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브라운 신부 전집 4
G. K. 체스터튼 지음, 김은정 옮김 / 북하우스 / 200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인적으로 브라운 신부 전집 중에서 가장 재미있게 읽은 권. 비밀이라는 제목에 어울리게 이 어리숙하고 귀여운 신부님이 어째서 그렇게도 범죄자들을 잘 꿰뚫어보는가 하는 의문에 대한 해답이 펼쳐지며, 1권을 읽으면서 제일 궁금했던 점 - 대체 플랑보를 어떻게 회유했을까 싶었던 의문도 해결해 준다. 트릭이나 범죄 자체보다는, 심리적인 허점과 맹점을 꿰뚫는 브라운 신부 특유의 통찰력이 유난히 빛을 발한다고 할까. 귀여운 면보다는 약간 어둡고 사색적인 면이 돋보이는 편. 2, 3, 5권에도 빛나는 단편이 실려 있기는 하지만, 전집을 다 보기가 버겁다면 1권과 4권을 보라고 권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니아를 위한 세계 SF 걸작선
아이작 아시모프 외 지음, 정영목, 홍인기 옮겨 엮음 / 도솔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서점에서 보고 반가움을 숨기지 못했다. 말 그대로 걸작이 줄줄이 실린 걸작선이건만 절판되어 한동안 구하지 못했던 그 책들이 아닌가. 하지만 앞에 '마니아를 위한'이 붙은 것은 섭섭하다. 이 안에 담긴 단편 중 3분의 2는 SF를 처음 접하는 사람이 읽는다 해도 감탄사를 발할 만한 글인 것을...

장편도 좋지만, SF라는 장르 최고의 묘미는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촌철살인의 시원함이 아닐까. 여기 실린 20여편의 단편으로 모든 것을 담아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정수를 맛볼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특히 좋아하는 소설은 어슐러 르귄의 특징이 너무나 잘 드러난 단편 '아홉 생명'과 에일리언의 원작 소설을 쓰기도 한 반 보그트의 '괴물'. 하지만 그 외에도 모두 훌륭하다. 너무나 통렬해서 훌륭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다소 괴로워하며 읽었던 코니 윌리스의 '사랑하는 내 딸들아'나 날카로운 페미니즘 시각이 돋보이는 팻 머피의 '채소 마누라'같은 소설, 뛰어난 반전을 자랑하며 처음 읽었을 때 말 그대로 전율을 금치 못했던 필립 K.딕의 '두번째 변종', 장중하고 무거웠던 장편과 달리 유쾌한 렘의 '용과 싸운 컴퓨터 이야기'...... 즐겁고 따스한 '은하치과대학'이나 너무나 잔인한 상황이 설득력 있게 느껴져 읽고 나서 아연해졌던 '째째파리의 비법', 분위기가 나를 사로잡았던 '나는 불타는 덤불이로소이다'......어느 것 하나 버릴 게 없다.

걸작 한권이 재판으로 나올 때마다 이렇게 기뻐해야 하는 SF팬의 처지가 한편으로는 서글프기도 하고, 최근 필립 K. 딕의 단편선에 이어 이 책도 다시 나왔으니... 다른 책도 새로이 나오기를 기대한다면 지나친 욕심일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란의 여름 캐드펠 시리즈 18
엘리스 피터스 지음, 김훈 옮김 / 북하우스 / 2002년 6월
평점 :
품절


18권은 이제까지의 캐드펠 시리즈와 사뭇 다른 배경과 분위기에서 진행된다. 이제는 익숙해진 시루즈베리 수도원과 마을의 풍경, 익숙해진 이름들에서 벗어나 낯선 땅 웨일즈로 들어선 캐드펠의 휴가 여정은 다소 생소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이번에 캐드펠은 자신이 수사를 펴나가고 사건을 해결하는 입장이 아니라 철저히 관찰자 입장에 머물고 있다. 그런 점 때문인지, 솔직히 초반부에는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아 불편하기도 했다.

그러나 읽어나갈수록 '반란의 여름'은 색다른 재미를 선사해 주었다. 웨일즈의 황야와 성에 대한 묘사에는 따듯한 애정이 깃들어 있고, 어딘가 먼 전설 속에서나 보았을 법한 아름답고 강한, 그러면서도 소박한 군주와 젊은이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잔잔한 즐거움이다. 언제나 그랬듯, 캐드펠 수사는 사람의 어두운 면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잃지 않는다.

'반란의 여름'편보다는 시리즈 전체에 대한 감상이 되어버렸지만, 범인 찾기나 트릭을 알아내는 재미는 떨어질지 몰라도 (사실 캐드펠 시리즈에서 살인범은 너무나 쉽게 찾을 수 있다!) 유려하게 굽이치는 역사의 한귀퉁이, 섬세하고 따스한 사람들과 생활 묘사만으로도 읽는 재미가 있는 소설이다. 캐드펠 수사는 10권을 넘어선 시점에서 에르큘 포와로, 브라운 신부와 함께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탐정으로 등극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죽은 자가 무슨 말을 필립 K. 딕의 SF걸작선 2
필립 K. 딕 지음, 유영일 옮김 / 집사재 / 2002년 6월
평점 :
품절


필립 K.딕의 작품이, 그것도 본래 그의 장기인 단편집이 소개된 것은 너무나 반갑고 기쁜 일이나, <마이너리티 리포트>와 <죽은 자가 무슨 말을>을 다 사서 읽고 느낀 안타까움도 만만치 않았다. 좀 더 일찍, 적어도 10년은 빨리 들어왔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안타까움. 아직도 그의 단편에 드러난 재기와 어두운 상상력은 녹슬지 않았지만 지금 그의 글을 보고 감탄하기에는 시대가 늦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그렇다 해도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범죄예방시스템, <죽은 자가 무슨 말을>에 나오는 반생명체, <도매가로 꿈을 팝니다>나 <오르페우스의 실수>처럼 꿈이나 시간여행을 휴가차원에서 판매하는 기술 등의 아이디어는 여전히 흥미롭다. 테크놀러지로 인해 더 확연히 드러나는 인간성의 어두운 측면 또한.

또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번역이다. 번역에 그렇게 까다로운 사람도 아니고 많은 것을 요구할 생각은 없지만 맨 앞에 실린 단편 <아무도 못말리는 M>은 번역 상태가 제대로 읽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또 <도매가로 꿈을 팝니다(토탈리콜 원작)>나 <두번째 변종(스크리머스 원작)>은 이전에 SF단편선으로 번역되어 나온 적이 있는 대표적인 단편인데, 이전의 번역에 비해 소름끼치는 느낌이나 힘이 부족한 것도 유감스러운 일이다. 세번째 단편집을 기대할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A2Z
야마다 에이미 지음, 이유정 옮김 / 태동출판사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미운 정이 고운 정보다 강하다고들 한다. 나는 그 말에 아직 3분정도 무게를 남겨두고 있지만, 나머지 7분은 역시 아리송한 심정이다. 여기서 말하는 미운 정이란 그냥 툭탁거리고 티격태격하는 가벼운 시트콤 같은 가족과 친구의 정을 말하는 게 아니다. 사람에게서 좋은 점만 빼먹는다면야 당연히 단 음식이 질리듯 사는 게 재미없지 않겠는가. 내가 알 수 없다고 말하는 미운 정은, 서로를 끈덕지게 싫어하고 증오하고 그러면서도 떨어지지 못하는 그런 집착과 애증이다.

기성 세대는 이런 발언에 '그러니까 너희가 신세대지'라든가 '아직 어리구나'라는 말을 해 줄지도 모른다. 때로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으면서. 정과 한이 뒤얽히고 애증이 함께 하는 끈적한 정- 분명히 그쪽이, 인생을 더 잘 대변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 나는 역시 자유로운 사랑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집착하지 않고, 지나치게 소유하려 들지 않는 사랑. 아픔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당히 단념할 줄 알고 어차피 짧은 생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삶을 내거는 야마다 에이미의 소설에는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은 즐거움이 있다. 예전, 처음 단편집이 국내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그저 가벼이 읽고 지나가는 정도 작가였던 그녀는 몇년이 지난 지금 내게 꽤 괜찮은 소설가가 되어 '읽어볼 만한 책'이라는 추천과 함께 돌아왔다. 좁은 자취방이나 여행을 떠난 열대의 섬에서만 이루어지던 자기 안의 자유가 이제 밖으로 향하기 시작한 모양이다.

이 책은 후속작 '애니멀 로직'에 비하면 역시 소품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소품 나름의 잔재미가 쏠쏠하다. 절대 초라하거나 누추해지지 않으려는 작가와 주인공의 협동심에 웃음이 나올 때도 있지만, 뭐 멋내고 폼내고 당당하게 살겠다는 게 나쁠 건 없잖은가. 그것이 초라하고 어두운 뒷면을 무시하는 시선만 아니라면. 아, 그리고 한 가지 덧붙임. 이 책이 나왔을 때 일본의 팬들이 그 낙관성에 놀라 '이건 야마다 에이미가 아냐'라고 했다는데, 애니멀 로직을 먼저 봐서인지 그런 느낌은 없었다. 작가도 드디어 나이가 들어가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