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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지음 / 작가정신 / 2008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언젠가 김연수의 책을 사 읽은 적이 있다. 그의 단편소설들을 모은『세계의 끝 여자친구』였다. 한때 '요즘 영화감독 지망생들은 박찬욱을 따라하고, 소설가 지망생들은 김연수를 필사한다'는 말이 떠돌았을 정도로 명성이 자자한 그의 글이 궁금했고, 예쁜 디자인의 표지가 잠자고 있던 충동구매욕구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그걸 다 보고나서 다짐했다. 다시는 김연수의 책을 읽지 않겠다고. 그와 나는 대충 비슷한 고향 출신에, 나름 같은 학교도 나왔고, 얼핏 비슷한 외모를 갖고 있지만 그러한 공통분모들과 그의 글에 대한 나의 선호라든가 취향의 문제는 확실히(당연히) 별개였다.
그런데 이전의 그 결심을 깜빡하고서 다시 충동적으로 그의 소설을 집어들고 말았다. 단숨에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두께와 '김연수가 독자들을 위해 쓴 단 하나의 연애소설'이라는 말에 혹해서. 이 책을 읽고나서 든 생각을 거칠게 나열해보자면 이렇다. 재밌다. 슬슬 읽었는데도 구조적으로 고민한 흔적이 엿보인다. 그리고 이걸 쓴 작가는 이성과 감성이 고루 발달한, 여러모로 부지런히 공부하는 사람이구나. 예전에 읽었던 어떤 소설들은 '나도 좀만 노력하면 소설 하나 쓸 수 있겠는데?'라는 희망을 준 적이 있다. 그런데 김연수가 스스로 "잠깐 쉬어가는 기분으로" 쉽게 썼다고 밝힌 이 책 한 권을 읽고서 역시 소설가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라는 걸 절감했다.
가장 마지막에 든 생각, 이라기보다 느낌은 '외롭다'는 거였다. 왜인지 논리적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게다가 사실 그 느낌을 외로움이라고 칭하는 게 적확한 건지도 잘 모르겠다. '사랑 따위' 믿지 않지만 결국 가장 사랑이 필요한 듯 보이는 남자주인공 진우에게 감정이입이 되었거나, 아니면 한 작가가 잠시 쉬어가는 셈 치고 끄적인 이런 글조차도 난 평생에 한 번 못 쓰리라는 잔인한 현실인식으로부터 비롯된 박탈감이었거나, 무언가가 끝난 뒤 으레 찾아오는 공허함이었거나. 전부 다 이거나. 이 책을 읽고난 직후, 습관처럼 오른 뒷산에서 야경을 바라보다, 스무일곱해만에 문득 새로운 사실을 하나 알 수 있었다. 여름이 이다지도 서늘한 계절이라는 걸.