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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 정치의 죽음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6년 8월
평점 :
2016년 9.11 행사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폐렴으로 휘청이며 경호원들에게 둘러쌓인 동영상이 공개되며 미국 대선판도가 출렁이고 있다. 여론조사에서는 대체적으로 힐러리가 앞서지만, 가끔 트럼프가 우위에 있다는 결과도 나온다. 그럼에도 당선 가능성 조사에서는 힐러리가 적으면 60% 많으면 70%까지 나온다. 트럼프 지지도가 힐러리에 크게 뒤지지 않지만, 트럼프 지지자들도 설마 당선될까 생각하는 듯 하다.
브렉시트 투표와 비슷한 흐름이다. 브렉시트 여론조사는 잔류가 브렉시트 찬성보다 우위에 있는 것으로 드러났고, 도박 사이트에서도 잔류 가능성이 훨씬 높았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이 책에서도 지적하지만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인기에는 비슷한 점이 있다. 바로 이 책의 부제인 ‘정치의 죽음’이다.
기존 정치체계에 대한 불신, 미디어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했기 때문에 그 안에 속해있지 않은 트럼프에 대한 지지로 이어진다. 여당이든 야당이든 기존 정치권에서 브렉시트가 경제적 재난을 가져온다고 겁을 줄수록 대중들의 브렉시트에 대한 지지도는 높아지는 것과 비슷하다. 기존 정치인들이 트럼프를 또라이라고 비토할수록 그의 지지율은 더 올라가는 아이러니한 형국이다.
트럼프가 정치자금을 별로 받지 않고 자기 돈으로 정치를 하는 점이 지지도의 큰 축을 차지한다. 힐러리처럼 기존 정치인들은 월가와 대기업들, 로비단체의 합법적인 정치자금을 수없이 받기 떄문에 그들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고, 말만 말고 행동으로 미국 국민들을 위한 정치를 할 수 없다는 논리다. 반면에 정치자금으로부터 자유로운 트럼프는 직접 행동으로 미국인들을 위한 정책을 펼칠 수 있다는 믿음이다.
더구나 SNS, 즉흥적인 연설을 통한 직설적인 화법, 위선없는 솔직함은 유권자들의 욕구를 정확히 포착했다. 기존 정치인들은 공적인 영역에서 정치적으로 올바른 표현을 쓰고, 건전한 사고방식과 좋은 이미지를 보이기 위해서 애쓴다. 그러나 결국 드러나는 정치인들의 비위, 비상식적인 발언과 행동들은 종국에 그들을 더욱 위선적으로 보이게 만든다. 이를테면, 열정적으로 소득 불평등에 대해 연설한 정치인이 실제로 수천만원 짜리 명품옷을 입고 있는 경우이다. 그러한 체계 밖에 있는 아웃사이더 트럼프에게는 막말과 실수, 모자람 마저 인간적인 매력으로 통한다.
조금 더 멀리가면 금융위기의 유산으로 보인다. 2008년 금융위기 때 월가는 엄청난 잘못을 저지르고도 감옥에 간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실업률은 18%에 육박했다. 그런데 보너스는 꼬박꼬박 챙겼다. 워싱턴은 그런 금융 기관을 구제금융 해줬다. 이 일이 합리적이고 결국 다수를 위한 일일 수 있지만, 대중들의 분노는 트럼프와 브렉시트를 만나 발화한다.
이 책은 다작을 하시는 강준만 교수의 근간이다. 엄청난 인사이트가 담겨져 있기 보다는 스크랩을 시간 순으로 잘 배열해 놓은 것에 가깝다. 내외신 및 트럼프가 쓴 책, 그에 대한 책 등 방대한 자료들이 잘 배치되어 있다. 트럼프에 대한 자료가 일천한 상황에서 이러한 자료만으로도 매우 도움이 된다. 트럼프의 부모, 어린 시절과 사업을 해온 과정, 여자관계 같은 사생활 그리고 리얼리티 쇼에 나가면서 전국적인 지명도를 얻게 된 자세한 과정도 눈여겨 볼만하다.
그는 천성 사업가이다. 기본적으로 생각만 하고 앉아 있기 보단 행동으로 나선다. 워커홀릭이다. 잠도 4시간 이상 자면 안 된다고 한다. 지기 싫어하며 욕심이 많다. 자기 과시욕이 많다. 일종의 나르시시즘에 빠져있다는 소리도 듣는다.
부동산 개발 사업을 하면서 언론을 잘 이용했다. 자신의 부동산을 홍보하는데 언론의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언론도 직설적인 발언을 많이 하고 가는 곳마다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트럼프를 이용했다. 돈이 되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오고가는 막말로 계속 읽기가 쉽지는 않다. 그래도 트럼프의 성장과정, 개인적 성향 등을 더 자세하게 알게 되는 소득은 있다. 과연 다음 미국 대통령은 과연 누가 될까? 세계 최강국의 대통령은 세계 질서의 흐름을 좌우하는 빅 이벤트가 아닐 수 없다. 불행하게도, 아니면 다행하게도(?)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은 지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높다고 생각한다. 트럼프, 브렉시트 현상 근저에 해당하는 흐름이 유사하다면, 브렉시트가 일어난 것처럼 트럼프 당선 가능성도 상당히 높아 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상한 새로운 시절이 도래하기 전에 읽어두면 의사결정을 하거나 계획을 세울 때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