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럴 암스트롱이 주장하듯, 《무제》에는 가면을 쓴 얼굴들과 가면인 얼굴들로 가득하다. 그중 많은 사진이 핼러윈축제 중에 찍혔는데, 어른의 커다란 육체와 어린아이 같은 의상 사이의 대조가 그 자체로 사진의 기괴함의 일부를 이룬다. - P332
마지막 작업에서 모델에 대한 의식이 사라지는 것은관객에 대한 작인이 없어지는 것과 서로 상관된다. 형식상으로 볼 때, 이 사진들의 대상들은 좀처럼 중앙에 자리하지 않는다. 그들은 프레임 밖에서 들어오고, 카메라와 비스듬하게서고, 거꾸로 앉고, 텅 빈 시선으로 바라본다. 카메라를 바라보는 일은 훨씬 더 드물고, 설령 그럴 때조차 그 시선의 의미는 알 수가 없다. - P332
《사진에 관하여》 끝부분에 실린 잡다한 인용문 중 손택이 아버스에게서 가져온 인용은 다음과 같다. "그저 궁금해서라면, 다른 사람에게 이런 말은 정말 하기 힘들다. ‘당신집에 가서 당신한테 당신 인생 이야기를 듣고 싶어요‘ 사람들이 ‘당신 미쳤군‘이라고 할 테니까. 게다가 경계심도 한껏 곤두세울 것이다. 하지만 카메라는 일종의 허가증이다. - P333
아버스가 이 사진들을 찍은 시기는 정신장애자와 신체장애자들을 위한 운동으로 새로운 이미지들이 쏟아져 나오기 전인 1970년대 초반이었다.²¹ 나는 아버스가 찍은 사진의 대상들이 고통스러워했다거나 그들에게 자의식이 결여되었다고 믿지 않으며 아버스가 그렇게 믿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21 페이 긴즈버그는 정신장애자들이 공공장소에 모습을 보이는 것이 지난30년 동안 어떻게 변화했는지 설명했다. Faye Ginsburg, "Enabling Dis-ability: Renarrating Kinship, Reimaging Citizenshipm", Public Culture 13, no3 (Fall 2001), 533-556쪽. - P334
아버스는 "관심을 주는" 문제를 놓고 우리를 흥미로운 입장에 밀어넣는데, 이 문제는 정신지체아, 아니 사실 명백한 장애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빤히 바라봐서는" 안 된다는 금기 때문에 더 복잡해진다. 예의("반히 보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라는 말로 늘 표현되고 있지만, 빤히 보는 것을 금기시하는 것은 동시에 관심을 거둬들이는일이기도 하다.²²
22힐튼 알스는 1995년 11월 27일자 <뉴요커 New Yorker>지에 쓴 리뷰 <가면 벗기 Unmasked>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이 사진들 몇몇에는 또한사진가에 대한 크나큰 사랑과 신뢰가 담겨 있다. 악명 높은 다이앤 아버스가 자신들을 기념해주고 있다는 것에 특별히 흥미가 있어서가 아니라-그 순간만큼은- 아버스가 관심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 P334
그렇다면 이 사진들은 관객들에게 봐달라는 것 외에는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것 같다. 제어되지 않는 얼굴과 볼품없고 어색한 몸, 어울리지 않는 자기표현, 고삐 풀린 감정, 텅 빈 시선들과 마주한 관객은 바라볼 수는 있지만 개입하거나 정상화할 수 없다. - P335
작인의 부재와 실패에 주목할 때 이 한계의 경험은 평범한 사건으로 개조된다. 끊임없이 완전성을 장려하고 이상화하는 문화 속에서 결함 있는 작인은 견딜 수 없는 일, 더 나아가 개인적인 일이될 수도 있다. 마치 각 개인이 작인의 실패를 몰래 감춘 채 홀로 숙명의 희생자라도 되는 것처럼 말이다. - P336
작인이라는 장엄한 관념은 자아와세계를 만들어나가는 작지만 의미 있는 행위를 향한 충동을심지어 짓눌러 없애버릴 수도 있다. 자연은 장난이 아니라는것을 아버스에게 가르쳐준 스토메 데라르베리는 1969년 스톤월 인²³에서 가장 먼저 주먹을 날렸다고 한다.
23 1969년 뉴욕에서 동성애자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벌어졌던 스톤월 항쟁 Stonewall Uprising의 도화선이 된 사건이 경찰들이 동성애자들이 주로모이던 그리니치 빌리지의 술집 스톤월 인Stonewall Inn 을 급습하면서 벌어진 갈등이었다. (옮긴이) - P336
역자 해설
‘터프한‘ 여자들의 차가운 지성과 뜨거운 휴머니즘
우리가 무심코쓰는 상용구들에 언어가 추상적인 감정을 체감하기 쉬운 온도로 바꾸어 재현하는 사례들이 적지 않다. 한자로도 냉정靜, 열정, 온화라고 쓰고 영어로도 "icy cold"라는 말은 냉정하다 못해 비정하다는 뜻이며 "warm-hearted" 라는말은 친절하고 다정하다는 의미로 통용되니 감정의 온도라는 유비는 상당히 보편적인 관습으로 보인다. - P413
(전략). 그리고 이 책에서 다루는 현대의 선도적인 여성 지식인, 철학자, 예술가들이 모두 "무자비하고 "얼음처럼 차고" "임상적"이며 "싸늘하고" "몰개성적"이라는 극렬한 비난에 시달렸다는 데 주목한다. 비난의 이면에서는 물론 여성에게 기대하는 감정의 온도를 위반한 일탈자들에 대한 남성 중심적 사회의 규제가 작동하고 있었다. - P414
하지만 이들의 혹독하리만치 냉철한 현실 인식은 수난자에대한 비정한 무관심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수난이나 천형을 당연시하고 받아들이는 둔감한 체념과도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이 책에서 다루는 터프한 지성인들의 공통점은, 누구보다 ‘차가운‘ 현실 인식을 견지하되 사회적 불의나 정치의 실패로 부당하게 수난받는 약자들을 구제하고 개혁을 선도하려는 의지만큼은 ‘뜨겁다‘는 데 있다. - P415
. 인간의 상상력을 뛰어넘고 인간성을 회의하게 만든 규모의 세계적 위기에 대처하려면, 감정에 휘둘려 판단력을 잃지 않고 가혹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금욕적인 지성주의에서 출발해야만 한다. 정치적 당파성에서 감상적 도덕주의까지 비판적 판단력을 흐리는 모든 감정적 압력에 저항해 인식의 정확성을 지켜야만 한다. - P416
마지막으로, 윤리적·예술적·정치적 전략으로서의 "비정"은 불패 불변의 절대적 가치가 아니고, 아니어야만 한다. 책의 결론을 장식하는 조앤 디디온의 변화는 그런 점에서 의미 있다. 수난의 트라우마에 감정적으로 얽혀 허우적거리는 사람들을 비판하며 "도덕적 터프함"을 주장했던 디디온은 나이가 들며 자기가 견지해온 입장이 가혹하고 비현실적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 P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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