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품격 - 삶은 성공이 아닌 성장의 이야기다, 빌 게이츠 선정 올해의 추천도서
데이비드 브룩스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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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랍비 조셉 솔로베이치크가 쓴 <고독한 신앙인>에 나오는 아담Ⅰ과 아담Ⅱ의 개념을 소개한다. 아담Ⅰ은 커리어를 추구하고 야망에 충실한 본성이다. 아담Ⅱ는 도덕적 자질을 구현하고 싶어 하고 내적 인격을 갖추고 선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아담Ⅱ는 희생, 섬김, 거룩, 감사, 박애, 사랑, 구원 등의 단어들과 가깝다 반면, 아담Ⅰ의 좌우명은 '성공'이라고 말한다. 아담Ⅰ은 경제학, 실용주의 논리를 따르고 아담Ⅱ도덕적 논리를 따른다. 이 시대는 아담Ⅰ을 중요하게 여기고 아담Ⅱ는 전혀 관심을 쏟지 않는다. 아담Ⅰ은 행복을 목표로 하지만 아담Ⅱ는 행복만으로 부족하다는 것을 안다. 저자는 이 책은 바로 아담Ⅱ에 관하 것이라고 밝힌다.

"이 책은 아담Ⅱ에 관한 것이다. 몇몇 인물들이 어떻게 해서 강인하고 굳건한 인격을 일굴 수 있었는지에 대한 책이며, 수 세기에 걸쳐 그들이 자신의 중심을 강철처럼 벼리고, 현명한 마음을 기르는 데 적용해 왔던 사고방식에 대한 책이다. 솔직히 말해서 나 자신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저자는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한다.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고 풍요로운 내적 삶을 영위하고 싶다. 더 나은 인격을 소유하고 싶다. 그러나 현대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상은 아담Ⅱ가 아니라 아담Ⅰ이다. 몇십 년 전만 해도 사회 분위기가 이렇지 않았다. 아담Ⅰ보다 아담Ⅱ가 대접을 받는 시대였는데 어느 순간 바뀐 것이다. 저자는 과거를 거슬러 올라가 아담Ⅱ를 추구하며 살았던 영웅들을 한 명씩 소개하며 자연스럽게 우리를 아담Ⅱ의 삶으로 초대한다.

'도덕적으로 살아라'라는지 '다른 사람을 사랑하며 섬기며 살아라' 등의 말보다 실제로 그렇게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내 삶이 변화되는데 훨씬 큰 영향을 준다. <인간의 품격>은 아우구스티누스, 아이젠하워, 도러시 데이 등의 삶을 소개하며 우리가 잊고 있었던 아담Ⅱ의 모습을 회복시키고자 한다.

"설교나 추상적인 규칙만으로는 아담Ⅱ의 풍부하고 입체적인 삶을 구현할 수 없다. 좋은 예만큼 설득력 있는 것은 없다. 마음으로 감명을 받았을 때 도덕적 향상이 이루어질 확률이 가장 높다."

겸손, 절제, 과목, 중용, 존중, 온화함의 덕목들을 갖추는 것이 인기가 없는 이 시대에 오히려 이러한 덕목을 갖추는 것이 좀 더 의미 있는 삶이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며 반기를 드는 것이다.

자기 계발서는 자존감을 높이고 나의 욕망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감을 가지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특별한 존재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저자는 이를 '빅 미'의 문화라고 부른다. 겸양의 문화에서 빅 미, 자기과잉의 시대로 넘어온 것이다.

"자신을 낮추라고 강조하는 문화에서 자신을 우주의 중심으로 보도록 권장하는 문화로 바뀐 것이다."

겸손에 대한 이야기는 이제 구닥다리가 되어 버렸다. 그러나 겸손은 여러 면에서 유용한데 먼저 내가 틀릴 수도 있고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겸손은 의사결정과 지적 발전에 큰 도움을 준다. 즉, 지적 겸손은 반성적 사고를 통한 약점 보완에 기여한다.

"진정으로 겸손한 사람들은 자신의 장점은 강화하고 단점은 물리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며, 취약한 부분을 강하게 단련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그들은 자신에게 내재된 결함을 정확히 파악하는 데서 시작한다. 우리의 기본적인 문제는 자기중심성에 있다."

자기중심성은 이기심, 우월감, 자만심, 탐욕, 자기기만 등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어서 조심해야 한다. 아담Ⅱ의 삶을 회복하는 것은 쉽지 않다. 가족, 종교, 전통 등 도움을 총동원해야 한다.

프랜시스 퍼킨스는 화재 건물에서 사람들이 뛰어내리는 것을 목격한 후 삶이 변화된다. 대의가 삶의 중심을 지배하기 시작한다. 이처럼 어떤 특정 사건을 계기로 삶이 바뀌기도 한다. 이후, 루스벨트는 퍼킨스에게 산업위원직을 제안하게 된다. 퍼킨스는 루스벨트에게 자신이 노동부 장관 자리를 수락하려면 실업 구제, 대규모 공공사업, 최저임금법, 아동 노동 철폐 등의 광범위한 사회보장정책을 약속해야 한다고 조건을 제시하게 된다. 루스벨트 대통령 재임 기간 내내 옆에 머문 고위 보좌관은 단 두 명이었는데 그 중 한 명이 퍼킨스였다. 저자는 파킨스는 자신의 삶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필연성이 느껴지는 부름, 소명에 응했을 뿐이라고 말한다.

"소명을 끌어안는 사람은 자기실현을 위한 지름길을 택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기꺼이 내려놓고, 자신을 잊고자 하고, 자신을 침잠시킴으로써 오히려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아를 성취할 수 있는 목표를 찾는다."

아이젠하워의 어머니는 아이젠하워가 아버지한테 매를 맞고 울고 있을 때 "자기 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라고 말한다. 아이젠하워는 이때가 인생의 중요한 순간 중 하나였다고 회고한다. 그는 어릴 때 마음을 다스리고 영혼을 정복하는 개념을 배웠다. 또한, 그의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자유를 허용하되, 자기억제 습관을 기르도록 했다. 내적인 충동을 불신하고 습관을 통하여 억제하는 것을 익혔다. 그래서 아이젠하워는 열정적이면서도 감정을 인위적으로 억제하는 사람이 되었고 더불어 충성스럽고 겸손한 태도를 가지게 되었다.

"인간은 좋은 요소와 나쁜 요소가 뒤섞인 원자재에서 출발하지만 그 본성을 깎고 다듬고 억제하고 틀에 맞춰 가며 성장시켜야 하고, 이를 공개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제어하는 게 더 좋다는 것이다."

또한 아이젠하워는 인간적으로 성숙해지며 중용의 미덕을 갖추게 된다. 중용은 단순히 두 가지 상반된 극단 사이의 중간 지점이 아니다. 중용은 갈등의 존재를 인지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중용의 미덕은 굳건한 믿음과 깊은 의혹을 갖춘 사람이다. 상반된 성향을 갖고 있으면서도 일관성 있는 삶을 살기 위하여 균형과 비율을 찾아가는 사람이다. 목적에 열정적이지만 적절한 방법에 대해서는 심사숙고하는 사람이다.

"중용의 미덕을 가진 사람은 상반된 시각을 이해하고, 각각의 시각이 지닌 장점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 한 걸음 뒤로 물러날 줄 아는 억제력을 가질 수 있기를 원한다. 그들은 정치란 전통적으로 갈등의 연속이라는 것을 이해한다. 평등과 성취, 중앙집권과 지방분권, 질서와 자유, 공동체와 개인주의 간의 끊임없는 갈등이 존재하는 문화인 것이다. 중용의 미덕을 지닌 사람은 그러한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그 상황이 요구하는 것에 부합하는 균형을 이룰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저자는 '죄'라는 개념도 회복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죄라는 것은 도덕과 연결되어 있다. 더불어 죄는 공동체가 공유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반면, 실수나 잘못은 개인적인 것이다. 죄를 인식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동정심을 느끼는 길이다. 또한 죄라는 개념이 필요한 까닭은 그것이 진실이기 때문이라고 덧붙인다. 죄 없이는 인격 수양 방법 전체가 무너진다. 왜냐하면 죄에 맞서서 싸우는 것으로 인격을 닦기 때문이다.

시련은 숭고한 것은 아니나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발전의 기회가 된다. 시련을 연대 안에서 자신의 고통을 바라볼 때 더 나은 사람이 된다. 저자는 그 예로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소아마비를 앓은 다음 더 심오하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사람이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시련을 통하여 한계를 파악하게 되고 제어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더 정확히 구분하게 된다. 시련은 감사하는 마음을 가르치기도 한다. 시련으로부터의 회복은 변화를 가져다준다.

"이렇게 해서 시련은 두려운 선물이 된다. 판에 박힌 의미의 행복이나 선물과는 완전히 다른 선물이다. 일상적인 선물이 즐거움을 안겨 준다면, 시련이라는 선물은 인격을 닦게 해 준다."

조지 캐틀렛 마셜은 버지니아 사관학교에서 훈련받으며 통제력, 공손함, 용기, 진지함 등을 몸에 익히게 된다. 이러한 자질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훈련으로 만들어진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더불어 이런 훈련을 통하여 행동과 감정을 분리할 수 있게 된다. 억제력과 규율은 마셜의 큰 자산이 된다. 마셜은 처음부터 눈에 띈 존재는 아니었다. 참모 생활만 길게 하며 후배들에게 추월 당했다. 그러나 그는 조직력과 행정력으로 명성을 날리기 시작한다. 제도와 조직을 중시하는 그는 넓은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사랑은 연약한 부분을 드러내고 자기제어에 대한 환상을 포기하게 만든다. 사랑은 자아를 세상의 중심에서 밀어낸다. 사랑은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한다. 사랑은 다른 사람과의 융합을 추구한다. 사랑을 하면 논리력보다 시적 욕구에 충실한 상태로 변한다. 아담Ⅰ이 아닌 아담Ⅱ가 작동하는 것이다. 사랑은 봉사하는 마음도 불러일으킨다.

내면을 향한 여정은 외부로 향하고 결국 신에 대한 자각으로 이어진다. 신을 자각하는 순간 겸양의 덕을 배우게 된다. 더불어 감사와 기쁨의 마음이 생겨난다. 사랑에 보답하고자 하는 마음은 강력한 동기가 된다. 돈, 명예, 권력에 대한 열망만큼이나 강력한 동기가 된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신을 믿는 사람은 자신이 삶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사람들이 신에게 의지하면 할수록 포부를 갖고 그것을 행동에 옮길 능력이 커진다는 데 있다. 의존이 수동성을 야기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능력과 성과를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개인의 느낌이 매우 중요하다. 자부심을 가지고 자기실현과 자존감을 강조한다. 내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고 성공하는 길이다. 다른 사람을 믿고 신뢰하는 것은 오히려 배신당할 가능성과 상처받을 확률만 높아지게 만든다고 가르친다. 저자는 이런 현실에 반기를 든다. 이제는 아담Ⅱ의 내적 세계와 도덕적 세계를 회복해서 아담Ⅰ과 아담Ⅱ 둘 사이의 균형을 되찾아야 한다. 나아가 나는 누구이며 내 본성은 무엇인지, 내가 갖추어야 할 덕목과 인격은 무엇인지 질문해야 한다.

저자는 이것을 '겸양의 규칙'이라고 말하며 마지막으로 정리한다. 우리는 행복이 아니라 성스러움을 위해 산다. 그러나 인간은 기본적으로 연약하고 결함이 많은 존재이다. 이기적이고 오만하고 내가 중심인 것처럼 생각한다. 짧은 욕망의 유혹에도 쉽게 무너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를 인식하고 부끄러워하며 극복할 수 있다. 이 때 가장 필요한 덕목이 바로 겸양이다. 반대로 오만은 모든 악의 중심이다. 우리는 죄와 맞서 싸우고 덕목을 키우기 위한 투쟁을 해야 한다. 이 투쟁 가운데서 인격이 길러진다. 자제력, 봉사, 우정, 정제된 즐거움, 사랑을 갖춘 사람이 된다. 이 투쟁은 혼자서는 안 된다. 신, 가족, 친구, 규칙, 제도, 모범 등을 통한 훈련이 필요하다. 그 끝에는 궁극적 평온과 감사와 기쁨이 가득한 삶이 기다리고 있다.

"어떻게 성공할 것인가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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