이 플레이어에 관한 견해다. - P13

프로벤조는 컴퓨터게임 플레이어들을 무비판적 피조물로 그리고있다. 바로 게임 그 자체는 제한된 선택지들만 제공하기에, 플레이어들은 이성적으로 해명하고 도덕적으로 사유하는 자신들의 능력을 내주고만다는 식으로 말이다. 나는 게임을 플레이하는 방법을 배움으로써뿐만 아니라 게임을 윤리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도구들을 제공하는 컴퓨터게임 윤리와 가치에 대한 감각을 발전시켜 나감으로써 우리가 플레이어가 되는 것이라는 반론을 펼 것이다. 아이들의 경우에서조차도 게임을 플레이할 때 도덕적으로 판단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 P14

윤리 분야와 컴퓨터게임 내에서 참조할 수 있는 또 다른 작업은 셰리터클(Sherry Turkle)의 제2의 자아 컴퓨터와 인간 정신(The SecondSelf: Computers and Human Spirit)』다.⁸ 여기서 터클은 우리의 사회적·심리적 삶의 일부로서 컴퓨터가 지닌 면모를 탐색한다. - P14

터클의 작업은 본질적으로 자아의 레토릭(rhetoric)에 컴퓨터가 미치는 영향에 대한 심리학적 탐색이다. 그래서 그의 결론들은 나의 것과분명 다르다. 이런 경우 철학과 심리학 간의 방법론적 상이함은 너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클의 작업이 하나의 선례로 간주될 수 있는 근본적 이유가 있다. 제2의 자아라는 바로 그 개념 말이다. - P15

컴퓨터게임은 그러한 문화의 빼어난 예들이다. 컴퓨터게임은 기계적 제약들을 크게 벗어난다. 그래서 게임의 표현능력은 견줄 만한 것이 없을 정도다. 하지만 프로벤조와 유사한 결론 방향을 취하면서, 터클은 그러한 모든 능력을 행하는 것이 플레이어들 자신의 자아형성과 표현 능력 면에서 플레이어들(다시 아이들이다. 성인플레이어들이 아니다)을 제한하는 것임을 강조한다.⁹ - P15

 터클에 따르면 컴퓨터게임이 하는 것은 우리의 자아를 다시 중심에 놓는 일(re-center)이다.¹⁰ 하지만 그것은 게임 경험과 접촉하는 제2의 자아다. 그녀는 또한 권한을 지닌 유저들의 존재를 강조한다.¹¹ 이는 플레이어들이 그저 규칙들을 따르고 복종하는 생각 없는 좀비들이 아님을 의미한다. - P15

 내 생각으로 터클의 작업에는 제2의 자아와 플레이 행위에 초점을 맞추는 과정 사이에 어떤 혼란이 존재한다. 그것은 제2의 자아의 본성을 숙고하는 작업이 지닐 수도 있는 윤리적 함의들을 약화시킨다.
이러한 차이의 핵심은 ‘제2의 자아‘라는 표현에서 발견될 수 있다.
‘제2(second)‘라는 말은 하위이고 그 위에 선행하는 ‘제1(first)‘이 있다는것을 함축한다. 터클의 작업에서 그 ‘제1의 존재는 다소 불명료하다. 하지만 그것은 제2의 자아가 갖는 윤리적 자율성을 약화시킨다. - P16

컴퓨터게임의 윤리에 관해 가장 많이 인용되는글은 아마 레이놀드(Ren Reynold)의 "좋은 게임 플레이하기 게임의 도덕성 이해를 위한철학적 접근(Playing a ‘Good‘ Game: A Philosophical Approach toUnderstanding the Morality of Games)"일 것이다.¹² 거기서 저자는<그랜드 세트 오토IⅡ (Grand Theft Auto III)> (DMA Design/RockStarNorth 2001)의 분석을 위해 세 개의 상이한 이론들, 즉 결과주의(consequentialism)와 의무론(deontology) 및 덕 윤리(virtue ethics)를 적용한다. - P17

 레이놀드는 어떤 게임이 좋은지 나쁜지를 이해하는 방법을제한하면서, 덕 윤리가 게임의 도덕성 이해를 위한 적합한 프레임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나는 덕(virtue) 이론이 21세기 컴퓨터게임의 분석을 위해 가장 적절한 이론이라고 생각한다."¹³ - P17

 플레이어는 그 세계에서 동일한 시스템에 따라 움직이며 보상을 받는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다. 우리는또한 그들 자신의 가치와 게임 경험을 통해 그들이 발전시키고자 하는가치를 반성하는 윤리적 행위자인 플레이어에 대해 생각해야한다. 스포츠 전통의 철학이 이미 주장해 왔던 것처럼 말이다.¹⁴ 이러한 관점 안에서만 어떤 게임이 좋은지 나쁜지를 말하는 것이 가능하다. - P18

다른 가치를 보여 주는 다른 선례들이 존재한다. 매코믹(MattMcCormick)의 "폭력적 비디오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이 나쁜 일인가?("Is It Wrong to Play Violent Video Games")"¹⁵는 폭력적 컴퓨터게임이 일으키는 도덕 관련 이슈를 소개한다. 이 논문은 그 이슈에 공리주의 의무론(deontology). 덕 윤리(virtue ethics)를 적용하면서, 덕 윤리가 컴퓨터게임에 의해 발생된 도덕적 문제의 이해에 보다 깊은 통찰을 제공하는 이론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 P18

매코믹은 어떤 특정한 게임을 지목하기보다는 보다 일반적 관점에서 비디오게임에 대해 기술한다. 이는 문제점으로 생각될 수 있다. 왜냐하면 모든 컴퓨터게임이 유사하지 않고, 장르와 유형의 차이점이 윤리적 함의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 P18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코믹의 설명은 폭력적 컴퓨터게임의 플레이에 있을 수 있는 윤리적 함의에 대한 미묘하고도 세심한 분석이다. 그의논문은 이들 게임의 플레이 행위에 공리주의를 적용하며 논문 제목의 질문에 대답함으로써 시작한다. 놀랍게도 결과는 최종적인 것이 아니다.¹⁶ - P19

 그런데 다시 "컴퓨터상에서든 럭비장에서든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은 현실의 삶과 동일하지 않다"¹⁷는 사실은 컴퓨터게임 플레이에 대한 칸트식의 비평을 포기한다. 왜냐하면 "만일 자신의 의무를 행하고자 하는 어떤 사람의 성향에 게임이 미치는 해로운 효과들에 우리가 너무 민감하게 반응하면,
폭력적 비디오게임이 수반하는 광범위한 활동들을 비난하도록 우리는 강요받을 것이기 때문이다."¹⁸ - P19

컴퓨터게임이 도덕 의식을 높인다는 것은 진실이다. 하지만 그것이 반드시 도덕적 관심사들이 옳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이 매코믹의 논의에 들어있는 근본적 결점이다.
저자의 주장에 따르면, 덕 윤리는 컴퓨터게임의 플레이를 비윤리적행위로 규정할 것이다. 왜냐하면 "과도한 제 멋대로의 부당한 행위의 시뮬레이션에 참여함으로써 우리는 잘못된 타입의 성격을 키우기"¹⁹ 때문이다. - P19

매코믹의 주장은 충분한 논의를 보여주며 미묘한 뉘앙스를 지닌다. (중략).
≪국제정보윤리리뷰≫의 2005년 12월호²⁰는 ‘e-game‘의 윤리에 전적으로 지면을 할애했다. 그 간행물에서 두 편의 글이 게임과 윤리 사이의 관계를 생산적 방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 P20

콘셀보의 글은 컴퓨터게임의 윤리에 대한 체계적(layered) 이해를 제시하는데,²¹ 이는 5장에서 다룰 나의 몇몇 결론들과 다소 유사한 점이 있다. - P20

이 저자들은 "우리가 플레이하는 방식들은 문명마다 다르다. [...]그 방식은 우리의 문화적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²²는 것을 인정한다. (중략). 이러한 주장은 컴퓨터게임이 무엇인지에 대한 나의 분석에서 되풀이 될 것이기도 하다.
도덕-크른코빅과 라르손의 글은 게임 디자이너들의 윤리적 책임성,
그리고 디자이너들이 어떻게 "윤리적 고려들을 참작하지 않을 그들의권리를 옹호하기 위해 종종 언론의 자유(free-speech)의 법률에 의존하는지"²³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것은 설득력이 있고 영리한 비평이다.
그리고 저자들은 철학적 관점에서 강력한 사례를 구성하는 데 성공하고있다. - P21

01 서론

1 Ion Storm Inc. 2000.
2 Rockstar North 2003.
3 Bioware 2003.
4 게임 연구분야에 대한 설명으로는 올셋(Aarseth) 2001과 에스켈리넨(Eskelinen)2001을 볼 것
5 Provenzo 1991.
6 Ihde 1990,
7 "<나쁜 녀석들(Bad Dudes)>, <로보캅> 혹은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2> 같은게임에서 상징적 놀이 과정의 부분으로서 아이가 도덕적 정체성들을 실험할 수있고 환상들과 공격적 행동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비판적 요소가 실종되었다. 그것은 스스로를 위해 플레이의 조건을 규정하고 동제할 수 있는 아이의 능력인데도 말이다. 비디오게임의 콘텍스트 속에 명시되어 있는 선의 세력과 악의 세력 사이의 갈등은 협소하고 제한적이다. 그리고 심지어 아이에게 더욱 중요한 것, 그것이 아이 대신에 게임 개발자와 제조사에 의해 규정되고 있다."(Provenzo 1991, p.90)
8 Turkle 1984.
9 Ibid., p. 81.
10 Ibid, p. 84,
11 "사람들이 인터랙티브 미디어의 미래를 창안하려고 노력하는 서클들에는 큰차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미래 게임의 플레이어는 오늘날 게임이 제공한 세계보다 더 복잡한 세계. 하지만 누군가 다른 사람이 창조한 세계에 있고 싶을까? 아니면 그 플레이어는 자기 자신의 게임의 디자이너이길 원할까? 다른 말로 플레이어들은 계속해서 누군가 다른 사람이 만든 프로그램의 ‘유저들‘로 있고 싶을까, 아니면 그들 자신의 권리를 갖는 프로그래머이길 원할까? 그들은 새로운 캐릭터들을 창조하고 게임 규칙을 변경할 수 있기를 바랄까? 두 전략 다추구되고 있고, 틀림없이 결실을 맺을 것이다. 누군가는 인터랙티브한 <바람과함께 사라지다>의 이미지, 팅커토이들(Tinkertoys)이 달린 관람차(Ferris•wheel)를 설계하는 오늘날의 아이들과 같은 컴퓨터 세계들을 건설하는 아이들과 다른 이미지를 만들 것이다."(Ibid., p. 77)
12 Reynolds 2002.
13 "나는 어떤 특별한 게임이 비윤리적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결정하게 될 방법들을 스케치하고 싶다."(Reynolds 2002)
14 예를 들면 Feezell 2004를 보라.
15 McCormick 2001.
16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을 도덕적으로 비판할 수 있는 실체적인 근거들을 가질 수 있거나 가지려고 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들은 두 가지 실체적인 장애물에 직면한다. 우선, 공리주의자는 폭력적인 비디오게임이 위험을 증가시키는 활동이라는 것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 [...] 둘째 […] 그들은 또한 전체적으로 증가한 해를 끼칠 가능성이 그 활동에서 나온 이익보다 크다는것을 입증할 필요가 있다."(McCormick 2001. p. 281)
17 Ibid., p. 283,
18_Tbid., p. 284.
19 Ibid., p. 285.
20 http://www.i-r-i-e.net/issue4.htm (검색일 2008년 3월 14일)
21 게임 개발자들, 게임 퍼블리셔들, 판매자들, 게임 플레이어들이 만들고 제공한행위와 선택, 그리고 게임 자체에 코드화된 선택들 모두가 조사의 대상이 될 수있다." (Consalvo 2005, p. 9)
22 Dodig-Crnkovic and Larsson 2005, p. 20.
23 Ibid... P.22 - P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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