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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야 한다 나는 살아야 한다
마르틴 그레이 지음, 김양희 옮김 / 21세기북스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적극 추천하는 책이다.
페이지 수가 많아서 힘들 수는 있겠지만, 끝까지 읽는다면 분명 살아갈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독서노트]
"살아남아라, 마르틴."
이 책은 2차세계대전의 포화를 견뎌낸-홀로코스트로부터 살아남은- 마르틴이라는 한 유태인 소년의 성장소설이자, 인권·환경·문화 관련 운동가이자 여러 책의 저술가인 마르틴의 자서전이다.
(그는 살아있는 역사이며, 오래된 말로 역사의 산 증인이다)
하루하루가 지옥같고, 한순간의 실수가 죽음을 부르는 곳에서
그는 자신을 위해서 또한 헛되이 희생된 사람들을 기념하기 위해서 살아남기로 다짐하고
온갖 힘을 다해 살아남는다. 그 이야기가 이 책 속에 하나하나 스며들어 있다.
그에게 있어서 살아남는다는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삶은 늘 기적과도 같은 기회를 허락하지만, 그것을 붙잡는 것은 언제나 준비된 자의 몫이었다.
극한 상황 속에서도 그는 살아 남기를 선택했다.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살아남는 것보다
더 달콤하게 느껴지는 상황속에서도 말이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나는 현대를 사라가는 사람들이 자살을 기도하는 것이 참으로 사치스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죽는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피해갈 수 없는 일이지만 이를 스스로가 허락 한다는 것은 얼마나 호사스러운가! 제2차 세계 전쟁 가운데 살고 싶어도 살지 못하고 무참히 학살되었던 유태인들을 떠올려보면 말이다. 그들에게는 오직 억지스러운 죽음만이 허락되었을 뿐이다. 물론 그 상황 속에서 자살한 사람이 있긴 하지만, 이 자살은 현대인의 자살과는 그 무게감이 다르다.
기를 쓰고 살아 남기를 간절하게 원해도 그것을 붙잡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는 한편, 온갖 힘을 다해 죽고자 하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렇지만 나는 이 둘을 단순 비교하는 것이 바람직 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있었다는 점을 감안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전쟁, 전쟁이란 참으로 잔혹한 것이다. 인간의 존엄이란 찾아볼 수 없게 만든다.
묵직한 공기, 희망이 없는 절망의 무덤속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인 마르틴과 같이 살아남기로,
도망치기로 선택하는 것은 쉽지가 않은 일 일 것이다. 죽는 것이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상황 속에서, 살아 남는다는 것은 억지스러운(?) 생명과 삶을 계속해서 이어간다는 의미가 되어버리니깐 말이다.
따라서 이러한 상황 속의 자살은 오히려 각 개인 스스로가 가지는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나는 생각해본다.
한편 지금의 세계-대다수의 나라들-는 범죄자의 인권을 존중하는 단계까지 나아왔다. 살인자의 생명까지도 사형제도를 통해 함부러 죽여서는 안된다고 말하기 까지 하다. 그러나 이는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되지만, 얼마나 사치스러운 일인가. 나는 범죄자들이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참으로 좋은 세상에서 태어난 것이다. 전쟁 가운데 태어나 범죄자로 잡혔다면, 아마 너무나도 손쉽게 개처럼 놀림당하고 총살당하지 않았을까.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말이다.
인간은 늘상 그래왔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감사할 줄 모른체 살아가곤 했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적같은 일인지 알고 있는가? 또한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도 말이다. 그런데 이것이 너무도 흔하디 흔한 것이 되어버렸다.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렸다. 우리가 접하는 매체들은 손쉽게 죽음을 이야기 하고, 기적을 이야기 한다. 우리는 원치 않게 그 단어들에 대해 익숙해져 버렸다. 더 자세히 말해, 우리들은 그 단어들에 대해 질려버렸다.
현대 사회는 가치 있는 것들을 가치 있게 바라 볼 줄 모른다. 가치 있는 것, 우리가 소중히 여기고 지켜나가야 할 것들은 어디로 갔는가? 수많은 말만이 덩그러니 빈 껍데기를 쓴채로 남아 있고, 그 의미는 점점 퇴색되어 갔다. 심지어 같이-함께 함, 공동체-의 가치를 외치는 것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아닌 광고였다. 광고라니...!
이야기가 길어진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안에 들끓어 오르는 내면의 꿈틀거림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그저 주저 앉을 수 없다. 그렇게 속으로 되뇌이고 되뇌였다.
끈질긴 생명력으로 계속해서 이어지는 마르틴(저자)의 삶의 이야기들은 생(生)의 가치를 모르는 나를 힘껏 흔들어 놓았다. 그리고 나는 이에 내 몸과 마음을 맡기고 마음껏 휩쓸렸다.
살아 있는가, 살아 남았는가.
그렇다면 그것이 바로 당신에게 주어진 '기적'임을 기억하라.
그리고 스스로에게 그 기적을 일깨우고, 타인에게 나누어라.
당신의 삶을 통해서 다른이의 삶 또한 기적임을 보여주라.
당신은 내게 있어서 '기적'일 수 있고,
나는 당신에게 있어서 '기적'이 될 수 있다.
나와 당신은 이 순간 망설일 수 있다. 하지만 기억하라.
앎이란 이를 깨달아 실천에 옮기지 않는 이상 '고인 물'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러한 앎은 썩어 들어가기 마련이다. 자기 합리화라는 사유와 함께...
또한 왜 망설이는지를 생각해보라. 내가 포기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어떤 점이 나를 힘겹게 하는지를 떠올려보라.
아마도 나와 당신은 무언가를 가지고 저울질 하고 있을 것이다. 결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두려움이 엄습해올 것이다. 하지만 늘상 그래왔듯 처음 한번이 어려운 것이다. 우여 곡절 끝에 한번 시도하고 나면 그 다음은 쉽다.
이미 수많은 말을 해왔으므로 더이상 긴말 하지 않겠다.
앞으로의 나와 당신에게 건투를 빈다. 훗날 우리 같은 길 위에서 만날 수 있기를...
[독서 中]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너무나도 사치스럽게 삶을 사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내게 주어진 시간들, 하루하루가 기적임을 망각하고 원망만 하고 사는 것이 한심하게 느껴진다.
그 말도 안되는 상황들 속에서, 그는 차라리 죽는 것이 더 편함에도 불구하고 살고자 마음먹는다.
자신의 동족인 수많은 유태인들이 헌신짝만도 못하게 죽임당하고 버려지는 것을 그는 살아남아서 고발하고 증언하고자 한다.
하루하루 살아 가기가 벅차다. 너무나도 가혹한 인생이다. 15살의 어린아이인 주인공이 그저 살아남기 위해서 행하는 모든 행위들이 한편으로는 대견스럽기도 또한 한편으로는 처참하기 짝이 없다. 살기 위해서 몸무리치면서도 죽음을 선택하지 않는 그 모습에 감탄하기도,
또한 그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기에 선택하게 되는 모든 행위들 -그것에는 인간의 존엄이 남이 있지 않고 그저 살고자 하는 욕구밖에는 없는 행동들- 때문에 가슴아프기도 하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가. 그러나 나의 정신은 썩은 것이 아닌가.
나르시즘에 빠져, 자기애적인 경향이나 보이며 또한 세상에 대해서 사회에 대해서 전혀모르면서
그것쯤이야 하는 생각에 빠져있지를 않나, 마지막으로 스스로를 자기합리화 하기에 급급한 나머지
자신은 창의적이며 똑똑하며 어딜 가나 쓰임 받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나의 모습은 바람직 한 것일까.
삶이 사람을 만들어 낸다. 삶이 허락한 상황이 우리를 길러낸다.
나는 그러한 삶의 영역에 안주하고 싶었던 것이다. 약간의 가혹함이 있더라도 안정될 수 있는 그런 삶에 말이다.
하지만 이 소설을 보면서 나는 그 안주하려는 마음이 나를 목조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 곳에서 계속 머물러 평안함을 즐기려 하다보면, 마음이 썩어들어가고 정신이 혼미해지며,
또한 육체까지도 망가지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내일부터 나는 어제와 같은 삶을 살지 않겠다.
하루하루의 삶을 어제와 다른 삶이 되게 하겠다.
상황을 변화시키려 노력할 것이며, 설사 주어진 환경을 바꾸지 못할 지라도
그 속에서 나는 나를 변화시켜 그 상황을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바꾸어보겠다.
지나친 컴퓨터 사용과 TV 시청이, 또한 생각없이 무작정 읽어대는 독서 혹은 활자중독이
또한 아무것도 하기 싫어하는, 배우려 하지 않고 그저 시간만 떼우면 된다는 어리석은 게으름이
나를 망치고 있다. 결국 나는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살아야 한다, 나는 살아야 한다.
지금 내게 주어진 이 첫번째 기회가 마지막 기회임을 명심해야 한다.
기회는 한번 놓치면 다시는 만나지 못할 지도 모른다.
머리를 명민하게 정신을 맑게 하고 있자. 육체를 움직여두어 채력을 비축해두는 것도 필수적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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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줄긋기]
p.179
* 트레블린카(Treblinka, 트레블린카 수용소. 바르샤바 북동쪽으로 100킬로미터 지점, 폴란드 도시 시에들체와 말키니아 중간 트레블린카의 철도 마을 부근에 있었다. k. 이곳에서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유대인들이 살육당했다...)
트레블린카.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
이 이야기를 하려면 다른 목소리, 다른 단어들이 필요하다. 단어 하나하나마다 사라진 수천 명의 삶을 추모해야 하며, 그 삶과 함께 사라진 기쁨과 인생의 절대적인 아름다움을 기려야 한다.
절망감이 우리 모두를 휩쓸고 있었다. 나는 자발적으로 죽음을 택하는 사람들에게 휩쓸려들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나는 그 절망적인 흐름에 맞서 싸웠다. 내가 의지할 건 내게 계속 말을 거는 방법뿐이었다. 나는 반드시 살아야 한다. 내가 사랑한 사람들을 위해 살아야 한다. 복수를 하고 세상에다 대고 트레블린카가 죽음을 뜻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 살아야 한다고 속으로 되뇌었다.
p.281
아버지) "마르틴, 힘내라, 마르틴. 우는 걸 겁내면 안 돼."
"마르틴, 우리는 계속 견뎌야 한다."
"마르틴, 너는 투쟁해야 한다. 우리의 의무이기 때문이지. 우리는 끝까지 싸워야 한다. 우리 대부분은 죽을 거야. 너는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 살아남아라, 마르틴. 우리 모두를 위해 살아남아."
p.326
우리는 결코 원수를 갚을 수 없었다. 살육자들을 죽인다고 죽은 가족들이 다시 살아나는 건 아니었다. 복수란 언제나 쓰디썼다.
...
나는 그들이 우리를 더 죽이지 못하도록 그들을 죽여야 했다. 인간의 탈을 쓴 그 짐승들을 죽여야 했다.
"우리도 사람을 죽이고 있어, 볼레크. 우리도 사람을 죽이고 있다고."
"하지만 그럼 달리 무슨 일을 하겠니? 선택은 네가 하는 거야, 미에테크"
p. 374
약한 자들에게는 모든 일이 불가능해 보이는 법이다. ... 내 인생은 그런 불가능한 일들로 가득차 있었다. 나는 안 다녀본 곳이 없었지만 어디에서나 "불가능하다"고 푸념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나 나는 여기 나는 살아 있지만 그들은 죽었다. 나는 언제나 불가능한 일도 가능하리라고 믿었다. ... 하지만 소심하고 자만에 차 있는 대령과 같은 부류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시키는 대로 복종하는 일뿐이었다.
p.376
정의를 실천하기란 어려운 법이다.
p.382
사람이란 모름지기 사태를 냉정하게 받아들이고 계획을 수정하려고 애쓰며, 사람들의 말을 귀담아 듣고 배워야 하는 법이다.
내 형제들이여. 나는 그대들의 원수를 완전히 갚는 일에 실패했다. 그리고 내가 복수를 했더라도 그대들의 생명을 되살려 놓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실패했다. 죽은 자를 되살릴 수는 없다. 오로지 새로운 생명만이 그 죽음이 잊히게 할 것이다. 새로운 다른 생명들.
p.399
나는 박해받았기에 증오와 비참함에 익숙했다.
유일한 기쁨이자 커다란 기쁨이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었다.
p.401
돈은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자유를 준다는 걸 나는 이미 게토에서부터 알고 있었다.
p.404
바르샤바, 잠브로프, 자렘비, 어느 곳에나 살육자들이 있었다. 그들은 나치 친위대의 얼굴을 하거나 폴란드 작은 도시의 시장, 소련군 대령, 또는 도둑질하는-kg을 속여서 파는- 미국인 정육점 주인의 탈을 쓰고 있었다. 그들과 상대하는 건 어떤 대가를 치르든 피해야 했다. 그리고 살아남아서 자기만의 요새를 세우려면 지금은 그들의 공범자가 되지도 말고 그들과 맞서는 것조차 피해야 한다는 것도 배워야 했다. 모든 도시의 중심부,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어느 곳에나 인간다운 인간과 살육자를 갈라놓는 전선이 형성돼 있었다.
p.405
나는 지지 않기 위해, 기계에 묶이지 않기 위해 싸워야 했다. 자기의 삶을 선택하고 그 음울한 작업장과 먼지 나는 창고에서 벗어나려면 싸워서 이겨야 했다. ... 새 생명을 만들고 가족을 보호할 능력을 가지려면 빨리 갈 길을 정하고 돈을 벌어야 했다.
p.412
가족이 살아 있을 때 해줄 수 있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바로 제정신이 아닌 일이었다.
죽음이 가족을 앗아가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걸 모르는 것이 바로 미친 짓이었다.
p.422
"삶을 좀 즐기도록 해봐. 자네는 늘 싸우고 있어. 살아가는 방법도 배워보라고. 자네는 아직도 몰라."
"자네가 살아남기 원했기에 살아남은 것이야."
p.429
때로는 사랑하는 사람들이라도 거리를 두어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p.447
언제나 첫 단계가 가장 어려운 법이다. 바르샤바에서도 전차가 움직이기 시작해 매달려야 했을 때, 승강구에 있는 폴란드 경찰이 어떻게 행동할지 몰랐을 때, 게토의 담을 한 번도 넘어보지 못했을 때, 그런 때가 가장 어려웠다. 첫 단계를 뛰어넘으면 그 후에는 모든 게 쉬워졌다.
p.507
내가 타인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면 인생의 의미가 어디 있겠는가?
살아가고 끝까지 버텨내면 언젠가는 다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 나의 죽음과 내 가족의 죽음을 보상해서, 우리의 생명을 영원히 이어가게 되는 그런 날이 올 것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한 누군가가 남아서 내가 사랑한 사람들을 위해 그 이야기를 전하고 증인이 돼 줄 그런 날이 올 것이다. 이것은 나의 운명이다.
p.508 에필로그) 내가 사랑한 것들을 위하여
나는 우리가 바탕은 모두 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 모두 고통을 받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 내가 삶에 기여한 모든 것이 곱절이 돼 돌아온다는 것을 배웠다.
우리의 경험과 운명이 우리 스스로를 인도한다고 나는 믿는다. 우리를 전진하게 하고 어떤 일을 하게 만드는 운명 말이다.
만약 내가 손을 내밀어 남을 돕지 않는다면 내 삶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복잡하고 개성적인 한 명의 인간은 인간 공동체라 불리는 전체의 더없이 귀중한 일부분이다.
" 인간 공동체를 받들어야 하고 모든 인간의 복지를 위해서 일해야 한다. 개인의 이익은 공공의 이익이 돼야 하고, 상호의존을 통해 공공의 이익은 개인의 이익이 돼야 한다는 것은 자연이 정한 원칙이다. 사람들 사이에는 자연적으로 형성된 유대감이 있는 공동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