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예슬 선언 -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김예슬 지음 / 느린걸음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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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숨에 읽어버렸다. 이 얇은 책에는 단편적 지식과 논리적 수사가 아니라, 인생이 그녀에게 허락한 삶에서의 치열함과 고뇌가 담겨져 있었다. 
 

25살의 김예슬 씨,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야 그녀의 말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녀는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했고, 근본원인들을 생각해냈으며 해결책을 고민했다. 비록 아직은 그 해결책이 보이지 않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지만 분명 그 답을 얻을거라고 나는 믿는다.

 

Input과 Output

나는 수많은 지식을 내 머릿속에 집어넣고 있지만, 그것이 내 삶이 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무수히 많은 지식과 정보의 Input 속에서, 나는 그것의 얼마만큼을 내 삶으로 Output하고 있었던 걸까. 내 삶이 단조롭고 지루했던 것은, 20대의 젊은이가 가져야 할 열정과 패기를 잃어갔던 것은 '삶'이 없었기 때문이다. 수많은 좋은 아이디어와 생각들 그리고 여러 저서들을 통해 배운 것들이 내 삶으로 나오기엔 버거웠던 것일까. 떠밀려가듯 살아온 25년의 인생가운데 스스로 결정하지 못했던 것들이 떠오른다. 나는 두려웠다. 마치 그렇게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끝장날 것 같았다. 대학생활이 끝나간다. 복학하면 바로 끝이된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도중에 멈춰서야했다. 그것이 경쟁자들에게 비록 시간낭비로 보일지 몰라도 말이다. 허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 항상 나는 현실과 미래를 저울질 해야만 했다. 그것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그저 내 자신의 꿈과 의지보다 부모님의 의지와 다른 누군가의 의지를 따르며 살아왔기 때문이리라. 그래! 지금의 내가 이모양 이꼴인 것은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던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주도성' 말이다. 나는 스스로 생각하지 못했다. 나는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못했다. 나는 그저 주어진 것들을 암기하고 주어진 모범답안을 배껴왔을 뿐이다. 그렇다고 머리가 좋았던 것도, 특별히 노력을 많이했던 것도 아니었으니(내가 가진 상황적 한계가 있다고 해도!) 이모양 이꼴이 아닌가.

 

캥거루족

나는 무엇을 스스로 해왔던 것일까. 여전히 부모님 품안에서 호의호식하고 있지 않은가. 그저 공부를 조금 잘했다는 이유로, 몸이 남들과 달리 좋지 않다는 이유로 무능력하게 책만 들여다 본 나였다. 그러나 모든 것을 누군가를 탓해서는 쓰겠는가. 몸으로 하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았다는 것은 내 책임이다. 비록 운동신경이 남들에 비해 많이 둔했다해도 말이다.

스스로 땀흘려 돈을 벌어본적이 있었던가. 홀로 무언가를 이뤄본적이 있었던가. 그저 생각과 몽상속에 자기만족하며 살아오지 않았던가. 부모님이 피땀흘려 버신 돈으로 음악CD를 사모으고, 거기에 빠져서 헤어나올줄 몰랐던 것도 사실 아니었던가.

 

지식정보화 사회

사회는 많이 변했다. 그것도 급속도로 말이다. 정보혁명이 우리 삶에 미친 영향력은 지대하다. 먼저 삶의 영역이 확장되었다. 우리는 가만히 앉아서 지구반대편의 상황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심지어 그곳으로 가볼 수도 있다. 놀라운 일이다. 또한 누구나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손쉽게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과거에 비해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졌다. 더이상 정보는 가진자의 것만은 아니게 되었다. 이제는 단순한 정보보다 이를 가공한 지식이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이러한 지식은 자본, 토지, 노동에 이어 중요한 생산요소가 되었다. 사실 지식 자체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허나 자본, 토지, 노동과 같은 생산요소와 결합될 때 엄청난 부가가치를 가져올 수 있다. 바야흐로 현대사회는 지식을 빼놓고서는 아무것도 이야기 할 수 없는 시대이다.

 

지독한 전문화

지식사회는 전문가들의 사회이다. 전문가라는 개념은 사실 그리 낯선 것은 아니다. 예전에 있었던 장인들이나 학자들을 생각해보면 생소한 개념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장인과 학자에 비해 좀더 친근해진것같다. 전문가, 전문가란 무언가에 탁월한 사람이며 그 무언가에 해당하는 분야에 있어서 전문화 되어있다. 이러한 전문화를 통해 전문지식을 가진다. 그리고 우리는 이들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것을 전문가들에게 의존하려는 경향성이 생겨버렸다는 것이다. 물론 전문성을 요구하는 것들이 분명있다. 예를들어 사람의 생명이 달린 의료행위에 있어서는 전문화된 의사의 손길이 필요하다. 허나 모든 것에서 전문가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런데 현재의 추세는 모든 것들에 전문가를 양성하려는 것처럼보인다. 자격증을 떠올려보자. 별별 자격증이 다있다. 요리에서부터 종이접기같은 것들도 있고. 나는 지독한 전문화라고 말하고 싶다. 나 스스로 행할 수 있고, 잘 할 수 있음에도 괜히 전문가의 의견이나 도움이 필요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런지...

 

무기력해진 부모세대

자급자족의 시대는 갔다. 스스로 얻는 것만으로는 인간답게 살기위해 턱없이 부족하다. 그것은 만족을 모르는 인간의 욕심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남들과의 비교를 통해 결정되어지는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것뿐이겠는가 효율성의 문제도 있다. 

자급자족의 시대였다면 지금쯤 나는 부모님이 하시던 일을 하고 있을 것이며, 아마 농사를 짓고 있지 않았을까. 그러나 시대가 바뀌었다. 자급자족의 시대는 지나가고 돈이라는 세련된 도구로 서로 필요한 것을 교환하는 시대. 더나아가 앞에서 말했었듯 이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지식이 중요해졌다. 이러한 변화속에 우리의 부모세대는 무기력해졌다. 그것은 그분들이 못나서가 아니다. 시대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더이상 부모세대는 우리에게 먹고사는 법을 가르쳐줄 수 없게 되었다.

 

교육

나는 학교를 다닌다.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고등학교의 12년에 이어 대학교까지 학교를 다녔으며 학교를 다니고 있다. 시대가 변했고 지식이 주요한 생산수단이 된 지금, 이러한 지식을 습득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수단은 학교를 다니는 것이다. 참 지겹게도 학교를 다니는 구나. 비용도 어마어마하게 많이 들었고.

 

배움이 사라진 대학

내가 초등학교 5학년때 IMF라는 것을 뉴스를 통해서 들었다. 그당시에 IMF란 말은 TV를 통해 어디서든 쉽게 들을 수 있는 것이었다. 이 당시에 있었던 외환위기는 국가 경제에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 기업은 줄도산하고, 대기업들도 망하는 시기였으니 작은 기업들은 말해 무엇할까. 경기가 나빠지면서 실업자는 늘어나고 일자리는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 이러한 상황속에 대학교도 변화하기 시작한다. 일단 대학생들이 취직이 안되는 황당한(?) 경우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은 예전에 비해 취직이 쉽지 않게 된 것이다. 그러니 취업을 위해서는 경쟁을 해야했다. 그것도 더욱 치열한 경쟁을 말이다. 대학교에 처음부터 배움이 없었을리 없다. 그냥 먹고사는 문제 앞에서 배움과 치열한 고민들이 사라져 갔을 뿐이다. 내 자신을 평가해보는 유용한 척도인 학점이 취업을 위해서는 꼭 맞춰야하는 기본스펙으로 바뀌어 갔을 뿐이다. 굳이 더 많이 전공학문에 대해 공부하기 보다 남들과의 경쟁에서 유리한 것들을 학습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고 생각했을 뿐이다. 사회가 먼저 바뀌었고 대학생이 덩달아 바뀌어 가고 따라서 대학이 바뀌어졌다. 대학은 취업전문학교가 되어갔다. 그런데 그것이 지금까지 내려오게 되었고, 김예슬 선언에 큰 몫을 하게 된 것이다.   

 
 2010년, 그리고 나는.

나는 농땡이 대학생이었을 뿐이다. 동아리를 한답시고 공부에는 소홀했던, 놀기 좋아했던 철없는 젊은이였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은 공익으로 군생활을 하고있고, 취업에서 전적으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학점에는 자유롭기에 좀더 편안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내 나이 25살에 처음으로 용돈없이 생활을 해보고 있고, 2년이란 긴시간동안 한곳에서 일을하고도 있다. 덩달아 그곳에서 조금씩 몸을 쓰는 일을 배우고 있기도 하다. 이런 내 자신이니, 김예슬씨가 참으로 부러울 수 밖엔. 같은 나이의 한 아이가 있는데 나는 꿈에도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해내고 있으니 내 자신이 부끄러울 수 밖엔.  참, 몸쓰는 일을 하면서 느낀 건데 아무래도 나는 몸쓰면서 먹고 살기는 힘겨울 것 같다. 어리버리하기 때문일려나. 따라서 머리로 먹고 살아야 하는데... 그래서 고민이 더 많아진다. 아직도 내가 뭘 잘하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겠다. 인생의 방향을 설정해놓고 있긴 하지만, 참으로 변덕스러운 내가 언제 그것을 바꿀지도 모르겠고.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안하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번에 나도 김예슬씨처럼 살아보는 건 어떨까 싶다. 오해하지는 마시라, 전역하자 마자 대학을 때려치거나 그러지는 않는다. 적어도 나는 남이 한번 했던 일을 똑같이 따라하고 싶지는 않다. 그건 나답지 않기에. 따라서 나는 요걸 해볼 생각이다. 내가 생각하고,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들을 위해 직접 나의 '삶'으로 살아보는 것 말이다. 얼마나 많은 것을 내 삶을 통해 담아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과정을 지금 이 나이에 시작해보련다. 더불어 내가 바라는 것은 그녀에겐 있었던 공동체인 대학생나눔문화와 같은 공동체를 나도 속해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다.

책을 덮고나서 생각컨데 그녀는 혼자서 결정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대학을 그만둔다는 선택은 결국 그녀 스스로가 내린 것이겠지만, 그 과정에는 공동체가 있었고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대학생나눔문화라는 모임이 바로 그것이다. 갑자기 이 말이 떠오른다. 혼자 꾸는 꿈은 그저 꿈이지만, 함께 꾸는 꿈은 현실이 된다란 말이. 지금 나는 어떤 꿈을 꾸고 있는가? 그리고 그 꿈은 과연 우리가 꾸는 꿈과 얼마나 일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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