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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 - 정현채 서울대 의대 교수가 말하는 홀가분한 죽음, 그리고 그 이후
정현채 지음 / 비아북 / 201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삶의 내용에는 건강과 즐거움만이 아니라 질병과 슬픔과 늙음과 죽음도 있다. 질병을 통해 건강의 소중함을 알게 되고, 죽음을 통해 삶의 귀함을 깨닫게 되는 게 우리네 삶의 본질이다."
이것이 인생이다. 모두가 아픔과 슬픔 없이 영원히 이 땅에서 장수하기를 원하지만 그럴 수 없다. 인간은 태어나면 반드시 죽는다. 이것이 자연의 섭리이고 현실이다. 저자는 '죽음학 전도사'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다양한 계층을 상대로 죽음에 대한 강의를 했다. 10여 년에 걸친 죽음학 강의를 보완하여 풀어쓴 것이 바로 <우리는 왜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 없는가>이다.
먼저 현대의학의 발달로 죽음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바뀌었음을 언급한다. 수십 년 전만 해도 할아버지, 할머니의 죽음을 아이들을 포함한 온 가족이 함께 지켜보았다. 그러나 지금은 중환자실에서 외롭게 시간을 보내고 죽는 경우가 많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의료진도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삶을 마무리하고 정리하는 중요한 단계가 아니라 의료의 패배나 실패로 보는 경향이 짙어지게 되었다.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고통만을 주게 되는 무의미한 연명치료에 환자나 환자 가족, 의료진이 매달리게 되는 것도 이러한 가치관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심폐소생술과 인공호흡기, 그리고 중환자실 치료를 받은 말기 암 환자들이 그런 치료를 전혀 받지 않은 환자들에 비해 마지막 일주일간 삶의 질이 훨씬 나빴다고 한다. 또 그런 환자를 돌봤던 사람들도 환자가 사망한 후 심각한 우울증을 겪을 확률이 3배나 높았다고 한다."
죽음이 다가오면 체중 감소, 식욕감퇴, 발작, 근육경련 등의 현상이 나타난다. 병원에서는 이런 환자들을 가만두지 않는다. 주사를 투여하고 MRI 같은 정밀검사를 하는 것이다. 노쇠와 질병을 구분하여 의료 개입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의학이 진보하면서 인간의 죽음까지도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으로 인하여 이러한 구분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심폐소생술은 물에 빠졌다가 구출된 후 숨을 쉬지 않거나 교통사고로 인한 치명상으로 심장이 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대단히 중요한 응급처치법이다. 그러나 말기 암 환자의 심장 박동이 멈췄다고 하여 소생술을 하는 것은 오히려 편안한 죽음을 방해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죽음을 터부시하거나 회피하지 말고 죽음에 관한 진지한 성찰과 공부가 필요하다고 저자는 힘주어 말한다. 단적으로 죽음학의 효시로 알려지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박사는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고 그저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이 있을 뿐이라고 이야기하며 죽음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저자는 근사체험을 인정하며 여러 사례를 책에서 소개한다. 근사체험이란 자신의 몸을 빠져나와 자신의 육체를 바라보는 것 등이다. 즉, 체외이탈이 근사체험의 대표적 사례이다. 랜싯에 실린 근사체험에 대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근사체험은 다음과 같은 열 가지 요소가 있다고 한다.
- 자신이 죽었다는 인식
- 긍정적인 감정
- 체외이탈 경험
- 터널을 통과함
- 밝은 빛과의 교신
- 색깔을 관찰
- 천상의 풍경을 관찰
- 세상을 떠난 가족, 친지와 만남
- 자신의 생을 회고
-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인지
근사체험을 경험한 이들은 무경험자에 비해 공감과 이해 수준이 높아졌다고 덧붙인다. 그뿐만 아니라 인생의 목적을 더 잘 이해하며 영적인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또한, 사후생에 대한 믿음과 일상사에 대한 감사의 마음이 크게 증가했다. 이처럼 근사체험은 삶에 긍정적은 영향을 미친다.
체외이탈의 사례는 전 세계적으로 많고 공통점도 발견된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증명하기는 매우 어렵다. 저자는 이에 대하여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거나 거짓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이야기한다. 저자도 15년 전만 해도 근사체험에 대해 관심도 없었고 신뢰하지도 않았지만 이후 수많은 객관적인 관찰과 연구 결과를 접하며 삶과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고백한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관점은 남은 삶을 더 값지게 살아내며 다른 사람에게도 좋은 영향을 미친다. 의료진도 이런 근사체험에 대한 이해가 있으면 환자와 가족을 위축시키지 않고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다.
"우리는 여전히 근사체험이 '환각이나 착각이 아닐까' 혹은 '과학적으로 증명이 가능할까'등의 질문을 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러는 사이에 선진국에서는 근사체험을 활용해 대중의 영성을 진작시키기 위한 운동을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다."
저자는 근사체험과 종말체험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관찰된다고 말하며 이는 죽음이 소멸이 아니라 옮겨감이라는 것을 시사한다고 설명한다.
철학자 키케로는 "지혜로운 사람에게는 삶 전체가 죽음에 대한 준비이다."라고 말했다. 언제 어디서 죽음을 마주칠지 아무도 알 수 없다. 평소에 죽음에 대해 성찰하고 준비하며 살아야 한다. 또한, 건강할 때 유언장과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라고 조언한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다른 세상으로 향하는 문이다. 죽음에로의 여행을 위한 사전 준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훌륭한 죽음의 주요 요소는 통증 완화와 조절, 명확한 의사 결정, 죽음 준비, 훌륭한 마무리(갈등해소, 인사), 다른 사람들에 대한 기여, 온전한 인간으로서의 존재감 등이라고 설명한다.
죽음을 생각하면 일상이 다르게 보인다. 저자는 말기 암 환자 일부는 특별한 안경을 갖고 사물의 참된 모습과 보다 깊은 가치를 들여다보게 된다고 말한다. 일반적으로 장례식장에 다녀오면 삶에 대하여 다시 생각하게 되고 그저 살아 있는 것만으로 감사한 마음이 절로 생긴다. 죽음을 생각하는 것은 일상을 새롭게 하고 풍요롭게 만드는 힘이 있다.
저자는 자살과 안락사로 구분한다. 자살은 충동적, 폭력적, 은둔 상태에서 독극물로 이루어지는 반면, 안락사는 온건하고 평온하며 가족이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안정제, 근육이완제 등 치료제로 이루어진다고 설명한다.
"필자가 주장하는 이야기의 핵심은 아주 간단하면서도 명료하다. 즉 죽음은 꽉 막힌 '벽' 같은 끝이 아니라 열린 '문'이며, '이생'에서 '다른 차원으로 옮겨 가는 것'이다. 따라서 문을 통과해서 도착하게 되는 사후세계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만 자살 예방에 대한 논의가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즉, 자살한다고 해서 고통스러운 문제가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너무 힘들고 지쳐서 자살로 모든 것을 끝내려고 하는데, 자살한다고 해서 그것이 해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저자는 이야기한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저자 강의를 듣고 자살에 대한 생각이 줄고 반성하게 되는 이들도 있다고 저자는 소개한다.
저자는 죽음을 준비하고 있다. 장기기증서약서,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유언장 등은 이미 작성해 놓았다. 영정사진도 준비했다. 아내와 사별에 대한 이야기도 자주 나눈다. 사전장례의향서도 준비 중이다. 수의는 면으로 된 옷을 입으려고 한다. 관도 종이로 만든 관을 사용하려고 한다. 조문객들을 위해 틀 음악을 선정하고 USB에 담아 놓는 일은 이미 4년 전부터 시작했다고 한다. 묘비명도 다음과 같이 적었다.
우리는 모두
무제한 여권을 가진 시간 여행자
힘들기도 했지만
보람과 즐거움이 함께했던
인생 수업을 마치고
본향으로 복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