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로스 & 토르소
크레이그 맥도널드 지음, 황규영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8월
평점 :
품절




    누군가가 죽어야 예술이 된다는 소설. 크레이그 맥도널드『토로스&토르소』는, 범죄소설가 헥터 라시터라는 인물이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 영화감독 오손 웰즈 등 문화예술계 실존 인물들과 함께 몇 차례에 걸쳐 살인사건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다는 내용의 스릴러입니다. 그리고 살해당한 피해자들의 모습이 하나같이 초현실주의 미술 작품을 그대로 모방한 기이한 형태라는 점에서 미스터리한 소설이기도 하고, 묘하게 스파이소설같아 보이기도 합니다.



    일단 다국적 느낌의 미녀가 많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스파이소설과 굉장히 닮았습니다. 두 남녀가 침대쪽으로 쓰러질 때마다 마침 창밖에서 저물고 있던 붉은 노을이 더욱 요란하게 이글거릴 장면으로 오버랩되곤 합니다. 아니면 우연히 옆에 있던 모닥불 안에서 장작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그것도 아니면 휘몰아치는 창 밖의 폭풍우를 비춰준다거나, 소용돌이 치며 넘실거리는 파도를 보여준다거나. 아무튼 심심찮게 이러한 장면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어린 나이에 한창 상상의 나래를 펼치며 유익한 모든 지식을 습득하려할 제게 꽤 좋은 교육이 된 듯합니다.



    또한 소설의 배경이 마이애미, 키웨스트, 마드리드, 뉴욕, LA, 파리 등등 장소에 구애받지 않다는 점에서 역시 스파이소설을 닮았습니다. 주인공은 당연하다는 듯 소설의 중심에 있지만 주변 인물들의 그림자처럼 배후에 있는 듯한 느낌입니다. 그래서 간혹 변화무쌍하며 신출귀몰한 느낌의 스파이처럼 여겨질 때가 있습니다. 또 소설에는 공산주의와 초현실주의, 즉 정치와 예술에 대한 생각이 어느 정도 이야기를 지배하고 있기도 한데, 첩보 영화에서 사건의 계기를 만들어 낼 때 주로 사용하던 방식이라 꽤 익숙한 느낌입니다. 인물들은 요트를 타기도 하고, 때론 낡은 뷰익을 몰기도 합니다. 또 머리맡 베게속에 콜트 권총을 숨겨 둔다거나, 갑자기 대문을 박차고 나와 인중을 향해 더블바레 샷건을 겨냥하기도 합니다. 그런 느낌들이 마치 '이 소설은 스파이소설이요'하는 듯합니다.



    범죄소설가 헥터 라시터는 키 크고 잘 생긴 훈남형 혹은 호남형에 매너있고 젠틀하고, 약간 부유하고 낭만적이고 정열적이고, 때론 상냥하기도, 혹은 저돌적이기도 한, 아무튼 어떠한 수식어를 붙여도 딱 들어맞을 법한 느낌의 주인공입니다. 그런데 영국 007출신의 느낌은 아니었고 약간 거친 느낌의 텍사스 출신 사내입니다. 그래서 영국식의 기교 넘치는 스파이가 아닌, 조금 거친 정면돌파 느낌의 미국식 스파이같아 보입니다. 그 때문에 다 같은 스파이 소설이라고 하기엔 조금 다른 느낌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 그렇다고 헥터가 정식 스파이인 것은 아니고, 그렇다고 이 소설이 전적으로 스파이소설이라는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아무튼 소설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이 부분이 조금 아리송하게 느껴진다는 것입니다. 하필 가는 곳마다 사건사고가 항상 생겨나니 마치 긴다이치 코스케를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아무튼 소설은 현실과 허구를 넘나들며 꽤 재미있는 모습을 보입니다. 특히 누구나 들어보면 알만한 이름의 실존인물들이 헥터 주위에서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부분들이 무척 좋았습니다. 그런 부분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두다 증명해볼 길은 없지만, 일단 비슷한 연대와 비슷한 지역에 그 인물들이 실존했다는 점에서 꽤 그럴싸한 모습을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이렇게 소설과 현실이 교묘하게 만나는 느낌의 이야기를 좋아해서 눈을 반짝여가며 읽을 수 있었습니다. 또한 왠지 모를 1930년대를 향한 로망같은 것이 있어서 개인적으론 이러한 느낌도 무척 좋았습니다. 살짝 B급의 느낌으로 우당당 쾅쾅 탕탕 스윽 꼴까닥 까꿍, 하는 식의 전개가 그 자리에 이야기의 끝을 바로 보게끔한 힘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끝으로 초현실주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사실 이 부분은 제가 잘 모르는 부분이라 아는 척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다만 조금 미스터한 느낌으로 이야기하자면, 표현하는 예술이 표현하는 방식의 한계에 이르렀을 때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예술가들이 추구하려할 행위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굉장히 극단적으로 무시무시할 것입니다. 그래서 만약 가장 사실적인 형태의 살인이라는 주제로 예술을 하려 한다면, 그건 예술가가 살인을 직접 표현해봄으로서 그것의 광기를 가장 잘 그려낼 수 있는 것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예술가가 초현실주의를 지향하는 예술가라면 그의 작품은 다 잘라놓고서 무언가를 넣거나 빼고 혹은 늘리거나 줄여놓아, 무언가 뒤틀리고 어긋난 모양새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현실을 초월한 느낌일 것이 분명하니 작품의 분위기는 매우 괴기스러울 것입니다. 그리고 간혹 그 중에서 세기를 뛰어넘을 대단한 걸작이 나올 수도 있으니, 우리는 예술을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위험하게 예술의 심기를 건드리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란 생각마저 듭니다.






    내가 미스터리 소설가가 아니라 범죄소설가임을 잊지 마시오. 나는 정면 돌파하는 스타일이지. (24쪽)



    몇 년 전, 작가 지망생들을 타깃으로 하는 잡지에서 헥터를 포함한 《블랙 마스트》지의 동료들에게 어두운 범죄소설의 정의에 대해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헥터는 "줄거리는 캐릭터, 계기는 집작이다. 여정은, 겉으로는 어떻게 보이든 간에 언제나 피투성이의 축제에 대항하여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전구가 떠오르면, 세계는 어두워진다. 해피엔딩은 없다"라고 대답했다. (109쪽)



    난 그저 항상 작품에 정치색을 가미하는 작가들에 대해 회의적이었소. 내가 미술이나 조각, 극장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떠들 자격은 없지만. 하지만 산문에, 내 말은 소설에 정치를 더한다는 것은, 내 생각에는 문학을 붕괴시키는 것 같소. 예술은, 정말 좋은 예술은 시대를 초월하는 법이에요. 그러나 정치는, 그 당시 얼마나 심각하고 중요한 사안이든지 간에 시간이 지나면 덧없는 것이죠. 소설에 정치를 더하면 유통기한을 정해놓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데다가 더 심하면, 아예 훼손해버리는 것이지요. (182쪽)



    순수문학적인 스릴러요. 실화에 약간 바탕을 두고 있지. 어떤 지역에서 난봉꾼 미술가들이 몇 세기에 걸쳐 창작을 거듭하는데 사회와 격리된 곳인 데다 행동에 제약이 없었기 때문에 방탕함에 잠식되는 거요. 그래서 추상적인 정치와 사회 활동으로 이를 상회해보고자 하지. 하지만 이미 닳고 닳은 그들은 퇴폐주의로 빠져버리고, 그러고는 살인…… 그저 어떤 느낌을 가져보고자 피투성이의 상태로 몰고 가는 거요. (311쪽)



    투우에서는 케렌시아라는 용어가 있지. 헤밍웨이가 말하길 케렌시아는 투우장 안에서 황소가 편안함을 느끼는 장소라더군. 자꾸만 그 지점으로 돌아와 결국은 죽는다는 거야. 내가 당신의 케렌시아일지도 모르겠군. (401쪽)




 

크롱의 혼자놀기 : http://ionsupply.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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