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는 날마다 축제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주순애 옮김 / 이숲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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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가수나 밴드의 1집은 일부러 찾아 듣는다. 대개 촌스럽고 어리숙한데, 3,4집에서 느낄 수 없는 풋풋한 매력이 있어서 좋다. 이 책에서 헤밍웨이는 1집 시절을 회고했다. 그는 20대 중반 신문기자 특파원 신분으로 파리에서 7년간 거주했다. 우디 앨런의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 ‘벨 에포크’라면서 나오는 1920년대 그 시절이다. 그 영화와 이 책에 나오는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의 시대이기도 하다. 


습작을 쓰던 시절 헤밍웨이는 불안했다. 좋은 작품을 써야겠다는 목표는 있었으나 성공할지에 대한 확신은 없었다. 빈궁한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생계 걱정을 했다. 가난했지만 당당했고 위축되거나 구차하지 않았다. 그는 젊었고 꿈이 있었다. 잔 기교로 잘 팔리기만 하는 글을 쓰려고 하지는 않았다.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고, 진실한 한 문장을 쓰고자 했다. 영감을 주는 주변 예술가 들과 교류하며 생활한다. 파리의 지명과 카페, 서점 등을 배경으로 동시대의 예술가들과 소소한 에피소드들이 수를 놓는다. 


아무래도 관심이 가는 부분은 피츠제럴드와 일화이다. 그는 이미 당시에 <위대한 개츠비>의 성공으로 명성과 부를 이룬 작가였다. 뒷부분에 꽤 많은 분량으로 그와 헤밍웨이의 에피소드가 나오는데 두 독특한 캐릭터가 교류하는 장면이 흥미롭다. 피즈제럴드의 아내 젤다의 성격과 피츠제럴드와의 관계도 제 3자의 눈으로 잘 드러난다. 


헤밍웨이는 매일 글쓰기를 놓치지 않았다. 마치 무라카미 하루키가 매일 정해진 분량의 글을 쓰는 것처럼 헤밍웨이도 아무리 글이 잘 써져도 정해진 양만 썼다. 그리고 내일 쓸 분 내용을 대략 머리 속에 구상해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글을 마치고, 또는 글이 잘 풀리지 않으면 파리 곳곳을 산책했다. 


이 책은 1961년에 헤밍웨이가 자살하기 몇 년전에 과거를 회상하면서 쓴 글을 모아놓은 유작이다. 일종의 회고록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왜 전체 삶 중에서 이 시절을 되돌아 본 걸까? 말년의 헤밍웨이는 힘들었는데, 가장 아름다웠기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견뎌보려했던 건 아닐런지. 왠지 책이 써진 기간을 보니 아름다운만큼 뒷면에 쓸쓸함이 묻어있는 것 같아 안타까웠다.


한글 번역본은 상당히 충실하다. 우선, 아름다운 흑백사진이 많이 들어있다. 책 내용에 중에 언급된 장소를 사진으로 보여주는 것 같은데, 감정이입을 쉽게 하도록 해준다. 훌륭하다. 또한, 대화 내용 중에 동시대 수많은 예술가들이 나오는데, 유명하지 않은 인물들도 많다. 이에 대한 충실한 역주가 돋보인다. 말미에 나오는 헤밍웨이 연대표나 풍부한 사진 자료가 이 책을 헤밍웨이 인생 전체에 대한 회고록처럼 느껴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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