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2Z
야마다 에이미 지음, 이유정 옮김 / 태동출판사 / 2004년 10월
평점 :
절판


미운 정이 고운 정보다 강하다고들 한다. 나는 그 말에 아직 3분정도 무게를 남겨두고 있지만, 나머지 7분은 역시 아리송한 심정이다. 여기서 말하는 미운 정이란 그냥 툭탁거리고 티격태격하는 가벼운 시트콤 같은 가족과 친구의 정을 말하는 게 아니다. 사람에게서 좋은 점만 빼먹는다면야 당연히 단 음식이 질리듯 사는 게 재미없지 않겠는가. 내가 알 수 없다고 말하는 미운 정은, 서로를 끈덕지게 싫어하고 증오하고 그러면서도 떨어지지 못하는 그런 집착과 애증이다.

기성 세대는 이런 발언에 '그러니까 너희가 신세대지'라든가 '아직 어리구나'라는 말을 해 줄지도 모른다. 때로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으면서. 정과 한이 뒤얽히고 애증이 함께 하는 끈적한 정- 분명히 그쪽이, 인생을 더 잘 대변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지금 나는 역시 자유로운 사랑 쪽에 손을 들어주고 싶다.

집착하지 않고, 지나치게 소유하려 들지 않는 사랑. 아픔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당히 단념할 줄 알고 어차피 짧은 생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삶을 내거는 야마다 에이미의 소설에는 그렇게 가볍지만은 않은 즐거움이 있다. 예전, 처음 단편집이 국내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그저 가벼이 읽고 지나가는 정도 작가였던 그녀는 몇년이 지난 지금 내게 꽤 괜찮은 소설가가 되어 '읽어볼 만한 책'이라는 추천과 함께 돌아왔다. 좁은 자취방이나 여행을 떠난 열대의 섬에서만 이루어지던 자기 안의 자유가 이제 밖으로 향하기 시작한 모양이다.

이 책은 후속작 '애니멀 로직'에 비하면 역시 소품을 벗어나지 못하지만, 소품 나름의 잔재미가 쏠쏠하다. 절대 초라하거나 누추해지지 않으려는 작가와 주인공의 협동심에 웃음이 나올 때도 있지만, 뭐 멋내고 폼내고 당당하게 살겠다는 게 나쁠 건 없잖은가. 그것이 초라하고 어두운 뒷면을 무시하는 시선만 아니라면. 아, 그리고 한 가지 덧붙임. 이 책이 나왔을 때 일본의 팬들이 그 낙관성에 놀라 '이건 야마다 에이미가 아냐'라고 했다는데, 애니멀 로직을 먼저 봐서인지 그런 느낌은 없었다. 작가도 드디어 나이가 들어가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