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 소세키와 런던 미라 살인사건
시마다 소지 지음, 김소영 옮김 / 도서출판두드림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1.

    저는 이 소설을 읽고서, 뭐라고 표현하기 힘든 충격을 받고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정말로 이것은 진짜였습니다. 황량한 부두와 템스 강 수면의 풍치에 잘 녹아들어, 백만 개의 말을 초월해 런던이 가진 기쁨이며 슬픔을 제게 호소하는 것 같았습니다. 마치 셜록 홈즈가 갑자기 짚어 든 가방에서 바이올린을 꺼내 들어 나쓰메 소세키에게 들려주기 위해서 켠 멘델스존의 무언가 선율처럼, 제 가슴 속에서 이토록 과장된 말이 저도 몰래 솟아 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2.

    시마다의 글은 고지식하게 젠체하지 않는다. 분명 많은 것을 알고 있고, 또 소설을 위해 많은 조사를 했을 테지만, 알고 있다는 티를 내지 않으며 적당한 높이에서 독자와 나란히 나아가길 추구한다. 더군다나 그는 그의 매작품마다 틀에 얽메이지 않으려 하며 자유로운 글을 쓰기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게 한다. 어찌보면 그런 그의 노력이 대단히 어려운 글을 쓰는 사람들의 눈에 하찮아 보일 수도 있겠다. 게다가 그가 추구한 새로운 것이란 것이 사실은 모방과 흉내내기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세상에는 전혀 새로울 것이 없으니 이 부분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 하겠다.



    3.

    하지만 별일 아닌 것 같은 것에서 창조적인 요소를 찾아내는 것이 바로 예술가가 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시마다 소지의 글은 템스 강 앨버트독에 정박하려 하지 않고, 항상 어디론가를 향하고 있으며 언제든지 출항할 준비를 다 마친 증기선의 알람 소리처럼 사람의 마음을 설레이게 한다는 점에서 굉장히 좋습니다. 그리고 그의 소설,『나쓰메 소세키와 런던 미라 살인사건』은 영국 유학 경험이 있는 나쓰메 소세키가 런던에서 셜록 홈즈와 조우하지 않았을까 하는 재미있는 생각을 담고 있는 추리소설입니다. 그래서 소설은 나쓰메의 서술과 왓슨의 서술을 교차적으로 보여줍니다. 제가 지금 어설프게 흉내내고 있듯이, 완전히 다른 형태의 글을 서로 다른 시점에서 한번씩 보이는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이런 구조가 대단히 재미있습니다. 말하는 사람에 따라 사용하는 단어와 용어의 차이를 구별해가며 읽는 것은, 소설이 갖고 있는 또 하나의 재미이고, 추리하며 가지고 놀 작은 장난감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4.

    소설에서 왓슨이 들려준다는 설정의 글은 코난 도일이 직접 쓴 소설이라 여겨도 될 만큼의 완성도를 갖고 있다. 이런 소설을 패스티시라고 하는데, 이 소설은 나쓰메 소세키의 글이라고 여겨지는 부분도 동시에 등장하기 때문에 그 완성도는 더욱 높다고 할 수 있다. 홈즈의 모험담은 지금까지 공개된 이야기로 60편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시마다는 도쿄 국회도서관에서 나쓰메의 수기로 보관된 기록과 그동안 왓슨이 공개하길 꺼리며 숨겨두었던 수기를 발견함으로써 61번째 홈즈의 모험담이 바로 이 런던 미라 살인사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동시에 이 소설을 나쓰메의 문학을 공부하는 수험생들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하며,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더 강조한다.



    5.

    61에 대한 연구는 소설 안에서도 잠시 모습을 드러냅니다. 주홍색 연구도 아니고, 그렇다고 레이첼도 아닌, 이 61에 대한 연구는, 그것을 쫓는 과정에 고요한 새벽 안개의 런던 시내를 시끌벅적하게 만드는 마차 추격신이 빠진 듯해 다소 밋밋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 연구의 존재만으로도 셜록 홈즈 시리즈의 부활이라고 외치게 할만큼의 향수를 만들어 냅니다. 특히 일본으로 돌아가려 하는 나쓰메 소세키를 배웅하기 위해 나타난 홈즈와 왓슨의 모습은, 62번째 이야기가 어딘가에 있다는 강한 믿음과 함께 어딘가에 있어야만 한다는 강한 집착을 만들어 냅니다. 홈즈가 만들어낸 바이올린 선율은 셜로키언들이 숨겨진 왓슨의 수기를 찾아내고야 말겠다 라는 집념을 담아, 홈즈를 그리워하는 우리들의 마음을 울리고 있었습니다. 



    6.

    앞에서 한번 언급했듯이 이 소설은 독자의 기대치에 따라 유동적인 만족감을 선사한다. 큰 기대를 하고서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와 『런던 소식』을 미리 읽어본 독자에게는 이 소설을 통해 역사적 사실과 그의 문학 활동에 대해 고증할 수 있을 것이고, 셜로키언들은 홈즈의 이야기를 통해 지나간 홈즈의 모험담을 비롯한 그의 사소한 버릇과 런던의 풍경을 관찰하는 것으로서 기대했던 만큼의 지식과 재미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홈즈와 나쓰메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의 독자라 하더라도 가벼운 추리소설 정도의 느낌으로 이 소설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7.

    개인적으로 시마다 소지의 『나쓰메 소세키와 런던 미라 살인사건』은 제가 원하는 추리소설의 좋은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잔재미가 가득 담겨있고, 설정된 인물이 개성있어서 재미있는 모습을 보이고, 가슴이 먹먹하게 만드는 약간의 감동이 배경의 느낌, 그리고 감정의 묘사와 함께 잘 어울어져 문학적인 느낌을 살짝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설을 다 읽어서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자마자 다음 이야기를 기대하고 궁금하게 만듭니다. 또한 무언가를 더 자세하게 알고 싶어서, 혹은 놓친 부분이 있지 않을까 우려해서 다시 한번 더 읽어보게 만듭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소설은 연구가 필요한 글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런 추리소설이 좋습니다.







    세상에 새로운 사건이란 없어요. 언뜻 보기에는 별일 아닌 것 같아도 창조적인 요소를 찾아내는 것이 예술가의 눈이겠죠. (49쪽)



    "우리가 직면한 이 사건도 진행이 이렇게 독특한 만큼 자네도 기록자로서 구미가 당기겠지. 그런데 왓슨, 부탁이 있네. 이 사건은 나의 보기 드문 대실패의 기록이 되리라고 생각해."

    거기까지 말한 그는 오랜만에 자신이 애용하는 흔들의자에 몸을 깊이 묻고, 꽤 오랫동안 아무 말 없이 파이프 연기만 뿜어댔다. (136쪽)



    "왓슨, 이제서야 나도 고통에서 벗어날 때가 왔네. 자네의 작가적 영감이 이끄는 바가 있어서 이 사건의 전개 과정을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대중서로 만들 생각이라면, 진정 힘을 발휘한 것은 내가 아니라 이 멀리서 온 손님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써넣어야 하네. 내 역은, 이번에는 참으로 미약했어." (168쪽)



    "와, 놀랐습니다. 저는 범인을 잡을 땐 한바탕 난리법석을 떨며 추격전을 벌인 끝에 잡는 거라고 생각해 왔는데요. 당신의 유명한 이름과 함께 몇 가지 소문은 전부터 들어서 알고 있긴 했지만 그것도 상당히 축소된 이야기였던 것 같네요. 홈즈 씨가 가만히 있어도 범인이 저절로 빨려 들어오는 것 같습니다." (212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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