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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만원 세대 - 절망의 시대에 쓰는 희망의 경제학 ㅣ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1
우석훈.박권일 지음 / 레디앙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88만원 세대를 드디어 다 읽게 되었다. '88만원 세대' - 2010년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20대들에게 붙여진 말이다. 그런데 이것은 사실 20대들이 가진 특징이나 속성이 아니라, 그들에게 주어진 환경을 뜻한다. 그래서인지 '김예슬 선언'의 주인공인 김예슬씨는 88만원 세대라는 20대를 향한 이름표를 거부한건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20대인 우리들을 제대로 평가한 것이 아니니깐.
기대가 컸던 만큼 이 책은 실망감도 컸다. 20대가 처한 현실적 문제에 대한 논의를 다룬 것도, 이에 대한 원인을 규명해보는 것도, 또한 그에 대한 해법을 유럽이나 미국, 또는 일본에 비추어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다. 하지만 뭐랄까 말할 수 없는 아쉬움이 드는 것은 왜 였을까.
먼저 88만원 세대라는 용어가 주는 부정적 어감.
X세대니 N세대니, 또는 U(ubiquitous)세대니 하는 것은 들어봤지만, 이러한 세대의 정의 앞에 경제적 화폐 단위가 붙은 적은 처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것이 그 세대가 처한 실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해도 말이다. 개인적 생각으로는 나와 같은 20대들을 이처럼 88만원 세대로 규정짓는 것에는 우리 세대들을 향한 안타까움의 시선과 함께 (이 책에서 들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무시의 태도도 엿보이는 것만 같다. 왜냐하면 우리 세대가 다른 여러 좋은 특징들도 가지고 있을텐데, 그 모든 것들을 제쳐두고 경제적인 상황으로만 우리 세대를 다른 세대들과 구별짓는다는 점에서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개인적 생각은 지나친 점이 있어서 그냥 가볍게 넘겨주시면 될 것 같다.
다음으로는 88만원 세대가 지닌 (경제적) 문제에 대한 해법들이 원론적이거나 혹은 우리나라의 사정에 맞지 않는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
이 책 내용의 구성을 살펴보면 현재의 20대를 정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서, 그들이 처한 상황을 분석하고, 또한 그들이 직면하고 있는 문제들을 논의하는 것 정도로 구성되어 있다. 이를 통해 생각해 볼 때, 이 책의 초점은 '해결'이 아니라 '문제제기'에 맞춰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겠다. 따라서 나의 아쉬움은 88만원 세대 이후 시리즈 책들을 읽어보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아쉬운 것은 아쉬운 거니깐 이렇게 밝혀둔다.
88만원 세대, 나와 같은 20대가 나아갈 길은 과연 어디인 걸까?
책에서도 이야기 하듯, 무너져가고 있는 '공동체성'의 회복이 절실히 필요할 것 같다. 이는 경제적인 보험과 마찬가지로 인생에 있어서 강력한 보험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모두의(대다수의) 합의가 있어야 하고,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하는데 이점은 쉽지 않을 것이다. 파편화 되어 있고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포스트모더니즘 시대를 살아가는 20대들에게 사회적인 합의를 이끌어 내려고 하는 것 자체가 무리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모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서 '나만 아니면 돼'라고 말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 이 '나만 아니면 돼'라는 말은 재미를 주는 TV프로그램에서만 등장하는 말이 아니다. 녹화된 방송이 아닌 현실을 살아가는 나와 우리에게도 이런 생각이 없었다 말할 수 있는가? 은연 중 '나만 아니면 돼'라는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았는가 말이다. (여기에 대해 나는 할 말이 없다.) 책에서는 이러한 생각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 한다. '20대의 다다수-95%, 책에서 인용-가 처한 상황은 이렇다. 지금 그들은 개미지옥 속에 있다. 나만 아니면 된다는 생각으로 맨 위로 올라선다 해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다. 지금 당장 잡아먹히느냐, 혹은 조금더 늦게 잡아먹히느냐 하는 차이만 있을 뿐 말이다'
이런 이야기가 공감이 된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나만 아니면 돼'라는 달콤한 유혹을 뿌리치기에는 역부족이다. 왜냐하면 지금 내가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바로 내가 잡아먹히기 때문이다.
한편 여기에는 다른 시각도 있다. 20대의 경제적인 문제- 지엽적으로 보아서는 취업의 문제-는 과연 사회적인 문제인가 혹은 개인의 문제인가 하는 것이다. 물론 내가 말하고자 하는 다른 시각은 바로 '개인의 문제'라고 하는 것이 되겠다. 앞서 말한 20대의 경제적 문제를 사회적인 문제라고 보면 사회전체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되지만, 반면에 개인의 문제로만 보면 개인의 노력부족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개인의 노력부족! 이러한 시선을 인정하게 되면 스스로에 대한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즉 한정되어 있는 좋은 일자리에 들어가지 못한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노력부족탓이지 않느냐라고 해버리면 그 말을 듣는 당사자는 할말을 잃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만 하는 것일까? 무엇이 이러한 상황을 해결할 수 있게 할까? 위에서는 이야기하지 않았지만 좀더 책을 읽어보면 개미지옥에 대한 대처법이 나온다. 과연 무엇일까. 한번 생각해보라. 계속해서 미끌어지는 모레 가운데서 탈출할 방법을 말이다. 썩은 동아줄이 아닌 새 동아줄이 필요한 걸까? (이민) , 아니면 남들을 발판 삼아 안전히 탈출하면 되는 걸까? (승자독식, 나만 아니면 돼) 정 그것도 안되면 마음을 깨끗이 비우고 내 차례를 기다려야 하는 걸까? (백수 혹은 캥거루족, 또는 최악의 경우 자살)
그런데 이 책이 제안하는 대처법은 위와는 전혀 다르다. 그것은 바로 개미지옥에 들어있는 개미들 모두가 개미귀신과 맞서 싸우는 것이다. 그렇다! 그것은 바로 '20대들의 연대'다! 이는 바로 앞서 말한 공동체성의 회복을 이야기하는 것이며, 개인 혼자서는 감당하지 못하는 일들을 가능하게 할 것이다.
20대의 연대(공동체성의 회복)에 이어 '세대간의 연대' 또한 절실히 필요하다. 나는 20대의 경제적 문제에 대해 앞선 세대들의 88만원 세대들을 향한 배려를 기대하며, 실질적인 도움(양보)을 기대한다. 가령 실질적인 도움은 책에서 나오듯 자신들의 임금을 조금씩 줄이더라도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게 하는 것 등이 있을 수 있겠으며, 배려에는 20대의 경제적 문제에 대해 '개인의 노력부족'이라는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을 그치는 것 등이 있겠다.
2010년, 어느덧 이 책이 출간된지도 3년이 지났다. 과연 무엇이 얼마나 달라졌을까? 여전히 20대들은 88만원 세대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하고 있으며, 취업과 안정된 직장에 대한 고민 가운데 있다. 물론 임금과는 상관없이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어려운 상황속에서도 용기있게 도전하여 자신만의 가게를 꾸려가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20대간의 연대나 세대간의 연대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다면 아직 때가 무르익지 않아서 인 것일까. 상처가 나고 곪아도 그것이 즉시 터지지는 않는 것처럼. 언젠가 나는 짱돌을 들어야 할 지도 모르겠다. 혹은 내가 아니면 내 밑의 세대가 그러한 일을 행할지도 모를 일이다.
나의 마지막 바람은 이렇다. 20대가 되면 겪을 수밖에 없는 '경제적 문제'를 88만원 세대인 우리와 기성세대들의 연합으로 어느정도 해결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에는 '연대'가 필요한데, 그러한 움직임이 일어나길 소망해본다. 힘듦과 어려움이 우리 88만원 세대에서 그칠 수 있을까. 제발 내 자식에게는 이런 고통스런 현실을 물려주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