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와 게의 전쟁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매번 선거 때마다 투표는 했지만 투표 결과에 대해선 크게 관심 갖지 않았습니다. 투표권이라고 해봐야 보잘 것 없는 권리처럼 여겨졌고(유일한 권리라 하더라도), 나의 한 표가 나라의 중대사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치른 대선은 선거 이전부터 결과가 나올 때까지 촉각을 곤두세우며 전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그동안 스스로를 가장 중간에 위치한 사람이라고 여겼는데 이번 대선에는 왜 그토록 열을 내며 관심 갖고 지켜봐야만 했을까요. 어떤 위기의식 같은 것이 느껴졌다고 해야 하나… 어렴풋이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아니라고 크게 말하고 싶었나 봅니다.

 

 

    지금까지의 독서 성향을 돌이켜 보면, 사람들이 죽는 내용의 소설이 꽤나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런 소설들을 대개 재미있는 소설이라고 했습니다. 누군가가 시간대별로 죽어줘야 뒷 페이지의 이야기가 궁금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누군가가 죽지 않아도 뒷이야기가 궁금해지는 소설은 모처럼 만에 만난 듯합니다. 엄밀히 따져 말하자면 누군가가 죽지 않았다곤 할 수 없지만, 아무튼 요시다 슈이치의 소설 『원숭이와 게의 전쟁』을 읽으면서 사람이 죽지 않았는데도 느낄 수 있는 묘한 긴장감에 휩싸였습니다. 죽은 사람이 없는 소설이 재미있을 수도 있다니, 역시 묘한 느낌입니다.

 

 

    원숭이와 게의 전쟁. 일본 고전 민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교활한 원숭이가 착한 게를 속이고 게를 죽인 후 재산을 갈취합니다. 이에 훗날 증오심을 품은 게의 새끼들이 힘을 모으고 계략을 세워 원숭이를 향한 복수에 성공합니다. 크게 보면 소설『원숭이와 게의 전쟁』도 민화와 같은 내용의 이야기입니다.

 

 

    소설은 누가 적이고 아군인지 쉽게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이리저리 흩어져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다방면에서 각계각층의 구성을 이루고 있던 사람들이 소설 속에서 작은 무리를 이루고 다양한 형태의 관계를 맺습니다. 그들은 술집 마담, 남녀 접대부들, 야쿠자, 화가, 음악가, 비서, 백수, 교도소 수감자, 할머니, 아버지, 형제, 딸 등… 전혀 다른 세상을 살며 서로가 무관해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조금씩 영향을 받고 하나로 뭉치며 복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게 떼처럼 응집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들이 어떤 연유에서든 서로 얽히고 돕게 되는 과정들이 꽤나 재미있습니다.

 

 

    소설은 평범하고 착하게 살아가는 소시민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하지만, 이들은 드러내놓고 어떤 권력에 맞서거나 저항했던 사람들이 아닙니다. 맞서야 할 권력의 대상이 어딘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고, 권력이 자신들 주변에서 어떤 모습을 하고 그동안 자신들을 억압해왔는지 알 길이 없는 소시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여곡절 속에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하려던 복수의 내용이 조금씩 명확해지고, 그것을 준비하기 위한 과정이 재미있어지는 것입니다. 대립을 이루는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인가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어떤 구분이 보이진 않지만, 어느 한 편에 속해서 그저 우리 편이 이기길 바라는 마음으로 힘껏 응원하게 되는 묘한 맛. 선거가 보통 그런 느낌의 것이라고 봅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세상의 흔들림에 정신을 잃고 한참동안 어딘가에 휩쓸려 다니다 보니, 뭐가 옳고 그른지 구분해서 생각하고 판단내리는 것조차 버거워진 느낌…….

 

 

    어떤 싸움이든 자기가 옳다고 끝까지 더 크게 소리 지른 사람이 결국엔 이기는 듯합니다. 승자는 자기 자신의 능력 때문에 이겼다고 여길 수도 있고, 아니면 자신을 도와준 주위 사람들이 있어서 이겼다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 믿고 따라준 사람들을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해 이겨 보이겠다는 마음이 물론 중요하긴 합니다만, 승리한 이후 전리품을 나눠 갖는 과정에서 믿음을 주고 도와준 사람들에게 보답해야만할 때, 그때 저지르게 되는 밥그릇 싸움에서 온갖 비리가 생겨날 수 있으니… 여러모로 어쩔 수 없는 세상입니다. 착했던 게가 시간이 지나자 교활한 원숭이가 되고, 원숭이의 새끼들이 다시 게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계략을 세우기도 할 것이고. 아무튼 이런 전쟁은 돌고 도는 복수전의 양상을 띨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데 소설은 우리에게 묘한 긍정의 기운을 전합니다. 이점이 정말로 희한합니다. 정말로…….

 

 

 


 

 

 

    전체적인 이미지는 이미 잡혀 있었다. 그런데 그 세부를 결정할 수 없었다. 아니, 이미 정했지만 나에게 그것을 그려 낼 힘이 있을까? 나에게 과연 그것을 그릴 용기가 있을까 없을까?

    있니? 하고 도모카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있어’라고 대답하는 내면의 목소리와 ‘무리야’라고 대답하는 내면의 목소리가 겹쳐졌다. (123쪽)

 

 

    아빠가 실제로는 교도소 생활에 전혀 익숙해지지 않았다는 것은 딸의 눈에도 훤히 보였고 안심시키려고 억지로 웃는 표정을 짓는다는 건 알았지만, 그래도 단 하나 위로가 되었다면 된장 만드는 방법을 자세하게 들려주는 아빠의 말투만은 어렴풋이, 정말로 어렴풋하긴 하지만 희망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한 미량의 색채가 섞여 있었다는 점이다. (166쪽)

 

 

    한동안 못 만나는 사이 머리가 꽤 많이 자랐네. 머리가 기니까 곱슬머리가 드러나는구나. 그나저나 늘 느끼는 거지만, 소타에게는 왜 이렇게 아무 냄새도 안 나는 걸까. 이렇게 가까이 있는데도 정말 아무 냄새가 안 나. 물론 향수 같은 건 안 뿌리지만, 남자애들은 뭔가 독특한 냄새가 나기 마련인데 소타에게는 그런 게 전혀 없어. 침대에서 안을 때도 그랬어. 그렇지만 그게 싫은 건 아니야. 그래서 소타를 좋아하는지도 모르지. (442쪽)

 

 

    그나저나 정치가 되기도 힘드네요. 자기 엉덩이 걱정하면서 지방 재생에 관한 얘기를 떠들어야 한다니. 설마 정치가가 다 이런 건 아니겠죠? (481쪽)

 

 

    전 그렇게 생각해요. 남을 속이는 인간에게도 그 인간 나름의 논리가 있을 거라고. 그러니까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남을 속일 수 있는 거라고. 결국 남을 속이는 인간은 자기가 옳다고 믿는 사람이에요. 반대로 속아 넘어간 쪽은 자기가 정말로 옳은지 늘 의심해 볼 수 있는 인간인 거죠. 본래는 그쪽이 인간으로서 더 옳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요즘 세상은 자기 자신을 의심하는 인간은 아주 쉽게 내동댕이쳐요. 금세 발목이 잡히는 거죠. 옳다고 주장하는 자만이 옳다고 착각하는 거예요. (52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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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요리
하시모토 쓰무구 지음, 권남희 외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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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베트남 요리가 국내에 막 소개되어 들어왔을 때쯤 용기 내어 베트남 요리를 먹어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시내에 위치한 한 베트남 요리 전문 레스토랑을 찾아갔습니다. 최고급은 아니지만 나름 갖출 건 다 갖춘 듯한 모양의 식당이라 종업원들 모두가 베트남 민속의상을 착용하고 꼬부랑 베트남어로 되어 있는 메뉴판을 건네며 샬라샬라 베트남어로 주문받으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그러지 않아서 정말로 다행이었습니다. 흐릿한 지금의 기억으론 메뉴판을 보고 어떤 세트 메뉴를 주문한 듯한데, 얄라뽕따이… 같은 느낌의 이름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그날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베트남 요리 먹기에 성공한, 매우 거룩하고 역사적인 날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웬만하면 베트남 요리를 먹지 않기로 했습니다. 어떤 문제, 어떤 프라블럼 때문에 그런 것일까. 베트남 쌀국수… 그러니까 영어로 하면, B SS……, 어쨌든 보기만 해도 무서운 트라우마가 생겨버렸으니, 아무튼 바꿔! 줬으면 좋겠습니다. 왜냐하면 다른 요리들과 맛이 조금 달랐기 때문입니다. 아니, 그러니까 원래 베트남 쌀국수가 다른 음식들과 맛이 다르다는 건 충분히 알고 있는데, 이건 달라도 너―무 달랐기 때문입니다. 뭐랄까, 아무런 맛이 느껴지지 않았다고나 할까요. 원래 웰빙을 추구한 음식들이 다 그런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지만, 한 젓가락 후루룩 먹고 나니 남아있는 면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양이 적어서 바꿔달라고 하는 것이라곤 차마 말하지 못하겠고, 아무튼 바꿔! 주세요!

 

 

    하시모토 쓰무구의 소설 《오늘의 요리》는 음식과 관련된 짧은 글 23편을 모은 단편집입니다. 일본에선 음식을 소재로 한 글이 참으로 많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이쪽 장르의 글에 대한 용어가 따로 있을 정도니 말입니다. 오가와 이토, 에쿠니 가오리, 요시모토 바나나, 무라카미 하루키 등의 유명 작가들이 소설뿐만 아니라 에세이에서도 자주 음식이야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음식이 우리에게 주는 위안이랄까, 따뜻한 기운이랄까, 그래서 얻는 안도감, 혹은 포만감이랄까, 아무튼 음식이 우리에게 주는 이로운 특성상 음식에 대한 글은 주로 갈등을 해결하고 치유하기 위한 목적을 가진 글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요리》는 어떤 목적을 가진 글인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특별한 재료를 사용한 음식, 유별난 요리법을 적용한 음식, 그래서 고유의 의미를 가진 음식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경우엔 그것이 글이 되었을 때 비로소 주제의 향이 느껴지고, 의미의 맛을 곱씹기 위해 천천히 씹게 되며, 그것을 소화시켜 몸에 좋은 감정과 교훈의 영양소로 분해됨을 느낄 수 있을 것인데, 이 소설에선 그러한 것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손맛, 그러니까 정성… 정성이 부족한 느낌인데, 정말로 맛이 없다고 정색하며 말할 정도로 턱없이 부족한 정성이었냐면, 그렇다고도 콕 집어서 말할 수 없는 느낌이라, 사실은 이런 맛의 소설을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참으로 아리송합니다.

 

 

    건조한 맛의 글이었기 때문에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소설을 읽다가 문득 오래전에 맛보았던 베트남 쌀국수가 생각난 것입니다. 너무나도 웰빙을 추구한 것일 수 있습니다. 저자극을 향신료를 이용한 요리법 때문인지 미각과 후각에 아무런 감각이 전해지지 않을 요리가 완성되었던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글의 양이 적었던 것도 문제가 됩니다. 이런 느낌을 일본 특유의 어떤 정갈한 느낌이라 볼 수도 있지만, 너무 ‘츤츤’한 대화가 오고간 듯해 보입니다. ‘츤데레’한 느낌을 살리기 위해선 뒤에 어떤 개연성을 보인 마무리와 함께 ‘데레데레’한 느낌이 따라붙어야 할 텐데 그러지 못한 점이 조금 아쉽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의 기호와 입맛이 똑같을 순 없으니, 소설집 《오늘의 요리》는 아마도 누군가에겐 훌륭한 오늘의 요리가 될 것이라 봅니다. 물론 영양소 가득한 웰빙의 느낌으로.

 

 


 

 

 

    마사토는 자신의 생각에 힘을 보태기 위해 굳이 큰 소리를 내며 컵을 내려놓았다. 휴대전화를 들었다. 번호를 눌렀다. 시바모토 아카네라는 글씨가 조그만 화면에 떴다. 그래도 얼마쯤 더 망설이던 끝에 마사토는 발신 버튼을 눌렀다. 호출음이 울렸다. 한 번, 두 번……아아, 긴장되네……. 세 번, 네 번……. 차라리 부재중전화로 바뀌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받았주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한다. 어느 쪽이 진짜 기분인지 모르겠다. (볶은 콩, 42쪽)

 

 

    그 고독 속에서 카즈토시는 한 편의 단편을 썼다. 문장은 최악이었고, 구성은 엉망이었다. 소설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다만 뭔가를 얻었다는 감각은 있었다. 음악에서는 절대 얻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문장은 계속 쓰면 좋아진다. 구성은 잘 수습하면 된다.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다. 무엇인가만은 노력으로 얻을 수 없다. (벚꽃놀이 도시락, 79쪽)

 

 

    교코도 나름대로 성인이다. 여러 가지 일을 경험해왔다. 이 시간에 남성이 유혹하는 의미쯤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교코는 끄덕이고 있었다. 그냥 몸을 맡겨버렸다. 스미다 씨가 주문한 것은 최고급의 샴페인이었다. (샴페인, 2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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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63 - 2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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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모든 것은 ‘진짜’와 ‘가짜’로 구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같은 것을 보고 느끼고, 느낀 점을 다시 표현한 것이라 할지라도 ‘진짜’가 있고 ‘가짜’가 있다고 봅니다. 아무튼 그것은 타고난 재주일 수도 있고 노력에 의해 어떤 경지에 이른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 소설을 ‘진짜’와 ‘가짜’로 구분할 수 있다면 이 소설은 ‘진짜’에 속하는 소설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표현이라도 무언가를 억지로 쥐어 짜낸 듯하여 어설퍼 보이는 글이 있습니다. 가장 좋은 예로 지금 제가 쓰고 있는 이런 글입니다. 하지만 스티븐 킹의 글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하나의 단어나 상황이 나오면 거기에 대한 이야기가 쉴 새 없이 굽이치며 끊임없이 쏟아지는데, 그건 억지로 만들어 낸 서술이 아니라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서술입니다. 그래서 그의 글에선 어설픈 느낌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약간 삐딱한 표정으로 ‘그래서 어쩌란 말인데’라는 미국식 개그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지만, 그 느낌이 전혀 과장되거나 작위적이지 않습니다. 보통의 영미권 스릴러 소설과 다르게 말입니다. 하지만 그토록 장황한 표현들도 사실은 스스로가 엄청나게 절제한 후 배출한 느낌의 것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글이라는 표현수단으로 한정하지 않았다면 그는 우리에게 더 장황한 이야기를 주절주절 끊임없이 들려주었을 거라고 봅니다. 내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이런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더라… 하며 말입니다.

 

 

    소설 『11 22 63』은 쉽게 말해 과거와 현재를 오갈 수 있는 시간여행의 토끼굴을 통해 한 남자가 과거로 향하고, 1963년 11월 22일에 암살당할 운명인 존 F. 케네디 대통령을 구하려 한다는 내용의 SF소설입니다. 아무래도 과거에 실제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을 이야기해야하는 만큼 사실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바탕으로 소설의 이야기가 더욱 현실감을 갖도록 하려했을 겁니다. 그런 노력의 흔적 같은 것이 보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조사 내용을 소설에 무리해서 담으려 했기 때문일까, 사실 소설 중반에는 하품이 나올 정도로 지루한 전개가 꽤나 길게 이어집니다. 오스왈트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조사하는 장면들이 그러합니다.

 

 

    반면 현재의 남자와 과거의 여자가 만나 서로 밀고 당기고 사랑을 나누는 장면들은 굉장히 흥미진진합니다. 내가 지금 무슨 일 때문에 과거로 왔던가 라며 멍한 기분에 휩싸일 정도로, 큰 뜻을 품고 과거로 향한 이유를 깡그리 다 잊게 만들 정도로, 영혼을 쏙 빼놓고도 남을 정도의 사랑…, 사랑…, 그리고 사랑… 오! 시간을 뛰어넘는 사랑이여.

 

 

    어쩌면 실제로 중요하게 여겨야 할 부분에서 지루함을 느끼게 하고, 어차피 현재로 돌아가면 무의미해질 부분에서 흥미를 느끼도록 한 것이 작가가 의도한 장치였을지 모릅니다. 일종의 최면처럼 말입니다. 1960년대 과거에서의 생활을 약간은 몽환적인 느낌이 들도록 유도하며 천천히 녹아들게 하면서 과거로 온 목적을 잃게 만들고, 중요한 일에 대한 질문에 혼돈을 느끼도록 한 것입니다. 결국 사랑보다 중요한 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시간 여행 소설이 보일 수 있는 전형적인 갈등 구조와 어느 정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말을 보이며 천 이백여 페이지에 걸친 장황한 이야기는 끝납니다. 개인적으로 무척 마음에 드는 결말입니다. 시간 여행을 다룬 소설은 항상 보통 이상의 재미를 선사하는 듯합니다. 이번 소설을 통해 스티븐 킹의 쫀득쫀득한 글로 풍덩 빠져들 토끼굴을 발견한 듯해서 매우 기쁩니다. 그런데 스티븐 킹의 토끼굴을 아무리 휘젓고 다녀도 중심을 다잡고 있을 어떤 일정한 화음이 반복된 소리를 내는 듯해서 정말로 신기합니다. 그의 글은 항상 비슷한 느낌의 화음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만족스럽고 익숙한 결과를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글을 즐겨 읽나 봅니다. 매번 보통 이상의 ‘진짜’소설을 발표하기 때문에. 그의 소설은 반복되기 때문에.

 

 

 


 

 

 

    2011년이 그때처럼 멀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제이크 에핑이 그때처럼 멀게 느껴진 적이 없었다. 텍사스 한복판, 파티로 불을 밝힌 체육관 안에서 테너 색소폰이 흐느껴 울었다. 그 소리가 달콤한 산들바람에 실려 밤공기를 갈랐다. 자리에서 일어나라고 은밀하게 유혹하는 드럼 연주도 들렸다.

    나는 그 순간, 돌아가지 않기로 결심을 했던 것 같다. (33쪽)

 

 

    과거는 화음을 추구한다는 말을 달리 표현하면 ‘역사는 반복된다.’가 되지 않을까? (193쪽)

 

 

    ‘잊자.’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미 엎질러진 물. 돌이킬 수도 없는걸.’

    사실 돌이킬 방법이 있긴 했지만. (349쪽)

 

 

    ‘이게 다 한 작품이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느 게 진짜 목소리이고 어느 게 되돌아온 가짜 목소리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완성형에 가까운 메아리로구나.’

    모든 게 퍼뜩 선명해지는 순간이 찾아오면 세상에는 별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사실이겠지만, 이 세상은 외침과 메아리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기계 장치에 불과하다. 톱니와 바퀴로 이루어진 척하지만, 우리가 인생이라 부르는 신비로운 유리 덮개 밑에서 시간을 알리는 꿈의 시계인 척하지만 그게 아니다. 그 뒤에는 뭐가 있을까? 그 밑에는, 그 주변에는 뭐가 있을까? 혼돈, 폭풍. 망치를 휘두르는 남자들, 칼을 휘두르는 남자들, 총을 쏘는 남자들, 군림할 수 없는 게 있으면 왜곡하고, 이해할 수 없는 게 있으면 비하하는 여자들. 조명 하나 외로이 비추는 무대에서 어둠을 무릅쓰고 춤을 추는 인간들, 그 주변을 에워싼 공포와 상실의 세계. (399쪽)

 

 

    안녕, 새디.

    당신은 나라는 사람을 모르겠지만, 사랑해요, 달링. (720쪽)

 

 

    그녀는 꿈을 꾸는 사람처럼 내 손을 잡는다. 그녀는 정말로 꿈을 꾸고 있고, 나도 마찬가지다. 달콤한 꿈들이 모두 그렇듯 눈 깜빡할 사이에 끝나겠지만…… 짧기 때문에 달콤한 것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흘러간 시간은 돌이킬 수 없으니까. (73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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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살기 5년차 혼자살기 시리즈 1
다카기 나오코 글.그림, 박솔 & 백혜영 옮김 / 매일경제신문사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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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트에서 장을 보다가 문득 다른 사람들이 구입하려고 계산대에 올려놓은 물건들을 보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겼던 적이 있습니다. 어떤 요리를 하려고 저 재료들을 구입하는 걸까, 가족이 몇 명인데 이렇게 많은 물건을 사는 걸까, 맥주 박스가 하나, 둘… 어디 가서 술잔치를 벌이려는 걸까, 고기 구워먹을 건가 보다… 맛있겠다, 등등의 생각. 그리고 제 바구니 안에 든 물건을 내려다 봤습니다. 그 안엔 온갖 인스턴트식품들이 담겨 있더군요. 조금은 부끄러운 마음이 생기기도 해서 근처 야채 코너의 상추 봉지 하나를 집어왔습니다. 마침 야채 중에서 가장 저렴한 가격, 1,100원에 판매하고 있던 참이라 인스턴트식품들로 가득 찬 제 장바구니를 건강한 이미지의 것으로 장식하기에 안성맞춤이었습니다.

 

 

    혼자서 살다 보면 이렇게 전혀 의식하지 않고 지낼만한 사소한 일들이 기억에 남는 하나의 사건이 되곤 합니다. 반면 혼자서 살다보면 신경써야할 여러 가지 일을 사소하게 여기며 생략할 수 있어서 좋은 점도 있습니다. 하기 싫은 집안일을 차곡차곡 쌓아 둔다고 해서 눈치 보거나 야단맞을 일이 생기지 않다는 점. 그렇다고 견디지 못할 정도로 엄청나게 더럽게 지내며 문에서 방까지 진입하는데 어려움이 생길 때까지 쓰레기를 쌓아놓고 지내는 건 아닙니다. 조금 있다가 치울 거라고 계속 생각 중에 있는데, 지금 당장 하라는 강요에 마지못해 억지로 치울 수밖에 없는 경우가 생기지 않아서 좋다, 뭐 그런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대신해서 집안일을 해주지 않을 것이 분명하니 미뤄둔다 한들 결국엔 언젠가 그 일을 스스로 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자유 의지를 갖고 한다는 점에서…. 아무튼 미묘한 차이지만 혼자 살며 누릴 수 있는 해방감, 혹은 자유라면 자유라 할 수 있는 장점이기도 한데… 흐음, 여전히 미묘합니다.

 

 

    혼자 살며 누릴 수 있는 자유는 이런 경우에도 해당됩니다. 먹고 싶은 다양한 종류의 라면을 다른 사람 눈치 볼 것 없이 매일같이 즐겨 먹을 수 있다는 점. 그렇다고 정말로 라면만 매일 먹고 사는 건 아니지만, 아침에 라면을 먹었다고 해서 점심엔 절대로 라면을 먹어선 안 된다는 식의 구속에서 자유로워서 좋다, 뭐 그런 것입니다. 아무튼 그렇게 한동안 저는 상추 맛에 푹 빠져서 주구장창 상추만을 먹었던 적이 있습니다. 샐러드 느낌이 나도록 각종 야채와 삶은 계란을 하나의 접시에 담아서 우걱우걱…, 그렇게 한 그릇에 담아 먹으면 나중에 설거지하기에도 편하기 때문에 자주 그런 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큰 태풍이 지나간 이후 상추 값이 4,500원으로 오르는 바람에 나름 계산된 웰빙 식단도 그만둬야만 했습니다.

 

 

    타카기 나오코『혼자살기 5년차』는 이런 느낌으로 혼자 살며 겪게 되는 사소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아니, 이것보다 더 재미있게 들려줍니다. 혼자살기 1년차와 혼자살기 5년차를 비교하며, 그냥 넘어갈 수 있는 일상의 사건을 귀여운 느낌의 그림과 함께 들려주는데, 아주 잠시라도 혼자 살아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통해 크게 공감할 거라고 봅니다. 평소에 생각이 많고, 주위를 잘 의식하며, 약간 소심한 성격의 여성이라면 더더욱 좋아할 이야기일 듯합니다.

 

 

    혼자 살기 중에서도 미혼여성이 도쿄에서 혼자 사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노하우 전수를 위한 정보 전달의 느낌으로. 예를 들자면 혼자서 밥 먹기 좋은 도쿄 내 식당에 대한 소개 같은 것입니다. 철지난 정보이고 일본에 한정된 내용이지만, 정보를 얻어 간다는 생각보단 혼자 식당에 들어서서 음식을 시키고 먹은 후 계산하는 일련의 일상적인 과정들을 통해, 뭐랄까… 발을 동동 구르며 키득거리고 ‘맞아 맞아’를 연발하며 공감하게 하는 표현들이 재미있으면서 한편으론 귀엽다고나 할까요. 사람들은 이토록 비슷한 생각을 하며 살고 있구나 하며.

 

 

    책에서 이야기한 혼자 살기에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한눈에 알아보기 위해 이 책의 목차를 나열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5년차의 방, 쓸쓸하고도 소박한 나의 식사, 단골 슈퍼마켓에서 장보기, 돈과 나의 미묘한 관계, 행복한 현실도피 목욕시간, 무심코 무서운 방송을 본 밤, 혼자서 덮밥집 가기, 감기 걸린 겨울날 밤, 부모님 댁 다녀온 기념품, 혼자서도 잘 마시는 법,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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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릿광대의 나비
엔조 도 지음, 김수현 옮김 / 민음사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솔직히 이런 소설은 처음 봅니다. 아니, 예전에 이와 비슷한 모양을 한 소설을 몇 편 읽었던 적이 있지만 이만큼 진짜의 모습을 하고 있는 소설은 처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인지 아닌지, 진짜인지 아닌지 여전히 추측뿐인 말입니다.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얼마나 괜찮은 소설이길래 이토록 애매모호한 표현을 써가며 칭찬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말을 늘어놓고 있는 것일까… 그런데 솔직히 괜찮은 소설은 아닙니다. 아니 그러니까, 괜찮은지 아닌지 그걸 정확히 잘 모르겠다는 겁니다. 이 소설을 풀어낼 열쇠를 아직 만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래된 보물 상자는 겉모양만 봐도 그 안에 어떤 어마어마한 보물이 담고 있을까 감이 옵니다. 굳이 열어보지 않더라도 지레 짐작으로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쾨쾨한 냄새, 잔뜩 낀 이끼. 육중하고 단단한 모양을 한 경첩. 굉장히 정교해 보이는 열쇠 구멍.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절대 열리지 않으며 굳게 입을 닫아 안에 담긴 무언가를 지키는 보물 상자. 결국 그 상자를 열 수 있는 방법은 세상에 단 하나만 존재하는 열쇠를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면 우리는 그 열쇠를 직접 만들어야 합니다.

 

 

    엔조 도의 소설집 《어릿광대의 나비》는 「어릿광대의 나비」와 「마쓰노에의 기록」이라는 기묘한 소설 두 편이 실려 있습니다.

 

 

    《어릿광대의 나비》는 일종의 암호입니다. 그리고 그 암호 해독법이 소설 속 이야기에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물론 제가 직접 그것을 풀이해낸 건 아닙니다. 문장의 첫 단어들을 모아서 하나의 문장으로 나열해 보니 결국 답이 되었다, 하는 식의 단순한 암호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글로 쓰인 쿤데라의 소설을 읽습니다. 프랑스어 소설의 번역본을 읽는 것입니다. 하지만 쿤데라가 처음 썼던 소설은 체코어로 되어 있습니다. 이와 비슷하게, 광복 이후 우리나라에 들어온 서양의 소설은 일본을 통해 번역의 번역을 거친 것입니다. 아무튼 이런 방식으로 우리가 전혀 모르는 언어, 완전히 다른 기원을 갖는 언어들을 사용하여 여러 번의 번역 작업을 거치다보면 간혹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어떤 언어에는 특정 단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그래서 무의미한 의미들이 사라진 하나의 문장으로……. 그것은 마치 큰 돌 덩어리 같아 보이는 글이 무수히 많은 번역을 통해 다듬어져 원석의 느낌을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깎이다가 마침내 고유의 색을 띠고 빛을 내며 살아남은 단 한 줄의 문장과 같은 느낌입니다. 그리고 그 문장이 바로 이 소설을 열 수 있는 열쇠이자 보석입니다.

 

 

    그렇다고 그 열쇠가 어떤 물질로 구성되어 있는 건 아닙니다. 릿광대의 나비》를 읽다보면 평소에 우리가 잘 쓰지 않는 머릿속 어딘가가 개방되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머릿속 어딘가에 오랜만에 드리워진 따뜻한 빛에 잠깐 동안 눈부심을 느끼고 약간의 적응 시간을 가진 후 입을 오므려 그동안 쌓여 있었던 먼지를 조금씩 후후 불어내고 간질이며 자극하는 말랑말랑한 느낌…, 책을 읽는 행위가 이토록 신비로운 경험인지 그동안은 미처 몰랐습니다. 줄거리 요약, 함축적 의미해석, 공감대 형성 등과 전혀 무관한, 완전히 다른 형태의 새로운 기쁨… 이런 느낌이 혹시 미래의 소설을 읽는 즐거움이란 것일까요.

 

 

    《어릿광대의 나비》는 분명 낭만적이고 매력적인 느낌의 공상을 그린 소설이지만, 이를 부정하는 요소도 많을 거라고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물 상자 속에 든 보물의 진위여부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상자 속에 든 보물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습니다. 그저 이런 소설을 읽는 동안 평소에 느끼지 못했던 기분에 휩싸여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보물 상자에 맞는 열쇠를 만들기 위해 머릿속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니던 신비로운 감각들이 소중한 것입니다. 소설의 표면적 의미를 쫓기 위해 어릿광대처럼 포충망을 휘두르며 착상의 나비를 잡으려 노력할 것이 아니라, 팔이 셋 달린 사람이 수예로 정교하게 짠 이 소설의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야 할 것입니다.

 

 

 


 

 

 

    그가 남긴 문장에서는 격조도 어조도 마구잡이로 섞인 잡다한 웅성거림으로 시작해, 서서히 하나의 목소리로 정리되어 가는 모습이 보이곤 한다. 처음에는 그저 연쇄된 소리를 들리는 대로 옮긴 것으로 보이던 것이 맞춤법이 애매한 문장으로 자라나서, 서서히 비유 표현을 갖추고 오탈자를 줄여 문장의 모습을 이루어 가는 모습은 이상하게 마음을 움직이는 효과가 있다. (어릿광대의 나비, 36쪽)

 

 

    말을 배우는 과정이 수예의 진보와 함께 이루어지는 이상, 내 어휘는 수예 용어와 요리 용어를 중심으로 한다. 거기서부터 부족한 게 더해져서 내 말은 짜이고 익는다. 요리 책을 쓰겠다고 나설 만큼은 미각이 발달하지 않았다. (어릿광대의 나비, 54쪽)

 

 

    그렇게 해서 나는 떠올린다. 내가 잊는 것은 기억 그 자체가 아니라 기억이 담기는 장소의 주소이다. (어릿광대의 나비, 56쪽)

 

 

    그 나날에는 서로가 서로의 도구에 가까웠다는 기분이 희미하게나마 든다. 인간이 아닌 도구라고 한다면 언제든 누군가에게 수집되어, 혹은 스스로의 의사로 언젠가는 이곳에 오게 될 것이다. 그게 대체 누구였는지 나는 더 이상 기억하지 못 하겠지만. 아마 얼굴을 봐도 모르겠지. 실제로 대면해도서도 모를 것이다.

    되풀이되는 이름은 호소다.

    같은 일을 계속하려고 했지만 줄곧 다른 일이 일어나면서, 내 손을 거친 것들에, 내가 아닌 것들이 섞여 들어온다. (어릿광대의 나비, 84쪽)

 

 

    다시 말해 닮았다는 뜻이다. 남들과 다른 방식이 닮았다는 뜻. 왠지 우울해졌다. 고독이라는 개념은 개념으로 존재한 시점에서 고독과 멀어지고 만다. (마쓰노에의 기록, 107쪽)

 

 

    이야기의 내용은 그 정도이지만, 그렇게 된 것은 마쓰노에의 번역 때문이었다. 마쓰노에는 얼굴 가죽을 쭉쭉 벗긴다는 게 오죽 마음에 들었는지 묘사를 대폭적으로 늘리고 그 뒤로 이어지는 그럭저럭 정상적인 결말을 삭제해서 계속 가죽만 쭉쭉 벗기는 이야기로 만들었다. 나로서도 역시 그건 좀 그렇다 싶었는데, 읽다 보니 줄거리고 뭐고 상관없이 그냥 계속 가죽만 쭉쭉 벗기는 묘사가 굉장히 재미있게 느껴지면서 이대로도 괜찮겠다는 기분이 되었다. (마쓰노에의 기록, 144쪽)

 

 

    당신들은 진실만을 쓰는 게 아니잖아요. 진실만을 쓰는 게 아닌데, 진실조차 다 쓰지 못하죠. (마쓰노에의 기록, 146쪽)

 

 

    생각은 해도 뭘 하면 되는지는 아직 모르겠어. 바뀐 것은 내 인식이지 이 세상이 아니니까 말이야. 실제로 내가 일으킬 수 있는 행동은 무엇 하나 변한 게 없어. 앞으로 변할 가능성도 거의 없고. 내가 쓰는 내용은 변해 가겠지. 하지만 글자가 변하는 건 아니야. 변함없이 괴상한 이야기를 쓰게 될 뿐이야. 거기에 대해서는 포기하고 있어. 자네 역시 이런 경험을 했다고 해서 지금까지와 다른 일을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고.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바라고 있는 걸까. 나는 나의 바람을 자네가 나를 대신해서 이해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어. (마쓰노에의 기록, 163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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