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가설 - 부모가 자녀의 성장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탐구
주디스 리치 해리스 지음, 최수근 옮김, 황상민 감수 / 이김 / 201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올해 읽은 책 TOP10에 오를 만큼 인상적이고 유익하고 충격적인 책이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내용은 간단하다. 자녀의 성장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은 부모도 아니고 유전도 아니고 바로 또래집단이라는 점이다. 물론, 저자의 주장이 정답이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녀양육과 관련하여 양대 산맥인 유전과 환경(본성과 양육)에 또 하나의 화두를 던졌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읽을 가치가 있다.  

놀라운 점은 저자가 이 책 초판을 60세에 냈다는 것이다. 특히 저자는 박사학위도 없는 상태였다. 책이 처음 나왔을 때 엄청난 비난이 쇄도했다.  

저자가 말하는 또래 집단은 단지 어울려 다니는 무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저자는 훨씬 넓은 의미로 또래집단을 사용한다. 아이가 자신과 동일시하는 사회 범주는 다 또래집단이 되고 아이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자기를 안 좋아하고 같이 안노는 아이들 집단도 또래집단 혹은 심리적 집단이 될 수 있다. 아이가 그 집단을 설령 좋아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저자가 말하는 이론은 십대가 아닌 더 어린아이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이르면 두 살, 세 살부터 집단 사회화 이론이 작용한다고 말한다. 가장 중요한 시기는 여섯 살에서 열두 살이다.  

저자는 부모의 역할에 대해 단도직입적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유심히 봐야 하는 대목은 부모가 전혀 영향을 못 주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영향을 못 미친다는 점이다.  

"나는 부모가 자식을 키우는 방식이 자식이 어떤 인간으로 자라나는지에 대해 중요한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특히 저자는 아이들이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을 통해 부모의 영향이 제한적임을 이야기한다. 이민 가정의 아이들은 부모의 언어보다 또래의 언어를 더 빠르고 정확하게 흡수한다. 이렇게 집에서 밖에서 다른 언어를 쓰는 것을 코드 스위칭이라고 한다. 

또한 아이들은 장소에 따라 다르게 말하고 행동한다. 집에서 아무리 예절 교육을 통해 언어와 행동을 훈련시켜도 집을 나서는 순간 무용지물이다. 아이들은 집과 학교에서 다르게 말하고 행동한다. 이것을 보여주는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출생 순서 효과도 마찬가지다. 집에서는 출생 순서효과가 나타나지만 밖에서는 그렇지 않다. 물론 전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아니고 연구에 따르면 집 안과 밖의 불쾌한 행동의 상관계수는 0.19라고 저자는 말한다. 0.19는 유의미하지만 매우 낮은 수치이다. 또한 아이들은 부모를 맹목적으로 따라 하지 않고 다른 사회 구성원들과 동일한 행동을 한다고 여겨질 때만 부모를 모방한다.     

환경이 중요성을 강조하는 연구는 유전의 영향을 배제한다는 점에 있다. 저자는 유전의 영향과 환경의 영향은 분리되어 있지도 않고 분리할 수도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부모는 자녀에게 유전자와 환경을 동시에 제공하기 때문이다. 부모가 어떤 환경을 제공하고 어떻게 훈육하고 기르는지는 부모의 유전자와 연결되고 이 유전자는 자녀의 유전자에 영향을 미친다. 

환경을 강조하는 연구자들은 같은 부모 밑에서 자란 두 자녀의 행동이 다른 것은 부모가 다르게 대해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두 자녀는 태어날 때부터 유전적으로 다르게 태어나고 다르게 반응한다. 그럼 당연히 부모도 다르게 대하는 것이다. 즉, 부모-자녀 효과뿐만 아니라 반대 방향인 자녀-부모효과도 엄연히 존재한다. 

맥락효과는 발달심리학 연구에 오류가 있을 수 있음을 알려준다. 집에서 인터뷰할 때와 연구실에서 인터뷰할 때 다른 결과가 나온다. 질문의 순서에 따라 답이 달라지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저자는 시종일관 부모가 자녀에게 미치는 영향이 아주 미미하다고 강조한다. 이것을 받아들인다면 부모는 죄책감이나 부담을 확실히 덜 수 있다.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아이들을 기르고 양육할 수 있다. 이것이 저자가 책을 쓴 목적이기도 하다. 또한, 과도한 욕심을 투영하여 아이들을 괴롭히지 않아도 된다. 그렇다고 방치하거나 과도한 학대는 하면 안 된다고 저자는 동시에 분명히 말한다. 

물론 지금도 시중에는 전문가들의 책이 넘치고 넘친다. 한결같이 부모의 역할을 강조하며 관심과 애정을 쏟으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부모의 관심과 노력으로 만들어진다고 이야기한다. 책을 매일 읽어주면 당연히 아이들의 어휘가 늘어나고 집에 책이 많을수록 아이들이 책을 가까이한다는 연구도 있다. 이처럼 환경을 조성하는 부모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양육가설>은 이런 환경적 영향도 없지는 않지만 또래집단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이가 일단 젖을 떼면 그때부터 아이는 부모에게만이 아니라 자기 집단에 속한다. 아이의 미래에 대한 전망은 부모의 사랑을 받는가가 아닌 집단의 다른 구성원들, 곧 같은 세대에 속해 남은 삶을 함께 보내게 될 또래들과 잘 지내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집단성은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집단성을 이루는 데는 많은 조건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심지어 공통점이 거의 없어도 집단이 나누어진 것만으로 집단성이 생겨난다. 범주화를 통해 집단 차이는 확대되며 동시에 집단 내는 점점 비슷해지는 경향(동화)이 있다. 당연히 자기 집단은 선호하고 다른 집단은 적대시한다. 

집단성 집단 대조 효과는 성적별로 반을 나누는 우열반에서도 나타난다. 공부를 잘하는 반은 성적이 더 오르고 성적이 나쁜 반은 더 나빠지는 경향이 있다. 즉, 자기 집단을 선호해서 성적이 안 좋은 반은 공부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서로 공유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훌륭한 교사는 학급 학생들이 나뉘는 것을 방지하고 전체를 우리로 묶는다. 특히, 훌륭한 교사는 '우리'라는 집단이 모범생이며 유능하고 성실하다고 여기도록 만든다. 이를 위해 교사는 공동의 목표를 제시하여 학생들이 서로 협력하게 해야 한다. 이처럼 부모의 영향이 미미한데 비해 교사는 큰 영향을 미친다. 

"교사에게는 많은 권리와 책임, 영향력이 따르는데 이는 교사가 아이들 전체 집단을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교사는 집단 전체의 행동과 태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그 영향은 오랫동안 지속될 수도 있다. 아이가 성인이 되어 삶의 대부분을 보낼 집 밖의 세상까지도." 

문화가 한 세대에서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방법에 대한 저자의 주장도 매우 흥미롭다. 저자는 문화가 부모의 양육 방식이나 부모에 대한 모방에 의해 자식에게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집단 안에서 전수된다고 주장한다. 가정에서 문화가 전수되는 것이 아니라 부모 집단에서 아이 집단으로 문화가 전수된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주체적으로 목적에 맞게 어른 문화를 변용하고 때로는 첨가한다.  

남성과 여성의 성 개념에 대해서도 연장선에서 언급한다. 성별에 따라 남자아이와 여자아이가 판이하게 다른 행동을 보이는 것은 바로 문화의 산물이다. 따라서, 자녀가 성별 구별 없는 완전히 평등한 성 개념을 갖기를 바란다면 아이를 수렵채집 생활을 하는 유목민에게 보내든지 아이들 수가 너무 적어 놀이집단을 둘로 나눌 수 없는 곳으로 보내라고 조언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미치는 영향이 집 안에서만 제한된다면 탈선 청소년에 대한 문제 접근도 달라진다. 즉, 탈선한 학생의 부모를 개선하거나 교육하는 것은 효과가 미미하다. 이 경우, 아동학대로 인한 탈선인 경우만 효과가 있다. 탈선이 심각한 문제라면 탈선 학생이나 탈선 가정이 아닌 학생들이 속한 학교 전체 아이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실행해야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나는 개입 프로그램이 성과를 거두려면 아이가 속한 집단의 행동과 태도를 수정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프로그램의 효과가 장기적으로 유지되려면 아이는 소속 집단에서 아이들과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하며 계속 한 집단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따라서 학교의 모든 아이들을 대상으로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편이 몇몇 학교에서 몇 명을 선발하는 것보다 성공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어떤 집단에 속하느냐에 따라 부모와 갈등이 없는 착한 아이가 되기도 하고 마찰을 일으키는 나쁜 아이가 되기도 한다. 어느 집단에 속하는지가 그만큼 중요하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저자가 던지는 질문으로 이어지게 된다. 

"내가 던지고 싶은 질문은 이것이다. 무엇이 이 아이를 이 집단에 속하게 했을까? 남편과 내가 영향을 미쳤던 걸까? 우리 책임일까? 만일 내가 우리 책임이 아니라고 대답한다면 독자들은 우리 부부가 책임을 회피하는 무책임한 부모라고 생각할까?" 

저자는 자녀 양육에 있어서 유전적 영향을 간과해서는 안 되며 지나치게 환경을 강조해서도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환경을 강조하는 양육가설은 부모에게 과도한 짐을 지우고 잘못될 경우 죄책감에 빠지게 한다. 한부모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 혹은 불우하고 가난한 환경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에 대해서도 걱정하기 보다 희망과 가능성을 가져야 한다. 대신, 또래집단의 중요성을 말하며 아이가 어떤 집단에 속하는지에 대한 관찰이 필요함을 알려준다.  

너무 잦은 이사는 아이가 새로운 집단에서 처음부터 적응해야 해서 아이에게 매우 힘든 일임을 연장선상에서 알 수 있다. 이혼은 가정에 재정적 부담을 안겨주고 주거 지역 선택에 영향을 미치며 이사를 자주 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신체적 학대에 노출될 위험과 부모와 아이의 관계를 훼손시킨다. 단지 이혼은 아버지란 존재가 없어서 아이에게 불행한 것이 아니라 위와 같은 이유로 인해 아이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부모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종교, 요리, ,가정을 꾸려나가는 방법, 재능, 취미, 사회문제에 대한 의견, 장래 희망 등은 아이가 집에서 배우지만 또래집단으로 전해지지 않고 계속해서 유지된다. 무엇보다 부모는 자녀의 삶을 통제할 수 있는 한 가지 수단이 있는데 바로 어릴 때에는 자녀가 어떤 친구들을 사귈지 결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자녀의 삶에 영향을 끼치기 위해 부모가 뭔가 대단하고 강렬한 일을 할 필요는 없다.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고 아이를 보낼 학교를 선택하는 것만으로도 당신은 아이가 살아갈 인생의 항로를 바꿀 수 있다. 이건 좀 무서운 얘기일 수도 있다. 당신의 결정이 자녀에게 어떤 여향을 미칠지를 구체적으로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물론 이사를 해서 집단을 바꾸는 것이 정답이 아닐 수는 있다. 왜냐하면 나의 자녀가 부모 마음에 안 드는 아이들에게 호감을 살 만한 요인을 지녔다면 학교나 동네를 바꿔도 도움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녀가 학교에서 말썽을 일으킨다면 전학을 하여 또래집단을 바꾸거나 홈스쿨링이 대안이 될 수 있다. 

자존감도 또래 집단에서 형성된다. 부모와의 애착 관계가 자존감에 영향을 주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 일반적으로 또래 집단에서의 개인의 지위가 자존감에 오랜 영향을 미친다고 저자는 말한다. 이에 따라 부모는 자녀가 최대한 평범하면서도 매력적으로 보이게 해야 한다.  

"평범은 아이에게 다른 아이들과 같은 종류의 옷을 입히는 것을 말한다. 매력은 피부가 좋지 않은 아이를 피부과에 데려가거나 치열이 불규칙한 아이에게 치아교정을 해주는 등의 일을 의미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부모의 부담을 덜어준다.

"자녀를 사랑하되 사랑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사랑하지 말고 사랑스럽기 때문에 사랑하라. 양육을 즐겨라. 그리고 당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가르쳐라. 긴장을 풀어라. 자녀가 어던 인간이 되는지는 당신이 아이에게 얼마만큼의 애정을 쏟았는지를 반영하지 않는다. 당신은 자녀를 완성시키지도, 파괴시키지도 못한다. 자녀는 당신이 완성시키거나 파괴시킬 수 있는 소유물이 아니다. 아이들은 미래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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