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와 결혼의 과학 - 지금까지 당신이 몰랐던 사랑의 진짜 얼굴
타라 파커포프 지음, 홍지수 옮김 / 민음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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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30퍼센트 더 성관계를 많이 한다고 합니다. 미국에서는 해마다 1만 1250명이 성관계 도중 목숨을 잃는다고 합니다. 인구의 극소수가 대부분의 부를 축적하듯이 성관계도 마찬가지로 성인 인구의 15퍼센트가 전체 성관계의 절반을 차지한다고 합니다. 배우자가 외도했을 확률은 결혼 후 일 년마다 1퍼센트씩 증가한 것으로 볼 수 있어서 30번째 결혼기념일에는 약 30퍼센트의 확률로 배우자가 외도했을 것이라고 보면 된다고 합니다. 네, 그렇다고 합니다.



    타라 파커포프『연애와 결혼의 과학』은 생필품처럼 평범한 우리들의 이야기를 매우 흥미롭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시작은 '우리 결혼은 왜 이럴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단순히 '사랑이 식어서'라는 말로 낭만적으로 표현하기엔 다들 너무나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어서 따로 힘들어 하고 아파하는 이유가 분명 존재한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것을 과학적으로 분석했습니다. 통계학, 심리과학, 유전생물학 등의 자료를 바탕으로 조금 더 또렷하게 설명할 수 있는 근거를 갖고서 말입니다.



    결혼생활과 관련된 어떤 감정과 심리의 이유를 말할 때, 이 책은 대뜸 '뇌 구조의 차이' 챕터로 넘어 가버립니다. 정절할 확률과 외도할 확률에 대해서도 호르몬 작용에 대한 설명과 유전자 구조에 대한 설명을 이어가며 그에 따른 실험결과를 수치로 보여줍니다. 이 얼마나 발칙한 생각이며 괴상한 접근법입니까. 우리가 아는 사랑은, 그러니까 무언가 몰캉몰캉하면서 토닥토닥하고 쿵쿵팡팡하면서 칫칫뿡뿡한 것일 텐데 말입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과학적으로 분석해가며 연애와 결혼을 이야기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네, 그렇습니다. 연애와 결혼에 있어서 이런 과학적 접근은 꼭 필요합니다. 다 덮어놓고 우린 아닐거야 우린 잘 될거야, 라는 안일한 생각과 알려고 하지 않은 무관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실수를 저지르고, 또 그런 실수 때문에 서로 상처받고 아파했기 때문입니다. 연애와 결혼은 꿈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공부하고 준비해서 이해한 사람만이 아무래도 더 좋은 성적을 받고서 무사히 현실을 졸업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단 1퍼센트의 확률이라도 올릴 가능성이 있다는데 뭐든 못하겠습니까. 무려 건강한 사랑을 나눌 수 있다는데 뭐든 못하겠습니까. 침대만이 과학인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연애와 결혼의 과학』은 각 소주제마다 작은 애정 테스트를 보입니다. 그리고 이 테스트들이 꽤 재미있습니다. 마치 남녀간의 차이점을 말하려는 심리 테스트나 심심풀이 혈액형별 유형 분석같아 보여서 괜히 책에서 설명하는 그대로 체크하고 풀이하며 맞다고 키득키득 웃곤 했습니다. 평소 왕성한 호기심과 투철한 실험정신을 갖춘 저에게 이런 식의 발칙한 내용을 담은 책은 흥미진진함 그자체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책에서 말하는 그것이 사실인가 직접 실험해보고 확인해보지 못한 것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정말로 사고친 후에 '사고친 후에'라는 영화를, 반반씩 과실을 나누어 가질 그 사람과 함께 보자고 다짐했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가을이 왔습니다.







    결혼식장에 입장하는 순간부터 결혼식 첫 키스 사이의 어느 시점에서 많은 부부들은 "아플 때나 건강할 때나" 서로의 곁에 있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이 약속이 얼마나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지 깨닫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우리가 상대방을 남편으로 혹은 아내로 맞이하겠느냐는 질문에 "예."라고 답하는 순간부터 결혼한다는 행위는 우리의 건강과 안녕에 깊은 영향을 준다. (113쪽)



    부부간에 의견 차이가 생기는 것은 피할 수 없지만 문제는 자신이 어떻게 행동하는가 하는 것이다. (140쪽)



    결혼을 지속할 힘을 얻으려면 서로의 차이를 드러낼 필요가 있다. 그런 차이점들을 신속하게 해결하든, 서로 인정하고 존중하든, 최소화하든 말이다. 때로 화를 내는 것은 부부 관계를 파괴하기보다는 오히려 시간이 지나면서 부부 관계를 개선하는 데 도움을 준다. (169쪽)



    속전속결 성관계는 분명 과학적 용어는 아니지만 인간의 신체에 대한 과학적 이해에 바탕을 둔 표현이다. 피셔 박사에 따르면 성관계가 몇 시간 지속되든 몇 분 안에 끝나든 상관없이 성행위를 할 때 기분을 좋게 해 주는 화학물질이 분비된다고 한다. 그녀는 성관계를 운동처럼 생각하라고 말한다. 할 필요가 없을 때도 해라. 몸에 좋으니까. (201쪽)



    당신은 자기 집을 치우면서 그게 어째서 아내를 '돕는' 일이라고 생각하나요? (223쪽)



    저속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결혼이란 근본적으로 경제적 관계이다. 사랑과 낭만이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돈 문제의 영향을 받지 않는 부부 관계는 없다. 어디서 살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고 어떤 직업을 갖고 얼마나 일을 하고 아이를 낳을 것인지 낳으면 언제 낳아서 어떻게 키울 것인지 심지어는 부부 관계를 유지할 것인지 이혼할 것인지 등 결혼 생활에서 결정해야 하는 모든 일들은 궁극적으로 관계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금전적 문제이다. (24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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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로스 & 토르소
크레이그 맥도널드 지음, 황규영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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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누군가가 죽어야 예술이 된다는 소설. 크레이그 맥도널드『토로스&토르소』는, 범죄소설가 헥터 라시터라는 인물이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영화감독 오손 웰즈 등 문화예술계 실존 인물들과 함께 몇 차례에 걸쳐 살인사건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다는 내용의 스릴러입니다. 그리고 살해당한 피해자들의 모습이 하나같이 초현실주의 미술 작품을 그대로 모방한 기이한 형태라는 점에서 미스터리한 소설이기도 하고, 묘하게 스파이소설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일단 다국적 느낌의 미녀가 많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스파이소설과 굉장히 닮았습니다. 두 남녀가 침대쪽으로 쓰러질 때마다 마침 창밖에서 저물고 있던 붉은 노을이 더욱 요란하게 이글거릴 장면으로 오버랩되곤 합니다. 아니면 우연히 옆에 있던 모닥불 안에서 장작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그것도 아니면 휘몰아치는 창 밖의 폭풍우를 비춰준다거나, 소용돌이 치며 넘실거리는 파도를 보여준다거나. 아무튼 심심찮게 이러한 장면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어린 나이에 한창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유익한 모든 지식을 습득하려할 제게 꽤 좋은 교육이 된 듯합니다.



    또한 소설의 배경이 마이애미, 키웨스트, 마드리드, 뉴욕, LA, 파리 등등 장소에 구애받지 않다는 점에서 역시 스파이소설을 닮았습니다. 주인공은 당연하다는 듯 소설의 중심에 있지만 주변 인물들의 그림자처럼 배후에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래서 간혹 변화무쌍하며 신출귀몰한 느낌의 스파이처럼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또 소설에는 공산주의와 초현실주의, 즉 정치와 예술에 대한 생각이 어느 정도 이야기를 지배하고 있기도 한데, 첩보 영화에서 사건의 계기를 만들어 낼 때 주로 사용하던 방식이라 꽤 익숙한 느낌입니다. 인물들은 요트를 타기도 하고, 때론 낡은 뷰익을 몰기도 합니다. 또 머리맡 베게속에 콜트 권총을 숨겨 둔다거나, 갑자기 대문을 박차고 나와 인중을 향해 더블바레 샷건을 겨냥하기도 합니다. 그런 느낌들이 마치 '이 소설은 스파이소설이요'하는 듯합니다.



    범죄소설가 헥터 라시터는 키 크고 잘 생긴 훈남형 혹은 호남형에 매너있고 젠틀하고, 약간 부유하고 낭만적이고 정열적이고, 때론 상냥하기도, 혹은 저돌적이기도 한, 아무튼 어떠한 수식어를 붙여도 딱 들어맞을 법한 느낌의 주인공입니다. 그런데 영국 007출신의 느낌은 아니었고 약간 거친 느낌의 텍사스 출신 사내입니다. 그래서 영국식의 기교 넘치는 스파이가 아닌, 조금 거친 정면돌파 느낌의 미국식 스파이같아 보입니다. 그 때문에 다 같은 스파이 소설이라고 하기엔 조금 다른 느낌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 그렇다고 헥터가 정식 스파이인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이 소설이 전적으로 스파이소설이라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아무튼 소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이 부분이 조금 아리송하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하필 가는 곳마다 사건사고가 항상 생겨나니 마치 긴다이치 코스케를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아무튼 소설은 현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꽤 재미있는 모습을 보입니다. 특히 누구나 들어보면 알만한 이름의 실존인물들이 헥터 주위에서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부분들이 무척 좋았습니다. 그런 부분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두다 증명해볼 길은 없지만, 일단 비슷한 연대와 비슷한 지역에 그 인물들이 실존했다는 점에서 꽤 그럴싸한 모습을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소설과 현실이 교묘하게 만나는 느낌의 이야기를 좋아해서 눈을 반짝여가며 읽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왠지 모를 1930년대를 향한 로망같은 것이 있어서 개인적으론 이러한 느낌도 무척 좋았습니다. 살짝 B급의 느낌으로 우당당 쾅쾅 탕탕 스윽 꼴까닥 까꿍, 하는 식의 전개가 그 자리에 이야기의 끝을 바로 보게끔한 힘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끝으로 초현실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사실 이 부분은 제가 잘 모르는 부분이라 아는 척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만 조금 미스터한 느낌으로 이야기하자면, 표현하는 예술이 표현하는 방식의 한계에 이르렀을 때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예술가들이 추구하려할 행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굉장히 극단적으로 무시무시할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가장 사실적인 형태의 살인이라는 주제로 예술을 하려 한다면, 그건 예술가가 살인을 직접 표현해봄으로서 그것의 광기를 가장 잘 그려낼 수 있는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술가가 초현실주의를 지향하는 예술가라면 그의 작품은 다 잘라놓고서 무언가를 넣거나 빼고 혹은 늘리거나 줄여놓아, 무언가 뒤틀리고 어긋난 모양새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현실을 초월한 느낌일 것이 분명하니 작품의 분위기는 매우 괴기스러울 것입니다. 그리고 간혹 그 중에서 세기를 뛰어넘을 대단한 걸작이 나올 수도 있으니, 우리는 예술을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위험하게 예술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란 생각마저 듭니다.






    내가 미스터리 소설가가 아니라 범죄소설가임을 잊지 마시오. 나는 정면 돌파하는 스타일이지. (24쪽)



    몇 년 전, 작가 지망생들을 타깃으로 하는 잡지에서 헥터를 포함한 《블랙 마스트》지의 동료들에게 어두운 범죄소설의 정의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헥터는 "줄거리는 캐릭터, 계기는 집작이다. 여정은, 겉으로는 어떻게 보이든 간에 언제나 피투성이의 축제에 대항하여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전구가 떠오르면, 세계는 어두워진다. 해피엔딩은 없다"라고 대답했다. (109쪽)



    난 그저 항상 작품에 정치색을 가미하는 작가들에 대해 회의적이었소. 내가 미술이나 조각, 극장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떠들 자격은 없지만. 하지만 산문에, 내 말은 소설에 정치를 더한다는 것은, 내 생각에는 문학을 붕괴시키는 것 같소. 예술은, 정말 좋은 예술은 시대를 초월하는 법이에요. 그러나 정치는, 그 당시 얼마나 심각하고 중요한 사안이든지 간에 시간이 지나면 덧없는 것이죠. 소설에 정치를 더하면 유통기한을 정해놓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데다가 더 심하면, 아예 훼손해버리는 것이지요. (182쪽)



    순수문학적인 스릴러요. 실화에 약간 바탕을 두고 있지. 어떤 지역에서 난봉꾼 미술가들이 몇 세기에 걸쳐 창작을 거듭하는데 사회와 격리된 곳인 데다 행동에 제약이 없었기 때문에 방탕함에 잠식되는 거요. 그래서 추상적인 정치와 사회 활동으로 이를 상회해보고자 하지. 하지만 이미 닳고 닳은 그들은 퇴폐주의로 빠져버리고, 그러고는 살인…… 그저 어떤 느낌을 가져보고자 피투성이의 상태로 몰고 가는 거요. (311쪽)



    투우에서는 케렌시아라는 용어가 있지. 헤밍웨이가 말하길 케렌시아는 투우장 안에서 황소가 편안함을 느끼는 장소라더군. 자꾸만 그 지점으로 돌아와 결국은 죽는다는 거야. 내가 당신의 케렌시아일지도 모르겠군. (4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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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 드러커를 읽는다면
이와사키 나쓰미 지음, 권일영 옮김 / 동아일보사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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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롱의 혼자놀기'는 제가 만든 공간이지만, 여러분과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제가 포스팅한 본문의 글보다 그 아래에 여러분들이 남겨놓은 덧글의 내용이 더 유익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실 제가 이곳에 꾸준히 글을 남겨놓는 이유는 여러분의 덧글을 끌어내기 위함이 더 큽니다. 이 곳에 방문하고, 제 글을 읽어주고, 또 덧글을 남겨주는 여러분은 제게 있어 사이좋고 친한 블로그 이웃임과 동시에 고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쨌든 여러분들의 마음 즉, 고객의 마음이 움직이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블로그를 통해 고객을 향한 매니지먼트, 즉 경영, 혹은 관리를 한번 실행해 보기로 했습니다. '크롱의 혼자놀기' 블로그에 새 글 알림이 떴을 때 자연스레 일정 부분의 쫄깃한 기대감이 생겨났으면 했습니다. 할 것도 많고 볼 것도 많은 바쁜 시대에 어렵사리 한 번의 클릭을 통해 이곳으로 유입된 만큼, 기대한 만큼의 상콤한 만족을 느끼고 덧글을 남겨놓지 않고선 그냥 지나칠 수 없게 하기 위한 글쓰기를 추구했습니다. 내용뿐만 아니라 분량에 있어서도 고민했고, 모바일 유저에 대한 편의도 생각했습니다. 책 이야기를 하는 블로그인 만큼 글에 대하여 최대한 집중할 수 있도록 글씨체와 배경색, 글자색, 글간격을 선택하고 적용했습니다. 배경음악 선택에 있어서도 개인취향을 소극적으로 표현해냄과 동시에 글을 읽을 때 방해요소가 되지 않도록 여러가지를 함께 고려해야만 했습니다. 



    물론 지금의 상태가 가장 최적화되어 사용자 편의를 이룬 최선의 '크롱의 혼자놀기'에 이른 것은 아닙니다. 아직 발전의 여지가 있으며 제가 미쳐 생각치도 못했던 불편함이 존재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도 계속해서 그것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생각합니다. 사실 '크롱의 혼자놀기'는 처음 의도했던 제목과 달리 혼자가 아닌 곳이 되어버렸습니다. 처음에는 닫힌 장소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열린 장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와서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좋았던 저의 욕심 때문에 개인적으로 도저히 만족할 수 없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곳을 고객을 향해 열어두고 고객에게서 무언가를 계속해서 찾으려 했으며 그래서 찾아낸 작은 것들을 하나씩 따라가보고 있습니다.



    이와사키 나쓰미『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드러커를 읽는다면』은 이런 식의 매니지먼트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제목처럼 정말로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매니저의 역할과 매니지먼트의 정의가 무언지 알아내기 위해 피터드러커의 책을 구입해서 읽었고, 그 책의 내용을 따라서 고교야구에 그대로 적용시켜서 오합지졸인 야구부를 조련한 결과 처음 세웠던 목표를 달성하고야 만다는 내용의 소설입니다. 책 표지를 보면 애니메이션을 연상케 하며 짧은 교복치마의 예쁜 여학생 매니저를 내세워 굉장히 러블리한 연애소설이 될 법도 싶고, 또 청소년기의 아픔을 치유하거나 스포츠를 통한 감동을 그려낸 성장소설같아 보이기도 하며, 소설의 등장인물을 일본의 아이돌 그룹 'AKB48'에서 따왔다는 광고문구로 가슴설레이게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만, 그러한 것들을 기대하고 읽어보면 이 소설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을지 모릅니다. 이 소설은 경영을 이야기하는 소설이기 때문입니다.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 미나미는 야구부를 하나의 조직으로 생각하고, 조직에 대한, 조직에 의한, 조직을 위한, 경영을 펼칩니다. 고객들에게 감동을 판매하기 위한 목표를 세우고 마케팅 면담을 통해서 조직을 파악한 후 판단하고 결정해서 적용합니다. 갑자기 제가 사용하는 용어들이 어렵고 딱딱하게 변하듯 소설에선 피터드러커의 책을 직접 인용하면서 경영에 관한 제법 어려운 이야기를 합니다. 단, 야구라는 스포츠와 야구선수라는 인물들을 내세워 조금 쉽게 풀어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설의 줄거리가 하나의 예시가 되어, 결국 말하고자 하는 경영지식을 비교적 이해하기 쉽게 잘 전달하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소설이 갖는 이러한 의도와 구성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런 발상은 시도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경영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드러커를 읽는다면』을 가벼운 마음으로 꼭 한번 읽어보는 것이 좋겠다 싶습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공부를 할 수 있었던 소설이었습니다.



    한편, 소설을 읽다보니 2008년부터 롯데 자이언츠 감독으로 부임한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생각납니다. '노 피어'를 강조하던 야구, 홍성흔과 정수근을 데려와 파이팅을 내세우던 야구가 떠오릅니다. 888-8577을 찍던 암흑시절의 롯데야구에 필요했던 이노베이션은, 말이 통하지 않고 연줄이 없어 외압이 전혀 들어올 수 없는 외국인 감독을 영입하는 것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보통 망한 조직은 안에서부터 썩어있기 때문입니다. 당시 자이언츠의 목표는 우승이 아니라 포스트시즌 진출이었고 그 목표에 맞는 야구를 잘 조직해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쩌면 지는 경기에 익숙했던 롯데 자이언츠를 경영하기 위해서 제리 로이스터 감독이 피터드러커를 읽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제 『만약 고교야구 여자 매니저가 피터드러커를 읽는다면』에 대한 이야기는 끝났습니다. 어떴습니까? 고객님, 만족하십니까? 저는 정말로 고객님을 위해 밤잠을 설쳐가며 최선을 다했습니다. 저의 이러한 노력에 만족하셨다면, 자! 이제! 이 글에 덧글을 남겨주십사리와용. 뿌잉뿌잉. 감사합니다.







    난 그걸 모르겠어. 그래서 내내 고민했지. 이 책에는 말이야. '기업의 목적과 사명을 정의할 때, 출발점은 단 하나뿐이다. 바로 고객이다. 사업은 고객에 의해 정의된다'고 적혀 있는데, 이건 고객이 누구이고, 어떤 사람이냐에 따라 야구부가 무엇이고 무얼 해야 하는지가 결정된다는 소리잖아? 거기까지는 나도 알겠어. 그런데 야구부에 있어 가장 중요한 '고객'이 누구인지는 도무지 모르겠어. (49쪽)



    "포, 포볼을 내주고 싶어 하는 투수는, 이, 이 세상에 어디에도 없다!" (115쪽)



    미나미는 자기가 담장하는 분야 이외에는 의사결정을 하지 않으려고 했던 것이다. 다른 멤버가 담당하는 일에 관해서는 최종 결정권을 그들이 행사하도록 했다. 최종 결정권을 분담하면 미나미가 해야 할 일이 줄어들어, 그 덕분에 자신이 담당하는 일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책임을 분담했기에 얻을 수 있었던 일석이조의 효과였다. (174쪽)



    그 광경을 바라보면서 미나미는 문득 '이 팀은 고시엔에 출전할 수 있을 거야'라는 예감을 느꼈다. 그건 느닷없이 다가온 느낌이었다. 미나미는 지금까지 야구부가 고시엔 대회에 나가게 되기를 간절하게 원했지만 실제로 그렇게 될 거라는 예감을 느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마음 한구석에서 '진짜 출전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이 있었기 때문인데, 이때는 왠지 고시엔에 출전하게 될 거라는 예감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193쪽)



    "어떤 야구를 보고 싶으신데요?"

    (…)

    "우리는 여러분이 어떤 야구를 보고 싶은 건지 알고 싶어요. 왜냐하면 여러분이 보고 싶어 하는 야구를 하고 싶기 때문이죠. 우리는 고객으로부터 출발하고 싶습니다. 고객이 가치를 인정하고, 필요로 하며, 추구하는 것으로부터 야구를 시작하고 싶은 겁니다." (2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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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
존 그린 지음, 김지원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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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에서 뜻밖의 암 선고를 받았을 때, 입에서 튀어나온 첫 마디 말은 한탄의 소리도 아니었고 체념의 소리도 아니었습니다. 부정하려는 단계를 그대로 뛰어 넘어 버린 것인지, 입에선 분노의 말이 마구 쏟아져 나왔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암입니다'라는 말에 답할 수 있었던 유일한 소리는 의외로 '아이 썅'하는 욕이었습니다. 아직 어린 나이인데 지랄맞게도 이런 병에 걸려버렸으니 개똥같은 이 세상과 우주가 싫어졌습니다. 그래서 차차 주위 사람들을 정리해야만 했고, 갑자기 좁아진 나의 세상과 공간에 적응해야만 했습니다. 



    대단한 꿈을 품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내 안에 암을 지니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내 안에 있던 다른 가능성들이 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건 견디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 꿈들은 평소에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고 듣도 보도 못한 가능성들이었지만, 앞으로 그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는 판결이, '당신은 암이요'라는 말과 함께 정해지자 아직도 남아있을 다른 가능성을 찾으려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아무리 작더라도 주워 모아보기로 했습니다. 평소에 감명깊게 읽었던 소설에 대한 뒷이야기가 궁금해서 바다 건너에 있는 작가를 직접 찾아가 작가만 알고 있을 뒷이야기를 미리 들으려 하는 마지막 여행처럼 말입니다.



    그러다 문득 무언가 조급한 마음이 생겨났습니다. 길지 않은 인생동안 내가 세상에 남겨놓은 대단한 업적은, 암과 대항해 죽는 날까지 싸우다, 싸우다 결국에 죽었다는 암적인 영웅의 일대기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남아 있는 시간들이 더욱 부족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런 식으로 병과 싸우다 허무하게 죽을 수 없다는 생각, 세상에 어떤 식으로든 기념이 될 만한 상처를 남겨 놓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불안함이 생겼습니다. 의미있는 상징을 담아서 꽤 멋진 죽음을 맞이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죽음을 상징하는 담배를 입에 물고 있지만 담배에 불을 붙이지 않음으로서 죽음에게 힘을 주지 않았다는 상징과 같이, 비록 암에 걸려 몸이 병들었지만 아직 내 이야기는 암으로 인해 주제가 바뀌거나 주인공이 바뀐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암시하며 소설 마지막 장의 'To Be Continued'를 박아 놓은 것과 같았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나의 죽음으로 인해 주위 사람들에게 슬픔이 전이되고 그래서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것이 싫기도 합니다. 그래서 관계를 정산하고 자신의 죽음이 세상에 끼치는 영향을 최소화하길 바랍니다. 그래서 협상을 시작합니다. 멀리하고 더욱 멀리하고, 정리하고 또 정리하고. 거대한 우주를 바라보고 약간의 체념을 보태어 단순한 것을 느끼려 했습니다. 감당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분류하고, 기억이 스며있는 추억의 장소를 팔아 버렸습니다.



    존 그린『잘못은 우리 별에 있어』암에 걸린 두 어린 남녀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조금 우울한 이야기일 것 같지만, 사실 그렇게 어둡지만은 않습니다. 그렇다고 엄청나게 유쾌한 이야기를 하며 병을 부정하고 있는 것은 또 아니었습니다. 도도하고 깔끔하고 발랄한데 부정적인 이야기를 합니다. 암 이야기가 재미없다는 소설의 말처럼, 소설은 암에 관한 이야기보다 병과 죽음에 대처하는 인물들의 이야기, 그리고 의미있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한 작은 움직임, 그리고 남녀간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합니다. 울고 있으면서 동시에 미소지을 수 있는 그런 이야기였습니다.



    잔디밭에 누워 밤하늘을 올려다 보며 별들을 이어서 나만의 별자리를 만들어 보았습니다. 17에서 18. 이 두 숫자 사이에는 그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작은 무한대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아무런 생각도 않고서 그저 시간을 소비해 보았습니다. 그러자 문득 이 모든 것을 수용할 수 있을 것만 같았습니다. 이건 뭐랄까, 동정도 아니고, 그렇다고 동감도 아니었습니다. 어떤 무한대는 다른 무한대보다 더 클 수 있다고 인정하고, 그대로 내려 놓은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작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도 무한대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죽든 이제는 그냥 그걸로 괜찮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이건 암 이야기는 아니다. 암 이야기는 재미대가리 없기 때문이다. 암 이야기에서는 암에 걸린 사람이 암과 싸우기 위해 돈을 모으는 자선단체를 설립한다. 안 그런가? 그리고 이런 헌신적인 자선단체 활동은 암에 걸린 주인공의 내면에 있던 인간의 선량함을 일깨우고, 그 사람은 암 치료라는 유산을 남겼다는 면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과 격려를 받게 된다. 하지만(…). (54쪽)



    "모든 구원이란 일시적인 거야. 난 그 애들에게 일 분쯤 시간을 벌어줬어. 그 일 분으로 한 시간을 더 벌 수도 있고, 그 한 시간으로 일 년을 벌 수도 있지. 아무도 그들에게 영원한 시간을 줄 순 없어, 헤이즐 그레이스. 하지만 내 인생이 그 애들에게 일 분을 벌어 줬어. 그건 무가치한 게 아니야." (65쪽)



    "전 말이죠. 그런거예요. 그러니까 수류탄 같은 거라고요, 엄마. 전 수류탄이고 언젠가 터져 버릴 테니까 사상자 수를 최소한으로 줄이고 싶다고요, 아시겠어요?" (108쪽)



    "죽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의 문제는."

    그가 말을 하다가 문득 멈추었다.

    "문제는 그들을 낭만적으로 묘사하지 않으면 나쁜 놈이 되는 것 같단 말이지. 하지만 사실은…… 매우 복잡한 것 같아. 그러니까, 초인적인 힘으로 영웅적으로 암과 싸우고 절대로 불평하거나 마지막 순간까지 웃음을 잃지 않고 기타 등등 어쩌고저쩌고 하는, 성실하고 단호한 암환자에 대한 말들 너도 알지?" (183쪽)



    "하지만 아주 솔직하게 말하자면, 소설의 저자가 소설 속 캐릭터들에 대해 특별한 통찰력을 갖고 있을 거라는 이 어린애 같은 생각은…… 참으로 우스꽝스럽구나. 그 소설은 종이에 몇 글자 끄적거린 걸로 만들어진 거야. 그 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은 그런 끄적거림의 바깥에서는 아무 생명력도 없어. 그들이 어떻게 되었느냐고? 소설이 끝나는 순간 존재하기를 멈춰 버렸지." (203쪽)



    세상은 소원을 들어주는 공장이 아니야. (22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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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쓰메 소세키와 런던 미라 살인사건
시마다 소지 지음, 김소영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1.

    저는 이 소설을 읽고서,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충격을 받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정말로 이것은 진짜였습니다. 황량한 부두와 템스 강 수면의 풍치에 잘 녹아들어, 백만 개의 말을 초월해 런던이 가진 기쁨이며 슬픔을 제게 호소하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셜록 홈즈가 갑자기 짚어 든 가방에서 바이올린을 꺼내 들어 나쓰메 소세키에게 들려주기 위해서 켠 멘델스존의 무언가 선율처럼, 제 가슴 속에서 이토록 과장된 말이 저도 몰래 솟아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2.

    시마다의 글은 고지식하게 젠체하지 않는다. 분명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또 소설을 위해 많은 조사를 했을 테지만, 알고 있다는 티를 내지 않으며 적당한 높이에서 독자와 나란히 나아가길 추구한다. 더군다나 그는 그의 매작품마다 틀에 얽메이지 않으려 하며 자유로운 글을 쓰기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 어찌보면 그런 그의 노력이 대단히 어려운 글을 쓰는 사람들의 눈에 하찮아 보일 수도 있겠다. 게다가 그가 추구한 새로운 것이란 것이 사실은 모방과 흉내내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세상에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으니 이 부분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하겠다.



    3.

    하지만 별일 아닌 것 같은 것에서 창조적인 요소를 찾아내는 것이 바로 예술가가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시마다 소지의 글은 템스 강 앨버트독에 정박하려 하지 않고, 항상 어디론가를 향하고 있으며 언제든지 출항할 준비를 다 마친 증기선의 알람 소리처럼 사람의 마음을 설레이게 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좋습니다. 그리고 그의 소설,『나쓰메 소세키와 런던 미라 살인사건』은 영국 유학 경험이 있는 나쓰메 소세키가 런던에서 셜록 홈즈와 조우하지 않았을까 하는 재미있는 생각을 담고 있는 추리소설입니다. 그래서 소설은 나쓰메의 서술과 왓슨의 서술을 교차적으로 보여줍니다. 제가 지금 어설프게 흉내내고 있듯이, 완전히 다른 형태의 글을 서로 다른 시점에서 한번씩 보이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이런 구조가 대단히 재미있습니다. 말하는 사람에 따라 사용하는 단어와 용어의 차이를 구별해가며 읽는 것은, 소설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재미이고, 추리하며 가지고 놀 작은 장난감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4.

    소설에서 왓슨이 들려준다는 설정의 글은 코난 도일이 직접 쓴 소설이라 여겨도 될 만큼의 완성도를 갖고 있다. 이런 소설을 패스티시라고 하는데, 이 소설은 나쓰메 소세키의 글이라고 여겨지는 부분도 동시에 등장하기 때문에 그 완성도는 더욱 높다고 할 수 있다. 홈즈의 모험담은 지금까지 공개된 이야기로 60편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시마다는 도쿄 국회도서관에서 나쓰메의 수기로 보관된 기록과 그동안 왓슨이 공개하길 꺼리며 숨겨두었던 수기를 발견함으로써 61번째 홈즈의 모험담이 바로 이 런던 미라 살인사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동시에 이 소설을 나쓰메의 문학을 공부하는 수험생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하며,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더 강조한다.



    5.

    61에 대한 연구는 소설 안에서도 잠시 모습을 드러냅니다. 주홍색 연구도 아니고, 그렇다고 레이첼도 아닌, 이 61에 대한 연구는, 그것을 쫓는 과정에 고요한 새벽 안개의 런던 시내를 시끌벅적하게 만드는 마차 추격신이 빠진 듯해 다소 밋밋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연구의 존재만으로도 셜록 홈즈 시리즈의 부활이라고 외치게 할만큼의 향수를 만들어 냅니다. 특히 일본으로 돌아가려 하는 나쓰메 소세키를 배웅하기 위해 나타난 홈즈와 왓슨의 모습은, 62번째 이야기가 어딘가에 있다는 강한 믿음과 함께 어딘가에 있어야만 한다는 강한 집착을 만들어 냅니다. 홈즈가 만들어낸 바이올린 선율은 셜로키언들이 숨겨진 왓슨의 수기를 찾아내고야 말겠다 라는 집념을 담아, 홈즈를 그리워하는 우리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었습니다. 



    6.

    앞에서 한번 언급했듯이 이 소설은 독자의 기대치에 따라 유동적인 만족감을 선사한다. 큰 기대를 하고서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런던 소식』을 미리 읽어본 독자에게는 이 소설을 통해 역사적 사실과 그의 문학 활동에 대해 고증할 수 있을 것이고, 셜로키언들은 홈즈의 이야기를 통해 지나간 홈즈의 모험담을 비롯한 그의 사소한 버릇과 런던의 풍경을 관찰하는 것으로서 기대했던 만큼의 지식과 재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홈즈와 나쓰메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의 독자라 하더라도 가벼운 추리소설 정도의 느낌으로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7.

    개인적으로 시마다 소지의 『나쓰메 소세키와 런던 미라 살인사건』은 제가 원하는 추리소설의 좋은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잔재미가 가득 담겨있고, 설정된 인물이 개성있어서 재미있는 모습을 보이고, 가슴이 먹먹하게 만드는 약간의 감동이 배경의 느낌, 그리고 감정의 묘사와 함께 잘 어울어져 문학적인 느낌을 살짝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설을 다 읽어서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자마자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고 궁금하게 만듭니다. 또한 무언가를 더 자세하게 알고 싶어서, 혹은 놓친 부분이 있지 않을까 우려해서 다시 한번 더 읽어보게 만듭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소설은 연구가 필요한 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추리소설이 좋습니다.







    세상에 새로운 사건이란 없어요. 언뜻 보기에는 별일 아닌 것 같아도 창조적인 요소를 찾아내는 것이 예술가의 눈이겠죠. (49쪽)



    "우리가 직면한 이 사건도 진행이 이렇게 독특한 만큼 자네도 기록자로서 구미가 당기겠지. 그런데 왓슨, 부탁이 있네. 이 사건은 나의 보기 드문 대실패의 기록이 되리라고 생각해."

    거기까지 말한 그는 오랜만에 자신이 애용하는 흔들의자에 몸을 깊이 묻고, 꽤 오랫동안 아무 말 없이 파이프 연기만 뿜어댔다. (136쪽)



    "왓슨, 이제서야 나도 고통에서 벗어날 때가 왔네. 자네의 작가적 영감이 이끄는 바가 있어서 이 사건의 전개 과정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대중서로 만들 생각이라면, 진정 힘을 발휘한 것은 내가 아니라 이 멀리서 온 손님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써넣어야 하네. 내 역은, 이번에는 참으로 미약했어." (168쪽)



    "와, 놀랐습니다. 저는 범인을 잡을 땐 한바탕 난리법석을 떨며 추격전을 벌인 끝에 잡는 거라고 생각해 왔는데요. 당신의 유명한 이름과 함께 몇 가지 소문은 전부터 들어서 알고 있긴 했지만 그것도 상당히 축소된 이야기였던 것 같네요. 홈즈 씨가 가만히 있어도 범인이 저절로 빨려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2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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